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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2주 비평글 당선작-조커 (ID:

  • 작성자 물처럼
  • 작성일 2005-08-16
  • 조회수 642

 

  이번 주 비평글은 8월 9일부터 8월 14일에 올린 글을 대상으로 심사하였습니다. 주로 최근까지 2편 이상의 글을 올린 사람의 글을 대상으로 우선 심사를 하였고, 그 결과  조커 (ID: joker)님의 ‘온몸으로 읽은 전태일 평전’과 nature 님의 ‘납세도의심이 결여된 실태, 이젠 바뀌어야’를 8월 2주 우수작으로 2편 모두 추천하기로 하였습니다. 추천 사유는 아래와 같습니다.




    온몸으로 읽은 전태일 평전


조커 (ID: joker)님의 글을 읽고 참으로 행복했습니다. 이 글의 관점에 동의하고 동의하지 않고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대한민국 학생들 가운데에서 이와 같이 진지하면서도 열정적으로 책을 읽고, 자신이 느낀 감동과 의문을 이토록 솔직한 목소리로 토해내는 독서비평문을 써내는 학생을 만날 기회가 많지 않기 때문입니다. 또한 우리가 독서나 토론교육, 또는 이런 비평글쓰기 활동을 통해 길러내야 할 이상적인 독자의 모습과 ‘조커’ 님의 글내용이 서로 매우 가깝기 때문입니다.

  이 글은 독서의 내용과 자신의 감상이 상호 교차하여 배치하는 짜임으로 글을 써나가 읽는 이가 어떤 생각을 하며 읽었고, 어떤 심리의 변화와 세계관으로 정립이 되어가는 지를 생동감있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비평글을 개설한 목적은 다양성있게 여러 문화현상을 다룬 글을 올리고, 그것에 대해 여러 누리꾼(네티즌)들이 백가쟁명 식으로 토론을 해나가는 터전을 만들려고 하는데 있었습니다. 그러한 토론을 좀더 깊이있게 해나가는 데, 가장 효과적인 방식은 이런 책을 모두 함께 읽고 그것에 대해 의견을 나눌 때입니다. 이런 기회에 조커 님의 글을 읽고 여러 학생들도 새롭게 독서를 하는 기회가 되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한편 걱정스러운 점은, 이 글은 노동자의 삶과 세계관에 편향(?)하는 사고를 보이는 글이라고 감상 내용에 대해 깎아내리기(폄하)를 할 수도 있다고 봅니다. 노사문제에 관해 입장을 정리하는 글을 쓸 때는 양쪽 모두의 입장을 고려하는 글을 써야 객관적인 주장을 펼칠 수 있다라는 주문(통념?)이 쏟아질 때가 많기 때문이지요. 상호의 입장을 고려해야 좀더 객관적인 관점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은 공감합니다, 그러나 나는 세상의 모든 문제를 그렇게 정리하다 보면 절충주의에 빠져 대충 야합해 버리는 오류를 만들 수 있다고 봅니다. 여러 측면을 고려해도 결국 전태일의 삶과 죽음의 선택에 대해 공감할 수 밖에 없다면 그것을 우리는 자신의 삶에 적용하는 가치관으로까지 받아들여야 합니다. 이 글에서는 그러한 인식의 과정이 잘 드러나 자연스러운 공감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또한  조커 님은 여러 학생들의 글을 읽고 적절한 반응을 충실히 보이면서도, 매우 예의있고, 관점과 개성이 분명하면서도 독자(토론자)의 모습을 느낄 수 있어 이런 측면도 함께 칭찬합니다.



nature 님의 ‘납세도의심이 결여된 실태, 이젠 바뀌어야’

<납세 좋아 좋아>

 

  납세의 소중한 의무를 실천하기 위한 방안을 네 가지 측면에서 제시하였습니다. 가정교육, 학교교육, 대중매체를 통한 교육, 납세자의 날 행사 등 사회운동이라는 측면에서 구체적인 예시를 들어가며 주장을 펼쳐 공감을 이끌어 냅니다. 글의 짜임도 서론에서  세금의 정의와 용도를 제시하고, 본론은 위와 같이 제시하고, 결론에서 공동체 의식의 회복과 세금의 수혜자는 결국 납세자 개인이라는 점을 재강조하며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깔끔한 논리전개가 돋보이는 글입니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세금을 내지 않는 풍토가 납세자의 무지에서 비롯되는 것만이 전체 원인인지, 다른 사회적인 요인이 있는지를 폭넓게 살펴보는 사고가 필요하군요. 한국에서는 봉급생활자는 매월 월급마다 세금을 꼬박꼬박내어 ‘유리지갑’이라는 명칭이 생길 정도인 반면, 고소득 자유업자(변호사, 의사,건축사,세무사...), 상인 등은 세금을 너무 적게 내어 납세 정의가 무너진다는 비판이 왜 생기는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는 점입니다. 정부의 세금 수입 정책에 허점이 많이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지요. 그러니 이들에게는 아무리 교육을 한다해도 부당한 이득을 챙기는 실익을 앞세우는 욕심 앞에서는 무력한 방법이 된다는 점도 고려하여 대안을 제시해야 할 것입니다.

   문장 차원에서는 옥의 티처럼 일본식 어법이 끼어 있으니 고쳤으면 합니다. “이와 같은 현상은 최재원의 양심추적이라는 프로그램에서도 볼 수 있는데, 고래등 같은 집과 윤이나는 고급 승용차를 소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돈이 없어 세금을 못내겠다며 국세청 직원에게 삿대질을 하는 양심불량자의 모습은 보는이로 하여금 절로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라는 문장에서 ‘소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는 대표적인 일본식 어법입니다. ‘소유하고 있지만’, ‘소유하였는데도’라고 하는 것이 우리말글의 맛을 살리는 쓰기입니다. 또한 “더욱이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집에서 생활하는 유년기에는 무엇보다도 먼저 가정에서의 교육이 필요하다.”라는 문장도 ‘가정에서 교육하기가 필요하다’라는 식으로 쓰는 것이 좋습니다.

제목 달기도  ‘납세도의심이 결여된 실태, 이젠 바뀌어야’에서 ‘납세 양심의 결여(상실), 이젠 바뀌어야’ 정도로 달아주는 것이 좋을 듯 합니다.



nature 님

현대사회에까지도 남아있는 남아선호사상. 이대로 좋은가 ?

 

 

  양성평등이 이루어지지 않은 예를 남녀의 취업률, 학교 체육시간, 임산부의 여아낙태, 과거시대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남아선호 등을 제시하여 문제점을 제기하고, 그 대책을 결론에서 제시한 글입니다. 현대사회에서는 상식이 되었어야 할 양성평등이 잘 이루어지지 않은 사회상을 비판하고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하려고 노력하려 한 점이 잘 드러난 글입니다.

  글의 논지한 분명한 점도 칭찬할 일입니다만, 맞춤법이나 띄어쓰기도 항상 신경쓰며 글을 쓰기 바랍니다. 이 비평글 지도에서 맞춤법 띄어쓰기까지 일일이 언급하기는 물리적인 시간이 부족한 점을 양해바랍니다. 그리고 글쓰기에서 바른 어법을 지켜쓰는 것은 가장 기본적인 예의입니다. 글을 쓴다음 한글파일(hwp)에서 도구/맞춤법 검사기능을 한 번만 돌려 운영해도 많은 공부가 되니 유의 바랍니다.


 

우유사랑’ 님의  두발자유화에 대한 대립(가위에 잘린 인권)


‘우유사랑’ 님의  두발 자유화(머리칼 모양 자유화)에 제한적으로 찬성하는 입장의 글입니다. 톨레랑스의 정신을 원칙으로 이 문제를 접근하자는 주장과 함께 이 문제에 대해 모범적인 합의를 이루어낸 학교를 예로 들어 대안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글의 전체 짜임과 논리 전개 방식이 타당하고 매끄럽게 넘어가는 글입니다.

  다만 ‘우유사랑’님은 문장 수련에서 많은 노력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마지막 문단을 예로 든다면 “즉 우린 대립된 이 의견들을 적절히 수용하여 사회적으로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내에서 두발자유화에 대한 이 대립을 하나의 성숙된 사회를 향한 도전이고 과정이라 생각하며 이루어야 할 것이다.”라는 문장은 글의 흐름으로 보아 “즉 우린 대립된 이 의견들을 적절히 수용하여 사회적으로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내에서 해결해야 한다. 두발자유화에 대한 이 대립 의견을 하나의 성숙된 사회를 향한 도전이고 과정이라 생각하며 새로운 대안을 만들어 내야(이루어 내야) 할 것이다.” 정도의 내용으로 나누어 쓰는 것이 좋겠군요.


강민호 (ID: minhowang)님의 ‘우리나라의 교육제도에 대하여’

 

강민호 (ID: minhowang)님의 ‘우리나라의 교육제도에 대하여’는 우리나라 교육제도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외국의 제도와 대비하고 있습니다. 비평글에서는 문제점을 좀더 논리적으로 제시하고, 자기가 생각하는 해결방안(대책)까지 제시해보는 짜임의 글을 써야 하는데 글의 기본짜임이 부족하군요. 이 점에 대해서는 댓글에서 나상훈 군도 지적하고 있군요.나상훈 군도 이제는 글을 보는 눈이 많이 늘어가고 있다는 증거이겠지요?

한겨레 신문 ‘왜냐면’이란 지면에 주장글을 올린 고3학생의 글을 이 비평글 방에 올린 것을 참고하여 주장을 펼쳐가는 전략들에 대해 생각해 보시길 바랍니다. 진지한 글 올려주어서 반가웠습니다. 




Ansi (ID: yumi204) 님

 

사랑하는 이를 향한 안타까움의 이야기

-이상의 ‘거울’ 비평


  *문학은 작가(시인)의 손을 떠난 그 순간부터 수 천만 독자에게 독자의 숫자만큼이나 많은 새로운 의미로 다가가는 특성을 갖고 있습니다. 이 시를 해석한 Ansi (ID: yumi204) 님의 개성적인 해석도 나오게 되고, 그런 해석을 읽은 즐거움도 누리게 되는 기쁨도 얻게 됩니다. 참고서나 선생님의 해석을 듣고 그대로 메모하는 것보다는 이와같이 자기나름의 해석을 해보는 것이 시감상(또 시해석 공부)를 하는 매우 좋은 방법입니다.

다만, 이 작품에서는 해석의 전제가 되는 부분에 대해 많은 논란이 될 수 있겠군요. ‘거울’의 의미를 ‘자아인식, 성찰, 반성의 매개체’로 해석하지 않고 ‘연인’, ‘애정과 욕망의 대상’ 으로 해석하는 것은 논리적 비약이 심하다는 비판을 받을 수도 있겠군요. 시의 내용안에서만 해석할 때도(내재적 관점) 사랑의 상황에 빠졌다는 근거를 찾기 힘들기 때문이고, 시인의 경향과 이 시가 나온 역사적 상황을 살펴 볼 때도 비약이 심하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 시는 ‘오감도’라는 연작시의 일부입니다. ‘오감도’는 시인의 자아의식의 점검과 문명비평의 성격이 주로 담긴 시를 계속 이어서 썼으니까요.

문학감상에서 독특한 해석은 매우 중요합니다만 해석의 타당성을 항상 고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 타당성을 서로 인정하지 못한다면 문학은 절대해석할 없는 암호와 같은 존재가 되어 버릴테니까요. 이 시에서는 ‘거울’이 의미가 무엇이든간에 어쨌든 시 속에서 독백하듯 우리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화자가 행복한 상태가 아니라는 점, 거울과 가까이 하려 하지만 가까이 할 수도 없고, 의사소통도 잘 되지 않는 어떤 안타까움이나 고립감을 다루고 있다는 정도로 해석하는 것이 여러 사람들이 수긍할 수 있는 타협점이 될 것 같습니다. 이런 의견에 대한 Ansi (ID: yumi204) 님의 생각은 어떠한지요?

  그러나 무엇보다 칭찬할 점은 Ansi (ID: yumi204) 님이 주체적인 해석을 위해 노력하는 그 자체입니다. 권위에 짓눌리지 않고 ‘가장 개성적이면서도 타당한 해석을 하려는 노력’ 그것보다 아름답고 소중한 공부방식은 없으니까요. 다른 작품에서도 다시 한 번 해석과 비평을 시도해 주시길 제안합니다.



도덕 윤리 교과서비판(Kailete (ID: usjeg6))

 

 

도덕 윤리 교과서비판(Kailete (ID: usjeg6))-입장에 대한 교사 의견글


이례적일 수 있으나, 8월 11일에 쓴  (Kailete (ID: usjeg6))님의 글은 여러 학생들이 타당한 비평글(논설문)을 쓰기 위해 함께 읽어 보았으면 하는 마음에서 여기에 교사의 의견글을 평과 함께 올립니다.  댓글 달기가 300자 밖에 되지 않는 물리적인 한계도 고려한 쓰기 방식이니 양해 바랍니다.


 

  생태주의란 모든 존재의 삶이 유기적인 관계에서 복된 삶을 영위하는 세계를 생태계라 합니다. 지배와 복종의 삶이 아니라 서로간의 조화로운 질서가 아름답게 펼쳐지는 생태계를 지향하는 의식이 생태주의(ecoism) 환경관입니다.


  환경관은 환경을 보는 시각을 의미하며 환경을 보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크게 기술 중심주의적 환경관, 생태 중심주의적 환경관이 있습니다. 기술 중심주의적 환경관은 인간이 이 세계를 관리하는 만물의 영장(주역)이므로 기술만 잘 사용하면 적절한 개발과 환경보존을 양립시킬 수 있다는 입장입니다. 이에 비해 생태 중심주의적 환경관은 인간이 기술을 아무리 잘 적용관리 시키려고 해도 자연이란 적정 정도 이상의 개발 또는 오염이 생기면 회복불가능한 상태에 들어가므로 항상 인간이 자연과 조화롭게 살아가기 위해 신중한 태도로 접근해야 한다는 논리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생태 중심주의적 환경관은 생태적으로 환경을 바라보는 시각을 의미합니다. 기본적으로 자연의 중심이 인간이 아니며(기술 중심주의적 환경관), 자연과 하나된 네트워크 속에서 인간의 활동도 존재한다고 보는 사상(생태 중심주의적 환경관)입니다.

  핵 발전소 운영을 예로 들어 생각해 봅시다. 인간이 아무리 기술적으로 잘 관리한다 해도 체르노빌(소련), 드리마일(미국) 발전소 핵누출 사고처럼 회복 불가능한 상황이 생기는 것이 기술 중심주의적 환경관의 폐해인 것지이요. 체르노빌이 경우, 반경 60KM 이내는 지금도 사람이 접근할 수 없는 죽음의 땅이 되었고, 반경 300KM 안에서는 농작물도 재배할 수 없는 상황이 생기는 것이지요. 그리고 핵의 폐해가 완전히 사라지려면 2만 5천년의 핵반응 반감기를 거쳐야 한답니다. 그런 위험을 무시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서양의 과학적 합리주의, 과학기술 맹신주의에서 비롯한 것이고, 그것은 또 한편으로는 성경에서 ‘인간이 이 세상을 다스려라’라고 하나님께서 허락하셨다고 믿는 기독교 문화의 오해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 서양철학자들의 지적입니다. 그러니 그것을 종교모독이나 특정종교 비난이라고 볼 수는 없는 것이지요.

  대안으로 내세운 노장철학도 ‘거스름이 없는 조화’의 개념이 ‘무위(無爲)’이지 완전히 미개인이나 원시인이 되어 자연에 돌아가야 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님의 주장은 이해할 수 있는 관점이지만, 너무 극단에 치우쳐 버리게 되는 것은 어떤 사상이 출발하게 되는 배경상황을 간과하거나, 단어의 사전적의미를 논거로 확대해석을 해가는 오류에서 비롯된 것임을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이런 측면에 대한 보완은  ID 조커, 혼(魂)의 댓글에도 잘 나타나고 있군요. 이런 기회를 통해 Kailete (ID: usjeg6)님도 자신의 생각의 관점에 대해 재점검하는 좋은 기회가 되리라고 봅니다.

그렇지만 교과서에 나온 글이라고 덮어놓고 믿어버리지 않고, 의심하고 비판하는 태도가 공부에서는 매우 소중한 자세이므로 그런 자세는 매우 바람직하다고 칭찬하고 싶습니다.




  덧붙여 생태 중심주의적 환경관에 관한 아래 기사를 참고해 보기 바랍니다.



영국의 잡지 ‘생태학자들’이 편집한 ‘생존을 위한 청사진’(1972)은 당시의 추세가 지속될 경우 지구상의 생명 지원체계에 돌이킬 수 없는 혼란이 20세기말에 올 것이라고 경고했다.   소련과 미국에서 연이어 터진 원자력 발전소 사고는 동서 양진영에 생태론적 종말론의 그림자를 드리웠고, 환경에 대한 관심은 냉전 종결 뒤인 92년의 리우 회의에서 절정을 이뤘다.

오존층 파괴, 삼림 파괴, 공기와 수질의 오염 등 과학자들이 보고하는 지구 환경의 악화는 근래의 생태론적 조바심을 정당화한다. 그러나 근본적 생태론이 과학 기술에 대한 적의와 근대 이전 농경사회 공동체에 대한 동경이라는 낭만주의적 에토스 안에 다소 거친 반인간주의, 반합리주의, 신비주의를 간직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바람직한 것은 과학 기술을 적절히 제어하는 것이지, 그것을 기피하는 것이 아닐 것이다. 법치주의도 시장 경제도 확립되어 있지 않았고 굶어죽기가 예사였던 ‘목가적(牧歌的)’ 중세로 돌아가는 것은 가능하지도, 정당하지도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근본적 생태론자들은 기술 체계라는 것이 권력의 중앙집중과 밀접히 관련돼 있어서 그것이 참된 민주주의와 양립할 수 없다고 말한다. 부분적으로는 옳은 말일 것이다. 그러나 에코토피아 역시 생태계에 대한 엄격한 관리와 규제를 전제할 수밖에 없고, 그런 엄격한 관리와 규제는 지금보다 훨씬 더 집중화한 중앙권력이 없이는 불가능할 것이다.(한국일보 2000/04/25)


 


나상훈 님의 글은 전반작으로 나날이 글의 구성능력이 높아지고 있고, 다른 학생들의 글을 보는 눈도 많이 높아지고 있음을 댓글달기 내용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지금 눈앞에 보이는 것이 전부인가’라는 글은 이전의 다른 글들에 비해 글의 짜임과 서술 능력이 구체화되어가고 있음이 보입니다. 계속 정진하시길 바랍니다.

 

 

부탁하는 말

 

 

  우유사랑님도 계속 의욕적으로 좋은 글을 올리고 댓글달기를 열심히 하는군요. 이번주에는 더 좋은 인연으로 만나길 바랍니다.

 

  다른 여러 학생들께서도 댓글 달기에 관심을 갖고 활발한 토론활동을 하여 보시길 바랍니다. 그런 과정이 세상을 보는 폭넓은 시각과 좋을 글을 찾아내는 기준, 좋을 글을 쓸 수 있는 기반이 되니깐요.

물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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