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영화 <빈센트 반 고흐>

  • 작성자 관리자
  • 작성일 2006-10-08
  • 조회수 513

 

 

벨기에 복음 선교회. 간절히 목회자의 길을 소망하는 청년이 있다. 당신은 어쩔 수 없다고 말하는 담당자에게 그는 어느 곳이든 다른 이들이 가지 않으려 하는 곳으로 보내달라고 요청한다. 목사의 아들이면서, 불과 1년 전까지도 목회자의 삶은 상상도 한 적 없는 이 사람. 주인공 빈센트 반 고흐다.

소원대로 고흐는 탄광촌에 전도사로 부임한다. 그곳 사람들은 하나같이 비참한 생활을 하고 있다. 고흐는 설교 도중 교회를 나간 남자를 찾아가 어떻게 하면 복음을 전할 수 있겠느냐고 묻는다. 열한 살 먹은 어린 아이들도 탄광에서 일하는 현실, 옷도 침대도 없는 집에서 짧은 잠을 자는 광부들의 생활. 새 전도사는 허름한 판잣집의 지푸라기 위에서 자며 모든 것을 이들과 나눈다. 탄광촌에서 사고가 일어나고, 자신을 찾아온 목사들에게 불 같이 화를 내는 고흐.

처음엔 고마움을 가졌던 사람들이 점차 고흐를 성가시게 여겼다는 이야기가 있지만, 사실은 알 수 없다. 다만 냉정하게 봤을 때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고흐는 가난한 이들과 하나가 되고자 했다. 그래서 광부들과 비슷한 곤궁함에 처할 수 있었다. 하지만 고흐가 완전히 그들과 같아질 수도 없었고, 또 스스로 가난을 겪으면서 실질적으로 줄 수 있는 게 적었으리라고 생각할 수 있다. 이상이 있었지만, 안타깝게도 고흐에게는 단지 그것 밖에 없었다.



영화의 흐름은 고흐의 편지나 고흐를 다룬 다른 책에서 읽은 것과 대부분 같다. 하지만 청혼했던 케이에게 아이가 있었다는 점, 시엔의 본래 이름이 크리스틴이었고 아이도 이미 둘이나 있었다는 건 몰랐던 점이었다. 시엔은 고흐를 만난 때에 이미 임신 중이었고 알콜중독에 성병이 있었다는데, 영화에선 다루지 않았다. 알고 보니 시엔은 훨씬 더 사연이 많은 여자였던 모양이다.

짧은 동거와 이별. 아버지가 위중하다는 전보를 받고 기차를 타려는 고흐에게, 시엔은 돌아와도 자신이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연민으로 함께 살기 시작했으나 갖은 생활고로 어영부영 지리멸렬하게 헤어지는 두 연인이 아름답게 그려지는 건, 고흐 자신이 테오에게 보낸 편지와 이 영화가 유일할 것이다. 시엔이 아이를 낳은 이후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서, 고흐는 시엔이 그저 평범한 여자이지만 숭고하게 보인다고 썼다. 숱한 난관 속에서도 여전히 꿈을 꾸고 행복에 젖을 수 있는 사람의 문장으로.



모베와 결별한 일은 더욱 짧게 처리된다. 모베는 고흐의 그림을 칭찬하며 그림도구와 석고상을 주었지만, 고흐는 모베의 방식에 염증을 느낀 듯하다. 아마도 조금 뒤에 보낸 듯한 편지를 보면, 두 화가가 그림을 통해 표현하고자 하는 바가 서로 달랐음을 짐작할 수 있다. 고흐에게 “나는 예술가입니다.”라는 말은 무엇인가를 온전하게 찾을 때까지 노력하고 열중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고갱과 다투고 헤어진 일도 둘의 목표가 매우 달랐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편, 영화 속 고흐는 고갱을 향해 여러 번 외로움을 호소한다. 고갱이 오기 전 해바라기 연작과 노란 색으로 집을 꾸민 것도, 뜻이 맞는 동료와 함께 그림을 그릴 수 있을 것이라는 바람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고흐는 고갱이 온 것으로 매우 들떴고, 고갱이 떠나자 낙담하고 귀를 자른다. 계속 고독하게 살아갈 것 같다고 썼지만, 사실은 고독하기보다 외로웠던 것 같다.

고흐는 고갱의 연락으로 달려온 테오에게 요양원에 보내달라고 한다. 군대에 가려는 생각도 있었다. 주민들 사이에 미쳤다는 말이 퍼져 있기도 했고, 테오가 요한나와 결혼했기 때문에 전처럼 테오와 지낼 수는 없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고흐가 정신병을 앓았다고 알려져 있지만,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던 때에도 이미 미쳤다는 이야기는 있었다. 또 고흐는 감정이 예민하고 비현실적인 면이 있어 이해하기 어려운 사람이었고, 가까운 가족들 가운데 간질을 앓았던 이가 많았다. 불안정하고 혼란스러운 탓에 여러 곳을 옮겨 다니며 그림을 그렸고, 요양원도 얼마간 현실에서 도피하려던 의도로 생각한다.



고흐는 화가들의 공동체를 만들겠다는 생각이 있었다. 그러나 뜻대로 되지 않았다. 죽을 때까지, 판화는 몇 점이 팔리기도 했지만 유화는 한 점 밖에 팔리지 않았다. 헌신적으로 자신을 도와주는 테오에게 빚을 졌다는 미안함이 있었고, 요한나가 테오처럼 고흐를 좋아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결혼을 하고 나서, 테오는 경제적으로 더 어려워졌다. 

그러나 무엇보다 고흐를 괴롭히고 죽음을 맞게 한 것은, 자기불신이었다고 생각한다. 밤낮으로 그림에 몰두했지만, 늦게 시작한데다 끊임없이 몸을 혹사시킴으로써 시간이 많지 않았다. 고흐는 의사를 만나고 나서 쓴 편지인 듯, 몇 년 동안 어느 정도 양의 작업을 할 것이라는 사실만 알 뿐, 다른 것을 기대하지 않는다고 보냈다. 확고하고 변하지 않으며, 동생의 말처럼 누구보다 노력하는 사람이었지만, 고흐의 생활은 어려웠다.

나는 내내 고바야시 히데키가 쓴 <고흐의 증명>이 떠올랐다. 영화 속, 고갱과 함께 지내던 시절, 고흐가 푸른 옷을 입고 있는 부분이 있다. 더불어, 역시 같은 옷에 파레트를 든 모습의 자화상 ‘왼손잡이’가, 조금만 채색한 모습으로 스치듯 보인다. 고갱이 우는 소리 말라며 감상적인 고흐를 몰아세울 때, 고흐가 칼을 들고 나타났을 때, 울부짖다가 귀를 자를 때. 고흐를 매우 좋아해서 하루에 한 작품씩 관람하고는 했다는 고바야시 히데키에 따르면, 고흐는 더 이상 닿을 수 없는 곳까지 가 닿았다고 한다. 마지막 자화상을 보면 그것을 알 수 있다고. <고흐의 증명>은 ‘왼손잡이’가 위작이라는 가설을 흥미롭게 입증하는 책이었다. 



일요일 낮에 방송한 빈센트 반 고흐(lust for life)는 내 무료한 추석의 유일한 낙이었다고 할 만하다. 고흐의 삶을 비교적 충실히 조명한 이 영화는 어빙 스톤이 쓴 동명의 전기소설 lust for life가 원작으로, 여러 미술관의 허락을 구한 그림들이 영화 사이사이에 비춰진다. 그림이 상할 수도 있어서 매우 조심스럽게 촬영했을 것이지만, 필름에 담긴 그림은 책에서 소개하던 것과는 빛깔이나 느낌이 달라서 즐거웠다. 실제로 보면 얼마나 더 좋을까를 생각하니.

고흐를 맡은 커크 더글라스는 뉴욕 비평가 협회상(1956), 골든 글로브 시상식(1957)에서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그리고 주목할 만한 사실은, 고갱을 연기한 앤서니 퀸이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두 번째 남우조연상을 수상했다는 것이다. 중요한 배역인 건 사실이지만, 그가 출연한 분량은 얼마 되지 않는다. 감독은 빈센트 미넬리로, 뮤지컬 영화를 주로 만들었다. 그런 까닭인지 반세기 전 영화임에도 그렇게 느껴지지 않았다. 비디오는 <열정의 랩소디>란 제목으로 91년에 출시되었고, 같은 제목으로 많이 소개되어 있는 듯하다.

 

 

잊을 뻔했는데, 재밌는 것이 있다. <과학동아> 8월호는 7월 7일자 네이처 온라인뉴스를 소개했는데, 고흐의 후기 작품 속 소용돌이가 난류의 움직임을 보여주는 것으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멕시코국립대의 물리학자가 연구한 것으로, 고흐가 혼란스러웠던 시기의 그림들은 난류를 다루는 유체역학의 대표법칙 콜모고로프 척도와 일치하지만, 약물치료를 받았을 때의 자화상은 난류가 잘 표현되지 않았다는 것. 그런데 이런 법칙을 몰라도 고흐의 그림은 충분히 아름답다. 콜모고로프가 뭔지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여러 번 읽어도 아리송하게만 느껴지더라도.  

 

 

 

관리자
관리자

추천 콘텐츠

[감상&비평] 2024년 4월 월 장원 발표

글틴 친구 여러분 안녕하세요. 감상&amp;비평 게시판 멘토인 문학평론을 쓰는 김태선입니다. 요즈음 산책을 하다보면 봄에 피었던 꽃들 지고 그 자리에 작게 열매가 자라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어요. 한낮에는 반팔만 입고 다녀도 될 정도로 따뜻한 날씨가 되었습니다. 모두들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나요. 4월에 감상&amp;비평 게시판에는 글들이 많이 올라오지는 않았어요. 4월에는 늘 열심히 쓰는 송희찬님과 화자님, 그리고 이번에 새롭게 Alicja님 세 분의 글을 만날 수 있었어요. 송희찬님은 예전보다 글의 짜임새가 좋아졌고, 화자님은 늘 나름의 관심 분야에서 치열하게 생각하는 글을 써주었어요. Alicja님도 자신의 경험 평소의 생각해온 것들에 빗대어 작품을 읽고자 한 모습도 좋았습니다. 하지만 모두 글쓰기의 목소리가 독자보다는 글을 쓰는 자신으로만 향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조금은 아쉬웠던 것 같아요. 안타깝게도 이번에는 월장원을 선정하지 못했습니다. 비평&amp;감상 게시판에 많은 글들이 올라와서 다음 달에는 여러 작품을 장원으로 선정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번 달에는 조금은 독특한 책 두 권을 추천 도서로 소개하고자 합니다. 하나는 동물과 세계가 서로 능동적으로 관계맺는 방식을 살피는 생물학 책으로, 인간 중심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던 것과는 다른 방식으로 우리를 둘러싼 환경과 세계를 생각할 수 있도록 합니다. 다른 하나는 다른 예술 장르와는 다르게 감상자가 행위자로 참여하는 장르이자 매체인 &lsquo;게임&rsquo;을 탐구하는 책으로, 기존의 예술과는 다른 방식으로 우리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미학적 운동에 관해 생각하게 합니다. 야콥 폰 윅스퀼, 『동물들의 세계와 인간의 세계』, 정지은 옮김, 도서출판b, 2012 C. 티 응우옌, 『게임: 행위성의 예술』, 이동휘 옮김, 워크룸프레스, 2022 그럼 항상 안전하고 건강한 나날 만들어가시길 바랍니다. 글을 쓰다가 궁금한 점이 있다면 게시판에 글을 올릴 때 함께 남겨주세요. 답을해드릴 수 있는 것이면 함께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 관리자
  • 2024-05-09
[감상&비평] 2024년 3월 월 장원 발표

글틴 친구 여러분 안녕하세요. 감상&amp;비평 게시판 멘토인 문학평론을 쓰는 김태선입니다. 어느덧 4월이 되었어요. 모두들 새로운 환경에 적응도 하고 새로운 친구도 만나게 되었을 것 같아요. 4월은 기온도 따뜻해지고 꽃도 피어 야외 활동을 활발하게 하기 시작하는 시기이기도 한데요, 이런 때일 수록 안전과 건강에 유의하는 일 역시 중요합니다. 그럼 2024년 3월 월장원 선정작을 말씀드리겠습니다. 3월에는 산문집 『그냥, 사람』에 관해 쓴 난바다님의 글 「그냥, 사람은 그냥, 사람으로부터」를 월장원으로 선정하였습니다. &lsquo;사람&rsquo;이란, 그리고 &lsquo;그냥, 사람&rsquo;이란 어떠한 모습일까, 그리고 이른바 &lsquo;정상&rsquo;이라든가 &lsquo;일반&rsquo;이라는 것들이 이루어내는 포함과 배제의 논리에 관해 자신의 경험담과 더불어 생각해볼 수 있게 하는 좋은 글이었습니다. 특히 &lsquo;나&rsquo;와 다른 조건과 환경에 처해 있는 존재에 관해 외면하지 않고 헤아려보고자 노력하는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이번 달에 함께 읽어보면 좋을 책으로는 &lsquo;우정&rsquo;에 관한 것들로 골라보았어요. 각각 두 시인이 함께 쓴 시집, 장편 소설, 그리고 비평적 에세이를 엮은 책입니다. 김은지&middot;이소연, 『은지와 소연』(디자인이음, 2023) 김금희, 『복자에게』(창비, 2020) 모리스 블랑쇼, 『우정』(류재화 올김, 그린비, 2022) 모두들 건강하게 글 쓰기를 바랍니다. 글을 쓰다가 궁금한 점이 있다면 게시판에 글을 올릴 때 함께 남겨주세요. 답을해드릴 수 있는 것이면 함께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 관리자
  • 2024-04-11
[감상&비평] 2024년 2월 월 장원 발표

글틴 친구 여러분 안녕하세요. 감상&amp;비평 게시판 멘토인 문학평론을 쓰는 김태선입니다. 학교에 다니는 친구들은 새 학년을 맞아 들뜬 마음으로 분주한 시간을 보내고 있을 것 같아요. 지금 당장은 바뀐 환경이 다소 어색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금방 적응하여 익숙해질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럼, 2024년 2월 월장원 선정작을 말씀드리겠습니다. 2월 월장원은 영화 에 관해 쓴, 담님의 「천진은 영원하지 않다」입니다. 글의 길이가 다소 짧은 게 아쉽게 느껴질 만큼, 영화에 관한 솔직한 심정을 자신만의 생각과 함께 잘 표현한 글이었습니다. 금안백님과 송희찬님 두 분 꾸준하게 글쓰는 모습 보기 좋습니다. 아직은 생각한 만큼의 결과물이 나오진 않겠지만, 조금씩 나아지고 있으니 너무 조급하게 생각하지 않으셨으면 해요. 그리고 2월에 처음 만나게 된 gksgPdnjs님, 이윤서님, neverland님의 글도 반가웠습니다. 모두 꾸준히 활동하면 좋은 결과가 있을 거예요. 이번 달 부터는 마무리 하는 자리에 함께 읽으면 좋을 것 같은 책을 몇 권 추천하고자 합니다. 추천하는 책은 다음과 같아요. 차례대로 시집, 소설집, 그리고 철학자가 쓴 산문집입니다. 모두 우리가 맺고 있는 다양한 형태의 &lsquo;관계&rsquo;에 관해 생각해보도록 하는 이야기들을 담고 있습니다. 민구, 『세모 네모 청설모』, 현대문학, 2023. 최은영,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문학동네, 2023. 빌렘 플루서, 『사물과 비사물』, 김태희&middot;김태한 옮김, 필로소픽, 2023. 모두들 건강하게 글 쓰기를 바랍니다. 글을 쓰다가 궁금한 점이 있다면 게시판에 글을 올릴 때 함께 남겨주세요. 답을해드릴 수 있는 것이면 함께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 관리자
  • 2024-03-11

댓글 남기기

로그인후 댓글을 남기실 수있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을 남겨 주세요!

댓글남기기 작성 가이드

  • 타인에게 불쾌감을 주는 욕설, 비방 등은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 주제와 관련 없거나 부적절한 홍보 내용은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 기타 운영 정책에 어긋나는 내용이 포함될 경우, 사전 고지 없이 노출 제한될 수 있습니다.
0 /1500
  • 물처럼

    독서방법 중 공감하며 읽기, 빠져들어 읽기의 대표적인 사례인데도 중간 중간 자신 경험 세계로 다시 빠져나와 자기의견을 덧붙여 가며 작품의 내용과 작품이 주는 매력을 잘 조화시켜 보여주고 있군요. 좋은 글 올려 주어서 잘 읽었습니다. 다른 글도 더 올려 주어서 감상할 기회를 주기 바랍니다.

    • 2006-10-12 20:26:33
    물처럼
    0 /1500
    • 0 /1500
  • 물처럼

    등의 그림을 그린 화가 고호, 불꽃같은 창작열로 자신을 태워버린 횃불처럼 뜨거운 사나이 고호, 평생을 고독하게 살면서도 따뜻하고 행복한 세상을 그리던 남자 고호, 고호의 삶을 영화로 우연히 본 것을 정리한 글이로군요. 줄거리와 함께 그동안 고호에 대해 관심갖고 읽었던 여러 책의 정보를 잘 녹여내여 천재 예술가 고호의 내면을 읽어내는 도구로 알맞게 활용한 글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 2006-10-12 20:26:31
    물처럼
    0 /1500
    • 0 /1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