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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석문 뜨락/박용래

  • 작성자 풍선꽃다발
  • 작성일 2007-06-07
  • 조회수 187

 

 뜨락이라는 시를 읽으면 어렵지 않게 시골의 한 정경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마침 주인이 자리를 비우고 없는 집에 손님이 들어와 툇마루에 걸터 앉는다. 대문을 열어두고 살 만큼 서로 살갑게 지내는 시골 마을이다. 그 사이 모과나무 위로 구름이 머물고 삽살개는 선잠에 빠져든다. 바람결에 개비듬이 산들대고 소금항아리가 차갑게 식는다. 그리고 시인은 쓴다. '그들은 서로 말을 할 수는 없다/다만 가족과 같이 어울려 있다.'라고.
 하지만 내가 시를 읽고서 떠오른 이미지를 장황하게 풀어쓴 줄글과 다르게 본문은 무척 간결하다.

 

 뜨락

          박용래

 

 모과나무, 구름
 소금 항아리
 개비름
 주인은 부재
 손만 기다리는 시간
 흐르는 그늘
 그들은 서로 말을 할 수는 없다
 다만 한 가족과 같이 어울려 있다

 

 8행과 9행을 제외하면 '구름, 소금항아리, 삽살개, 부재, 시간, 그늘'과 같은 명사로 맺음하여 각 행을 간결하게 처리한다. 이는 줄글에서 단순히 나열하는 식인 문장과 다르다. 줄글에서는 합성어가 아니면 명사와 명사 사이에 조사나 구둣점을 붙이는 경우가 보통이지만, 운문에서는 행갈이를 하여 명사가 가진 이미지를 간결하게 처리하고, 시에 율동감을 주는 방법이 가능하다. 시 뜨락은 운문이 가진 그 같은 행갈이의 특성을 효과적으로 살렸다. 그래서 상황을 장황하게 늘어놓지 않고도 수식어와 명사 몇 개만으로도 정황이 입체적으로 전달된다. 또한 쓰인 단어들은 얼핏 보기엔 아무렇게나 골라서 늘어놓은 듯 보이지만, 시인이 꾀하는 정서에 따라 인식한 고도의 산물로서 섬세한 짜임새를 지닌다. 그 밑바탕에는 사람과 자연이 한 가족처럼 어울림으로써 구분이 모호해지고 조화를 이루는 향토성이 깔린다. 오늘 날 그 같은 향토성은 사람과 자연이 조화롭지 못한 도시에서 생활하는 나를 비롯한 도시인들에게 마음에 휴식을 줄 것이다.

풍선꽃다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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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물처럼

    시쓰기는 컴퓨터에 비유하자면 일종의 압출파일 만들기와 같습니다. 하고 싶은 말은 많아도 그것을 타인이 알아먹을 수 있을 최소한의 단어만 남기고 압축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독자는 풀어 읽어야 하겠지요? 풀어읽는 힘은 논리적 추리력과 창의적인 상상력이 함께 필요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글로 풀어 쓸 수 있는 문장의 질서를 갖추면 되겠지요. 짧은 시를 꼼꼼히 잘 풀어 썼군요.

    • 2007-06-16 22:47:09
    물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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