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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화주의 복지국가 성립과 민주

  • 작성자 아마도생선
  • 작성일 2007-06-15
  • 조회수 838

공화주의 복지국가 성립과 민주주의

 

1.들어가며

        1987년 6월은 뜨거웠다. 거리는 민주화 쟁취의 열망으로 가득 찬 가슴을 가진 청춘들의 열기로 가득 채워졌다. 거리의 시민들은 그들에게 먹을 것을 건네며 박수를 쳐줬다. 그들의 희망은 하나였으며 그 하나 된 힘은 우리에게 군부독재를 종식시키고 민주주의를 도래케 했다. 87년 당시 인권변호사였던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는 “이제 더 이상 한국이란 나라에선 군부쿠데타가 성립될 수 없음에 안도감 비슷한 것을 느낀다.”1) 고 말할 정도로 절차적 민주주의는 확연한 안정궤도에 올라섰다. 그렇다면 한국의 민주주의는 내용적으로 완성됐다고 할 수 있는가.

2.한국의 사회경제적 비민주성

        1987년 민주화 운동의 중심에 서있었던 이인영 국회의원은 “절차적 민주주의는 정착되었으나 권위주의적 대통령이 사라진 자리엔 시장이라는 권위가 도래했고, 사실상 사회경제적 민주주의는 퇴보하고 있다.”2) 고 말한다. 사실 민주화 이후 20년이 지났지만 오늘날 ‘민생’과 관련된 거의 모든 사회경제적 지표들에 나타난 한국 사회 구성원들의 삶은 사회경제적 비민주성의 심화를 보여준다. 예를 들어보자. 공교육에서는 공립학교와 사립학교 학생 1명의 연간교육비의 차이는 무려 6.6배에 달하며, 사교육의 차이는 말할 것도 없다. 또한 의료복지에서는 더 나은 의료서비스를 받기위해 해외원정치료를 떠나는 사람이 있는 한편, 다른 한편에서는 의료의 혜택을 전혀 못 받는 사람이 있다. 최근에는 웰빙(Well Being) 열풍이 불어 질적인 삶을 추구하기 위해 각종 문화생활 및 여가생활을 즐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생계유지조차 힘들어 허덕이는 사람들이 있다.3) 아마 산업화된 국가들 가운데 한국은 절차적 민주주의와 산업화가 사회경제적 민주주의를 위한 제도화를 자동으로 담보해주지 못하는 가장 명료한 사례 가운데 하나일지 모른다.

3.한국사회 복지제도의 민주적 결손과 복지국가 형성의 필요성

        또한 이러한 양극화를 보정해주어야 할 한국 사회의 복지제도의 민주적 결손(democratic deficit)문제는 깊고도 전방위적이다.4) 2007년도 국가예산이 책정한 복지 관련 지출은 국민 총생산의 6%를 약간 웃돌며  서유럽 복지선진국의1/5를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실업급여의 소득 대체율은 선진국의 1/4수준인 20%조차 밑돈다. 국가 복지의 사각지대에 방치된 차상위 계층의 비율은 남한 총인구의 거의 10%에 달한다. 정부는 구제금융의 미명하에 자본을 위해서는 수십 조 원을 아낌없이 퍼부으면서도 시민사회에서 소외된 가장 취약하고 빈한한 자들을 위한 예산배정에는 놀랄 정도로 소극적이다. 근로빈곤층이라 불리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사회보험 적용률은 연금이 29.7%, 건강보험 31.6%, 고용보험 35.3%, 산재보험 43.1%로 정규직 노동자들의 보험 적용률(연금 79.4%, 건강보험 85.2%, 고용보험 86.6%, 산재보험 86.9%)에 비해 현저히 낮다.5) 이유는 한국의 복지관련 지출 규모는 OECD국가들 중 최하위일 뿐 아니라 제3세계의 평균적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6)

        당연한 말이지만, 사회경제적 민주주의가 완성되지 못하는 것은 민주주의가 불충분하게 제도화되었기 때문이다.7) 민주주의의 가치는 자유와 평등의 이념을 실현하는 데 있다. 그러나 현재 한국의 민주주의는 자유주의의 가치에 편중되어 있다. 자유주의는 개인의 자유, 특히 재산권 행사에서의 자유를 제일의 기본권으로서 중시한다. 이때 경제적 측면에서의 자유는 시장에서 가장 잘 실현되기 때문에 시장은 그 자체가 선한 것으로 간주 된다. 따라서 시장 체제 안에서 뭔가 문제가 발생해도, 그것은 ‘시장의 실패’가 아니라 시장해서 ‘실패한 개인’의 문제이거나, 혹은 시장에 간섭한 ‘정부의 실패’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단기적 불황이 장기적 공황으로 발전하거나, 자유경쟁 체제의 이상과 상반된 자본의 집중과 집적, 빈부의 격차와 경제적 불평등이 심화되기도 한다. 시장은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공평하고 중립적이지 않다. 시장에서 개인의 자유는 재산과 경제적 지위에 따라 차등적일 수밖에 없다.8) 사실상 우리는 민주화가 국가의 후퇴, 시장의 전진 배치를 내용으로 하는 자유화와 동일시되는 시대를 살고 있다. 시간이 흐를수록 권력현상으로서 시장이 야기한 병폐는 깊어갈 것이다. 이제 개혁은 자원의 당대적 배분을 넘어 영속적 배분구조를 위한 제도적 틀을 가진 공화주의9) 복지국가를 성립하는 데 초점이 주어져야한다. 이를 위해 공화주의와 사회경제적 민주화를 통한 복지국가 성립이 필요하다. 민주주의와 정치마저 희망을 주지 못한다면 우리에게는 희망이 없다. 민주주의가 만능이기 때문이 아니다. 바우만의 말을 빌리면 “인간 잠재력의 무한성과 동시에 항구적 불완전성”10)을 믿기 때문이다.

4.한국사회의 복지국가 성립의 어려움과 그 이유

        한국은 비정치적 요건들, 예컨대 산업화 혹은 경제 발전의 정도와 인구구성비의 변화 등과 관련해서 복지국가의 발전을 위한 사회경제적 단계에 충분히 도달해 있다. 문제는 바람직한 정치적 선택이 형성될 수 있는 제도적 텃밭의 확립이다. 서구 복지 체제의 발달은 거의 전적으로 민주주의에 빚지고 있다. 민주주의가 반드시 선한 결과만을 보장하지는 않지만, 그것은 비판, 토론, 다수결 원칙과 같은 점진적 변화를 위한 열린 공간과 룰을 제공함으로서 본래적으로 내연가능성을 안고 있는 시민사회의 다양한 갈등들(계급, 언어, 종교, 인종, 지역 등)이 평화적으로 해결될 수 있는 통로로서 기능한다. 특히, 자본주의 사회에 체제적으로 내제하는 계급 갈등은 민주주의적 장치, 즉 정당과 같은 정치사회의 매개를 통해 정치화되고 정책적 압력으로 전환되며 정치적으로 교정 될 수 있다. 서유럽의 복지국가는 민주주의를 통해 의회정치에 진입한 노동계급이 강력한 누진세를 재정적 자원으로 하는 복지법안들을 하나하나 입법화 시킨 결과들의 집적물이다. 복지 입법이 예산 배분을 둘러싼 첨예한 갈등을 동반한다는 점을 고려할 때, 복지의 주 수혜 계고세훈. 2007. [복지 한국, 미래는 있는가] 서울: 후마니타스층인 노동계급이 정치적으로 대표될 수 없다면 정치적 결단과 선택의 역사적 집적물인 복지국가의 발전은 처음부터 요원한 일이다. 한국이 복지국가로의 진입에 실패한 요인과 관련하여 권위주의 정치의 유산으로서 미완된 민주화야말로 복지국가로의 진입에 일차적 장애이며, 진입 이후의 지속적 발전을 위하여 노동계급의 실질적 정치 세력화가 갖는 의의는 실로 막중하다 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지난 반세기 집단 혹은 계급단위로 노동자가 산업적 정치적으로 조직되고 동원 될수 있는 여건들이 갖가지 제도적 장치와 유산에 의해서 제한 받아 온 한국적 상황에서 복지를 논한다는 것 자체가 암담한 일일지 모른다. 특히, 민주화 역사의 일천함, 정당정치의 미발달, 계급정당11)의 부재, 대안정당12) 혹은 조직13)의 결여, 온정주의와 개혁주의 전통의 핍진함, 종교, 언어, 인종, 지역 등에 기반한 대안적 공동체 개념의 부재 등은 한국의 복지국가화를 매우 부정적인 것으로 만들어왔다.

       무엇보다 복지국가의 발전에 초석이 되었던 정치적 민주화는 노동 내부에서 산업 노동자가 압도적으로 우월한 위치에 있을 때 투쟁에 의해서 획득된 성과물이었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 산업 노동자가 가장 팽창하던 시절에 자율적 노동운동에 대한 통제와 탄압이 가장 극심하였고 노동조합의 활동은 배제와 억압의 악순환 속에서 극도로 위축되었다.14) 이러한 상황에서의 섣부른 복지는 자본의 논리 속에 편입되는 결과를 나을 뿐이다.

5.공화주의 복지국가 성립을 위한 방법

        새로운 복지 체제를 모색해야하는 한국적 상황에서 복지개혁을 위해 한국 정치가 직면한 과제는 무엇인가. 한국처럼 사회경제적 민주주의, 즉 국가 복지의 제도화 수준이 낮고 시민사회마저 퇴행적 의식에 물들어 있는 경우, 국가의 적극적 재창출, 정치의 공세적 이니셔티브가 복지한국의 모색을 위한 관건이 될 수밖에 없다. 이를 위하여 두 가지 점이 각별히 환기되어야 할 것이다.

        첫째 개혁은 국가 영역의 민주화, 특히 정당체제, 선거법 개정, 과감한 분권화 등 정치적 대표 체계의 혁신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정치적 민주화가 시장 안팎의 민주화를 위한 최소한의 전제가 되는 이유는, 정치의 민주화야말로 입법의 주체로서의 국가가 실추된 도덕적 권위와 신뢰를 확보하는 선결 조건이며 복지 개혁을 포함한 국가 개입의 방향과 내용도 정치적 민주화의 진전 정도에 따라 심대하게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그때 비로소 국가는 “시장을 형성하는 시장의 대리인”이 아닌 “시장을 교정하는 인민의 대리인”이 될 수 있다.15)새로운 체제가 정착되는 관정은 개인 책임과 집단책임, 권리와 의무, 근로 우인과 소득의 안전 등 간의 끊임없는 갈등과 선택의 연속이며, 최종 결과는 언제나 정치적 결정 즉 진영 간 권력 자원의 갈등적 상호작용에 의해서 좌우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지금 우리에게 시급한 것은 정책의 내용이 아니라 대항 권력의 제도화라는 절차이다. 정치적 민주주의가 진척되지 않으면 명실상부한 복지 개혁은 불가능하다. 요컨대 한국 복지의 궁극적 발전 방향은 민주화가 정치적 수준에서 사회경제적 수준으로 확대되며 국가 복지의 확대뿐 아니라 시장의 민주화, 곧 노동시장 제도와 기업 지배 구조의 개선을 그 핵심적 관건으로 포함해야 한다. 이는 우리가 개인-국가 관계, 개인-기업 관계를 재조정함으로서 통합적 복지모델을 생성해야 함을 의미한다.

       둘째, 민주적 이행기에 있는 한국 사회에서 강한 국가, 대통령의 전통이 개혁을 위해 오히려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 권력자의 개혁 의지야말로 정치사회를 지배(시민사회에 대한 국가의 지배)와 저항(국가에 대한 시민사회의 저항) 모두를 조직할 수 있는 ‘열린 공간’으로 만든다.16) 케인스가 전시 정부에 참여하고 베버리지가 그 유명한 보고서17)에 착수했던 1941년은 독일의 런던 공습으로 런던이 폐허로 변하고 전쟁의 공포로 영국 전체가 불안하던 때였다. 베버리지의 구상이 전후의 애틀리 노동당 정부에 의해서 전격적으로 정책화될 때에도 영국의 경제 상황은 최악이었다. 이처럼 영국 복지 체계가 전쟁의 폐허와 그 여진 속에서 구상되고 실천될 수 있었던 데는 노동당 정치인들과 노조 지도자들의 이념적 확신과 변화에 대한 신념, 특히 시민사회의 열망을 정치화하고 보수기득권층의 설득에도 노력을 다한다는 열정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들이야말로 전후 영국 복지의 정신과 제도적 유산의 기초를 닦았던 장본인들이었다.18) 오늘날 한국의 상황은, 전후 영국이 그랬던 것처럼, 복지에 대한 요구를 팽창시키며 통합과 결속의 필요성을 절실하게 만들고 있다. 그리고 권력자에 대한 사후 책임의 장치만 마련된다면, 개혁을 위한 권력자의 변화 의지가 갖는 중요성은 재론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19) 그때 세계화는 국내 정치의 실패를 변명하는 거대한 알리바이가 아니라 오히려 복지 개혁을 위해 정치적으로 견제되고 여과되며 조율되는 구체적인 정책의제가 될 수 있다.

       한편, 우리의 1987년 체제 이후 민주화 과정이 확인시켜 주었듯이, 정치적 민주주의라는 시장 외적 장치는 국가 활동에 윤리적 정당성을 확보하되 사회경제적 민주화라는 실질적 결과를 만드는 충분조건은 아니다. 더욱이 민주화의 수준은 다를지언정, 사반세기동안 황금기를 구가하던 서유럽의 사민적 국가복지 체계도 신우익의 담론적 공세로 인해 일거에 수세에 몰릴 정도로 허약한 측면을 지닌다는 점을 목도하였다.20) 시장은 국가가 성취한 권력균형의 외양을 순식간에 소멸시킬 수 있는 막강한 권력의 장이며 시장 자체의 민주적 제도화 없이 명실상부한 복지 체제를 구축하는 일읜 불가능하다는 점이 새삼 드러난 것이다. 이제 우리나라는 민주화를 중심적 개념으로 설정하되, 그때의 민주화란 두 차원의 민주주의, 즉 정치적 민주주의가 후원한 그간의 복지체제 곧 자유주의 시장 경쟁에서 비자발적으로 밀려난 사람들을 위한 ‘외적 민주화’와 시장의 주행위자인 기업의 지배 구조를 개선하는 시장 자체의 민주화, 즉 ‘내적 민주화’를 포괄해 내야 한다.

        새로운 복지 개혁의 큰 방향은, 첫째, 시장 외적 민주화, 즉 국가에 의한 전통적 복지 공여를 공고히 함으로써 시장에서 밀려났지만 국가 복지의 양과 질이 열악하여 시장 편입을 강제하는 상황의 발생 가능성을 줄이고, 둘째 시장내적 민주화, 즉 기업지배구조를 민주적으로 개편함으로써 고용은 됐지만 저임이나 열악한 근로조건 고용 불안정 등으로 인하여 강제적으로 시장 밖으로 내몰리는 상황의 발생가능성을 줄임으로서 국가 복지에 대한 부담을 경감시키는 것이어야 한다. 강제적 시장 재편입이 후자의 상황을 낳고 후자의 상황이 전자의 상황을 낳는 악순환을 피하기 위해 이 두 차원의 민주화는 서로 보완되고 긴밀히 조율되어야 한다.

       물론, 유연성이 국가 경쟁력의 관건으로 회자되는 상황에서 이런 구상은 단기적으로는 시대를 역행하는 발상이라는 부담을 줄 수 있다. 그러나 제도화란 오랜 시행착오를 거친 후에 정착되는 장기적 기획이며, 인류는 어차피 목전의 현안을 넘어 당장은 요원해 보이는 것들에 대해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함으로써 개혁을 성취해 왔다. 오늘날 한국 사람들은 모든 영역에서 균형이 붕괴되고, 그러한 붕괴가 고착화되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이는 지난 세월 우리의 소위 민주 정부들이 1987년 체제가 만들어 준 형식적 민주주의에 안주하면서 신자유주의적 시장 논리를 오히려 강화시켜 왔기 때문이다. 신자유주의가 요구하는 주주 자본주의, 노동시장의 수량적 유연화 전략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할 때, 빈곤과 불평등 그리고 그로 인한 불안은 증대될 수밖에 없다.

        빈곤, 불평등, 불안의 요인들을 근본적으로 성찰하려면, 신자유주의적 담론을 대체하는 확고한 정치 경제학의 논리가 제시되어야하며, 이를 위한 논의 의 단초는 시장 안팎을 상호 연계적으로 아우르는 공세적 담론으로부터, 즉 시장 외부의 국가 복지로서 외적민주화와 시장내부의 기업 지배 구조 개혁으로서 내적 민주화를 강화하는 것에서 마련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국가는 세제와 기업지배 구조에 관련된 법적 차원의 노력을 기울여 나가야한다. 그러한 과정을 통해 생산과 유통 과정에서 발생하는 모든 부는 사회적 산물이라는 것, 재산권은 소유주의 배타적 특권이 아닌 사회가 인정하고 국가가 법적으로 보장할 때 비로소 가능한 권리라는 것, 따라서 소유권의 행사에는 의무가 따르며 국가가 보호해야 할 재산이 많을수록 더 많은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는 것 등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서서히 자리 잡아 갈 것이다. 이것은 결코 용이한 실험이 아니다. 그러나 역사에서 모든 의미 있는 개혁적 논의는 언제나 부당한 현실과 호의적이지 않은 기존의 조건들로부터 일정한 거리를 전제하고 시작되었다는 것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6.맺으며

        지난 반세기동안 우리는 회고하고 향수에 젖을 만한 체제를 경험해 보지 못했다. 따라서 우리가 지향해야 할 사회경제적 체제는 어떤 것이 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정직한 소통을 시작해야 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본질적 개혁의 방향을 제시하는 지식인과 그러한 개혁을 위해 민주주의적 권력기반을 활용할  용기와 의지가 있는 정치적 인식이다. 그러기 위해서 한국 민주주의는 1987녀의 흥분에서 하루빨리 벗어나야 하며, 시장은 그 자체가 권력적임을 새삼 상기해야 한다. 시장적 경쟁은 물적, 지적 자원의 소유가 승패를 좌유하는 승자독식의 논리 위에 서있다. 신자유주의가 시장 권력을 강화할수록, 시장 안팎에서 패자들이 겪어야 하는 빈곤과 불평등은 늘어 가지만, 때때로 그것들은 인센티브의 이름으로 정당화되기도 한다. 절차적 민주주의는 자본주의를 견제하기 위해 형성, 발전되었고, 실질적 민주주의란 절차적 민주주의를 도구로 교정된 자본주의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요컨대 정치권력이 1인1표의 평등한 절차적 민주주의를 통해 정당성을 담보하는 이유는 불평등한 소유권에 기초한 시장 권력을 제어하기 위함이다. 당연히 정치권력은 절차적 민주주의가 허용한 권력적 기반 위에서 승자독식의 논리를 거스르려는 강한 의지와 정직한 시도를 부단히 보여 주어야 한다. 이는 노동운동과 같은 대항적 권력이 명실상부하게 제도화되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물론 이러한 개혁적 시도들 당장 정책적으로 실험되고 실천될 수 없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러한 시도들 자체가 민주주의의 절차와 내용에 관한한 더 할 수 없는 교육과 훈련의 기회이며, 근본적 개혁일수록 중장기적 전망 위에서 추진될 수밖에 없음은 분명하다.


1) 박원순 변호사-MBC 100분 토론 -6월7일- MBC 100분 토론은 6월 민주항쟁 20주년을 맞아 민주화 운동의 중심에 서있었으나 지금은 다른 자리에 있는 박원순 변호사, 이인영 열린우리당 의원, 신지호 씨, 원희룡 한나라당 의원, 심상정 민주노동당 의원, 진중권 겸임교수 등을 한자리에 모아놓고 민주화에 대한 토론을 벌였다.


2) 이인영 열린우리당 국회의원. 위 프로그램


3) 제7회 전국청소년논술토론한마당 사이트 소주제 제시문에서 인용 및 발췌.

   (http://minjutoron.cafe24.com/sub05.php)


4) 고세훈. 2007. [복지 한국, 미래는 있는가] 서울: 후마니타스


5) 경희대학교 사회과학부 신동면 교수 <사회보장 확대와 ‘질 좋은 일자리 창출’이 긴요>


6) 출처: OECD(2005)


7) 최장집. 2005.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 한국 민주주의의 보수적 기원과 위기]. 서울 : 후마니타스


8) 고세훈. 2007. [복지 한국, 미래는 있는가] 서울: 후마니타스


9) 공화주의의 개념은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이 최초로 제시했다. 그는 그의 책 ??국가?? 4권 첫머리에서 “우리는 이 행복하다고 생각되는 나라를 어느 특수층의 행복을 위해서가 아니라 전 국민의 행복을 위해서 이끌어나가야 하네.”라고 말하며 공화주의의 이념을 정리한다.


10) bauman, zygmunt and keith tester. 2001. conservation with zygmunt bauman. cambridge: polity


11) 여기서 계급정당이라는 말은 노동자 대중의 계급적 동원을 전제한 개념으로서 엘리트들이 주도한 위로부터의 혁신 혹은 진보정당과는 구별되어야하는 개념이다,


12) 독일 네덜란드 등의 가톨릭 정당


13) 길드나 교회


14) 최장집. 1988.[한국 노동운동과 국가]. 서울: 열음사


15) 김균, 박순성. 2001. "자본주의 경제의 신자유주의적 재편과 사회민주적 대안.” 서울: 당대


16) 최장집. 2005.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 한국 민주주의의 보수적 기원과 위기]. 서울 : 후마니타스


17) ‘Social Insurance and Alied Services,’ 1942년 12월 1일 발간


18) Timmins, Nicholas. 1995. The Five Giants: A Biography Of the Wel Fare state. London: Fontana Press: 고세훈. [복지 한국, 미래는 있는가] 서울: 후마니타스에서 재인용


19) 정치가 유권자의 단기적 선호에 의존할수록 행동의 자유는 제약되겠지만, 노무현 정권 초기의 인수위원회 활동에서 보듯이, 한국의 국가능력(자율성)은 아직 상대적으로 높은 수준이다.


20) 복지국가인 프랑스의 정권은 우파 사르코지에게 넘어갔으며 총선 또한 우익정당의 압도적 승리로 끝났다.-한겨레 신문 6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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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8-01-23
청소년 ‘문제’에서 청소년 ‘

청소년 ‘문제’에서 청소년 ‘존재’에 대한 질문으로   어째서 청소년의 반대말이 자유가 된 것일까요. 이유는 청소년이 ‘미성년자’라는 단어의 범위 내에서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미성년자’라는 말을 풀어서 해석해보면 ‘아직 다 완성된 나이가 아닌 사람’이 됩니다. 그런데 이 풀어서 해석된 ‘아직 다 완성된 나이가 아닌 사람’이라는 말에는 ‘무엇’이 아직 다 완성이 되지 않았다는 것인지가 빠져있습니다.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펄떡이는 심장을 가진 하나의 ‘완성된’ 생명이고, 인격을 가진 ‘완성된’ 인격체인데 무엇이 아직 다 완성이 되지 않았다는 것일까요. 그것은 ‘도구’로서의, 그리고 ‘부속품’으로서의 미완성입니다. 물론 지금은 없어졌지만, 한때 교육부의 정식 명칭이 교육인적자원부였다는 것 또한 이런 관점에서 ‘인적 자원’이라는 용어를 쓴 것입니다. 우리는 단번에 석유와 같은 자원이 된 것입니다. 인적 자원의 관점에서 미성년자, 즉 ‘아직 다 완성된 나이가 아닌 사람’이라는 의미는 아직 정제되지 않은 석유와 같은 의미가 됩니다. 다시 말해 석유가 분류과정을 거쳐 가스, 휘발유, 경유, 타르 등으로 나누어져 쓰임새를 찾듯 인적 자원도 그런 과정을 거쳐야한다는 의미가 되는 것입니다. 인간은 석유나 석탄과 똑같이 보는 관점에서 ‘미성년자’란 아직 쓰임새를 찾지 못한 원유에 불과하기 때문에 정제과정을 거쳐야하는 대상이 됩니다. 교육받아야 하는, 미성숙한 인간, 완성되지 않은 인간, 도중인 인간, 준비단계인 인간으로 규정지어 지는 것입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는 우리의 머리 길이와 모양을 스스로 결정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몽둥이로 엉덩이를 맞고, 출석부로 머리통이 깨지고, 빗자루로 얼굴이 쓸리고, 주먹으로 뺨을 강타당해도 그것은 폭력이 아닙니다. 정제의 과정입니다. 성숙으로 가는 데에 주어지는 도움이 되어 버립니다. 우리의 가방은 호주머니는 일상적 감시의 표적이 됩니다. 학생회는 학교의 의사결정 과정에서 배제됩니다. 미성숙한 학생은 학교의 주체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민주주의의 주체는 더욱 아닙니다. 감히, 선거리니요. 교육감 선가가 아무리 우리 자신과 관련이 있다 해도 우린 그냥 조용히 있어야합니다. 미성숙하고 완성되지 않았으니까요. 완성된 인간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에게 인간으로서의 권리는 박탈되어 있는 것입니다.  힘든 노동에 시달려야 했던 청소년이 부모와 국가의 극진한 보호 아래 공부만 하면 되는 시대가 온 것을 두고 역사의 진보를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청소년이 고된 노동을 강요당하던 때와 비교한다면 분명 상황은 나아졌습니다. 그러나 그런 식의 비교는 너무 단순합니다. 표면적으로 볼 때 그 변화는 생산 양식의 변화에 따른 사회 문화적 진화의 과정이었을 뿐이고 청소년이 더 행복해졌다는 식의 판단을 내릴 성질이 아닙니다. 청소년이 미성 청소년 인권 운동은 이러한 지점에서 청소년의 외침을 들리게 합니다. ‘보호’의 미명 아레 ‘억압’당하지 않기 위해서 청소년 인권 운동은 시작되었습니다. 이것은 청소

  • 아마도생선
  • 2008-01-23
임상수의 바람난 가족과 봉준호

          평론가 황진미에 따르면 <바람난 가족>은 가족의 본질을 규명하며, 이제 가족윤리를 넘어 새로운 개인윤리를 정립해야함을 역설하고 있다.1)  첫 번째의 가족은 개인이 가족이라는 집단에 귀속되는 가족이다. 가족은 인격의 대변체이면 가족은 개인을 말한다. 일종의 집단주의적 태도의 가족이다. 그들에게 그들의 가족에서 떼어놓은 개인은 존재하지 않는다. 가족은 그들의 정체감을 형성하며 그들의 심리를 대변하는 공간이다. 두 번째의 가족은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어서 누가 누구에게 생계를 걸고 있진 않아 보인다. 그들은 말한다. “남의 인생 참견 하지 말고, 남의 탓 할 것 없이, 각자 인생 똑바로 살자.” 그들은 “내 몸 원하는 대로 내 몸을 위해주며” 산다. 남이야 뭐라던 시아버지는 죽기 직전까지 술 담배 끊지 않고, 시어머니는 15년 만에 새 파트너와 섹스를 하며, 남편은 “별 문제될 것 없이” 다른 여자 좀 만난다. 아내 역시 그녀가 원하는 것을 하고 산다(그녀가 원하는 것이 반드시 남편일 필요는 없다). 이들은 한 덩어리로 결부되어 있지 않으며, 사안에 따라 ‘따로 또 같이’ 연접하는 독립된 개인들이다. 여기 양극단의 가족이 충돌한다. 아무렇지도 않게 거짓말을 하며, 상대의 약점을 틀어쥐고선 관대한 척 매끄럽게 빠져나가던 “신원 확실하신” 그가 가족주의와 개인주의의 중앙에서 50년 가부장제라는 허상을 짚고 실족한다. 영작의 할아버지는 처와 딸 여섯을 두고, 아들만 데리고 월남하였으나 이후 그들은 생사조차 모르고 산다. 가부장제의 핵심 요소인 父-子만 추려왔건만 그들은 가족을 이루지 못한다, 父-子는 가부장제의 핵심이긴 하지만, 가족의 핵심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남녀의 생물학적, 심리학적 성적인 차이를 보여줌으로써 궁극적으로 가족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말하고 있다. 그 남녀의 성적인 차이는 영화 내에서 크게 3가지로 나온다.         더불어 이 영화는 가족의 본질을 보여주며, 나아가 ‘화목한 가정’을 목표로 삼는 가족윤리에서, ‘행복한 개인’을 목표로 삼는 개인윤리로, 윤리의 단위가 바뀌어져야 함을 제안한다. 진짜 어떻게 살아야 ‘내가’ 행복해질 것인가? 연애가 답이면 연애를 하고, 가정이 답이면 가정을 꾸려라. 그러나 남에게 “재수 없게 연설”하지 말고, “네 아버지 탓”도 하지 말고, 오지말라는 애인에게 “내가 미쳤었나보다”며 우격다짐으로 들이밀지도 말고, “내 인생 내가 책임지며, 맨 정신으로, 솔직하게 사는 것”이 “이제 짐승의 시간은 관두고, 사람답게 사는” 최소한의 개인윤리이지 않겠냐고 감독은 ‘바람’을 빌려 자신의 ‘바람’을 이야기한다. <괴물>에는 서로 합치되지 않는 세 가지 층위의 ‘아버지’가 존재한다. 첫째는 남루하고 무능하지만 자식을 지키고자 사투를 벌이는 아버지이다. 둘째는 무능하면서 억압으로만 작동하는 아버지, 한

  • 아마도생선
  • 2007-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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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익명

    각주 20번 관련: 대선은 사르코지의 승리로 끝났지만 총선은 사회당의 선전으로 프랑스 국민들의 우파 담론에 대한 견제심리를 보여주었습니다. 신자유주의에 기본적으로 비판적이고, 프랑스적 개혁을 원하는 프랑스의 선택이었습니다.

    • 2007-06-19 20:16:18
    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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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메바피쉬

    어쨌든, 준태 준양아, 잘썼다!

    • 2007-06-17 23:47:55
    아메바피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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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메바피쉬

    주례사 비평인가요?

    • 2007-06-17 23:47:30
    아메바피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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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물처럼

    위 글에서 보듯 주제와 관련된 책을 꼼꼼히 읽고 완전히 자기생각으로 만들어 가야 가능한 것입니다. 부분적으로 생긴 오타만 좀 바로 잡는다면 더욱 훌륭한 글이 될 것이라고 봅니다.

    • 2007-06-17 21:38:53
    물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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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물처럼

    아마도생선님의 글을 읽고 많은 독자들도 이 필자가 매우 복잡한 문제에 관한 주장을 펼쳐가면서도,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는 생각을 하게 될 것입니다. 주장은 이렇게 하는 것이고, 현재 대학입시에서 통합논술시험을 배치한 까닭도 대학에서 이런 문제에 관한 리포트나 논문을 이와 같은 방식으로 펼쳐나가는 능력을 가진 인재를 뽑기 위해서입니다. 이런 생각과 능력은 그냥 생기지는 않습니다.

    • 2007-06-17 21:34:47
    물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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