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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의 탄생을 읽고

  • 작성자 ALONE
  • 작성일 2007-09-16
  • 조회수 301

              - 여성이 리더가 되는 세상을 꿈꾸며  -

 

  여자의 탄생이라는 책의 날개부분에는 이 책을 쓴 의도가 분명하고도 짧게 나타나 있다.

프롤로그의 핵심이라고도 할 수 있는 부분이 표기되어 있다.


  나의 갈팡질팡하는 모습들을 스스로 객관적으로 들여다보면서 ‘왜 이렇게 되었지?’ 라고 묻게 되었습니다. 대체 나의 부모님은 나를 어떻게 키웠으며 내가 어떤 사람이 되길 바랐고, 난 어떤 장난감을 가지고 놀았고, 선생님들은 여자인 나에게 무엇을 가르쳤을까 등이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이 나의 성장 과정을 정리하는 기분으로 이 책을 써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내가 기억하는 나의 아동기부터 아줌마가 된 지금까지 여성을 둘러싸고 어떤 일들이 벌어지는지를 나열하면서 내가 어떻게 오늘의 나로 ‘만들어’ 졌는지 나에게 설명해 보고 싶었습니다.

- ‘나임윤경-여자의 탄생’ 프롤로그 <나를 돌아보는 작업, 나를 긍정하는 작업> 중에서


너무나도 당연하다고 생각되었던 일상 속에 성차별이 존재해 왔다는 충격과 의식변화에 대한 희망을 잘 나타낸 책이라고 생각된다. 더 이상 당연하다고 생각해서도 안되고 받아들여서도 안되며 이제 여성들이 잘못된 것을 바로 잡고 억눌려 있던 능력과 권리들을 찾아야 한다는 주장이 담겨있다. 여자로서 만들어 지는 수동적인 삶이 아니라 하나의 인격체로서 스스로는 만들어 갈 필요가 있고 남성들이 만들어 놓은 이중 잣대에 더 이상 희생되어서도 안된다. 이제 우리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당연하게 생각하고 따르던 성차별적인 관습에서 벗어나 인생의 주체가 되고 제대로 된 정체성을 찾으며 나임윤경 씨가 말하는 세상의 리더가 되어야 한다.


<프롤로그의 大공감>


  글쓴이의 직장에서는 주로 남성주도적인 일의 경우가 많다고 한다. 구성원이 대부분 남자인 공간에 들어오기 전에는 스스로 자신감도 가지고 있었고 영리하다는 자만심도 가지고 있었는데 남자들 사이게 있게 되면서 자신의 갈팡질팡하는 모습들을 발견하게 되었고 ‘왜?’ 라는 의문을 가지게 되었다. 이런 의문은 자신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모든 여성들에게도 해당되는 것이다. 세상은 여성과 남성이 평등해져 간다고 하는데 글쓴이 내면에는 수많은 질문과 고민들로 인해 세상을 평등하게 느끼지 않게 한다. 스스로의 고민은 아직 세상이 평등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며 평등을 위해서 자신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나를 긍정하는 작업이라고 한다. 세상이 이렇게 된 것은 내 잘못이 아닌 이렇게 만들어진 세상 탓이고 이런 세상 속에서 자란 자신을 돌아보고자 하는 것이 이 책을 쓰게 된 의도라고 한다. 여아들의 성장 과정 중 성평등한 방식으로 우리가 다시 한 번 생각해보아야 할 것들과 이것을 보고 깨달음을 얻고 다른 무언가를 만들어 내도록 도울 수 있도록 가르침을 주고 있다. 나임윤경 씨가 말한 모든 것을 다 흡수하고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엄청난 공감을 하게 되었다. 특히 내 성장과정을 돌아보며 성차별적인 요소들을 생각해 보게 되었고 이제부터는 잘못된 경우에는 그것을 시정하도록 권하는 노력을 할 것이다.


<만들어진 세상 속에 살아가는 여성>


  여성이 이렇게 살도록 되는 것은 사회화를 통해 습득한 여성성 때문이다. 사회는 인간이 만들어 낸 것이고 이 사회에서 습득한 성역할 고정에 의해 성차별은 당연하게 받아들여 진 것이다. 즉 남성과 여성이라는 개념은 절대적 가치를 지닌 것이 아니라 일정한 사회와 문화 속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여성이니까 당연히 이렇게 해야 한다. 하는 것들에는 다분히 성차별적 요소들이 내제되어 있고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이상한 것이 되어 버린다. 그러니 딸과 아들을 서로 다르게 키우게 되고 다르게 기대하게 되는 것이다. 남자답거나 여자답기  보다는 그냥 하나의 인격체로 대하고 정해진 틀에 구애받지 말고 잠재 능력을 키워준다면 그것이야 말로 그 아이가 처한 상황에 맞는 방식대로 ‘제대로’ 그 아이의 생각과 철학과 감성을 만들어 가는 과정이라고 한다. 절대적으로 맞는 말이다. 생각해보면 여성들은 어릴 때부터 정해진 기대를 받아왔다. 여성스러움이라는 것이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여성으로서 자라길 바라는 사회적 기대 때문에 나의 잠재적 능력 개발의 기회를 잃었을 수도 있고 기회의 평등조차 누리지 못했다고 생각하니 스스로의 후회가 밀려왔다. 결국 지금 나는 만들어지고 정해진 틀 안에서 자라왔고 그러면서도 잘났다고 생각해 왔으며 어쩌면 앞으로도 만들어진 사회에서만 살 뻔 했던 무지함에 고개를 숙인다.


<여자, 태어나다>


  딸 이름에 담긴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본적이 없어서 그런지 이 부분을 읽으면서 깨달은 바가 정말 많았다. 이름에 조차 숨어있는 성차별적 요소에 그동안 내가 당연시 해왔던 여성스러운 이름과 남성다운 이름에 대한 가치관이 흔들렸다. 민정이라는 이름이 만약 남자이름이라면 사람들은 이상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문제는 바로 이것이다. 단어에 숨어든 성의식이 남성과 여성의 차이를 만들고 그것을 사회화 과정을 통해 내면화 시키는 것이다. 이렇게 내면화 되는 것에는 여자의 몸은 숨겨야 하고 당당하지 못한 것이라는 인식과 외모를 꾸미고 여성답게 만드는 방식을 만들게 됨으로써 거추장스러운 악세사리 등으로 여성을 꾸며야 한다는 것이 있다. 또한 어렸을 때부터 가지고 노는 장난감에도 구분지어진 여성성과 남성성을 습득하게끔 하는 작용이 있는데 이처럼 다르게 자라난 아이들은 자라서 생각하고 감정을 표출하는 모든 것을 서로 다르게 한다는 것이다. 여성은 보호받아야 하며 잘 울고 공포에 대한 표출이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으로 되는 반면에 남성은 보호를 해주며 뭐든지 참고 견뎌야 하는 강인한 사람으로 성장한다는 것이다. 태어나면서부터 이미 정해진 옷, 장난감, 교육을 받으며 자라난 아이들이 나중에 자라서 차이가 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동등하지 않다는 것은 모두 사회가 만들어낸 것에 의해서 이며 이것은 사람들의 의식변화를 통해 다시 만들어 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자신의 선천적 능력은 발휘해 보지도 못하고 이미 정해진 틀 안에서만 행동의 반경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은 정말 억울한 일이다. 어렸을 때부터 여러 제약과 정해진 기대만을 받고 자라난 아이들은 서로 차이를 만들고 그 차이를 성차별적 요소로 만들어 버린 사회를 언제까지 참고 바라만 봐야하는지 모르겠다.


<여자, 학교에 가다>


  여자는 수학을 못한다는 사회적 공식, 나는 항상 이것이 궁금했다. 선천적으로 못하도록 태어난 것일까? 아니면 후천적 환경에 의한 것일까?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알게 되었다. 여자가 수학을 못하는 것은 후천적인 요소의 영향이라는 것을 말이다. 단지 딸이기 때문에 수학을 더 잘 할 수도 있는 기회를 놓치게 됨으로써 능력을 상실하게 된다면 얼마나 손해를 보는 일인가? 타고난 능력이라고 생각되는 남성의 능력에 대한 사회적 통념의 경우에도 그것이 남성의 타고난 능력이 아니라 남성이기 때문에 길러진 능력인 경우가 많다. 허나 이런 실정을 알고 있다고 해도 딸에게 아들과 같이 능력을 길러줄 교육의 기회가 똑같이 주어질 수 없는 이유는 사회적 분위기가 곱게 키워서 남 주는 딸이라는 인식이 만연해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때문에 그만큼 딸에게 거는 기대치가 낮게 되고 거기에 따른 투자도 남자에 비해 낮다는 것이다. 워피안의 법칙은 따르면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가 우리의 사고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이론이다. 나는 이것이 언어뿐만 아니라 우리가 읽고 보는 그 모든 것으로 범위를 확장시켜 해석해 보았다. 모두가 알고 있듯이 사회적 분위기가 우리의 사고를 만들고 교육체계가 우리의 사고에 영향을 미치며 우리가 보고 듣는 모든 것이 사고에 영향을 주는 것들이다. 그러니 성차별적인 요소들을 항상 겪게 되면 그것을 당연하다는 듯이 사고에 영향을 주게 되고 우리는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지난 18년을 그렇게 살아왔다. 우리의 어머니들은 이것보다 더 오랜 시간들을 그렇게 사셨다. 그러니 현실을 더 당연시 하게 되며 그들과 같이 우리를 사회화 시키려고 하셨다. 성차별 반대에 대한 의식이 널리 확산되어가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는 많기만 하다.


<여자, 사춘기가 되다>


  나의 중학교 시절을 생각해 보면 교복이 치마여서 불편했던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라는 것을 떠올리게 된다. 하지만 더 문제가 된 것은 그렇게 불편했던 치마 교복이 시간이 흐를수록 당연하게 생각되었고 불편함에도 점차 무뎌지게 된 것이다. 이것은 교복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사회의 모든 성차별적 요소에 이런 작용이 있다고 생각한다. 처음에는 의문을 가지고 거부를 하지만 점점 당연시 되고 받아들이게 되는 것 말이다. 초경의 경우에도 처음에는 불편하고 부끄러운 것이었지만 지금은 당연시 받아들이게 되는 것은 생리적 측면에서 당연한 것이지만 사회적으로 아직 모두가 알지만 숨기고 싶어 하는 여성들만의 비밀인 것이다. 남성들의 처음과는 사뭇 다른 마음이다. 자랑스러워해도 되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걱정부터 앞서는 사회적 분위기, 과연 여성들에게 문제가 있는 것인가 사회에 문제가 있는 것인가? 성숙한 소녀는 곧바로 성의 대상으로 간주되는 남성 중심적인 우리나라 사회가 바로 이런 사회를 만든 것이다. 남성에게 보여 지는 남성 중심적 시선이 원하는 방식인 수동성에 가두어져 있는 우리의 성숙을 더 이상 부끄러워하지 말고 해방시켜주어야 한다. 이렇게 살아가도록 여성을 교육시킬 기관이 필요하며 학교가 이러한 교육을 해야 한다. 하지만 학교에서초자 성불평등 문제를 등한시하며 고정된 여성성을 습득하게 만들려 하니 진정한 성  등은 어디에서부터 바로 잡아야 하는 것일까? 부디 내 자식이 배움을 얻을 학교는 성  등한 조건 속에서 학습을 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는 바이다.


<여자, 사랑에 빠지다>


  일상적으로 쓰는 호칭에도 성차별적 요소가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여성과 남성 간에 호칭과 관련된 내용을 성찰하고 또 평등하고 올바른 호칭을 모색해야 하는 이유는 상호간 호칭이 관계의 성격을 결정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흔히 여성의 오빠라는 명칭은 남성과 여성의 관계를 상하로 규정하는 면이 있다. 우리는 그러한 것도 모르고 모든 남성에 대해 스스로의 하위적 위치를 만든 것이다. 이렇게 잘못된 것을 알았을 때 이제부터라도 바르게 호칭을 수정해야지 생각하면서도 막상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이 여성들의 실정이다. 바로 착한 여자 콤플렉스를 내면화 한 것이다. 잘못 된 줄 알면서도 좋은 게 좋은 거지라는 생각으로 자신의 목소리를 높이지 않는다. 여기서 글쓴이는 말한다. 착한 여자로 성장하기 보다는 말해야 할 때 할 말하는 목소리를 가진 여자로 성장하라고 말이다.

  나이가 한 살씩 많아지면서 당연시 생각해 왔던 것들에 대해 반성을 하게 되었다. 데이트 비용은 남자가 지출해야 한다는 생각이 바로 그것이다. 이것은 나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여성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텐데 상대방이 일방적으로 자신에게 베푸는 호의가 누적되었을 때에 발생하게 되는 자신의 의사표현의 묵살과 사고의 표출의 제지를 스스로 느끼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자신도 모르게 행해지고 있다. 남성의 권력이 더 강해지고 여자는 따라야만 하는 가부장제적 분위기가 바로 이런 사소한 것에서부터의 시작이라고 말하고 싶다. 경제적 우위에 따른 권력의 우위, 알면서도 더 이상 남자들에게 기댈 수는 없을 것이다. 이렇게 지금까지의 사회적 분위기에 의해 남성들은 여성들보다 더 큰 권력을 잡게 되었고 여성들의 위에 군림하게 되었다. 특히 이것은 본성에 대한 부분, 성욕에 대한 사회적 권력 또한 잡게 되었음을 보여주는데 남녀가 성욕을 느끼는 방식이나 표현하는 방식이 다르다, 혹은 달라야 한다는 믿음은 남성과 여성의 권력 차이를 합리화 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인간 본성에 대한 지배까지에 이른 성차별 문제는 정말 심각한 수준이라고 말할 수 있다. 사람들의 의식 개혁이 얼마나 필요한지 확인하게 되었고 빨리 그런 날이 왔으면 하고 바라는 마음이다.




<여자, 돈을 벌다>


  여자들의 교육에 대한 기회가 높아지면서 최근 여러 방면에서 여성들이 높은 성취률을 기록하는 것으로 사회적 이슈가 되었다. 하지만 이런 특수한 엘리트들을 예로 성평등을 내세우며 이제 동등의 시대 왔다고 일반화 시켜 버리는 것은 옳지 않은 일이다. 글쓴이가 분류한 여학생의 형태는 거의 대부분 만성적 혼란과 좌절 형으로서 아직 여성상위 시대라고 낙관론을 가지기엔 성급하다는 말이다. 대부분의 여성들이 우먼파워를 가지기는커녕 오히려 사회에서 일하는 사람으로서의 정체성조차 가지지 못했다.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위해서는 힘을 가져야 하며 힘을 가지기 위해서는 능력을 발휘하여 사회에서 성공을 해야 하는데 우리 여성들은 사회화 과정에서 이러한 정체성 형성의 기회를 잃은 것이다.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이렇게 살아 갈 수만은 없다. 지금까지 내면화 되어 있던 성차별적 요소들을 하나씩 거슬러 올라가 평등한 요소를 만들기 위해서 우리는 거슬러가기 전략을 세워야 한다.

  여자의 적은 여자이다. 라는 생각, 나는 이것을 남녀불평등적 요소라는 생각을 한번도 해 본적이 없었고 단순히 개개인들의 성격이라고 생각했다. 여성들 사이의 갈등의 촉발은 남성 중심 문화에 있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서로 돕고 살아도 이러한 차별적 요소들을 걸러내기 힘든 시대에 헐뜯고 싸우고 적이 되는 것은 옳지 않은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여성들끼리 서로 뭉치고 보듬을 수 있는 문화적 코드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된 이상 그동안 남자로 인해 겪었던 갈등으로 등을 돌리게 된 여자 선배들이나 친구들에게 이 사실을 알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직장 내 커피를 타는 것도 그렇다. 왜 여성이 타는 커피가 더 맛있다는 것일까? 이것이 왜 아름다운 관행이 되어 당연시 되어 버린 것인지 이해할 수가 없다. 여성에게만 강요되는 차 심부름은 명백히 성차별이다. 성차별적이고 남성 중심적인 것이 우리의 현실인 이상 그것을 피해 갈 수는 없다. 힘을 합쳐서 타파해야 한다. 지금 당장에 남성 중심적 문화가 바뀔 수는 없겠지만 일단 스스로 깨우치기만 한다면 더 나은 방안을 힘을 합쳐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여자, 결혼하다>


  아직 결혼에 대한 여러 관습들을 잘 모르는 내가 이 책을 먼저 읽게 되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알면서도 옳지 않은 일을 행할 일은 없을 테니 말이다. 예단, 예물의 경제적 차이에서 오는 권력관계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일은 없을 것이며 허리 굽히며 사는 일 또한 없을 것이다. 그리고 대기실에서 대기하는 신부처럼 항상 준비되어 있어 있는 것처럼 보이지도 않을 것이다. 생각해보니 정말 너무나도 당연하게 생각해 왔던 결혼문화에도 예외 없이 성차별 요소가 개입되어 있었다. 안경을 끼고 결혼식을 한 여자는 본 적도 없고 내 친인척 중에도 없었다. 누구를 위해 그렇게 자신의 불편을 감수해야 하는 것인지 지금부터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남자들의 눈을 즐겁게 해 주기 위해서 가꾸는 외모라든지 성적 매력 모든 것은 나를 위한 것이 아니었다. 결국 남자들이 만들어 놓은 아름다움의 기준에 다가가기 위해 몸부림치는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외모 지상주의도 한 몫 거두는 것도 사실이다. 이렇게 여자들은 자신을 꾸미고 꾸며서 시집 잘 가기를 목표로 세우고 좋은 남자 만나기를 희망한다. 누구를 위한 삶이라 말할 수 있겠는가? 이렇게 시집을 가서 여성은 끊임없는 성차별을 받는다. 호칭을 사용함에 있어서도 예외는 아니다. 남성 우위의 호칭으로 인해 확연히 드러나지는 않지만 여성이 남성의 가족보다 계층적으로 아래에 위치시키고 있다. 호칭이 평등에 위배된 것이라면 새롭게 변형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뿐만 아니라 우리의 의식 속 당연시 되어있는 불평등 요소들도 깨우치고 변화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와 같이 여자는 이렇고 남자는 이렇다. 라고 규정되어진 잘못된 인식을 바로잡고 모두가 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여자, 아줌마 되다>


  여성들은 항상 아름다움을 위해 무던히도 노력한다. 내면이 아닌 겉을 치장하기에 바빠 여자들은 점점 어려지고 예뻐진다. 이것은 아줌마들에게도 예외는 아닌데 아줌마 기피 현상이 일어나고 이에 따라 아줌마인지 아가씨인지 구분하기 힘든 미시족들이 늘어나게 되었다. 그런데 이것은 여성들 자율적 선택이 아닌 대중매체와 남성 중심적 시선의 주입에 의한 결과라는 것이 문제시 된다. 그 주입된 내용으로 자유로운 여성이 바로 아줌마인데 여기 숨어있는 진실이 있다. 아줌마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왜 그런지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남성이 바라는 여자가 아닌 아줌마, 남성들에게 반기를 들 수 있는 아줌마들이기에 아줌마는 억척스럽고 예쁘지도 않으며 여자답지 않다는 평가를 듣는 것이다. 나임윤경 씨는 나이와 상관없이 어서 아줌마 정서를 내면화 하라고 한다. 여성들의 마음가짐과 세상을 대하는 태도가 아줌마와 닮아 있을수록 점점 더 많은 여성들이 좀 더 일찍 세상의 주인이 되어가는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우리 내 아줌마들처럼 믿을 만하고 열정적인 사람들도 많지 않을 것이다.

  세상 변화의 중심에는 우리 여성들, 특히 아줌마들이 있다. 이것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경향인데 이러한 아줌마들의 교류로 인해 점점 평등이 실현되고 차이가 줄어들고 있다. 지금도 많은 여성들이 국경을 넘고 있으며, 그 과정에서 세계를 평등하게 연결하고 있다. 서로의 문화적 차이를 줄이고 편견을 없애 이해를 얻어낸 것처럼 여자와 남자도 그렇게 될 날이 머지않았다고 믿는다. 여자가 세상을 바꾼다.


<진정한 여자가 되는 길>


  여기서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성(sex)의 개념의 여자가 아닌 사회적 성(gender)에 대한 여성이다. 여성성은 사회를 살면서 획득하게 되는 것이며 만들어 지는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것은 나에게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내 자식들에게도 세습되어 사라지지 않는 악순환이 될 것이며 언제나 여성들은 피해를 볼 것이다. 알면서도 당하면 바보가 되는 것이다. 이제 우리가 나설 때이다. 진정한 여자가 되는 길은 내가 만들어 가는 것이다. 주어진 역학과 기대에 만족하지 말고 내가 직접 나의 모든 권리를 찾고 꿈을 이루어야 한다. 얼굴만 예쁘다고 여자가 아니다. 마음씨가 곱다고 여자가 아니다. 내가 왜 그런 여자여야만 하는지를 알고 바로 잡아 진짜 여자는 무엇인가를 고민하게 되는 그때 바로 나는 진정한 여자의 의미를 찾는 것이다. 극단적으로 말해서 지금 대부분의 우리 어머니들은 남성이 만들어 놓은 관습과 의식에 맞춰 살아가는 인형들에게 여성이라는 이름을 부여한 것일 뿐이다. 무조건 고개 숙이고 남자가 최고이며 그것이 당연한 것인 줄 알고 자식들에게 마저 그런 교육을 바라신다. 우리는 그런 어머니가 되지 말자. 잘못된 것은 잘못되었다고 말할 줄 아는 그런 나를 위한 여성이 되자는 말이다. 변화하는 세상 속에 언젠가는 괜찮아 지겠지 하며 방관자의 태도를 지니지 말고 나의 일이라 생각하고 나서야 할 시대가 온 것이다. 진정한 여자가 되고 싶다면 나의 의미를 찾고 나의 권리를 찾아야 한다. 여성들 모두 힘을 합쳐서 사회에 뿌리 내리고 있는 성차별을 타파하고 여자 남자 모두가 평등한 권리를 가지고 살 수 있도록 목소리를 높이고 나아가야 한다. 진정한 여성들이어 깨어나라 !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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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레비전.스포츠 감상문

 일상생활에서 가장 흔히 접할 수 있는 매체들의 숨겨진 면을 볼 수 있는 기회였다. 정준영 씨가 지은 두 권의 책, ‘텔레비전 보기-시청에서 비평으로’와 ‘열광하는 스포츠 은폐된 이데올로기’는 지금까지 내가 아무런 생각 없이 행해오고 봐오던 것들이 얼마나 다양한 의미들을 내포하고 있었는지를 알게 해준 책이었다. 그럼 지금부터 각각의 책에 대한 줄거리와 감상을 요약해 보고자 한다.   시청자들은 텔레비전을 매우 하찮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텔레비전의 일상성에 연결되어 있는 것으로 이것 때문에 사람들은 텔레비전의 효과를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여기에서 작가는 몇 가지 지적을 해주었는데 첫 번째는 텔레비전 효과가 수용자의 특성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현대사회에서 텔레비전은 누구에게나 영향을 미치는 막대한 힘을 가지고 있다고 하였다. 그리고 이 힘은 텔레비전 단독으로 영향을 미치기보다 사회적 분위기라든지, 배경과 함께 결합되어 영향을 미친다고 하였다. 비평이 자주 범하는 오해 중 또 하나는 효과의 문제와 밀접히 연관되어 있는 것으로 시청자의 수준에 대한 평가를 들 수 있다. 여기에는 극단적 평가가 공존하고 있는데 한 극단에서는 시청자가 매우 현명하다는 생각이고 다른 극단에서는 시청자가 합리적인 판단력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존재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작가는 텔레비전의 수준으로 시청자의 수준을 평가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하였다. 텔레비전의 수준이 반드시 시청자의 수준을 대변하는 것은 아니며 텔레비전의 수준이 낮은 것은 텔레비전이 오락의 도구로만 취급되는 현재의 상황에 더 큰 원인이 있기 때문이다. 일상적 비평에서 흔히 저지르는 실수 가운데 마지막으로 지적할 수 있는 것은 텔레비전과 현실 사이의 혼동이다. 비평가의 작업은 텔레비전 프로그램 속의 내용이 얼마나 우리 현실에 근접하고 있느냐가 아니라 그 프로그램이 담고 있는 사회적 가치가 실제 사회적 가치를 얼마나 잘 반영하고 있느냐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또한 방송사들 사이의 서로 다른 위치와 역할, 띠편성이라는 경쟁적 타협, 서로 모순적일 것 같지만 상호 보완적인 관계에 있는 보도 프로그램과 예능 프로그램의 공존을 말하였다. 이것은 동일한 구조적 환경 속에서도 각 방송사가 처해 있는 위치와 개별 프로그램들이 수행하는 역할, 그것들을 제작하는 제작진의 차이에 따른 프로그램의 일정한 차이를 설명하고자 하는 것이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많은 것을 알게 되었고 또한 느끼게 되었다. 특히 자본주의 체제속의 텔레비전의 구조적 요인들을 알게 되면서 편협한 관점에서 이해의 폭을 넓히는 계기가 되었던 것 같다. 사실 조금만 생각해보면 알 수 있는 부분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냥 지나쳐버렸던 사실들을 이제는 머릿속으로 정리하여 지금부터라도 제대로 된 비평을 하고 더 나은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만드는데 조금이라도 기여하고 싶다. 이것은 곧 스포츠는 순수하지 않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여기에 대중 매체와 스포츠가 결합함으로

  • ALONE
  • 2007-11-13
<트레인스포팅>감상문

 이 영화가 말도 안돼는 이야기라고 생각한 사람은 나 뿐 일까? 마약으로 인해 망쳐가던 인생을 재생할 수 있을 확률이 얼마나 될까? 마크가 마약으로 인해 불행해 질 꺼라 생각했었던 나의 예상은 엄청나게 빗나가 버렸다. 라스베가스를 떠나며 를 본 후에 이 영화를 봐서인지는 몰라도 나는 또 비극적 결말을 예상하면서 영화를 감상하게 되었다.   이 영화를 본 사람들이 말하길 이 영화의 가장 큰 묘미는 배경음악에 있다고 한다. 내용을 좀 더 자극적이게 만드는데 효과가 있었다고나 할까? 낯설지 않은 음악도 있었고 처음 듣는 음악도 있었지만 모두 다 영화의 분위기를 살리는데 큰 영향을 미친 것 같다.

  • ALONE
  • 2007-11-11
광고 속에 여성

     여성의 몸과 얼굴이 성 상품화 되면 될수록 여성들의 모습은 같아지게 될 것이다. 남성의 시선을 내재화한 여성은 끊임없이 재생산되고 있다. 가부장제와 자본주의가 만나 이루어낸 여성상품이 완성된 것이다.(위에 이효리) 과연 지금 내가 내 몸을 가꾸는 것이 진정 나를 위한 일인지, 아니면 남자들에게 보여지기 위한 것인지 깊이 생각해 볼 문제인 것 같다.  

  • ALONE
  • 2007-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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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물처럼

    위 인용문장은 '남성 우위의 호칭으로 인해 확연히 드러나지는 않지만 여성의 호칭은 남성의 가족보다 계층적으로 낮춰 부른다'라는 식으로 표현해야 할 것입니다. '위치시키다'라는 표현은 어색한 조어법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부분적인 흠이 있긴 하지만 자신이 공감한 사항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노력이 잘 느껴지는 글이었습니다.

    • 2007-09-28 07:00:57
    물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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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물처럼

    앞에서 인용한 문장은 자신이 깨달은 것인지 저자의 의견에 대한 공감인지가 분명치 않군요. 또한 주장한 사실에 대한 예시를 분명하게 들어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예를 들면 라는 장에서 '남성 우위의 호칭으로 인해 확연히 드러나지는 않지만 여성이 남성의 가족보다 계층적으로 아래에 위치시키고 있다. '라는 문장 다음에는 구체적인 예를 보여 주어야 하겠지요. 또한 문장차원에서 바르게 쓰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 2007-09-28 06:59:08
    물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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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물처럼

    글을 읽어가면서 자신이 공감하는 관점을 중심으로 조목조목 정리하는 방식으로 선택한 까닭은 저자의 배경지식과 연륜이 매우 깊기 때문이겠지요. 레이피어님의 지적처럼 비판하며 읽기까지 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위와 같은 상황 때문에 쉽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다만 글을 쓰는 관점에서 저자의 의견과 자신의 견해를 조금더 명확히 구분해 썼으면 합니다. 예를 들면 라는 장에서'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된 이상 그동안 남자로 인해 겪었던 갈등으로 등을 돌리게 된 여자 선배들이나 친구들에게 이 사실을 알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

    • 2007-09-28 06:53:54
    물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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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물처럼

    매우 길고 긴 분량의 독서 비평글을 쓰느라고 고생많았습니다. 일단 이 글만 읽어도 책 전체에서 어떤 주장을 펼치고 있는지를 자세하게 알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여성은 태어나는 게 아니라 길러지는 것이다.'라고 프랑스의 시몬느 드 보봐르 여사는 지적하였지요. 사회적 기대치와 관습에 따라 여성은 길들여가기를 하면서 그의 정체성이 결정되는 것이라는 인식을 담고 있는 말입니다. 이 글에서는 전반적으로 이와 같은 현상을 여성의 일생사를 조금씩 구획하며 정리하여서 여성이 겪는 사회적 차별의 실상을 체계적으로 살필 수 있군요.

    • 2007-09-28 06:49:30
    물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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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익명

    좋은말씀 감사합니다. 다음번에 글을 쓸때에는 참고해서 더좋은글을 쓰도록 하겠습니다.

    • 2007-09-19 22:35:50
    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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