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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세희 작가의 '뫼비우스의 띠'를 읽고

  • 작성자 프리러브
  • 작성일 2009-08-15
  • 조회수 4,723

특히 초등학교 때 TV에서 많이 보아 온 뫼비우스의 띠는 참으로 독특한 발상의 결과물이다. 분명히 양면이 모두 존재하는 직사각형의 종이 한 장을 살짝 비틀어 붙이면 한 면만 가지는 곡선이 된다. ‘사물의 겉과 속을 구별하는 것은 무의미하다’라고 말하는 것 같은 뫼비우스의 띠는, 조세희의 연작 소설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 중 한 소설의 제목으로도 많은 뜻을 내포하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소설의 내용은 이렇다. 한 수학교사가 입학시험을 앞둔 학생들에게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해 준다. 두 아이의 굴뚝 청소, 앉은뱅이와 꼽추의 살인 사건 등의 이야기이다. 마지막으로 수학 교사는 학생들에게 자신의 교육정신을 보이고 교실을 나간다. 짧게 압축된 소설이지만 이 소설이 담고 있는 내용은 상당히 진지하다. 먼저, 수학교사를 통해 뫼비우스의 띠를 이야기함으로써 앞으로 나올 내용을 뫼비우스의 띠와 연결 지어 생각하게 한다. 실제로 두 아이의 굴뚝 청소와 뫼비우스의 띠를 연결 지어 보면, 수학 교사가 처음 얘기한 내용과 두 번째로 얘기한 내용이 서로 모순을 이루고 있다는 것에 주목할 수 있다. 두 아이가 굴뚝 청소를 하고, 한 아이는 얼굴이 깨끗하고 한 아이는 얼굴이 더러워 서로의 모습을 본 아이들이 반대로 얼굴을 씻는다는 것, 반면 똑같이 굴뚝 청소를 했는데 얼굴의 더러움 정도가 다를 수 없다는 것은 모두 맞는 얘기다. 그러나 이 두 사건이 동시에 일어날 수는 없다. 나는 이 부분을 거꾸로 읽으며 뫼비우스의 띠를 적용해보았다. 원래 사건의 결과는 두 가지였다. 그러나 이 결과들이 충족되기 위해서는 각각의 전제조건이 필요하다. 첫 번째 경우는 ‘다른 상태의 굴뚝을 청소했다’이고, 두 번째 경우는 ‘똑같은 상태의 굴뚝을 청소했다’이다. 그러나 수학교사의 물음에서는 그러한 전제조건이 둘 다 들어가 있지 않다. 두 가지의 경우를 하나의 사건으로 나타내면서 전제조건을 생략해버리는 경우가 직사각형을 뫼비우스의 띠로 만드는 과정이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수학교사가 마지막에 ‘더 이상의 질문은 받지 않을 테니까’라는 부분은 그 의미를 학생들이 스스로 생각해보길 바라는 뜻이 아닐까한다.

 

 

앉은뱅이와 꼽추의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앉은뱅이와 꼽추는 철거민으로서의 삶을 살고 부당하게 돈을 벌어들인 사내를 죽였다. 여기서 우리는 피해자와 가해자를 두 가지 경우로 나누어 생각해볼 수 있다. 첫 번째는 사회적 약자이고 소외계층으로서 경제적으로와 정신적으로 피해를 본 앉은뱅이와 꼽추를 피해자로, 사내를 가해자로 보는 경우이다. 두 번째 경우는 죽은 사내를 피해자로, 살인자와 강도가 된 앉은뱅이와 꼽추를 가해자로 보는 경우이다. 이 역시 두 가지 경우가 동시에 성립할 수는 없지만, 각각의 경우에서 가치를 어디에 더 크게 두느냐에 따라 두 가지 경우 모두 가능할 수 있다. 피해자와 가해자, 그 경계의 모호함을 야기한 사회적 모순에 대해 수학교사는 말하고 싶었던 게 아니었을까?

 

 

이런 면에서 수학교사가 말하는 양면성은 윤리적으로 봤을 때 결코 타당하지 않다. 앉은뱅이와 꼽추의 경우에서처럼 가치의 중요도를 역설하며 윤리적으로 잘못된 행동도 합리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현대 사회에서처럼 가치전도현상이 당연하게 인식되는 때에는 이러한 양면성이 더 많은 범죄를 합리화시킬 수 있다. 수학교사의 마지막 말도 이런 의미인 듯하다. ‘내부와 외부를 구분할 수 없는 우주에서, 많이 안다고 그 지식으로 이익을 좇지 말라’는 한마디는 정당하지 못한 것을 보고도 합리화시키며 방관자적 태도로 임할 수 있는 것에 대한 비판과 그렇게 되지 말라는 당부가 아닐까.

 

 

중․고등학생 권장도서 중 하나로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 추천되는 것의 여러 가지 이유 중 하나가 수학교사의 말에 들어있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어서가 아니었을까하는 엉뚱한 생각도 하게 하는 소설이었다. 짧은 지식에 이해하기 힘든 면도 많았지만 지난번 읽을 때보다는 생각이 한층 성숙해진 나를 느끼며, 다음번의 성숙도 기대해보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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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08-20 17: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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