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에세이)「바다의 기별」을 읽고

  • 작성자 silmshady
  • 작성일 2009-10-31
  • 조회수 397

(에세이)「바다의 기별」을 읽고

                                                              -역사, 버릴 수 없는 문학적 매력

 김훈의 글을 읽으면 한편의 역사서를 읽는 기분이 든다. ‘칼의 노래’도 그렇고 ‘현의 노래’도 그렇다. 현대를 배경으로 한 장편소설 ‘빗살무늬토기의 추억’도 그 속에 깃든 역사적 상상력이 다분하다. 현대에서 이미 지나간 기록인 역사, 김훈 말고도 많은 작가나 예술가들은 역사에 매력을 느낀다. 내가 이 에세이를 읽으면서 주목하는 것은, 김훈이란 소설가가 이제 개인적 역사의 창작을 넘어서서, 자기만의 관점으로 당대의 역사를 직접 써내려가고 있다는 점이다. 에세이란 장르의 특성상, 여타 장르보다도 개인적 사상이나 일생이 직접적으로 독자들에게 전달되는 특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소설에서는 보지 못했던, 김훈의 개인적 일화와 시대 현실의 역사적 중첩. 이것이 중심이 되어 에세이는 진행되고 있다.

 ‘광야를 달리는 말’ 에서보면, 김훈의 아버지가 나온다. 김훈의 아버지는 무협소설을 썼다. 김훈 자신이 하는 순수문학의 범주에서 조금 먼 재야의 작가였던 것이다. 하지만 김훈은 거리낌 없이, 특유의 신문기사처럼 짧게 끊어지는 단문으로 아버지에 대해 쓰고 있다. 가정에선 무력했고 결코 김훈과 가까워지지 않았던 자신의 아버지를 객관적 관점에 서서 쓰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것이 김훈식 역사이고, 글쓰기이다. 역사적 인물인 이순신도, 자신과 한 핏줄인 아버지도 똑같은 방법으로, 냉정하게 묘사한다. 카메라 앵글을 바라보듯 객관적인 관점에서, 김훈만의 문장, 상상력이 결부될 때, 그의 글은 완성된다.

에세이도 마찬가지다. 임꺽정이 나오고 이제마가 나온다. 김지하의 아기를 안고 감옥 앞에서 그의 석방을 기다린 박경리가 나온다. 손가락으로 사북의 그림을 그리는 오치균이 나온다. 현대의 인물이든, 과거의 인물이든 이 인물들 모두가 김훈 주변의 살아 숨 쉬는 역사이다. 아마 이것을 지나치기 어려웠으리라. 거기에 결부되는 마치 대법관이 판결을 내릴 때처럼, 논리적이고 강력한 김훈만의 사유. 이것들이 한데모여 김훈의 글이 된다.

 김훈의 작업실에는 일반 문학 서적이 거의 없다고 한다. 그가 글을 쓸 때 참고하는 국어사전, 한문사전, 그리고 다양한 법전들이 있다고 한다. 이것들은 그가 얼마나 글에 있어서 적확성과 논리성을 중요하게 여기는가를 대변하고 있다. 연설체로 문자화 된 '회상‘에 보면 현대 우리 사회의 많은 언론과 미디어가 의견과 사실을 구분하지 못한다고 한다. 또 난중일기의 이순신의 문장을 예로 들면서, 전장에서 일어난 사실만을 기가 막히게 기록하고 있다고 말한다. 문학도 마찬가지이다. 문장의 쓰임과 용도도 제대로 숙지하지 못한 채, 그저 외래어만 남발하는 우리 시대의 젊은 작가들. 그들이 쓰는 글은 진정한 역사가 될까. 몇 십 년, 몇 백 년이 지났을 때도, 문자화 되어 우리 문학에 남아있을 수 있을 것인가. 김훈은 그들에게 따끔한 일침을 놓고 있는 것이다.

 역사는 어찌 보면, 단순히 시간의 흐름을 거창하게 표현한 것이다. 내가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동안에도, 역사는 흐르고 있다. 대학에 시간만을 연구하고, 시간이 도대체 어떻게 작용을 하는 것인지 공부하는 시간학과과 있었으면 좋겠다는 김훈. 다른 작가가 인간의 감정, 다가올 미래 등에 매력을 느낄 때, 그는 지나간 시간에 주목했다. 거시적이다. 시간은 어쩌면, 우리 삶을 감싸고 있는 거대한 천막 같은 것이어서, 그것의 지배에 결코 열외 되지 못한다. 빠져나오지 못한다면, 우리들 일상 곳곳에 무엇보다도 잘 스며든 게 시간, 역사라면, 이것보다 더 좋은 소재는 없을 것이다. 자신에게 멀리 있는 것은 쓰지도 말라고 했다.

 김훈의 작업실에 들어찬 법전들과 사전들. 인간들의 언어생활과 사회생활의 역사를 서적화한 축적물이다. 시간에 여과된 그 축적물들을 한 번 더 걸러서, 자기만의 글을 쓰는 것. 이것이 시간이 예술가들에게 주는 과제이다. 이렇게 해서 새롭게 창작된 예술은, 개인적인 역사를 담고 있을 뿐만 아니라 당대의 역사를 빼곡히 수렴하고 있는 것이다. 사람은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예술가들을 제2의 역사학자라고 부르는 것도, 무리는 없을 것이다.

silmshady
silmshady

추천 콘텐츠

(소설) 「아침의 문」을 읽고

2010-07-11 문학사상 펴냄 박민규 作 (소설) 「아침의 문」을 읽고   좌절에 대처하는 우리들의 자세      사실 책을 많이 읽는다고는 하지만, 내가 고등학교에 들어와서 지금까지 읽은 현대소설 작가는 얼마 되지 않는다. 짧고 기억에 많이 남는 학창시절 동안에는 현대소설보다는 고전을 중심으로 책들을 읽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재 문단에서 활동하고 있는 소설가들 중에 가장 좋아하는 소설가를 꼽으라면 나는 망설임 없이 박민규를 뽑을 것이다. 그는 나에게 새로움을 보여준 소설가이고 감정을 어떻게 적절히 소설 속에 넣어버리는지 알려준 작가다.    그는 어쩌면 문단의 행운아라고 불릴 정도로 상복이 많다. 문학동네 작가상으로 데뷔해서 그 후 한겨레문학상, 신동엽창작상, 이효석문학상, 황순원문학상 등을 수상했는데, 이 정도로 많은 상을 가진 사람은 문단에서 찾아보기가 어려울 것이다. 그런데도 올해 초 이상문학상을 수상함으로서 한국 문단을 굴복시켰다. 내가 ‘굴복’이라는 단어를 쓰는 것은 박민규의 수상이 그만큼 혁신적이라는 이야기이다. 또한 많은 사람들과 평론가들이 그의 글을 대내외적으로 인정해주었다는 말이 된다. 어떤 때는 삼류 SF소설 같고, 어떤 때는 무협 소설같은 ‘순수문학 같지 않은 소설’이 국내에서 가장 권위 있는 소설에게 주는 이상문학상을 수상하다니. 박민규는 또 한 번 문단을 자기 손안에서 쥐고 흔들었다.    박민규의 소설을 처음 읽었을 때가 생각난다. 내가 아직 중학생이었을 때, 국어선생님이 수업시간을 떼어서 10분동안 독서를 하게 한 적이 있었다. 국어 선생님이 읽을 책을 가져왔는데 그 중 박민규의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이라는 책이 있었다. 나는 처음에 겉표지에 실린 사진을 보고 그가 쓴 소설을 앞에 두고서도 그가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심하게 고민했었다. 긴 머리에 선글라스를 낀 그는 소설가라기보다는 록밴드의 기타리스트에 가까웠다. 소설의 내용은 어떠한가.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괴상한 문장들로 ‘이것이 소설이 맞나?’ 하는 질문들을 하게 만들었고, 나는 그 책을 다 읽고서 그것이 소설이 아닌 수필로 판단했었다. 사실 지금 생각해보면, 내게 소설적 감정을 느끼게 해준 최초의 작가는 박민규였다. 그가 써내려가는 패배자들의 이야기는 그때도 가슴 시리었고, 지금도 여전히 가슴 시리다. 나는 이미 그가 소설에 던진 문제의 화두를 중학생 때 경험한 것이었다. 그것도 아직 초등학생 꼬마 티를 벗지 못한 중학교 1학년 때에. 그 후에 박민규를 다시 읽은 건 삼년이 지난 고등학교 일학년 때였다. 나는 친구 녀석이 ‘박민규’라는 소설가를 읽어보라기에 그의 책을 사러 서점에 갔다. 그런데 웬걸. 내게 소설의 ‘쓴맛’을 처음 보여준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의 작가가 ‘박민규’였던 것이다. 그리고 그는 여전히 해괴망측한 문장

  • silmshady
  • 2010-08-31
(영화) 「인셉션」을 보고

2010-08-15 미국 Christopher Johnathan James Nolan 作 (영화) 「인셉션」을 보고   관객들의 인셉션      오랜만에 혼자 영화를 보러갔다. 별다른 감흥은 없었고, 버터구이 오징어와 콜라 둘 중에 무엇을 먹을까, 간단한 고민 정도만 하고 바로 상영관으로 갔다. 영화관에 갈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영화가 시작하기 전에 관객들에게 보여주는 광고들은 정말 자극적이고 세련되었다는 점이다. 사회의 가장 최첨단에 반응하고, 움직이는 영화관이 우리 문화의 현 시점을 보여주는 느낌이었다. 광고 속에 나오는 댄스가수들은 선정적인 춤을 추었고, 최신형 핸드폰과 자동차가 나오는 짤막한 광고에서 우리 시대를 뒤덮고 있는 ‘디지털’을 제대로 경험하였다. 어쨌든 영화는 시작되었다.    나는 SF장르를 좋아하고, 그것을 즐겨보는 편이다. 다른 장르와 구별되는 SF만의 특징은 나에게 항상 새로운 질문거리를 던지기 때문이다. 그것은 인류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이다. 가령 SF소설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을 꿈꾸는가?」는 「블레이드 러너」라는 영화로 각색되어 만들어진 유명한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는 안드로이드인 여자와 인간 남자가 성교를 하는 장면이 나와 있는데, 문제는 인간이 ‘로봇’에게도 사랑과 같은 감정을 느낄 수 있느냐는 것이다. 또 다른 SF영화 「가타카」는 우월한 유전자가 권력이 되고, 자격이 되는 미래사회를 그리고 있다. 주인공인 남자는 우월한 유전자를 가진 자신의 동생과는 달리 열등한 유전자 때문에 원하는 회사에 입사하지 못하는 부조리를 겪게 된다. 태어날 때부터 유전자의 우열에 의해 평생 할 일이 가려지고 직업이 가려지고 사회적 지위가 정해지는 세상이 온다는 것이다. 「가타카」는 인간 본질의 문제도 물론 제기하고 있지만 좋은 유전자가 권력이 되는 미래사회를 암시하거나 경고하는 메시지가 조금 더 강한 것이 사실이다. 그렇지만 같은 맥락에서 본다면 이처럼 많은 SF영화들은 그것이 인간의 본질이건, 사회건 결코 가볍지 않은 메시지들을 가지고 있다.    「인셉션」은 위에 나열한 두 작품보다 조금 더 복잡한 작품이었다. 실제로 영화를 다 보고 난 뒤에도 몇몇 부분은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평소 영화 리뷰나 후기, 작품 해설 등을 잘 보는 편이어서 네이버에 나와 있는 인셉션 영화 리뷰를 참고하였다. 글을 읽어보니 실제로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 얼마나 많은 생각을 가지고 영화를 만들었는지 알 수 있었고, 영화 곳곳에 나타나는 다중적 행위에 대한 참고도 될 수 있었다. 영화는 하나로 정의될 수 없는 특성을 가졌다. 이런 의미에서 영화의 결말은 충분히 이해된다. 결말에서, 관객들은 주인공이 꿈과 현실을 구별할 수 있도록 항상 가지고 다니는 토템이 계속 돌까, 아니면 멈출까, 하는데 관심이 집중된다. 하지만 토템은 쓰러질 듯 휘청거리지만 결코 쓰러지지 않고 영화는 끝난다. 주인공이 아이들과 재회하는 장면이 꿈인지, 실

  • silmshady
  • 2010-08-18
(인문서) 「88만원 세대」를 읽고

2010-08-09 레디앙 펴냄 우석훈·박권일 作 옮김 (인문서) 「88만원 세대」를 읽고   88만원 인생      사람들은 누구나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이 다르다. 나는 삶에 대한 각기 다른 가치관들과 방식들을 존중한다. 하지만 동일한 사회를 살아가는 구성원들이라면, 그들은 공통적으로 묶어주는 요소들이 몇몇 존재한다. 대표적으로 우리가 자본주의 시스템 아래서 살아간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새로운 체제가 나타나거나 과거의 사회주의 혁명이 다시 일어나지 않는 한 변하지 않는다. 자본주의 시스템 안에서 가장 큰 가치는 자본과 돈이다. 자본주의가 세계에 자리를 잡으면서, 경제학이라는 학문도 점점 많은 갈래로 나뉘고 발전하게 되었다. 이 책은 자신을 ‘C급 경제학자’라고 소개하는 우석훈 박사가 저술한 책이다. 경제학적인 관점에서 사회 전반의 모습들과 한국의 20대를 바라보고, 문제제기를 하고 있다. 경제학자인 그가, 무엇을 문제제기 할지는 너무 뻔하다. 이 책은 쉬운 말로 ‘돈’얘기 하는 책이다. 20대에게 돈이 없다는 것이다.    나도 내년이면 20대가 된다. 때문에 미래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해 보았다. 일단, 우리 집안은 경제 사정이 그렇게 넉넉하지 않은 편이기 때문에, 대학생이 되면 내가 쓸 돈은 내가 벌어야 하는 것은 당연하고, 될 수 있으면 학비도 내가 벌어서 지불할 작정이다. 사실 부모님과 같이 살지 않고 독립을 하고 싶다. 지금도 안양에 있는 학교 때문에 할머니 집에서 기생하는 처지지만, 더 이상 부모님 밑에서 기생하고 싶지 않다. 더군다나 프랑스나 독일, 스웨덴과 같은 나라에서는 20세 독립이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이다. 내가 그들과 같은 나이로 성장했고 동일하거나 그 이상으로 지적 능력이 성숙했다면, 나도 독립을 해야 한다. 하지만 내 주변의 많은 20대들을 봐도 독립했거나, 부모님의 경제권을 배제하고 자기 힘으로 돈을 벌어 쓰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이 책에서는, 이것이 개개인의 문제이기보다는 사회적 구조에서 나오는 ‘도저히 해결하기 불가능한’ 문제로 보고 있다. 우리나라의 수많은 20대들이 나이가 차도 부모의 경제권 안에서 기생하는 이유를 보면, 우리나라 사회 전반의 문제를 알 수 있다.    독립을 하려면 집이 있어야 하고, 일자리가 있어야 함은 물론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터무니없이 비싼 집값을 생각한다면, 애초부터 독립은 꿈도 꾸지 말았어야 할 문제다. 산 속이나 농촌 공동체에서 농사짓고 살지 않는 이상은 말이다. ‘사람답게 살 수 있도록’ 화장실 있고, 작은 부엌 하나 달려 있는, 이런 방 한 칸짜리 자취방도 너무 비싸다. 책에서 언급된 우리나라 20대 95%가 평균적으로 버는 수입의 최대는 한 달에 119만원이다. 그런데 한 달에 20만원씩 주거비용을 제외하고(물론 계약금을 생각하지 않고서) 식비, 교통비, 교재비, 전기세, 수도세, 대학 수업료

  • silmshady
  • 2010-08-09

댓글 남기기

로그인후 댓글을 남기실 수있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을 남겨 주세요!

댓글남기기 작성 가이드

  • 타인에게 불쾌감을 주는 욕설, 비방 등은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 주제와 관련 없거나 부적절한 홍보 내용은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 기타 운영 정책에 어긋나는 내용이 포함될 경우, 사전 고지 없이 노출 제한될 수 있습니다.
0 /1500
  • 물처럼

    김훈이 에세이를 읽고 본인이 생각하는 작가의 특성을 정리한 글이군요. 김훈이 당대의 역사를 자신의 객관적 언어를 통해 표현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고, 그것이 문학의 특성을 제대로 유지하면서도 역사의 기록에 가까울 정도의 객관적 의미를 지니고 있기에 바람직한 작업이라는 점을 지지하고 감동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 근거로 김훈 작가의 아버지를 묘사하는 방식, 여러 역사적 인물을 기술하는 태도, 법전, 사전 등의 참고문헌을 중시하는 사고 등을 적절하게 잘 제시하고 있어서 설득력을 높이는 글이라고 생각합니다.

    • 2009-11-06 10:29:33
    물처럼
    0 /1500
    • 0 /1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