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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선)「눈길」을 읽고

  • 작성자 silmshady
  • 작성일 2009-12-14
  • 조회수 407

(소설선)「눈길」을 읽고

  -이제는 녹아 없어진 눈길을 추억하며

 

 출판사에서 편집되어 나온 소설선 한권만을 가지고 작가 전체를 평가하기에는 무리가 뒤따르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청준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당신들의 천국」과 이 선집에 실린 1966년부터 1991년까지 발표된 7편의 단편들을 중심으로 미약하게나마 이청준과 그의 작품들을 사유해보기로 했다. 그가 작품을 쓰면서 고심했던 당시 시대상황과 함께 말이다.

 지난 가을이었다. 그러니까 2009년 10월 어느 토요일. 한강 선유도 공원에서는 서울시가 주최한 ‘한강 문학축전’이 열렸다. 학교에서 문예창작을 전공하는 터라, 서울시는 우리 학교 문예창작과를 초청했다. 다채로운 행사가 열렸고, 나도 행사에 참여했다. 가장 흥미로운 것은 작가와의 만남이라는 행사였는데, 일반인들이 접하기 어려운 작가들이 나와 그들과 담소를 나누고 문학에 대해 솔직한 이야기를 주고받는 자리였다. 마침, 평소 좋아하던 김광규 시인이 참석해서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는데, 나는 막연하게 ‘시를 잘 쓰려면 어떻게 해야 돼요?’라는 물음을 던졌다. 시인은 많이 읽고, 많이 쓰라는, 어찌 보면 당연한 조언을 해주었고 특히 고전을 많이 읽으라는 말을 했다. 그리고 이청준 선생님의「눈길」같은 소설도 읽어보라고 권해주었다. 이청준의「당신들의 천국」을 이미 읽었던 터라, 이청준을 조금 알아버렸다고 치부했던 나에게 김광규 시인이 추천한 소설선「눈길」은 그 작가에 대한 새로운 사유를 만들어내기 충분했다.

 문학은 항상 사람을 향해야 한다는 것이 내 나름대로의 지론이다. 시나 소설이 사람의 손에 만들어졌으니 당연한 말일지도 모르나, 이것은 중요한 말이다. 사람에 대한 이해나, 사랑, 그리고 세계관 없이 문학 작품을 창작한다는 것은 흡사 인물 없는 초상화를 보는 것이나 마찬가지 일이다. 그러니 문학 창작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어디까지나 사람에 대한 작가의 생각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청준은 평소 이러한 나의 지론을 더욱 단단하게 만들어준 몇 안 되는 작가 중 하나였다.

 인간은 살아가면서 수많은 난관에 부딪힌다. 그것이 근본적인 윤리에 기초한 인간의 고뇌일 수도 있고, 살아가는 체제의 부조리 속에서 나오는 갈등일 수도 있다.「당신들의 천국」은 소록도의 강압적인 체제와 독재자 사이에서 갈등하는 원생들의 이야기를 담은 소설이다. 부조리한 체제 아래에서 인간은 어떠한 모습으로 살아가는가. 또 그러한 인간 위에 군림하는 독재자는 어떠한 모습을 하고 있으며, 그 속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바람직한 세계관은 무엇인가. 이런 것들이「당신들의 천국」에서 이청준이 주목한 사유들이다. 이것들 또한 인간 본연의 고민들과 크게 거리를 두지 않고 있으며, 당시 이청준이 맞이한 시대 상황 또한 이 소설과 비슷했던 바, 이런 높은 예술적 성취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소설과 시대 상황이 너무나 비슷하게 맞아 떨어지는 현상.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이청준이 소설 속에서도 현실과 똑같이 인간 본연의 고민을 그려내고 있으며, 그러한 소설이 자신이 살아가고 있는 세계와 별 다를 것이 없다는 작가 의식은, 이청준의 작품을 진짜 독재자가 군림하던 현실 위에 올려놓는다.

 소설선집에 실린「눈길」은 이와는 조금 다른, 인간의 고민을 보여준다. 이를테면 좀 더 근본적이고 인간 본연의 윤리성을 건드리는 문제에 다다른 것이다. 작품은 고등학교 문학 교과서에도 실려 있다. 이 말은, 학생들에게 가르치기 쉬운 주제와 문체로 쓰였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실제로도 복잡한 기교나 상징이 들어가지 않고 인간 본연의 모습을 건드리고 있다는 점에서 이청준의 또 다른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다. 어릴 적, 아들에게 아무 것도 해주지 못한 늙은 노파와 그에 서운함을 품고 자신의 엄마를 ‘노인’이라고 부르는 남자. 남자는 시종일관 자신은 노인에게 갚아야 할 빚이 없다면서 노인의 마지막 소망인 새집을 짓는 계획에 시큰둥한 반응을 보인다. 그날 밤, 노인은 며느리에게 아들을 배웅하던 날을 새근새근 말하기 시작하고, 아들도 자는 척 이야기를 듣고서는 눈가에 뜨거운 것이 맺히는 느낌을 받는다. 차가운 눈송이가 길을 막아도 아들이 가는 길은 배웅해 주어야겠다며 버스 정류장까지 기를 쓰고 걸어간 노인. 아들의 뒷모습이라도 보겠다며 눈길 위에서 종종걸음을 재촉했을 노인은 결국 먼저 떠난 아들을 보지 못한다. 아들에 대한 미안함과 그리움이 눈발이 되어 내리는 새벽. 노인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마치 자신이 직접 겪었던 일인 양 자연스럽게 노인과 아들의 이야기를 풀어놓은 작가는 결코 그르칠 수 없는 인간 본연의 윤리에 대해 노인처럼 새근새근 이야기를 늘어놓는 듯하다. 아무리 부모가 모나고 부족해도 자식이 부모의 은혜를 내칠 수는 없는 법이다. 이것은 온갖 메커니즘이 지배하는 이 세계에서 몇 안남은 인간의 본질적인 어떤 감정이다. 부모에 대한 사랑. 자식에 대한 미안함. 살아가는 데 필요한 당연한 순리이자 이치를, 이청준은 아들의 눈가에 맺힌 뜨거운 눈물을 통해 다시 한 번 확인시켜준다.

 당연하고 식상한 주제인데도, 왜 우리는 감동을 받고 작가의 메시지를 읽을 수 있는 것일까. 그것은 물론 문학 작품을 구성하는 모티프 중 가장 주된 몇 가지의 인간 본질적인 문제를 건드린 작가의 선택도 기여하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이 메커니즘에 가득 차 인간을 향한 휴머니즘이 사라져 가는 것도 이유라면 이유일 것이다. 소설의 대량생산 시대. 너도나도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소설가로 등단하고, 일회용 소설을 써내는 시대다. 그저 순간적인 감정에 기반을 두어, 수 천년동안 이어온 인간 본연의 고민들을 무시한 채 발생한지 백년도 안 되는 한국 자본주의의 틀에 맞추어 소설을 쓰는 시대다. 왜 더 이상 이청준처럼 쓰는 작가는 나오지 않는가. 아니, 나오려고도 하지 않는가. 톡톡 튀는 감성을 활용해서 젊은 세대의 순간적 입맛에 맞추는 몇몇 여류 소설가들과, 소설을 돈벌이로 활용해 괴상한 로맨스 소설과 한글 맞춤법과 띄어쓰기를 무시한, 기본적인 문장도 완성시키지 못하는 소설가들이 인기를 얻고 득세하는 시대다. 그 와중에 인간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하는 작가는 극히 드물다.

우화적 구성으로 한 치칠 전문의의 고민을 담은「치질과 자존심」에는 재미있는 대목이 나온다. 치질 박멸을 위해 한 평생을 노력해온 치질 전문의는 어느 날 언어학자를 통해 항문을 들춰내기 싫은 사람들이 자존심 때문에 사지보행에서 직립보행을 하게 된 내력을 듣는다. 그는 치질을 박멸하려면 무엇보다 인간이 사지 보행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참이었다.

 “알겠습니다. 이제 알겠어요. 하니까 사람들은 그 자존심 때문에 사지보행으로 다시 돌아갈 수가 없다 이거지요?”

 가수로 씨는 마음이 심히 불편스런 어조로 언어학자에게 대들 듯이 말했다.

 언어학자는 이제 대답이 없이 그저 웃고만 있었다. 하지만 가수로 씨는 아직도 자신의 희망을 버릴 수가 없었다.

 “그러니까 사람들은 치질의 고통을 당하는 한이 있더라도 그 자존심만은 버릴 수가 없었다. 이거 아니냔 말입니다.”

 가수로 씨는 계속 볼멘소리로 언어학자를 다그쳐대었다. 그러면서도 속으로 혼자 굳은 결심을 다지고 있었다.

 어쨌거나 그는 그것으로 이 세상에서 치질이란 질병을 박멸시켜야 할 삶의 목표를 단념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방법에 대해선 가수로 씨로써는 어떤 확신이 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혼자 속으로 다짐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이제부턴 우선 그 자존심이란 놈부터 이 세상에서 깡그리 박멸을 해야겠군.

 치질을 박멸하는 것에 삶의 목적이 있는 치질 전문의의 이야기이다. 일차원적인 우화적 요소가 가미된 소설로, 비교적 쉬운 문체에다가 등장인물도 치질 전문의와 언어학자 두 사람이다. 이 작품에서 이청준이라는 이름을 지우고, 신춘문예 심사위원들에게 갖다 준다면 어떠한 반응을 보일까. 아마 고등학생이나 대학생 습작 수준의 작품이라고 고개를 내 저을 것이 뻔하다. 감각적이고 환상적인 소설에 익숙한 그들이 어찌 이런 자명하고 단순한 소설에게 좋은 평가를 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이런 것이 진정한 소설가의 능력이 아닐까 생각한다. 단순하고 일차원적인 치질 전문의의 고민에서, 우리네 삶을 덮고 있는 자존심이라는 놈을 박멸해야겠다는 결론을 얻기까지. 그가 삶에서 찾은 자존심의 여러 모습들, 괜한 자존심 때문에 진정으로 고통을 느끼는 치질을 고치지 못하는 현대인의 모습들. 비록, 치질과 자존심이 인간의 근본적이고 실존적인 고민은 아니지만, 휴머니즘의 관점에서 아무에게나 말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고민들을 풍자적으로 풀어낸 소설이다. 소설가는 자신의 감정을 고백하는 직업이 아니다. 소설가는, 자신이 겪었던 체험이나 사건들을 활용해서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직업이다. 만능 이야기꾼인 것이다. 거기에 더해, 이청준처럼 인간을 향한 근본적 고민들을 할 능력과 그만의 작가의식을 갖추고 있다면 더욱 깊고 감동적인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들려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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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ilmshady
  • 2010-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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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물처럼

    이청준 소설 중에 3개의 작품을 중심으로 자신의 감상을 제시한 글이로군요. 이청준 소설에는 상징적 요소와 현실에 대한 은유가 많이 담겨있어 작품의 의미를 여러 측면에서 읽어내는 재미가 있는 소설이라고 하지요. 이 글에서는 3개의 작품에 대한 감상평을 이어나가려는 의욕을 보이어 글의 길이가 좀 길어졌군요. 한 작품을 구체적으로 평가하는 것은 예시를 들어가며 분석할 수 있는 집중점이 높아지지만, 3개의 작품을 고루 설명하려면 아쉬운 부분이 많이 생긱지지요. 기준설정에 고민이 필요하군요. 글을 쓰게 된 동기를 맨 앞에 붙였는데,

    • 2009-12-25 20:00:33
    물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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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익명

    하지만 이 감상문은 작품을 토대로 자신의 생각을 체험과 함께 적어 맛깔나는 감상문이군요. 깊이 고민한 흔적이 보이구요.. 확실히 책을 부드럽게 주무른 것 같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 2009-12-19 22:09:15
    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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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익명

    마지막 부분이 거슬리는군요. 글쓴이는 글을 부드럽게 이어가려고 신춘문예에 이 글을 실으면 좋지 못한 평가를 받는다고 말했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치질과 자존심이란 작품은 그 자체로 탄탄한 구성과 재미를 가지고 있고, 어디 군더더기 하나 있는 곳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더군다나 ''감각적이고 환상적인 글에 익숙한 이들''이라고 하셨지만, 이 소설은 감각적입니다. 또 감각적이고 환상적인 글만을 심사위원들이 취급하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 2009-12-19 22:07:28
    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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