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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계발서의 모순과 허구성

  • 작성자 키드에이
  • 작성일 2009-12-25
  • 조회수 448

사람들은 자기계발서를 읽는다. 자기계발서가 베스트 셀러에 항시 올라와있고

자기계발서를 읽는 문화현상자체도 널리 확산되었다고 생각한다.

때론 메모까지 하고 필기까지 하며 아주 강한 집념과 끈기를 발휘해 달달 외우고 다니거나

자신의 인생의 신념,모토로 삼기도한다.

어느 사람들은 좋아하는 유일한 책의 장르가 자기계발서라고 하고

왜 읽느냐고 물으면 성공하는 스토리가 좋아서, 말그대로 자기를 계발하기 위해서,

더 나은 삶의 방식을 찾기 위해서 라고 확실한 답변을 준다.

나도 한때 계발서를 뒤적거리며 삶의 방식을 찾으려고 애썼었고 믿고 싶었다.

그러나 삶을 살아가면서 느끼는 건 누구에게나 살아온 자신의 삶이 있고, 남과 구분되는

자아가 있다. 그 자아는 자신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삶을 영위해 나간다. 어떤방식이라든지.

실패와 성공의 여부에 떠나서 내가 알고싶고 원했던것은 나 자신을 뜯어 고치는 것이었다.

어떻하면 덜 우울해질까, 어떻하면 남들 만큼 더 멋져지고 더 멋진 그런 삶을 살고, 성공한 것처럼

비춰지고 남의 호감을 사고 내 인생이 성공했다고 느껴질까.

어느 책 처럼 일찍일어 나보기도 하고 아침에 차도 마시고 긍적적인 자기 세뇌를 해보기도 했다.

그럴 수록 결국, 장기적으론 내 허무함이 더 크게 느껴졌다. 내 상실감과 부족감이 더 휑해졌다.

왜 그럴까 하고 생각해보니 나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채 자기 계발서의 것들을 하나 하나 세뇌적으로.

로봇처럼 수행할 뿐 나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물론 저자의 의도는 그런행동을 통해 느끼라는 것이었지만.

강박적 처지에 몰려 자신을 고치려고 드는 수만은 독자들에겐 스케줄표에 짜인 지겨운 일상의 계획에 지나지 않지 않을까. 물론 여기서 강박적 처지는 부정적의미의 정신병적인 극단적 의미는 아니다.

그저 무슨 상황에 처하거나 아니면 그렇게 마음을 먹고 조금 초초해하며 자신의 불완전성에 대해 고민하는 이들을 말하는 것일 뿐이다.  그런데 문제는 자기계발서의 독자는 이런 분들이다. 모순적이게도 말이다.

자기계발서를 무슨 만병통치약정도로, 만병통치제로써 취급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저 지푸라기를 잡고 싶은 그런 심정이라고 밖에 생각되지 않는다.

그렇게 자기계발서에 적힌 대로 당신의 삶을 뜯어 고친다면 행복해 질까요?

아침에 칼 같이 일어나서 차한잔 뜨듯하게 마시고 밤되면 칼같이 자고, 타인에게 늘 배려심있게 행동하고

모든게 잘 될거라고 긍적적으로 세뇌시키는게 과연 행복의 방법일까요

물론 그렇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그렇지만 내가 생각하기에 그렇게 정의 된것은

결국 당신들이 자기계발서를 찾게한 사회나 타인, 혹은 자기 자신의 '잣대','기준'의 연장선일 뿐이다.

또하나의 '잣대'로 완성된 행복법. 이게 무슨 경우란 말인가? 이렇게 완벽한 모순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자기계발서대로 하면 자기계발서에서 말하는 '완벽한'인간이 될 수있다.

그렇다면 당연히 이 완벽한의 기준은 사회와 사람의 잣대에서 비롯된다. 다수의 사람들, 다수가 지배하는 사회의 잣대. 자기계발서를 읽는 이유는 그런 잣대를 충족하지 못해서 아니었던가? 그런 사람들이 칼 같이 자기계발서의 잣대에 자신을 싹둑 싹둑 자르거나, 그 잣대에 자신을 늘여가는것이 과연 옳은 현상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가? 좀 직설적이고 완벽한이란 단어를 사용해 말하자면 나의 결론은 그런 완벽한 인간을 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완벽한 인간이란 기준 자체가 존재할 수가 없다. 사람들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습성,생활방식을

자신의 삶에 맞추고 자신만의 최선의 방식으로 발전시켜 나갈 뿐이지 하나의 지향점으로 인간형이 되어야 한다는 그런 생각은 존재해서 안 될일이다. 자기계발서는 조금 비약적으로 말하면 사람들이 가진 고유의 자아를 부정하고 있는 셈이다. 오로지 최고의 완벽한 인간을 원한다는 말이다.  세상엔 조금 게으른 사람도 있을 수 있고 조금 더럽고, 조금 머리가 나쁘고, 조금은 내성적이고, 조금은 뚱뚱하고, 조금은 늦게 일어나고, 조금은 화를 잘내고, 조금은 욕을 잘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존재할 수있다.  이런 사람들을 획일화 시켜 군대를 하나 형성 하겠다는 소린가? 너무 더럽게 살아서 집에 바퀴버리 수백마리가 있다는 이런 극단적인 예를 들자면 이 건 사람들의 습성,다양성 보다는 개선해야할 습관이다. 내가 원하는 것은 획일성,완벽성이 아니라 올바른 고유의 정체성이다. 더러움이 매력으로 승화 될 수 있는 정도까지. 아니면 그 사람이 생각하기에 행복할 수 있는 정도까지. 요즘 자기계발서들은 올바른 습관을 잡아주고 자신의 감정을 다스리고 치유해주는 읽을 만한 진짜 자기계발서보단, 어떻게 행동해야 뭘 얻을 수 있고 완벽해 질 수있는지만 되풀이해 나열해 놓는 상업성이 너무 짙어졌다. 서점에 가면 한 코너가 자기계발서로 꽉차있지만 정작 쓸만한 계발서 따위가 없다. 계발서 자체가

습관을 개선해주거나 자신의 문제점을 파악할 수있어 자아형성과 발전에 도움을 준다가 아닌  나를 뜯어고쳐서 완벽해 진다란 뉘앙스가 솔솔 풍기는 계발서로 의미가 많이 왜곡된 것같다. 이 물질화 시대와 스펙지상주의 시대에 걸맞는 아주 멋진 왜곡성이다. 물론 나도 어느 정도 선까지 자기계발서가 필요하다고 보지만 그게 '과정'이 중요한거라고 생각한다. 모두들 결과에 집착하지만 자신에게 '맞는' 개발법으로 인도해주는게 계발서의

역할이라고 생각된다. 또 하나, 사람들이 자기 계발서를 찾는 이유가 실패를 극도로 두려워하고 기피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란 말을 듣고 시큰둥하거나 냉소를 보내는 이들이 적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자기 계발서는 어떻게 살아야하는지 하나 하나 다 제시 되어지고 있고 누군가의 성공으로 증명된 방법이기도하다. 결국 사람들은 그 저자의 성공과 자신들도 성공할 수있다는 부질없는 확신에 차 아까운 돈을 써가며 자기계발서를 사들이고 자랑스럽게 그 방식을 따라하는 것이다. 당신이 결과적으로 행복해 졌던 아니던

나는 그게 올바른 방법이라고 생각되지 않는다. 그 것이 자신이 찾아낸 방법이 아니지 않은가?

자신이 실패하며, 쓰러지고 넘어지고 깨져가면서, 좌절해가면서, 눈물을 흘리면서 , 후회하면서, 결과에 조마 조마 해가면서 이뤄낸 성과가 아니지 않은가? 당신은 결국 도둑이다. 당신이 계발서를 보는건 도둑심보다.

삶의 성공과 행복이란게 그렇게 남이 이뤄 놓은 성공의 루트를 빠르게 따라가서 이루어지는 것인가?

왜 아무런 고통도 대가도 없이, 오히려 그 것들을 치루는 이를 바보 취급하는가?

당신의 결과를 보며 당신은 행복과 성취감을 느꼈는가? 그저 현실 안주 아닌가. 당신의 역량은 그정도가 아니고 당신이 삶을 사는 이유는 그 성공과 행복이란 '결과'를 이루는 것이 아니지 않는가.

당신이 쉽게 이룬 행복은 어느날 갑자기 쉽게 무너져 내리고 다시는 그것을 쌓을 수 없을지 모른다.

방법과 방식은 매번 바뀌지만 당신은 그 과정을 거치지 않았으므로 다시 혼란과 좌절을 맛볼 뿐이다.

성공과 행복이란 결과 이전에 삶을 사는 의미라도 한번 진지하게 성찰 해 본적있는가? 물론 시중의 삶에 대한 자기계발서니 이런 류를 참고하지 않고 혼자. 스르로. 그 괴로움을 끊임 없이 겪고 고뇌해 봤냐는 것이다.

자기계발서 몇권으로 쉽게 살아갈 수 있다면, 너무나 쉽게 쟁취해 나갈 수 있다면. 우리의 삶의 의미는

무엇이 되는 것일까. 한가지 더 강조하고 싶은건 우리의 삶은 타인에겐 결과로 평가받겠지만 결국 자신의 행복의 척도는 자아가 이뤄낸 과정속에 있는 것이다. 결과 지향적인 이러한 자기계발서로써는 사람들은 결코 그 누구도 행복해 질 수 없을것이다. 누군가는 실패에도 행복과 보람을 느끼고 누구는 성공에도 좌절과 패배감을 느낀다. 그 근본적 차이는 이제 누구나 깨달을 수 있을것이다.  자신의 삶 자체는 결코 자기계발서 한권 따위가 좌지우지 할 수 있을정도로 만만한게 아니고, 자아는 자기계발서의 방법으로 쉽게 고쳐질 수 없는 것이다.

만약 쉽게 고쳐지고 좌지우지 된다는 것 자체가 자신의 역량이 부족하단 뜻인데 그런 사람 자체는 많지 않다.

모두들 너무 쉽고 빠르고 확실하게 살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결국 나는 어쩔 수없이 자기계발서를 현대인의 조급함과 세속성의 성질로 나타난 하나의 문화라고 볼수 밖에 없지만, 그렇게 판단해야 하지만. 내가 근본적으로 말하고 싶은건 삶이란 몹시나 불완전한데 그 절대적인 잣대나 기준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수많은 사회와 타인의 잣대에 내 자아는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도 수두룩하고 나는 패배감과 열등감을 느낄 수 밖에 없다.

그렇지만 이렇게 많은 좌절과 모순들 속에서도 나는 매 순간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바를 선택해 나가고 그 것을 그 사람의 삶속에서 증명해 나가는 것 그게 삶의 이유라고 생각한다. 당신의 삶이란 자기계발서가 원하는, 목적으로 하는 그런 인간이 아니라고 할지라도 충분히, 그 배로 더욱더 멋지고 가능성있는 삶이란것이다.

자신을 부정하지 않고 받아들이며 자신이 삶을 살며 깨달은 가치관, 옳고 그름에 따라 자신이 최선이라고 생각되는 자신만의 지향점을 향해성숙해 나갈 수 있는 삶을 살 수 있다는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키드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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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기계발서는 조금 비약적으로 말하면 사람들이 가진 고유의 자아를 부정하고 있는 셈이다. 오로지 최고의 완벽한 인간을 원한다는 말이다.''라는 논지로 주장한 글이로군요. 나는 그런 것을 깨달았으므로 어떻게 살아가고 있다라는 주장을 펼쳤으면 더 확실한 자기 주장이 드러날 터인데 아쉽군요. 길게 의견과 주장을 펼쳤는데, 문단의 구분이 안 되어 있어 읽기에 매우 힘이드는 독자가 많을 것입니다. 몇 개 정도의 논지를 세우고 문단을 갖춰 주장하시길 바랍니다.

    • 2009-12-25 19:29:26
    물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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