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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돈 끼호떼 1」을 읽고

  • 작성자 silmshady
  • 작성일 2010-02-01
  • 조회수 223

2009-01-28

창작과비평사 펴냄 Miguel de Cervantes 作 민용태 옮김

(소설) 「돈 끼호떼 1」을 읽고

 

인간이라면 한번쯤

 

   작품을 읽다가 문득 에스파냐가 부러워졌다. 우리나라에는 이런 작품이 없었다. 비슷한 작품으로는 1612년에 저술된 허균의 「홍길동전」이 있다고 할 수 있겠다. 「돈 끼호떼」가 1605년에 출간되었으니 시기상으로는 거의 일치한다. 하지만 작품 속을 들여다보면 결코 같다고 할 수 없는 것이 두 작품이다. 일단 「돈 끼호떼」는 그 분량부터가 방대하다. 창작과비평사에서 2권짜리로 출간된 작품은 거의 1500페이지가 넘어간다. 그 속에는 온갖 것이 다 들어가 있다. 아직 1권밖에 읽지 않았지만 당시대 유럽의 사랑, 생활양식, 사람들의 사고, 민중들의 삶을 관찰할 수 있었다. 이런 점에서는 「홍길동전」도 같은 특성을 가진다. 조선 사람들의 삶. 그 당시 신분제도에 따른 제약. 시대적 환경 등이 작품 속에서 표출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돈 끼호떼」보다 방대하지 않고 나오는 인물들도 적다. 「홍길동전」이 잘 짜인 개요 속에서 주인공이 행동하는 단편소설적인 작품이라면 「돈 끼호떼」는 인물들이 펼치는 이야기의 나래가 넓고 보다 장편소설적인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다.

   어렸을 때, 어떤 책을 읽다가 무심코 라만차의 기사에 대해 읽은 적이 있었다. 그 책은 시사나 상식을 만화책형식으로 만들어 놓은 책이었는데, 만화에서는 무장한 기사가 창을 들고 풍차를 향해 돌진하는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그 후에도 나는 이 기사에 대해서 많은 단편적인 것을 읽었다. 그래서 이 기사의 뒤에는 항상 하인 하나가 당나귀를 타고 따라다닌다거나, 이 기사는 정신이 나간 사람이라는 것쯤은 알고 있었는데, 정작 그 이야기의 전체를 읽을 기회는 없었다. 그래서 더 놀랍고 새로웠다. 내가 이런 기발한 이야기를 좀 더 일찍 알았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도 남았다. 멋모르고 뛰놀던 시절. 좀 더 자유분방하고 이상적인 생각을 할 수 있었던 나이에, 이런 이야기가 내 몸속으로 들어왔으면 분명 난 좀 더 다른 생각을 하고, 다른 삶을 살았을 것이다.

   돈 끼호떼 기사는 이상한 사람이 아니었다. 기사 소설을 많이 읽어서 미친 사람으로 작가는 그리지만, 나에게 그는 정말 진실한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다가왔다. 상황에 따라 이리저리 자신의 신념을 바꾸거나, 상황에 용기 있게 대처하지 못하는 비겁한 사람보다는, 돈 끼호떼 기사가 보여준 면모들이 더 나에게는 적합하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그는 비록 사람들에게서 미쳤다고 손가락질을 받지만, 자신의 신념대로 행동하는 사람이다. 자신이 원하지도 않는 노동에 끌려가는 죄수들을 풀어주고 주인에게 맞고 있는 한 소년을, ‘불쌍한 사람들을 구해주자’,라는 그의 신념에 의거하여 도와준다. 그가 읽은 기사소설의 주인공들이 그랬기 때문이다. 이러한 마음가짐을 갖고 그는 여러 모험을 하며, 여러 상황에 직접 몸으로 부딪힌다.

   한 가지 궁금했던 점은 그 시대에 어떻게 이런 작품이 나올 수 있었는가, 하는 점이다. 정말 우리나라에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문학적 자질을 의심하는 것은 아니다. 그저 「돈 끼호떼」를 읽어 내려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유발되는 호탕한 웃음과 이야기가 부러웠다. 「홍길동전」은 웃기지 않다. 웃기기보다는 엄숙하고, 통쾌하다. 하지만 「돈 끼호떼」는 웃기다. 기사의 행동 하나하나에서 웃음이 유발되며, 그를 따라다니는 산초를 상상만 해도 웃음이 절로 나올 지경이다. 허균이 살았던 1612년. 엄격한 신분사회였던 조선시대의 폐쇄적 모습을 생각해보면 이해가 될 법도 하다. 조선시대에 살았던 어떤 작가가 돈 끼호테와 비슷한 주인공을 선택해서 소설을 썼다면, 그것은 출간되지도 않았을 것이다. 분명 지체 높은 양반들은 이 소설이 사회의 위엄을 헤치고 백성들을 건강하게 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그 작가를 잡아들였을 것이다. 이런 웃음을 유발하는 읽을거리가 없었던 조선의 백성들은 에스파냐 백성들보다 분명 덜 웃고 살았을 것이다.

   「돈 끼호떼」는 서양의 최초 근대소설이라고 한다. 그 말인즉, 현재 작가들이 쓰는 소설과 유사한 소설이라는 것이다. 내 생각엔 이 작품이 가지는 의의는 비단 이것뿐만이 아닌 것 같다. ‘아리스토텔레스 이후 모든 철학은 그의 모방에 불과하다’,라는 말이 있다. 이 작품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이 작품 속에는 현대 소설에서 볼 수 있는 모든 형식이 들어가 있다. 문제적 주인공의 일대기적 구성이라든가, 성장소설의 면모라든가, 또 다른 이야기의 삽입이라든가, 한마디로 현대소설의 전범을 이루고 있는 것이 바로 「돈 끼호떼」다. 이 작품을 무조건 찬양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확실한 사실이다. 사람을 웃길 수 있는 문학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 라는 고민은 모든 문학하는 사람들이 느끼는 공통된 고민이다. 이 고민은 서양 최초 근대소설이 풀어내고 있다. 이것만으로 의의가 있다.

   돈 끼호떼 기사는 비록 미쳤지만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웃음을 준다. 그를 따라다니는 산초도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들이 유발하는 이 ‘웃음’이 결코 그냥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들은 각자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개별적인 인물들이다. 산초는 기사가 준다던 섬의 영주가 되기 위해 기사의 하인 노릇을 한다. 기사는 라만차의 아름다운 둘네시아 공주를 행복하게 해주기 위해서 방랑기사의 모험을 떠났다. 이들이 모험 중에 만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객줏집의 주인의 삶과, 양치는 목동의 삶은 다르다. 이들의 삶이 만나서 진실한 웃음을 유발하는 것이다. 이것은 삶에서 나온 웃음이다. 그래서 값지고 특별하다.

   나도 한번쯤 돈 끼호떼처럼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나고 싶을 때가 있다. 나에게 부과된 모든 의무와 책임을 버리고 말이다. 그리고 방랑을 시작하는 것이다. 산속에 묻혀있는 암자에서 생활해보기도 하고, 공사판에서 노동을 하는 것이다. 여러 가지 소일거리로 돈을 벌고, 돈을 벌 때마다 생활비로 쓰는 것이다. 시골을 걸으며 많은 생각을 하게 될 것이고,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될 것이다. 그 중에는 별별 사람이 다 있을 것이다. 나쁜 사람, 돈을 훔친 사람, 순진한 농사꾼, 평범한 회사원, 이주 노동자, 택시기사, 슈퍼 직원, 선생님, 한가로이 정자에 앉아 바둑 두는 노인들 등. 이런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 나누고 싶다. 내 꿈은 문학을 하는 것이지만, 이런 사람들을 만나는 과정 자체가(돈 끼호떼가 기사가 되려고 모험의 길을 떠났듯이) 문학을 몸으로 하는 하나의 방법 아닌가. 문학은 많은 사람들 속에 있다. 그것을 꺼내서 갈고 닦아 글로 표현하는 것이 작가, 시인 등 여타 문학하는 사람들의 몫이다. 때문에 글 쓰는 사람들은 돈 끼호떼처럼 살지 않으면 좋은 글을 쓰는 것은 불가능하다. 돈 끼호떼는 ‘겉’을 살다간 사람이 아니다. 그는 방랑기사의 모험을 하면서, 여러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들의 고충을 해결해주면서 세상의 ‘내면’을 알아갔다. 세상의 내면을 이해하고, 그것을 살아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많이 다니고, 많이 보고, 많이 겪으라는 많은 작가들의 충고는 맞는 말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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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ilmshady
  • 2010-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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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물처럼

    또한 그런 인물의 이야기가 담긴 길고 긴 문학작품을 읽으려고 할까요? 그러나 그런 의혹들을 딛고 이런 종류의 책을 읽어나가서 얻는 효용성은 무엇일까요? 바로 삶에 대해 다양한 이해와 진지한 성찰, 그리고 여유로운 관점을 갖고 사는 삶의 기쁨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 2010-02-10 17:05:11
    물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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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물처럼

    silmshady 은 그동안 여러 편의 글을 통해 주장원에 올랐고, 월장원으로 '(시집)새들의 역사」를 읽고 '라는 작품도 받은 바가 있었습니다. 이번 글도 그의 필력이 그냥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결과물로 나오는 것이 아님을 잘 알려주고 있습니다. '속도와 효율과 이윤의 최고의 가치'로 여기며 사는 이 시대에 누가 이렇게 '느려터짐과 비합리와 잇속없는 정의지키기'에 시간과 정력을 투여하는 등장인물이 있을까요?

    • 2010-02-10 17:05:08
    물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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