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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비평&감상글 월장원 발표(해당작 없음)

  • 작성자 웹관리자
  • 작성일 2010-05-31
  • 조회수 528

4월은 새 학년이 시작되고 이제 좀 자리가 잡힐 시기지요? 물론 4월 말이나 5월 초에 중간고사가 있어서 좀 부담스럽기도 하지요. 요즘은 점점 시험에 대한 부담이 커지는 걸 느낄 때가 많아요. 무조건 시험을 많이 보고, 시험 점수를 중요시한다고 발전하는 것도 아닌데 시험 비중이 점점 높아가는 것 같아 안타까워요. 시험에 대한 부담 때문인지 비교적 자유로운 4월이지만 많은 글이 올라오진 않았어요.
 
4월 한 달 동안 주 장원에 추천된 글은 다음과 같아요.

일주일은 칠 일」감상문 <채워지지 않는 일주일>   -해독 (ID: lkorl92)
예술의 부재로 파헤쳐본 우리나라의 교육 문제  -니삭 (ID: isak)
백 마디 말보다 소중한 것-양성평등에 대하여   -새송이버섯 (ID: ehdus9)
「음악은 왜 우리를 사로잡는가」- 로베르 주르뎅  -해독 (ID: lkorl92)
<파블로네루다와 일포스티노>오늘밤 나는 쓸 수 있다  : 해독 (ID: lkorl92) 
(자서전) 「말」을 읽고   : silmshady (ID: trai9450) 

해독 (ID: lkorl92)님의 글이 세 편이나 추천되었군요.
여섯 편의 글을 다시 읽으면서 어느 작품을 월 장원으로 선정할지 고민했어요. 그런데 우선 여러 사람에게 기회를 부여한다는 원칙을 기준을 떠올리니 좀 난감해졌어요. 해독, silmshady, 새송이버섯 세 분은 이미 올해 1월부터 3월 사이에 월 장원을 한 분들이니 다른 분들을 추천하면 좋은데 그러면 니삭님만 남잖아요. 그러나 그렇게 월 장원을 선정하는 것은 별로 바람직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니삭님의 글은 주제도 신선하고 내용도 좋았으나 좀 더 다듬어졌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고, 앞으로 많은 발전이 있으리라는 기대도 하게 했어요. 굳이 이번에 월 장원으로 무리하게 추천하지 않더라도 분명 더 좋은 글을 내놓으리라는 기대를 하게 했어요.

그래서 이번 달에는 월 장원을 선정하지 않기로 했어요. 그러나 그렇게 결정해 놓고 보니 아쉬운 마음이 들더군요. 분명히 좋은 글도 있었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세 편의 글이 주 장원으로 추천된 해독님의 글 중에서

<파블로네루다와 일포스티노>오늘밤 나는 쓸 수 있다  : 해독 (ID: lkorl92)

를 특별 추천하기로 했어요. 해독님은 1월에 월 장원을 했지만 나중에 이번 글과 비교해 볼 수 있을 것 같아서 추천해요.

‘오늘밤 나는 쓸 수 있다’는 말하고자 하는 바가 비교적 선명하게 드러나는 장점이 있었어요. 좋은 글이란 공감을 불러일으켜야 하고, 그러자면 말하고자 하는 내용이 잘 드러나는 게 좋겠지요. 물론 상투적인 이야기를 선명하게 드러낸다면 별로 공감을 불러일으키지는 못하겠지만. ‘오늘밤 나는 쓸 수 있다’는 좋은 시란 정해진 틀, 기교보다 절실함에서 비롯된다는 의미로 읽히더군요. 자신의 절실한 마음을 담아 한 편의 시를 써 보고 싶게 하는 좋은 글이었어요. 그래서 4월 월 장원은 아니지만 특별히 추천합니다.

원문을 다시 볼까요?

<파블로네루다와 일포스티노>오늘밤 나는 쓸 수 있다
<「스무편의 사랑의 시와 한 편의 절망의 노래」- 파블로 네루다>
<「일 포스티노」- 마이클 래드포드>

오늘밤 나는 쓸 수 있다

해독

파블로 네루다를 처음 만난 것은 그의 시를 통해서가 아니라 다른 시인을 통해서였다. 내가 열일곱살 때 외우기도 하고 필사하기도 했던, 문정희 시인의 「오늘밤 나는 쓸 수 있다」는 파블로 네루다 시의 제목을 그대로 빌려왔고, 그 시의 연장선 상에서 쓰여진 시였다. 이 시의 제목 밑에는 '파블로 네루다 풍으로'라는 부제가 달려 있다. 시인들이 다른 시에 대한 답시나, 어떤 다른 장르의 작품을 모티프로 시를 쓰는 경우는 많았지만, 어떤 시인의 '풍'으로 쓰는 건 그 때나 지금이나 「오늘밤 나는 쓸 수 있다」뿐이었다.

그가 내 나이 때 썼다는 「스무편의 사랑의 시와 한 편의 절망의 노래」를 읽으면서 내 친구들이나, 그와 비슷한 연령대의 아이들이 쓰는 시들과는 정말 다르다고 느꼈다. 그 다름이나라는 건, 거침이 없다는 것이다. 「한 여자의 육체」에서 '야만인이며 시골 사람인 내 몸은 너를 파고 들어가고/땅 밑에서 아들 하나 뛰어오르게 한다./…/허나 인제 복수의 시간이 왔고, 나는 너를 사랑한다/피부의 육체, 이끼의 단호한 육체와 갈증나는 밀크!'와 같은 시를 들고 합평을 하게 된다면, 화자가 감정 조절을 못했다, '사랑'이라는 큰 관념을 넣어 밀도가 떨어진다 등의 평을 들을 것이다. 그만큼 시작법에 대해서, 시를 쓰는 방법론에 대해서 익숙한 나였기 때문에 파블로 네루다의 이 시집은 그러한 방법론들을 전부 무너뜨렸다.

파블로 네루다가 열 살 때부터 시를 쓰기 시작했다고 나와 있는데, 그러한 정보가 파블로 네루다의 비범함을 이야기 해주는 것처럼 읽혔다. 그가 열 살 때부터 시를 썼다는 것은 말을 배우고 쓰기 시작했을 무렵부터라는 것인데, 그것은 그가 비범하다기 보다도 시를 쓰는 게 너무나 평범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우리나라에서는 시를 쓰려면 자격증처럼 등단을 해야하고, 어떤 기관을 통해 인정을 받아야 한다. 이러한 절차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시가 가지 못하게 맞는 통행금지 같이 느껴진다.

고등학교에 처음 입학해서 문정희 시인의 시 「오늘밤 나는 쓸 수 있다」를 읽으면서 이렇게 시를 써도 되나?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그 때부터 내게는 어떤 식으로 쓰는 게 '시'다, 라는 개념이 자리 잡고 있었다. 이제는 그 방법론이 내게 오는 시들을 하나 하나 죽여나갔다는 걸 부정할 수가 없다. 무언가를 쓰려고 할 때면 칼처럼 벼려진 나의 틀들이 시를 제단하기 시작했다. 그렇기에 영화「일 포스티노」에 나오는 우편 배달부의 질문을 나도 한 적이 있다.

"어떻게 하면 시인이 될 수 있나요?"

파블로 네루다가 시는 메타포(은유)라고 말했을 때, 나는 우리나라 어떤 시인의 강의를 떠올렸다. 그 시인은 상징을 쓰는 방법 10가지를 알려줬다. 상징은 A와 B 사이의 공통분모 같은 것이고, 반복은 상징을 만드는 효과를 낳기도 한다는 식이었다. 마리오에 대한 파블로 네루다의 대답은 이것에 비하면 굉장히 모호하다.

"해변을 따라 천천히 걸으면서 주위를 감상해보게."
"그러면 은유를 쓰게 되나요?"
"틀림없을 거야."

마리오가 시인이 되려는 것은 베아트리체에 대한 자신의 마음을 전하고 싶어서 였다. 베아트리체에게 전하고 싶은 '사랑'이라는 감정을 자신만의 말로 표현하고 싶은 것이었다. 모든 시는 사랑시라는 말은 결국 무엇에 대한 시를 쓰든 그것에 대한 애정으로부터 비롯되기 때문이지 않을까. 마리오가 파블로 네루다에게 한 다른 질문, "세상이 다 무언가의 메타포라고 생각하세요?"는 질문을 통해 마리오는 모든 일상을 시로 바꾼다. 무엇이 시적이고 시가 될만한 게 아니라 모든 것들이 다 무언가의 은유이게 때문에 세상에는 시가 아닌 게 없게 된다.

파블로 네루다가 그 날 밤 '예컨데 이렇게 쓴다. 밤은 산산이 부서지고/푸른 별들은 멀리고 떨리고 있다."'(「오늘밤 나는 쓸 수 있다」)라고 했던 것처럼 그가 사랑하는 한 여자를 보낼 때 세상은 그의 은유가 된다. 그가 사랑의 감정에 벅차 있을 때는 '내가 욕망할 때 네 속에서 강들이 노래하고/ 내 영혼은 기 속으로 도망친다'고 쓸 수 있다. 무엇이 무언가의 메타포라고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쓰는 사람마다, 그리고 그 사람의 모든 다른 밤들마다 세상은 전혀 다른 세계로 탄생한다.

그러니 시를 쓰는 방법이나 규칙 같은 것은 있을 수가 없다. 시를 쓰고 싶어하는 마음 자체가 마리오처럼 자신의 감정을 '사랑'이라는 말을 그 사람에게 더 잘 보여주고 알려주고 싶음에서 비롯되는 것인데, 그것은 그 사람에게 특별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것만큼 전혀 다른 언어체계를 통해 자신의 마음을 드러내고 싶다는 것이다. 여기에 방법론이 있다면 그 방법론을 지우는 것이다.

문정희 시인이 또다른 「오늘밤 나는 쓸 수 있다」에서 '모든 사랑에는 미래가 없다'고 한 것처럼 시에도 미래가 없다. 쓰는 순간 세상의 모든 배열은 바뀌고 말들은 원래 가지고 있던 의미를 꽉 채워 터지거나 달아난다. 많은 사람들이 밤에 더 많이 무언가를 쓴다. 황인숙의 시에서 밤에 사람들이 졸리운 것은 밤이 혼자있고 싶어하기 때문이라는 시가 있다. 그러한 오늘 밤에 쓰는 시는 모든 규칙이나 말들을 잠재우고 쓰는 꿈꾸는 시, 기꺼이 아프고 싶어하는 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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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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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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