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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주의의 도래

  • 작성자 따뜻한 마음
  • 작성일 2010-07-31
  • 조회수 258

 

자본주의는 민주주의와 함께 현대사회를 지탱하는 사상적인 큰 틀이다. 그리고 후쿠자와 유키치는 현대사회는 ‘이데올로기의 종언’이라고 하여 역사적 마지막 사상체계에 이르렀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난 자본주의가 사상의 마지막 단계라는 말에 전적으로 부정한다. 사회는 공산주의로 나아가게 될 것이다.

혹자는 냉전 시대를 끝으로 공산주의는 막을 내렸다고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냉전시대의 공산주의는 굉장히 불안했고 미성숙했다. 근대의 공산주의는 러시아에서 시작되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당시 러시아는 민주주의도 자본주의도 성숙하지 못했다. 절대군주와 농노제가 아직 남아 있었다고 한다면 더 이상의 설명을 필요치 않을 듯하다. 마르크스는 공산사회를 이런 식으로 정의했다.

「고도로 발달한 생산력을 바탕으로 사람들은 필요에 따라 일하고 필요한 만큼 분배받는다」

여기에서 러시아 공산당이 가지고 있는 숙명적인 한계가 드러난다. 고도로 발달한 생산력을 바탕으로. 산업혁명조차 거치지 못한 러시아에 반영구적인 빈곤을 퇴치할 수 있을 만큼의 생산력이 있을 리 만무하다. 또 한 가지, 세계최초로 산업혁명을 이루어낸 당시의 영국과 현재의 동남아 국가 중 과연 어느 곳이 더 살기 좋을까? 정확한 수치는 알 수 없지만, 후자 쪽이 더 잘 살 것이라는 건 누구나 예상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난 카를 마르크스를 사회과학자보다도 미래학자라고 칭하고 싶다. 그가 살았던 시대는 자본주의도, 민주주의도 성숙하지 못했다. 오히려 지금보다도 더 시간이 지나야 공산주의가 나타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될 텐데 말이다.

마르크스의 공산주의가 대두할 조건으로 피자와 피치자의 대립을 들 수 있겠다. 마르크스는 노동자에 대한 자본가의 착취가 심해지고, 노동자들의 폭력혁명으로 말미암아 공산주의가 도래한다고 했다. (난 마르크스가 여기서 한 가지 실수를 했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뒤에 가서 서술하겠다.)누군가는 계급이론이 한 물간 구시대의 사상이고, 현대사회는 베버의 계층이론을 지지한다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고대 때부터 항상 있었던 계급이론과 달리, 계층이론은 현대에서만 한시적으로 적용되는 사상이며, 내 생각으로는 조만간 그 수명을 다하게 될 것 같다. 그 증거로 중산층의 붕괴를 들 수 있겠다. 중산층의 붕괴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미국, 일본 등 전 세계의 문제다. 중산층의 붕괴원인으로는 정보혁명을 들 수 있겠다. 관료제의 고위급-중간 관리층-말단으로 이루어진 3단 구조가 정보화로 인한 인력감소로 인해 고위급-말단의 2단 구조로 개편된다. 따라서 중간 관리층의 대다수는 아래쪽(피치자)로 내려가고 소수(창의적 인재. 정보사회에서 얼마나 강조하는 말인가!)는 위(치자)로 올라갈 것이다. 어느 쪽이든 중간층은 없어진다. 결국 마르크스의 계급이론이 다시 대두할 것이란 말이다. 중산층이란 결국 지배층의 잔꾀에 의해 만들어진 일시적인 집단일 뿐, 결국 자본가-노동자의 대립이 다시 나타난다. 마르크스의 혁명은 이 상황까지 도달해야 실현할 수 있을 것이다. 마르크스는 폭력혁명을 통해 노동의 가치를 되찾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난 마르크스가 이 부분에서 실수를 했다고 생각한다. 폭력혁명은 결코 성공할 수 없다. 왜냐하면, 인간은 학습의 동물이기 때문이다. 지배층은 산업혁명 당시의 러다이트 운동이 재현되기를 원하지 않는다. 따라서 그들은 무일푼의 피치자에게 빵을 쥐여주고 재미를 선사한다. 여기서 나오는 것이다. 고도로 발달한 생산력. 물질적인 부를 충족시킬 만한 재화가 넘치기 때문에 피치자와 치자 간의 갈등이 필요치 않다. 피치자들은 원하는 것을 손에 넣었으므로 불만이 없다. 치자들 역시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으므로 불만이 없다. 치자들은 피치자들을 통제하기 위한 수단에 의해 스스로 권력의 권좌에서 내려온다. 그들(치자+피치자)은 이제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자율적으로 하고 필요한 만큼 받게 된다.

여기에서 직접민주정치가 필요해진다. 미래의 공산주의는 강력한 중앙집권적 통제가 아니라 무정부주의의 그것처럼 지역적일 것이다. 공산주의의 기본적인 원칙은 국유화다. 하지만 거대공동체(국가)가 생산수단을 가지고 있다면 사람들은 그 생산물이 자신들에게 실익이 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멀리 갈 것 없이 북한만 봐도 알 수 있지 않은가. 따라서 소공동체의 형태로 운영되어야 한다. 그들은 스스로 민회를 조직해 자율적으로 일을 배분하고, 또 스스로 결실을 나눌 것이다.

결국, 공산주의는 마르크스의 주장처럼 혁명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역사의 발전과정을 통해 천천히 완성되어 가는 것이다. 그러나 그 때가 언제가 될지는 신만이 알지 않을까.

  

따뜻한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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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따뜻한 마음
  • 2010-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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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따뜻한 마음
  • 2010-0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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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정하려 했으나.... 만료일이 지나버렸군요 ^^ ㅠㅠㅠㅠㅠ

    • 2010-08-01 23: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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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미있는 글 잘 읽었어요. 나름대로 치밀한 논리를 가지고 있어요. 그런데 가장 중요한 부분을 이해하기 어렵군요. '여기서 나오는 것이다' 이후에 나오는 내용이 핵심일텐데 그 부분을 이해하기 어려워요. 너무 수월하게 갈등이 해소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군요.

    • 2010-08-01 11:5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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