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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의 스펙트럼

  • 작성자 베르네
  • 작성일 2010-10-30
  • 조회수 172

<문학의 스펙트럼>

집현전 학자들의 삶과 문학 세계


서점 가판대에서 ‘베스트셀러’딱지가 붙어 팔려 나가는 책들을 봤을 때, 도서관에서 두 세권의 책을 품고 나왔을  때 문득 섬광과 같은 의문이 들곤 했다.

‘이 책은 어떠한 가치가 있을까?’

사실 한 권의 소설책에 한정된 의문이 아닌 좀 더 본질적인 진리에 대한 물음에 가깝다.

즉, ‘문학이 독자에게 행(行)할 수 있는 최대한의 한계치’가 그러하다.

문학. 사상이나 감정을 언어로 표현한 예술.

문학을 하나의 단어로 보았을 때 풀이되는 뜻이다.  

그러나 문학 안에는 셀 수도 없이 많은 삶과 감정과 사상이 담겨있는 동시에, 문학의 주체 역시 제한할 수없이 광활하므로 그 의미를 한가지로만 정의해놓을 순 없을 것이다.

누군가는 교양을 쌓기 위해서 문학을 ‘이용’할 것이고, 또 다른 누군가는 이를테면 시험문제를 하나라도 더 맞추기 위해서 문학을 ‘학습’할 것이다.

의도와 과정이야 어찌되었든 간에 의문의 실마리에서 가장 염두 해두어야 할 것은 문학은 인간이 삶을 살아가는 그 자체에서부터 비롯된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문학, 그 중에서도 우리나라 문학이라는 대로의 어귀에 15세기 훈민정음과 그 ‘대담’한 역사를 이룩한 세종대왕과 집현전 학사들이 있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임에 분명하다.

‘집현전’하면 흔하게 떠올리는 모습이 있다. 큰 책상에 여럿이 모여 산더미같이 쌓인 책을 연구하는 광경이 그 예이다. 그도 그럴 것이 1443년 조선열도를 들끓게 한 훈민정음 창제의 원천이 곧 그들의 굳어진 하나의 영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집현전학사의 삶과 문학 세계’를 접하게 된 후 집현전에 관한 밝혀지지않은 이야기들을 알게 되었다. '훈민정음은 집현전 학사가 만들지 않았다'.

이는 아직 정확히 밝혀지지않은 가설에 불과하나 충분히 파격적인 논제이다.  

놀랍게도 왕과 궁궐의 모든 기록을 담아놓은 조선왕조실록에서조차 ‘세종대왕이 창제하였다’라는 기록만이 남아있을 뿐, 그 어디에도 집현전학사들의 '공로‘는 보이지 않는다.

실제로 훈민정음창제에 참여한 것은 집현전 학사의 일곱 학자뿐이었다라는 설도 남아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현전이라는 이름이 지금까지 우리에게 이어져오는 것은 한글창제의 중추를 도맡아 했다는 기정사실화뿐만이 아니라 집현전만의 역사의 흐름이 여전히 미약하게나마 역사의 한 귀퉁이에서 전해져 오는 까닭이다.

15세기부터 16세기 성종 대까지 조선 전기 문화와 정치의 광범위한 영향을 끼친 지식인 집단이 우리가 알고 있는 집현전이다. 학식과 인품은 물론이며 당대 최고의 엘리트라 일컫던 집현전은 10년 이상을 활동하며 조선 전반에 많은 학문적 역량을 드러냈다.

특히 문학에 대해 이들은 이미 시대를 넘나드는 남다른 관점을 지니고 있었다. 그들에게 문학은 ‘국정 수행의 주체인 군주와 관료인 자신들에게 수성기의 임무를 스스로 각인, 긍정적인 현재를 유지하기 위해 가져야 할 경계의 자세를 알려주는 지표’였다. 문학은 시대를 통한 역사의 흐름이고 삶의 계보이다. 따라서 이를 통해 긍정적인 현재와 미래까지 유지할 수 있음은 물론이다.

수백 년이 지난 지금, 군주와 관료의 역사적 지표가 되어준 문학은 여전히 현대인의 삶 속에 녹아들어있다. 흔히 ‘책 속에 길이 있다’고 한다.

이는 15세기 집현전학자들에게 와 닿은 고정적 의미의 것과 별 반 다를 것 없는 문학의 본질적 진리임에 분명하다. 문학의 기본은 삶이다. 인간이다.

문학 속에서 펼쳐지는 세상이 어떻든 그것은 곧 우리네의 삶을 투영하는 스펙트럼과 같다. 그로 인해 책 속에서 혜안을 얻어 낼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셀 수 없을 만치 무한한 사상과 감정이 넘나드는 문학 속에서 정형한 한 가지의 길을 찾기는 곧 영원한 미지수이다.

그렇기에 집현전 학사들은 말한다. ‘단절과 대립 논의를 넘어 연속성 또한 논의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하노라고.

문학을 통한 우리 세상의 스펙트럼이 역사 속에서, 사상의 흐름 속에서, 개인의 감정과 그 삶 구석구석에서 발하는 빛은 같을 수야 없다. 그러나 수 백 년 전 집현전학사가 문학에 심어준 가치는 오늘날까지도 이 시대 문학의 궁극적 지요(指要)에 대한 정의를 제시하고 있음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베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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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익명

    먼저 이 글이 ‘『집현전 학자들의 삶과 문학 세계』, 김남이, 태학사’를 읽은 감상글인지, 아니면 자신의 연구 결과를 정리한 글인지 밝히는 게 좋겠어요. 제목 다음에 부제로 달려 있으나 책 제목이라는 의미로 한정할 수가 없군요. 그리고 문학의 스펙트럼이라는 주제가 좀 더 분명하게 드러나도록 정리하는 게 좋겠어요. 후반부에 그런 내용이 언급되지만 근거가 전체적인 맥락에서 보면 부족해요.

    • 2010-11-02 15:02:33
    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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