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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담문학에 대한 지극히 개인적인 정의

  • 작성자 창지자
  • 작성일 2011-10-16
  • 조회수 623

괴담문학에 대한 지극히 개인적인 정의

 괴담이라 함은 예로부터 기이하거나 사람들에게 공포심을 불러일으키는 이야기를 일컫는 말이었다. 그러다가 점차 사람들이 스스로 이야기를 지으면서 괴담은 소설이 되고 문학이 되었다. 그리고 그 이야기들에 인생을 닮고 교훈을 담으며 하나의 예술이 되어갔다. 그리고 그러던 중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에 따라 성격이 달라지고 그 성격들을 모은 경향들이 형성되었는데, 현대에 들어와서는 판타지 같은 장르문학의 한 축에 지나지 않았던, 오래전 괴담이라 불렀던 이야기들이 문학의 하나의 형식으로 장르문학들 사이에서 나타났고 사람들은 그것을 괴담문학이라고 부른다.

 괴담문 학. 많은 사람들이 그저 판타지 혹은 미스터리, 스릴러 라고 부르는 장르. 하지만 좀 더 자세하게 들여다보면 일반적으로 부르는 판타지와 미스터리, 스릴러와는 다른 특징들을 찾아볼 수 있고, 그것은 곧 괴담문학이라는 하나의 경향을 말할 수 있는 증거 같은 것이 된다.

 그래서 괴담문학을 개인적으로 정의해볼까 한다.

 

 괴담문학의 정의 첫 번째: 세계관

 괴 담문학의 세계관은 보통은 일원론적 세계관이나 이원론적 세계관을 기본 모토로 삼는다. 그래서 보통 일원론적 세계관의 작품들에서는 지금 우리가 사는 세계가 소설의 주 무대가 되고, 이원론적 세계관의 작품들에서는 그런 우리의 세계의 뒷면에 우리가 모르는 세계가 있다는 설정으로 세계관을 형성하는 작품들을 많이 볼 수 있다.

 그리고 이원론적 세계관을 가진 작품에서는 우리가 사는 세계가 주된 앞면의 세계라 할 때, 뒷면의 세계는 앞면의 세계에 그 어떠한 영향을 미치지 않거나 공존의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또 앞면의 세계의 주민들은 뒷면의 세계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지 못하며, 그 존재는 앞면세계의 아주 소수의 사람들만 알고 있어야 한다. 따라서 뒷면의 세계가 앞면의 세계의 주민들의 앞에 대놓고 나와 앞면의 세계에 영향을 물리적인 영향을 준다면, 그 작품은 괴담문학이라 정의 할 수 없고 판타지 같은 큰 범위의 장르문학으로 분류된다.

 대표적인 일원론적 세계관을 가진 작품으로는 오트슨 작가의 '괴담갑' 그리고 진산 작가의 '바리전쟁', 니시오 이신의 '바케모노가타리(국내명:괴물이야기)' 등이 있고, 이원론적 세계관을 가진 작품으로는 김주영 작가의 '이카루즈', 나스 키노코의 '공의 경계'  하세가와 케이스케의'사신의 발라드' 등이 있다.

 그리고 괴담문학 정의 두 번째: 사건

 괴담문학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작품의 내용의 주요 뼈대가 되는 사건에 있다. 그리고 세계관은 그런 사건이 발생하게 되는 중요한 무대장치로 작용한다.

  괴담문학이라 불리는 작품들은 보통 중단편의 에피소드로 기반한 연작이 많다. 김주영 작가의 '이카루즈' 나스 키노코의 '공의 경계' 오트슨 작가의 '괴담갑' 같은 경우도 단편들을 모은 연작 형태를 뛴 작품들인데, 괴담문학이 이처럼 중단편을 기반으로 한 이야기가 많은 이유 중 하나가 사건에 있기 때문인데, 이유는 괴담문학의 주요한 전개 방식이 어떤 개인이 신비한 일에 연류되거나 사건을 의뢰받아 사건을 해결한다는 형식이 많기 때문이고, 그 내용의 대다수가 일상에서의 비일상이면서 지극히 개인적인 사건들 많이 다루기 때문이다. 그래서 많은 괴담문학 작품들에서는 세계정복이라느니 세계멸망이라느니 하는 아주 거대한? 야망을 품은 악당들을 찾아볼 수 없고 개인적인 원한 혹은 개인적인 연구목적 달성이나 위험한 물건이나 인물에 대한 보호, 어떤 건물의 기이한 현상의 해결 같은 것이 주된 사건들이다.

 이해를 돕기 위해 한 가지 예를 든다면 김주영 작가의 '이카루즈'의 2권의 에피소드 중에서 주인공 이카에게 용궁의 용왕의 병을 낫게 하기 위해 진상되어야 하는 토끼의 간을 중간에 누가 몰래 빼돌렸으니 되찾아 달라해서 그것을 되찾으러 주인공이 나서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처럼 괴담문학은 아주 지극히 개인적인 사건들을 다룬다.

 하 지만 간혹 한 에피소드에 정체모를 거대한 음모조직이 등장하지만, 대부분의 괴담문학에서 그들과의 전면전 보다는 아주 소규모 충돌이 일어나고, 그 충돌은 앞면의 세계의 사람들은 모르게 진행된다. 그러나 그 충돌은 조금씩 앞면의 세계의 사람들에게 노출되나, 뒷면의 세계와 그 충돌을 알고 있는 소수의 사람들에 의해서 그 충돌로 인한 물리적 피해가 다른 이유 때문에 그렇게 되었다고 앞면의 세계의 주민들을 속인다.

 그렇다면 '해리포터와 나니아연대기'처럼 이원론적이고 앞면의 세계에 해당하는 유럽의 국가들의 사람들이 '해리포터'의 마법세계, '나니아연대기'의 나니아에 대한 존재를 알지 못하는데, 해리포터와 나니아연대기도 괴담문학에 속하는가? 라는 의문이 들 것인데, 엄밀히 말해 '해리포터'와 '나니아연대기'는 괴담문학이 아닌 판타지문학에 속한다. 그 이유는 '해리포터'와 '나니아연대기'는 이원론적이고 사건도 앞면의 세계의 주민들이 모르게 일어나지만, 괴담문학의 주요한 사건은 앞면의 세계에서 일상 속의 비일상의 사건들이 일어나야지만 괴담문학이라 정의할 수 있다.

 괴담문학의 정의 세 번째: 등장인물 수.

 괴 담문학은 다른 경향의 문학들과는 다르게 등장인물들의 수가 비교적 적게 등장한다. 장편이 되었을 때는 인물 수가 많아질 수 있을지는 모르나, 사건들이 지극히 개인적인 일들을 많이 다루는 경향의 문학이기 때문에 대게 한 에피소드당 주인공과 조연을 제외한 중심인물은 약1~3명 정도고, 보통은 한 에피소드에서 한 명 내지 두 명 정도다. 물론 한 작품의 등장인물 수를 고려한다면 중심인물은 많아진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판타지문학 같은 연작소설을 기본으로 하는 옴니버스식 소설이 주가 되는 괴담문학에서의 등장인물의 수에서 차이가 나고, 이것은 장르문학이라는 큰 범위의 소설들과의 아주 큰 차이점으로 작용한다.

 
 이 처럼 위의 세 개의 정의가 장르문학들 중에서도 괴담문학이라 부를 수 있는 정의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지만, 이것은 아주 지극히 개인적인 정의이고, 괴담문학이라는 것이 여러 장르들에 걸쳐 분포하는 하나의 문학적 경향이기 때문에 판단의 근거가 되기에는 많이 부족하다. 그러나 괴담문학들이 아주 지극히 개인적인 사건과 일상 속의 비일상을 다룬다는 사실만은 분명하다는 점을 꼭 기억했으면 한다.

창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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