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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정, 한 정 해학의 눈으로

  • 작성자 너스레쟁이
  • 작성일 2012-06-03
  • 조회수 1,692

김유정, 한 정 해학의 눈으로

1. 현대 문학을 돌아보며 김유정을 확인하다.

  21세기는 정보사회이다. 정보와 통신의 발달을 통해 거리와 시간의 개념이 무색해 질 정도로 지구는 서로 가까워졌다. 지구 반대편에서 발생한 일을 고작 몇 분 후에 어디서든 생생히 전해들을 수 있으며 미국 타임스퀘어에서 팔리는 햄버거가 한국 골목길에서 버젓이 팔리고 있고 한국에서 발표된 신곡이 하루 만에 스페인으로 퍼져 직접 따라 부르는 소녀의 영상이 인터넷에 올라온다.

  이로 인해 세계는 빠르게 동질화 되는 경향이다. 60년 전만 해도 상상도 못할 서구식 헤어스타일이 오늘날에는 문제가 되지 않는데다가 공식적인 자리에서 서양의 정장(양복)을 입지 않으면 결례가 될 수 있다.

  이러한 흐름은 문학에도 지배적인 영향을 끼쳤다. 인간의 삶과 감정 그리고 사상을 그려내는 것이 문학인만큼, 빠른 속도로 동질화 되어가는 세계가 문학에 반영됐다는 뜻이다. 구체적으로 다른 문화권, 가령 서양에서 창작된 문학작품이라 할지라도 우리가 그것을 받아들이고 이해하는데 별다른 무리가 따르지 않는다. 우리가 일상에서 서양문화를 쉴 세 없이 접하고 있으며 그들의 사상과 종교를 많이 이해한 ‘(동질화 되어가는)현대’가 문학을 이해하는데 큰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대 문학’은 전 세계적으로 공통적인 양상을 보이고 있다. 전통사회가 붕괴되고 도시화 되어가는 사회에서 방황하는 인간, 진정한 자아와 내면 그리고 개성을 탐구하는 인간, 자본주의 체제에서 살아가는 인간 등이 대표적이다.

  그렇다고 해서 지구상의 모든 문학이 동일하다고 말 할 수 없다. 왜냐하면 각 문화권, 한 국가, 심지어 좁은 지역이 지니고 있는 역사와 전통 등이 각각 다르기 때문이다. 주로 아시아에는 불교와 도교와 유교가, 서양에는 크리스트교가, 중동에는 이슬람교가 자리 잡고 있는 것과 같이, 그러한 역사와 전통(혹은 종교) 등이 해당 권역에서 자라난 개인의 인식에 바탕을 이루기 마련이다. 간단히 말해서 유교의 영향을 받은 아시아 국가의 사람들은 높은 사람에게 고개 숙여 인사하고 높임말을 쓰는 것이 당연한 반면 서양 사람들은 (그들의 말에 뉘앙스에서 차이가 있다고 할지라도, 유교의 영향을 받은 사람들과 비교한다면)그렇지 않다. 또 서양 사람들은 크리스트교의 영향을 받아 자연 정복적인 성향을 보이지만 도교의 영향을 받은 아시아 국가의 사람들은 자연과의 합일을 지향한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문학은 세계를 반영한다. 이는 곧, 현대 사회가 전 세계적으로 동질화 되어간다고 할지라도 각 개인에게 인식의 뿌리가 되는, 역사와 전통 등에서 비롯한 감정이나 사상을 문학이 무시할 수 없다. 따라서 우리는 ‘현대 문학’이라는 거대한 범주를 현대의 아시아 문학, 현대의 서양 문학, 현대의 이슬람 문학, 현대의 아프리카 문학 등으로 분류할 수 있다. 다시 현대의 아시아 문학을 현대의 한국 문학, 현대의 일본 문학, 현대의 중국 문학, 현대의 서양문학을 현대의 프랑스 문학, 현대의 영국 문학 등으로 분류할 수 있다. (‘현대의 OO 문학’이라 하여 각 문학의 보편성을 중심에 놓았다.)

  그렇다면 이렇게 넓은 ‘현대 문학’에서 ‘현대의 한국 문학’은 어떠한가? 동질화 되어 가는 현대의 추세에서 현대의 한국문학에 반영된 한국인의 정서는 무엇인가? 대부분이 이러한 생각을 해 본 경험이 딱히 없을 것이다. 오히려 서양 문화에 동질화되어 가는 현실 속에서 그들의 문화들로부터 압도당하기도 하고, 무비판적으로 모방하는 것이 당연한 상황인 듯싶기도 하다. 고등학교 문학 교과서에 나오는 현대의 한국 문학작품은 지루하고 고리타분한 것으로 치부한 체, 프랑스의 모파상, 미국의 O. 헨리, 독일의 헤르만 헤세 등만 존경하는, 비조화적인 생각을 하는 친구들을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혹시 우리는 저도 모르는 사이에, 어느 문학의 한 요소로 흡수되고 있는 건 아닐까?

  이러한 시점에서 우리는 우리 문학에서 ‘우리 고유의 것’을 찾고 지키는 자세가 필요하다. 따라서 필자는, 앞으로 살펴 볼 김유정이라는 작가를 한국의 고유 정서인 ‘한’, ‘정’, ‘해학’의 시선으로 바라봤다. 김유정의 작품에서 드러나는 (서론에서 김유정 문학을 단정 짓는 것은 거북스러워 보이지만) 짙은 고유 정서는 한국 문학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근간으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이 글에서는 김유정 작가에 대하여 알아보고 있지만, 김유정을 비롯한 대표적 한국 작가의 작품을 통해 우리의 정서를 찾고, 지켜나가는 것은 현대의 한국 문학이 우리에게 던지는 숙제임을 인식해야한다. 나아가 ‘한국’에 국한 시킬 것이 아니라 세계적인 반열에 올려 한국 문학이 지닌 생명력을 확인 받는 작업이 필요할 것이다.

2. 김유정의 생애.

  1908년 음력 1월 11일 김춘식과 청송 심씨의 2남 6녀 중 7번째 차남으로 태어났다. 김유정은 어린 시절 유복하게 자랐다. 아버지 김춘식은 춘천부 남내이작면 증리(지금의 춘천시 신동면 증리) 실레마을의 천석을 웃도는 지주였다. 서울의 진골(종로구 운니동)에 백여 칸이나 되는 집을 가지고 있었을 정도다.

  하지만 김유정에게 불행이 찾아온다. 1915년, 그의 나이 7살로 어머니가 돌아가신다. 또한 2년 뒤인 1917년 아버지가 돌아가시는데, 그 후 형인 유근이 방탕한 생활로 재산이 탕진되기 시작한다. 그리하여 가세가 기울어 1923년을 전후로 관철동, 숭인동, 관훈동, 청진동 등으로 집을 줄여서 옮겨 다니게 된다. 게다가 1928년에는 형 유근이 가산을 모두 탕진해 춘천 실레 마을로 내려가게 되고 유정은 봉익동 삼촌댁에 얹혀 지내게 된다.

  어려운 집안 상황에 영향을 받아 학습능력이 떨어졌는지는 몰라도, 김유정은 말더듬이 교정소에 다니게 되고 1926년 휘문고보 4학년으로 진급하지 못하고 낙제하기도 한다.

시간이 지나 1929년, 휘문고보를 다니던 김유정에게 큰 시련이 닥쳐온다. 당시 유명한 기생이자 명창인 박녹주에게 푹 빠져버린 것이다. 김유정은 박녹주에게 2년에 걸친 광적인 구애를 시작했다. 하루도 빠짐없이 연애편지를 보냈다고 하는데 그 양이 수 없이 많았다고 한다. 그러한 편지는 상당히 노골적이었으며, 협박적이었다.

“당신이 무슨 상감이나 된 듯이 그렇게 고고한 척하는 거요. 보료 위에 버티고 앉아서 나를 마치 어린애 취급한 것을 생각하면 지금도 분하오, 그러나 나는 끝까지 당신을 사랑할 것이오. 당신이 이 사랑을 버린다면 내 손에 죽을 줄 아시오.”

“엊저녁에는 네가 천향원으로 간 것을 보고 문 앞에서 기다렸으나 나오지 않았다. 만일 그때 너를 만났다면 나는 너를 죽였을 것이다. 그러나 좋아하지 마라. 단 며칠 목숨이 연장될 따름이니까.”

  이러한 편지는 심지어 혈서로 쓰여 지기도 했다. 하지만 4살 연하고, 누군지도 모르는 유정을 박녹주가 받아 줄 리 없었으며, 이런 식으로 구애하는 유정을 박녹주가 이해 할리 없었다. (참고로 유정은 그 해에 치질을 앓기 시작하여 고생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1930년에는 매형 정씨(유형의 두 번째 남편)의 부추김을 받고 유산 상속 문제로 형 유근을 고발했지만 취하 당했고, 같은 해에 늑막염이 발병했다.)

  그의 나이 23세에 박녹주에 대하여 끝내 단념하고 춘천으로 내려간다. 들병이들과 어울려 무절제하게 생활하다가 춘천 실레마을에서 야학당을 열어 계몽 운동에 나섰다. 1933년에는 서울로 올라가 누이 유형에게 얹혀 지냈다. 그때 유형으로부터 많은 학대와 수모를 받았다고 한다. 그 당시에 여러 소설을 썼지만 그로 벌어들인 돈은 자신의 약값을 감당하기도 어려웠으며 그런 상황에 설상가상 폐결핵이 발병하게 된다.

  1934년 매형이 사직동 집을 처분하여 혜화동 개천가에 셋방을 얻어 누이는 밥장사를 했고 유정은 창작에 전념했다.

  1935년 그의 나이 27세로 소설 『소낙비』를 통해 조선일보 신춘문예 현상모집에서 1등으로 당선됐다. 또 『노다지』가 조선중앙일보 신춘문예 현상모집에서 가작으로 입선했고, 『금따는 콩밧』, 『떡』, 『산골』, 『만무방』, 『솟』, 『봄봄』, 『안해』과 수필 여러 편을 발표했으며 구인회에 후기 동인으로 가입했다.

  1936년 폐결핵과 치질이 악화됐다. 서울 정릉 골짜기의 암자, 신당동에서 셋방살이하는 형수 댁 등을 비롯해 여러 곳을 전전하며 투병했다. 박봉자라는 여인을 만나 열렬히 구애했으나 거절당했다. 이때 『심청』, 『가을』, 『두꺼비』, 『동백꽃』 등을 발표했다.

  1937년, 그의 나이 고작 27세로 3월 29일에 세상을 떠난다.

3. 한(恨), 민족정서와 김유정 자신.

  한(恨)이란 몹시 원망스럽고 억울하거나 안타깝고 슬퍼 응어리진 마음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의 작품에는 이러한 정서가 많이 묻어난다. (특히 향토적인 배경과 소재를 통해 드러나는 경우가 많다.) 그 중에는 고전시가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는 여인의 정서도 있으며, 당시 상황을 반영하여 가난 앞에 무너지는 인간, 그리고 그의 소설과 수필에 직접적으로 들어나는 ‘아리랑’, 마지막으로 김유정 자신의 여인에 대한 사무친 ‘한’이 있다.

3-1. 임을 잃은 슬픔.

  한국 고전 문학사를 돌아보면 민요 ‘아리랑’을 비롯해 시가와 소설에서 ‘임을 잃은 슬픔’을 나타내는 작품들이 많다. 한역가의 『공무도하가』, 고려 속요의 『가시리』, 고려 가요의 『서경별곡』와 『동동』 등, 그 비중이 무척 크다. 특히 방금 언급한 작품들은 같은 주제를 노래한 작품들 중에서 오래된 작품으로, 그러한 정서가 우리 민족의 마음 깊이 뿌리를 잡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한 정서와 주제는 김유정의 작품에도 어김없이 드러난다.

이제야 후회나노니 도련님 공부하러 서울로 떠나실 때 저두 간다구 왜 좀 더 붙들고 느러지지 못했던가, 생각하면 할수록 가슴만 미여질 느릇이다. 그러나 마님의 눈물 기어 자그만 보따리를 옆에 끼고 산속으로 이십리나 넘어 따라갔던 이뿐이가 아니었던가. 과연 이뿐이는 산등을 질러갔고 으슥한 고개마루에서 기다리고 섰다가 넘어오시는 도련님의 손목을 꼭 붙잡고 “난 안데려가지유!”하고 애원 못한것도 아니니 공연스리 눈물부터 앞을 가렸고 도련님이 놀라며 “너 왜오니? 여름에 꼭 온다니까 어여 들어가라”하고 역정을 내심에는 고만 두려웠으나 그래도 날데려 가라구 그몸에 매여 달리니 도련님은 얼마를 벙벙히 그냥 섰다가 울지마라 이뿐아 내 서울가 자리나잡거던 널 데려가마“ 하고 등을 두다리며 달래일제 만일 이말에 이뿐이가 솔깃하야 꼭 고지뜯지만 않었드런들 도련님의 그손을 안타까히 놓치는 않었든걸—

(중략)

참인지 아닌지 자세히는 모르나 멀리 나라온 풍설을 들어보면 도련님은 서울 가 어여뿐 아씨와 다시 정분이 났다하고 그뿐만도 오히려 좋으리마는 댁의 마님은 마님대로 늙은 총각 오래 두면 병 난다하야 상냥한 아가씨만 찾는길이니 대체 이게 웬 셈이지 이뿐이는 골머리가 아팠고 도라지를 캔다고 꼬챙이를 땅에 꾸욱 꽂으니 그대로 집고슨채 해만 점점 부질없이 저므러간다.

- 김유정 『산골』

가시렵니까? 가시렵니까?

나를 버리고 가시렵니까?

나는 어찌 살라하고

나를 버리고 가시렵니까?

잡아 둘 일이지마는

서운하면 아니 오실까 두렵습니다.

서러운 임을 보내 드리오니

가시자마자 곧 돌아서서 오소서

- 작자미상 『가시리』

  위에서 봤듯이 김유정의 작품에서 드러나는 정서는 고전문학 『가시리』에 드러나는 정서와 일맥상통하다. 나아가 ‘도련님’을 기다리던 ‘이뿐이’가 위와 같은 소식을 듣고 탄식하는 모습을 통해 ‘도련님’에 대한 사랑과 기다림이 얼마나 애절했는지 이해할 수 있다.

  김유정의 『산골』은 우리 민족정서인 한(恨) 중에서도 ‘임을 잃은 슬픔’이라는 정서가 잘 드러난 대표적 작품이다. 비록 위의 예시 글에서는 파악하기 힘들지만, 작품 전체를 놓고 볼 때 이뿐이의 천진성이 잘 드러난다. 그러한 인물이 겪는 한(恨) 인 만큼, 독자에게 더욱 간절히 다가온다.

3-2. 가난 앞에 무너지는 인간.

  김유정 문학에서 드러나는 가난은, 착취당하는 소작인의 모습을 비롯하여 가난에 허덕여 매춘을 하는 모습, 들병이 일로 비롯한 고통, 가난이라는 빚을 짊어진 인간 등이 보여 진다. 그리고 그러한 모습은 결코 작가 상상이나 관념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그 당시 우리 민족의 생활상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응오가 이 안해를 차저올때 꼭 삼년간을 머슴을 살엇다. 그처럼 먹고 싶든 술 한잔 못먹엇고 그처럼 침을 삼키든 그개고기 한메 물론 못삿다. 그리고 사경을 밧는대로 꼬꼭 장리를 노핫스니 후일 선채로 썻든것이다. 이러케까지 근사를 모아 어든 게집이련만 단 두해가 못가서 이꼴이 되고말엇다.

(중략)

“성님은 언제나 돈만들 수 잇지유?”

“거안된다. 치성드려 날병이 그냥안낫겟니”

하야여진히 딱떼이고 그러케내뭐래던 애전에 게집다내버리고 날따라나스랫지, 하고

“그래 농군의 살림이란 제목매기라지!”

그러나 아우가 암말업시 몸을 홱 돌리어 집으로 들어갈제 응칠이는 속으로 또 괜은 소리를 햇구나, 하였다.

응오는 도루 안해를 업어다 방에 누엿다. 약은 다 졸앗다. 물이 식기전짜야할것이다. 식기를 기다려 약사발을 입에대어주니 안해는 군말업시 그 구렁이물을 껄덕껄덕 드려마신다.

- 김유정 『만무방』

  김유정의 『만무방』은 해학으로 고통을 극복하는 작가의 대부부분의 소설과 구별되는 작품으로 사회성이 강하다. 이 작품에서는 위의 예시 글에서 알 수 있듯이 아내를 궂은 노력으로 찾아도 가난이라는 상황 때문에 아내가 병들고 치료할 길이 없는 현실이 그려지고 있다. 이 작품을 전체적으로 볼 때, 땀 흘려 농사를 짓고 죄다 지주에게 갖다 바쳐야하는 상황에서 자신이 지은 작물을 자신이 훔쳐야하는 아이러니컬한 이야기가 전개된다. 이러한 모습은 당대 현실을 구체적으로 형상화 한 것으로, 김유정 작가가 불합리한 사회상을 어떻게 바라봤는지, 그의 시선을 잘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가난 앞에 무너지는 인간은 『만무방』에만 드러나는 것이 아니다.

돈 안드는 소리나 배웠겟지 망할년 아까운 담배를 곧 뛰어나갈려다 뒤도 급하거니와 요즘 똘똘이가 감기로 알는다. 년이 밤낮 들처업고 야학으로 돌아치더니 그예 그꼴을 만들었다. 오라질 년, 남의 아드을 중한 줄을 모르고. 들병이 하다가 이것 행실 버리겟다. 망할 년이 하는 소리가 들병이가 될랴면 소리도 소리려니와 담배도 먹을줄알고 술도 마실줄 알고 사람도 주무를줄 알고 이래야 쓴다나.

(중략)

이런 기맥을 알고 년을 농낙해먹은 놈이 요아래 사는 뭉태놈이다. 놈도 더러운 놈이다. 우리 마누라의 이 낯짝에 몸이 닳엇다면 그만함 다 얼짜지. 어디 계집이 없어서 그걸 손을 대구, 망할 자식두. 놈이 와서 섣달대목이니 술 어더 먹으러 가자고 년을 꼬였구나. 조금 있으면 내가 올테니까 안된다해도 오기전에 잠간만, 하고 손을 내끌었다. 들병이로 나갈랴면 우선 술파는 경험도 해봐야 하니까, 하는 바람에 년이 솔깃해서 덜렁덜렁 따라섯겠지.

-김유정 『안해』

  <안해>라는 작품에는 들병이로 살아가는 부부의 모습이 그려진다. 그런데 그러한 모습이 안타깝다. ‘아내’는 들병이 일을 잘하기 위해 주변에 있는 야학 담장 넘어서(직접 야학에서 수업을 듣지 않고 담장 넘어서 들리는 소리로) 소리를 배운다. 부부의 아들인 똘똘이를 혼자 두고 다닐 수 없어서 아내는 똘똘이를 업은 체 야학에 간다. 그런 탓에 똘똘이가 병에 걸린 것이다. 들병이의 일을 위한 행동이 아들에게 ‘병’으로 다가온다.

  더군다나 ‘망할 년이 하는 소리가 들병이가 될랴면 소리도 소리려니와 담배도 먹을줄알고 술도 마실줄 알고 사람도 주무를줄 알고 이래야 쓴다나.’에서 알 수 있듯이 생계를 위한 들병이 일로, 그들이 해야만 하는 것들은 비참하다. 또한 중략 아랫부분은 ‘나’가 ‘들병이 일을 위한 것’이라는 뭉태의 핑계로 뭉태에게 농락당하는 아내의 모습을 목격하게 된다. 결국 그들은 ‘가난’이라는 무시무시한 괴물 앞에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가난 때문에 무너지는 인간의 모습은 그의 작품 많은 곳에서 찾을 수 있다.

실업시 고마운 비 때문에 발악도못치고 앙살도 못피고무릅압헤고븐고븐 느러저 잇는 게집을 대견히 바라보며 빙끗이 얼러보앗다. 게집은 왼몸에 진땀이 쭉 흐르는것이 꽤 더운 모양이다. 벽에 걸린 쇠돌어멈의 적삼을 끄내어 게집의몸을 말쑥하게 훌딱기 시작한다. 발끗서부터 얼골까지—

(중략)

하지만 게집이 참다참다 이내 무안에 못이기어 일어나 치마를 입을랴하니 그는 역정을 벌컥 내이엇다. 옷을 빼서서 구석으로 동댕이를 치고는 다시 드자리에 끌어안첫다.

(중략)

춘호처가 그집을 나선것은 들어간지 약 한시간만이엇다. 비는 여전히 쭉쭉 나린다. 그는 진땀을 잇는대로 흠뻑 쏫고나왔다. 그러나 의외로 아니 천행으로 오늘일은 성공이엇다. 그는 몸을 소치며 생긋하였다. 그런 모욕과 수치는 난생 처음 당하는 봉변으로 지랄중에도 몹쓸지랄이엇으나 성공은 성공이엇다. 복을 받을려면 반듯이 고생이 따르는법이니 이까짓거야 골백번 당한대도 남편에게 매나안맛고 의조케 살수만잇다면 그는 사양치안흘 것이다. 리주사를 하눌가티 은인가티 여겻다. 남편에게 부쳐먹을 농토를 줄테니 자기의 첩이되라는 그말도 죄송하엿스나 더욱이 돈이원을 줄께니 내일이맘때 쇠돌네집으로 넌즛이 만나자는 그말은 무엇보다도 고마웟고 벅찬 짐이나 풀은듯 마음이 홀가분하엿다. 다만 애키는것은 자기의 행실이 만약 남편에게 발각되는 나절에는 대매에 마저 죽을것이다.

- 김유정 『소낙비』

  작품에서 ‘춘호처’는 ‘리주사’에게 알몸을 보여주며 농락당한다. 그 이유는 돈 때문이다. 『소낙비』 앞부분을 보면 남편이 돈을 구해오라고 악을 쓴다. 비록 춘호처가 리주사에게 이러한 대우를 받을지는 몰랐었지만 그 결과, 그녀의 심리는 의외다. 춘호처는 리주사의 행위에 ‘성공’, ‘복’ ‘행운’, ‘다행’, ‘마음이 홀가분’ ‘은인 중에 은인’ 등이라 말한다.

  김유정의 작품 중 『金 따는 콩밭』 역시 짚고 넘어갈 만하다.

“인젠 꾸온 양식도 다 먹엇는데—”

“새벽에 산제를 좀 지낼턴데 한번만 더 꿰와”

남의말에는 대답없고 유하에 흘개늦은 소리뿐 그리고 들어누은채 눈을 지긋이 감아버린다.

“죽거리두 없는데 산제는 무슨—”

“듣기싫여 요망맞은 년 같으니”

이호통에 안해는 고만 멈씰하엿다. 요즘 와서는 무턱대고 공연스리 골만내는 남편이 역 딱하엿다. 환장을 하는지 밤잠도 아니자고 소리만 뻑뻑지르며 덤벼들랴고 든다. 심지어 어린것이 좀울어도 이자식 갖다 내꾼지라고 북새를 피는 것이다.

- 김유정 『金 따는 콩밧』

 

  가난이라는 절박한 상황에서 농민은 농사를 뒷전으로 하고 난데없이(금을 찾으러 가자는 말에 어느 정도 거부감을 드러냈고 어쩌다 보니 꼬임에 넘어가긴 했으나) 금줄을 찾기에 전력한다. 금을 찾을 수 있다는 ‘거짓 희망’에 말투가 점점 거칠어지며, 심지어 자신의 아들을 ‘내꾼지라고 북새를 피우기도’ 한다. 결국 그들의 콩밭마저 전부 해치고야 마는 모습은 우리에게 생각하게 하는 바가 크다.

  이를 통해 당시의 가난이 얼마나 위협적이었는지, 또 가난한 인간이 어떻게 변해가야만 했는지 확인 할 수 있다. 가난이 인간을 압도하고 지배한 것이다. 김유정 작가는 이러한 현실을 정확히 포착하고 있다.

4-3. 아리랑

  ‘한’을 노래하는 대표적인 민요가 바로 ‘아리랑’이다. 그런데 김유정의 작품을 살펴보면 아리랑이 눈에 띄게 자주 등장한다.

우선 내가 무릎장단을 치며 아리랑타령을 한번 부르는구나.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춘천아 봉의산아 잘있거라, 신영강 배타면 하직이라. 산골의 계집이면 강원도 아리랑쯤은 곧 잘 하련만 년은 그것도 못배웠다. 그러니 쉬운 아리랑부터 시작 할밖에.

- 김유정 『안해』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띄여라 노다가세

증긔차는 가자고 왼고동 트는데

정든님 품안고 낙누낙누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띄여라 노다가세

낼갈지 모래갈지 내모르는데

옥씨기 강낭이는 심어뭐하리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띄여라

(중략)

그래도 즈이 따는 무어 농사좀 지엇답시고 약을 복복쓰며 잘두 떠들어 대인다. 허지만 그런 중에도 어듸인가형언치 못할 쓸쓸함이 떠돌지안는 것도 아니다.

- 김유정 『만무방』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띠어라 노다가게

강원도 금강산 일만이천봉,

팔만구암자, 재재봉봉에

아들 딸 날라고 백일기도두 말게우,

타관객리 나슨 손님을 괄세두마라.

- 김유정 『江原道 女性(강원도 여성)』

『안해』와 『만무방』은 3-2에서도 확인했지만, 이야기 속 인물들이 처한 상황은 무척 한스럽다. 그런 상황에 인물들이 부르는 아리랑은 인물들의 정서를 확인 할 수 있는 매개체가 된다.

(참고로, 江原道 女性(강원도 여성)은 김유정의 수필로, 그는 글에서 ‘그렇게 아련하고 정다운’이라 말하고 있다.)

3-4. 김유정 자신, 여인에 대한 상처.

  김유정 작가는 주로 자전적 소설을 많이 섰다. 그의 작품과 생애를 일일이 비교하면 이야기 속 사건들이 실제 김유정이 겪은 일과 일치하는 경우가 많다. 『두꺼비』에서 박녹주에게 구애하는 모습, 『따라지』에서 누님에게 구박 받는 모습 등이 그러하다.

  김유정은 박녹주에게 광적인 구애를 해봐도 수가 없는 자신(혹은 박녹주라는 여인으로 미쳐가는 자신), 그리고 누님에게 구박받는 자신을 바라보며 한심함을 느꼈을 것이다. 그러므로 필자는 김유정 자신의 모습이 드러나는 작품에 ‘두꺼비’와 ‘따라지’ 같은 제목을 붙였지 않았을까, 한다. 두꺼비에서는 결국 거절당할 것을 뻔히 알면서, 어쩌면 그런 것을 짐작했기에 더욱 광적인 구애를 한, 투박하고 둔한 자신의 모습을 비유한 ‘두꺼비’, 그리고 경제적으로 독립하지 못하고 병에 걸려 시름시름 앓는데다가 소설을 쓴다고 해봤자 자신의 약값도 제대로 못하는 자신의 모습에서 ‘따라지’라는 제목을 붙이지 않았을까?

  그러한 김유정의 아픔은 자신의 작품에서 보상 받으려는, 자기 위로적인 모습을 보인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특히, 누님에게 구박받는 자신의 모습이 드러난 ‘따라지’라는 작품이 자기 위로적인 이야기로 흘러가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아끼꼬는 남모르게 톨스토이를 맘에 두었다. 꿈을 꾸어도 늘 울가망으로 톨스토이가 나타나고 한다. 꼭 바렌치노같이 두 팔을 떡 버리고 하는 소리가 오! 저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이 가슴에 안켜주소서. 그러나 생시에는 이놈의 톨스토이가 아끼꼬의 애타는 속도 모르고 본둥만둥이 아닌가.

(중략)

굵은 소나무 줄기에 등을 비겨대고 먼 하늘만 정신없이 바라보고 섰는 톨스토이다. 아끼고가 그앞을 지나가도 못본척하고 들떠보도 않는다. 약이 올라서 속으로 망할자식 하고 욕도 하야본다. 그러나 낭종 알고 보면 못본척이 아니라 사실 눈 뜨고 못보는것이다. 그렇게 등신같이 한눈을 팔고 섰는 톨스토이다. 이걸 보면 아끼꼬는 여자고보를 중도에 퇴학하든 저의 과거를 연상하고 가엽슨 생각이 든다. 누님에게 얻어먹고 저러구 있는 것이 오작 고생이랴. 그러면 학교때 수신선생이 이야기하든 착하고 바보같다는 그 톨스토이가 과연 저런건지 하고 객쩍은 조바심도 든다.

- 김유정 『따라지』

  여기서 말하는 톨스토이란 ‘김유정’을 뜻한다. 톨스토이가 누님에게 구박당하는 모습이 앞부분에서 그대로 드러나고, 그것이 ‘김유정’이 겪은 실화이기 때문이다. 아끼꼬라는 인물이 실제로 존재하여 이러한 서술이 사실이었는지는 정확히 알려진 것이 없지만, 필자는 이러한 글의 전개는 자기 위로적인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현실에서는 누님에게 얹혀살지만, 소설 속에서 ‘톨스토이’로 나타나는 김유정은 자신을 짝사랑하는 여인을 시니컬하게 무시해 버릴 수 있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게다가 아끼고가 밤마다 꿈꾼다는 장면은 어떤가.

  또한 이 이야기가 전개상 위기까지 가게 되면 집(전셋집 혹은 하숙집으로 생각 할 수 있다.)의 주인인 얼짜가 톨스토이를 쫒아 내려고 하는데, 아끼꼬와 영애라는 두 여인이 이를 격하게 항의한다. 이런 모습에서 톨스토이가 두 여인에게 아낌 받는 이야기로 자신의 여인에 대한 사무친 아픔을 위로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4. 정(情), 한국인 일상의 주된 정서

4-1. 부부간의 정.

남편은 혼자 중얼거리며 바른팔을 들어 이마우로 흐트러진 안해의 머리 칼을 뒤로 씨담어넘긴다. 세상에 귀한것은 자기의안해! 이안해가 만약 업섯단들 자기는 홀로 어떠케 살수 잇섯스려는가! 명색이 남편이며 이날까지 옷한벌 변변히 못해입히고 고생만 짓시킨 그죄가 너머나 큰듯 가슴이 뻐근하였다. 그는 왁살스러운 팔로다 안해의 허리를 꼭 껴안어 자기의압으로 바특이 끌어댕겻다.

(중략)

“아즉 멀엇서유—”

“뭔게 뭔야, 늣젓어—”

“뭘!”

안해는 남편의 말대로 벌서부터 머리를 빗고 안젓으나 온체 달포나 아니가리어 엉크른 머리라 시간이 꽤걸렷다. 그는 호랑이갓튼 남편과 오래간만에 정다운 정을 바꾸어보니 근래에 볼수업는 희색이 얼굴에 떠돌앗다. 어느때에는 맥적게 생글생글 웃어도보앗다.

- 김유정 『소낙비』

  ‘3-2 가난 앞에 무너지는 인간’에서 ‘한’에 대하여 이야기 할 때에 ‘안해’가 ‘남편’에 대한 좋지 않은 감정을 가졌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안해’의 정서는 거기서 머무르지 않는다. 위의 예시는 『소낙비』의 마지막 부분으로, 비록 그들이 가난에 찌들어 벼랑 끝에 몰리는 상황이라 할지라도, 후에 부부가 정분을 나눌 것을 약속하며 즐거워하는 모습에서 독자들은 흐뭇한 웃음을 지을 수 있다. 김유정 문학이 자랑하는 힘이라 할 수 있다.

사실이지 우리는 이래야 정이 보째 쏟아지고 또한 계집을 데리고사는 멋이있다. 손자새끼 낯을 해가지고 마누라 어쩌구 하고 어리광으로 덤비는건 보기만 해도 눈허리가 시질 않겟니.

(중략)

그러나 우리가 원수같이 늘 싸운다고 정이 없느냐 하면 그건 잘못이다. 말이 났으니 말이지 정분치고 우리것만치 찰떡처럼 끈끈한 놈은 다시 없으리라. 미우면 미울수록 싸울수록 잠시를 떨어지기가 아깝도록 정이 착착붙는다. 부부의 정이란 이런겐지 모르나 하여튼 영문모를 찰그머리 정이다. 나뿐 아니라 년도 매를 한참 뚜들겨맞고 나서 가치 자리에 누으면

“내얼굴이 그래도 그렇게 숭업진않지?”하고 정말 잘난듯이 바짝바짝대든다. 그러면 나는 이때 뭐라고 대답해야 옳겟느냐. 하 기가 막혀서 천정을 처다보고 피익 내어버린다.

“이년아! 그게 얼굴이야?”

“얼굴 아니면 가주다닐까—”

“내니깐 이년아! 데리구살지 누가 근디리니 그 낯짝을?”

“뭐, 네얼굴은 얼굴인줄 아니? 불밤송이 같은거, 참, 내니깐 데리구살지—”

(중략)

제 얼굴의 숭이나 좀 본다면 사흘이고 나흘이고 년이 나를 스을슬 피하며 은근히 골릴랴고 든다. 망할 년. 밉다는게 그렇게 진저리가 나면 아주 면삿보를 쓰고 다니지 그래. 년이 능청스러워서 조금만 이뻐ㅅ더라면 나는 얼렁얼렁해 내버리고 돈있는 놈 군서방 해갔으렸다. 게집이 얼굴이 이쁘면 제값 다 하니까. 그렇게 생각하면 년의 낯짝 더러운것이 나에게는 불행중 다행이라안할수 없으리라.

-김유정 『안해』

  부부가 우습게 싸우는 장면이 드러난다. 그러한 싸움은 부부간의 대결구도가 아니다. 그들 사이에 ‘정’을 확인하는 과정이다. 게다가 ‘오히려 안해가 못생겨서 고맙다’는 남편의 마지막 말에서 그들 사이의 정을 깊게 확인할 수 있다.

  김유정 작품에서 드러나는 부부간의 정은 당시 사회를 잘 반영했다. 식민통치가 가혹했던 무렵, 조선시대에 양반 사회에서 정절을 지키는 열녀를 그려내는 것은 당시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부적절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맥락에 김유정은 소박하고 순박한 서민, 혹은 그 이하 계층의 모습을 그리는데 집중했다.

4-2. 이웃 간의 정

“커—, 가을이 되니깐 맛이행결 낫군—”

그는 주먹으로 입가를 쓱쓱훔친다음 송이꾸림에서 세 개를 뽑는다. 그리고 그걸 갈퀴가티 마른 주막할머니 손에내어주며

“엣수, 송이나 잡숫게유—”

하고 술갑을 치럿으나

“아이 송이두 고놈참”

간사를 피는것이 좀 시쁜모양이다. 제따는 한 개에 삼전식치드라도 구전박게 안되니깐—

응칠이는 슬몃이 화가 나서 그얼굴을 유심히 들여다보앗다. 움푹들어간 볼때기에 저건또왜저리 멋업시 불거젓는지 툭 나온 광대뼈하구 치마알로 남실거리는 발가락은 자칫 잘못보면 황새 발목이니 이건 언제 잡아갈랴구 남겨두는거야— 보면 볼사록 하나 이쁜데가 업다. 한두번 먹은것두아니요 언젠간 울타리께 풀을 비여주고 술사발이나 엇더먹은 적도 잇섯다. 고러케 야멸치게 따질건 먼가. 그는 눈살을 흘낏 맟치고는 하나를 더 끄내어

“엣수 또하나 잡숫게유—”

내던저주곤 댓돌에 가래침을탁배탓다.

그제야 식성이 좀 풀리는지 그 가축으로 웃으며

“아이그 이거 자꾸 줌 어떠개—”

“어떠거긴, 자꾸 살찌게유—”

- 김유정 『만무방』

  위의 예시에서 나오는 상황은 응칠이가 주막에서 술을 마시고 송이로 술값을 제하려하는 상황이다. 처음에 송이 3개로 술값을 면하려 했지만, 주막할머니는 마땅치 않아한다. 이에 응칠이는 다소 거친 심리를 드러낸다.

  하지만 그것이 잘대 주막할머니와의 싸움으로 번지지 않는다. 우선, “제따는 한 개에 삼전식치드라도 구전박게 안되니깐—”하며 주막할머니를 이해하려한다. 응칠이 비록 다소 화가 났다고 하지만 그것이 결코 주막할머니에 대한 미움, 분노로 해석 할 수 없다. 오히려 주막할머니에 대하여 솔직하고 천연스럽게 묘사한 만큼 주막할머니에 대한 친밀감을 느낄 수 있다. 이어 응칠은 송이를 한 개를 더 주막할머니에게 준다. “어떠거긴, 자꾸 살찌게유—” 하며 농담으로 넘어가는 사이에서, 그리고 ‘언젠간 울타리께 풀을 비여주고 술사발이나 엇더먹은 적도 잇섯다.’에서 이웃사이에 존재하는 ‘정’을 미루어 짐작 할 수 있다.

그는 생각다 끝에 있는 염치를 보째 솓아던지고 다시한번 찾아가는것이다. 마는 딱 맞닥드리어 입을 열고

“낼 산제를 지낸다는데 쌀이 있어야지유—”하자니 역 낯이 화끈하고 모닥불이 나라든다.

그러나 그들은 어지간히 착한 사람이엇다.

“암 그렇지요 산신이 벗나면 죽도 그릅니다“하고 말을 받으며 그남편은 빙그레 웃는다.

- 김유정 『金 따는 콩밧』

『금 따는 콩밭』에서 아내는 몇 번이나 양식을 꾸러 이웃에게 찾아간다. 그에 이웃은 외면하지 않고 양식을 나눠준다. 바로 뒷부분에서 이웃 남자는 “산제란 안지냄 몰라두 이왕 지낼내면 아주 정성끗해야 됩니다. 산신이란 노하길 잘 하니까유”하고 비방을 우회적으로 드러내기도 한다. 비록 어리석고 못난 이웃이지만 그들을 외면하지 않는 모습이다.

“이자식 뭘 어째구어째?” 하고 딱딱 어르니까 석숭이는 처음에 뭐나 좀 생길가하고 좋아서 따라왔거든걸 별안간 난데없는 모진 돌만 나라듬에는

“야야!”하고 소리치자 똑 선불 맞은 노루 모양으로 한번 뻐들껑 뛰며 눈이 그야말로 왕방울만 해지지 않을수가 없었다. 그러나 석숭이는 미움보다 앞스느니 기쁨이요 전일에는 그옆을 지내도 본둥만둥 하고 그리 대단히 여겨주지 않든 그 이뿐이가 일부러 이리 끌고와 돌로 따리되 정말 아프도록 힘을 드릴만치 이뿐이에게 있어는 지금의 저의 존재가 그만치 끔찍함을 그돌에서 비로소 깨닷고 짓궂어 씽글씽글 웃으며 한번 더 뒤둥그러진 그리고 흘개늦은 목소리로

“뭘 데련님허구 그랬대는데——”하고 놀려주엇다.

(중략)

“아니다 아니다 내 부러그랬다 아니다”하고 입에 불이나게 그러나 손으로 등을 어루만지며 “아니다”를 여러십번을 부른때에야 간신히 울음을 진정해놓았고 이뿐이가 아즉 늣기는 음성으로 몇 번 당부를하니

“인제 남듣는데 그러면 내 너 죽일터야?”

“그래 인전 안그러마”

참으로 이런 나쁜 소리는 다시 입에 담지 않으리라 맹세하였다.

- 김유정 『산골』

  작품에서 석숭이는 이뿐이가 사랑하는 ‘도련님’이 서울로 갔다는 소리를 듣고 좋아하는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그러한 석숭이는 이뿐이를 놀리며 자신에게 장가들라고 하는 인물이 아니다. 오히려 이뿐이를 놀리는 척 하면서 이뿐이를 위로하려는 마음이 드러난다.

4-3. 가난한 농민에 대한 작가의 연민

  그의 작품 중 『땡볕』에서 가장 잘 드러난다. 『땡볕』의 줄거리를 살펴보면 이렇다. 농촌에서 일을 하던 남편의 아내가 병에 들자, 큰 병원에 찾아가기 위해 도시로 향한다. 아내의 병이 희귀병일 때 병원에서 월급을 받으며 치료를 받을 수도 있다는 희망에 차 있지만, 병원에서 진료를 받고 난 결과는 그렇지 않다. 그들은 절망한다. 희망으로 병원을 찾아 갔지만, 아무런 성과도 보지 못한 채, 절망으로 돌아간다. 돌아가는 길, 아내는 땡볕에서 죽고야 만다.

  이야기에 등장한 인물은 농촌에서 몰락하여 유랑하다가 도시를 해매는 인물이다. 이러한 인물에 대한 이야기를 담담한 어조로 풀어가는 작가의 목소리를 통해, 독자는 가난하고 불행한 농민들에 대한 작가의 연민을 잘 읽어낼 수 있다. 김유정이 강원도 시골에서 거처했던 만큼, 그곳에 살았던, 비참하고 불행한 현실을 감당해야만 한 농민들에 대한 연민이라고 볼 수도 있다.

  참고로, 『땡볕』이라는 작품은 『노다지』와 함께 죽음에 대한 이미지가 강하다. 김유정은 『땡볕』을 발표하고 한 달 후에 세상을 떠난다.

5. 해학(諧謔), 한(恨)을 감춘 웃음

5-1. 김유정 문학의 해학에 대하여

  김유정 문학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점이 바로 해학이다. 그의 작품에서 드러나는 해학에 대한 연구는 많았다. 그 중에서 대표적인 2가지를 뽑으라면 ‘솔직하고 천연스러운’ 인물의 말과 ‘우직한 인물’이 겪는 순박한 대결이다.

  첫 번째로 ‘솔직하고 천연스러움’에 대하여 생각해보자. 예를들어 엄한 선생님의 수업시간이 있다고 가정한다. 학생들은 긴장된 마음으로 수업에 임하고 있다. 그런데 한 녀석이 수업시간에 벌떡 일어나더니

“선생님, 정말 인간적으로 솔직히 말해서, 선생님 더럽게 못생겼어요!”

한다면 교실은 웃음바다가 될 것이다. 이러한 뉘앙스와 같이 김유정의 작품 속 인물들도 솔직하고 천연스럽게 타인을 묘사하고 상황을 인식한다.

그러면 년이 금세 헤에 벌어지고 힝하게 내 곁에 와 앉어서는 어깨를 비겨대고 슬근슬근 부빈다. 그리고 코가 좋아보인다니 정말 그러냐고 몸이 닳아서 묻고 또 묻고한다. 저러도 밋지못할 그 사실을 한때의 위안이나마 또 한번 드러보자는 심정이렷다. 그 속을 알고 짜정 콧날이 스나부다고 하면 년의 대답이 뒷간엘 갈적마다 잡아댕기고 햇드니 혹 나왔을지 모른다나 그리고 아주 좋아한다.

그러나 어느 때에는 한나절 밭고랑에서 시달린 몸이 고만 축 느러지는구나. 물론 말 한마디 붙일새없이 방바닥에 그대로 누어버리지. 허면 년이 제 얼골 때문에 그런줄 알고 한구석에 가 시무룩해서 앉었다. 얼골을 모로 돌리어 턱을 뻐쭉 처들고 있는걸 보면 필연 제깐엔 옆얼골이나 한번 봐달라는 속이겟지. 경칠 년.옆얼굴이라고 뭐 깨묵셍이나 좀난줄 알구—

- 김유정 『안해』

덮어놓고 딸이 자라는대로 성예를 시켜주마, 했으니 누가 늘 지키고 섰는것도 아니고 그키가 언제 자라는지 알수있는가. 그리고 난 사람의 키가 무럭무럭 자라는줄만 알았지 붙배기키는 모로만 벌어지는 몸도 있는것을 누가 알았으랴.

(중략)

아무리 잘 봐야 내 겨드랑밑에서 넘을략말락 밤낮 요모양이다. 개 돼지는 푹푹 크는데 왜 이리도 사람은 안크는지, 한동안 머리가 아프도록 궁리도 해보았다. 아하 물통이를 자꾸 이니까 뼉따귀가 옴츠라 드나부다.

(중략)

“그래 맞구두 그걸 가만둬?”

“그럼 어떻거니?”

“임마 봉필일 모판에다 거꾸루 박아놓지 뭘어떻개?” 하고 내대신 화를 내가지고 주먹질을 하다 등잔까지 쳤다. 놈이 본시 괄괄은 하지만 그래놓고 날더러 석유값을 물라구 막찌다우를 붓는다.

- 김유정 『봄봄』

안해는 이꼴을 바라보며 독이 뾰록같이 올랏다. 금점을 합네하고 금한톨 못캐는것이 버릇만 점점 글러간다. 그전에는 없드니 요새로 건뜻하면 탕탕때리는 못된 버릇이 생긴것이다. 금을 캐랫지 뺨을 치랫나. 제발덕분에 고놈의금좀 나오지 말엇으면. 그는 뺨맞은 앙심으로 망껏방자하엿다.

- 김유정 『金 따는 콩밧』

  두 번째는 ‘우직한 인물’이 겪는 순박한 대결이다. 대표적으로 우리가 잘 아는 『봄봄』과 『동백꽃』이 있다.

한번은 장인님이 헐떡헐떡 기어서 올라오드니 내바지가랭이를 요렇게 노리고서 담박 웅켜잡고 매달렸다. 악,소리를 치고 나는 그만세상이 다 팽그르 도는 것이

“빙장님!빙장님!빙장님!”

“이자식! 잘아먹어라 잡어먹어!”

“아! 아! 할아버지! 살려줍쇼 할아버지!”하고 두팔을 허둥지둥 내절 적에는 이마에 진땀이 쭉 내솟고 인젠 참으로 죽나부타, 했다. 그래두 장인님은 놓질않드니 내가 기어히 땅바닥에 쓰러저서 거진 까무라치게 되니까 놓는다. 더럽다 더럽다. 이게 장인님이가, 나는 한참을 못 일어나고 쩔쩔맸다. 그렇다 얼굴을 드니 사지가 부르르 떨리면서 나도 엉금엉금 기어가 장인님의 바지가랭이를 꽉 웅키고 잡아나꿨다.

(중략)

“아! 아! 이놈아! 놔라, 놔—”

장인님은 헷손질을 하며 솔개미에 챈 닭의 소리를 연해 질렀다. 놓긴 웨, 이왕이면 호되게 혼을 내주리라, 생각하고 짖궂이 더 댕겼다 마는 장인님이 당에 쓰러저서 눈에 눈물이 피잉도는 것을 알고 좀겁도낫다.

“할아버지! 놔라, 놔,놔,놔놔” 그래도 안되니까

“얘 점순아! 점순아!”

- 김유정 『봄봄』

“이 바보 녀석아!”

“얘, 너 배내병신이지?”

그만도 좋으련만

“얘! 너 느 아버지가 고자라지?”

“뭐? 울 아버지가 그래 고자야?”

할 양으로 얼벙거지가 나서 고개를 홱 돌리어 바라봤드니 그 때 까지 울타리 우로 나와 있어야 할 점순이의 대가리가 어디 갔는지 보이지를 안는다.

(중략)

나는 두손으로 볼기짝을 두드리며 연팡

“잘한다! 잘한다!”하고 신이 머리끝까지 뻗히었다.

그러나 얼마되지 않어서 나는 넋이풀리어 기둥같이 묵묵히 서있게 되었다. 왜냐면 큰닭이 한번 쪼이킨 앙갚으리로 허들갑스리 연겊어 쪼는 서슬에 우리 수탉은 찔끔못하고 막 곯는다. 이걸 보고서 이번에는 점숨이가 깔깔거리고 되도록 이쪽에서 많이 드르라고 웃는것이다.

나는 보다못하야 덤벼들어서 우리 수탉을 붙들어가지고 도로 집으로 들어왔다. 꼬추장을 좀더 먹였드라면 좋았을걸 너무 급하게 쌈을 붙인것이 퍽 후회가 난다. 강독께로 돌아와서 다시 턱밑에 꼬추장을 디려냈다. 흥분으로 말미아마 그런지 당최 먹질 않난다.

(중략)

가차히 와보니 과연 나의 짐작대로 우리 수탉이 피를 흘리고 거의 빈사지경에 이르럿다. 닭도 닭이려니와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눈하나 깜짝없이 고대로 앉어서 호들기만 부는 그 꼴에 더욱 치가 떨린다. 동리에서도 소문이 났거니와 나도 한때는 걱실걱실이 일 잘하고 얼골 이뿐 게집애인줄 알았드니 시방 보니까 그 눈깔이 꼭 여호새끼 같다.

-김유정 『동백꽃』

5-2. 한(恨)을 감춘 웃음

  김유정 문학에서의 ‘웃음’은 ‘웃음’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호탕하게 웃는 웃음이 아니라는 뜻이다. 인물들은 이면에, 가난과 불행, 절망을 숨기고 웃어버린다.

스리고 깔고 올라앉아서 망할 년 등줄기를 주먹으로 대구 우렸다. 때리면 때릴수록 점점 눈속으로 들어갈뿐, 발악을 치기에는 너머 취했다. 때리는 것도 년이 대들어야 멋이 있지 이러면 아주 승겁다. 년은 그대로 내버리고 방으로 들어가서 놈을 찾으니까 이 빌어먹을 자식이 생쥐새끼처럼 어디로 벌서내빼지 않었나. 참말이지 이런 자식 때문에 우리 동리는 망한다. 남의 게집을 보앗으면 마땅히 남편앞에 나와서 대강이가 깨저야 옳지 그래 다라난담. 못 생긴 자식도 다 많지.

(중략)

이년하고 들병이로 나갔다가는 넉넉히 나는 한옆에 재워놓고 딴서방차고 다라날 년이야. 너는 들병이로 돈 벌 생각도 말고 그저 집에 가만히 앉었는것이 옳겟다. 구구루 주는 밥이나 얻어먹고 몸 성히있다가 연해 자식이나 쏟아라. 뭐많이도 말고 굴때같은 아들로만 한 열다섯이면 족하지. 가만있자, 한놈이 일년에 벼열섬씩만 번다면 열다썸이니까 일백오십섬. 한섬에 더도 말고 십원 한 장식만 받는다면 죄다 일천 오백원이지. 일천오백원, 일천오백원, 사실 일천오백원이면 어이구 이건 참 너무 많구나. 그런 줄 몰랐더니 이년이 배속에 일천오백원을 지니고 있으니까 아무렇게 따저도 나보담은 났지 않은가.

- 김유정 『안해』

  위의 내용은 아내가 뭉태에게 농락당하는 상황을 발견하고 남편이 아내를 때리는 장면이다. “3-2. 가난 앞에 무너지는 인간.”에서 알아봤듯이 들병이 일을 해서 겨우 생계를 꾸려나가는 처지인 부부.

"들병이가 될랴면 소리도 소리려니와 담배도 먹을줄알고 술도 마실줄 알고 사람도 주무를 줄 알고 일래야 쓴다나."

“들병이로 나갈랴면 우선 술파는 경험도 해봐야 하니까, 하는 바람에 년이 덜렁덜렁 따라섯겟지.”

하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아내가 뭉태를 따라나서는 이면에는 무척 비참한 현실이 숨어있다. 뭉태에게 농락당한 아내를 발견한 남편은 분노에 아내를 때리지만

“때리는 것도 년이 대들어야 멋이 있지 이러면 아주 승겁다.”

하며 웃음을 유발한다. 그리고 마지막 부분에서 아내를 걱정하는 마음에 들병이 일을 하게하지 않기로 한다며 하는 말에도 웃음을 유발하고 있다.

  들병이 일을 하기 위해선 소리도 소리지만 담배도 먹을 줄 알고 술도 마실 줄 알아야하고 사람도 주무를 줄 알아야 한다는 현실에 주인공은 탄식하지 않는다. 분노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웃음 자아내려고 한다. 비참한 이면을 숨긴 웃음이다.

응칠이는 마당에 우두커니 안젓다. 사람의 목숨이란과연 중하군, 하엿다. 그러나 게집이라는 저물건이 그러케 떼기 어렵도록 중할가, 하니 암만해도 알수업고

“너 참 요건너 성팔이 알지?”

“——”

“너허구 친하냐?”

“——”

성이 뭐래는데 거 대답줌하렴“

하고 소리를 뻑 질러도 아우는 대답은 말고 고개두안든다.

그러나 응칠이는 하눌을 처다보고 트림만 끄윽, 하고 말앗다. 술기가 코를 콱콱 찔러야 할터인데 이건 풋김치냄새만 코밋에서 뱅뱅돈다. 공짜김치만 퍼먹을게 아니라 한잔더햇드면 조앗슬걸. 그는 일어서서 대를 허리에 꼿고 궁뎅이의 흙을 털엇다.

- 김유정 『만무방』

  위의 장면의 앞부분 역시 ‘3-2. 가난 앞에 무너지는 인간.’에서 알아봤듯이 고생이란 고생은 다하여 아내를 다시 데리고 왔지만 아내가 병에 들어 버린 상황이다. 위의 예시에서 아우는 아내의 죽음을 걱정하지만, 형은 거기에 동조하지 않는다. 오히려 공짜김치 타령을 하며 술도 마실 껄 한다. 독자는 그러한 형의 솔직하고 천연스러운 말에 웃을 수 있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무척 부적절한 웃음이다. 아내가 죽음을 앞두고 있다며 걱정하는, 그리고 돈을 걱정하는 아우 앞에서 그러한 생각을 하다니 말이다. 위에서도 말했지만 같은 맥락으로, 형은 이러한 비참한 현실 앞에 탄식하거나 분노하지 않는다. 오히려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웃어버리게 한다. 그러나 그러한 웃음 이면에는 비참한 현실이 숨어있다.

  독자는 이러한 작품을 읽는 동안 자주 웃을 수 있지만, 그 웃음에 숨은 비참한 현실이 살아 숨 쉬는 만큼, 먹먹한 마음이 가슴속에 오랫동안 지속된다.

6. 김유정 문학의 의의

  위와 같이 우리는 김유정 작품에 대하여 살펴봤다. 그의 작품에는 향토적인 우리 정서가 짙게 묻어난다. 서론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그의 작품에서 묻어나는 짙은 정서는 한국 문학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근간으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앞서 말했지만, 우리는 김유정뿐만 아니라 대표적인 한국 작가의 작품을 통해 우리의 정서를 찾고, 지켜나가야 한다. 나아가 ‘한국’에 국한 시킬 것이 아니라 세계적인 반열에 올려 한국 문학이 지닌 생명력을 확인 받는 작업이 필요할 것이다.

너스레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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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문화 비평 - 대중음악부문] 오아시스(Oasis)를 만나다.    나는 기회가 있어서 미국에 뉴욕 도심 한 복판에서 2주일을 보낸 적이 있다. 우리나라에서 시내를 걸을 때 유명한 대중음악을 자주 들을 수 있듯이, 뉴욕의 곳곳에서 세계 팝 뮤직(대중음악) 중, 유명한 음악들을 들을 수 있었다.    그런데 그 중에서 나의 귀를 쫑긋하게 사로잡은 음악들은 바로 비틀즈(Beatles)의 음악들과 오아시스(Oasis)의 음악들이었다. 비틀즈가 해체한지 이제 40년이 다 되어 가는데도 그들의 음악을 여전히 뉴욕 곳곳에서 들을 수 있고, 비록 오아시스라는 밴드가 해체 된지 3년이 체 안됐지만, 온 세상에서 수 없이 발표되는 신곡들을 뚫고, 뉴욕의 대형 스피커를 울릴 수 있다는 것에 새삼 놀랐다. 심지어 길거리 뮤지션의 공연에도 꼭 빠지지 않는 음악들이 비틀즈의 음악과 오아시스의 음악이었다.    뉴욕이라는 도시가 아무리 여러 인종과 문화가 모인 곳이라 하더라도, 뉴욕 사람들은 세계 팝 시장을 차지하고 있는 자국의 노래와 같은 대열에 브릿팝(Brit Pop-영국음악), 그것도 해체된 밴드의 음악을 즐기고 있었다. 비틀즈가 세계 록(Rock) 음악에 미친 영향은, 타임스퀘어에서 진행되는 카운트다운(매년 12월 31일 오후 11시 59분 50초에서 초를 다 함께 새며 새해를 축하하는 행사) 전에, 존 레논 (John Lennon - 비틀즈의 맴버) ‘imagine’을 트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듯이, 그 비중이 몹시 크고 뉴욕에서도 인정받아, 이해 할 수 있더라 치더라도 오아시스의 음악을 뉴욕에서 들을 줄은 몰랐다.    나는 그곳에서 비틀즈와 함께, 오아시스가 세계 대중음악사에 남긴 영향이 아직까지 인정받고 사랑받고 있다는 것을 직접 느낄 수 있었다.        1. 영국의 록 엔 롤 음악(Rock n Roll Music)을 돌아보며 오아시스(Oasis)의 위치를 확인하다.    세계 록 음악의 시작은 록 엔 롤 음악에서 출발된다고 해도 무리가 없을 듯하다. 엘비스 프리슬리와 비틀즈의 출현으로 근본적 출발을 하게 된 록 음악은, 특히 비틀즈가 미국 시장에서 크게 성공하고, 스테리오 사운드에서 록 음악이 무구하게 발전 할 수 있다는 것을 인정받게 하여 영국의 대명사로 자리 잡게 된다. 이후 영국의 록 음악은 퀸(Queen), 레드 제플린((Led Zeppelin), 더 잼(The Jam)등의 대표적인 밴드가 프로그레시브 록(Progrssive Rock 진보적인 록)을 이끌며 모던 록(Modern Rock - 현대적인 록)을 갖추게 하고 펑크 록(Punk Rock - 주로 경쾌한 리듬에 반항적, 일탈적 내용을 담은 록 음악)의 갈래를 확고히 하며 빠르게 성장했다.    그러한 빠른 변화 속에, 90년대에 들어 오아시스(Oasis)의 출현은 색다르게 느껴졌다고 할 수 있다. 그 이유

  • 너스레쟁이
  • 2012-03-04
‘희망 강대국’ 한국, 더욱 책임감 있는 미래상으로

‘희망 강대국’ 한국, 더욱 책임감 있는 미래상으로      2010년 11월 11일 전 세계인들의 이목이 아시아의 한 자그마한 나라에 집중되었다. 그 이유는 G20 정상회의가 한국, 바로 그 자그마한 나라에서 개최되었기 때문이다. 세계는 깜짝 놀랐다. 다른 선진국에 비해 잘 알려지지 않은데다가 남북으로 분단되어 있는 국가가 산업규모 세계 20위권 국가들 중 의장국으로서 G20 정상회의를 개최하다니 믿기 어려운 일이였다. 그러나 지난 60년을 뒤돌아보면 결코 그렇지 않음을 깨달을 수 있다. 한반도를 폐허로 몰고 간 6.25 전쟁 후 1961년 한국은 1인당 국민 소득이 82달러에 불과하여 ‘세계 저개발국 74개국 중에서도 14번째로 빈곤한 나라’였다. 하지만 경제 개발 5개년 계획과 새마을 운동 등과 같은 새로운 방법론, 그리고 근면 성실한 국민들의 노력으로 눈부신 경제 성장을 이륙하였다. 다시말해 이러한 요소들은 1961년 82달러에 불과하던 1인당 GNP를 1991년에는 6,820달러로 약 95배나 증가시켰으며, 같은 기간 동안 수출을 연평균 약38%씩 증가시켜 총 수출액이 1961년 5천 5백만 달러에서 1991년에는 719억달러로 증가해 1991년에 국민 총생산에 있어서 세계 15위의 대국(大國)이 되었다. 한국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1996년 12월 12일에는 OECD 회원국으로 가입하였으며 1997년에는 세계 10위권 산업국가로서 G20정상회의에 초청되었다. 게다가 2010에는 G20의 의장국으로서 회의를 개최하였고, 같은 해에 OECD 산하기구인 DAC(Offical Development Assistance)에 가입하여 최초로 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원조를 주는 나라가 되었다. 게다가 경제 성장과 동시에 한국 국민들은 독재와 부패에 맞서 싸워 민주주의를 이륙시켰고, 뿐만 아니라 1988년 서울 올림픽과 2002년 한.일 월드컵을 개최시켰으며 2011년 세계 육상 선수권 대회를 유치시키는데 성공하여 정치적, 문화적인 성장을 이루었다. 그러한 나라가 자국의 위상에 걸맞게 G20의 의장국을 맡아 성공적으로 회의를 이끌었으니, 세계인들은 한국에게 더욱 큰 기대를 걸 수밖에 없고, 이에 한국은 글로벌리더의 자질이 요구되고 있다.       그러므로 세계무대 위에서 한국의 역할은 막중하다. 특히 개발도상국에 대한 역할은 그 중 으뜸이라 할 수 있다. 왜냐하면 한국은 경제, 정치, 문화 등 여러 분야에서 그들에게 큰 본보기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다른 세계 선진국들이 경험하지 못한 눈부신 성장과 동시에 외환위기를 극복하고, 금융위기에 탈출한 경험과 노하우는 무엇보다 큰 힘이 되어 줄 것이다. 그리고 UN 반기문 사무총장이 “한국은 선진국과 개도국을 잇는 교량 역할을 해야 한다.” 라고 언급한 것과 같이 개발도상국에 대한 역할의 중요성은 더욱 부각되고 있다. 따라서 한국은 여러 부분에서 개

  • 너스레쟁이
  • 2011-0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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