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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들레르의 파리의 우울을 읽고

  • 작성자 김가현
  • 작성일 2013-05-12
  • 조회수 801

파리의 우울

-장밋빛 구름의 육체에 대하여.

-보들레르는 우울과 권태가 뒤섞인, 유배지와도 같은 지상에서 늘 구름과도 같은 존재를 꿈꾸었다. 불타는 사막처럼 습한 파리의 우울 속에서 가벼운 사랑을 나누는 자들을 멸시하며 미지의 곳을 향한 꿈을 키워나갔다.

‘몽상을 닮은 방, 진정으로 정신적인 방, 이곳에 괸 공기는 장밋빛과 푸른 빛으로 살짝 물들어 있다.

이곳에서 넋은 욕망과 회한으로 향기롭게 한 나태의 목욕을 한다. 그것은 뭔가 황혼처럼 푸르스름하고 불그스레한 것, 해가 기우는 동안의 관능의 꿈이다.

...

무서운 일이다! 생각난다! 생각나고말고! 그래! 이 누옥! 이 영원한 권태의 거처, 그것이 바로 나의 방이었다. 먼지투성이의 헐어빠진 바보 같은 가구들, 불꽃도 없고 타다 남은 잉걸조차 없는, 가래침으로 더럽혀진 벽난로, 먼지 사이로 비 자국이 남아 있는 서글픈 창문들, 완성되지 않았거나 지워버린 원고 뭉치들, 연필로 불길한 날짜를 표시해 둔 달력!

...-이중의 방’

이중의 방은 권태와 몽상이 공존하는 방이다. 이 시에서 가구들은 꿈을 꾸는 듯, 몽유적 생명을 받고 태어난 듯, 나무만이 가진 태양의 언어를 속삭인다. 벽에는 아무런 예술적 혐오물, 즉 벽을 꾸미기 위한 작품들 없이 순수한 꿈만이 존재한다. 벽의 명암은 충분한 밝음과 감미로운 어둠의 조화로 꾸며져 있다. 모슬린 휘장, 그리고 숭배의 여인이 있다. 보들레르는 매끄럽고 따스한 가구, 순수한 벽, 모슬린 휘장 등 신비로운 매력을 지닌 존재들을 통해 독자들을 몽상에 취하게 만든다. 그의 방은 이제 장밋빛 구름으로 가득 찬, 하늘을 맴도는 열기구이다. 그는 이 몽상이 어떤 친절한 악마 덕택이냐고 묻는다. 신비와 정적, 평화, 향기에 둘러싸여 있는 이 행복의 순간을 그는 현실과는 하나도 들어맞지 않는 순간이라 말한다. 그는 먼지 하나까지도 현실과 다른 장밋빛일 때, 몽상이라 말한다. 일 분 일 초가 지상과는 다르다. 곧 영원, 지복의 영원이라고 말한다. 이곳은 영원한 몽상의 거처이고 시간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것이 영원하다. 이러한 행복한 순간에 어느 유령이 그에게 찾아온다. 그것은 집달리, 더러운 첩, 혹은 원고를 재촉하러 온 신문사의 심부름꾼이다. 즉 시간에 소속되어 있는 이들이다. 이 모든 마술의 세계에서 유령의 노크는 시간을 불러온다. 그는 무서운 일이 생각나기 시작한다. 바로 현실이다! 때에 찌든 가구들과 잿더미뿐인 벽난로. 원고 마감 날짜에 초조하게 쌓여있는 종이 더미들. 그 어떤 온기도 신비도 느낄 수 없는 권태의 공간이다. 그는 이곳에서 그 어떤 것과도 태양의 언어를 조용히 속삭일 수 없고 신비로운 마술을 부릴 수도 없다. 그는 교감할 수 없는 권태의 공간에서 쉼없이 움직이는 시계추 소리를 듣는다. 시계추는 그에게 노예 녀석! 땀을 흘려라!라고 명령한다. 그는 곧 시간, 현실의 노예가 되어 쉼없이 돌아간다. 모든 경련, 공포가 되살아난다. 그는 현실에 대한 공포증을 가진 몽상가였다.

그리고 그는 이런 공포를 어릿광대의 모습에서도 찾아냈다.

‘얼마나 기막힌 날인가! 널따란 공원은 타는 듯한 태양의 눈길 아래, 마치 ’사랑의 신‘에 지배된 젊은이처럼 황홀경에 빠져 있다.

삼라만상 온갖 것들이 도취되어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흐르는 물조차 멈추고 잠이 든 듯, 인간의 축제와는 판이하게 이곳은 고요의 향연이다.

...

그러나 이 같은 온 세상의 기쁨 가운데, 나는 비탄에 잠긴 한 인간을 보았다.

거대한 ‘비너스 조상’의 발치에, 왕들이 ‘회한’과 ‘권태’에 짓눌릴 때면 그들을 웃기는 역할을 자진해서 맡는 어릿광대 중 하나, 그런 거짓 미치광이 중 하나가 번쩍번쩍하는 우스꽝스러운 옷을 걸치고, 머리에는 고깔과 종들을 달고, 발판에 몸을 잔뜩 움츠리고서 눈물 가득 찬 눈을 들어 저 위의 불멸의 ‘여신’을 올려다본다.

...-어릿광대와 비너스’

시의 화자는 공원을 거닐며 황홀경에 빠져 있다. 태양은 조용하게 내리쬐고 연인들은 사랑을 나누는 이 친밀한 오후에 한 어릿광대를 발견한다. 보편적인 행복에 잠겨있는 공원에서 그는 홀로 이상을 추구한다. 그는 비너스 석상, 이라는 다다를 수 없는 이상에 남겨져있다. 그는 자신의 입으로 자신을 가장 외로운 인간이자 가장 형편없는 동물이라 말한다. 그런 그가 아름다운 석상을 숭배하게 된 것은 불멸의 아름다움을 이해하고 느낄 수 있게끔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는 마치 선천적으로 불행한 인간인듯, 자신의 슬픔과 망상을 불쌍히 여겨달라고 말한다. 그러나 매정한 비너스는 광기와 굶주림에 취해있는 그에게 아무런 답도 주지 않는다. 공원의 연인들은 그를 우스꽝스러운 어릿광대로 본다. 그렇기에 광대의 비극성은 증가한다. 광대는 불멸의 아름다움을 깨달았기에 더 이상 광대짓이 아닌 이상을 추구하게 된 것이다. 그는 이상을 갈망하고 굶주린 예술가이지만 남들의 눈에는 미치광이로 보일 뿐이다. 이 광대는 시인의 모습과 유사하다. 보들레르는 생전에 자신을 선천적으로 불행한 인간이라 말한 바 있다. 그는 형편없이 가난하고 외롭고 우울했다. 그건 바로 그가 불멸의 아름다움을 발견해버렸고, 숭배했기 때문이다. 다다를 수 없는 이상 때문에 예술가들은 굶주린다.

그리고 시인은 불멸의 아름다움을 찾기 위해 미지로 여행을 떠난다.

‘‘보물의 나라’라는 기막힌 나라가 있다고 사람들이 말하는데, 나는 그곳을 오래전부터 알고 있는 한 여인과 함께 찾아갈 꿈을 꾸고 있다. 그곳은 북유럽 지방의 안개 속에 잠긴 신기한 나라, 서양의 동양, 유럽 속의 중국이라 부를 수도 있다. 그토록 그곳엔 뜨겁고 변덕스러운 환상이 피어나고, 그토록 환상은 참을성 있고 끈질기게 그 나라를 복잡하고 정교한 식물들로 장식하고 있다.

...

이 보물, 이 가구, 이 사치, 이 질서, 이 향기, 이 기적의 꽃들, 그것이 바로 당신이다. 이 커다란 강들, 이 고요한 운하, 그것 또한 당신이다. 거기 온갖 재물을 가득 싣고 떠가는, 단조로운 조종 소리 흘러나오는 이 거대한 선박, 그것은 당신의 가슴 위에 졸며 떠가는 나의 생각이다.

...-여행으로의 초대’

이 시에서 목적지는 곧 꿈의 나라이다. 꿈의 나라를 향해 거대한 선박이 떠간다. 거기에는 온갖 재물들을 싣고 떠난다. 시인은 꿈의 나라에 여인을 동일화시켰다. 이를테면

‘내가 그대의 머리카락 속에서 보는 모든 것을 그대가 알수만 있다면! 내가 느끼는 모든 것을! 내가 듣는 모든 것을! 다른 사람 넋이 음악따라 여행하듯, 내 넋은 향기를 타고 여행한다. -머리카락 속에 반구’

이 시에서 등장하는 그대의 머리카락처럼 말이다. 그러나 시인의 여행은 다른사람들과 달리 향기라는 모호한 존재를 따라간다. 그렇기에 그의 여행은 언제나 희미하고 달콤한 우수에 불과하다. 시인에게 꿈의 나라는 그대의 머리카락을 애무하는 데에서 시작한다. 향기는 그를 낯선 곳으로 데리고 간다. 화가들의 넋처럼 편안하고 고요하며 심오한 그림 한 폭 같은 나라이다. 그곳은 모든 사물들이 정적으로 이루어진 세련되고 감각적인 물질들이다. 사물들은 시인이 사유하기에 따라 다르게 느껴진다. 그것들은 미완성 교향곡을 속삭이고 정중하게 다가온다. 거친 것들은 없고 매끄럽고 향기롭고 이국적이다. 그는 포착할 수 없는, 감지할 수 없는 자신의 감정을 가구들, 보물들을 통해 감각적으로 그려냈다.

시인은 이 나라를 거닐며 모든 대상들과 교감할 수 있다. 온 세상의 귀중품이 있는 나라, 이 사치, 이 질서, 이 향기는 모두 그대를 닮았다. 그대는 곧 이상이다. 어릿광대에게는 비너스 석상인 바로 그 이상이다. ‘운하들을, 도시 전체를, 보랏빛과 황금빛’으로 뒤덮을 때 세상은 따스한 빛 속에 잠이 든다. 시인은 <악의 꽃>에서 이 나라를 ‘모두가 질서와 아름다움, 호화로움, 고요함 그리고 쾌락일 뿐이니’라고 말했다.

시인은 아름다운 장밋빛 색유리를 낀 채 이상에 취해있다. 어릿광대를 미치광이로 여기는 이 지상에서, 그 역시 약에 취한 중독자에 불과하다. 시인은 그 점을 부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상과 현실의 괴리를 피하고 싶은 모두에게 취하라, 라고 말한다.

‘항상 취해 있어야 한다. 모든 게 거기에 있다. 그것이 유일한 문제다. 당신의 어깨를 무너지게 하여 당신을 땅쪽으로 꼬부라지게 하는 가증스러운 ‘시간’의 무게를 느끼지 않기 위해서 당신은 쉴 새 없이 취해 있어야 한다.

그러나 무엇에 취한다? 술이든, 시든, 덕이든, 그 어느 것이든 당신 마음대로다. 그러나 어쨌든 취해라.

...

“이제 취할 시간이다! ‘시간’의 학대받는 노예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취해라! 술이든, 시든, 덕이든 무엇이든, 당신 마음대로.”-취해라’

시 <이중의 방>에서 그는 시간이라는 유령에 의해 몽상에서 깨어난다. 그는 이 유령에게서 달아나기 위해 취하라고 말한다. 당신이 꾸는 몽상이 어떤 종류의 것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당신이 시를, 덕을, 술을 숭배할 때마다 쫓아다니는 유령을 피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취해야한다. 우리는 이미 유령, 즉 시간의 노예가 되어버렸다. 그러나 시간이란 얼마나 헛된 것일까? 시인은 시간의 헛된 면모를 부각하기 위해 시간을 유령이라 지칭했다. 유령의 노예가 되는 일은 우스운 일이다. 지상에 속하지 않은 것 때문에 지상의 이들이 고통 받는 일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것을 깨달았으면 이제 취할 시간이다! 궁궐의 계단 위에서, 도랑가의 초록색 풀 위에서, 권태의 방에서 당신이 깨어나게 된다면 이렇게 대답하면 된다. 이제 취할 시간이다! 쉴 새 없이 움직이는 시계추에게 그렇게 외치고 술이든, 시든, 덕이든 세상의 모든 몽상들에 빠지는 것이다. 장밋빛 구름의 육체를 타고 들어가 매혹적인 꿈을 꾸는 것이다.

김가현
김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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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가현
  • 2013-0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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