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리어 왕』을 읽는 밤

  • 작성자 韓雪
  • 작성일 2013-08-15
  • 조회수 456

 어느 밤이었을 것이다. 당신이 내게 물었다. 셰익스피어를 읽어 본 적 있냐고. 셰익스피어……. 그 이름이 참 부드럽다고 생각했다. 보드라한 아이스크림을 베어 문 느낌. 당신과 만날 때마다 입가 어딘가에 고여 있던 그 느낌. 별은 멀찍이서 흐릿하게 빛나고 있었고, 바람은 조용히 주변을 흐르고 있었다. 아마 그때 나는 당신한테 거짓말을 했을 것이다. 셰익스피어를 읽어봤다고. 그를 참 사랑한다고.

 내가 진짜 셰익스피어를 읽게 된 건 그 밤으로부터 일 년 정도가 흐른 뒤였다. 그 일 년 동안 여러 일이 있었다. 당신과의 아주 짧은 마주침이 몇 차례 있었고, 살던 곳에서 두 시간 정도 거리만큼 떨어진 고등학교에 입학했으며, 당신과 멀어지게 되었다. 외딴 고등학교에 들어간 나는 항상 그래왔듯이 도서관에 눌러앉아 살고 있었다. 내가 주로 앉아있던 의자는 도서관 저 끝 어딘가에 무심히 놓여있던 의자였다. 나는 그 의자 위에서 바른 자세로 앉아 책을 읽기도 하고, 숙제를 하기도 하고, 누워서 책을 뒤적이기도 하고, 그러다가 잠깐잠깐 눈을 붙이기도 하고, 도로 깨서 다시 책을 읽기도 했다.

 때때로 나는 그 의자가 사실 버려진 건 아닌가, 생각해보기도 했다. 통풍도 안 되고, 시원하지도 않고, 따뜻하지도 않는 자리에 의자가 놓여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언제나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정이 들었던 것 때문일까. 이유야 확실치 않지만 나는 그 자리가 편하다고 느꼈다. 외딴 자리임에도.

 의자 앞에는 기나긴 책장이 하나 있었다. 하얀 색 바탕에 굵은 글씨로 큼지막하게 제목을 박은 책들이 가득했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그리 예쁘지 않은 책 표지 때문인지 아니면 300번 조금 넘는 거대한 분량 때문인지 그 누구도 쉽사리 이 문학전집에서 책을 읽으려하지 않았다. 1번부터 306번까지 가지런한 정렬 속에는 그 어떤 빈틈도 없었다. 때때로 58번 다음에 60번이 되는 순간도 있었으나, 그건 정말 순간이었고 잠깐이었다. 나는 간혹 가다 거기서 헤르만 헤세나 헤밍웨이를 꺼내 읽기도 했다.

 거대한 전집 사이에서 셰익스피어를 발견하게 된 건 정말 우연 같았다. 읽을 만한 게 또 없을까하며 전집 구석구석을 뒤적거리다가 셰익스피어라는 이름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당신에게 셰익스피어를 읽었다고 거짓말한 밤이 생각난 것은 그 순간이었다. 나는 당신의 이름을 조용히 부르면서 굵은 글씨로 인쇄된 셰익스피어라는 이름을 더듬었다.

 일 년 전의 기억이 조심스레 일 년 후의 지금을 향해 날아왔다. 나는 기억의 궤적을 따라 『멕베스』를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그러곤 『햄릿』을 읽었고, 『오셀로』를 읽었으며, 『리어 왕』을 읽었다. 셰익스피어라는 부드러운 이름은 어느새 감미로운 숨결로 바뀌어 내 주변을 휘감아돌고 있었다.

 『멕베스』는 운명의 비극이었다. 한 인간이 운명을 거역하려는 순간에 발생하는 마찰음을 활자로 고스란히 내려앉힌다면 이런 작품이 나올 것 같았다. 『햄릿』은 복수의 비극이었다. 아버지를 위한 복수가 주변 사람들을 모조리 무너뜨리는 광경이 군데군데 새겨져 있었다. 『오셀로』는 질투의 비극이었다. 질투가 사람들을 서서히 파멸로 이끄는 모습이 가장 섬세하게 그려져 있었다.

 『리어 왕』은 오해의 비극이라고 할 수 있었다. 리어 왕은 세 딸 중에서도 특히 막내딸, 코딜리아를 사랑했다. 코딜리아 역시 리어 왕을 사랑했다. 그런데 사랑이란 감정을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수많은 시인들이 사랑을 언어로 표현하려 했던 것은 역설적이게도 그 누구도 사랑을 언어로 표현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코딜리아는 이런 사실을 알았던 모양이다. 그래서 그녀는 자신을 얼마큼 사랑하느냐는 리어의 질문에 침묵한다. 그 침묵을 리어는 잘못 받아들인다. 리어는 다시 묻는다. 너는 나를 사랑하지 않냐고. 코딜리아는 답한다. 그 질문에 답할 수가 없다고. 리어는 코딜리아를 내쫓는다. 지금까지 코딜리아에 대한 자신의 사랑이 완벽하게 거부당했던 거라고 슬퍼하기까지 한다.

 리어의 신하였던 글로스터 백작의 집안 상황도 리어와 비슷하다. 그는 장남인 에드거를 상당히 아꼈다. 또다른 아들인 에드먼드는 글로스터에게 말한다. 사실 에드거는 당신을 몰아낼 준비를 하고 있다고, 그를 조심하라고. 글로스터는 그만 에드먼드를 믿고 만다. 리어가 코딜리아에게 그랬던 것처럼, 글로스터도 에드거를 의심하고 미워한다.

 리어와 글로스터의 오해는 커다란 파멸을 부르고 만다. 리어는 두 딸에게 배신당한다. 글로스터 역시 에드먼드에게 배신당한다. 리어는 미쳐 폭풍우처럼 날뛰고, 글로스터는 장님이 되어 방황한다. 그제서야 그들은 깨닫는다. 자신들이 진정한 사랑을 오해하고 있었다는 것을.

 그러나 슬프게도 깨달음은 너무 늦었다. 이미 비극의 그림자는 드리워졌다. 그럼에도 그들은 끝끝내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오해로 벌어진 이 비극의 소용돌이를 멈출 수 있는 건 믿음일 것이라고. 리어는 코딜리아를 다시 믿기 시작하고, 글로스터는 에드거에 기대 삶을 버텨나가기 시작한다. 결국 그 믿음은 헛된 것으로 드러나지만…….

 책을 읽은 후에 당신을 생각했다. 이 책을 펼친 것도 당신 때문이었으니, 이 책을 덮은 것도 당신 때문일 것이다. 어떤 점에서, 우리, 『리어 왕』을 닮지는 않았나, 그 밤을 생각해본다. 셰익스피어를 읽었다고 당신에게 거짓말했던 그 밤을. 그 거짓말의 의도는 알 수 없었다. 어쩌면, 우리, 그런 방식으로, 조금씩, 조금씩, 서로를 오해했던 건 아니었을까. 리어가 코딜리아에게 그랬던 것처럼, 글로스터가 에드거에게 그랬던 것처럼. 서로가 진실하다는 것을 진작부터 알고 있었으면서, 어딘가, 조금씩, 어긋나버린 건, 또, 아닌가.

 당신의 이름을 고요히 불러본다. 당신의 이름은 조그만 부피로 공기를 비집고 들어가다 사라졌다. 폭풍 치는 밤의 끝에서 리어가 코딜리아를 끌어 안았던 기분을 조금은 알 것도 같았다. 그는 그녀를 오해했던 걸 후회하지 않았을 것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는 자신의 오해를 후회할 겨를도 없었을 것이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다시 그녀를 믿는 일이었을 테니까. 『리어 왕』은 그 믿음마저 결국은 헛된 일인 것처럼 보여주지만, 적어도 리어 왕에게는 그 믿음이 헛된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절망의 끝자락에서 희망의 미명을 발견한 사람이 으레 그렇듯이.

 적막한 밤이었다. 밤하늘에 고독, 이란 글자를 적어놓아도 크게 상관은 없을 것 같았다. 나는 당신에게 전화를 걸었다. 몇 번의 신호가 간 다음 당신이 전화를 받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뜬금없이 물었다. 일 년 전 이 밤을 기억하고 있냐고. 당신의 얼굴은 볼 수 없었으나, 당신은 아마 의아한 표정이었을 것이다. 당신이 어리둥절한 사이에 나는 말을 붙였다. 나, 셰익스피어를 읽었다고. 그 말은 평소와 다름없는 말투였을 수도 있고, 자랑조였을 수도 있고, 서글픈 어감이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세부적인 것들이 중요한 건 아니었다. 지나간 밤의 흔적들이 셰익스피어를 지나 당신에게 도달하고 있다는 게 중요했다. 당신도 셰익스피어를 읽어보길 바란다고. 그러고나서 셰익스피어가 좋아지길 바란다고.

 

 

사족) 이 글은 분명히 독후감이라는 학교 숙제를 위해 쓰기 시작한 글이나, 어느 순간부터 수필도, 소설도, 감상도 아닌 글로 바뀌어버렸습니다. 이대로 글을 버리기에는 뭔가 안타까워 눈 딱 감고 '감상&비평'에 올립니다.

韓雪

추천 콘텐츠

허상 - 김영하, 『살인자의 기억법』

 사막에서 길을 잃는 것은 그 무엇보다도 고통스러운 일이라고 한다. 살인적인 열기의 낮과 극심한 추위의 밤. 인적 하나 없는 광대한 공간 속의 외로움. 그보다 고통스러운 것은 메워지지 않는 목마름일 것이다. 그렇기에 문득 저 멀리에 호수가 보인다면 누구나 뛰어가기 마련이다. 희망을 가득 품고 허위허위 달려가 보지만 정작 있는 것은 모래밖에 없다.  신기루. 광학에서는 빛이 실제로 만나서 생기는 상을 실상이라고 하고, 빛이 실제로 만나지 않았음에도 생기는 상을 허상이라고 한다. 허상이 생기는 이유는 빛이 직선으로만 뻗어나가지 않기 때문이다. 미묘한 기온 차이에도 빛은 조금씩 꺾인다. 그 조금씩의 차이가 모여 나중에는 뒤집힌 허상을 만들어낸다.  우리의 눈은 실상과 허상을 구분하지 못한다. 우리는 나무가 뒤집혀 있는 것을 보고 호수에 나무가 반사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허상을 실상처럼 받아들이는 것. 삶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는 광활한 삶의 한복판에서 이리저리 방황하다 우연히 발견한 이상을 향해 달려가곤 한다. 사막에서 길을 잃은 자가 호수를 향해 달려가듯이. 마침내 이상에 도달했다고 생각했을 때쯤 우리는 허상을 바라보고 살아왔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어쩌면 그것이 바로 우리 삶에 내재되어 있는 부조리일지도 모른다.  김영하는 부조리의 작가다. 그는 지금까지 우리 삶에 숨어있는 허상을 들춰내어 폭로해왔다. 앞서 그는 「오빠가 돌아왔다」에서 왜곡된 가족 구성원의 모습을 보여주며 행복한 가정이라는 허상을 파헤친 바 있었고, 『빛의 제국』에서는 서로를 속이고 있는 인물들의 모습을 통해 진실한 관계라는 허상을 파헤친 적도 있었다.  『살인자의 기억법』에서 그가 천착하는 것은 바로 자아의 확실성이라는 허상이다. 그가 어떻게 자아의 확실성이라는 허상을 밝혀내는지 알아보기 위해서는 소설을 꼼꼼하게 확인할 필요가 있다.  소설의 주인공 김병수는 은퇴한 연쇄살인범이다. 그는 “살인의 모든 과정과 느낌을 기록”하기 위해서 일지를 쓰겠다는 마음을 먹었지만 문장을 만든다는 건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니었기에 시를 공부했고 어쩌다 등단까지 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는 이제 알츠하이머에 걸린 평범한 일흔 살의 노인일 뿐이다.  그에게는 딸이 하나 있다. 이름은 은희. 그녀는 “농대를 나와 지역의 연구소에서” 일하고 있다. 사실 그녀는 그의 친자식이 아니다. 그녀는 그가 마지막으로 죽인 여자의 딸이다. 여자는 자신의 딸만은 살려달라고 빌었고, 그는 그 약속을 지켜주기로 했을 뿐이었다.  그런데 연쇄살인이 발생한다. “잇따라 여자 셋이 죽었”고 “세 여자 모두 이십대”인데다가 “밤늦게 귀가하다가 당했다”고 한다. 연쇄살인범으로부터 은희를 보호하기에는 그는 너무도 늙었고 심지어 최근 기억부터 없어질 위기에 처해있다. 그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은희에게 밤길을 조심하라는 주의상황을 말하는 것뿐이었다. 다행스럽게도 그는 우연한 기회로 연쇄살인범의 단서를 찾는다.  나는 순간적으로 정차해 있는 놈의 차를 보지 못하고 그대로 추돌하고 말았다. 사냥용으로 개조한 지프였다.

  • 韓雪
  • 2014-12-23
과학에 관하여

과학이란 무엇인가 이제 갓 태어난 아기를 생각해보자. 열달동안 어둠 속에 살았던 아기의 눈에 분만실의 환한 조명이 들어왔을 수도 있고, 수술이 끝난 의사의 안도한 표정이 들어왔을 수도 있고, 비로소 어머니가 된 한 여자의 얼굴이 들어왔을 수도 있다. 아기의 눈에 어떤 것이 보였는지는 사실 중요하지 않다. 정말로 중요한 것은 아기가 ‘너’라는 존재를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어머니와 다를 바 없었던 시간이 끝나자마자 홀로 세상과 대면하기 시작하면서 ‘너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품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아기가 어떤 물건이든지 우선 입에 넣어보려는 행동은 이러한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다. 아기에게 있어서 감각이 가장 발달된 기관은 입이다. 아기는 물건을 입에 넣어보면서 물건에 대해 파악해나가는 것이다. ‘너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은 곧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으로 바뀐다. ‘너’라는 존재를 그토록 궁금하게 여기는 ‘나’는 도대체 어떤 존재인가. 타자에 대한 의문이 자아에 대한 의문으로 바뀌는 순간이다. 결국 모든 인간은 원초적이고 근본적인 두 질문을 끌어안고 살아가는 셈이다. ‘너는 누구인가’ 그리고 ‘나는 누구인가’. 모든 학문의 근저에는 이 두 가지 질문이 있다. 다만 조금씩 방법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조금은 말장난 같겠지만, 미학은 미학적인 방식을 통해 아름다움의 원리와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자기 자신에 대해 알아가려는 학문이고, 경제학은 경제학적인 방식을 통해 경제 행위의 원리와 경제 주체로서의 자기 자신에 대해 알아가려는 학문이다. 그렇다면 과학은 무엇인가. 과학 역시 과학적인 방식을 통해 자연 현상의 원리와 그 원리를 따르는 자기 자신에 대해 알아가려는 학문이다. 과학적으로 ‘너’와 ‘나’를 분석해 보려는 학문이다. 그렇다면 과학적인 방식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도대체 과학적이란 것이 무엇이기에 우리는 과학을 절대적인 진리처럼 받아들이는 것인가. ‘과학적’이라는 단어를 명확하게 이해하기 위해서 몇몇 과학철학자의 생각을 살펴 볼 필요가 있다.   과학은 생각의 관성이다 ‘해는 동쪽에서 떠오른다’라는 지식을 우리는 어떻게 얻게 되었을까. 우선 우리는 매일 해가 동쪽에서 계속 떠오르는 것을 확인했었다. 지금까지 해가 동쪽에서 계속 떠올랐다는 것을 확인한 우리는 내일도 태양이 동쪽에서 떠오를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런데 100년도 채 안 되는 삶을 바탕으로 내일도 그럴 것이라고 섣불리 판단해도 될까? 물론 아주 오래전부터 전해져오는 역사책을 근거로 들면서 해가 동쪽에서 떠오른 것이 적어도 몇천년이 되었기에 확신할 만하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그러나 확신할 만한 것과 확실한 것은 분명히 다르다. 지금까지 태양이 매일 동쪽에서 떠올랐다는 사실과 내일도 태양이 동쪽에서 떠오를 것이라는 사실에는 어떠한 연관 관계도 없다. 그럼에도 우리는 오랜 기간의 경험을 절대적인 지식으로 처리해버린다. 태양이 내일 서쪽에서 떠오를 수 있는 가능성이 분명히 존재함에도, 지금까지의 경험을 미루어 보았을 때 동쪽에서 떠오를 것이라고 단정 짓는 것이다. 모두

  • 韓雪
  • 2014-07-13
나와 너 사이에서 - 김연수,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당신, 사랑을 믿나요?    언젠가 당돌하게 소설의 첫 문장을 써본 적이 있다. 당신, 사랑을 믿나요. 거기서 끝이었다. 글은 더 이상 나아가지 않았다. 원래 문장은 문장을 부르는 법이다. 문장이 제대로 들어서기만 하면 자연스레 그 다음의 문장이 들어선다. 나는 분명히 정확한 문장을 썼다. 주제를 함축하고 있는 문장이었고, 읽는 이의 관심을 끌만한 문장이었으며, 문법적 오류도 없었다. 그럼에도 글은 써지지 않았다.  어디선가 읽어본 듯도 했다. 제대로 문장을 썼는데도 다음 문장이 따라오지 않는다면, 그건 자신이 쓴 문장을 스스로 믿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그 누구도, 심지어 자기 자신조차도 설득시킬 수 없는 이야기를 시작했기 때문이라고. 당신, 사랑을 믿나요? 나는 이 문장을 믿지 못한 게 분명했다. 나는 사랑에 설득되지 않았다. 나는 사랑을 믿지 못했다.  한 줄만 써놓고 버렸던 원고지를 내가 다시 꺼내는 데에는 꽤나 긴 시간이 필요했다. 그동안 내가 사랑에 설득되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어느 순간부턴가 나는 사랑을 믿었다. 당신, 사랑을 믿나요? 이 문장을 믿을 수 있었다. 소설을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문장은 문장을 따라왔다. 물론 첫 문장은 다른 문장으로 바꿨다. 퇴고를 하면서 첫 문장이 너무 감상적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 소설이 어떻게 시작해서 어떻게 끝났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내가 소설을 써냈다는 것이다. 그 문장으로. 도저히 믿을 수 없었던 문장으로 말이다. 사랑을 믿지 않았던 나는 사랑을 믿게 되었다. 돌이켜보면 그건 순전히 김연수의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이 아닐까 싶다. 나는 김연수 때문에 사랑에 설득되었고 사랑을 믿었던 것이다.  세상은 크게 둘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나’와 ‘너’로. 자아와 타자. 세상은 그 둘로 구성되어 있다. 나와 너는 이분법적이다. 나와 너 사이에는 거대한 심연이 있다. 나와 너는 선천적으로 다르다. 나는 결코 너가 될 수 없다. 물리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그렇다. 나는 너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도무지 알 수 없다. 너의 조그마한 움직임이나 바뀐 말투 정도로 너의 생각을 간신히 추측할 뿐이다. 나에게 있어 너는 철저한 미지未知다. 그리고 그건 너도 그렇다. 너는 결코 나라는 존재가 될 수 없다. 나와 너는 영원히 갈라서 있다.  사르트르는 말했다. 타자, 그것은 곧 지옥이라고. 너라는 존재는 나를 절대로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너는 내가 진정 무엇을 원하는지 알지 못한다. 그런데도 너는 나를 끊임없이 간섭한다. 결국 너는 나를 꺾어버린다. 내 의지는 너 앞에서 비참하게 허물어질 뿐이다. 사르트르에게 있어서 너란 존재는 나를 방해하는 존재일 뿐이며 극복되어야 할 그 무엇일 뿐이다.  타자를 극복하려 했던 건 사르트르뿐만이 아니다. 철학사에 이름을 남긴 대부분의 철학자들 역시 타자를 극복해야 할 그 무엇이라고 규정했다. 그들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건 자기 자신이었다. 나라는 존재만이 유일하고 확실하며 절대적이라고 그들은 생각했다. 이런 생각은 유아唯我론으로 귀결된다

  • 韓雪
  • 2013-11-17

댓글 남기기

로그인후 댓글을 남기실 수있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을 남겨 주세요!

댓글남기기 작성 가이드

  • 타인에게 불쾌감을 주는 욕설, 비방 등은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 주제와 관련 없거나 부적절한 홍보 내용은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 기타 운영 정책에 어긋나는 내용이 포함될 경우, 사전 고지 없이 노출 제한될 수 있습니다.
0 /1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