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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일 포스티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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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일 2014-05-02
  • 조회수 1,572

1.

 어촌에 살면서 고기잡이에 관심이 없고, 문명을 동경하는 마리오와 정치적 성향 때문에 망명하게 된 시인 네루다의 만남은 어쩌면 필연적인 것이었다. 일자리를 구하라고 아버지가 닦달하던 중 네루다가 이탈리아의 한 작은 섬에 살게 되고 마리오는 너무 당연스럽게도 네루다의 우편배달부로 취직하게 된다. 시에 대해서는 잘 모르며 그저 네루다가 여자에게 인기가 많다는 것만 아는 마리오는 ‘말을 하고자 하는 것을 다른 것과 비교하는’ 것인 은유에 대해 알게 되면서 시에 대해 눈뜨게 된다. 그리고 베아트리체를 사랑하게 되면서 그녀의 마음을 얻으려 ‘은유’란 무엇인지에 대해 배워나간다. 마리오는 일부러 만들어 낸 것이 아닌 순간적으로 느낀 감정의 표현을 말하는 법을 알게 되고 베아트리체의 마음을 얻게 된다. 둘은 결혼하게 되지만, 마리오에게 계속 도움을 주었던 네루다에게 체코로 돌아오라는 전보가 온다. 마리오는 직장을 잃고 더 이상 네루다를 만나지 못한다. 네루다에게는 몇 년간 소식이 없고 나중에 온 전보에는 그저 짐을 부쳐달라는 말밖에 없다. 하지만 마리오는 네루다가 떠난 뒤로도 네루다에게서 받았던 것들을 놓치 않는다. 곧 태어날 아이에게 파블리토라는 이름을 붙이고, 네루다가 알면 좋아할 거라며 시위에도 참여해 자신이 네루다를 위해 쓴 시를 낭송하러 가다 죽고 만다.

2.

 나는 사실 시인 네루다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인터넷에서 이름을 검색해보고 나서야 네루다에 관한 몇 가지 사실을 알 수 있었을 뿐이다. 이 영화에서 그는 산과 양파를 바라보며 시를 생각하고 아내를 사랑이라고 부르는, 세계 각지의 여자들에게서 편지를 받는 시인일 뿐만 아니라 공산주의자의 지지를 받으며 조국을 떠나 망명하는 정치인이기도 하다. 하지만 내가 마음에 들었던 네루다의 모습은 시인으로서의 모습이었다. 영화에서 다루는 전반적인 내용이 시란 무엇인가? 에 대한 질문에서 시작하는 것처럼 시를 끌고 나가는 것이기도 했다. 오래된 영화이며 또 외국영화이지만 그와 상관 없이 네루다가 말하는 시를 쓰는 방법, 즉 은유를 하는 방법은 너무 당연하면서도 새롭게 느껴졌다. 예를 들어, ‘어떻게 시인이 되셨어요?’ 라는 마리오의 질문에 ‘해변을 따라 천천히 걸으면서 주위를 감상해 보게.’ 라고 답하며 ‘그럼 은유를 쓰게 되나요?’ 라는 질문에는 ‘틀림없을 거야.’ 라고 답한다. 주위를 잘 관찰하며 느끼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인데 네루다의 이런 은유적인 시적 설명이 와닿았다. 또, ‘난 내가 쓴 글 이외의 말로 그 시를 표현하지 못하네. 시란 설명하면 진부해지고 말아. 시를 이해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 감정을 직접 경험해 보는 것뿐이야.‘ 같은 대사도 좋았다. 먼저 시를 느끼지 않고 시에 대한 설명부터 들으면 교과서적으로 다가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던 내 경험 때문이기도 한 것 같다. 영화 중간 중간에는

난 시들고 멍한 느낌으로/ 영화 구경을 가고 양복점을 들린다/ 독선과 주장의 틈바구니에서 시달리고 있는/ 덩치만 큰 백조처럼/ 이발소에서 담배를 피며/ 피투성이 살인을 외친다/ 인간으로 살기도 힘들다

 처럼 마리오가 시에 대해 느낄 때,

 섬에서 바다가 너무 많다/ 바다는 육지를 넘나들며/ 좋다고, 아니 싫다고/ 오지 말라고 말을 한다 /푸른 물, 거품, /파도가 싫어, 싫어, 하면서도/ 가만히 있지를 못한다/ 바위에 부딪치며 난 바다야, /하지만 바위는 들은 척도 안 하면서도/그러자 일곱개 초록 바다의/ 일곱개 초록 호랑이의/ 일곱개의 초록혓바닥으로/ 만지고 키스하며 핥아주고 가슴을/ 두드리며 반복해서 자신의 이름을 부른다

 같이 마리오가 ‘배가 단어들로부터 튕겨지는 것 같다’ 는 첫 번째 비유를 할 때 등 장면 부분 부분에 시를 삽입하곤 했다. 또 단테와 가브리엘이 베아트리체를 사랑했다는 사실들을 영화에서 일러주면서 서사적 구성이 이어지면서도 시에 대한 이야기가 줄지 않고 있다.

 

3.

 하지만 내가 여기서 한가지 더 바라보았던 것은 마리오의 변화였다. 마리오는 처음에 단순히 여자와 가까이 지내고 싶어 네루다에게 은유를 알려달라고 조르지만 정말로 시라는 것에 대해 느끼게 되면서 자신의 감정에 좀 더 솔직해진다. 처음에 베아트리체를 만났을 때는 이름이 뭐냐는 말밖에 하지 못했으나 용기를 갖고 당신의 ‘미소가 나비의 날개짓같다’ 는 말도 하고 베아트리체의 숙모가 자신과 베아트리체 사이를 반대한다는 사실을 알고도 포기하지 않는다. 정치인 앞에서 당당히 자신은 반대당인 사회당을 뽑을 것이라고 하며 조개값을 깎는 정치인을 비난하기도 한다. 마리오는 은유를 배우며 변화한 것이다.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마리오가 네루다를 위해 섬의 이곳저곳을 녹음하는 장면이었다. 마리오는 전에 섬의 ‘아름다운 모습’ 을 말하라는 질문에 처음에는 그저 자기가 좋아하는 베아트리체의 이름을 말할 뿐이었다. 하지만 은유를 배우고 난 후, 네루다가 떠나고 난 후로는 네루다가 말했던 섬의 아름다움이 무엇이었는지 알게 된다. 은유란 우리가 보지 못했던 것들을 더 풍요롭게 보여주는 것이라는 말을 하고 싶어한다고 느꼈고 그렇게 생각하게 되었다.

 마리오는 영화의 마지막에서 군중들에게 깔려 죽는다. 네루다와 그의 아내가 이탈리아의 섬을 찾고 탁구공과 함께 아이가 등장할 때만 해도 나는 해피엔딩이라고만 생각했다. 만약 이 영화가 행복한 결말을 맺었더라면 그저 아름다운 영상과 네루다의 시가 나오는 영화로만 끝맺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사람들의 기억 속 오래 남는 영화가 되었다. 나는 그게 마리오가 죽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마리오는 베아트리체가 말리는데도 자신의 소신대로 시위에 참여해 사람들에게 짓밟혀 죽고 만다. 결국은 시 한 편을 완성한 채, 그 시를 네루다에게 바치며 낭송하려다가 그렇게 죽고 마는 것이다.

 

4.

 ‘일 포스티노’ 라는 뜻은 우리말로 ‘집배원’ 이라는 뜻밖에 더 되지 않는다. 제목은 나타내고 싶었던 무언가에 대해 힌트를 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시를 소재로 했던 또 다른 영화, 이창동의 ‘시’ 에서는 주인공인 미자가 손자 욱이와 욱이가 성폭행한 소녀 아네스에 대해 알아가며 삶의 이면을 알아가고 결국 시를 완성했기 때문에 제목을 ‘시’ 라고 붙였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일 포스티노’의 제목이 ‘네루다’ 도, ‘마리오’ 도 아닌 ‘일 포스티노’ 라는 것은 네루다의 우편 배달부를 하면서 삶이 변화하게 된 한 청년과 시의 힘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서였기 때문이라고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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