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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킹 '그것'을 읽고

  • 작성자 neo
  • 작성일 2016-01-30
  • 조회수 2,259

내가 언제부터 '공포'라는 장르를 좋아하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최근에 내가 공포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공포덕질(?)을 하기 시작했다. 아니, 오래전부터 그래 왔다고 해야 맞을 것이다.

유명한 공포영화를 찾아보고, 공포만화를 찾아보고, 공포웹툰을 꼬박꼬박 챙겨서 보고...

공포소설도 찾고 있었는데 어느 날 내가 던진 질문에 형이 스티븐 킹이라는 작가가 있다고 했다. 미국에서 엄청 유명한 공포 소설 작가라는 것이다. 그래서 당장 인터넷에 검색해보니... 수많은 책들이 있고 대부분이 거의 다 공포 소설이었다.

그런데 그 많은 책 중에서 유독 눈에 띄는 것이 있었다.

<그것(IT)>이라는 책이었는데, 사진에 광대처럼 생긴 것이 괴물처럼 입을 벌리고 있어서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다른 책들을 보면서도 '그것'에 대한 호기심은 더욱 더 커져갔고, 어느 때부터 눈을 부릅뜨고 찾기 시작했다.

도서관에서 찾아보고, 서점에서 찾고, 이리저리 방황하며 돌아다니면서 두리번거린 결과 마침내 한 서점에서 발견하게 되었는데,(드디어! 앗싸!!.. 처음 봤을 때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세 권으로 쪼개서 있었고 생각보다 상당히 두꺼웠다.

자그마치 1800페이지나 되어서 아예 작심하고 보지 않는 한은 안 될 정도였는데 그냥 나는 아무 생각 없이, 당연히 찾았으니 봐야 한다는 생각으로 그냥 거기 서점에서 구매하지도 않고 보기 시작했다.

 

알고 보니 열두 살 소년 소녀가 나오는 '아, 그때 그 시절'이야기였는데, 단순한 청춘 성장 드라마가 아니었다.

어렸을 때 동생 조지를 '그것'에게서 잃고 '그것'을 죽이려고 하는 빌 덴브로와 '그것'에게 당한 여섯 명의 아이들이 서로 모여 복수하려는 계획을 세워나간다. 각자 그것을 다른 방식으로 보는데, 하나는 미라로, 하나는 문둥이로, 또 하나는 어릿광대로 본다. 각자 자신이 두려워하는 모습으로 '그것'이 변신을 해 아이들을 하나하나씩 먹어치우는 것이다.

사실상 '그것', 그러니까 광대 페니와이스는 가상의 인물이다. '데리'라는 도시에 사는 괴물로서, 아이들의 깊은 마음속 내면에 존재하는 동시에 바깥세상도 다스리고 있는 악마인 것이다.

대체로 '그것'은 어릿광대 페니와이스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그 광대에게 속거나 대항하지 못하는 애들은 잡아먹히지만, 이 일곱 친구들은 서로 힘을 합쳐 멋지게 그것을 물리쳤...으면 좋겠지만 아쉽게도 그것에게 부상만 입히고 몇 십 년이 지나가 버린다. 그 후로 일곱 친구들 중 한명이 그것이 돌아왔다는 사실을 알리고 나머지 여섯 친구들이 다시 그것을 소멸시키고자 데리로 모인다.

 

정말 언뜻 보면 그냥 단순한 이야기로 보이지만, 그것을 죽이고자 하는 아이들의 행동 과정을 꾸준히 지켜보면 굉장히 흥미롭다. 최루액을 뿌리고, 천식약을 뿌려대는가 하면, 은화를 녹여 은구슬을 만드는 둥 온갖 별의별 희한한 방법으로 그것에게 대항한다. '그것'을 물리치는데 이렇게 특이한 방법을 쓰는 이유는, (방금 전에도 말했듯이)그것은 아이들 마음속에 존재하는 동시에 바깥세상에도 존재하므로 아이들이 '이 무기는 그것에게 괴물에게 통할 거야.'라고 생각하면 그 무기가 괴물에게 통하게 되기 때문이다.(웃기게도 그렇다. 그러나 안 그럴 때도 있고 그 기준이 애매모호하다. 스티븐 킹의 세계관이란 참으로 독특하다.)

그래서 이 일곱 명의 친구들도 영화에서 은구슬이 늑대인간에게 치명적 부상을 입힌 것을 보고 '그것'도 은구슬에게 당한다는 확신에 차 그것에게 상처를 입힐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일진놈들에게 쫓기면서도 그것과 맞서 싸우는, 아주 대단한 용기를 보여주는 '어린아이들의 용기와 사랑과 힘' 뭐 그런 것을 스티븐 킹은 보여주려고 한 것 같다.

어떤 면에서 보면 스티븐 킹의 <그것>은 영화 <구니스>와 매우 흡사하다.

구니스도 일곱 명의 친구들이 주인공이고 악당이 있는데다가, 우연인지 아니면 미국 스타일이 이런 것인지 일곱 명의 친구들 중에 천식 환자랑 여자랑 안경쟁이 등이 모두 <그것>에 나오는 친구들과 똑같다. 그렇지만 왜 그렇게 똑같이 되는지 대충 짐작은 간다. 아마도 똑같이 '미국'소설이기 때문에 그런 것이리라.

사실 어떻게 보면 그리 대단한 명작은 아니다. 좋지 않게 보면 그저 그냥 아이들이 자신이 두려워하는 괴물을 물리치려고 한다- 라는 식상한 이야기 전개에 불과하니까. 그러나 분명 뭔가를 깨닫게 하는 것이 책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빌 덴브로와 나머지 친구들은 어렸을 때 그것을 물리치지 못하지만 시간의 지난 뒤에 성인식을 치른 후 다시 그것과 대면하러 데리로 출발한다. 페니와이스는 그들에게 힘이 전부 사라졌다고 비웃지만 빌 덴브로와 그의 친구들은 신경 쓰지 않고 멋지게 '그것'을 처단한다. 그렇지만 역시 신 같은 능력을 지닌 '그것'을 죽이기에는 많은 대가가 따르는 법이다. 빌 덴브로의 친구들 중 한명은 죽고, 아내는 정신에 이상이 생긴다. 그러나 그들은 어쨌든 '그것'을 죽였고, 그 후로 각자 흩어져 새 삶을 살아간다.

어느덧 옛날 생각은 추억 속에 파묻혀 사라져가고.., 소설 마지막에 주인공 빌 덴브로는 어렸을 때의 추억을 되새기고자 옛날에 타고 다녔던 자전거 '실버'를 꺼낸다. 그리곤 아내를 뒷좌석에 태우고 앞을 향해 달려간다. 아내는 곧 제정신으로 돌아오고, 빌 덴브로는 가끔씩 친구들과 함께했던 '아, 그때 그 시절'을 마음속 깊숙이 담아두고 기억하는 것으로 이 기나긴 장편소설 <그것>은 끝이 난다. THE END.

이 소설은 내가 기대했던 것만큼의 재미를 충족시키고 보장시켜 주었지만, 어딘가 모르게 마음속 한구석 찜찜한 구석이 나돌아다닌다. 왜 그럴까? 곰곰이 생각을 해 본 결과(사실 그렇게 오래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광대 페니와이스가 죽어서 아쉬워서 그렇구나ㅡ 인 것 같았다. 어쩌면 결말 부분 때문에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대부분 스티븐 킹의 결말 식은 '다 죽고 비극'이거나 '아직 희망이 있다'로 끝나기 때문이다. 이 외에도 다른 결말을 많이 사용하지만 결코 '완전한 해피엔딩'은 없었다. 해피엔딩으로 끝나도 뭔가 찜찜한 구석이 남아야 진정한 스티븐 킹의 소설인 줄 알게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것>은 예외였다. 진짜 말 그대로 온전한 '해피엔딩'이었다. 뭐 한번쯤은 색다른 결말을 써 보는 것도 재미있지만 나는 이런 결말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나는 진정한 '스티븐 킹 식의 결말'을 원했다. 차라리 빌 덴브로가 다 끝난 줄 알고 안심하고 있다가 '그것'이 눈앞에 나타나는 것으로 완성했으면 어땠을까.

스티븐 킹의 장편소설 <그것>은 여러 가지 의문과 도무지 끝나지 않을 의혹들을 풀어놓지만, 작품의 완성도가 높고 대중의 인기를 받아 여전히 베스트셀러로 기록되고 있다. 그 말인즉슨 <그것>이 대단히 잘 쓴 작품이라는 것이다. 나도 그렇게 느꼈다. 스티븐 킹이 소설을 정말 탁월하게 쓰는구나, 하고 말이다. 이 멋있는 소설을 보고 난 후 나는 스티븐 킹의 소설에 더욱 흠뻑 빠져들어 아직도 스티븐 킹의 세계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이토록 오랫동안 붙잡아 두고 있는 것을 보면 역시 스티븐 킹이 거장은 거장이구나 하는 생각이 다시 한번 뇌 속 깊숙이 자리 잡게 된다. 다소 아쉬운 점이 많았지만 <그것>은 내가 스티븐 킹의 소설들 중 가장 좋아하는 작품들 중 하나다. 스티븐 킹이 이제는 늙어서 글 실력이 많이 떨어졌지만 그래도 아직까지 살아서 집필하는 것을 보면 참으로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된다.

 

 

몇 개월 동안 헤맨 끝에 드디어 <그것>독후감을 완성하게 되었다.

사실 그동안 줄창 이것만 쓰고 있었던 게 아니라 다른 일도 많이 하고 다른 감상문도 쓰고 있었기 때문에 몇 개월 동안 이 독후감만 썼다고 말하기엔 좀 그렇다. 쓸데없이 시간만 늘렸다는 생각이 든다.(사실 계속 미룬 적도 있음) 나의 소망은 그냥 이 글을 본 독자가 가볍고 편안한 마음으로 읽어 주었으면 하는 것이다. 그럼 나는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 애초에 이 글을 쓸 때 내가 귀중하게 여기는 작품을 독후감으로 소화시킨다는 생각에 부담이 돼서 많이 고민하면서 쓰기도 했는데, 계속 쓰다 보니까 '아, 이렇게도 쓸 수 있겠구나, 써 보니까 쉬워지네.'하고 자연스레 부담감이 덜어지게 되었다. 그래서 이렇게 몇 개월 만에 완성할 수 있었고, 그동안 스티븐 킹 소설을 꼬박꼬박 챙겨 봐서 이렇게 잘(?)쓰게 되었다는 생각도 든다. 아무튼 독후감 쓰는데 시간이 오래 걸렸고, 나름 만족스런 독후감이 되어 나 자신이 자랑스럽다.(너무 자뻑이 심하다는 생각이 안 드나?ㅋ)

이렇게 재미있는 소설을 보여준 스티븐 킹 작가에게 감사를 드린다. 또한 옆에서 방해하지 않고 얌전히 있던 내 동생도 고맙게 생각한다. 이제 그만 마치도록 해야겠다. 자꾸 미련이 남아 계속 쓰려고 하는 것 같은데 이만 이쯤에서 끝내기로 하자. 너무 오래 쓰면 좋지 않으니까. 어쨌든,

스티븐 킹의 <It(그것)>, 정말 대단하고 멋있는 소설이다.

n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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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n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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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n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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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n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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