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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천으로 눈을 가리고 귀를 막고 있는 사회에게 외친다 : 김사과, 미나 (퇴고)

  • 작성자 윤별
  • 작성일 2017-02-19
  • 조회수 1,151

사회의 수많은 문제점들이 숨겨지는 순간이 있다. 존재의 부재가 정상으로 판단되는 순간이 있다. 특히 타인에게 보이는 면모를 중요시하는 곳에서는 끊임없이 이 이상현상들이 숨겨지고, 은폐되고, 또 공공연하게 포장되어 집단 밖으로 퍼져나가지 못하도록 막는다. 문제점은 죄악으로 치부되어 사람들에게 죄책감을 부여하고 마침내는 그들 스스로 입을 닫게 만든다. 여기 닫힌 입을 벌려 소리치는 작가가 있다. 우리 사회의 문제점을 눈앞에 들이밀며 이것이 바로 너희가 외면하고 싶어했던 진실, 이라고.

김사과가 지금까지 투고한 작품 중 걸작을 꼽으라고 하면 필자는 망설이지 않고 <미나>를 택한다. 물론 <02>와 <천국에서> 또한 그에 준하는 수작이나 미나는 장편소설임에도 불구하고 두 명의 주인공들에게 초점을 맞추어 이야기를 전개해 나가는데, 각각의 인물들의 감정표현과 그에 어울리는 문체 선정이 천재적이라고 평해도 아깝지 않다. 신예라는 타이틀을 내걸고 <영이>를 발표하던 시절부터 김사과의 독창성은 빛났고, 피크에 도달했을 때의 작품이 <미나>라고 볼 수 있겠다.

<미나>는 이상향에 대한 묘사가 상당히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그러나 이제까지의 이상향이 유토피아, 즉 미의식을 자극하는 순수함을 불러일으켰다면, 김사과가 펼쳐내는 이상향은 어지럽혀지고 멸종 직전의 세계인 디스토피아를 상상하도록 만든다. 병리학적 지점에서 <미나>의 주인공 수정은 정서적 결여와 분리장애, 그리고 경계선 인격장애를 함께 지니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것은 현대인들이 대체적으로 지니고 있는-그러나 인정하려 들지도 않고 인정하고 싶어 하지도 않고 심지어 자각하는 행위조차 죄악으로 여기는-정신분석학적 문제들이다. 김사과는 이러한 사회의 염증을 그대로 직면하고 돌파한다.

또 다른 주인공 미나 또한 수정과 비슷한 처지에 놓여 있다. 둘 다 현대사회의 부조리함과 모순점을 인지하고 염증을 느끼며 증오와 경멸을 품고 있는 동시에 무관심한 태도를 내비친다. 둘은 사회를 이해하려 들지 않는다. 이해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둘은 서로를 이해한다. 이해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지극히 이해관계에 기초한 관계이다. 명민한 미나와 수정은, 더 나아가 아이들은 세계에서 비추어지는 핑크빛 미래가 허상과 허영과 가식과 황홀한 신기루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들은 그렇기에 세계가 자신들에게 요구하는 개념과 질서와 규칙과 법률들을 배반하고 무시하고 증오한다.

아이들은 세계에서 감각을 제거하는 행위로서 연명한다. 세계에 대해 냉소적으로 일관하는 아이들은 의식적으로 감각을 제거했거나, 무뎌지고 무뎌져서 이제는 더 이상 느끼지 못하는 상태에 이르렀다. 아이들은 이렇게 살아간다. 수동적인 세계를 견뎌낼 수 있는 방법은 경멸이다. 경멸과 무관심으로 대응함으로서 아이들은 세계의 타자성을 인정하지 않는다. 타자성을 인정한 이들은 낙오자로 치부한다.

셔터를 내리는 것은 일종의 방어기제적 성격을 띠고 있는 것으로, 아이들은 생존을 위해 방어기제의 발현을 익힌다. 이것이 깨지는 것은 자살과 살인이 일어날 때뿐이다. 이 순간 방어기제는 필요하지 않다. 죽음은 세상과 긴밀하게 상호작용하고 있던 감정의 전원을 내려버리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단편적으로밖에 보이지 않으나, 박지예는 감각을 제거하는 행위의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살한다. 뚜렷한 명목은 드러나 있지 않다. 다만 박지예의 자살은 다른 지친 아이들에게 기폭제 역할을 하기에 충분했다.

박지예가 자살함으로서 미나와 수정은 세계의 타자성을 인식한다. 자신과 세계는 별개의 문제이다. 세계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도 시험을 보아야 하는 사실은 변함이 없고 달라질 것은 아무것도 없다. 살아남아야 한다. 여기에서 미나는 세계에 대한 증오와 무관심을 꺼뜨려버린다. 감정에 동화되어 시험을 백지로 내는 완벽하게 가련한 소설 속 여주인공의 모습을 연출한다.

수정은 미나의 감정을 이해하지 못한다. 자신을 유일하게 이해해 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미나가 감정이 없는 세계에서 떠난다. 그래서 수정은 미나의 슬픔을 질투한다. 질투는 애착과 사랑을 유발하면서 극단적으로 피폭된다. 자신이 모르는 것은 없어야 하며 자신이 가질 수 없는 것 또한 없어야 한다. 미나는 자신이 이해할 수 없는 또 다른, 그리고 유일한 사람이다. 이해할 수 없으면 어떻게 해야 하지? 간단하다. 죽이면 된다. 이해의 개념을 소유의 개념으로 치환하면 된다.

수정은 21세기의 엘리트들의 극단적인 표상이다. 사회의 염증을 느끼고 무관심과 증오로 일관하지만 영리한 수정은 제게 유리한 것을 인지할 만큼 영악하다. 수정은 사회 체제를 바꾸려는 시도를 하지 않는다. 자신이 위에서 군림할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이는 수정의 논술 답안에서도 드러난다. 자신의 글 안에 조악한 세계를 가두어 버리려는 시도이다.

수정의 사고방식은 전형적인 경계선 인격장애 환자의 사고방식과 유사하나 완벽함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그 특이성을 찾아볼 수 있다. 다가올 때는 불안해하지만 한편으로는 소유하고 싶어한다. 두 충돌은 사람의 정신을 공격해 두 인격이 마치 한 몸에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한다. 해서 수정은 미나를 한순간 사랑스럽게 여겼다가 다음 순간 구역질 날 것만 같이 혐오스럽고 비천하게 여기고, 그 다음 순간에는 미나를 다시 아름답다고 칭하며 숭배하는 것이다.

수정은 여기에서 한 발자국 더 나간다. 엘리트의 길을 걸어왔기에 모든 것이 완벽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것이다. 모든 것을 완벽하게 처리하는 것은 혼자 분투하는 외로움의 싸움이고 수정에게는 자신이 인정받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된다. 수정은 완벽하게 불안해하고 완벽하게 소유하고 싶어한다. 미나가 제게 손을 내밀었을 때는 거리를 두더니 미나가 떠날 때에서야 붙잡는다. 그러나 늦었다. 미나는 이미 감정을 알았고 수정은 그것을 용납할 수 없는 것이다. 완벽한 세계에 흠집이 나서는 안 되기 때문에. 수정은 이 사소한 균열을 계기로 미나를 살해할 계획을 세운다.

어떤 사람이 자신에게서 떠나려 하면 극단적인 부정현상을 보이며 폭력적이고 악하게 변모하는 경향이 있는 것이 BPD(Borderline personality disorder: 경계선 인격장애)이다. BPD를 앓고 있는 이들에게 중립은 없다. 오로지 선과 악만 존재한다. 어제까지만 해도 친밀하게 붙어 다녔던 이, 즉 절대선적 존재가 오늘 자신을 밀어내려 한다고 생각하면 절대악적 존재가 되는 것이 BPD의 주요 증상이다. 그렇기에 수정에게 중립은 없다. 미나는 이제 절대선이 아니라 절대악이다. 자신이 이해할 수 없어서 이해하기 위해 다가갔으나 미나는 이미 수정과는 ‘다른 세계’에서 살고 있다. 수정이 낙오자로 부르는 그 세계에서 미나는 만족하고 살아간다. 수정은 그것을 인정할 수 없다.

수정은 모든 것을 알고 있어야 한다는 완벽주의를 작품 전반에서 드러낸다. 알 수 없으면 알아내야만 하고 완벽하지 않으면 완벽해야만 한다. 이것이 수정이 미나를 죽이는 이유다. 자신이 모르는 감정을 알기 위해서. 너를 이해하기 위해서. 노력 정당화 현상에 의해 이것은 필연적이고 필수적인 자신의 권리라고 수정은 생각한다. 수정의 감정은 극에 달한다. 미나를 죽이기 전 아기고양이를 죽일 때, 수정은 일시적 해리상태를 경험한다. 자신과 자신이 분리되어 자신이 아닌 상태에서 살인을 저지르고 자신인 상태에서 후회하다가 다시 자신이 아닌 상태에서 깔깔거리며 비웃는다. 그 과정에서 수정은 생물에서 무생물로 전락한다. 의식이 있는 상태의 수정은 생물이다. 무의식적으로 행동하는 수정은 무생물이다.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자신이 아니라며 회피하고 부정하는 것. 사람이 어떠한 사실을 받아들일 때 사용하는 제1단계 방어기제가 여기서 발현된다.

마침내 미나를 죽일 때 수정은 고백한다. 이제야 네 심장을 제대로 들여다 볼 수 있게 되었노라고. 수정은 황홀해한다. 정복감과 소유욕을 충족시키는 쾌락은 어떠한 행위로도 대체될 수 없다. 수정은 그것을 안다. 마침내 수정은 미나의 심장을 손에 쥔다. 감정을 느꼈을까? 작가는 그것을 알려주지 않는다. 그러나 수정은 행복해한다. 몰랐던 지식을 마침내 습득했다는 것에 대한 흥분감과 미나를 드디어 소유할 수 있게 되었다는 성취감의 혼재다.

지금까지 수정이 알고 있었던 세상은 자신이 노력하면 무엇이든 가질 수 있는 세상이었다. 곧 기출문제나 수학문제와도 같은 것이다. 기출문제와 시험은 글 안에서 내내 수정의 세상으로 표상된다. 가장 안락하고 아늑하고 평화롭고 사랑스러운. 이것은 수정에게 절대적 진리이고 수동적 행태를 취하게 하는 가장 대표적인 공리이다. 동시에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주입하려는 거짓된 정보이고 십대들이 나름대로의 시기를 거치면서 거짓임을 알아가게 되는 한 가지의 작은 거짓말이다. 그러나 수정은 그것을 인정하지 못한다. 인정하지 못해서 죽여야만 한다. 이것은 수정의 자기합리화가 아니다. 뚜렷한 목적의식이 있는 계획적 범죄다.

수정은 아무리 노력해도 답이 없어 보이는 난제를 인정하지 못한다. 언제나 수정은 문제를 완벽하게 풀어왔고 그것으로 안정감과 소속감을 추구했다. 수동성으로 무장하고 있던 수정에게 닥친 최초의 난제는 아이러니하게도 같은 수동성으로 무장하고 있었던 미나이다. 난제는 풀어야만 한다. 수정의 세상에서는 그렇다. 엘리트의 길을 걸어왔고 어른들이 쌓아올린 모든 사고방식과 정치적 교육적 체제를 부정하고 깔보고 우스워하면서 자라난 수정은 그렇게 대응할 수밖에 없다. 결국 수정은 미나를 죽임으로서 난제를 해결한다. <미나>는 수정 나름대로의 해결방법을 제시함으로서 맺음을 인정한다.

사랑이 애증으로 변하고 애증이 증오와 경멸과 살해의식으로 변모하는 과정은 상당히 비약적이고 격동적이고 이해할 수 없을 정도의 극단성을 지니고 있으나, 실은 그것이 사회의 염증으로 인해 벌어진 상처를 감추는 과정에서 드러난 피폐성을 눈앞에 가져다 둔 것이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수정의 문제가 아니다. 미나의 문제가 아니다. 박지예의 문제도 아니다. 이 작품에 나오는 어떠한 사람의 문제도 아니다. 이것은 사회의 문제이다. 김사과는 이러한 현실에 분노를 표출하는 수단으로 글을 택했고 <미나>는 정점의 폭발이었다.

이것은 비단 수정과 미나 사이에서만 일어나는 사건이 아니다. 수정이 경계선 인격장애를 앓고 있어 이러한 비윤리적으로 표상되는 행태를 자행한 것도 아니고, 미나의 나약함 때문에 수정의 트리거를 당긴 것도 아니다. 이것은 십대들의 이야기이다. 거쳐야 하는 나날의 치열함을 매개로서 공감을 의도적으로 차단하는 이들의 이야기이다. 타인의 고통에 무감각하고 때로는 경험하지 못한 상처를 우스워하는 우리들의 이야기이다. 한 명 한 명이 수정이고 미나이다. 단지 그 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우리들은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사회적 제도와 매커니즘이 불합리하고 불온전하며 모순적이라는 것을 안다. 당장 열아홉에서 스물로 바뀌면 주어지는 모든 것들을 인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열아홉이 정치에 대해 이야기하면 눈앞의 공부에 집중하라며 타박하고 정치색과 정당을 언급하며 저지한다. 그러나 스물이 되는 순간 어린 청년들은 정치에 대해 완벽하게 알고 있어야 하며 자신의 정치적 견해와 소신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 사람들로 변모한다.

어른들은 학생들에게 완벽해질 것을 강요한다. 완벽함에 대한 어른들의 기준은 학생들을 옭아맨다. 자신의 상처를 의사에게 드러내어 치료하기는커녕 눈앞에서 수많은 눈들이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에 숨겨 동여매기에만 바쁘다. 이것이 학생들을 수정으로 만들고 미나로 만들고 지예로 만든다. 결국 모두 아파할 수밖에 없다.

결국 상처는 곪아 치료할 수 없는 상태로 썩어간다. 이 갇힌 세상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우리의 목소리를 낼 필요가 있다. 의식적으로 소리쳐야 한다. 우리는 불온한 규율에 몸을 끼워 맞추지 않을 것이라, 고. 아픔은 부끄러운 것도 숨겨야 할 것도 아니며 혼자 감당하기에는 너무 큰 아픔이라, 고. 선악과를 내밀며 속삭이는 미래가 실은 이상향에 불과하지 않은 것을 알고 있다, 고. 이것이 바로 김사과가 사람들을 향해 외치는 메시지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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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장원 퇴고작은 아닙니다.

윤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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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별님, 안녕하세요?^^ 이전에 썼던 글을 퇴고해서 올려주었네요. 제가 언급했던 수정 사항들을 잘 반영해서 완전히 새로운 글로 만들었군요. 쉽지 않았을 텐데, 고생 많았습니다. 하지만 최종 퇴고작이라고 하기에는 개선할 점이 눈에 많이 띕니다. 연장원에 지원하는 글이 아니라 해도, 계속 발전해가기를 윤별님도 바라고 있을 것 같은데요. 그런 점에서 몇 가지 조언을 해드리겠습니다. 1. 정확한 의미를 담아, 정확한 문장으로 쓰기 윤별님이 가장 신경 써야 할 부분은 ‘정확한 의미를 담아, 정확한 문장으로 글을 쓰는 것’입니다. 이것은 윤별님이 글을 쓸 때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시‧소설‧비평 마찬가지입니다. 시인‧소설가‧비평가가 본인도 잘 모르는 이야기를 늘어놓으며 작품을 쓸 때, 그 글은 힘이 없고 모호해집니다. 레토릭으로 눙치기 때문에 발생하는 당연한 현상입니다. 아는 것은 아는 대로 쓰고,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써야 합니다. 그래야 투박하더라도 글에 독자의 마음을 움직이는 진실이 스며듭니다. 첫 문단을 예로 보겠습니다. “사회의 수많은 문제점들이 숨겨지는 순간이 있다. 존재의 부재가 정상으로 판단되는 순간이 있다. 특히 타인에게 보이는 면모를 중요시하는 곳에서는 끊임없이 이 이상현상들이 숨겨지고, 은폐되고, 또 공공연하게 포장되어 집단 밖으로 퍼져나가지 못하도록 막는다. 문제점은 죄악으로 치부되어 사람들에게 죄책감을 부여하고 마침내는 그들 스스로 입을 닫게 만든다.” (1) “사회의 수많은 문제점들이 숨겨지는 순간이 있다.” : 이 문장 다음에는 그런 사례가 소개되어야 합니다. (2) “존재의 부재가 정상으로 판단되는 순간이 있다.” : 그런데 뒤에 예시를 드는 문장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다른 중심 문장이 제시되면서, 논의를 두 개로 분산시키고 말았지요. 그리고 ‘존재의 부재’가 무엇인지 정확히 설명되어야 합니다. 이를테면 갑작스러운 상실의 의미인지, 자연스러운 소멸의 의미인지 말이지요. (3) “특히 타인에게 보이는 면모를 중요시하는 곳에서는 끊임없이 이 이상현상들이 숨겨지고, 은폐되고, 또 공공연하게 포장되어 집단 밖으로 퍼져나가지 못하도록 막는다.” : 예시문이 없기 때문에, ‘이 이상현상들’이 가리키는 바가 무엇인지 알 수 없습니다. 또한 ‘숨겨지고’와 ‘은폐되고’는 동의어입니다. 여기에서는 둘 중 하나의 표현만 쓰면 됩니다. (4) “문제점은 죄악으로 치부되어 사람들에게 죄책감을 부여하고 마침내는 그들 스스로 입을 닫게 만든다.” : 앞에서 ‘문제점’이 어떤 것인지 제대로 서술되지 않았으므로, 여전히 ‘문제점’이 지시하는 바가 모호합니다. 그리고 그 ‘문제점’이 왜 죄악으로 치부되고, 사람들에게 어떤식으로 죄책감을 부여하는지도 설명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문장을 입증하려면 근거가 많이 필요합니다. 2. 비평 대상과 적절한 거리 유지하기 비평은 대상과의 거리 유지가 필수적인 글쓰기입니다. 하지만 아래 문단은 애석하게도 그런 거리 유지가 되어 있지 않습니다. “김사과가 지금까지 투고한 작품 중 걸작을 꼽으라고 하면 필자는 망설이지 않고 '미나'를 택한다. 물론 '02'와 '천국에서' 또한 그에 준하는 수작이나 '미나'는 장편소설임에도 불구하고 두 명의 주인공들에게 초점을 맞추어 이야기를 전개해 나가는데, 각각의 인물들의 감정표현과 그에 어울리는 문체 선정이 천재적이라고 평해도 아깝지 않다. 신예라는 타이틀을 내걸고 '02'를 발표하던 시절부터 김사과의 독창성은 빛났고, 피크에 도달했을 때의 작품이 라고 볼 수 있겠다.” (1) “김사과가 지금까지 투고한 작품 중 걸작을 꼽으라고 하면 필자는 망설이지 않고 '미나'를 택한다.” : 우선 ‘투고한 작품’이라는 말이 틀렸습니다. ‘투고’는 사전적으로 “의뢰를 받지 아니한 사람이 신문이나 잡지 따위에 실어 달라고 원고를 써서 보냄. 또는 그 원고”를 가리킵니다. 또한 윤별님이 대학(원)에서 학위논문을 쓰지 않는 이상, 어색하게 ‘필자’라는 말을 쓰지 않아도 됩니다. 그냥 ‘나’라고 써도 됩니다. 그러니까 이 문장은 이렇게 고쳐야겠지요. “김사과가 지금까지 발표한 소설 중에서 걸작을 꼽는다면, 나는 망설이지 않고 '미나'를 택할 것이다.” (2) “물론 '02'와 '천국에서' 또한 그에 준하는 수작이나 미나는 장편소설임에도 불구하고 두 명의 주인공들에게 초점을 맞추어 이야기를 전개해 나가는데, 각각의 인물들의 감정표현과 그에 어울리는 문체 선정이 천재적이라고 평해도 아깝지 않다.” : 한 문장에 여러 의미가 뒤섞여 논점이 어긋나버렸습니다. 예를 들어 이 문장은 이렇게 고쳐야겠지요. “'02'와 '천국에서'도 뛰어난 작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나'가 더 낫다고 판단한 까닭은 이런 이유에서다. 하나는 이 소설이 장편임에도 불구하고, 두 명의 주인공에게 초점을 맞추어 치밀하게 이야기를 전개해나간다는 점이다. 다른 하나는 인물들의 감정을 표현하는 문체 선정이 탁월하다는 점이다.” (3) “문체 선정이 천재적이라고 평해도 아깝지 않다. 신예라는 타이틀을 내걸고 '02'를 발표하던 시절부터 김사과의 독창성은 빛났고, 피크에 도달했을 때의 작품이 라고 볼 수 있겠다.” : 여기에는 많은 입증 책임이 따릅니다. 가령 김사과 작가의 어떤 독창성이 빛났다고 할 수 있을까요? ‘천재적이라고 평해도 아깝지 않다.’와 같은 표현도 비평문에 쓰기에는 적절하지 않습니다. 대상과의 거리 유지에 실패했다는 인상을 주기 때문이지요. 윤별님이 '미나'를 비평한 내용 자체에 대해서는 일부러 코멘트하지 않았습니다. 좋은 내용이 정확하지 않은 문장으로 인해 빛을 못 보고 있습니다. 위의 사항을 다시 한 번 점검하고, 그것을 반영하여 새로운 퇴고작을 올려주기를 윤별님께 부탁하고 싶습니다. 더 나은 글을 위해 조금만 더 고생해주세요... (저도 예전에 이런 과정을 숱하게 겪었답니다. 썼던 문장마다 빨간 줄이 그어져 있었고 그 밑에는 고쳐야 할 점들이 가득 적혀 있었지요.ㅜㅜ)

    • 2017-02-27 01:15:55
    허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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