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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한국인

  • 작성자 나롱이
  • 작성일 2019-08-25
  • 조회수 351

‘자민족 중심주의’라는 단어의 뜻을 알고 있는가? 자민족 중심주의란 자기 민족의 생존 권리와 이익을 위해 타 민족에게 배타적인 태도를 취하는 동시에 민족적 우월감에 도취되어 타 민족과 인종을 무시하고 억압하려는 심리 또는 성향을 말한다. 이는 타국으로 진출한 우리 동포들이 불평등과 차별을 겪는 원인이기도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타 민족, 인종이 피해를 받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한국에서 자민족 중심주의는 조금 다른 양상을 띤다. ‘한국형 자민족 중심주의’에는 강대국에 대한 열등감과 약소국에 대한 우월의식, 적자생존과 양육강식의 극단적인 자본주의 원리, 부로 사람을 판단하는 경제적 계급의식 등이 복합적으로 섞여있다. 쉽게 말해 한국형 자민족 중심주의가 배격하는 대상은 외국인 근로자나 불법체류자가 아니라 ‘못사는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다.
실제로 서구권이나 영어권 국가, 즉 대부분의 선진국에서 온 유학생들은 한국 사람들이 매우 친절하다고 대답한다. 거의 대부분이 항상 한국인들에게 친절히 도움을 받았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중국이나 동남아시아의 가난한 나라에서 온 유학생들과 흑인 유학생들은 자신에게 다가오는 한국인 학생조차 없다고 말한다. 참으로 부끄러운 현실이 아닐 수 없다. 더 슬픈 점은 후진국 출신이나 흑인 학생들이 자신과 같은 외국인이더라도 어떤 경우에 따라 한국인에게 차별을 받고, 환대를 받는지 스스로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는 점이다.
어떠한 이유이던 간에 한국에 와서 한국말을 배우고 사용하며 한국 음식을 먹고, 한국이 자신의 나라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우리가 차별할 자격이란 것이 존재할까? 단지 우리가 한국에서 태어나고 한국어를 유창하게 한다는 이유만으로 그들을 한국인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차별할 권리가 있는가? 당연히 대답은 ‘절대로 이 세상에 그런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이다.
‘한국을 사랑하는 사람은 한국인이다. 한국에 살면서 한국을 자기 나라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한국인이다. 한국사회에 봉사하고 한국인을 위해 희생하는 사람은 한국인이다. 한국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그 아름다움을 지켜나가는 모든 사람이 한국인이다. 이제 우리가 그들에게 요구했던 민족이라는 마지막 조건을 버려야 할 때가 왔는지도 모른다. 민족을 고집하는 순간 우리는 수많은 한국인을 잃어버리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가장 인상 깊게 읽은 구절이다. 우리는 더 이상 한국에 있는 외국인들을 그저 다른 ‘민족’이라는 틀에 가두지 말고, 너와 나의 다름을 존중하고 다양한 생김새와 생각들을 즐기며, 각자가 가진 개성을 인정하는 다문화 사회를 만들어야만 한다. 모두가 노력한다면 우리 사회는 앞으로 공존과 동행이라는 가치 속에서 계속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다른게 나쁜 건 아니잖아요' sbs스폐셜 제작팀 지음 출판사:꿈결

나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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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들을 키우는 어머니들의 고된 삶의 애환은 아직 어린 나로썬 다 헤아릴 수 없다. 아마 그 노고는 내가 자식을 낳고 어머니의 입장이 되어서야 정확하게, 뼈저리게 다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성석제의 '약방 할매'는 아버지가 집을 떠나있는 동안 혼자 자식들을 키우며 힘들게 살았던 한 어머니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이 소설 속 화자인 주인공에게는 두 누나와 세 여동생이 있다. 나는 이 사실에서만도 벌써 소설 속 어머니의 힘듦이 느껴졌다. 자식이 한 두 명이 아닌 무려 여섯 명이나 있다니. 그에 대한 행복함도 배가 되겠지만, 힘듦도 배가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심지어 아버지도 자주 집에 안 들어오셔서 혼자서 아이들을 키우시느라 많이 힘드셨을 것 같다. 글쓴이의 어머니는 힘든 일이 생기고 마음이 울적할 때 약방 할매에게 갔다 와야겠다며 약방 할매를 찾아갔다. 나는 이때만 해도 약방 할매가 진짜 실존 인물로 ‘외롭고 육아에 지친 어머니들에게 많은 조언들을 해주고 힘을 주는 존재구나.’라고 생각했다. 만일 그런 약방 할매가 실제로 존재한다면 나도 한 번 찾아가 조언과 위로를 얻고 싶었다. 하지만 약방 할매는 그런 실존 인물이 아닌 산 중턱의 넓적한 바위였다. 이 사실을 조금은 충격적이기도 하고, 한편으론 씁쓸하기도 했다. 어머니가 힘들고 지친 일이 생길 때마다 생각을 정리하려 그 산 중턱에 바위에 기대어 어쩌면 울었을지도 모르고, 오히려 더 깊은 생각을 가지셨을 지도 모른다. 그 모습을 상상하니 뭔가 짠하고 우리 엄마도 저렇게 힘든 때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얼마 전, 학원을 바꾸고 적응에 어려움을 겪는 나 때문에 걱정이 많으셔서 잠에 쉽게 들지 못하시는 엄마의 모습을 본 적이 있다. 하루라도 맘 편히 다리 쭉 뻗고 주무시게 하기 위해서는 엄마께서 날 걱정하는 만큼 내가 더 열심히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소설 마지막에 아들이 바위에 앉아 어머니의 약방 할매가 누군지 깨달았을 때, 어머니의 마음을 가장 잘 이해해주고, 위로해주는 것이 바위라는 걸 깨달았을 때가 가장 인상 깊었다. 자세히는 나오지 않았지만 그 순간의 아들의 모든 감정들이 이해되는 것 같은 기분을 받았다. 어머니의 대한 미안함과 고마움 등이 모두 느껴졌다. 어머니의 고민을 털어놓고 위로를 받았던 것이 사람이 아닌 고작 바위라는 것을 깨달고 얼마나 허무하고도 마음이 찢어졌을까. 과거에 어머니의 속을 썩였던 자신의 행동들과 모습들이 후회되고 죄송스러웠을 것이다. 글쓴이의 어머니는 자식의 일과 관련하여 어려움에 처했을 때는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 노력하고 속으로 화를 삭이며 내색하지 않으셨다. 이는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우리 엄마도 힘들어도 잘 내색하지 않으시고 항상 나를 위해서 강한모습을 보였을 것을 생각해보니 죄송스러운 마음이 많이 들었다. 한편으로 나는 힘이 들면 언제든지 말을 하고 조언을 구할 수 있는 존재인 엄마나 아빠가 계신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소중했다. 우리의 엄마들에게도 힘든 마음을 위로 받는, 자신의 마음을 가장 잘 알아주는 존재가 있을까? 그 존

  • 나롱이
  • 2019-02-24
단 하나의 별을 보고 걸으면

이 세상 수많은 청소년들은 과연 어떤 꿈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을까? 정확히 어떤 직업을 갖는 의미의 꿈 뿐만 아니라, 막연하게 앞으로 이런 식으로 삶을 살고 싶다는 꿈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 많은 청소년들은 평생의 꿈 보다는 당장 눈 앞에 펼쳐진 대학, 직업만을 바라보며 살아가기를 강요받으며 살아간다. 그렇게 꾸는 꿈이 과연 그들이 '진정 원하는 꿈'일까? 아니면 그저 '현실 속에 갇혀 부모님, 어른들의 강요에 의해 꿈이라 정해놓은 것'은 아닐까? 내게 '덕수궁 편지'는 진정한 꿈에 대해서 더 깊게 생각해보는 기회를 만들어 주었다. 대개 사람들은 어렸을 적에 더 많고 다양한 꿈을 꾼다. 하지만 점점 나이가 들고 세상에 대해 잘 알게 되면서 그 꿈들을 보다 현실에 맞추고 계산하며 하나씩 줄여나간다. 그렇게 많던 꿈들은 하나둘씩 사라져가고, 자신이 '진정' 이루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물론 이런 이야기가 모두에게 해당이 되는 것은 아니며, 현실에 맞춰 꿈을 좁혀나가는 것이 나쁘다는 것은 전혀 아니다. 그러나 원래 자신이 이루고 싶었던 순수했던 그 꿈을 타인에 의해, 현실에 의해 점점 좁혀나가고 부정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것은 너무 슬픈 일이 아닌가. 이 이야기는 30년도 더 지난 과거를 배경으로 삼고 있지만, 꿈을 꾸면서 방황하는 주인공의 모습은 현재의 청소년들과 다를 바가 없다. 주인공인 현우가 '화가'라는 자신의 꿈을 갈망하고 이루어나가는 과정, 잠시 방황을 하다 그 꿈을 다시 되찾는 과정이 모두 담겨있는 이 소설을 읽으며 현우의 인생을 따라가는 느낌이 들어 한시도 책을 놓을 수가 없었다. 현우는 화가의 꿈을 반대하는 부모님 때문에 몰래 그림을 그리고, 부모님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잠시 꿈을 포기하기도 한다. 그런 현우를 응원해주던건 삼촌과 은희 뿐이었는데, 삼촌 마저 죽고 은희도 멀리 이사를 가버린다. 이 보다 더 비극적인 일이 있을까? 이후 서울로 고등학교를 간 현우는 부모님이 반대하던 미술 공부를 다시 시작하고, 첫사랑인 은희와도 만나게 된다. 그러나 미술은 다시 시작했지만 꿈 없이 살아가며 아직도 방황하는 현우의 모습에 실망한 은희는 다시 현우 곁을 떠난다. 극장 간판에 그림을 그리는 간판쟁이로 이도저도 아닌 삶을 살아가던 현우는 자신보다 먼저 꿈을 이룬 은희와 마주한 후, 그 일을 계기로 자신도 진정한 화가의 꿈을 이루게 된다. 무엇보다 가장 기억에 남았던 것은 책 속에 담긴 세 장의 편지였다. 어떤 것이든 꿈을 가지고 그 꿈을 이루라고 격려하는 삼촌의 편지, 현우의 꿈을 반대하는 부모님의 편지, 그리고 결국엔 화가의 꿈을 이룬 현우를 축하하는 은희의 편지 이렇게 세 장이었다. 편지는 청소년들이 꿈을 꿀 때 만나는 다양한 사람들과 상황들을 담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삼촌의 편지는 자신을 격려해주는 사람과 꿈을 이루고싶은 욕망을, 부모님의 편지는 그 꿈을 반대하고 비난하는 사람들 등 여러가지 때문에  청소년들이 만나는 고난과 역경을 의미한다고 생각했다. 은희의 축하 편지는 함께 꿈을 꾸지

  • 나롱이
  • 2019-01-20
단 하나의 별을 보고 걸으면 - '덕수궁 편지'를 읽고

이 세상 수많은 청소년들은 과연 어떤 꿈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을까? 과연 그 꿈이 '그들이 진정 원하고 꿈꾸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그저 '현실 속에 갇혀 부모님의 강요에 의해 정해놓은 것'은 아닐까? '덕수궁 편지'는 꿈이 없거나 자기 맘대로 혼자서는 꿈도 꾸지 못하는 청소년들을 위한 소설이다. 대개 사람들은 어렸을 적에 더 많고 다양한 꿈을 꾼다. 하지만 점점 나이가 들면서, 세상을 알게 되면서 그 꿈들을 현실에 맞추고 계산하며 하나씩 줄여나간다. 그 많던 꿈들은 하나둘 사라지고,  자신이 이루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이루고 싶은 것도 없이 살아간다. 이 이야기는 30년도 훨씬 더 지난 옛날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꿈을 꾸면서 방황하는 주인공의 모습은 그 당시 청소년이나 지금이나 별반 다를 바가 없다. 이 소설 안에는 주인공인 현우가 꿈을 갈망하고, 꿈을 이루어나가는 과정, 꿈을 되찾는 과정 모두 담겨있다. 이런 현우의 성장과정을 읽어나가면서 나도 현우와 함께 성장 하는듯한 기분이 들었다. 비슷한 나이 또래의 이야기이고 어쩌면 지금 내가하고 있는 고민을 함께 하고 있는 친구 같은 기분이 들어서 현우와 소설에 더욱 더 빠져서 읽었던 것 같다. 현우의 꿈은 화가였다. 원래 화가가 꿈이었던 삼촌의 영향이다. 부모님이 모두 반대할 때 화가라는 꿈을 계속 꾸라고 응원해주고 격려해준 사람은 삼촌뿐이었다. 하지만 그런 삼촌이 죽고 은희까지 서울로 이사를 가 헤어지게 되자 현우는 방황의 시기를 맞는다. 이렇게 엇나간 생활을 하다가 자신이 그토록 믿고 따랐던 삼촌이 죽기 전 남긴 편지를 읽은 뒤 예전의 착한 현우로 돌아온다. 그리고 서울로 고등학교를 간 현우는 부모님이 반대하던 미술 공부를 다시 시작하고, 첫사랑인 은희와도 만나게 된다. 그러나 꿈이 없이 살아가는 현우의 모습에 실망한 은희는 다시 현우 곁을 떠난다. 극장 간판에 그림을 그리는 간판쟁이로 살아가던 현우는 자신의 꿈을 이룬 은희와 마주친 후, 그 일을 계기로 자신도 화가의 꿈을 이루게 된다. 서울로 올라간 현우가 은희를 우연히 만난 그 장면이 책을 덮은 지금도 잊혀 지지가 않는다. 그 둘이 서로가 얼마나 그리웠을지 가늠이 가서 현우와 은희가 마주친 그 순간의 설렘은 잊혀 지지 않는다. 그렇게 잠시 행복하게 지내는 것 같던 현우와 은희 사이에 어느 순간 냉기가 흐르기 시작한다. "캄캄한 밤길에도 단 하나의 별을 보고 걸으면 절대로 길을 잃지 않지. 그 별이 내게는 삼촌이었어. 난 네가 삼촌을 눈곱만큼이라도 닮은 줄 알았어. 그런데 절대 아니야. 절대 아니야. 이제 난 두 번 다시 널 만나지 않을 거야." 이것은 은희가 중국집에서 술을 먹고 현우에게 한말이다. 나는 이 구절을 읽고 순간 충격에 책을 내려놓고 한동안 입을 벌리고 가만히 있었다. 현우만큼, 어쩌면 그 보다 더 나도 속상했고 은희의 말이 혼란스러웠다. 마치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은희는 끝까지 현우를 응원하고 현우를 좋아해줄 줄 알았다. 하지만 현우에게 실망한 은희의 마음도 이해가 조금은 가

  • 나롱이
  • 2017-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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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선우은실

    나롱이 님 안녕하세요. 오랜만에 이름을 불러보는 것 같아요. 반갑습니다! 한국형 자민족 중심주의의 특정 요소에 대한 설명이 무척 인상깊었어요. 한 가지 의문이 드는 것은, 외국인근로자나 불법체류자와 ‘못 사는 나라에서 온 사람들’은 실제로 다를 수 있지만 한국형 자민족중심주의에서는 동일시되어 다뤄지고 있는 측면은 없는가 하는 점이었어요. 물론 그 다음 문단에서 어느 정도 해소가 된 부분이 있습니다. 서구권, 영미권 등 어떤 형태로 한국에 머물든지 간에 ‘이미지화된 유럽/미주권’의 사람들에게 호의적인 반면 ‘이미지화된 못 사는 나라’의 사람들에게는 적대적이라는 것으로 읽혔어요. 만약 제가 읽은 것이 맞다면 ‘근로 형태’에 의해 차별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점이 중요한 특징으로 꼽아져야 할 것 같다는 점이 우선 한 가지 말씀드리고 싶은 점이에요. 두 번째로, 나롱이 님이 “중국이나 동남아시아의 가난한 나라에서 온 유학생과 흑인 유학생”이라는 표현이 이미 ‘못 사는 나라’라는 의미를 내포한 것처럼 읽혀서 조금 문제적일 수 있겠다고 생각되어요. ‘선진국’과 ‘후진국’의 단어를 사용할 때 그것이 어떠한 맥락과 의미에서 이 글에서 사용되는지 한 번 정의를 해주는 것 역시 필요해 보입니다. ‘차별할 자격’에 대한 문제의식이 의미 있다고 생각해요. 그렇다면 글쓴이의 말처럼 각 개인에게는 차별할 자격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왜 일어나는가? 이 지점을 좀더 생각해보아도 좋을 것 같아요. 아마도 나롱이 님이 참고하셨을 sbs스페셜의 내용을 조금 요약해주어도 좋겠고 그러면서 이 글을 쓰게 된 계기를 자연스럽게 풀어보면 더 좋은 글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 2019-08-30 18:38:36
    선우은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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