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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자들"을 읽고 (저자 :장강명)

  • 작성자 김타빙
  • 작성일 2020-11-08
  • 조회수 918

언젠가 인상깊게 본 기억이 있는 책이라서 한번쯤 서평으로 남기고 싶었던 책이다. 책은 노동과 경제문제를 다룬 10편의 연작소설로 이루어져있는데, 각각의 소설에서 주인공들은 취업,구조조정,재건축,자영업 등 생계의 문제에 직면한다. <음악의 가격>에서 '음악으로 생계를 꾸리며 살아가는 일'에 대해 말하는 지푸라기 개. <대기발령>에서 구조조정으로 존재할 곳을 잃어버린 행복동행 팀원들과 연아. <공장 밖에서>에서 회사의 경영난에 희생된 해고자들. 누군가는 그들이 무력하다고 말할지도 모르지만,  나는 그들이 온 힘을 다해 살아내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세상을 바꿀 힘은 없어도,  그들에게서 자신 앞에 놓인 세상의 문제들에 대해서 도망치거나 숨으려는 기색은 찾아보기 어렵다. 애초에 그들에게 도망치거나 숨을 곳을 내어줄 정도로 세상이 친절하지 않았기 때문인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나는 역설적이게도 이런 사람들에게 세상을 바꿀 능력이 주어진다고 믿는다. 이 책이 인상깊게 다가온 이유는 그들의 삶이 먼 곳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아서이기도 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한번쯤 마주쳤을 재건축, 부당해고 등의 노동과 경제 문제들. 어쩌면 연아, 선녀, 지푸라기 개 등의 소설 속 등장인물들이 우리 곁에서 숨 쉬고 살아가고 있는 듯한 생각마저 들곤 했다. 사실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닐지도 모른다. 우리 주변에는 분명 또다른 연아가, 선녀가, 지푸라기 개가 존재하고 있을 것이다. 세상의 수많은 부조리와 불의가 사라지기 전까지, 그들이 사라지는 일 또한 없을 것이다. 세상은 모든 이에게 동일하게 친절하지는 않을테니까. 비록 그러할지라도 나는 세상이 나아가고 있다고 믿는다. 여전히 너무나도 분명하게 존재하는 우리 곁의 연아와 지푸라기 개 같은 사람들을 통해서 말이다. 그들이 존재하는 한, 우리는 나아갈 것이다. 보다 많은 이들의 삶이 동등하게 존중받고 그 누구도 이러한 문제들 앞에 놓이지 않는 세상을 바라볼 것이다.  발화(發話)됨으로, 비로소 수면 위로 부상하는 문제들이 있다. 개인적으로 소설은 무음의 발화라고 생각한다. 작가가 소설을 통해서 그려내고 있는 건 이런 것들이라고 생각한다. 세상이 주목하지 않은 쓸쓸한 곳에서야 비로소 드러나는 숭고함, 무력하나 무력하지 않은 사람들. 아직은 아득해보이지만 반드시 오고야 말 세상에 대한 것들. 단순한 이상주의적 모습이 아닌, 너무나도 분명하게 우리 곁에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으로 말이다.

김타빙
김타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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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늘과 가죽의 시-구병모>에 대한 감상   소설은 주인공 ‘안’의 시선을 따라 전개된다. 안은 자신이 어떠한 이유로 태어났는지, 어떠한 이유로 흐르는 시간 속에 불멸의 존재로 남겨졌는지조차 알지 못하는 존재이다. 그저 자신의 존재를 신의 변덕, 혹은 축복, 그도 아니라면 저주 쯤으로 여기고, 제 앞의 가죽을 덧대고, 기울 뿐이다. 구두를 짓는 일. 그것은 안이 그 수많은 시간 속에서 단 한 번도 놓은 적이 없었던 유일한 일이다. 안은 본래 그런 존재였으니까. 그것은 안이 지닌 최초의 기억과도 연결된다. 형제들과 미아가 언제고 곁에 있던 시절, 고대의 한 신전 앞.   “신전에서였지. 우리. 밑도 끝도 없이 혼잣말에 가까운 형제의 목소리를 듣고 돌아본 미아는 단순한 공감이나 동질감 이상으로 융합에 가까운 미소를 띠며 고개를 끄덕이고, 최초의 기억이 일치함을 알게 된 안은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그들이 존재였을 때, 언제부터 그러한 존재로 살아오고 있었는지 알지 못하는 무렵이면서 어떤 윤곽과 채도를 갖지도 못했던 시절에, 신전 앞에서 한 어린 노예를 보았다.···그것은 그들이 기억하기로 그들이 세상에 와서 처음으로 지은 구두였을 것이며, 안은 숙명이나 법칙과 무관하고 부나 명에나 아름다움에의 탐닉이 아닌 다만 누군가의 미소와 누군가의 평화를 위해 구두를 지은 것이 그들의 시작임을 잊지 않았다.···이 몸의 의미가 어디 있는지는 알 수 없으나 굳이 알지 않아도 될 것이었다. 최초의 마음을 잊지 않는다면.”   다른 노예와의 사소한 시비 끝에 주인의 신발을 망가뜨리고 만 어리고 비천한 한 노예를 위해 흩어진 보석과 끈을 모아다가 원래 모습대로 만들어준 것이 안과 형제들이 지은 첫 구두였음을, 안은 언제까지고 잊지 않았다. 그로부터 한참이 흘러 안과 형제들이 가난한 구두장이 부부가 잠든 사이 대신 구두를 지어주고 얻은 답례품을 입고, 끝내 사람의 형체를 입어 이 나라에 닿은 오늘까지도. 비록 이제는 몇몇 형제들의 얼굴은 기억나지 않을지라도, 안은 그 최초의 마음 만큼은 오롯이 기억하고 있었다. 당연히 언제까지고 함께일 줄 알았던 형제들과 헤어진 지금, 안은 이 나라에서 홀로 공방을 운영하고, 수강생들을 받으며 구두를 지으며 살았다. 그것이 안이 처음 이 세상에 존재했을 때부터 그에게 주어진 전부였기에. 그리고 그런 안의 공방에, 미아는 한 남자와 함께 찾아온다. 결혼식에서 그가 신을 구두를 지어달라는 미아에게 안은 말한다. 그 이후를 견딜 수 있겠느냐고. 미아는 결국은 남겨질 테니까. 그 수많은 세월을 통과해온 안이 그랬듯이, 미아는 그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게 된 이후로도 특별한 일이 없는 한, 가늠할 수 없을 만큼 긴 시간을 살아갈 것이다. 미아가 사랑한 그 남자는 결국 미아보다 먼저 스러질 것이고, 그렇게 이 세상에서 완전히 소멸한 듯 했다가도 언제고 미아의 기억 속에서 잔잔히 존재하리라는 것을 안은 알고 있으니까. 당장의 상실보다 두려운 것, 그 이후의 삶을 오롯이 감당할 수 있겠냐고, 그는 정말

  • 김타빙
  • 2022-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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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은교

    김타빙님 안녕하세요! 저는 이 얼마 전부터 이 게시판에서 글틴러들과 소통하고 있는 오은교라고 합니다. 처음 인사드리는 것 같아요. 반갑습니다. 장강명 작가님의 연작소설을 읽고 글 남겨주셨는데요. 장강명 작가님께서 우리 사회의 노동 조건에 관한 현실적인 이야기를 많이 쓰셔서 김타빙님께 이 이야기들이 가까이 다가간 것 같아요. 무한 경쟁적 주체- 자기 경영적 주체가 되기를 요구하는 신자유주의 질서의 단면이 잘 드러나고 있는 작품들이 이 소설집에 많이 실려있죠. 외주의 외주의 외주의...를 거듭하는 대기업, 그리고 자행되는 노동자 모욕주기와 책임 회피 같은 것들은 우리가 뉴스에서 익히 볼 수 있는 사건들인데, 그곳에 현미경을 대어 구체적인 사정과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다는 점이 이 작품집의 매력인 것 같아요. 김타빙님께서는 이 소설집에서 연아, 해고자들, 가난한 예술가 등의 가치와 역능을 말씀해주셨는데요. 저도 김타빙님 감상과 똑같이 이것이 먼 이야기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게다가 올해는 팬데믹 사태로 인해 이 소설에 나온 많은 비정규직 자리들이 위태로워졌을 것이라고 짐작되니 이 이야기들을 요즘 다시 읽으면 새삼스럽게 다가올 부분도 많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또한 한편으로는 저는 이 소설에 나오는 의 구도가 우리 사회의 소외된 소수자를 결국 어떤 배려와 특혜를 받아야 하는 존재로 보이게끔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동시에 들었던 것 같아요. 이 소설에서 나오는 알바생이나 해고자들은 사실 정당한 요구를 한 것인데도 마치 생떼를 쓰는 사람으로 보이게 하는 그런 시선이 많이 적시되어 있어서 읽으면서 현실이 많이 상기되어 참 씁쓸했는데, 혹 이런 시선이 사회변혁에 대한 책임을 전가하는 효과를 주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 이 글틴 게시판 말고 문장웹진>비평 게시판에 가면 이지은 문학평론가가 쓴 이 소설집에 대한 흥미로운 비평글(제목: 남편과 사파리 파크와 ‘산 자들’)이 있는데요. 한 번 같이 읽으며 감상을 비교해보시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아요! 정말 뜨거운 이슈들이 담긴 이 책을 골라 읽고 이렇게 감상까지 나눠줘서 감사해요. 그럼 글로 또 인사 나눌 수 있기를 바랍니다. 따뜻한 연말 되시길 멀리서 바랍니다!

    • 2020-12-22 22:39:50
    오은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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