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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그리고 사회를 통한 환경 문제의 고찰

  • 작성자 권찬우
  • 작성일 2020-12-29
  • 조회수 400

남들보다 더 많이 소유하고, 더 많이 소비해야만 행복감을 느끼고 안정감을 느끼는 사회.

내가 남들보다 더 잘 되고 더 잘 사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이 사회에서, 환경을 걱정하고 미래 세대를 보호하자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이러한 추구방식이 당연하게 통용되는 사회에서 ‘환경 보존’ 이라는 것이 가능한가?

우리가 ‘환경 보존’ 이라는 구호를 외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전에 환경 문제를 야기하는 우리 사회의 근본적인 문제를 파악하고 고쳐 나가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한국 사회의 특징을 한 마디로 축약한다면 이렇게 말할 수 있다. ‘경쟁 사회’. 우리는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치열한 경쟁 체제 속에서 살아간다. 이제 와서 돌이켜본다면, 우리가 이러한 경쟁 체제의 사회에서 살아가는 것은 매우 당연하게 느껴진다. 그런데 이것이 한국 사회에서 당연해진 이유가 있다.

역사적 관점에서 보면, 우리는 일제에 의한 식민 지배를 받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 한국 사회는 제국주의를 뒷받침하는 사상인 약육강식의 사상에 물들여졌다. 이는 ‘사회적 다윈주의’ 사상이라고도 한다. 사회적 다윈주의 사상이란 생존 경쟁과 자연 도태를 ‘사회 진화’의 기본적 동력으로 보는 사상을 일컫는다. 사회가 진보하고 발전하려면 생존에 의한 경쟁이 필수적이며, 이에 의한 자연 도태는 필연적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사상이 만연했던 한국 사회에 또 한 가지의 사상이 전파된다. ‘자유 시장 경제’. 미국이 신탁통치를 주도하며 퍼트린 사상이다. 말 그대로 자유로운 경쟁을 통해 생산과 효율을 극대화 시킨다는 것이다. 결국 경쟁 중심인 이 두 가지 사상이 결합하게 되면서, 한국 사회는 엄청난 ‘경쟁 지상주의’로 변질되었다.

여기 ‘천연 자원’ 이라는 말이 있다. 광물, 목재, 석유와 같이 자연에서 얻는 자원을 일컫는다. 그렇다면 혹시 ‘인적 자원’ 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우리를 그저 자원 수준으로 바라보는 이 사회의 시선을 단편적으로 드러낸 말이다. 결국 이 사회에서 필요한 인간은 ‘질 좋은 자원’이다. 그래서 우리는 학생 시절 학교를 통해 우리의 능력을 검증 받는다. 이 학생이 사회가 써먹기에 좋은 자질을 가졌는지 평가하는 것이다. 사회 문화가 이렇다 보니, 학교는 학생을 평가하는 수단으로 전락하게 된다. 학생 입장에서는 성적과 학업에 관한 스트레스만 가중될 뿐이다. 이렇듯 불행한 경쟁을 통해 능력 면에서 더 뛰어난 인간, 우월한 자원을 선발하는 것이 한국 사회의 현실이자, ‘경쟁 지상주의’가 낳은 ‘능력 절대주의’ 사회의 현실이다.

 

요점은 이것이다. 인간을 필요에 의해 소모되는 존재로 바라보는 것이 당연한 사회, 약육강식의 법칙이 당연한 사회에서 길러진 우리가 자연을 바라본다면 그들을 어떻게 바라보겠는가? 우리는 인간의 필요에 의해 소모되는 자연을 당연하게 바라볼 것이며, 강자인 인간이 약자인 자연을 지배하는 것도 당연하게 바라볼 것이다. 우리는 ‘지속 가능한 발전’, ‘환경 보존의 중요성’ 등을 강조하기 이전에 이 사회의 고질적인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열등감과 경쟁 의식으로 물든 사회에서 자연이 존중되기란 어려운 일이다. 자연을 존중해야 할 대상으로 바라보기 전에 서로를 존중하고, 자신을 존중해야 할 대상으로 바라보는 사회를 만드는 것은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리고 이러한 사회는 교육을 통해 이룩해 나갈 수 있다. 경쟁 중심의 교육이 경쟁 중심의 사회를 만든 것처럼, 생태주의 중심의 교육은 생태주의 중심의 사회를 만들어 나갈 것이다.

1968년을 기점으로 발생한 ‘68운동’. 프랑스에서 발생한 이 혁명 운동은 ‘모든 형태의 억압으로부터 해방’ 이라는 구호를 내세웠다. 노동자들은 더 많이 소유하고, 더 많이 소비해야만 행복감과 안정감을 느끼는 자본주의를 규탄하였다. 더 나아가 인간의 자본이 자연을 억압하는 형태를 버리고 생태계를 있는 그대로 보존하자는 ‘생태주의적 관점’을 추구하기도 하였다. 대학생들은 양적 팽창에 비해 교수진과 교육시설 및 교육 내용을 질적으로 향상시키지 못하고 있는 대학의 실정을 비판하였다. 그 당시 프랑스의 대학은 지금 한국의 학교들과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학생이 넘치는 대형 강의는 무기력하고 지루한 수업 분위기를 만들었다. 학생과 교수 간의 교류가 없었기 때문에 거리감이 컸다. 수업은 학생들의 참여를 배제한 교수의 일방적인 강의였다. 학생들은 더 이상의 가부장적인 분위기가 종식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배경에서부터 시작된 ‘68운동’은 세계 전반에 걸쳐 커다란 변화를 야기했다. 권위주의적 사회질서에 대한 비판, 제도교육의 혁신, 환경 보호 운동과 반핵, 평화 운동의 대두 등과 같은 새로운 사회변화들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교육적인 측면에서 경쟁 요소가 다분했던 독일 또한 이 혁명으로 인해 큰 변곡점을 맞이했다. 독일은 이 혁명을 기점으로 과거 잔재를 청산하고 제국주의 시절의 교육 제도를 개혁하는데 성공했다. 그 결과, 독일의 국민 의식이 급격히 성장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렇게 성장한 독일의 국민 의식은 환경을 보존하는데 큰 역할을 한다. 실제로 독일의 대표적 주간 시사잡지인 ‘슈퍼겔’에서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독일 국민의 82%가 환경 보호를 위해서는 소비를 포기할 수 있다고 답했다. 또한, 독일에서 유행하는 구호로 ‘플록샴(Flugscham)’ 이라는 단어가 있다. 온실가스의 주범인 비행기를 탈 때 죄책감을 느낀다는 뜻을 지닌 신조어다.

 

교육 제도와 사회 전반에 찌든 경쟁 체제를 타파함으로써 건전하고 수준 높은 사회 문화와 국민 의식이 만들어지며, 이러한 사회 문화와 국민 의식이 모임으로써 자연을 존중하고 환경을 보존해 나가는 세상이 만들어진다. 결국 환경 문제는 교육 제도를 비롯한 사회 전반의 문제와 관련이 깊다.

권찬우
권찬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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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를 주도하는 자들은 늘 이렇게 말한다. “세상은 달라져야 해.” 어떤 형태의 세상이든 결점이 하나는 있기 마련이다. 그리고 이러한 결점은 줄곧 사회적변화를 야기하는 동력원으로 작용해왔다. 특정한 선동 세력이 사회적 결점을 이용하려 들기 때문에 이러한 동력 작용은 더더욱 필수불가결한 것이었다. 문제는, 그들이 자신들의 세상을 위해 사회적 결점을 이용하려 드는 것에 있다. 우리 모두의 세상이 아닌, 그들만의 세상이다. 우리는 그들의 목적에 있어 이를 자주 오인하곤 한다. 이때 우리가 이를 오인한다는 것은, 이미 그들의 선동에 세뇌되었음을 의미한다. 그들은 세상의 결점을 이용해 ‘무언가 바뀌어야 한다’라는 명분을 내세워 우리를 선동한다. 그리고 우리는 자연스럽게 그들의 입놀림에 세뇌당한다. 이는 그들과 세상의 실체에 대한 우리의 무지를 입증한다. 또한, 그 무지에서 비롯된 나약함은 우리로 하여금 선동 세력에 쉽게 대항할 수 없도록 한다. 결국 우리는 선동 세력이 기획한 세상의 일부로 전락한다. 혁명이란 급격한 변화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 급격한 변화에는 납득할 만한 명분이 있어야 한다. 앞서 언급한 사회적 결점이 명분으로 기용되는데, 이 명분은 늘 우리 곁에 존재해왔다. 선동 세력은 이를 교묘하게 이용한다. 프랑스 혁명은 불평등한 절대왕정 체제를 타파하고 자유와 평등을 내세워 절대왕정을 전복시킨 대혁명이다. 이때 명분은 ‘자유와 평등’이었다. 근대 소련의 공산주의는 모두가 평등하다는 이념에서 시작된 완벽한 이론을 토대로 미국의 자본주의와 맞섰다. 그러나 경쟁 체제의 부재로 인해 급격한 붕괴를 면치 못했다. 이때 명분은 ‘실현 불가능한 이론’이었다. 요점은 선동 세력의 실체가 절대악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선동 세력은 혁명을 주도하는 측에 속한다. 그리고 세상은 그들의 입맛에 따라 바뀌게 된다. 그들은 다수를 선동해 그들이 얻고자 하는 세상을 얻은 것일 뿐이다. 그 목적이 순수하지 않고 그들의 이익을 추구하는데 그쳤다면, 그것은 그들이 자기주관적으로 생각한 결과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렇게 얻은 세상은 머지않아 또 다른 선동 세력의 먹잇감이 되어 공멸한다.

  • 권찬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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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권찬우
  • 2020-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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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은교

    권찬우 님 안녕하세요. 다시 만나게 되어 반갑습니다. 이전에 써주신 글보다는 논지가 명확하고 구체적인 글을 써주신 것 같은데요. 여기는 감상&비평 게시판인데 혹 이 글은 어떤 텍스트를 보고 적으신 것인지 모르겠네요. 그저 평소에 가지고 계신 생각들을 논제화시키신 것 같기도 한데요. 환경 문제가 경쟁을 내면화시키는 교육 시스템 안에서 충분히 고찰될 수 없다는 논지로 글을 써주셨는데, 크게 공감하며 읽었습니다. 미세 먼지, 코로나, 각종 기후 위기의 이상 신호들이 지금 저희의 일상의 감각들을 모두 바꾸어놓는 시기가 지금인 것 같아요. 코로나로 인해 외식이 쉽지 않아지니 일회용품을 많이 쓰게 되는데, 개인이 죄책감을 느끼는 걸 넘어서 이 악순환의 위기를 어떻게 빠져나가야 할 지 막막하기도 합니다. 아무튼 권찬우 님께서 잘 지적해주셨다시피 끊임없이 소비를 조장하는 자유 경쟁 체제는 자연, 나아가 인간을 착취하며 발달해 온 것이 맞기 때문에 환경 문제를 바꾸기 위해서는 단지 개인이 일회용품을 덜 쓰고 노력해야하는 문제뿐만 아니라 국가의 규제와 기업의 사회적 가치 재고가 선행되어야 할 것이겠죠. 이를 위해서는 자연을 착취의 대상으로 삼고 인간의 노동력을 값싸게 후려치며 재화와 서비스를 생산하는 시스템 전체에 대한 재고가 필요하다는 글 전체 논지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겠네요. 문제는 이런 구호 전반이 지금까지는 안온하게 받아들여졌던 것 같아요. 학벌중심사회에서 대학 진학을 위한 입시 교육을 소홀히 할 수 없는 동시에 경쟁체제 자체에 대한 혁신의 가능성을 교육현장에서 나누기가 쉽지 않아보이는데요. 그런 의미에서 등교를 거부하던 십대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의 사상과 영향력에 대해 새삼 다시 생각해봅니다. 환경 문제가 이렇게 심각한데, 학교에서 공부를 하는 것이 무의미하다며 등교를 거부한 스웨덴의 이 환경운동가는 권찬우님 말씀대로 교육과 환경 문제의 연관성과 연동 가능성에 대한 중요한 사례이자 지침점인 것 같습니다. 관련하여 내용 찾아보시면 권찬우님께서 흥미를 느끼실만한 대목이 많을 것 같습니다. 그럼 또 다음 글에서 인사나누도록 하겠습니다.

    • 2021-02-13 13:59:56
    오은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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