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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배를 매며를 읽고

  • 작성자 포롱거리다
  • 작성일 2021-05-12
  • 조회수 1,045

서울 도심 한가운데에 사는 나로서 배를 볼 기회는 별로 없다. 그나마 자랑할 거리란, 여행 다니며 유람선 한 번 타봤다는 게 전부다. 그래서 '배를 밀다'라는 것이 무슨 의미 인지 이해가 잘 가질 않았다.

이런 나와 달리 시인인 장석남 시인은 부둣가에서 살았던 것 같다.  그가 배를 밀며라는 시 말고도 배를 매며 같은 배를 소재로 한 시를 다수 쓸 수 있었던 까닭은 그가 살던 곳 근처에 배가 많이 드나들었을 것이라는 추측을 불러 일으킨다. 그리고 그는 배를 미는 것과 사랑의 공통점을 미루어, 사랑의 본질을 이 시에서 그려낸다.

이 시에서 인상 깊었던 두 구절을 소개해 본다면, '그래서 어찌할 수 없이 배를 매게 되는 것'과 '배를 매면 구름과 빛과 시간이 함께 매어진다.' 이다.

지식인 같은 사이트를 보면 가끔 이런 엉뚱한 질문이 올라온다. "여자친구를 사귀려면 어떻게 해야하나요?" 우리가 모두 공감하겠지만, 이성친구를 사귀고 싶어도.. 마음만 가지고 당장 사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반면, 삶을 살면서 사랑은 예기치 못한 순간에 찾아오는 것이다. 작가의 이런 생각은 '밧줄(인연)이 털썩 날라와, 어찌할 수 없이 배를 매게 되는 것..'이라고 시에서 나타나진다. 이 부분이 인상깊었던 이유는 사랑의 이런 운명적인 속성을 나로 하여금 다시 일깨워 주었기 때문이다.

 

고등학생인 나로서 어른들로부터 "연애는 대학가서 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정말, 연애가 나쁜 행위라서 그런것은 아닐터이다. 연애를 하게 되면 시간, 돈, 정신을 사랑에만 투자를 하기 때문일 것이다. 작가는 시에서 '사랑이란 시간, 돈, 정신을 모두 투자하는 것!'이라고 적는 대신, '배를 매면 구름과 빛과 시간이 함께 매어진다.'라는 표현으로 승화 시킨다. 이 구절을 읽으면 나도 모르게 호젓한 부둣가에 떠있는 배를 둘러싼 아름다운 풍경이 연상되어 흐믓해지는 바이다.

'배를 매며'는 배와 사랑의 공통점을 통해 사랑의 본질을 아름답게 형상화한 시이다. 시를 읽으며 서정적 아름다움을 느끼고 싶은 자에게, '배를 매며'는 꼭 한 번 읽어보면 좋은 시가 될 것이다.

 

포롱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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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포롱거리다
  • 2021-0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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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은교

    포롱거리다 님! 안녕하세요! 이 시는 저항할 수 없는, 예기치 못하게 사랑이 당도하는 순간을 그린 서정시인데요. 사랑에 빠져드는 순간을 저항할 수 없는 수동적 순간으로 묘사하며 그 풍경을 박제하는 인식으로 이어지는데, 말씀해주셨다시피 연애의 낭만성과 운명적 신화를 강화하는 시인 것 같습니다. 애인, 특히나 여자친구는 응당 주어져야만 하는 당연한 대상은 아니기에 이 소설의 태도에 대해서도 한 번 더 생각해보게 되었는데요. 아름다운 이미지에서 서정성을 느끼는 한 편, 연애라는 감정의 소용돌이와 사랑의 이기주의적 얼굴에 대해서는 어떤 식의 서정시가 가능해질 지 문득 궁금해지기도 했습니다. 아래 글에서와 마찬가지로 글 내용에 부합하는 제목을 다는 연습을 차근히 하셔보면 더욱 좋을 것 같습니다. 일상에서 만난 작품들과 소통했던 경험을 글로 쓰면 스스로에 대해서도 더 잘 성찰할 수 있는 것 같아요. 포롱거리다님께서 마주치는 일상 속의 문학에 관한 이야기들을 듣는 것이 흥미롭습니다. 또 얘기 나눠주세요!

    • 2021-06-09 16:35:30
    오은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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