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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의로 행한 정의로운 악행 - 니어 레플리칸트

  • 작성자 물자루스
  • 작성일 2022-01-19
  • 조회수 323

(게임의 전체 내용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게임을 플레이하고 이 감상평을 보시면 더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목표가 자신의 이념과 적중하면 그것은 신념이 된다. 그렇게 만들어진 신념은 외부의 방해가 있어도 웬만해서는 무너지지 않는다. 하지만 그 신념이 객관적이고 분명한 진실에 어긋나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면 결국 무너진다. 그렇게 되면 그 무너진 신념을 그냥 버릴 수도 있고, 그 무너진 신념을 끝까지 끌어안고 객관적이고 분명한 진실을 거부하고 끝까지 자신의 주장을 관철할 수도 있다. 역사적, 객관적으로 분명한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으면서 일부러 그것에 반하는 신념을 가지는 건 단순한 독선이다. 하지만 자신이 가진 신념이 절대적으로 틀린 것이었다는 걸 전혀 모르고, 알 방법도 없었는데 사실은 자신이 틀린 것이었다면 그동안 자신이 했던 건 다 헛된 일로 치부되는 것일까? 자신의 뜻에 따라 하던 일을 무조건 관둬야 하는 걸까?

 

주인공은 어려서부터 부모님을 잃어 어린 여동생을 혼자 감당하며 살아갔다. 거기다 정체 모를 마물들이 마을을 위협했고, 여동생은 걸리면 반드시 죽게 되는 불치병에 걸린다. 주인공은 여행 중에 입이 험한 여자 ‘카이네’와 특이한 힘을 가진 남자아이 ‘에밀’과 만나 동행하게 되는데, 마왕이 마물들과 함께 습격해 여동생을 납치해가고 그 뒤로 5년이 흐른다. 마물에 증오를 품은 주인공은 마물과 인간이 함께 사는 마을에서 실수로 그의 동료들과 함께 마물과 마을 사람들을 모조리 죽여버리는데, 그래도 앞으로 나아가는데 후회하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또, 형이 로봇과 마물에 죽어 분노와 증오로만 살아가는 아이를 보고 어리석지만 어쩔 수 없는 거라고 말한다. 플레이어만 알 수 있는 사실로, 형은 로봇과 마물이 아닌 그 아이 본인의 실수로 죽은 것이었다. 그러나 주인공과 그 아이는 그런 사실을 알지 못했고 알 수도 없었다.

그 이후로도 주인공은 거침없이 마물을 죽여 나가는데, 마왕의 성에 도착한 주인공은 평소에 자신을 돌봐주던 부모와도 같던 두 사람이 자신의 앞길을 가로막자 끝내 그들도 죽인다. 하지만 그들과 싸우던 중 주인공은 사실은 자신이 영혼이 없는 텅 빈 껍데기였고, 마왕과 마물들이 원래 인간의 영혼, 즉 진짜 인간이었다는 것을 듣게 된다. 그러나 이미 주인공의 신념은 누구도 막을 수 없었고, 진실이 어찌 됐든 주인공은 자신의 동생을 구해야 했다. 그 주인공을 사랑하던 카이네와 에밀도 마찬가지였다.

마왕은 주인공의 영혼, 그 마왕의 여동생은 주인공 여동생의 영혼이었다. 몸이 필요한 그들은 주인공과 그 여동생의 몸을 써야 했는데, 정작 그 몸들이 새로운 자아를 갖게 돼 문제가 생긴 것이었다. 마왕의 여동생은 이미 주인공 여동생의 몸에 들어간 상태였는데, 몸 안의 다른 자아가 오빠를 보고 싶다고 계속 외치자 이내 더 견디지 못하고 몸에서 빠져나와 죽는다. 그걸 본 마왕은 절규하며 주인공과 싸우고, 이내 주인공에게 패배하고 만다. 주인공은 “각자만의 사정이 있고, 나는 내 동생을 구해야 한다”고 하면서 마왕과 싸우는데, 마왕이 쓰러져 죽일 기회가 오자 망설이다 결국 죽여버린다. 그렇게 주인공과 그 일행은 여동생을 구한다.

 

이 게임의 세계관에서 싸움이란 애초에 헛된 것이었다. 정부는 외계 생명의 침공으로 사람들이 병에 걸려 죽자 그 병을 타파할 방법으로 몸과 영혼을 분리해 놓고 관리를 하려고 했는데, 많은 영혼이 이성을 잃어 몸들을 해치기 시작했고, 몸은 스스로 자아가 생겨 그 영혼과 싸우기 시작했다. 주인공의 영혼, 마왕은 그런 사태를 해결해 줄 힘을 가지고 있었는데, 정부연합이 10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여동생을 치료해주지 못하자 더는 정부에 협조하기를 거부했다. 마왕은 여동생의 영혼을 몸에 다시 넣으면 나아지지 않을까 하여 강제로 여동생의 몸을 납치해갔지만, 상태는 호전되지 않았고 여동생 몸에 있던 자아 역시 없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자신의 몸이 여동생을 찾으러 자신을 죽이러 온다. 마왕에게서 나오는 힘이 없으면 모든 영혼은 곧 죽게 되고, 몸 역시 오래 못 살고 죽게 된다. 마왕이 정부에 협조를 거부하긴 했지만, 결국은 주인공의 몸이 자신의 영혼을 죽여버려 인류의 멸종을 초래한 것은 맞다.

 

주인공(몸)이 결국 인류의 멸종을 초래한 원인이기에 모든 책임이 주인공에게 있을까? 주인공은 잘못된 싸움을 하면서 그것을 정당화하려고 한 것일까? 무식한 자가 신념을 가지면 무섭다는 대중의 속설이 있다. 그러나 그 말도 주변의 조언과 충고를 무시한 독선자들에게나 해당되는 말이다. 니어 레플리칸트를 플레이한 많은 유저는 주인공이 꽉 막힌 성격을 가지고 진실을 알려고 하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필자의 생각은 다르다. 주인공은 그 진실을 알지 못했고 알 수도 없었다. 어렸을 때부터 진실을 알고 있으면서 주인공을 키워준 사람은 진실을 숨기고 추후 어떻게 해결할지 생각하지도 않았다. 마물들과 마왕 역시 언어가 달라서 말이 안 통했다지만, 먼저 공격해 강제로 그의 여동생을 데려갔다.  마왕은 주인공과 대화를 시도하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은 것이다. 어떻게 보면 주인공은 그가 여행 중 만났던 로봇과 마물에게 형을 잃은 아이와 닮았다. 진실을 알 수가 없으니 당장 눈앞에 벌어진 일만 믿을 수밖에 없고, 그에 따라 행동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물론 조금이라도 주의를 기울여 알 수 있었다면 얘기가 다르겠지만, 주인공은 본인과 동생이 몸인지 영혼인지 전혀 알 리가 만무했다. 누가 가르쳐주지도 않는 어떠한 사건, 배경을 스스로 상상해내 알아차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또, 자신을 공격하고 납치해가는 사람에게 싸움을 멈추고 대화를 하자고 할 사람도 없다.

주인공은 여행 중 항상 마물에게서 사람들을 구했다. 몸과 마음에 상처가 있던 카이네와 에밀을 구해주고 그들의 정신적 지주가 되어준 것, 그들과 함께 여동생을 구해냈다는 것은 그 자체로 큰 의미가 있다. 그가 관철한 신념은 진실에 정면으로 반하는 것이었지만, 헛된 것은 아니었다. 진실에 반하는 신념으로 이뤄진 행위가 선의(알지 못함)로 이뤄진 것이었고, 선의로 행한 것이라면 이미 그 행위는 진실과 관계없이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 설령 그 행위가 인류의 멸종을 초래한 행위라 하더라도 책임은 그러한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는 설명을 할 수 있었음에도 노력조차 안 한 자들에게 있다.

 

니어 레플리칸트는 니어 오토마타와 같은 세계관을 공유하고 있다. 니어 오토마타와 마찬가지로 단순한 액션물이라기보다 하나의 내용을 가진 의미 있는 작품으로 이해됐고, 플레이했다기보다는 감상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쉬웠던 점이라면 앞서 말했던 게임 스토리를 유저가 힘들게 게임 외(게임 내용이 아닌 공식 설정, 인터뷰 등)에서 찾지 않으면 세계관의 구체적인 내용과 자초지종을 자세히 알 수 없었다는 것이다. 그러한 문제점은 이후 작품인 니어 오토마타에도 있었다. 하지만 그 외에는 모두 훌륭했다. 특히 배경음악이 정말 좋았다. 엔딩 크레딧에 나오는 ‘ashes of dreams’라는 노래는 주인공 일행의 감정을 대변해주는 것 같아 인상깊었다.

물자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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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은교

    물자루스 님, 안녕하세요. 글 잘 읽었습니다. 게임을 플레이 하면서 느낀 감정들을 솔직하고 또 성찰적이게 잘 적어주신 것 같아요. 선의로 행한 정의로운 악행이라는 표현에 그 정수가 묻어 있는 것 같은데요. 작품의 내용을 잘 요약해주셨고, 그로부터 이끌어 낼 수 있는 질문도 알맞게 해주셨습니다. 지적해주신대로, 세계의 구조적 진실을 깨달았을 때 주체가 자신의 소멸을 감수하면서도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가? 하는 문제는 심오한 철학적 주제인 것 같고, 물자루스 님께서도 이 게임을 따라 비슷한 고민을 하신 것 같아요. 구조적 진실에 접근할 수 없도록 가려 놓아 약자가 선의로 악을 행하고 독자 혹은 플레이어가 딜레마에 빠지는 것을 여러 서사물과 실제 사회 체제 속에서 종종 볼 수 있는 것 같아요. 정의에 대한 독단과 결정들에 대해 우리 스스로 반성의 계기를 마련해보기 위해, 혹은 무지의 악을 대변하기 위해 이런 서사들이 많이 존재하는 것이겠죠? 보통 게임들에서는 마왕 같은 인물을 주인공을 내세워 진실을 파헤치고 승리하는 종류의 이야기가 많은데, 이 게임은 설계를 그 반대로 해놓은 것 같네요. 주인공이 아무리 마왕의 껍데기라 할지라도 플레이어 입장에서 주인공에게 이입될 수 있는 계기를 많이 설정해서 짜릿한 승리 서사 대신 플레이어를 판단 유보 상태로 접어들게 하여 성찰의 폭을 넓힌 것 같아요. 재밌는 게임 소개해주셔서 감사드리고 좋은 글도 잘 읽었습니다.

    • 2022-03-29 16:36:49
    오은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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