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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녀라는 재생 목록에는 큐트보다 굴욕이 - 시집 '숙녀의 기분'을 읽고

  • 작성자 모모코
  • 작성일 2023-01-18
  • 조회수 1,156

‘숙녀’의 기분이라는 제목, 딸기 우유 빛깔의 시집과 그 뒤에 그려진 유리구슬의 삼 박자는 완벽하다. 책을 펼치면 어딘가에서 라일락 향이 날 것만 같고, 꽃잎과 함께 바람이 불어올 것 같다. 숙녀의 사전적 정의를 살펴볼까. 첫 번째, 교양과 예의를 갖춘 정숙한 여자. 두 번째, 성년이 된 여자의 미칭. 이것으로 우리는 얼핏 느낄 수 있다. 이 시집은 어쩐지 아름답고 신비로운 분위기를 풍길 것만 같다고. 숙녀의 기분은 프릴 달린 양말을 신고 풀밭 위에서 피크닉을 가질 때 느낄 수 있을 것만 같은데 글쎄, 정말 이 시집은 그러한 이야기를 담아냈을까?

 

라운드 원, <교생 실습>. 시집에서 가장 먼저 오는 시의 제목부터 그리 아름답지 않다. 라운드 투, <기숙사 커플>. 여기는 더 가관이다.

 

아파, 당분간 너 못 만나

그런데도 방으로 들이닥치면 어떻게 해, 쩝쩝거리면서 왜 내가 먹던 어제 식빵을 먹고 있어, 룸메는 집에 올라갔지 방학이니까, 나는 이제부터 스터디에 갈 거야 그러니까

좀 가, 냄새나니까 좀 가

내 침대에 들어가서는 자는 척 하고 있구나 그렇게도 입지 말라는 늘어난 면 티를 입고서, 굴욕 플레이가 더는 싫어서 너를 만났지 스쿨버스에 캐리어 올려줄 사람이 없어서 너를 만났어 일주일 전부터 너에게 들려주고 싶었던 이야기, 기어이 마구 해버렸다 넌 이불 밑에서 번민광처럼 중얼거렸지

내가 시험 떨어졌다고 이러는 거니?

<기숙사 커플> 中

 

아리따운 숙녀와 그의 천생연분 짝꿍은 어느 곳에도 없고, 지독하고 비린내 나는 말로 싸우고 있는 기숙사의 커플 뿐이다. 그런데도 시를 읽으며 웃음이 나오는 건, 이 커플들이 주고 받는 말들의 지독함 때문 아닐까. 시적으로, 문학적으로 날카롭기보다는 일상에서 ‘너 참 지독한 애다’할 때의 느낌에 가깝다,

세 번째 라운드로는 <좀 아는 사이>가 펼쳐진다. 레디, 파이트?가 울려 퍼지기 전부터 진 것 같다, 같은 미용실에서 머릴 했는데 나만 망했고 어른 흉내를 내는 중에다 얕보이는 게 싫어서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니. 게다가 ‘고개라도 끄덕이지 않으면 당장 나는 할 게 없어진다’니. 멀리 가지 않아도 세 편의 시를 읽으며 깨닫는다. 아, 숙녀는 화자에게서 너무나도 멀리에 있구나. 나에게서 숙녀가 멀리 떨어져 있듯이.

 

시집의 1부 내내 비슷한 광경이 펼쳐진다. 화자는 학생 식당에서 가방을 친구 삼아 홀로 밥 먹으며 아무도 자길 알아보지 않길 바란다. 유일한 친구에게 남자 친구가 생겨 버렸음을 원망하고, 팀플레이랍시고 술을 마시고 다른 아이들 뒷담을 한다. 또 스타크래프트 밴에서 갓 내려 선 스타일인, 나보다 세 살 어려보이는 아이를 노려본다. 영화로 치면 주인공 아가씨보단 그 뒤를 지나가는 조연 1과 같은 상황이다. 드디어 다사다난한 이야기가 막을 내렸나 싶은데, 그 뒤 이어지는 2부도, 3부와 4부도 다를 바가 없다. 화자는 교정기를 하고, ‘여자들만 아는 배’를 핑계로 조별 과제에서 빠지고, 구직 활동을 하러 돌아다니는데다 절교 선언도 한다.

 

현실적이고 마냥 웃을 수 없는 시어들에게 잔뜩 얻어 맞고선 눕는다. 그리고 이쯤되면 그런 생각을 한다. 이 시집에서 ‘숙녀’는 화자를 지칭하는 단어이기보단 화자가 추구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고. 시집에는 종종, 특히 각 부의 끝마다 아름다운 시어로 마음을 간질거리게 하는 시들이 등장한다. 실크 양산을 사서 오데코롱 향수를 뿌리는 <로맨티시즘>, 펜던트를 나누어 가지는 <소울 메이트>. 문 뒤에서 히아신스가 피어오르고 눈꺼풀을 움직일 때마다 크리스털이 떨어지는 <청춘>.

 

떠돌이 악사를 찾아가, 산악 전차를 타고 다시 여행을 시작해

하늘나라 미술관에선 하트 모양의 펀치를 찍고 있었지 라일락의 마지막 꽃잎이 흩날리고 있었어, 사람들은 어떻게 여름을 살아갈까 마음이 지워질 때까지 얼마나 더 꽃잎을 모아야 할까

아무것도 미운 건 없었어 써야 할 이야기가 많아서, 지워야 할 이야기가 많아서 나는 또 대문을 닫겠지만 눈길이 닿는 곳마다 만난 적 없는 눈망울과 이 여름의 공기와, 에테르의, 부서져 흩어지는 에테르의 바다

<여름의 에테르> 中

 

눈부시게 몽환적인 시들이 꿈을 꾸는 듯한. 또는 최면에 걸린 것만 같은 기분을 선사한다. 앞선 시들에서는 누군가와 부딪히고 또 넘어지면서 치열하게 삶을 살아가는 화자를 보여주었다면, 이 시들로는 그 화자 내면에 깊게 잠재된 세계를 보여주는 것이다. 프로이트는 꿈이야말로 ‘무의식의 보고’라고 강조했다. 꿈을 제대로 분석하면 인간 행동이 어떤 이유로 일어났는지 알 수 있다고 주장했다. 동시에 꿈은 개인의 욕망이나 의지를 담는다 말했다.

 

빙산의 아랫부분을 보아야 그 빙산의 참모습을 파악할 수 있듯이, 살아가는 모습은 전혀 숙녀가 아니지만 화자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무의식이 숙녀에 대한 열망을 품고 있기에 우리는 이 시집을 ‘숙녀의 기분’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런데 어째서 화자는 숙녀를 통하여 굴욕감을 느낄까? 꿈꾸는 것만으로도 아름다운 기분을 느낄 수 있겠지만 하필 ‘굴욕’인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화자가 어떠한 방식으로 숙녀와 이어져있는지 살펴 볼 필요가 있다. 이 시집 속 화자들은 대개 대학생이거나 그보다 나이가 많은 여성이다. 그러니 숙녀를 바라는 동시에 ‘숙녀가 되는 것에 실패한’ 나잇대의 사람이다.

 

그 실패로부터 오는 좌절감이나 상실감은 말로 형용하기 어려울 테다. 앞서 언급한 조연 1이 된 것처럼, 자신이 아닌 다른 이가 주인공인것만 같은 삶을 살 것이다. 숙녀가 되는 것에 성공한 이 아닌 그러한 이들을 바라보기만 하며 굴욕감을 느끼는 사람, 그가 바로 화자이다. <합격 수기>를 작성하지 못하고, 작성하는 이를 바라보며 ‘오늘을 기억하자 절대로!’라고 외치는 사람 말이다.

 

멍 때리지 마요! 빨리 진도나 나가요 진짜

밟아주래, 원장님이 그랬어, 그래야 되는 인간들, 그래야 인간이 되는 인간들이 있다 특히 떠들어대는 너는 너희 엄마가 자다가 죽어버리면 아침밥도 안 차려놨다고 열 받을 아이로구나, 뭐라든, 그래도 학원에는 오겠지, 달리 갈 데도 없는 너희들, 와서 앉아 있으면 한 글자라도 얻어듣게 되겠지, 나도 지금부터 누가 죽어나자빠져도 너희들 합격률을 올려놓겠어

못할 것 같니?

못할 것 같아 내가?

<오픈 테스트> 中

 

이 시집에서 ‘숙녀’는 아름다운 분위기를 형성했다가 허물기 위한 장치이자 화자가 선망하는 무언가이지만. 그 이상의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오픈 테스트>에서는 숙녀가 되었건 신사가 되었건 상관 없이 ‘인간들’을 부르며 굴욕적으로 세뇌 당하는 기분을 알려 준다. 숙녀라는 이름으로 표상되는 하나의 이상을 주입당하고,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누군가에게 짓밟히고 또 누군가를 짓밟는 우리의 굴욕 플레이를 보여준다.

 

함께 놀아요 보리수꽃차 나눠 마시고 어리광 피우기 놀이해요 나만의 부티크를 갖고 싶고, 여섯 배는 느리게 움직이지만 자꾸만 멍이 들죠 난 유일의 목소리를 가졌고 비밀이 많아! 외쳐보지만 행복해지진 않아요, 걸스카우트 매듭을 배웠는데 제대로 묶는 게 하나도 없죠 어리광을 좋아해요 사랑 얘기만 하고 세상을 몰라요.

<닌나닌나> 中

창밖의 세계는 궁금하지 않아

늘 혼자서 공깃돌을 손등에 올리는 아이

너희들에게 조금씩 웃음을 나누어주면

소켓에 손가락 집어넣은 아이들처럼

너희들은 빛나겠지만

어째서 나는

파괴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일까

<사춘기> 中

 

숙녀가 되길 실패하기 전, 화자에게도 조금 씁쓸하지만 달콤한 다크 초콜릿 같은 유년이 있었다는 사실은 더욱 마음이 아프다. 이러한 시들을 읽으며 한때 화자는 여리고 어린 사람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지만, 이 사회에 뛰어들어 ‘숙녀’이길 주입당하고 무한히 경쟁하는 지금은 그 시절이 모두 무용하다. 그럼에도 이 시들을 읽으면서 한때 이런 날도 있었지, 하며 마음 깊은 곳에서 잠들고 있었던 기억을 깨우는 건 화자만이 아닐 것이다.

 

기분은, 비단벌레들이 털실을 다 풀면 돌아올 테고 영원히 살지는 못하겠지만 스카프를 두르고 오래된 그림책 위를 날아가네요, 꿀을 넣은 작은 홍차를 마실 거예요, 시간과 공간의 모눈종이를 펼치면 난 대체 어디에 있는 걸까요

<숙녀의 기분> 中

그리하여 혼탁한 <숙녀의 기분>, 시집의 마지막 시를 살펴보면 특이한 점이 있다. 바로 두 페이지에 걸쳐 네 단어의 주문을 외운다는 사실이다. 유리공을 불고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는 화자 그리고 어쩌면 우리를 위한 주문일까. 이 ‘큐트’한 주문은 변신을 위한 주문일지도, 다 잊기 위한 주문일지도, 그저 한 번 외쳐보는 것일지도 모른다.

 

거울을 마주한 것처럼, 적나라하게 나와 우리 사회를 마주했을 때의 기분은 미묘하다. 불쾌하면서도 쌍둥이와 같이 닮은 모습에 정이 가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이 우리가 이 '숙녀의 기분'을 펼쳐 드는 이유가 될 것이다. 그리고 한 번 중얼거려 본다. 더 나은 나로 변신하고 싶어서, 굴욕을 모두 잊어버리고 싶어서, 아니면 기분에 그저 한 번.

 

큐티 큐티 큐트

샤라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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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모모코
  • 2023-12-31
네 사랑의 연대기가 궁금해 - 장수양의 ‘손을 잡으면 눈이 녹아’와 미츠키의 노래를 교차로 읽어내며

연말보다도 아름답게 다가오는 끝이 세상에 있을까. 연말이 이토록 사랑스럽고 반짝거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한 해의 끝자락에서, 늘 내가 사랑했던 이들을 떠올려 본다. 그 사랑이 과거형이 되었건 현재 진행형이 되었건, 어쩌면 사랑하고 싶다는 미래형이 되었건. 나는 사람들을 하나, 둘 생각해 보며 내가 걸어왔던 길을 더듬어본다. 나는 줄곧 아주 좁고 울퉁불퉁한 길을 걸어왔다고 믿어왔으나 나와 함께했던 이들을 떠올려 보면, 그 길은 결코 험하거나 나만이 걷는 길이 아니었음을 깨닫게 된다. 그렇다. 절망이나 후회보다는 감사와 사랑을 채집하는 시기가 바로 연말일 테다. 나는 올해 열 통이 조금 넘는 편지를 썼고 스무 명이 있는 동아리에서 롤링 페이퍼를 하였고, 내게 문학만이 아니라 올곧은 생의 태도를 알려주신 선생님들께 엽서를 썼고. 사랑하는 Y에게 나의 사랑이 당신에게 어쩌면 짐이 될 걸 알아서 미안하다는 말 또한 했고. 그렇게 온갖 곳에 내가 받았던 마음을 다시 돌려주다 보면,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저기 길을 걷고 있는, 내 앞의 아저씨도 올해 누군가를 열심히 사랑했을지 모른다. 방금 지나온 유치원 버스의 아이들은 또 누구에게서 사랑을 받았을까. 새삼스럽지만 우리는 각자가 꾸려내는 생의 주인공이자, 화자이며, 히어로와 히로인이다. 나는 그런 개인을 움직이는 힘이 분노나 질투보다도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오래전부터 믿어왔던 사실이지만, 올해 내가 미워하는 아이가 1지망 대학을 떨어졌을 때는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았으나 가장 좋아하는 친구가 기적과 같이 정시 최초 합격에 성공하자 눈물이 났던 것을 보면. 확실히 사랑이 결국 이기는 것 아닌가 싶었고. 우리는 모두 각자 그런 사랑을 마음에 지닌 채 살아간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사랑, 사랑, 사랑에 대하여 생각하게 되는 일 년의 마지막 페이지. 나는 이 시기에 유난히 장수양 시인의 시집과 싱어송라이터 미츠키의 노래를 반복해서 찾게 된다. 그들의 작품은 장수양 시인과 미츠키가 어떤 사랑을 해왔을지 궁금해질 정도로, 사랑스럽고 또 사랑에 대하여 자신의 목소리로 아름답게 노래하고 있다. 나는 영화와 시를 사랑하지만, 이 두 가지의 예술은 동시에 읽어낼 수 없다. 서안나 시인의 시를 읽으며 영화 ‘릴리 슈슈의 모든 것’의 프레임을 겹쳐 보거나,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영화 ‘괴물’을 보며 백은선 시인의 시편을 떠올렸던 것처럼 이미 내가 한 번 씹어 넘겨서 소화한 적 있는 작품을 겹쳐 보는 일만을 할 수 있다. 그러나 문학과 노래는 다르다. 두 가지의 예술은 동시에 재생할 수 있는데, 나는 그 두 가지의 예술 작품이 한데 어우러져 녹아내리는 순간을 정말이지 사랑한다. 그 녹아내린 작품들은 나의 마음속, 한층 더 깊은 곳까지 스며든다. 어떠한 예술 작품을 더 오래도록 기억하고 마음에 품을 수 있다는 일이라니. 이토록 기쁠 수 없다. 사실 사랑 시를 쓰는 내가 늘 고민하는 지점이 ‘세상에는 사랑을 이야기하는 작품이 너무나도 많다’는 점일 정도로, 이미 멋진 사랑시와 사랑 노래는 넘쳐난다. 그 많은 작품들 중에서도

  • 모모코
  • 2023-12-30
상처의 끝에서 방울져 떨어지는 비명 -영화 ‘키리에의 노래’를 보고

*노래와 함께 글을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나는 영화 ‘릴리 슈슈의 모든 것’의 OST 반복 재생 횟수와 함께 자라났다. 한 뼘을 늘릴 때마다 마주하는 새로운 풍경들, 그 풍경으로부터 다가오는 놀라움이나 슬픔 또는 어떤 분노들. 십 대 중반의 나는 사소한 것들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그 사소한 것들을 과하게 확장 시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한 피곤한 사고방식 속에서 거의 2주, 또는 3주에 한 번은 영화 ‘릴리 슈슈의 모든 것’을 보았다. 나의 등굣길과 하굣길에는 영화의 OST가 한가득 묻어있는 건, 더 말할 것도 없다. 이후에도 이와이 슌지 감독의 여러 작품을 접했으나 역시 ‘릴리 슈슈의 모든 것’만큼 마음의 울림을 주는 영화는 없었다. 그건 예민하고 덜 여문 마음 위로 흐르는 음악보다도 아름다운 건, 적어도 내게는 없었기 때문이다.그렇게 믿으며 십 대의 마지막 페이지, 가을에 들어선 때였다. 이와이 슌지 감독의 신작이 개봉한다고. 그 작품의 제목은, 바로 ‘키리에의 노래’라고. 이후 조금씩 영화의 정보를 마주하며, 이건 나의 이십 대를 책임질 ‘릴리 슈슈의 모든 것’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릴리 슈슈의 모든 것’ 속 소년 소녀들보다 조금 성장한, 청년들의 이야기가 노래와 함께 전개될 때. 나는 과연 무슨 감상을 받을 수 있을까 궁금했다. 부산 국제 영화제에선 다른 영화를 보느라 ‘키리에의 노래’를 놓아주어야 했다. 그렇지만 일반 극장 상영만은 놓치고 싶지 않아, 수학여행 일정 도중 받아본 예매 시작 소식에 급하게 자리를 잡았다. 이 영화의 줄거리는 단순하다. 동일본 지진으로 인하여 약혼자인 ‘키리에’를 잃은 ‘나츠히코’, 그리고 키리에의 동생이자 행방불명된 언니의 이름으로 노래를 부르는 ‘루카’, 그리고 십 대의 자신을 버린 채 변장을 한 채 돌아다니는 루카의 친구 ‘잇코’. 지진 이후 뿔뿔히 흩어졌던 세 사람이 우연히 도쿄에서 다시 만나며 벌어지는 일들을 다루고 있다. 나는 이러한 줄거리가 이와이 슌지 감독답다고 생각하였는데, 앞서 즐겨본 ‘릴리 슈슈의 모든 것’부터 대개 그의 작품의 줄거리는 단순하기 때문이다. 별것 없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몇 줄 되지 않는 분량으로 요약할 수 있다. 그럼에도 내가 그의 작품을 사랑하는 이유는, 아마 변주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대다수의 사랑이나 슬픔, 청춘의 방황, 유년의 막막함과 같은 소재들은 이미 너무나도 많은 작품에서 사용되었고, 독창적인 서사를 적어내려 해도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와이 감독은 하나의 주제를 물어 채고, 자신의 방법대로 –보통 아날로그적인 촬영법을 더하여 영상미를 살리는 방식으로- 끈질기게 주제를 변주한다. ‘릴리 슈슈의 모든 것’에서도 주인공이 겪는 폭력에 집중하면서, 그 위로 환하게 들어오는 조명과 느슨한 선율과 아름다운 목소리의 OST를 끼얹었다. ‘키리에의 노래’ 또한 이와 비슷하다. 언니와 고향을 잃고 그 충격으로 목소리까지 잃은 루카가 키리에의 이름으로 노래를 부를 때만 목소리가 나오는 것. 그리고 이를 응원하는 잇코와 나츠히코에도 각각의

  • 모모코
  • 2023-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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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은교

    안녕하세요. 모모코 님, 사랑스럽고 폭신폭신한 글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숙녀가 되어야 한다는 욕망에 시달리며 좌절감을 느끼는 어느 나잇대 인물들의 감정이 매우 감각적으로 잘 형상화 되어 있는 시집이지요? 작품집을 꿰고 있는 시어와 감정의 의미를 매우 잘 파악한 글인 것 같습니다. 숙녀라는 표상의 표층 의미와 심층 의미를 모두 잘 살펴 그 낙차에서 오는 긴장감, 굴욕감을 등을 저 또한 모모코 님의 비평을 통해 더 잘 전달받게 된 것 같아요. 숙녀가 되지 못해 수치스러운 감정, 그럼에도 그 과정에서 경험하는 소중한 애틋한 감정 모두 말이지요. 그것이 보편적인 인간의 성장 감정으로 전화되는 순간도 잘 파악해주셔서 시집이 더욱 풍부하게 읽히네요. 짧은 기간이지만 모모코님의 글을 보며 점점 글에서 모모코 님만의 개성이 살아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예술 작품을 대할 때 자주 느끼는 감정, 특히 꽂히는 주제, 독서 체험 중 예민해지는 순간 등에 대해 스스로 관찰해본다면 앞으로의 독서도 더욱 즐거워질 것이라고 예상 합니다. 자기 감각의 알고리즘을 잘 살피시길 바라며, 앞으로도 정진하시기를 바랄게요.

    • 2023-03-22 19:35:14
    오은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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