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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무는 창문마다 감상이 밀려온다 - 다양한 작품을 경유하여 읽는 '여름의 빌라'

  • 작성자 모모코
  • 작성일 2023-01-19
  • 조회수 1,305

 

‘인간을 잘 아는 작가’가 되고 싶다고 밝힌 백수린의 소설은 참으로 감각적이다. 단편 소설집 <여름의 빌라>를 읽다 보면 인상주의 음악을 듣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드뷔시나 라벨의 음악 같은, 안온음계가 가득하여 상대적으로 음정의 권력 관계가 뚜렷하지 않아 불안정하고 목적지가 없는 느낌을 주는 클래식 음악 말이다. 소설집에 실린 이야기들은 명확한 결론을 드러내거나 교훈을 말해주지 않는다. 다 읽은 뒤 '그래서 뭐?'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표제작 여름의 빌라만 해도 그렇다. 주인공은 마지막 페이지에 나오는 문장과 같이 이야기의 끝에 도달해서도 확신을 갖지 못한다. 그는 여전히 무엇이 옳은지 그른지 확신할 수 없다. 그저 하고 싶은 말을 위해서 소설의 내용이 되는 편지를 썼다 말한다.

 

그러나 확실하지 않다는 것이 때로는 장점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우리의 삶과 닮았기 때문일까, <여름의 빌라>를 펼쳐 들게 된다. 인상주의 음악 또한 불안정한 느낌을 주어도 특유의 아름다움과 음계 덕분에 많은 이들이 찾아 듣는 것처럼 말이다.  더불어 주인공의 미래가 확실하지 않다는 것이 뚜렷한 서사를 지니지 않았다는 것은 아니므로, 백수린의 소설은 잘 직조된 스웨터와 같기도 하다. 감정이란 가로줄과 사건이란 세로줄을 엮어 촘촘한 서사를 만들어낸다. 그 사이에서 만나게 된 이야기들은 다른 이야기들을 떠올리게 하고, 나는 이에 대하여 말하고 싶다.

 

그의 소설을 '여성 서사'의 측면에서 살펴볼 수도 있을 듯하다. 한 편의 소설을 제외한 모든 단편의 주인공이 여성이다. 더불어 그 여성 옆에 주인공을 자극하는 여성이 존재한다는 점에서 그렇게 여길 수 있겠다. 나는 무수한 여성들 간의 관계 중, '피로 이어진 관계'에 대하여 집중했다. 그리하여 떠올린 것이 임승유의 시집 <아이를 낳았지 나 갖고는 부족할까 봐>이다.

 

표제작 <아이를 낳았지 나 갖고는 부족할까 봐>을 비롯한 시집 속의 시에서는, 여성의 욕망을 가감 없이 표현한다. 눈치 보지 않고 한 여성 속에 있는 마음을 표현하는 것에 <여름의 빌라> 속 단편 <흑설탕 캔디>와 <아직 집에는 가지 않을래요> 등을 떠올릴 수 있었다. 이 뜨거운 마음은 할머니와 손녀 관계에서, 엄마와 아이 관계에서 더욱 적나라하게 드러남에 더욱 시집을 떠올리게 되었다. 시의 구절 '아이와/아이와/아이를'을 살펴보면 끊임없이 이어지는 피의 관계를  만날 수 있고, 아이를 낳으며 새로워지는 동시에 더 많은 사랑을 나누겠다는 의지를 엿볼 수 있는 것 또한 이 소설집과 겹쳐 보인다.

 

또 다른 단편 <아주 잠깐 동안에>의 주인공은 사랑하는 아내를 껴안고 있어도 지독한 고독감을 느낀다고 했다. 이 고독감은 어디서부터 걸어오는 것일까? 덩달아 주인공이 앞으로 살아가야 할 날은 '밤'처럼 넓고 긴데, 주인공은 이것과 어떻게 싸워나갈까? 이에 대한 답을 찾자면, 임신한 아내와 태어난 아이들의 이야기가 해답이다. 나이가 들어가는 두 사람을 보면 고독은 결국 사람들 사이에서 태어나고, 이를 탄생하는 새로운 생명으로 무마시킨다고. 그래서 임승유의 시집이 떠오르는 것이라고.

 

다음으로 떠오르는 것은 조혜은의 근작 시집 <눈 내리는 체육관>이다. 공교롭게도 이 시집을 떠올리게 하는 소설집 속 작품 <폭설> 또한 눈을 품고 있는 제목이다. <폭설>의 주인공인 딸은 한평생 엄마를 원망하며 자랐다. 사랑해 마지않던 엄마는 그저 사랑하는 이가 생겼다는 이유로 이혼을 하고 외국으로 떠나 버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른이 된 주인공은 미국에 사는 엄마를 만나 한바탕 비난의 말을 퍼붓는다. 폭설 속에서 말이다. 다시 엄마의 나이가 된 주인공은 그제야 엄마의 사랑을 이해하게 된다. 그는 엄마가 사랑한 남자와 함께 있는 모습을 처음 마주한 날을 떠올리며 ‘사랑에 빠져 버린 엄마의 얼굴이 실은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서술한다.

시집 <눈 내리는 체육관>에는 같은 제목의 시가 여러 편 존재한다. 각각의 시마다 부제 또한 존재하는데, 이는 유치원부터 엄마의 일기까지 다양하다. 시 속에서 화자는 결혼이라는 제도에 묶인 채 자신을 엄마라 부는 아이를 새삼스레 바라본다. <폭설> 속 엄마는 ‘전교에 그녀 엄마 하나’답게, 그러니 흔한 여성답지 않게 이 제도를 부수고 나갔음이 대조된다. 동시에 소설과 시 속에는 집안일을 하고 자신의 몸을 깎아가며 아이를 돌보는 여성 속에 욕망이 존재함을 조명하는 공통점이 존재한다. 두 작품 모두 ‘엄마’라는 이름이 붙어버린 여성이 겪는 일과 그 진창을 견디려고 하는 노력이 펼쳐놓는 초반부가 존재한다. 아이가 ‘엄마’가 되고 엄마는 ‘엄마의 엄마’가 되는 대물림을 신기하게도 감정처럼 휘몰아치는 눈 속에서 보여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떠오르는 것은 작년 방영된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이다. 해당 드라마의 12회 양쯔강 돌고래는 여성의 부당해고를 다룬 회차이다. 사내 부부 중 아내 직원에게 희망퇴직을 강요한 보험사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이는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하여 제작이 된 내용이다. 유사하게, 힘든 상황에서 남편 대신 '포기'를 선택해야 했던 여성이 소설집에도 등장한다. 표제작 <여름의 빌라>에서는 주인공 주아가 남편의 유학 때문에 아내가 학업이나 일을 그만두는 건, 한국에서 평범한 일이라고 말한다. 이에 대하여 다른 등장인물 한스는 주아에게 너는 평범한 삶을 살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한다.

 

드라마의 맥락도 그러하다. 주인공 변호사와 보험사의 반대편에는 여성 인권 변호사 류가 존재한다. 결국, 법원은 보험사의 손을 들어 주지만 주인공은 친구에게 류가 양쯔강 돌고래처럼 살았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개체 수를 찾아보기 아주 힘든 종이지만, 당당하게 살아갔으면 하는 것이다. 여전히 이 사회에서 여성들은 임신과 출산을 이유로, 또는 그저 '여성이라는' 이유로 여러 부조리를 겪게 된다. 두 창작물은 이 사실을 현실적으로 담아낼 뿐만 아니라, 이것을 보고, 그리고 읽고 있을 여성들에게 힘이 될 수 있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이 단편 소설집의 주인공들은 대개 조심스럽고, 소심하다. 이것은 답답하게 느껴질 만큼 포근한 햇살과 같다. 그들은 모두 사람과 사람 사이를 가로지르는 경계선 앞에서 망설이기 때문에 그러한 성정을 지니게 된 것 아닐까. 그러나 망설이는 것에 멈추지 않고 온몸으로 더 나은 삶으로 나아가길 애쓰며 자신만의 세계를 천천히 확장하는 것이 배울 만한 부분이다. 나의 욕망, 타인에 관한 몰이해, 너무나도 빠르게 변하는 세상처럼 알 수 없는 것이 우리 주변에 가득하지만, 소설 속 주인공들처럼 나의 따스한 마음을 무너지지 않게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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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모모코
  • 2023-12-31
네 사랑의 연대기가 궁금해 - 장수양의 ‘손을 잡으면 눈이 녹아’와 미츠키의 노래를 교차로 읽어내며

연말보다도 아름답게 다가오는 끝이 세상에 있을까. 연말이 이토록 사랑스럽고 반짝거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한 해의 끝자락에서, 늘 내가 사랑했던 이들을 떠올려 본다. 그 사랑이 과거형이 되었건 현재 진행형이 되었건, 어쩌면 사랑하고 싶다는 미래형이 되었건. 나는 사람들을 하나, 둘 생각해 보며 내가 걸어왔던 길을 더듬어본다. 나는 줄곧 아주 좁고 울퉁불퉁한 길을 걸어왔다고 믿어왔으나 나와 함께했던 이들을 떠올려 보면, 그 길은 결코 험하거나 나만이 걷는 길이 아니었음을 깨닫게 된다. 그렇다. 절망이나 후회보다는 감사와 사랑을 채집하는 시기가 바로 연말일 테다. 나는 올해 열 통이 조금 넘는 편지를 썼고 스무 명이 있는 동아리에서 롤링 페이퍼를 하였고, 내게 문학만이 아니라 올곧은 생의 태도를 알려주신 선생님들께 엽서를 썼고. 사랑하는 Y에게 나의 사랑이 당신에게 어쩌면 짐이 될 걸 알아서 미안하다는 말 또한 했고. 그렇게 온갖 곳에 내가 받았던 마음을 다시 돌려주다 보면,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저기 길을 걷고 있는, 내 앞의 아저씨도 올해 누군가를 열심히 사랑했을지 모른다. 방금 지나온 유치원 버스의 아이들은 또 누구에게서 사랑을 받았을까. 새삼스럽지만 우리는 각자가 꾸려내는 생의 주인공이자, 화자이며, 히어로와 히로인이다. 나는 그런 개인을 움직이는 힘이 분노나 질투보다도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오래전부터 믿어왔던 사실이지만, 올해 내가 미워하는 아이가 1지망 대학을 떨어졌을 때는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았으나 가장 좋아하는 친구가 기적과 같이 정시 최초 합격에 성공하자 눈물이 났던 것을 보면. 확실히 사랑이 결국 이기는 것 아닌가 싶었고. 우리는 모두 각자 그런 사랑을 마음에 지닌 채 살아간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사랑, 사랑, 사랑에 대하여 생각하게 되는 일 년의 마지막 페이지. 나는 이 시기에 유난히 장수양 시인의 시집과 싱어송라이터 미츠키의 노래를 반복해서 찾게 된다. 그들의 작품은 장수양 시인과 미츠키가 어떤 사랑을 해왔을지 궁금해질 정도로, 사랑스럽고 또 사랑에 대하여 자신의 목소리로 아름답게 노래하고 있다. 나는 영화와 시를 사랑하지만, 이 두 가지의 예술은 동시에 읽어낼 수 없다. 서안나 시인의 시를 읽으며 영화 ‘릴리 슈슈의 모든 것’의 프레임을 겹쳐 보거나,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영화 ‘괴물’을 보며 백은선 시인의 시편을 떠올렸던 것처럼 이미 내가 한 번 씹어 넘겨서 소화한 적 있는 작품을 겹쳐 보는 일만을 할 수 있다. 그러나 문학과 노래는 다르다. 두 가지의 예술은 동시에 재생할 수 있는데, 나는 그 두 가지의 예술 작품이 한데 어우러져 녹아내리는 순간을 정말이지 사랑한다. 그 녹아내린 작품들은 나의 마음속, 한층 더 깊은 곳까지 스며든다. 어떠한 예술 작품을 더 오래도록 기억하고 마음에 품을 수 있다는 일이라니. 이토록 기쁠 수 없다. 사실 사랑 시를 쓰는 내가 늘 고민하는 지점이 ‘세상에는 사랑을 이야기하는 작품이 너무나도 많다’는 점일 정도로, 이미 멋진 사랑시와 사랑 노래는 넘쳐난다. 그 많은 작품들 중에서도

  • 모모코
  • 2023-12-30
상처의 끝에서 방울져 떨어지는 비명 -영화 ‘키리에의 노래’를 보고

*노래와 함께 글을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나는 영화 ‘릴리 슈슈의 모든 것’의 OST 반복 재생 횟수와 함께 자라났다. 한 뼘을 늘릴 때마다 마주하는 새로운 풍경들, 그 풍경으로부터 다가오는 놀라움이나 슬픔 또는 어떤 분노들. 십 대 중반의 나는 사소한 것들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그 사소한 것들을 과하게 확장 시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한 피곤한 사고방식 속에서 거의 2주, 또는 3주에 한 번은 영화 ‘릴리 슈슈의 모든 것’을 보았다. 나의 등굣길과 하굣길에는 영화의 OST가 한가득 묻어있는 건, 더 말할 것도 없다. 이후에도 이와이 슌지 감독의 여러 작품을 접했으나 역시 ‘릴리 슈슈의 모든 것’만큼 마음의 울림을 주는 영화는 없었다. 그건 예민하고 덜 여문 마음 위로 흐르는 음악보다도 아름다운 건, 적어도 내게는 없었기 때문이다.그렇게 믿으며 십 대의 마지막 페이지, 가을에 들어선 때였다. 이와이 슌지 감독의 신작이 개봉한다고. 그 작품의 제목은, 바로 ‘키리에의 노래’라고. 이후 조금씩 영화의 정보를 마주하며, 이건 나의 이십 대를 책임질 ‘릴리 슈슈의 모든 것’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릴리 슈슈의 모든 것’ 속 소년 소녀들보다 조금 성장한, 청년들의 이야기가 노래와 함께 전개될 때. 나는 과연 무슨 감상을 받을 수 있을까 궁금했다. 부산 국제 영화제에선 다른 영화를 보느라 ‘키리에의 노래’를 놓아주어야 했다. 그렇지만 일반 극장 상영만은 놓치고 싶지 않아, 수학여행 일정 도중 받아본 예매 시작 소식에 급하게 자리를 잡았다. 이 영화의 줄거리는 단순하다. 동일본 지진으로 인하여 약혼자인 ‘키리에’를 잃은 ‘나츠히코’, 그리고 키리에의 동생이자 행방불명된 언니의 이름으로 노래를 부르는 ‘루카’, 그리고 십 대의 자신을 버린 채 변장을 한 채 돌아다니는 루카의 친구 ‘잇코’. 지진 이후 뿔뿔히 흩어졌던 세 사람이 우연히 도쿄에서 다시 만나며 벌어지는 일들을 다루고 있다. 나는 이러한 줄거리가 이와이 슌지 감독답다고 생각하였는데, 앞서 즐겨본 ‘릴리 슈슈의 모든 것’부터 대개 그의 작품의 줄거리는 단순하기 때문이다. 별것 없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몇 줄 되지 않는 분량으로 요약할 수 있다. 그럼에도 내가 그의 작품을 사랑하는 이유는, 아마 변주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대다수의 사랑이나 슬픔, 청춘의 방황, 유년의 막막함과 같은 소재들은 이미 너무나도 많은 작품에서 사용되었고, 독창적인 서사를 적어내려 해도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와이 감독은 하나의 주제를 물어 채고, 자신의 방법대로 –보통 아날로그적인 촬영법을 더하여 영상미를 살리는 방식으로- 끈질기게 주제를 변주한다. ‘릴리 슈슈의 모든 것’에서도 주인공이 겪는 폭력에 집중하면서, 그 위로 환하게 들어오는 조명과 느슨한 선율과 아름다운 목소리의 OST를 끼얹었다. ‘키리에의 노래’ 또한 이와 비슷하다. 언니와 고향을 잃고 그 충격으로 목소리까지 잃은 루카가 키리에의 이름으로 노래를 부를 때만 목소리가 나오는 것. 그리고 이를 응원하는 잇코와 나츠히코에도 각각의

  • 모모코
  • 2023-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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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은교

    백수린 작가의 작품을 안온음계가 가득한 음악, 인상주의로 묘사해주신 점이 참 적절하면서도 멋진 시적 비유인 것 같습니다. 이 소설집과 이어지는 시집, 드라마 등을 함께 언급해주셨는데, 여성 노동의 측면, 어머니의 감정, 생명에 대한 관심사 등을 공통점로 찾으신 점에서 다양한 장르의 서사를 소화하는 모모코님의 역량을 잘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가족 내 여성의 역할과 그로 인한 사회적 성취의 좌절과 수행성 등은 백수린 작가가 자주 반복해서 쓰는 문학적 주제인데, 이를 잘 파악하신 것 같습니다. 특히나 전통적인 어머니의 상을 뒤집어 제시하여 모녀 관계의 복잡성을 드러내거나 그 안에서 섹슈얼리티를 읽어낸 독해는 정말 꼼꼼하네요. 모모코님의 따르자면, 이 인상주의적인 문학이 결과적으로 어떤 여성의 이해와 연대의 상을 보여주고 있는지, 비판이 가능한 부분이 있는 지도 포함해주신다면 글이 더욱 입체적이게 될 것 같습니다.

    • 2023-03-22 19:58:43
    오은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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