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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빛' 인간이 가지는 믿음의 통로

  • 작성자 유로치카
  • 작성일 2023-02-25
  • 조회수 1,043

당신은 본인이 굳게 믿고 있던 대상이 옳지 않음을 깨달을 때 그것에 대해 의심해본 적이 있는가? 본인이 정신적으로 크게 의지하는 대상이 불확실하다고 느껴졌을 때의 그 허탈감은 가히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이 영화는 신과 인간의 관계에 대해서, 가장 철학적이고 탐미적인 방식으로 그 갈등을 바라보고 있다.

 

신의 침묵

영화는 작은 교회에서 토마스가 예배를 거의 마치며 시작된다. 토마스는 신자들이자 이웃들에게 성체를 나누어준다. 오르간 연주자의 연주, 주님께 감사를 드리는 기도문과 함께 예배를 마친다. 이후 예배당에 누군가 찾아온다. 요나스와 카린이다. 그들은 부부이며, 최근 들어 요나스는 정신적으로 흔들리고 있었기에 토마스 신부에게 도움을 받고자 찾아온 것이었다. 하지만 토마스 역시 아내를 잃고 나서부터 흔들리고 있던 상황, 그들에게 별다른 도움을 주지 못한다. 카린은 토마스와 요나스가 둘이서 이야기하는 게 좋겠다며 돌아간다. 그의 주변에는 마르타, 토마스 신부를 사랑하는 여성이 맴돌고 있다. 그녀는 토마스를 향한 애정을 숨기려 하지 않는다. 그녀는 그가 아내를 잃었음을 알고 있음에도 자신의 감정을 무모할 정도로 쏟아내기도 했다. 그녀는 토마스에게 편지를 보냈고, 이것을 읽은 토마스는 그 편지를 그냥 책상 한편에 둔 채 엎드린다. 요나스는 다시 토마스를 찾아왔지만 그에게서 믿음을 볼 수 없었고, 자살한 체 발견된다. 마르타는 그를 떠났다. 등장인물들의 뒤섞이고 혼란스러운 서사가 토마스에게 천천히 다가온다. 결국 암울한 이 공간 속에서 예배를 들을 수 있는 사람은 없었고, 토마스는 믿음 없는 예배당에서 예배를 시작하며 영화는 막을 내린다.

 

우리에게 믿음이 있다면

감독이 이 영화를 통해 나타내고자 했던 목적을 생각해보자. 영화는 신에 대한 신앙심, 신부의 의무 등 본질적인 면과 인간의 불안정함을 주로 나타낸다. 신이라는 존재를 믿고 의지함으로써 자신의 두렵고 나약한 부분을 감춘다. 이를 의도치 않게 드러내게 되었다면 그들은 자신이 믿는 존재의 탓으로 돌린다. 이 영화는 잉마르 베리만 감독의 영화 신의 침묵 3부작 중 두 번째에 해당한다. 시리즈 영화 중 하나이기 때문에 이해하기 어려울 수도 있지만, 과도하게 추상적이지 않기 때문에 한 번쯤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인간의 부조리*와 한 직급에 서 있는 인간의 위치, 그것의 중요성과 자신이 있는 직급의 이름표를 달고 살아가는 사람의 심리 상태를 표현하고자 했다. 또한 이 영화 속에서 토마스와 마르타의 관계도 꽤 중요하다. 아내를 잃은 토마스 입장에서는 마르타는 그저 하나의 조각일 뿐이다. 그녀는 단지 그가 보살펴야 할 어린양, 신자에 불과하다. 그러나 마르타는 그 이상의 애정을 요구함과 동시에 그와 진실한 관계를 맺고 싶어 한다. 하지만 아내를 잃은 토마스에게 더 보이는 것은 없다. 토마스의 앞에 깔린 길은 어두컴컴하고 깊다. 그는 그것을 안다. 깨달았음에도 나아가지 못한다.

 

 

흑백에서 시작되는 감정의 조각

영화는 흑백영화다. 토마스가 마르타가 보낸 편지를 꺼내서 읽을 때, 단지 목소리로 더빙된 것이 아닌 마르타의 당시 감정을 세세하게 표현하기 위해서 마치 그가 마르타의 이미지를 떠올리듯, 그녀의 눈동자를 세세하게 하나하나 담았다. 그녀의 독백이자 토마스를 향한 애정을 보다 보면, 그녀 역시 토마스에 대해 점차 믿음을 잃어가고 있는 것으로 묘사된다. 등장인물들은 서로 마주 보고 대화하지 않는다. 요나스는 토마스의 맞은편이 아닌 그의 옆에 앉았다. 마르타는 그의 곁에 가까이 붙어있었다. 영화에는 음악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예배에 사용된 오르간 음악이 이 영화의 시작이자 끝을 알린다. 구슬프고도 성스러운 그 음계는 마치 토마스에게 신이 답하듯, 토마스가 신에게 느끼는 감정을 표현하듯 예배당을 잔잔히 울린다. 흑백의 영화는 이들의 모습을 전달하기에 가장 적절하다. 눈의 색상, 피부색, 심지어 주변의 풍경까지 알아보기 힘든 분위기에서 유일하게 알 수 있는 건 인물들의 감정선이다. 우울하고 깊은 분위기의 영화는 이것을 보는 사람들마저도 그 분위기 속으로 빠져들게 만든다.

 

기독교에서 신부라는 존재는 곧 하느님과 그를 따르는 신도를 이어주는 징검다리와 같은 역할을 한다. 하지만 이를 잇는 징검다리가 사라진다면? 존재하지 않게 된다면 어떻게 되는 걸까? 이 영화는 사라져가는 징검다리 그리고 흔들리는 징검다리에 관해서 서술하고 있다. 영화 속 인물들은 서로 의지하는 대상에게 매달리지만, 그 대상을 이해하거나 대상에 대해 연민 같은 감정을 품으려고는 하지 않는다.

 

무질서하고 무감각한 사회 속에서 믿음을 찾는다는 것은 어렵다. 또한 의지하고 믿는 대상이 사라지는 것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존재함으로써 서로의 믿음이 되어주는 것, 의심하지 않고 등불이 되어 밝히는 것이 당신의 어두운 길을 걷는데 도움이 되지 않겠는가?

 

 

*철학 중 하나; 인생에서 그 의의를 발견할 가망이 없음을 이르는 말. 인간과 세계, 인생의 의의와 현대 생활과의 불합리한 관계를 나타내는 실존주의적 용어로, 특히 프랑스의 작가 카뮈의 부조리 철학으로 널리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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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로치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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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로치카
  • 2023-12-28
세상의 기준과 이치를 부수고 나아가라, 신의 은총으로

세상에는 여러 가지의 종교가 있다. 세계 사람 대부분이 믿는 4대 종교부터, 이단이라고 불리는 그들만의 낙원까지. 사람들은 이러한 자신이 믿는 종교를 통해서 참회하거나 위로받는다. 우리는 때론 올바른 종교들만이 세상을 바꿀 수 있으며, 또 그러한 종교들은 깨끗하다고 순결하다고 여기게 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것이 당신이 알던 사실과 다르다면 당신은 어떻게 행동하겠는가? 신의 은총으로영화는 주인공인 알렉상드르가 주교에게 보낸 편지를 읽는 음성이 들려오면서 시작된다. 주인공인 알렉상드르는 어릴 적 스카우트 시절에 프레나 신부에게 동성 성폭행, 아동 성폭행을 당했고 그것이 트라우마로 남은 채 지내고 있었지만 어쩐지 모르게 그는 여전히 주에 대한 신앙을 잃지 않고 있었다. 이후 알렉상드르는 프레나 신부에게 성폭행 피해를 본 것이 자신만이 아니라는 소식을 듣고, 직접 제 발로 뛰어 피해자들을 모으고 그들과 함께하기 시작한다. 교황청을 상대로 소송과 피해에 대한 보상을 요구하기는 쉽지 않았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피해자들의 증언과 증거를 수집하는 과정에서 일부 피해자들이 이러한 사실을 거부하는 일도 빈번했다. 하지만 알렉상드르와 다른 피해자들의 설득 끝에 그들은 다시 마음을 바꾸어 함께하게 되었고, 끝까지 남아 교회에 맞서 싸우기로 한다. 이후 진행된 재판 결과는 완벽한 승소는 아니었으나, 어느 정도 해결된 모습을 통해 이러한 싸움은 계속될 것이며 또한 빛을 볼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게 되었다. 주께서 우리를 인도하시고….영화 “신의 은총으로”는 실제로 있었던 가톨릭 교구 내 사제가 아동을 성폭행한 사건에 대해 다루고 있다. 영화라는 장르적 특성을 고려할 때 모든 것을 사실적으로만 표현한 것은 아니지만, 이러한 아동 성폭행 사건은 암암리에 이루어졌고, 또 사제라는 직급, 사회의 분위기 같은 문제 때문에 묻혀왔다. 그러다 이 영화를 통해 이러한 문제들이 다시 수면으로 올라와 대두되기 시작한 것이다. 우리는 영화의 또 다른 면을 통해 한 사람의 연대 시작이 큰 파문을 불러오고 그 선택으로 인해 사회는 어떤 방식으로든 반드시 바뀐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비록 영화의 결말이 시원치 않더라도, 우리는 이 영화를 통해 많은 정보와 실상을 알게 되어 등장인물들과 피해자들에게 공감할 수 있게 된다. 감독은 연대의 과정을 현실적이고 직접적으로 표현함으로써 피해자들이 사회에 나서기 전까지 받는 고통이 얼마나 큰지, 유년 시절에 받은 고통을 왜 꺼내기를 꺼리는지도 알려주었다. 영화는 작 중 범죄에 대해 언급하는 것을 꺼리지 않는다. 오히려 가끔 있는 재치 있는 개그 장면으로 기독교 사회를 꼬집거나, 거칠고, 순화되지 않은 언어들로 문제의 심각성에 대해 표출한다. 교회가 입은 상처를 치유하시길보통 사회적 문제를 고발하거나 사람들이 연대하는 과정을 그려내는 영화들은 주로 등장인물의 생각과 감정에 집중한다. 이 영화 역시 주인공인 알렉상드르와 그 주변 인물들의 감정에 중심을 맞추고 있는데, 예를 들자면 영화 초반 알렉상드르의 행동과 함께 나오는 편지를

  • 유로치카
  • 2023-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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