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은영의 『나는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하고』를 읽고
- 작성자 모모코
- 작성일 2023-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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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틴 리딩 클럽의 일환으로 읽게 된 진은영 시인의 시집. 개인적으로 시인의 시집 중에선 표지를 닮아 유연하게, 그리고 분홍빛으로 흘러가는 시집 『훔쳐가는 노래』를 가장 좋아한다. 그러나 그 『훔쳐가는 노래』 못지않게 좋아하는 시집이 바로 『나는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하고』다. 앞서 말했듯 나는 이미 이 시집을 지니고 있었는데, 집에 있는 시집은 몇 번이고 읽어댄 탓에 정말 ‘오래된 거리’ 같은 형상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나 또한 이 시집을 ‘오래된 거리처럼’ ‘사랑’하기에, 그런 시집을 어디든 들고 다녔다. 감사하게도 글틴에서 새 시집을 보내준 덕분에, ‘어린 시절’의 거리로 돌아가 다시금 ‘술래였던 시간’을 가져볼 수 있었다. (「청혼」)
나는 진은영 시인의 시를 읽으며, ‘물 위를 떠도’는 (「사랑의 전문가」) 기분을 맛보았다. 수중 사랑 일지. 나는 이 시집을 그렇게 부르고 싶다. ‘가을은 독을 삼킨 로미오처럼 기어’오고,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에 대하여」) ‘사랑의 신은 공중화장실 비누같이 닳은 얼굴을 하고서 내게 오’지만 (「파울 클레의 관찰 일기」) 그럼에도 사랑을 속삭일 수 있다니. 표제작 「청혼」은 ‘사랑’으로 피어나 ‘슬픔’으로 끝나듯, 사랑과 슬픔은 샴쌍둥이일지도 모른다. 슬픔이 내 옆구리에 붙어있어도 내게 사랑이 있음을 알고 맹세를 속삭이는 사랑의 달인, 나는 언제나 진은영 시인을 사랑의 달인으로 불러왔다. 표제작부터 시작해 ‘사랑의 전문가’라는 시가 등장하듯, 그런 나의 믿음이 이번 시집을 읽는 동안 인정을 받은 듯 해 기쁘기도 했다.
글틴 측에서는 총 여덟 편의 시를 정하여 감상을 나누도록 권장해 주었고. 이중 제일 먼저 이야기하고 싶은 시가 있다면 단연코 「청혼」이다. 내가 사랑하는, 문우이자 같은 글티너 유로치카가 내게 무슨 작품 추천해야 하지? 물었을 때 내가 한 대답은 ‘청혼 안 하면 그건 진짜 바보.’였다. 이 시집을 펼친 이상, 「청혼」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을 테니. 이 시는 말 그대로 물속에서 속삭이는 고백 같다. ‘순결한 비누 거품 속에서’ 했던 맹세들을 찾아 ‘너의 팔에 모두 적어주’겠다 하는 문장들. ‘슬픔’은 ‘투명한 유리 조각’처럼 널려 있고 또 우리가 쉽게 마주하는 정물인 ‘물컵’에 담겨 있다. 이렇게 슬픔이 옷을 흠뻑 물들이는 수 있는 거리에서 사랑을 노래하다니. 마치 슬픔이 비처럼 내리는 거리에서 우산은 ‘너’에게 내어준 채 오직 ‘청혼’에만 집중하는 화자의 모습이 그려진다. 이 노래는 거품처럼, 물방울처럼 뭉쳐지고 흩어지며 ‘너’의 방향으로 흐른다. 시적 화자의 속삭임은 하나의 소용돌이가 되어 파도의 방향으로 흘러간다. 그렇게 자연스레 가닿은 고백은 ‘너’만이 아닌 독자인 우리의 살갗까지 간지럽히는데. 이 간지러움, 꽤 기분이 좋다. 우리 또한 물속 극장에 들어온 것처럼 먹먹해지기도 하고, 볼이 눅눅해지기도 한다. 이건 곰팡내 나도록 습기 높은 시간이 아니라, 덜 마른 빨래처럼 촉촉하고도 젖어 있는. 그런 물기가 살아 있는 글이기 때문이다.
더불어 진은영 시인의 시를 논하려면 매력적인 비유를 빠뜨릴 수 없는데, 과연 어느 시인이 너를 ‘오래된 거리처럼’ 사랑한다 말할 수 있을까. ‘별들은 벌들처럼 웅성’거리고 ‘벌들은 귓속의 별들처럼 웅성’거린다 할 수 있을까. 짧은 시 속에서 여러 번의 비유가 등장하는데, 나는 그중 ‘여름에는 작은 은색 드럼을 치는 것처럼’에 가장 집중하였다. 여름이라는 계절의 특성을 가지고 ‘너’와 화자가 함께 보낸 계절에 활기를 불어 넣어주다니. 이렇게 낭만적인 표현이 또 존재할 수 있을까. 이어서 「사랑의 전문가」의 비유도 살펴보자면, 나는 바다이자 기름의 일종이라는 은유가 등장한다. 은유는 직유보다 사용하기 어렵지만 한 번 제대로 사용하면 그 빛이 폭발적으로 발산할 수 있다 믿는다. 그런 의미에서 진은영 시인의 은유는 폭발하다 못해 활자로부터 튀어 올라 내게로 다가온다. ‘폐유로 가득 찬 유조선이 부서지며 침몰’하는 이미지가 등장하고, ‘나는 너를 사랑했었다’고 고백한다. 이 모든 문장들이 모여 ‘나는 바다의 일종’이자 ‘나는 기름의 일종’이라는 낯선 은유을 독자들에게 설득시킨다. 모든 시가 논리적일 필요는 없지만, 시인은 던져둔 문장들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믿는다. 진은영 시인은 낯설고 아름다운 비유를 던지는데 그치지 않고, 사랑스러운 시적 서사와 ‘사랑의 전문가’다운 고백들로 비유를 짊어지고 간다.
한편 진은영 시인은 비유에만 능한 것이 아니다. 나는 시가 이미지와 리듬을 각각 한 손에 쥔 채 균형을 잡으며 나아가는 장르라고 믿는다. 진은영 시인은 이미지의 전문가이기도 한데, 가령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에 대하여」의 경우에는 에릭 로메르 감독의 영화 『녹색광선』을 떠올리게끔 한다. ‘무한한 녹색 심장을 찌를 수 있다’는 진술로 시작되는 시는, ‘빛나는 여름’을 그려내지만 ‘하나의 영원에서 다른 영원으로 날아가는 붉은 단도처럼’ 날카롭다. 이는 여름을 그려내고 있지만 어쩐지 겨울의 기후에 더욱 어울리는 『녹색광선』과 닮아있다. 예민하고 약간은 우울한 영화 속 주인공 델핀은 여행을 통해 자그마한 감정들을 발견한다. 이처럼 진은영 시인의 시도 ‘그 잎 하나를/ 가만히 쥐어보는 동안에’ 발견되는 작으면서도 선명한 감정들을 그려낸다. 시 곳곳에 배치된 ‘가을’이라는 시어가 같은 감독의 『가을 이야기』를 연상시키기도 하고. 텍스트 예술에서 영상 예술을 바로 떠올릴 수 있다는 건, 놀라운 경험이다. 한편으로는 「파울 클레의 관찰 일기」처럼 미술가를 바로 데려오는 시 또한 발견할 수 있다. 고통과 절망의 ‘색채’를 가지고서 ‘슬픔이 소녀들의 가슴을 파내’는 이미지를 그려내고 ‘그들이 절망을 한쪽 가슴으로 삼아 노래를 쏘아 올리는 것’ 또한 그려내다니, ‘슬픔으로 얼룩진’ 이 시를 보면 나 또한 밀려오는 슬픔과의 ‘경쟁에선 번번이 패배’할 수밖에 없다.
시집 곳곳에 차오른 이미지를 살펴 보았다면, 이제는 리듬을 보아야 할 때겠지. 이는 지정된 시 중 「한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와 「그날 이후」에서 두드러진다. 『훔쳐가는 노래』에서 ‘청춘의 고통이 끝나지 않는다는 거/ 청춘이 끝난 뒤에도 고통이 끝나지 않는다는 거/ 어떤 싸움이 끝난 뒤에도 끝나지 않는다는 거/ 나무들, 나무들의/ 회색 밑동 아래로 슬픔의 기름이 흐른다는 것’ (「지난해의 비밀」)을 노래하던 시인답게, 말하듯 전개하는 시 속에서 리듬이 느껴진다. 두 시 중 전자는 해묵은 활자처럼 산뜻하고도 슬프게, 후자는 노란 리본처럼 슬픔을 둥글게 굴려서 이야기한다. 나는 「그날 이후」에 집중하여 읽었는데, 특정 사건을 모티프로 한 시일 뿐만 아니라 ‘미안’과 ‘있어’로 끝나는 문장들이 마음을 연속해서 노크하였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아빠, 자꾸만 바람이 서글픈 속삭임으로 불게 해서 미안/ 엄마, 가을의 모든 빛깔이 어울리는 엄마에게 검은 셔츠만 입게 해서 미안’ 같은 문장들. 부모를 잃은 아이를 칭하는 단어는 있으나 아이를 잃은 부모를 칭하는 단어가 없는 이유는 감히 그 슬픔을 헤아릴 수 없기 때문이라는 말이 있다. 그처럼 우리는 시 속에서 함부로 파헤칠 수 없는 슬픔을 마주하는데, 이 슬픔이 물처럼 천천히 우리에게 걸어와 심장 속으로 스며든다. 그런 물속에서 우리는 이렇게 끝나는 시를 마주한다. ‘아빠, 여기에는 친구들도 있어/ 이렇게 말해주는 국어 선생님도 있어’. 어느 참사에만 특정되는 것이 아니라, 한 재난의 피해자는 여전히 ‘있고’ 그런 그들을 우리가 계속해서 기억해야 함을 떠올리게끔 한다. 나는 이곳에서 사랑을 읽어냈는데, 성애적인 사랑이 아닌 인간을 들여다볼 줄 아는 마음의 사랑을 볼 수 있었다. 타인에게 진심으로 마음을 주지 않는다면, 어떻게 같은 슬픔을 나누어 가지고 ‘애도’할 수 있겠는가?
결국에는 이렇다. 슬픔은 바다처럼 넓고 이따금 우리에게 밀려온다. 그렇게 젖어들은 심장 속에서 시는 쓰인다. 진은영 시인의 아름다운 시처럼. 시집의 마지막 시 「빨간 네잎클로버 들판」의 마지막 문장, ‘멈추는 것들은 대개 그렇듯, 슬프거든’. 우리가 ‘오래된 거리’의 외눈박이 가로등처럼 멈추어 서게 될 때, 나는 진은영 시인의 시집을 읽기를 권유할 테다. 나의 허리춤에 붙어 빛나는 사랑을 위해. 역시 그 건너편에 쌍둥이처럼 붙어 있는 슬픔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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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기억 속의 마음들은 흘러가지 않고 고인다. 기록함으로써. 우리는 흔히 시간이 ‘흘러간다’는 표현을 사용하는데, 나는 이것이 무척 알맞은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우리의 삶이 어렵다고 하더라도 사실 하루는 순식간에 지나간다. 정신없이, 빠르게, 휘몰아치며. 이런 기분들은 마치 우리가 급류에 발을 담그고 있는 것만 같은 착각으로 안내한다. 그렇게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도, 우리는 마음을 가지게 된다. 사랑하거나 미워하고 부끄러워하거나 고마워하는 그런 마음들. 그런 마음들은 우리의 골조이자 연료가 되어준다. 한 사람이 믿고 행동하며 내일로 나아가도록 도와주는, 단단한 뼈대이자 동시에 원동력이 되어주는 셈이다. 하지만 우리가 서 있는 곳은 급류, 휘청이다가 물처럼 지나가는 시간에 마음을 놓쳐버리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이런 마음들을 기억할 수 있을까? 내가 지닌 마음이 시간처럼 빠르게 흘러가지 않도록, 어린 나는 내가 무엇이든 적어두고 싶었다. 정신없이 지나가며 휙, 휙 바뀌는 기분과 감각들을 심장 깊숙한 곳에 새겨두고 싶었다. 그렇게 새겨둔 순간의 감각, 그리고 기분 위로 마음이 ‘고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사람들은 ‘고인다’고 하면 흔히 부정적인 이미지를 떠올리지만, 나는 오래도록 ‘남아 있는’, 떠나지 않는 그런 마음들을 떠올렸다. 그런데 어떻게? 기왕이면 문학의 방법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하게 된 이유에는 바로 진은영 시인이 있었다. 초등학생일 적 『일곱 개의 단어로 된 사전』을 읽고 나서, 그렇게 생각했다. 물론 그때는 마음의 물성이니 고이고 흐르니 그런 사유는 할 수 없었지만, 진은영 시인의 시를 읽고 강한 충격을 받았다. 슬픔과 사랑이라는, 흔하기도 하며 나와 친숙한 이 감정들을 어떻게 이리 아름답게 담아낼 수 있지? 나 또한 그런 시인이 되고 싶다. 그렇게 생각한 것이 초등학교 6학년 때의 겨울이었다. 그리고 많은 계절을, 진은영 시인의 시집을 꼭 쥔 채 건너왔다. 그 사이에서 많은 일들이 있었다. 힘든 일도 있었고, 즐거운 일도 있었지만. 내가 가장 굳게 먹은 그, 열셋 겨울의 결심, 시인이 되겠다는 굳은 마음은 변한 적이 없었다. 그리고 고등학교에 진학하여, 시인이라는 꿈을 안고서 뛰어든 험한 급류에 서 있을 때. 나는 충격적인 소식을 접했다. 바로 진은영 시인의 신간이 나온다는 것이다, 그것도 시집으로! 나는 기쁨을 주체할 수 없었다. 그리고 시집이 세상에 나오자마자 몇 번이고 읽었고, 이는 내게 무척이나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개인적으로 시인의 시집 중에선 표지를 닮아 유연하게, 그리고 분홍빛으로 흘러가는 시집 『훔쳐 가는 노래』를 가장 좋아한다. 그러나 그 『훔쳐 가는 노래』 못지않게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는 시집이 바로 『나는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하고』다. 지금부터는 내가 왜 이토록 진은영 시인의 시를 사랑하는지, 또 이 시집을 읽고 그렇게 감명받았는지, 나의 마음들을 기록하려 한다. 다름 아닌 감상문, ‘문학의 방법으로.’ 나는 진은영 시인의 시를 읽으며, ‘물 위를 떠도’는 (
- 모모코
- 2023-12-31
연말보다도 아름답게 다가오는 끝이 세상에 있을까. 연말이 이토록 사랑스럽고 반짝거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한 해의 끝자락에서, 늘 내가 사랑했던 이들을 떠올려 본다. 그 사랑이 과거형이 되었건 현재 진행형이 되었건, 어쩌면 사랑하고 싶다는 미래형이 되었건. 나는 사람들을 하나, 둘 생각해 보며 내가 걸어왔던 길을 더듬어본다. 나는 줄곧 아주 좁고 울퉁불퉁한 길을 걸어왔다고 믿어왔으나 나와 함께했던 이들을 떠올려 보면, 그 길은 결코 험하거나 나만이 걷는 길이 아니었음을 깨닫게 된다. 그렇다. 절망이나 후회보다는 감사와 사랑을 채집하는 시기가 바로 연말일 테다. 나는 올해 열 통이 조금 넘는 편지를 썼고 스무 명이 있는 동아리에서 롤링 페이퍼를 하였고, 내게 문학만이 아니라 올곧은 생의 태도를 알려주신 선생님들께 엽서를 썼고. 사랑하는 Y에게 나의 사랑이 당신에게 어쩌면 짐이 될 걸 알아서 미안하다는 말 또한 했고. 그렇게 온갖 곳에 내가 받았던 마음을 다시 돌려주다 보면,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저기 길을 걷고 있는, 내 앞의 아저씨도 올해 누군가를 열심히 사랑했을지 모른다. 방금 지나온 유치원 버스의 아이들은 또 누구에게서 사랑을 받았을까. 새삼스럽지만 우리는 각자가 꾸려내는 생의 주인공이자, 화자이며, 히어로와 히로인이다. 나는 그런 개인을 움직이는 힘이 분노나 질투보다도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오래전부터 믿어왔던 사실이지만, 올해 내가 미워하는 아이가 1지망 대학을 떨어졌을 때는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았으나 가장 좋아하는 친구가 기적과 같이 정시 최초 합격에 성공하자 눈물이 났던 것을 보면. 확실히 사랑이 결국 이기는 것 아닌가 싶었고. 우리는 모두 각자 그런 사랑을 마음에 지닌 채 살아간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사랑, 사랑, 사랑에 대하여 생각하게 되는 일 년의 마지막 페이지. 나는 이 시기에 유난히 장수양 시인의 시집과 싱어송라이터 미츠키의 노래를 반복해서 찾게 된다. 그들의 작품은 장수양 시인과 미츠키가 어떤 사랑을 해왔을지 궁금해질 정도로, 사랑스럽고 또 사랑에 대하여 자신의 목소리로 아름답게 노래하고 있다. 나는 영화와 시를 사랑하지만, 이 두 가지의 예술은 동시에 읽어낼 수 없다. 서안나 시인의 시를 읽으며 영화 ‘릴리 슈슈의 모든 것’의 프레임을 겹쳐 보거나,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영화 ‘괴물’을 보며 백은선 시인의 시편을 떠올렸던 것처럼 이미 내가 한 번 씹어 넘겨서 소화한 적 있는 작품을 겹쳐 보는 일만을 할 수 있다. 그러나 문학과 노래는 다르다. 두 가지의 예술은 동시에 재생할 수 있는데, 나는 그 두 가지의 예술 작품이 한데 어우러져 녹아내리는 순간을 정말이지 사랑한다. 그 녹아내린 작품들은 나의 마음속, 한층 더 깊은 곳까지 스며든다. 어떠한 예술 작품을 더 오래도록 기억하고 마음에 품을 수 있다는 일이라니. 이토록 기쁠 수 없다. 사실 사랑 시를 쓰는 내가 늘 고민하는 지점이 ‘세상에는 사랑을 이야기하는 작품이 너무나도 많다’는 점일 정도로, 이미 멋진 사랑시와 사랑 노래는 넘쳐난다. 그 많은 작품들 중에서도
- 모모코
- 2023-12-30
*노래와 함께 글을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나는 영화 ‘릴리 슈슈의 모든 것’의 OST 반복 재생 횟수와 함께 자라났다. 한 뼘을 늘릴 때마다 마주하는 새로운 풍경들, 그 풍경으로부터 다가오는 놀라움이나 슬픔 또는 어떤 분노들. 십 대 중반의 나는 사소한 것들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그 사소한 것들을 과하게 확장 시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한 피곤한 사고방식 속에서 거의 2주, 또는 3주에 한 번은 영화 ‘릴리 슈슈의 모든 것’을 보았다. 나의 등굣길과 하굣길에는 영화의 OST가 한가득 묻어있는 건, 더 말할 것도 없다. 이후에도 이와이 슌지 감독의 여러 작품을 접했으나 역시 ‘릴리 슈슈의 모든 것’만큼 마음의 울림을 주는 영화는 없었다. 그건 예민하고 덜 여문 마음 위로 흐르는 음악보다도 아름다운 건, 적어도 내게는 없었기 때문이다.그렇게 믿으며 십 대의 마지막 페이지, 가을에 들어선 때였다. 이와이 슌지 감독의 신작이 개봉한다고. 그 작품의 제목은, 바로 ‘키리에의 노래’라고. 이후 조금씩 영화의 정보를 마주하며, 이건 나의 이십 대를 책임질 ‘릴리 슈슈의 모든 것’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릴리 슈슈의 모든 것’ 속 소년 소녀들보다 조금 성장한, 청년들의 이야기가 노래와 함께 전개될 때. 나는 과연 무슨 감상을 받을 수 있을까 궁금했다. 부산 국제 영화제에선 다른 영화를 보느라 ‘키리에의 노래’를 놓아주어야 했다. 그렇지만 일반 극장 상영만은 놓치고 싶지 않아, 수학여행 일정 도중 받아본 예매 시작 소식에 급하게 자리를 잡았다. 이 영화의 줄거리는 단순하다. 동일본 지진으로 인하여 약혼자인 ‘키리에’를 잃은 ‘나츠히코’, 그리고 키리에의 동생이자 행방불명된 언니의 이름으로 노래를 부르는 ‘루카’, 그리고 십 대의 자신을 버린 채 변장을 한 채 돌아다니는 루카의 친구 ‘잇코’. 지진 이후 뿔뿔히 흩어졌던 세 사람이 우연히 도쿄에서 다시 만나며 벌어지는 일들을 다루고 있다. 나는 이러한 줄거리가 이와이 슌지 감독답다고 생각하였는데, 앞서 즐겨본 ‘릴리 슈슈의 모든 것’부터 대개 그의 작품의 줄거리는 단순하기 때문이다. 별것 없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몇 줄 되지 않는 분량으로 요약할 수 있다. 그럼에도 내가 그의 작품을 사랑하는 이유는, 아마 변주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대다수의 사랑이나 슬픔, 청춘의 방황, 유년의 막막함과 같은 소재들은 이미 너무나도 많은 작품에서 사용되었고, 독창적인 서사를 적어내려 해도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와이 감독은 하나의 주제를 물어 채고, 자신의 방법대로 –보통 아날로그적인 촬영법을 더하여 영상미를 살리는 방식으로- 끈질기게 주제를 변주한다. ‘릴리 슈슈의 모든 것’에서도 주인공이 겪는 폭력에 집중하면서, 그 위로 환하게 들어오는 조명과 느슨한 선율과 아름다운 목소리의 OST를 끼얹었다. ‘키리에의 노래’ 또한 이와 비슷하다. 언니와 고향을 잃고 그 충격으로 목소리까지 잃은 루카가 키리에의 이름으로 노래를 부를 때만 목소리가 나오는 것. 그리고 이를 응원하는 잇코와 나츠히코에도 각각의
- 모모코
- 2023-11-30
저번까지 읽은 이후로 이어보시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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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번까지 읽은 이후로 이어보시겠어요?
안녕하세요. 글틴 리뉴얼 이후 비평감상 게시판은 처음이네요. 저는 시를 정말이지 사랑하지만, 그에 못지 않게 비평글과 감상글 쓰는 걸 좋아하는데요. 실은 제게 첨예함 같은 건 없어서 자신은 없어요. 그럼에도 언젠가 시인이 되었을 때 비평이나 감상글을 연재하는 시인이 되고 싶다는 마음에... 홀로 글을 써왔는데요. 어디 내놓긴 부끄러워서 요즘 꿍쳐두고 있었어요. 고민하다 글틴 리딩 클럽을 위해 쓴 글을 한 번 올려봅니다. 마음을 담아 댓글 적어주시는 멘토님을 보고서, 언젠가 한 번은 이 게시판에도 오고 싶다고 생각했거든요. 아무튼 무척 부끄럽지만... 잘 부탁드립니다.
@모모코 리딩클럽에 올리신 글을 더 깊이 읽으려고 감상/비평 게시판에 왔어요! 시를 보는 눈이 밝아서 꼭 시인이 되실 거라고 믿으며!
문부일 작가님 멘토로 계실 때 해주신 말씀이 참 힘을 많이 얻었는데, 이번 활동으로 이렇게 또 따스한 마음 받을 수 있어 기뻐요. 읽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작가님의 밝고 맑은 마음을 잊지 않고 부지런히 나아갈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