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틴10대 감성쟁이
감상&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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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공지]'감상&비평'에는 형식을 갖춘 비평문만 올려야하나요?작성일 2023-07-25 작성자 관리자 좋아요 0 댓글수 3 조회수 3511상세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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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비평 <지킬 박사와 하이드를 읽고>도서관에서 를 빌려 와서 이 책을 읽게 되었다. 표지에 있는 선한 얼굴의 남자와 악에 받친 남자를 보고 선과 악의 전쟁을 담은 이야기가 아닐까 생각하면서 책을 펼쳤다. 밝고 활기찼던 지킬 박사는 삶의 의욕이 없어 보이며 은둔 생활을 한다. 그리고 악행을 밥 먹듯이 저지르는 하이드라는 인물은 지킬 박사의 집을 마음대로 드나든다. 이를 수상하게 여긴 지킬의 친구 애터슨 변호사는 지킬 박사의 비밀을 파헤치기 위해 단서를 찾으며 비밀의 퍼즐을 맞춰간다. 결국 애터슨 변호사는 하이드는 악한 본성이 나오는 약을 먹은 지킬 박사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결국 지킬 박사는 하이드를 제거해야 한다는 압박과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대한 죄책감을 이기지 못하고 스스로 생을 마감하게 된다. 애터슨 변호사가 하이드로부터 지킬을 구하기 위해 실험실 문을 부수는 장면이 가장 인상 깊다. 이 장면에서 지킬 박사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애터슨 변호사의 마음이 돋보인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악의 본성인 하이드가 두려웠을 텐데 지킬 박사를 위해 자기 몸을 아끼지 않는 애터슨 변호사가 존경스럽다. 이 책을 읽고 나서 나도 내 안에 잠든 하이드가 깨어나지 않도록 나 자신을 잘 조절하는 연습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처음에는 힘들겠지만 노력하다 보면 내 안에 잠든 하이드가 깨어나지 않을 뿐 아니라 변화될지도 모른다.
작성일 2026-01-08 작성자 김도윤 좋아요 0 댓글수 0 조회수 37상세보기 -
감상&비평 선혈의 딱지는 사랑으로 굳어지곤 했다.[체인소맨 : 레제편] 감상평애니메이션을 막 좋아하거나 즐겨보는 편은 아니지만 이 이라는 작품 만큼은 원작을 찾아볼 정도로 좋아하는지라 지금 상당히 떨립니다. 길어도 읽어주세용~ 헤헤2025년 9월 26일 한국을 강타한 이 애니메이션 영화는 대중들을 충격으로 휩싸이기엔 충분했습니다. 흥행으로만 놓고 보면평점은 각각 네이버에서 9.27점, 롯데시네마/메가박스 9.5점으로 애니메이션 영화& 99분이라는 짧은 러닝타임에도 불구하고도ㅡ요즘 영화들을 생각하면 더욱이ㅡ높은 평점이며, 주제곡인 은 J팝 멜론차트 신기록을 달성, 실시간 차트 최고기록을 달성하며 작품을 제외한 음악적으로도 큰 성과를 이루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영화의 인기 그 진가는 대중매체에서 익히 우리가 찾아볼 수 있다. 개봉한지 꽤 됐음에도 우리 주위에서 심심치 않게 볼 수 있고요. 이렇게까지 흥행한 일본 애니메이션 [체인소맨 : 레제편]은 왜 이렇게까지 우리를 열광시키기에 충분했는가? 여러 전문가들이나 어려운 해석 싹 빼놓고 오로지 청소년인 제가 본 시점으로서 얘기해봅시다.먼저 탄탄한 스토리 구성이 있겠습니다. 호불호가 갈릴 수 있는 주제와 그림체ㅡ잔인해유ㅡ이기도 하고, 원작을 보지 않았으면 이해하기 힘든 부분들도 꽤 있음에도 이들을 일일히 설명하지 않고 작 중에서 표현하려는 그 자연스러움이 저에게는 잘 와닿았습니다. 원작을 보지 않고 이 영화만을 보더라도 충분히 흥미와 여운을 남길 수 있을 정도의 빠른 스토리 구성과 진행, 주인공의 감정묘사나 서브 스토리까지, 그리고 정말 시선을 돌리지 못하게 할 만큼 짜임새가 있었습니다.이는 영화를 접한 모든 관객들을 위한 배려이자 작품성을 한층 더 끌어올리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이 영화를 본 많은 사람들은 “음악이 훌륭하다” “전투씬이 인상적이다” “레제 예쁘다” 등등 각각 다양한 평이 나오지만, 저는 무엇보다 ‘연출’ 부분에서 아주아주 훌륭한 영화라고 생각했습니다.원작….아니, 이 영화만 보셔도 알겠지만 [체인소 맨]이라는 영화 자체가 매우 난잡하고 난해한 부분이 있습니다. 정리되지 않은 느낌이랄까? 그런게 잘 느껴지고 매력이지만, 오히려 이걸 잘 연출하고 녹여내지 못한다면 시끄럽고 시청자들의 집중을 흐리는 역효과를 낼 수도 있습니다.하지만 제가 이 영화를 보고 다른 애니메이션들과 격을 둔 것은, 이 모든 리스크들을 감당하고 오히려 ‘화려하다’ 고 생각할만큼 카메라의 구도나 긴장감을 몰입시키고, 관객들을 조용히 시키는 그런 연출들이 정말….이루 말할 수 없이 좋았습니다. 먼저, ‘빛’을 정말 잘 사용하는 것 같습니다.반짝반짝 이런 빛이 아니라, 스크린 너머 관객들에게 전해지는 시각효과들, 번쩍이고, 몽환적이고, 관객들이 장면 하나하나를 훑어보게끔 하는 그 치밀한 빛의 사용이 너무 인상깊었고, 인물들의 묘사 역시 매우 뛰어났습니다. 다른 애니메이션ㅡ특히 귀멸의 칼날ㅡ과는 다르게 내면 묘사를 줄이고, 인물들의 대사나 표정, 어조에서 드러나게끔 하는 내부적인 연출조차 저는 너무 인상이 깊었습니다.인물, 그래요 인물 나온김에 인물 감상
작성일 2026-01-08 작성자 선 혁 좋아요 0 댓글수 1 조회수 102상세보기 -
감상&비평 지。
지. -지구의 운동에 대하여- 감상 마따끄, 또 애니메이션 데스네. 25분씩 25화 분량입니다. 오프닝 곡 ‘괴수’가 상당히 명곡입니다. ‘왜?’, 그러니까 의문하고 질문해야 하는 이유, 더 나아가 지성의 존재 이유, 기록의 가치에 대해 조금은 고민하게 해준 작품입니다 서로 대립하는 무언가들이 양립하는 것을 모순이라고 부르겠습니다. 그럼 세상은 거대한 모순입니다. 그리고 매력적입니다. 아, 매력적이지 않기도 합니다. 이것이야말로 모순입니다. 모순이 존재하지 않는 삶이라면 세상이 모순이라는 말도 모순입니다. 그것은 희망으로 가득찬 곳에 절망이 자라나게 하고, 절망 속에 희망을 간직하게 합니다. 그냥 한곳에 치우치면 안되나. 물론 희망으로. 운이 좋아서 머리가 꽃밭이라면 무슨 일을 겪든 모순 없이 희망찬 삶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대부분의 사람은 그런 식으로 설계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절망을 견딜 모순이 필요하고, 모순이 피어나게 하는 의문, ‘왜?’가. 그리고 ‘왜?’를 생각하게 하는 ‘지성’이 인간의 삶에 필요합니다. 물론 ‘왜?’는, 지성은 때때로 절망을 물고 오기도 합니다. 하지만 지성은 기록에, 역사에 의해 보완됩니다. 그렇게 시료가 되는 것, 그것이 실패가, 틀린 것이 가치있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언젠가는 모순이 불필요한 세상에서 모두가 대가리 꽃밭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작성일 2026-01-04 작성자 김케이크 좋아요 0 댓글수 0 조회수 198상세보기 -
감상&비평 '고요한 새벽' 감상
고요한 새벽어둠을 밀어내고빛이 스며들 때세상은 잠든 듯 고요하고바람은 한 줄기의 속삭임처럼새들의 노래가 하늘에 퍼지기 전에별빛이 마지막 인사를 건네고나는 그 순간을 가슴에 새긴다세상의 모든 소음이 잠시 멈춘 듯마음 속 깊이 여운이 남아 새로운 시작을 기다리는고요한 새벽작가는 지금 현재, ‘어둠을 밀어내고/빛이 스며’드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 시간은 세상이 ‘잠긴 듯 고요’하고 바람은 ‘한 줄기의 속삭임’처럼 들린다. 평소 외향적인 생활을 하는 작가에게 있어서 ‘고요한 새벽’이 아니라면 순수하게 자연물을 감상하기란 매우 힘들다. ‘고요한 새벽’이 아니라면 이러한 감성(새들의 노래, 한 줄기의 속삭임, 마지막 인사) 또한 자아내기 힘들다. 왜 이 ‘고요한 새벽’을 고집하는가? 작가는 3연에서 ‘고요한 새벽’이 특별함을 암시한다. ‘새들의 노래가 하늘에 퍼지기 전’, ‘별빛이 마지막 인사’를 건네는 시간. 이 순간을 작가는 ‘가슴에 새’기고자 한다. 눈, 카메라가 아닌 가슴에 새기는 이유는 두고두고 보려고, 어른이 되고 순수한 그 마음을 잃어버렸을 때 먼지 쌓인 졸업 앨범을 찾아보듯 찬찬히 꺼내보고자 한다. 이 ‘고요한 새벽’은 작가에게 있어서 무슨 의미를 지니고 있는가? 새로운 날의 출발? 자아 성찰의 시간? 이는 ‘작가의 말’에서 확인할 수 있다. ‘새벽은 사람이 감정에 취하기에 가장 좋은 시간대…./…./왜 그런지 이유를 생각해보았는데,/고요해서인 것 같다./…./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고 조용하기 때문에/내 감정은 시끄러울 수 있는 것이다.’ 어쩌면 작가는 새벽이 ‘고요했’기 때문에 이 시를 집필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작가는 올빼미 같은 수면 패턴을 가지고 있어 일어나기도, 다시 잠들기도 애매한, 하루 중 가장 몽롱하고 이성적일 수 없는 ‘새벽’의 속성을 이미 꿰뚫고 있었다. 그러므로 여기서 작가는 ‘새벽’보다도 ‘고요함’에 더 비중을 두고 있다. 고요함은 마음속 그림자(타인에게 보여주지 않는, 보여줄 수 없는 마음)와 볕 드는 곳(타인에게 보여주는 마음)의 경계를 흐리게 만든다. 사회에서 우리가 아는 사람(타인에게 보여지는 이미지 혹은 인격)로 생활했다면, ‘고요한 새벽’ 한정으로 비로소 순수하게 자신의 마음을 고백할 수 있는 ‘작가’로 변하는 것이다. 마음이 자신의 감정, 추억, 기억, 과거, 상처를 보관하는 주머니라고 치자. 고요한 새벽, 작가의 마음속에서 내면의 ‘소리’는 비로소 자신의 입지를 가지게 되며, 내면의 ‘소음’은 마이크를 가져다 댄 것처럼 ‘바람의 한 줄기 속삭임’보다도 더 커지게 된다. 이 모든 것을 품은 마음을, 작가는, ‘감정의 소용돌이’라고 정의한다. 썩 좋아 보이진 않는다. 작가의 감정을 갈피를 잡을 수 없다. 자유와 혼돈(불안)을 모두 겪을 수 있는, 뒤숭숭한 ‘고요한 새벽’. 독자로써, 그리고 작가를 열심히 응원하는 짱팬으로써 나는 작가가 안쓰러우면서도 잘하고 있다 칭찬해 주고 싶다. 왜냐하면 당시 시를 집필한 날의 작가는 달려가다 넘어지고, 장애물에 부딪히면서도 일어서서 저 멀리 북극성처럼 빛나고
작성일 2026-01-03 작성자 김가연 좋아요 0 댓글수 0 조회수 209상세보기 -
감상&비평 100m.
영화 ‘100m.’ 감상평애니메이션 영화입니다. 작화 매수가 굉장합니다. 단거리 육상 선수들의 이야기입니다. 저는 육상, 100미터라 하면 학창시절 누구나 경험했을 단거리 스프린트 기록 측정이 가장 먼저 떠오릅니다. 저는 몸뚱아리가 굼떠 고작 50m도 8~9초 대를 웃돌았지만, 그럼에도 전력질주는 즐거웠습니다. 자신의 모든 신체 자원을 동원하는 행위이기 때문에, 그래서 전부 쏟아부을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최선을 다하면 다할수록, 존재 자체를 잊고 살았던 공기의 장막이 전신을 짓누릅니다. ‘100m’는 그런 ‘공기’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누구보다도 빨리 달리는 이들은 공기를 전면으로 마주합니다. 타고난 천성에 더해 노력까지 얹어 전신을 예리하게 깎아도, 다듬으면 다듬을수록 공기의 밀도는 높아져만 갑니다. 그런데도 달립니다. 자신의 인생을 100m—10초의 시간에 전부 내던집니다. 인생에 관성이라곤 없을 것 같은 지극히 이성적인 사람, 인싸 쿨가이, 기록 오타쿠, 성격적으로는 엮을 지점이 전혀 없어보이는 인간군상들. 그들의 부상, 허무, 기록, 심지어는 절대적 재능마저 공기가 되어 압력을 가합니다. 그런데도, 왜 달리지? 나는, 왜 달리지? 왜 글을 쓰지? 왜, 인생을 살지? 전력을 다할 수 있는 일을 하다 보면, 공기의 장막이 찢어질 때가 온다. 그 형언할 수 없는 순간만큼은, 부정할 수 없는 다름아닌 이 세계의 진실이다. 이 세계에는 간단한 규칙이 있어. 그러니까, 100미터를 누구보다 빠르게 뛰면 대부분의 문제는 해결돼.
작성일 2026-01-02 작성자 김케이크 좋아요 0 댓글수 0 조회수 199상세보기 -
감상&비평 위키드:이상주의를 비웃는 현실주의
지난 주 일요일 뮤지컬 영화 '위키드'의 후속작인 '위키드:포 굿'을 보고 왔다. 상영이 끝나는 마지막 날 밤 9시 낯선 건물로 들어 가 혼자 시청한 위키드:포 굿은 1편에서의 예상을 완전히 깨버리는, 그래서 더욱 여운이 남는 영화였다. 영화는 동물들이 인간의 명령에 따라 노란 벽돌길 공사를 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전편의 인간과 동물이 공존하는 사회에서 언론 통제를 통해 동물을 배척시킨다는 내용과 이어지는 부분이었다. 주인공 '엘파바'는 태생적으로 초록색 피부를 지닌, 그야말로 오즈—영화의 배경이자 '오즈의 마법사' 속 오즈, 위키드는 오즈의 마법사를 재해석한 이야기이다—의 전례없는 괴인이었다. 마법에 천부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지만 독특한 외모 떄문에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그는 자신처럼 소외받는 동물들을 돕기 위해 오즈의 마법사를 찾아 에메랄드 시티로 떠난다. 그러나 정작 마법사는 평범한 인간이었고 동물들을 도울 생각은커녕 탄압하고 이를 이용해 자신의 권력을 곤고하게 만드려고 한다. 엘파바가 마법의 힘으로 이를 막고 정의를 구현하려 하는 반면 엘파바의 소중한 친구, 글린다는 거짓으로라도 평화를 유지하면 그만이라고 엘파바를 사악한 마녀로 모는 마법사의 선동을 묵묵히 따른다. 이를 계기로 생긴 둘의 갈등은 사건이 전개될 수록 더욱 심화된다. 영화의 끝에서 결국 엘파바는 사악한 마녀라는 오명을 떨치지 못하고 도로시—오즈의 마법사 속 주인공—에게 죽임을 당한 척 위장하고 오즈 너머의 세계로 애인과 도피하는 결말을 맞는다. 글린다는 진실을 알고 있음에도 착한 마녀를 연기하며 엘파바를 공공의 적으로 몰아야 했고 엘파바는 글린다에게 자신이 살아있음을 일부러 알리지 않은 채 영화는 끝이 난다. 마지막 장면까지도 사람들은 엘파바를 '위키드', 즉 사악한 마녀라고 저주하고, 이것이 위키드의 결말이었다. 이번 후속작은 전편에 비해 다소 아쉬운 점이 많았다. 굳이 상영관까지 가서 본 이유도 영화의 장르가 뮤지컬인만큼 좋은 음악을 풍부한 사운드로 듣고 싶어서였었는데, 이번에는 전편의 'Popular'이나 'Defying Gravity' 등의 OST에서 얻은 감동을 느낄만한 넘버가 딱히 없었다. 보통 여러 음악을 듣다 보면 귀에 꽂히는 멜로디가 있기 마련인데 이번에는 진심으로 취향에 맞는 음악을 찾지 못했다. 사건 전개가 이어짐 없이 너무 빠르고 개연성이 부족했던 점 또한 아쉬웠다. 그럼에도 '위키드'라는 타이틀을 붙이기에 부족한 영화는 아니었다고 생각한다.내가 인상깊게 다루고 싶은 부분은 '위키드'의 스토리이다. 나는 1편도, 2편도 내용을 아예 모르고 봤기 때문에 내용을 예측할 수 없었는데, 1편을 보고 난 후의 예상과 2편이 정반대의 내용이라 매우 흥미로웠다. 1편의 결말에서는 마법사의 언론 통제로 인해 오즈 사람들이 엘파바를 사악하다고 느끼고 그를 저주하는 'No One Mourns the Wicked'를 부르는 반면, 엘파바는 마법의 힘을 완전히 펼칠 수 있게 돼 더 이상 사람들의 시선에 구애받지 않고 원하는 일을, 동물들을 지키는 일을 하겠다고
작성일 2025-12-27 작성자 시안 좋아요 0 댓글수 1 조회수 216상세보기 -
감상&비평 발전의 뼈대-한국 전통 문화의 발전에 대한 단상
한류 즉 한국 문화는 근 몇 년간 세계적인 인기를 얻게 되었다. 김치와 한국 김 같은 전통 음식과 질 좋은 식자재로부터 시작해서 싸이와 방탄소년단이 세계적으로 퍼트린 케이팝과 2024년도 한강 작가의 노벨 문학상 수상과 넷플릭스 ,, 같은 한국 드라마와 예능 그리고 한국을 배경으로 한국계 감독이 만든 까지. 요 근래 우리 문화는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졌다. 적어도, 한국이 세계 문화 시장에서 일본과 중국 더 나아가 서양 국가만큼의 위치에 올랐다고 생각한다. 특히 주변 국인 중국과 일본은 각각 세계에서 중국은 쿵후, 일본은 사무라이와 닌자 같은 이미지로 연상된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김치와 마늘, 분단국가라는 이미지로만 소비됐다. 그러나 이제는 이런 이미지에서 벗어나 좀 더 세련된 연상으로 바뀌게 되었다. 대표적으로 에 나온 사자 보이즈의 모티브인 저승사자가 있다. 이처럼 인식은 세계적으로 성장하고 있는 가운데, 우리의 전통문화는 삶 속 어디에 있으며, 우린 얼마나 이에 대해 인지하고 있는지 한 번 돌아볼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국악은 얼마나 듣는지, 대중 한식을 제외하고 전통 한식을 얼마나 아는지에 대하여.1: 한식에서 변화란지금 당장 떠오르는 한식 아무거나 떠올려 보면, 김치찌개, 된장찌개, 떡볶이, 칼국수 등등 시장에서 자주 보거나, 집에서 자주 해 먹는 집밥들이 떠오를 거다. 그러나, 더 나아가 고려와 조선, 더 나아가 고대 시대까지 왕가와 양반가 그리고 평민의 식탁에 올라온 음식들을 바라보면 우리가 아는 음식보다 더 많다. 대표적으로 신선로, 수구래 볶음, 승기 약탕 같은 것들이 있다. 이런 음식들은 그나마 고서에 남아 있어, 후대에게 쉽게 그 방법을 전해 줄 수 있었다. 그러나 구전으로만 전달되는 집안 내림 음식 같은 경우는 시대마다 만드는 법이 다르고 갑자기 그 조리법 자체가 사라지는 경우도 많다. 이처럼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한식은 현대 춘장 떡볶이처럼 비교적 역사가 짧거나, 조리 방법 자체가 다른 경우가 많다.특히 그런 식품 중에 으뜸은 김치가 아닐까 싶다. 우리가 자주 먹는 김치는 동치미와 백김치를 제외하고 모두 고춧가루가 들어간다. 그러나 고추는 조선시대 때부터 들어오기 시작했기에, 고추가 들어간 비교적 역사가 짧아진다. 그러나, 김치의 역사는 결코 짧지 않다. 배추와 무 혹은 과일로 김치를 담그는 역사는 꽤 오래전부터 전수되어 왔다. 그러나 이런 김치의 형태는 현재에도 이어진다. 특히 물김치와 백김치는 고추라는 식자재를 받아들이며 지금까지도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좋아하는 김치 종류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러나 이런 김치와 반대로 명성을 쭉 이어가지 못하고, 축소되고 있는 음식도 있다. 그중 대표하는 한식이 바로 떡갈비다.우선 우리가 알고 있는 떡갈비에 대하여 생각을 해보자. 얇게 다진 돼지고기나 소고기를 떡치듯 여러 번 치대어 만든 고기반찬이 떠오를 거다. 그러나 이와 비슷한 양식이 존재한다. 위 글을 읽고 있을 당신도 고깃덩어리 하나가 생각났을 거다. 바로, 햄버그스테이크. 이런 모습을 증명하
작성일 2025-12-25 작성자 송희찬 좋아요 0 댓글수 1 조회수 274상세보기 -
감상&비평 문학과 영화가 나아가야 할 곳(포크너, 이창동, 하루키의 작품 중심으로)
1) 이번 글의 동기 및 목적1958년 미국의 소설가 윌리엄 포크너는 [Barn Burning](헛간, 불태우다)이라는 제목의 단편소설을 발표한다. 그리고 1983년 일본의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納屋を焼く](헛간을 태우다)라는 단편소설을 발표한다. 마지막으로 2018년 이창동 감독의 영화 [버닝]이 개봉했다. 이 세 개의 작품은 같은 주제를 공유하면서도 문화적으로, 형식적으로, 서사적으로 차이점을 가지고 있다. 첫 작품인 포크너가 담고 있는 주제, 무라카미 하루키가 담고 있는 주제, 이창동이 담고 있는 주제가 모두 다르며, 이 소설의 공통점인 ‘불태우는 행위’라는 것도 모두 다른 것에서 파생되고 있다. 이 세 가지 작품은 로컬라이제이션, 트랜스 미디어 등으로 그 효과를 짐작해 볼 수 있다. 처음 ‘헛간을 태우다’라는 하나의 행위가 버닝이라는 거대한 서사까지 어떻게 이어질 수 있었는지, 그리고 그 이어짐의 효과를 탐구해 보고자 했다. [버닝]은 트랜스 미디어의 최종적 결과물이라 볼 수 있다. 그러나 실제 관객은 단 52만명이 그쳤다. 실제로 작품성을 크게 인정받았음에도 말이다. 2018년 칸 영화제에서 [버닝]이 처음 공개되었을 때 현지 분위기는 열광적이었다. 는 역대 최고 평점(3.8)을 주었고, 다른 매체들도 폭발적인 리뷰를 쏟아내며 더할 나위 없는 만족감을 드러냈다. 그러나 대중의 벽은 여전히 높다. 대중들은 여전히 오락적인 영화, 재미를 추구하는 영화를 찾고 있다. 그것은 대중의 문제가 아니다. 이전에도 그래왔고, 현재도 그런 아주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애당초 독립, 예술 영화는 특정한 매니아들이 주로 관람했다. 그러나 이젠 그 매니아들도 이젠 사라지고 있다. 작품성의 이유도 있겠지만, 극장이 적자로 인해서 독립, 예술 영화를 상영하지 않는다. 대중들은 독립, 예술 영화 전용관이 줄어들수록 영화를 볼 기회를 잃고 있다. 이 글에서는 트랜스 미디어를 통한 분석, 더 나아가 영화계, 문학계의 수요가 하락하고 있는 2025년, 어떤 방식으로 대중에게 다시 예술을 선보일 수 있는지 탐구할 것이다.2) 소설 줄거리 및 정보2)-1 윌리엄 포크너의 소설 [헛간, 불태우다]윌리엄 포크너는 [Barn Burning]이라는 제목으로 1958년 단편작을 발표했다. 이 소설은 미국 남부에 만연하던 대지주와 소작농의 계급 갈등을 다룬다. 주인공 사티의 아버지 애브너는 소작농인데, 늘 욱하는 성미를 참지 못하여 지주와 다투거나 송사에 휘말린다. 일말의 분노가 차오를 때마다 지주의 헛간(대규모 농장의 헛간은 저택만큼 크고, 값비싼 농기구와 수확물, 가축 등을 보관한다.)에 불을 지르는 애브너는 좀처럼 정착하지 못하고, 가부장에 짓눌린 가족들 역시 떠돌이 신세를 면하지 못한다. 이렇듯 매사 무모하고 무자비하고 무법적으로 생활하는 아버지를 보며 아들 사티는 혼란(두려움과 수치심, 존경과 죄의식)에 사로잡히고, 마침내 결단을 내리게 된다. 아들 사티가 지주에게 아버지의 범죄를 예고해 주고, 도망간다. 어두운 숲길을 헤쳐 나가며 총소리가 들리고(아버지의 죽음
작성일 2025-12-20 작성자 노스텔지아 좋아요 0 댓글수 1 조회수 282상세보기 -
감상&비평 이상(李箱)의 작품에서 나타난 허무주의와 초극의 미학
-이 글은 완전하지 않다. 그러나 완전하지 않아도 괜찮다. 내가 죽음에 이르기 전까지 완전할 리가 만무하다. (그리고 완전함이란 것은 개개인의 관념적인 가치이다.)- 이상(1910~1937, 시인이자 소설가)의 시는 난해하다. 나는 그것들을 모두 이해하지 못했다. 그는 띄어쓰기를 잘 하지 않는다. 전위적이고 형상화 기법을 사용한 독창적인 시를 썼는데 아래의 시를 보자. 전문이다. 역사(役事)를하노라고 땅을파다가 커다란돌을하나 끄집어내여놓고보니 도모지어데서인가 본듯한생각이들게 모양이생겼는데 목도(木徒)들이 그것을메고나가드니 어데다갖다버리고온모양이길래 쫓아나가보니 위험(危險)하기짝이없는 큰길가드라. 그날밤에 한소나기하얐으니 필시(必是)그돌이깨끗이씻겼을터인데 그이튿날가보니까 변괴(變怪)로다 간데온데없드라. 어떤돌이와서 그돌을업어갔을까 나는참이런처량(悽凉)한생각에서아래와같은작문(作文)을지였도다. 「내가 그다지 사랑하든 그대여 내한평생(平生)에 차마 그대를 잊을수없소이다. 내차례에 못올사랑인줄은 알면서도 나혼자는 꾸준히생각하리다. 자그러면 내내어여쁘소서」 어떤돌이 내얼골을 물끄러미 치여다보는것만같아서 이런시(詩)는그만찢어버리고싶드라 이상, -<이런 시> 인간은 모두 언젠가 죽는다. 만사가 무슨 의미일까? 내가 죽으면 무엇이 있을까? 거대한 無만이 남지 않을까, 모두가 잊지 않을까? 오늘도 병실에서는 수많은 사람이 마지막 단말마(그런 것이 있나?)와 함께 죽고 차갑게 굳는다. 왜 사는 걸까? 삶은 이다지도 고통인데, 결국 끝은 죽음이라니.내가 몹시 주관적으로 이상의 시에 공감하고 해석하자면 이 띄어쓰기의 거부는 다급함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나도 시를 조금 써본 일이 있다.) 시작(詩作) 중의 ‘우연‘을 사랑하고, 있는 그대로의 불완전한 인간 존재의 비이성적인 면모를 드러내고 싶은 마음이 아닐까, 나는 이런 생각이다. 너는 딸기야차라리나는 비겁한짓을할거야나-는비겁하고악한짓을할거야나는바보같이굴거야내머리에는무거운산이내려앉아있어나는이산이녹을때까지글을쓰지않으면안돼나는한탄하지않으면안돼아니이방향이아닌가봐틀어나는보았어너를나는 또개도 보았어그건웰시코기야여기까지만말할게나는우주에서두통을느끼며누워있어나는인간이야인간이란종은불쌍하다면불쌍하기도해너가딸기라고?인간은남을먹는딸기로비유하지웃긴일이야메일스토로베리쉐이크를먹는매장의에어컨은훌륭하지그러다보면시원한게여름의특징이되는거야어마마나는누워있지나는본능에충실하지나는그저기록의욕구를해소하는거야그렇게되면아나의생각을아는사람이많아지고또영향력이라고불리는것을가방에넣을수있으니까그래서나는이러고있는거야그래서나는이일을하고있는거야나는나의존재를각인시키고싶은거야자이제거대한의문이풀렸네드시코는아무것도아니야그저욕망일뿐이지나는무얼하고있는걸까?그렇구나그렇구나이제알겠다무얼하느냐면나를증명하는거야글은언어일뿐야난흉내를내고있어나는집착하고눈을부릅뜬채째려보지나는멍청하거든나는부족한점이많아서나는항상기대고있어그것도바보같아이건정말수치스러울만한데자립은인간이좋아하고필요로하는것이지사실좋아한다고하면안돼응그러면안돼나는졸린눈으로그대들은생명의자취를더듬고있지활자너머로하지만그건사람마다달라아왜개는글
작성일 2025-12-17 작성자 드시코 좋아요 0 댓글수 1 조회수 239상세보기 -
감상&비평 노스텔지아, 영혼에 대한 근원적 그리움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의 1983년작 는 그의 유작 (1986) 바로 직전의 장편작이라고 할 수 있다. 와 을 모두 관람한 결과, 실은 둘 다 말하고자 하는 바가 비슷한 것은 사실이다. 에서도 희생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둘 다 구원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타르코프스키는 러시아 동방 정교회를 믿고 있는 감독이기 때문에, 주로 구원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는듯 하다. 솔직히 그쪽은 나도 잘 모르긴 하는데, 아무튼 타르코프스키는 희생을 좋아한다. 불쌍한 것은 타르코프스키에 나오는 주인공 혹은 주연급 인물들을 대부분 희생이든 죽음이든 겪는다는 것. 물론 타르코프스키 관점에서 이들의 죽음은 숭고한 ‘희생’에 가깝기 때문에 불쌍한 것은 아니다. 그저 관객의 1차원적 관점에서 불쌍해 보일 뿐이다.에 등장한 주인공 이반은 가족에 대한 복수를 위해 자신을 희생한다. 에서의 주인공 또한 죽음을 맞이하면서 모든 죄책감으로부터 해방된다. 그리고 에서 도메니꼬는 로마의 광장 한 가운데에서 분신 자살을 하여 자신을 희생한다. 에서는 제목에서처럼 주인공 알렉산더가 제 3차 세계 대전에서 인류 멸망 위기를 맞자, 자기 자신을 희생한다. 알렉산더의 경우에는 목숨을 잃는 희생은 아니지만, 마리아와의 동침, 그리고 자신의 집을 태우면서, 정신병원에 입원한다. 즉, 자기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희생한 것이다.에서의 첫 장면은 교회 장면이 등장한다. 배경은 시인 고르챠코프가 러시아 노예 출신 작곡가 파벨 소스놉스키에 대한 오페라 각본을 쓰기 위해 자료를 수집하러 이탈리아에 도착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시인 고르챠코프는 여성 유제니아와 동행하게 되는데, 초반 유제니아는 아마 이탈리아어를 능통하게 하지 못하는 고르챠코프의 번역을 맡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초반 유제니아가 교회에 도착했을 때, ‘출산의 성모‘ 앞에 무릎을 꿇고 기도를 하면 소원이나 소망이 이루어진다고 사제가 말한다. 그러나 유제니아는 무릎을 꿇지 않는다.이는 유제니아의 성격을 말해준다. 적어도 유제니아는 세속적 욕망을 상징한다. 신성함을 상징하는 ‘출산의 성모’에 무릎을 꿇지 않으며, 영화 내내 시인 고르챠코프를 유혹한다. 이후 그녀는 책을 돌려준다는 핑계로 그의 방에 드나들지만, 고르챠코프는 그 유혹에 넘어가지 않는다. 그녀는 그의 태도에 답답해 하면서, 고르챠코프에게 질문한다. “자유는 이 나라에서 공기와도 같아요.”그렇다. 이것이 핵심이다. 타르코프스키가 말하는 자유란 무엇인가? 진정한 자유 말이다. 표면적인 의미의 자유가 아니라, 그가 말하는 진정한 자유는 다른 곳에 있다. 그것이 노스텔지아다. 이탈리아는 자유의 나라이다. 왜 그런지는 잘 모르겠는데, 영화 설정상 표면적 의미의 자유의 나라란다. 음악가 소스놉스키도 그렇고, 고르챠코프도 분명 이탈리아라는 자유의 나라에서 자유를 느끼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둘은 노스텔지아, 즉 향수를 느낀다. 이것은 고르챠코프의 환상을 통해서 알 수 있는데, 지속적으로 등장하는 것이 자신이 살던 러시아 시골 집이 계속해서 등장한다. 약간 환상 혹은 과거를 구
작성일 2025-12-17 작성자 노스텔지아 좋아요 0 댓글수 1 조회수 238상세보기 -
감상&비평 앨범 <가장 보통의 존재> 내맘대로 감상하기
인간에게는 낙관 편향이 존재한다. 이는 현실의 제약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마치 서사 중심에 놓인 인물처럼 상정하게 만드는 인식의 방식이다. 이것은 어떤 시련 앞에서도 결국에는 도달점에 이를 수 있으리라는 직감으로 작동한다.그러나 현실은 대개 그렇지 않다. 우리의 삶은 특별한 서사로 선택된 것이 아니라 80억 개의 삶 중 하나로 존재할 뿐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삶은 가치 없는가. 그렇지는 않다. 우리의 삶에 희귀성(Rarity)은 부재하지만, 희소성(Scarcity)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개인의 삶은 세계에서 단 하나로 선택된 예외가 아니며, 얼마든지 다른 삶으로 대체 가능한 것처럼 보인다.그러나 수요의 관점에서 보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 혹은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있어 나라는 존재의 공급은 단 하나뿐이다. 그 관계 안에서 나는 다른 누구로도 완전히 대체될 수 없다. 바로 이 희소성이 살아감을 지속하게 만드는 최소한의 동력이 된다. 그런데 희소성마저 소거된 존재가 있다면 어떨까? 그야말로 ‘가장 보통의 존재’가 아닐까? "앨범 <가장 보통의 존재>의 주인공은 어떠한 계기로 인해 자신이 보통의 존재임을 깨닫곤 몸서리친다. 그것은 섬뜩하리만치 무서운 자각이었으나 문제는 그다음부터였다. 자신이 보통의 재능과 운명을 타고난 그야말로 보통의 존재라는 것도 알았고, 세월이 갈수록 나를 가려주던 백열등이 수명을 다해가고 있음도 직시하게 된 지금. 그렇다면 '나'는 앞으로 나의 남은 날들을 어떻게 살아가게 될 것인가. '나'는 현실에 투항하게 될까? 누구든 위험한 희망을 선택하지 않아도 될 권리와 자유가 있다. 따라서 그는 얼마든지 안락과 정착을 꿈꿀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너무 일찍 자신에게 주어진 불리한 여건에 수긍하거나, 운명을 거역하기 위한 노력을 쉽사리 포기한다면... 하여 보통의 존재는 역시나 보통의 선택을 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입증하게 된다면... 이야기의 결말이 조금은 허무하지 않을까. 주인공의 미래가 몹시도 궁금해진다." 이석원(언니네 이발관), 산문집 <보통의 존재>에서 발췌 이 앨범의 핵심 서사는 보통의 존재가 된 ‘나’가 이후 어떤 방식으로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탐색이다. 이 지점을 유념하며 <가장 보통의 존재>를 감상해보자. 1번 트랙 <가장 보통의 존재> 음반은 동명의 곡으로 시작한다. 이 트랙에서 화자는 자신이 이미 오래전부터 ‘보통의 존재’로 살아왔음을 토로한다. 가사 전반에 ‘나’와 ‘너’가 반복적으로 등장하는데, 특히 주목되는 지점은 화자가 ‘너’를 향해 저주에 가까운 언어를 구사하고 있다는 점이다. 너는 내가 흘린 만큼의 눈물나는 니가 웃은 만큼의 웃음무슨 서운하긴, 다 길 따라 가기 마련이지만그래도 먼저 손 내밀어 주길 나는 바랬지. 나에게 넌 허무한 별빛너에게 난 잊혀진 길이곳에서 우린 변하지 않을 것을 약속했었지.당신을 애처로이 떠나보내고그대의 별에선 연락이 온 지 너무 오래되었지.여기서 ‘허무한 별빛’은 이후 8번과 10번 트랙에서 반복되는 핵심 키워드로 기능한다. 3
작성일 2025-12-16 작성자 dreamspop 좋아요 0 댓글수 2 조회수 275상세보기 -
감상&비평 유령이 말해주는 삶의 이야기-권누리 <오늘부터 영원히 생일 >을 읽고
*:본문에 들어가기 전, 싱어게인3 1호(이바다).25호(강성희) 듀엣곡인 최백호의 의 가사와 멜로디를 듣고 본문을 감상하시면 좋겠습니다.https://youtu.be/FArnw42Z2NA?si=KEO65YTtYfJuUtk_ㅡ책을 덮고, 밖을 바라봤다. 눈이 내린 뒤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나무는 아무것도 맺지 않은 가지에 눈꽃 같은 얼음꽃을 피웠다. 또한 주변에 있는 학교 근처 무덤과 논밭을 이루는 토지 역시 제 기능을 잃은 것처럼 얼어 있었다. 위 모습은 2025년 12월에 본 필자의 동네 풍경인 동시에, 겨울마다 봤던 모습이기도 하다. 이처럼 12월은 찬 바람이 불고, 눈이 내리는 등 추위와 관련된 것들을 마주하게 된다.이런 시기가 다가오면, 몇몇 학교에서는 겨울 방학과 졸업식이 이루어진다. 그 이유는 12월이 지난 1월부터 우리는 한 살씩 더 먹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필자에게 12월은 추운 겨울인 동시에 이별에 달이기도 하다. 함께 1년을 보냈던, 친구들과 교실에 이별을 고해야 하기에. 그러나 이와 반대로 새로움을 맞이하는 시작의 계절이기도 하다. 한 학년이 올라가고, 새로운 사람과 새로운 공간을 만나게 되기에.이처럼 12월은 끝없는 만남과 끝없는 이별에 달이다. 이러한 시간의 성격은 권누리 시인이 쓴 시집 속 유령 같은 화자들은 이런 모습을 보여준다. 떠난 이에 대한 깊은 슬픔과 명랑한 기대 같은 것들이 차곡차곡 쌓이면서 여러 인간일 수도 있는 한 인간의 삶을 진솔하게 보여준다.이는 시집의 첫 시편 에서부터, 마치 윤회를 기억하는 존재처럼 존재를 드러낸다.ㅡ죽지 마명령하면 안 되니어제는 피아노를 샀어가끔 치려고명랑하게창문 너머 비행기가밥그릇은 언제나 비어 있고천장에달라붙은 열기가 깔깔 웃으면이 이상 살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구르기 위한언덕을 갖고 싶어처박힐 우물도자랑 없이칭찬도 없이청소기 헤드로 빨려들어가는정오함께 있을까조금만더 울어보고ㅡ 전문-12~13pBeginner 한국어 해석으로는 초심자라는 뜻이다. 이 제목처럼 위 시의 화자는 이별의 초심자처럼 묘사된다. 떠난 이, 특히 죽은 사람에게 "죽지 마"라는 말로 붙잡아 명령하고 싶지만, 화자는 결코 명령하지 못한다. 역으로 떠난 이에게 "안 되니"라고 물어본다. 그러면서도 화자는 "어제 피아노를 샀"고 창문 밖을 날고 있는 "비행기"와 자신의 빈 "밥그릇"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눈다. 이는 조심스럽게 타자를 붙잡고 싶은 화자의 욕망을 그려낸다.하지만, 이는 "청소기 헤드"가 이물질을 빨아들이듯, 하루 중 제일 밝은 "정오" 즉 밝음과 관련된 것들을 빨아드리게 된다. 대표적으로 삶의 에너지, 웃음 같은 것들을. 그렇기에 타자와 화자는 함께 있으면, 서로 빛을 갉아먹을 것 같았기에, 초심자처럼 조심스럽게 이야기하며 타협한다. 이런 타협은 시에서 화자가 조금 더 나아지게 만드는 배경이 된다.시의 마지막에서 화자는 타자에게 "함께 있"기를 청한다. 동시에 화자가 우는 모습으로 마무리 맺어진다. 하지만 "조금만"이라는 마지막 연의 첫 행을 보면, 결코 그가 이 슬픔으로만 가득 차
작성일 2025-12-16 작성자 송희찬 좋아요 0 댓글수 2 조회수 392상세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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