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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프지만 비선형적인 관계(들).

  • 작성자 분홍사슴
  • 작성일 2011-10-18
  • 조회수 401


[그림 설명. <그림자의 법칙>.
    
    원 : 자신의 시야.
    
    a = 타인에게 보이는 나의 머리 그림자.
    b = 타인에게 보이는 나의 몸통 그림자.
    c = 타인에게 보이는 나의 다리 그림자.
    
    a' = 자신에게 보이는 머리 그림자.
    b' = 자신에게 보이는 몸통 그림자.
    c' = 자신에게 보이는 다리 그림자.]
    

[<그림자의 법칙> 설명.
   
    원 : 자신의 시야.
   
    a = 타인에게 보이는 나의 머리 그림자.
    b = 타인에게 보이는 나의 몸통 그림자.
    c = 타인에게 보이는 나의 다리 그림자.
   
    a' = 자신에게 보이는 머리 그림자.
    b' = 자신에게 보이는 몸통 그림자.
    c' = 자신에게 보이는 다리 그림자.]
   
 유난히 불안정한 날이다. 대기도, 기분도, 그리고 세상도. 모든 건 불안정해서 무너져 내릴 것만 같다. 하지만 예보가 없어서 언제 무너져 내릴지는 알 수가 없다. 우산이 필요하다고 느낀다. 그래서 손을 뻗었다. 우산이, 있는 어딘가로. 그리고 우산이 내게 왔다.

 

 물리적인 것들은 문학적이고 아름답다. 공학도, 화학도, 기상학도 모두 아름답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그런 것들을 공부하지 않았다. 너무 아름다워 슬프기까지 하니까. 그렇지만 그런 것들은 세상을 이루는 것들이라 외면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나는 그것들을 왜곡하기로 했다. 그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었으니까. 나는 조금 멍청한 축에 속하기 때문에 왜곡하는 것밖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림자는 자신의 망막에 맺히는 상과 타인이 바라보는 상이 다르다. 나는 그걸 '그림자의 법칙'이라고 이름 붙였다. 나는 그게 좀 우습다고 생각했다. 생각해보면, 그림자뿐만이 아니었다. 나의 본모습 역시도 내게 보이는 것과 타인이 바라보는 것이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실 물리적인 것들과 공학, 화학, 기상학 같은 것들을 왜곡하고 외면하기로 한 이유는 이 때문이다. 나는 사회적 페르소나와 자아를 동일시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림자의 법칙'부터 왜곡해야 했다. 그 후로는 모든 것을 왜곡했고, 이젠 지금처럼 손만 뻗어도 어딘가에서 우산을 가져올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조금 멍청한 축에 속하기 때문에 그 '어딘가'가 어디인지는 모른다. 다른 차원일 수도 있고 우주 어딘가일 수도 있고 버려진 공간일 수도 있지만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그것들까지 이해하기엔 나는 너무 어리다.

 

 내가 왜 이렇게 불안정한지가 궁금해졌다. 하지만 아무것도 생각해낼 수가 없다. 기억은 저 끝 모서리부터 조용하지만 격렬하게 사라지고 있다. 가끔 불쑥 떠오르는 것들은 유년기의 기억일 뿐이다. 나는 자꾸 나를 잃어가고 있다. 아마 그래서 불안정해지는 날들이 점점 늘어나는 것인지도 모른다.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가끔은 물건들이 사라질 때도 있다. 예전에,  그러니까 아직 내 집을 떠나오기 전에는 옷장이, 침대가, 의자가, 때로는 화분이 사라졌다. 사라진 물건들은 사라질 때처럼 예보 없이 나타나곤 했다. 하지만 사라지는 것들은 물건뿐만이 아니었다. 사람들도, 가끔 사라졌다. 하지만 형체만 사라지고 목소리는 그대로 남아있었던 게 의문이다. 형체는 사라지지만 목소리는 계속 울려 퍼졌다. 처음엔 그게 정말 무서웠지만 이내 익숙해졌다.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의문도 외면했다. 어쨌든 중요한 건 내가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는 것이니까.

 

  아직 사라지지 않은 기억들의 한가운데에는 그에 대한 기억이 서있다. 이름도, 얼굴도 모르지만 그는 꽤 중요한 사람인 것 같다. 어쩌면 그에 대한 기억을 제외한 모든 기억들이 사라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의 기억이 섬처럼 덩그러니 놓여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기억 속에서 그는 무언가를 만드는 사람이었다. 사랑, 이라던가 날씨, 같은 것들을. 그리고 가끔 내게 무언가를 주사했다. 그리고는 저 멀리 의자에 앉아서 나를 주시했다. 나는 하루 종일 조금 딱딱한 침대에 묶여있었고, 그런 것들을 묵묵히 견뎌냈던 것 같다.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말이 별로 없다. 나는 그의 텅 빈 눈동자를 기억한다. 의자, 역시도 기억한다. 그에 대한 기억에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텅 빈 그의 눈동자와 그 의자. 그리고 약간 쌀쌀하지만 그만큼 어설픈 바람. 의자는 다소 낮았고, 오래된 것이었다. 오래 전에는 폭신했을지도 모르지만 내가 기억하는 의자는 조금 딱딱했다. 게다가 등받이는 까끌까끌했고 뒷면에는 긴 선이 그어져있었다. 언제 어디서 생겼는지 알지 못하는 선. 그 선이 너무 차갑게 그어져있어서 나는 하루 종일 그 선을 바라보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그는 그런 의자에 푹- 하는 소리를 내며 주저앉곤 했다. 텅 빈 눈동자로 나를 끝없이 응시하며. 내가 그 의자를 기억하는 이유는, 아마 중요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가 있는 곳을 알려주는 유일한 증거이니까. 하지만 나는 그를 찾아내고 싶은 생각이 없다. 그래서 그 의자도 무시하고 있다. 언젠가는 다른 기억들처럼 사라지기를 기다리며.

 

 다소 무기력하고 건조하게 걷고 있다. 이 길도, 하루하루도. 언젠가부터 나는 내 집을 나와 이 길을 걷고 있다. 아마 집이 사라져서일 수도 있다. 사실 기억이 나질 않는다. 이젠 내 집이라는 곳이 있었는지도 헷갈린다. 다소, 당황스럽지만 늘 그렇듯이 그냥 웃어버렸다. 이 길의 끝엔 뭐가 있는지 모른다. 이 길은 끝없이 이어져있고 길옆에는 하얀 사막이 펼쳐져있다. 하얀 사막 역시, 끝이 없다. 사방을 둘러봐도 길과 흰 모래밖에 보이지 않는다. 지금처럼 비도 내리고, 햇빛도 떨어지고, 가끔은 눈도 내리는 우스운 사막. 텁텁하다는 느낌은 들지 않지만 막막하다는 느낌은 든다. 그리고 가끔은 이 사막도 저 끝 모서리부터 사라지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끝없는 길을 걸으면서도 다행인 것은, 물리적인 것들과 공학, 화학, 기상학 같은 것들을 왜곡할 수 있다는 것이다. 먹을 게 필요하면 먹을 것을 가져왔다. 침대가 필요하면 침대를 가져왔고, 음악이 필요하면 음악을 가져왔다. 때로는 구름이나 노을 같은 것들도 가져왔다. 그래서 힘이 들지는 않다. 또 그래서 계속 걷는다.

 

 등가교환의 법칙, 이라는 게 있다는 것이 떠올랐다. 문득, 떠올랐지만 충격은 문득, 이 아니었다. 그 ‘어딘가’에서 우산을 꺼낼 때마다, 먹을 것을 꺼낼 때마다, 침대를 꺼낼 때마다, 음악을 꺼낼 때마다, 그리고 구름이나 노을 같은 것을 꺼낼 때마다. 나는 ‘때마다’ 그런 것들과 나를 교환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내 기억을 꺼내서 우산, 먹을 것, 침대 같은 것들과 바꾸고 있는 것이다. 나는 엄청난 딜레마에 빠졌다. 헤어 나올 수 없는 딜레마. 이 길을 계속 걸어가려면 나는 자꾸 ‘어딘가’에서 ‘것’들을 꺼내야 한다. 하지만 동시에 나를 잃지 않으려면 ‘어딘가’에서 ‘것’들을 꺼내서는 안 된다.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어 일단 주저앉았다. 어설프게. 종이가 구겨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가끔은 그가 내게 뭘 주사했는지 궁금해질 때가 있다.

분홍사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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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turn.

 그는 다소 피곤한 몸짓으로 옷을 벗었다. 텁텁하게 말라붙은 그의 몸에서는 생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약간 회색빛을 띈 털들이 그의 몸 이곳저곳에 듬성 돋아나있었다. 그리고 깊게 패인 주름들. 멀리서 보면 그는 꼭 코끼리, 같았다. 왜소하고 자그맣게 죽어가고 있는 회색 코끼리. 그는 주변의 눈치를 살피며 십칠 번 옷장의 문을 잠갔다. 그리고 옷장 열쇠를 손목에 말아 감았다. 그가 걸을 때마다 열쇠는 찰랑찰랑 맑은 소리를 내며 부딪쳤다. 너무 맑아 서러운 소리였다. 그는 소리와 함께 욕탕 문을 열었다. 언제나 같은 불편한 침묵이 수증기 틈새에 배어들어있었다. 십삼 년 째. 그가 이 목욕탕을 다닌 지난 십삼 년 동안 이곳은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오래된 침묵도, 돌바닥 가득 낀 물때도, 정체불명의 물질들이 부유하는 탕도, 이년쯤 된 예능프로그램을 하루 종일 뱉어내는 텔레비전도. 달라진 것은 그 뿐인 듯 한 기분이 들었다. 끔찍한 기분들. 그러자 이곳의 모든 것들이 불쾌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는 온탕의 물이 너무 미지근하다고 느꼈다. 그리고 열탕의 물은 지나치게 뜨거웠다. 모든 것이 불편했다. 눅눅한 공기가 그의 목을 졸라오는 것을 느꼈다. 그는 서둘러 몸을 씻고 욕탕을 나왔다. 수건으로 회색빛 털이 돋은 겨드랑이를 닦다가 거울에 비친 자신의 눈과 마주쳤다. 그리고는 거의 구역질을 느꼈다. 거울 속에는 늙수그레한 코끼리 한 마리가 서있었다. 유난히 주름이 깊은 코끼리였다. 그는 주변의 눈치를 살피며 조심히 십칠 번 옷장의 문을 열었다. 열쇠는 끊임없이 찰랑거렸다. 그는 서둘러 옷을 입고 목욕탕을 나섰다. 카운터에 서있던 아주머니가 안녕히 가시라고 텁텁한 인사를 건넸지만 그는 애써 무시했다. 인사조차도 그에게는 불쾌하고 불편했다. 문을 거칠게 열고 무기력하게 걷기 시작했다. 어디인지 모를 그 어딘가를 향해서. 하늘엔 유난히 채도가 낮은 구름들이 서로의 틈바구니를 비집고 서있었다. 그는 차 위에 올랐다. sm5. 그는 이제 서른아홉이지만 서른아홉에 어울리는 차가 무엇인지는 몰랐다. 그래서 매장 문을 열자마자 눈에 들어온 차를 사버렸다. 딜러가 시키는 것들을 그대로 따라서. 자신의 경제 사정으론 조금 벅찬 감이 있었지만 그냥 그 차를 샀다. 늘 그런 식이었으니까. 그리곤 특별하달 것 없는 애정을 실어 차를 대했다. 일주일에 한번 세차, 딜러의 권유로 차 구매와 함께 들었던 자동차보험. 그는 그의 차역시도 자신을 특별하달 것 없는 애정으로 대하고 있다고 느꼈다. 큰 무리 없이 움직였고 큰 사고 역시도 내지 않았다. 툭, 투둑. 하며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저 앞의 신호가 빨간불로 바뀌었다. 그는 와이퍼를 작동시키고 브레이크를 밟았다. 조금 가파른 내리막이었다. 낡은 국숫집이 있는 내리막.    무슨 하늘이 이렇게 구질구질해. 그녀는 맑은 목소리로 혼잣말을 하고는 라디오를 틀었다. 99.2㎒. 라디오에선 보청기광고가 흘러나왔다. 목소리만 보이는 남자성우는 힘이 잔뜩 들어간 채 보청기광고를 흘

  • 분홍사슴
  • 2011-12-02
난 어디론가 자꾸 날 잃어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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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분홍사슴
  • 2011-07-12
서울, 2010년 겨울

 유난히 비가 잘박잘박 내리는 밤이었다. 가게에는 오늘따라 사람이 없었고, 거리 또한 마찬가지였다. 우울한 일이나 괴로운 일을 겪은 사람이 아니라면, 비오는 밤에는 누구도 나오고 싶어 하지 않는다. 빗소리는 오래된 와인처럼 점점 진해져갔고, 그만큼 우울의 농도역시 진해져갔다. 가게에는 우리 셋만 남아 각자 시간을 소비하고 있었고, 어느 순간  “안녕하십니까. 거, 가게도 다 끝나 가는데 합석해도 괜찮겠습니까? 저기 앉아있는 형씨까지 셋이서 가게 문 닫을 때까지 마시자구요.”  라는 그의 말과 함께  “아아. 반갑습니다. 앉으세요. 저기요, 형씨도 여기 와서 앉아요. 혼자서만 마시지 말고 셋이서 같이 마십시다. 이모. 여기 소주 두병하구 낙지볶음 하나 주세요.”  라며 셋이 합석하게 되었다.  나는 아내와 한참 얘기가 오가던 이혼문제로 속이 불편했고, 그들은 이런 밤에나 어울리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들이 무슨 괴로움을 떠안고 있는지는 몰랐지만 아무튼 나는 ‘서울, 1964년 겨울’의 서적외판원 같은 심정으로 그들과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그들이 ‘나’와 ‘안’이 되어주길 바랬다.  “자. 통성명이나 합시다. 나는 김경운이라고 합니다. 서른일곱입니다.”  “반갑습니다. 나는 정우진입니다. 서른셋 이구요.”  “반갑습니다. 유광선입니다. 서른둘입니다.”  처음 합석을 권유한 이부터 악수를 청했다. 둘 다 나보다 한참 어렸다. 이것 참, 정말 김승옥의 소설처럼 되는 것은 아닌지. 웃음이 조금 나왔다.  “다들 어떻게 오늘 같은 밤 여기서 혼자 앉아있게 됐습니까?”        1. 정우진  그는 너를 죽였다. 그렇지만 나는 너를 동정하거나 연민할 생각이 없다. 기억하는가. 너와 그의 사이를. 너와 그의 사이에는 거리가 수십 개쯤은 끼었었다. 하지만 너와 그는 남남인 것은 아니었다. 너는, 그를, 죽일 만큼 괴롭혔다.    “지난 22일, 충남 논산시에서 발생한 살인사건의 용의자가 체포되었습니다. 용의자 한 씨는 박 씨를 21일 저녁 11시경에 목 졸라 죽인 것으로 밝혀져……. 한 씨는 불우한 가정환경에서……. 폭력적인 아버지……. 박 씨는 학창시절 학업에 충실하고 운동에 뛰어난 소질을 보인 학생이었고 친구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많았던 것으로 알려져 안타까움을……. 특히 박 씨는 모 기업의 중역임이 밝혀짐에 따라 이번 살인사건의 여파가 더욱 클 것으로…….”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자꾸 띄엄띄엄 들렸다. 채널을 돌려봐도 모두 너와 그

  • 분홍사슴
  • 2011-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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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자의 법칙'은 친구 p의 이론입니다. 그는 천재입니다. 그림은 그의 그래프를 단순화시켜 직접 그렸습니다. 그의 원본은 훨씬 복잡하고 삼각함수 기호들로 얼룩져있습니다.

    • 2011-10-18 00: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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