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원
- 작성자 모스케어
- 작성일 2013-11-08
- 좋아요 0
- 댓글수 0
- 조회수 364
소중한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
외로움도 우울도 하나로 모아서 본 내 소원은 그것이었다. 나를 소중히 여기지 않아도 좋으니까, 내가 사랑할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 사랑받겠다는 생각따위 애전에 버린지 오래였다. 내가 사랑받는다는 것은 지나가던 개새끼도 울만큼의 헛소리였다. 그러니 사랑해줄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 내 가여움과 외로움을 사랑으로 바꾸어 쏟아부어 줄 수 있는 네가 있었으면 좋겠다. 이 울렁거리며 넘쳐나는 감정을 줄 수 있는 네가, 내 모든 걸 줄 수 있는 네가 있었으면 좋겠다.
모든 걸 나에게 쏟아붓는 건 울음이 치밀어오를 정도로 비참한 일이었다. 곁에 없어도 좋으니까 있어만 주면 좋겠다. 내가 네 곁에 갈 테니까. 네가 존재하기만 하다면, 나는 네게 가서 너를 사랑할 것이다. 죽을 듯이 사랑해서 죽어버렸으면 좋겠다. 너의 손끝 하나 발끝 하나마다 입을 맞추고 머릿결에 입을 맞출 것이다. 내 모든 걸 바쳐서 너를 사랑할 것이다. 너의 발아래 무릎꿇고 너를위해 개짓이라도 하리라. 나의 비참한 아양으로 너의 미소한점을 살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했다.
가질 수 없겠지만, 영혼이라도 쓸어담아서 너를 가지도록 노력할 것이다. 너의 머리카락 한 올 하나 온전히 가지기 위해 나는 목숨도 바칠 수 있을 것이다. 너에게 나를 종속시킬 것이다. 싫어해도 나는 너의 것이 될 것이다. 아무리 거부하며 손을 뿌리쳐도 나는 주먹 쥔 손을 펴내 내 목줄을 쥐여줄 것이다. 모든 것을 줄 테니까 내 모든 것을 가져라. 그것만이 내가 행복해지는 일이었다.
나를 너에게 묶음으로서 나는 비로소 존재하고 생명을 틔울 것이다. 사랑한다. 존재하지도 않는 너를 사랑한다. 백번을 빌면 네가 존재할까. 천 번을 빌면 네가 존재할까. 천 일 동안 치성을 드리고 공양을 드리고 삼백일 동안 산에 오르는 모든 걸 할 수 있으니 네가 존재해줬으면 좋겠다. 내가 나를 바쳐 사랑할 준비가 되었는데 왜 너는 없는가. 그 사실이 못내 나를 더없이 슬프게 했다. 매일을 술에 허우적거리고 미친사람처럼 너를 찾아 헤맸다. 그러나 세상 어디에도 너는 없었다. 저 땅끝에는 네가 있을까, 하늘 너머에는 네가 있을까.
수많은 울부짖음 속에 나는 깨달았다. 나는, 나의 사랑을 너의 존재를 드러나게 하는데 써야 하는가보다. 내 목숨을 버리고 너를 살려야 네가 존재하나 보다. 나와 너를 맞바꾸어 너를 존재하게 해야겠다. 나는 이걸 왜 이제 알았을까. 사랑하는 너는, 나로 인해 태어나는구나. 그로써 나는 영원히 너에게 종속되는구나. 좀 더 일찍 알았으면 좋았을 것을. 세상에 이처럼 황홀한 일이 더 있을까!
네가 나로인해 존재하게 된다는 것은 발끝이 저릴만큼 짜릿한 일이었다. 나에게 우울한 세상이 너에게는 무지개를 보여줄 것이다. 내가 사랑해 마지않는 너는 찬란한 세상을 보아야 한다. 흘러가는 시냇물을 지저귀는 새를 도시의 화려함을 인생의 아름다움을 너는 보아야 한다. 애초에 내가 볼 것이 아니었다. 그래, 네가 아니라 나였기에 세상이 그렇게 우울하였구나. 모든 것은 내 것이 아니였다. 세상은, 모든 것은, 너를 위해 존재했다. 내가 너무 늦게 알아차렸다. 이토록 기쁜 일이 어딨을까. 내가 너를 존재하게 한다니. 감당할 수 없는 기쁨이 복받쳐 오른다. 너에게 한시빨리 세상을 보여주어야겠다. 웃음 짓는 사람들을 보여주어야겠다. 너는 너무나 사랑스러워서 다른 사람들의 사랑도 받을 것이다. 네가 다른 사람과 웃고 얘기하며 사랑하는 것이 나는 가슴 아프나 네가 행복하다면 상관없다. 내가 더는 볼 수 없는 너의 미래가 나는 걱정되기도 하나 전혀 걱정되지 않는다. 사랑스러운 너의 미래는 오색빛깔로 빛나며 향기로운 향내를 풍기고 하늘 위로 올라가고 있는 텐데 내가 무얼 걱정하겠는가. 너는 세상의 사랑을 받을 것이다. 내가 사랑하는 너는 곧 세상의 중심이고 아름답다는 말 그 자체일 것이다. 그 무엇도 너에게 비견할 수 없고 오로지 너만이 너의 상대가 될 것이다.
아, 참을 수가 없다. 이렇게 아름다운 네가 아직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건 비통한 일이다. 나는 일초라도 더 빨리 너를 들어내야 했다. 나는 너를 위해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방법으로 내 목숨을 버릴 것이다. 아무리 내가 애를 써도 너에게 걸맞지 않겠지만 그래도 나는 너에게 걸맞은 탄생을 주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한 고귀한 방법으로 죽을 것이다.
나는 도시의 탑으로 올라간다. 도시의 중심에 있는 높은 탑은 누구보다 고귀하며 세상의 중심인 너에게 그나마 걸맞은 장소일 것이다. 또한, 사랑스러운 너의 탄생을 모두가 볼 수 있는 장소일 것이다. 그토록 아름다운 네가 탄생하는 것을 나는 나 혼자 보고 있을 수만은 없다. 세상 모두모두가 너의 탄생을 축하하며 감탄하여야 한다. 모두가 보아야 한다. 너는 나의 사랑과 모두의 사랑을 받는 사람이니까.
나는 탑에 오르기 전에 모두에게 소리친다. 네가 태어난다고! 누구보다 사랑스러우며 고귀한 네가 곧 태어난다고! 차가운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며 나는 기쁨을 감출 수가 없다. 좀 있으면 네가 태어날 것이다. 사랑스러워 미칠 것만 같은 네가 태어날 것이다. 나는 엘리베이터가 닿는 한 가장 높은 곳에 내려서 창문을 깨고 바깥으로 나간다. 높은 지대의 바람이 널 반겨준다. 분명 자연도 너의 탄생을 아는 것이다. 앙상한 철골을 간신히 기어올라 나는 탑의 맨 꼭대기로 올라간다. 고귀한 너의 탄생은 누구보다 높은 곳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너보다 높은 것은 이 세상에 없어야 한다. 맨 꼭대기에서 나는 아래를 내려다본다. 곧 있으면 네가 헌신할 아래를 내려다본다. 형형색색의 불빛들이 너의 탄생을 반기며 손을 든다. 저 산 너머너머의 뻐꾸기와 진돗개마저 뻐꾹뻐꾹 멍멍 소리를 내며 너를 반긴다. 구석구석의 들짐승들이 너를 받들어 울음소리를 내는 것이 들린다. 점 같은 인간들이 모두 하늘을 바라보며 너의 탄생을 기대하고 있다. 한쪽 구석에는 기념스러운 너의 탄생을 기록하기 위한 카메라까지 즐비하다.
바람이 따뜻하다. 분명 세상에 처음 나와 추위에 오돌오돌 떨 너를 배려한 것일 거다. 나는 벅찬 가슴을 끌어안고 숨을 들이쉰다. 폐 사이사이로 빠져나가는 바람 하나하나가, 내 심장을 뛰고 있는 혈류의 세포 하나하나가 곧 너의 일부가 될 것을 나는 온몸으로 느낀다. 나는 너를 위해 나를 바치는 것에 대해 숭고함을 느낀다. 그리고 동시에 송구스러움을 느낀다. 나 따위가 너를 존재하게 할 수 있다니. 이렇게 송구스러운 일은 세상에 없을 것이다. 미천한 나를 바쳐 누구보다 성스러운 너를 탄생시킨다는 것에 나는 숭고한 사명을 느낀다. 나는 너를 반기는 세상을 하나하나 내려다본다. 저 모든 것들이 너를 반기는 것이 나는 행복하다. 내가 없는 세상에서도 너는 사랑받아야 마땅한 사람이다.
이내 나는 탑의 꼭대기에서 뛰어내린다. 혹시 운이 좋으면 너의 탄생을 볼 수 있을까 싶어 나는 하늘을 보며 뛰어내렸다. 구름 한 조각 없는 하늘에 별이 그득히 쌓여있다. 너는 저 별 중 한 곳에서 내려오는 것일까. 나는 귓가에 스치는 바람이 점점 빨라지는 것을 느꼈다. 조금만 더 있으면 내가 죽고 있어야 마땅한 자리에 네가 탄생할 것이다. 아래로 내려갈수록 세상의 소리가 들려왔다. 뭐가 그렇게 기쁜지 사람들은 사이렌까지 울려가며 너를 반기고 있었다. 모두들 너의 탄생을 알아주어 나는 만족스럽다. 나는 차가운 아스팔트에 떨어진다. 깨진 머리통 사이로 뜨겁게 흐르는 피를 느꼈다. 곧바로 숨이 넘어가야 마땅했지만 너의 자비인지 나는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봤다. 눈물 때문에 흐려진 시야 사이로 나는 봤다. 너는 내가 떨어진 꼭대기보다 더 높은 곳에서 흐르는 별 사이를 가르며 내려왔다. 너의 양옆에는 행여나 네가 다칠까 날개를 단 사람 둘이 너를 떠받들고 있었다. 너의 뒤에는 우윳빛 골짜기가 빛나고 있었고 꿀이 함께 떨어져 내렸다. 힐끗 쳐다만 봐도 감탄이 절로 나오는 너의 미모는 마음이 없는 들짐승마저 너를 사랑하게 하였고, 형체가 없는 자연마저 너를 사랑하게 하였다. 너는 세상이 너를 사랑하게 하였다. 당연한 순리이며 이치였다. 그 아름다움으로 너는 내가 네가 존재하기도 전에 너를 사랑하게 하였던 것이다. 온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너의 아름다움은 내 조악한 말로는 모두 설명할 수 없는 것이어서 자꾸만 울컥울컥 속에서 말대신 진한 피가 흘러나왔다. 찬란하게 빛나는 너의 모습에 환호하는 사람들의 함성이 멍멍하게 울렸다.
아아, 그리고 나는 봤다. 네가 오롯이 나를 위해 웃음 짓는 것을.
나는 봤다. 나의 모든 것을 바쳐 얻어낸 단 하나의 미소를.
저번까지 읽은 이후로 이어보시겠어요?
선택하신 댓글을 신고하시겠습니까?
저번까지 읽은 이후로 이어보시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