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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시 45분 즈음

  • 작성자 탈퇴 회원
  • 작성일 2022-11-02
  • 조회수 735

 초기 인물 사진의 가장 큰 특징은 강렬한 눈빛이다. 카메라가 영혼을 앗아간다는 미신이 만연했기 때문에, 그 즈음의 일반인 모델은 하나같이 강한 시선을 가지고 있었다. 눈을 통해 왕래하는 영혼을 지키기 위해 그들은 스스로의 구멍을 메웠다. 신념, 공포, 분노, 혹은 순수한 동경 따위로. 그런 의미에서 K의 눈은 낡아빠진 싸구려에 가까웠다. 아직 과학이 진리를 대신하기 전, 미신이 미신으로 불리지 않던 시대를 살아가는 듯, K의 눈은 기묘한 생명으로 불탔다. 그녀는 분명 이성보다 심장을 우선하리라. 촬영자로 하여금 그런 착각을 불러 일으키는 눈이었다.

 나는 아무말 없이 삼각대를 세웠다. 카메라의 노출값과 함께 호흡을 가다듬었다. 갑갑한 교복 넥타이를 연신 긁어대며, K의 알몸에게 렌즈를 겨눴다. 석고상처럼 바스라지는 신체, 그 위로 수놓아진 푸른색 멍을 최대한 객관적으로 응시했다. 아마도 이번이 마지막일 것이다. 그녀가 진심 아닌 진실을 이야기하는 것도, 시퍼런 눈을 치켜뜬채 나를 바라보는 것도.

 K와 나는 방과후 빈 교실에서 처음 만났다. 양 팔에 아로 새겨진 멍자국이 염증처럼 부풀어오르는 탓에, 종일 묶어뒀던 팔토시를 막 벗어던진 참이었다. 나는 선생과 아이들이 빠져나간 교실에서 불어터진 흉터를 말렸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상처가 덧나고 함부로 엉겨붙기 때문에 별 다른 수가 없었다.

 “그거, 얻어 맞은거야?”

 창밖으로 시선을 돌린채 호흡을 삼키면서, 얼마나 지났을까. 적막이 감도는 교실에서 K의 시선을 눈치챈 나는 소스라치게 놀랄 뿐 차마 할 말을 고르지 못 했다. 담홍색 저녁 노을을 받은 하얀 피부가 꼭 석고상처럼 눈부시다. 교실 뒷문에서 꼿꼿이 펼쳐진 척추가 아름답다. 따위의 사고를 반추하며 무의미한 시간을 보냈다. K가 먼저 입을 열기까지, 나는 아무말 없이 그녀의 눈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사람을 죽였어.”

 다만 그런 대치상황을 넘어 날아온 K의 한마디는 너무나도 뜻밖의 물건이었다. 그녀는 자신이 사람을 죽였노라 고백했다. 죄값을 치르는 건 두렵기 때문에 내일 자살을 할 것이라며, 초연한 어투로 속삭였다.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였다. 이해를 필요로하지 않는 이야기이기도 했다. 그녀는 어느새 다가와 내가 반사적으로 움켜쥔 DSLR을 검지로 쓸어올렸다. 슬쩍, 미소지었다.

  나에게 처음 카메라를 건네주던 날, 아버지는 말했다. 사람의 눈동자도 카메라처럼 풍경을 담아둘 수 있다고. 잠깐 빛을 응시한 다음 눈을 감으면 눈꺼풀 속에 그 잔향이, 불꽃이, 똑똑히 보이잖아. 이게 바로 그 증거야. 보호안경 너머로 용접 불꽃을 튀기며 그는 곧잘 떠들었다. 삭으로 뜬 달처럼 희미하게 웃었다. 그 무렵의 나를 사진으로 이끈 매력적인 미소였다. 꼭 지금처럼, 체념 한방울 섞이지 않은 강인한 미소. 다시는 볼 수 없을 것 같았는데. 나는 양 뺨이 홧홧하게 달아오르는 걸 금방 실감할 수 있었다. K는 꼭 술을 마시지 않은 아버지처럼 따뜻했다.

 “그러니까 내 영정사진을 찍어줘. 너, 사진 찍는거지?”

 그날부로 나는 매일 K의 알몸을 찍기 시작했다. 나날이 늘어가는 멍과, 미처 아물지 못한 흉터를 아름답게 담았다. 영정사진이란 모름지기 그런 법이다. 상처조차 아름다워야했다. 작가는 객관적 시선을 유지하되, 사진만큼은 조금 작위적이다 싶을만큼 미학에 치우쳐져 있어야 했다. 그녀는 매일 사람을 죽였고, 나는 매일 아름다운 자살자를 찍었다. 그런데 오늘, K는 처음으로 이해를 필요로하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사람을 죽였어.”

 여느때와 다름 없는 서두였지만, 나는 그녀가 대답을 바라고 있음을 어렵지 않게 눈치챌 수 있었다. 불꽃처럼 타오르는 시선 때문에 눈치채지 않는 편이 오히려 더 어려울 듯 했다.

 “누구를?”

 나는 오랜시간, 공들여 대본을 외워온 배우처럼 익숙하게 되물었다.

 “우리 아빠.”

 K는 어제와 다름 없는 몸을 빙글 돌리며, 화려하게 웃었다. 처음으로 그녀의 몸은 어제의 상처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더 늘거나, 더 번지지 않고, 온전하게. 더러운 구멍처럼 보라빛으로 물든 멍을 그녀는 자랑스럽게 쓰다듬었다. 이에 나는 짐작했다. 오늘이 마지막이구나. 

 “너도 나랑 갈래?”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지금껏 찍어온 K의 알몸 사진을 하나하나 살폈다. 초조를 달래기 위한 제 나름의 몸부림이었다. 나는 사진을 들여다보며 과거에 잠겼다. 한 장, 한 장, 그러다 문득 어느 사진 앞에서 숨을 몰아쉬었다. 가장 처음 찍었던 K, 환하게 웃는 K. 

 “아니. 괜찮아.”

 내 거절에 K는 적잖이 실망한 눈치였다.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입꼬리를 씰룩거리며, 교실을 빠져나갔다. 19시 45분이야. 내가 죽는 시간. 그건 지나치게 상세한 계획이지 않냐며 쏘아붙여주고 싶었지만, 이미 복도에 K는 없었다. 하지만 나는 알 수 있었다. 그녀는 죽지 못 할 것이다. 나처럼, 온몸을 수놓은 기억의 구멍을 끌어안은채 살아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도 그럴게 그녀는 사진에 담겼다. 그녀가 아버지를 죽이고, 끝내 모든 멍이 사라진다한들, 그 불타오르는 양 눈만큼은 끝까지 모든 걸 지켜보리라. 

 “19시 45분.”

 네가 마침내 모든 걸 실감하고 절망하는 시간. 나는 왼쪽 가슴팍에 매달린 김시연이라는 이름표를 떼어냈다. 아버지에게 선물받은 카메라를 책상 모서리로 집어던졌다. 여전히 기능하는 기억의 구멍을 양 손바닥으로 감싸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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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탈퇴 회원
  • 2022-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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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09-29
용의 말

선생은 나에게 용을 찍어오라고 말했다. 날개가 달린 붉은 용, 그것의 사진을 찍어오라고 말했다. 만약 양질의 사진을 찍어온다면 방학 중 과제는 그것으로 대체해 주겠다며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용의 사진이라. 나는 어이가 없어서 웃음을 터트렸다. “너무 간단하잖아요. 편애같은 건가요?” 한달 전 즈음, 하늘에서 용이 내려왔다. 은유가 아니며, 직유가 아닌, 문자 그대로의 붉은색 용이 대한민국 수도 한복판에 무거운 몸을 내려 앉혔다. 파란 하늘이 지붕 천장이라도 되는 양 길쭉한 목을 빳빳하게 세운채 흘러가는 구름을 큼직한 주둥이로 집어 삼켰다. 물론 그 형태를 엄밀히 따지면 서양의 드래곤에 가까웠으나 용 본인이 스스로를 용이라 칭했기에 그는 용이 되었다. 외계에서 날아온 직립보행 도마뱀에게 붙일 마땅한 이름이 달리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찍어올게요.” 어려운 일은 아니었기에 나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망원 렌즈와 dslr을 챙겨 아스팔트를 밟았다. 녹아내린 타르 위에 점점히 발자국을 찍었다. 꼭 속이 뒤틀리는 듯 했다. 손바닥에서 피어오르는 열이 머리를 덥혔다. 이제와서 후회하는 건 분명 배부른 소리지만 그래도 너무 더워. 중얼거리며, 자세를 낮췄다. 안 그래도 짧게 줄인 치마가 무릎 위로 힘껏 당겨졌다. 얼핏 새하얀 속옷이 엿보였지만 나는 신경쓰지 않았다. 어차피 이곳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용을 보고 있다. 이곳의 그 누구도 여고생의 속옷 같은 건 신경쓰지 않는다. 우스운 일이었다. 나는 조소와 함께 파인더 너머 정경을 살폈다. 7월의 맹렬한 직사광선 탓인지 공원의 채도는 평소보다 두어 단계 낮아 보였다. 하늘은 맑고,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보도블록 사이에는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아무리 주말이라지만 그래도 이건 너무 심한 거 아닌가 싶을 만큼 많은 사람들이 돗자리를 펼쳐 앉았다. 하늘을 우러러보고 있었다. 미처 돗자리 지정석을 사수하지 못한 사람들은 별수 없이 두 다리로 본인의 몸을 받쳤다. 이들 모두 용을 보기 위해 모여든 사람들이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용을 듣기 위해 모여든 사람들이었다. "경이롭습니다. 세존이시여! 여래께서는 모든 보살을 좋게 여겨 보살피시고 모든 보살이 좋게 여겨 의지할 수 있게 합니다. 세존이시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을 얻고자 하는 선한 남자와 선한 여인이 어떻게 살아야 하며 어떻게 그 마음을 다스려야 합니까?" 이윽고 붉은 용은 입을 열었다. 땅이 울릴 만큼 거대한 목소리였다. 바삐 움직이던 도시의 흐름은 순식간에 개인이 되어 그 언어를 경청했다. 아직도 몇몇 종교, 정치 단체는 용의 발언을 모종의 예언으로 이해하고 있는 듯하지만, 그가 뱉어내고 있는 건 금강경의 구절일 뿐이다. 아마 평소와 같다면, 용은 오늘 종일 금강경을 낭독할 것이다. 그래, 낭독. 용은 대체 어디에서 왔는지, 어째서 도시 한복판에 둥지를 틀었는지, 생식 활동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그런 건 누구도 알지 못한다. 다만 확실한 건, 용은 말한다. 급작스럽게 날아들어 와서는 해외 고전 문학을 차례차례 읊조린

  • 탈퇴 회원
  • 2022-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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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지현

    내셔님 안녕하세요. 이번 글에서는 내셔님만의 프레임을 바라보는 시선이 느껴져서 좋았습니다. 다만 사진에 대한 사유가 끝까지 이어지지 않은 점과 시간의 혼란이 조금 아쉬웠습니다. K와 화자 사이에 있었던 사건들이 조금 더 드러나면 그런 혼란이 줄어들지 않을까 싶어요. 그것이 가족에 대한 사유로 확장되면 더욱 좋을 것 같고요. 그럼 다음 글도 기대하겠습니다.

    • 2022-12-08 18:14:54
    송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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