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나의 열여덟은 아름답다

  • 작성자 능휘
  • 작성일 2005-11-20
  • 조회수 4,246

 

나의 열여덟은 아름답다


1_사랑니가 나고 있다


깜빡. 거울 앞에 서서 눈을 깜빡이고 입을 크게 벌린다. 한 달 전부터 왼쪽 아랫잇몸이 많이 아팠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입 안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역시나 사랑니가 나고 있다. 당황스럽다. 초경을 한 초등학교 5학년 때보다 더 당황스럽다. 사랑니가 ‘성인용’은 아니지만, 왠지 열여덟 살의 내게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든다. 왜 하필 ‘사랑니’라고 부르는 거지? 누군가 그랬다. ‘이가 날 때 마치 첫사랑을 앓듯이 아파서 사랑니라고 부른다더라.’ 제법 그럴 듯한 설명이었다. 아프다고, 첫사랑을 앓듯이…? 

입을 다물고 거울을 보니 두 눈이 빨갛게 충혈되어 있다. 깜빡. 깜빡, 깜빡. 눈 깜빡이는 것을 자꾸 깜빡 잊게 된다. 몇 달 전, 안과 의사가 그랬다. “안구가 건조하네요. 눈물이 참 적어요.” 눈꺼풀 사이에 끼워 넣은 여과지를 5분 동안 10mm도 적시지 못할 정도로 적은 눈물. 그래서 나는 의식적으로 눈을 자주 깜빡여서 눈물을 길어 올려야만 한다. 과학적으로는 별다른 상관관계가 없겠지만, 건조한 눈을 가진 나는 우는 일도 드물다.

 

“현희야, 무슨 이를 그렇게 오래 닦아~ 외할머니 댁 갈 준비 해야지.”

“엄마, 나 사랑니 나나봐.”

“그러니? 너희 언니도 요즘 사랑니 난다는데.”

엄마에게 있어 내 사랑니는, 내가 태어난 지 7개월이 되었을 때 나기 시작한 앞니만큼의 가치도 없다. 엄마, 난 이제 앞니만으로도 살 수 있는 어린애가 아니에요. 나도 이제 어른이 되고 있다구요. 하지만 어쩔 수 없겠지요, 엄마한테 나는 영원히 어린애죠. 

 

2_외할아버지와 민기


옷을 갈아입고 가족들과 함께 외할머니 댁으로 향한다. 문이 열리면 두 살짜리 사촌동생 민기가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를 지르며 달려 나온다. “우리 민기, 잘 있었어?” 가족들이 민기와 인사를 하는 동안 나는 거실을 가로질러 안방으로 들어간다. 외할아버지의 방. “할아버지, 저 왔어요.” 외할아버지도 민기처럼,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로 대답을 하신다. 가족들이 외할아버지의 방으로 들어오고, 나는 거실로 나간다. 민기는 호기심이 가득한 또랑또랑한 눈으로 날 구경한다. 나는 대충 한 번 웃어 보이고 고개를 돌린다. 외할아버지의 방에서 나온 가족들은 환한 미소를 지으며 민기에게로 모여든다.

 

외할아버지는 오랫동안, 내가 살아온 세월보다 더 긴 시간 동안 편찮으셨다. 언니가 태어나던 겨울, 눈을 쓸다가 쓰러지셨다지. 내가 나이를 먹을수록 외할아버지는 더 자주 쓰러지셨고, 거동이 점점 더 불편해지셨다. 외할아버지의 간호에 지극정성인 외할머니의 얼굴에 그늘이 지는 날도 많아졌다. 그렇게 지쳐가는 외갓집 식구들에게, 삼촌의 아들 민기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큰 기쁨이 되었다. 하지만 외할아버지는 그 때부터 소외되기 시작했다. 적어도 내 눈에는 그랬다. 외할머니, 이모, 삼촌 모두 외할아버지의 간호에서 손을 떼는 날이 없었지만, 외할아버지는 분명 소외당하고 계셨다. 민기가 거실에서 뛰놀 때면 외할아버지는 안방으로 들어가 주무시곤 했다. 그렇게, 외할머니 댁 안방은 외할아버지의 방이 되었다. 


가족들이 민기의 재롱을 구경하며 왁자지껄 웃고 있는 동안 나는 슬그머니 자리를 피한다. 방 안에 누워 주무시는 외할아버지, 방 앞 거실에서 엉덩이를 흔들며 까르르 웃고 있는 민기. 갑자기 그 녀석이 얄밉다. 가을이 되면 낙엽이 떨어져 썩어버리고, 봄이 되면 파릇파릇한 새싹이 돋아나는 것이 자연의 이치라는 것을 잘 아는데도. 나는 가끔 자연의 섭리마저 거스르고 싶은 것이다. 점점 더 약해지는 외할아버지의 모습을 볼 수가 없다. 나보다도 어린, 언제나 즐겁고 밝은 민기를 볼 수가 없다. 실은 무엇보다도, 점점 어른이 되어가는 나를 참아낼 수가 없다. 열 살 때인가. 외할아버지의 생신날, ‘외할아버지 오래오래 사세요’ 라고 카드를 쓴 적이 있다. 나는 이제 열여덟, 그 카드를 본 어른들의 표정이 밝을 수 없었던 이유를 아는 나이가 되었다. 깜빡, 깜빡. 이번에도 의식적으로 눈을 깜빡인다. 그러나 눈물을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라, 눈물을 참기 위해서. 깜빡. 또르르, 눈물이 굴러 내려온다.


외할머니 댁에서 돌아오는 길에 나는 쉽게 피곤해진다. 너무나 다른 외할아버지와 민기, 그리고 그 사이에 서 있는 나. 이제 막 인생을 시작한 어린 민기의 밝은 생기가 내게는 없다. 나는 마침내 외할아버지만큼 나이를 먹을 것이다. 약해질 것이다. 두렵다. 잇몸이 아프다. 두렵다. 눈을 감아버린다.


3_엄마의 어린 딸


언니의 목소리가 들린다.

“현희야. 어? 얘 잠들었네. 아, 민기는 자는 모습도 진짜 귀엽던데.”

“엄마가 보기에는 현희 자는 모습이 더 귀여운데?”

“에이, 말도 안 돼.”

나이를 먹는 것이 두려운 나는 차라리 STOP 버튼을 누르고 남은 평생, 열여덟을 살고 싶다. 하지만 엄마는 자라나는 딸에 대한 두려움을 조금 더 일찍 느끼신 걸까. 엄마의 작은 딸 현희는 열여덟이 되지도 못한 채, 그저 열 살이다.


부끄럽게도 나는 밥을 지을 줄 모른다. 쌀과 물을 얼마만큼 넣고 몇 분간 끓여야 하는지, 약한 불 - 중불 - 센 불 중 어느 불에 밥을 지어야 하는지 모른다. 나는 밤에 혼자 자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언니와 같은 침실을 쓰며, 언니가 수련회에 가기라도 하면 엄마 옆에서 자곤 한다. 내가 생각해도 나는 참 덜 자랐다. 혼자서 할 줄 아는 것이 별로 없다. 하지만 시간은 계속 흐르는데, 언제까지나 열 살 어린애로 남을 수는 없는데. 엄마는 아직도 밤에 내가 잠이 든 것을 확인한 후에야 마음을 놓고 주무신다. 나만 남겨두고 외출하실 때면 가스밸브를 잠그고 나가신다. 가끔 어린 아이 취급을 그만 해 달라고 말씀드리면 엄마는 웃어넘기거나 서운해 하신다. 엄마, 나도 어른이 되기 싫어요. 그렇지만 어쩔 수 없어요. 엄마의 작은 딸은 이번 여름에 주민등록증을 발급받았고, 사랑니를 발견했어요. 엄마의 ‘어린’ 딸은 이제 더 이상, 넘어졌다고 해서 울지 않아요. 짝이 책상 중앙에 그어놓은 선을 넘었다고 해서 싸우지 않아요. 이제는 어떤 남자를 사랑하면서 애태우고 울게 될 거에요. 넓고 험한 세상에서 매일매일 살아남기 위해 팔을 걷고 싸워야 할 거에요. 엄마의 멋진 아버지가 약한 노인이 되었듯이, 엄마의 철없는 남동생이 한 아이의 아버지가 되었듯이, 엄마의 어린 딸도 어른이 되어야 해요.


4_인어공주


나는 어른이 되고 싶은 걸까? 아니. 어린애로 남고 싶은 걸까? 아니. 이도 저도 아닌 ‘애매한 열여덟’을 사랑하는 걸까? 아닐걸. 열여덟에 대한 이 복잡한 애증. 이어폰을 집어든다.


What would I give if I could live out of this water? What would I pay to spend a day warm on the sand? …Wondering free, Wish I could be part of that world…


열여덟의 인어공주가 노래한다. ‘물 밖에서 살 수 있다면 무엇을 주어야 할까? 모래 위에서 따뜻한 하루를 보내려면 얼마를 치러야 할까? 자유를 꿈꾸며, 내가 저 세상의 일부가 될 수 있기를….’ 다른 세상을 꿈꿨던 인어공주는 결국 물거품으로 사라졌다. 어쩌면 인어공주 이야기는 방황하는 청소년들을 교화시키기 위해 만들어진 것인지도 모른다. ‘여러분, 열여덟 살에는 누구나 자아정체성에 대해 혼란스러워하고, 일탈을 꿈꾼답니다. 하지만 위험해요. 여러분의 치기가 결국은 스스로를 다치게 만들 거에요. 그러니 주어진 환경에 만족하며 열심히 살아가야 해요. 알았죠?’


항상 물 밖을 꿈꾸는 열여덟의 인어공주, 너는 물 밖 세상이 얼마나 답답한 곳인지 모르겠지. 하지만 나는 이 세상을 벗어나겠다고 물 속으로 들어가고 싶지는 않아. 물 속은 물 밖보다 조금 더 답답할 것 같거든. …사실, 새로운 세상으로 갈 용기가 없다. 열여덟의 나, 물거품이 되어버리지 않을까. 결국 나는 이 건조한 물 밖 세상에서 하나의 정물이 되어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물거품보다는, 건조한 정물. 깜빡.


5_평범함에 절여진 행주


점심을 먹고 이를 닦으면서 거울을 본다. 물에서 방금 건져낸 늘어진 행주처럼 오전시간을 보냈다. 4․5․6교시 수업을 듣고 청소를 하고 7교시 수업을 듣고 저녁을 먹고 야간 자율학습을 하고 집에 가면 하루가 끝날 터였다. 어제도 그랬으니까, 내일도 그럴 테지. 지나치게 단조롭다. 오늘은 차라리 귀신이라도 봤으면 좋겠다, 특별한 날이 되도록.

요란스레 행복하지도, 소란스레 불행하지도 않은 나는 평범함에 절여진 채 질식할 것만 같다. ‘공간의 변화가 제한적’이라는 연극 같은, 그러나 연극처럼 ‘극적인 사건’은 전혀 없는 나의 열여덟. 무색․무취의 물풀 같은 나의 열여덟.


갑자기 너무 힘들다. 열여덟은 참 버겁다. 칫솔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가 잇몸이 아프다. 대체 사랑니 따위는 왜 생기는 걸까, 어금니로도 충분히 살아갈 수 있는데. 대체 열여덟 살 따위는 왜 존재하는 걸까. 열다섯 살에서 스무 살로 건너뛸 수는 없을까? 난 분명 성장해야 하는데, 날 성장하게 만드는 것은 없다. 그 많은 교과서들도, 그 두꺼운 문제집들도 날 자라게 하지는 못한다. 세월이 약이라는 말을 믿어야 하나? 사랑니 자라듯 나도 서서히 자랄까? 이렇게 심심하게 살다보면 나는 어느 샌가 자라있을까? 어린애 취급받는 것도 싫고, 단조롭고 평범한 열여덟에 머무는 것도 싫고, 어른이 되어 넓은 세상으로 나가는 것도 싫고, 어쩐다?

괜찮을 거야. 물기를 닦아내며 중얼거린다. 물에서 건져낸 늘어진 행주 같던 나는 어느 새 고온에서 삶아 낸 건조한 행주가 되어 있다. 가끔 ‘괜찮아’라는 말이 더 안 괜찮을 때가 있지만, 아직은 괜찮아. 어떻게든 어른이 되어 넓은 세상 속에서 자연스럽게 살아가게 되겠지.


6_첫사랑 얘기 해주세요


그 길던 여름이 지나고, 날씨가 추워졌다. 오랜만에 긴팔 블라우스에 팔을 끼워 넣던 아침, 잇몸이 너무 아프다. 거울을 보니 잇몸이 갈라져 피까지 난다. 사랑니는 아파. 그래, 첫사랑만큼이나 아파.

“자, 얘들아! 빨리 책 펴! 오늘 어디 배울 차례지?”

“선생님, 오늘은 제발 얘기 해주세요~”

우리들은 지난 봄부터 사회문화 시간마다 선생님께 첫사랑 얘기를 해달라고 조르고 있다. 다른 과목 선생님들의 첫사랑 얘기는 이미 4, 5월에 들었으니까. 선생님들의 첫사랑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나는 걱정이 된다. 이 다음에 누군가 내게 첫사랑 이야기를 해달라고 조르면 나는 무엇을 이야기해야 하나.


이야기는 일단 이렇게 시작한다. “내 첫사랑은 열네 살 때였던 것 같아. 여중에 다니던 내가 내 또래 남자아이를 볼 수 있었던 장소는 딱 한 군데였어. 버스 정류장.” 그 다음엔 무엇을 이야기해야 하지? 사실 ‘처음부터 완벽한’ 추억이란 건 없다. 단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조금씩 완벽해지는 것일 뿐. 덜 유쾌한 부분은 지워버리고, 흉한 부분은 아름답게 덧칠하고. 그렇게 숱한 편집을 거듭한 후에야 비로소 ‘그럴 듯한’ 추억이 되는 것이다. 내 첫사랑 이야기도 그럴 듯하게 다듬어볼까? 아니. 많은 이야기를 하고 싶지는 않다. 그저 몇 마디면 충분할 것 같다.

“겨울에 눈이 내리면 쌓인 눈을 뭉쳐서 잡고 있어봐. 잠시 후 손을 펴 보면 눈은 그 흰 색을 잃고 투명하게 변해 있을 거야. 나도 그랬어. 그 사람이 날 잡았다가 놓았을 때, 내 지난 14년간의 색의 완전히 변해 있었어.”

그리고 이야기는 다음과 같이 끝날 것이다. “글쎄. 짝사랑은 사랑이라고 볼 수 없는 건가? 게다가 고작 열네 살이었으니, 첫사랑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시시해. 첫사랑 이야기는 나중에 해 줄게.”

 

매사의 중심이 되려고 하던, 떠들썩하고 가볍고 얕던 나의 색(色)은 열네 살에 한 사람으로 인해 사라졌다.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일이 생기면 울어버리던 내가, 눈물이 적은 건조한 사람이 된 것도 그 때였다.

난 너에게 참 고마워. 그땐 몰랐는데, 그 사소한 순간들이 날 많이 바꾸어 놓았더라. 그럴싸한 연애를 한 것도 아니고, 내 마음을 송두리째 빼앗긴 것도 아니고, 어떻게 보면 사랑이라는 심각한 단어를 쓰기가 참 버거워. 하지만 네가 내 ‘사랑’이었는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아. 넌 나의 색깔을 바꾼 첫 번째 사람이야. 살다보면 내 색이 바뀌는 일이 또 일어나겠지. 어떤 색을 띄며 살게 되든 간에, 어떤 사람이 나의 색을 바꾸어 놓든 간에, 네가 내게 주었던 그 색을 기억할게. …잘 지내지?

어쨌거나 우리는 오늘도 사회문화 선생님의 첫사랑 이야기를 듣는 대신, 문화의 속성에 대해 공부한다.


열여덟의 건조한 나는 사 년 전의 이야기들을 잊어가고 있다. 어린 시절의 설렘은 조금만 거칠게 다루어도 부서져 버리는 아주 오래된 종이처럼, 낡아버렸다. 


7_방금 제 사진 찍으셨어요?


날씨가 좋은 토요일. 수업이 끝난 후 버스를 타고 집으로 가다말고 충동적으로 벨을 눌러 독립문 공원에서 내린다. 사람이 별로 없는 조용한 곳으로 간다. 비어있는 벤치에 앉아서 시집을 읽는다.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빠른 비트의 노래가 평화로운 분위기를 깨는 것 같아 볼륨을 줄인다.

슬프다/내가 사랑했던 자리마다/모두 폐허다/…         찰칵!


응? 고개를 든 나는 30m 쯤 앞에서 나를 바라보고 있는 카메라 렌즈와 눈이 마주친다. 한 남자가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천천히 걸어온다.

“방금 제 사진 찍으셨어요?”

“ …네. 죄송해요, 함부로 찍어서. 기분 나쁘시면 이 필름 드릴게요.”

그가 진심으로 미안한 표정을 짓자 오히려 내가 더 미안해진다.

“아, 아니에요. 그냥, 좀 놀라서…. 왜 찍으신 거에요?”

“벤치에 앉아서 책 읽고 있는 모습이 보기 좋길래….”

그의 시선이 내 손에 들린 시집에 머문다.

“황지우의 ‘뼈아픈 후회’라. 왜 그런 시를 읽어요? 안 어울리게.”

“뭐가 안 어울린다는 거에요?”

“ ‘시인이 걷잡을 수 없는 정신적 공황상태를 겪고 난 후, 삶에 대한 회환과 자기부정을 승화시킨 작품’이라고 배웠는데… 지금 몇 살이죠?”

“열여덟이요.”

“열여덟은 꿈과 이상에 부풀어 있어야 할 나이 아닌가요? 회환과 자기부정보다는.”

낯선 사람에게 사진을 찍혔다. 낯선 사람과 대화를 시작했다. 낯선 사람에게 내 나이를 알려주었다. 그것도 모자라, 낯선 사람에게 정곡을 찔렸다.

“몇 살이시죠?”

“저요? 스무 살이요.”

“그럼 열여덟 살 때의 감정이 아직 조금이라도 기억나겠네요. 열여덟 살 때 정말 그랬어요? 꿈과 이상에 부풀어 있었어요?”

“글쎄요. 항상 희망이 가득했던 건 아니지만, 적어도 정신적 공황상태는 아니었지요.”

내가 이상한 거였구나. 다른 사람들은 열여덟을 ‘무사히’ 보내는구나. 나만 열여덟을 앓고 있구나. 잠깐 앉아도 될까요, 하며 그가 벤치에 앉는다.

“고민거리 있어요? 친구랑 싸웠다거나, 부모님이 잔소리를 심하게 하신다거나. 열여덟엔 보통 그런 일로 고민하잖아요.”

내겐 그런 고민들조차 없다. 나는 병신과 머저리 중 머저리에 더 가까운 사람이다. 상처를 알 수 없는 고통, 이유를 알 수 없는 두려움.

“고민이 없어서 더 고민인가 봐요. 내가 하는 고민은 지극히 추상적인 것들, 이를 테면 나이를 먹는 것이 싫다든지,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가야 하는 것이 무섭다든지 하는 것들이거든요.”

“주변 사람들하고 이야기 해봤어요?”

“부모님은 제가 아직 너무 어리다고 생각하세요. 전 어른이 되기 싫지만 철부지 어린애 취급을 받는 것도 싫어해요. 그리고 친구들은 다들 빨리 대학생이 되고 싶어하구요.”

“대학생이 되기 싫어요?”

“네. 정확하게 말하면, 고등학교를 졸업하기가 싫어요.”

“학교를 굉장히 좋아하나 보네요.”

“그렇다기보다는…. 제가 다니고 있는 ‘특수 목적 고등학교’에 모인 약 600명의 학생들은 다들 참 비슷해요. 자라온 환경, 생활방식, 가치관, 꿈…. 나이를 먹을수록, 넓은 세상으로 나갈수록 나와 많이 다른 사람들을 만나게 될 텐데, 잘 적응할 수 있을지 걱정돼요. 난 이미 너무 좁은 사람이 되었으니까.”

“그래서 닮은 사람들끼리 모인다는 건 축복받은 일인 동시에 저주받은 일이기도 하죠.”

“별 것 아닌 것 같은 이런저런 이유들 때문에, 세상으로 나가는 것이 무서워요.”

그는 진지한 표정으로 내 이야기를 듣고 있다. 비둘기 한 마리가 푸드득거리며 지나가는 순간 나는 정신을 차린다. 내가 왜 낯선 사람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지?

“가봐야겠네요.”

“잠깐만요. 다음번에 또 만나면 세상이 왜 무서운지, 뭐가 고민스러운지 더 얘기해 줄 수 있어요? 내가 도와줄 수 있는 부분이 조금이나마 있을 것도 같아요. 그리고 혼자 고민하는 것보다는 누군가에게 얘기하는 것이 더 후련하지 않겠어요?”           

나는 낯선 사람을 믿는가? 아니.

“다시 못 만날 것 같은데요.”

“다시 만날 것 같은데요? 난 매주 토요일마다 이 공원에 나오니까.”

그는 의미 있는 웃음을 지어 보인다. 가볍게 고개를 숙이며 일어나는 내게 그가 마지막으로 한 마디를 한다.

“난 류지완이에요.”

“전 이현희에요.”

이름을 말하고 돌아서며 바로 후회한다. 내가 도대체 왜 이러지? 그런 얘기는 왜 꺼냈고, 이름은 왜 가르쳐 준거야? 이상한 실수 많이 했네. 하지만 뭐, 또 볼 사람은 아니다.


8_단풍 색깔


다시 토요일이 되기까지 여러 가지 일들이 있었다. 하지만 열여덟의 내게 일어나는 그 모든 사건들은 식용색소에 불과하다. 물에 식용색소를 섞으면 빨강, 노랑, 파랑, 초록, 다양한 색의 음료수를 만들 수 있다. 하지만 그 어떤 색소도 물의 성질을 바꿀 수는 없다. 내게 일어나는 사소한 사건들도 하루 분량의 새로움과 다양함을 선사할 수는 있지만 내 단조로운 열여덟을 바꿀 수는 없는 것이다.

토요일, 아침에 눈을 뜰 때부터 마음이 불안하다. 지난 토요일, 독립문 공원에서 나는 왜 무방비 상태였는가. 가장 친한 친구에게조차 ‘넌 아무리 친해져도 더 이상 넘어갈 수 없는 경계선을 가진 것 같아.’ 라는 말을 듣던 내가, 왜 그리 쉽게 내 마음을 보여주었는가. 하지만,

“이번 정류소는 독립문 공원입니다.”

오늘은 아니다. 나는 버스 의자에 좀더 깊숙하게 앉는다.


집에 도착하니 엄마는 전화중이시다. 표정이 어둡던 엄마는 전화를 끊고 한숨을 쉬신다. 듣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외할아버지에 관한 이야기라는 사실. 하지만 듣고 나니 예상보다 훨씬 더 심각한 상황이다. 외할아버지가 또 쓰러지셨고, 거동을 못 하신단다. ‘비현실적인’ 나는 뭔가 차오르는 눈을 바쁘게 깜빡이기 시작한다. ‘현실적인’ 언니는 외할머니께서 어떻게 감당하느냐고, 병원을 알아보자고 한다. 또다시 언니와 싸우고 싶지는 않다. ‘너는 아직 어려서 비현실적이고 감정적으로만 생각한다, 외할아버지 당신께도 이런 삶은 무의미하다’는 말을 듣고 싶지 않다. 눈물을 보이고 싶지 않다.

“어? 현희야, 어디 가?”


“이번 정류소는 독립문 공원입니다.”

나도 모르게 이 곳에 와버린다. 무작정 지난번에 앉았던 벤치로 향한다. 누군가, 아니, 류지완이라는 사람이 앉아있다. 살짝 웃는 그에게 일방적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20년 동안 아파 온 사람이 있어요. 처음부터 심각했던 건 아니에요. 손녀딸을 업을 수 있었고, 일본어를 할 줄 알았죠. 하루에 한 번씩 남산공원에 산책을 나가기도 했고요. 그 사람이 세상에서 가장 예뻐한 사람은 작은 손녀딸이었어요. 손녀딸이 자라날수록 그 사람의 발음은 조금씩 부정확해지기 시작했어요. 더 이상 산책을 나가지 않았고, 뉴스를 볼 때면 한 마디도 하지 않게 되었어요. 하지만 작은 손녀딸을 볼 때면 그는 말없이 활짝 웃었고, 손녀딸의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어깨를 토닥여주었죠. 그런데 손녀딸이 고등학생이 되던 해에 그는 더 이상 머리를 쓰다듬어주지 못했어요. 열여덟 살이 된 손녀딸이 어버이날에 카네이션을 내밀었을 때 그 사람은 웃어보이지도 못했어요. 작년까지만 해도 무척 기뻐하며 카네이션을 하루 종일 들고 있었는데 말이에요. 어제 그 사람은 또 쓰러졌고, 이제는 거동을 못 한대요. 어떻게… 생각해요…?”

그 사람의 표정이 복잡해진다. 날 바라보는 그의 눈이 슬퍼 보인다.

“그래요. 그 사람에게도, 그 사람 가족에게도 참 힘든 인생이에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살아있는 사람을 보고… 차라리 빨리 돌아가시는 게 낫겠다고… 그런 생각을 하면… 안 되는 거잖아요….”

눈을 깜빡일 새도 없이 눈물이 얼굴을 덮는다.

“나도 할아버지 아픈 거 싫어요. 보고 있는 나도 너무 아프고 힘들어요. 그런데도….”

그가 말없이 가방에서 휴지를 꺼내 내민다. 눈물이 더 난다.


얼마를 울었을까.

“괜찮아요?”

“…네. 죄송해요, 놀라셨죠.”

“괜찮아요.”

“안 믿으시겠지만, 전 눈물이 적어요. 그런데 외할아버지만 생각하면 자꾸 눈물이 나요.”

그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살아있는 사람의 하루가 죽은 사람의 평생보다 더 힘들 수도 있다는 사실이 이해가 안 가요. 그리고, 불가능한 일이란 걸 알지만 가끔은 내 삶의 일부를 떼어 할아버지께 드리고 싶어요. 내가 가치 없게 보내 버리는 시간 동안에라도 할아버지가 건강하셨으면 좋겠어요.”

다른 사람에게 내 고민이나 슬픔에 대해 이야기한지도 한참이나 지났다. 어린 시절, 아주 가벼운 고민 상담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들을 통해 내가 어렴풋이 깨달은 사실은 ‘고통은 나누어 가질 수 없다’는 것이었다. 대부분의 사람은 타인의 슬픔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때 연민을 느낀다. 네가 지금 그런 슬픔을 겪고 있구나, 참 힘들지? 하지만 난 이렇게 큰 슬픔을 가지고 있단다. 네가 가진 슬픔은 아주 미세한 거야. 그러니까 힘내! 연민, 상대방에 대해서가 아닌, 스스로에 대한 연민. 그런 거짓된 연민이 너무 싫다. 하지만 류지완이라는 사람은 달라 보인다. 자신에 대한 연민이 아니라 나에 대한 연민을 느끼고 있다. 내 슬픔을 측정하기보다는 이해하려 하고 있다.

“힘들겠지만, 앞으로는 외할아버지를 생각할 때마다 웃어봐요.”

“네?”

“외할아버지가 세상에서 가장 예뻐하는 작은 손녀딸이잖아요. 누군가에게 ‘세상에서 가장 예쁜 사람’이 된다는 거, 쉬운 일은 아니거든요.”

맞는 말이었다. 엄마, 아빠도 세상에서 가장 예쁜 사람이 나라고 말씀하시지는 못한다. 언니가 있으니까. 하지만 외할아버지께 있어 세상에서 가장 예쁜 사람은 나다. 그런 식으로 생각할 수도 있구나, 나는 부은 눈으로 조금 웃는다.

“고마워요. 그래볼게요.”

 

그가 가방에서 카메라를 꺼낸다. 찰칵! 조금씩 물들고 있는 나뭇잎이 그의 카메라에 담긴다.

“가을에 단풍 든 나무 보면 참 예쁘죠?”

“네.”

“난, 사람도 그렇다고 믿고 싶어요. 나이를 먹을수록, 파릇파릇한 젊음은 사라지지만 대신 깊이 있는 색깔의 인생을 살 수 있다고.”

“나이를 먹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뜻이죠?”

고개를 끄덕이며 웃는 그에게서는 내게 없는 색깔이 언뜻 보인다. 이제 막 들기 시작한 어렴풋한 단풍 색깔. 열여덟을 지나면 나도 저 사람만큼 자랄 수 있을까. 단풍 색깔을 가질 수 있을까, 아직 철없이 온통 파랗기만 한 나는.

“필름 카메라 쓰시네요. 취미가 사진찍기에요?”

“글쎄요. 이해할 수 없겠지만, 내가 왜 사진을 찍는지 나도 잘 모르겠어요. 올해 3월, 사진을 찍어야겠다는 생각이 갑자기 들더라구요. 그래서 매주 토요일, 여기 나와서 이것저것 찍고 있어요.”

주머니에서 진동이 느껴진다. 부재중 3통화. 갑자기 집을 나가버린 날 찾는 엄마의 전화다. 엄마의 어린 딸은 이제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다.

“오늘 정말 고마웠어요. 휴지 잘 썼구요. 그리고… 다음부터는 그냥 말 놓으세요.”

돌아서는 순간, 잠깐. ‘다음부터는’ ? 나는 나도 모르게 류지완이라는 사람에게 ‘다음’을 기약한 것이다. 사실 나는 내 슬픔을 보여줄 사람이 필요했던 걸까….


9_거미 다리의 숙명


해가 지기 전에 집으로 올 수 있는 행복한 수요일이다. 집에 가서 공부해야지. 정석, 교과서, 문제집을 가방 가득 쑤셔 넣는다. 하지만 그토록 힘들게 짊어지고 온 것들 중에 공부하는 과목은 막상 몇 권 되지 않는다. 그 많은 책들을 한 번도 펼쳐보지 않은 채 다음날 고스란히 학교에 가져가는 것이다. 오늘은 그러지 말아야지, 수요일마다 하는 다짐을 오늘도 어김없이 또 한다.


일단 목부터 축여야지. 시원한 우유를 마시며 베란다로 나간다. 참, 그 거미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여름이 끝나갈 무렵 우리 집에 세들어 살기 시작한 거미. 맨 처음 그 녀석을 발견한 사람은 엄마다. 일요일에 늦잠을 자고 있는 나를 깨우던, “현희야, 우리 집 창 밖에 거미가 있어!” 라던 엄마의 다급한 목소리가 아직도 생생하다. 몸통 길이가 손가락 두 마디 정도 되는 큰 거미였다. 게다가 노랑과 검정, 빨강이 어우러진 묘한 줄무늬를 가진 녀석이었다. 대체 7층까지 어떻게 올라온 걸까. 엄마와 언니는 징그러우니 거미줄을 걷어 버리자고 했고 아빠와 나는 어차피 창 밖에 있으니 그냥 내버려 두자고 했다. 그 결과 거미는 17인치 모니터만큼 넓은 집을 짓고 살고 있고, 나는 틈나는 대로 그 녀석을 관찰 중이다. 그런데 며칠 전, 또 다른 -분홍과 검정의 줄무늬를 가진, 크기가 조금 작은- 거미가 나타난 것이다. 두 마리가 아직도 함께 사이좋게 살고 있는지 궁금해진다. 와, 두 마리 모두 거미줄에 붙어있다. 그러나 자세히 보니 분홍․검정 줄무늬 거미의 몸이 너덜너덜하다. 몸통만 먹힌 것이다! 우유를 뱉어내고 싶어진다. 이미 먹혀버린 몸에 다리 여덟 개는 그대로 남아 거미줄에 매달려 있다니.

죽어서도 거미줄을 놓지 못하는 거미 다리의 숙명이 소름끼치게 무섭고 안타깝다. 그리고 어쩌면 내가 사는 하루하루도 저런 모습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이미 습관이 된 일과들에 맞추어 시간을 그럭저럭 보내지만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심지어 내가 제대로 살고 있는 건지 아닌지조차 모른다. 어린 시절에는 열여덟 살이 되면 아주 멋지고 보람 있는 인생을 살게 될 줄 알았는데, 지금 나의 열여덟은 몸통 없이 거미줄에 들러붙어있는 거미 다리와 다를 게 없다. 좋은 성적을 받아야 해. 좋은 대학교에 가야 해. 여성 지도자가 되어야 해. 21세기를 이끌어 나가야 해. 그래야 한대, 그런가봐. 그렇게 되어야 할 텐데. 하지만 몸통 없이 다리만 남은 거미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중학교 시절 3년 간 ‘모범학생’이었기에 고등학교에 쉽게 올 수 있었지만, 막상 이 학교에 왔을 때 나는 내 손을 펼쳐 버렸다. 남들이 열심히 해야지, 굳은 다짐을 하며 주먹을 불끈 쥘 동안 나는 주먹 쥔 손을 펴 버린 것이다. 나와 같은 학교 출신인 언니가 성적 얘기를 꺼낼 때면 약이 올라 빈정거렸다. “언니의 고등학교 시절 3년 중에 건질만한 건 그 우수한 성적표 한 장 밖에 없잖아.” 하지만 고등학생에게는 성적표 한 장이 전부일 때가 많다는 것을 나도 알고 있었다.

성적뿐만 아니라 모든 일이 그랬다. 반장, 부반장이 되고 싶은 생각도 전혀 없었고 특별한 활동을 하겠다는 의욕도 없었다. 그나마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에 동아리 시험을 보고 문예부에 들어갔지만, 1년 동안 내 모든 것을 연필 끝에 실어 써 내려간 ‘작품’은 하나도 없었다. 그저 유명작가들이 써 놓은 책을 읽으며 훌륭한데, 대단한데, 감탄하기만 했을 뿐. 모든 의욕과 열정을 잃은 나는 대체 어떤 거미에게 내 몸통을 잡아먹혔던 것일까. 열여덟이 다 지나가버리기 전에, 내 몸에 새 살이 돋는다면 좋을 텐데.


그런 쓸데없는 생각을 하느라 정석을 가방에서 꺼내지도 않는다. 오늘도 역시. 수요일은 항상 이 모양이다.

             

10_양치기 소년을 위하여

 

“엄마, 오늘 좀 늦게 올 것 같아.”

“오늘 동아리 활동하니?”

“아니, 그건 아닌데… 학교에 남아서 자습할 것 같은데… 어, 늦었다! 다녀오겠습니다!”

엄마, 죄송해요. 하지만 일주일에 한 번은 다른 사람에게 내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날 잘 모르지만, 이해해주는 사람에게.


“왔어요? 아… 왔어?”

벤치에 앉아있던 그가 벌떡 일어난다.

“외할아버지는 좀 어떠셔?”

희미하게 고개를 젓는다. 외할아버지를 생각할 때마다 웃어보려고 했는데, 아직은 그게 힘들다. 재빨리 다른 얘기를 꺼낸다.

“어렸을 때 장래희망이 뭐였어요?”

“초등학교 2학년 때까지는 축구선수였고 6학년 때까지는 경찰이었고 중학교 때는 과학자였고… 계속 바뀌던데. 넌?”

“구체적인 직업은 아니지만, 어렸을 때부터 간직한 추상적인 소망은 하나 있어요.”

그의 눈에 궁금증이 가득해진다. 망설이다가 겨우 이야기한다.

“문학….”

“문학? 문학을 하겠다고?”

“뭐, 소설가가 되겠다거나 하는 건 아니에요. 그 정도 재능은 없다는 거 잘 아니까. ‘네가 감히 문학을 하겠다고?’ 하는 생각도 들고…. 어떤 직업을 가지고 살게 되든 간에 항상 글을 쓸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것뿐이에요. 그런데 요즘은 그런 소망도 사그라지고 있어요.”

“천부적인 재능이 있어서 소설가가 된 사람이 얼마나 되겠어? 천재는 1%의 영감과 99%의 노력으로 만들어진다잖아. 소설가가 되는 것도 괜찮을 것 같은데.”

“모르겠어요. 문학을 하는 사람들은 다들 어딘가 병들어 있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고.”

“그건 또 무슨 뜻이야?”

“신동엽이라는 시인을 생각해봐요. 그 사람과 이름이 똑같은 누군가는 개그맨이 되어 항상 허허 웃고 다니잖아요. 그런데 시인 신동엽은 고작 오렌지 하나 가지고도 포들한 껍질이니 찹잘한 속살이니, 마땅히 그런 오렌지만이 문제가 되느니 어쩌느니 심각하잖아요. 그리고 남들이 그 시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기나 하나요? 평론가는 자기 마음대로 별 몇 개를 달아주고 이러쿵저러쿵 주석을 붙이죠. 자습서에는 ‘모범 해설’이 실리고, 학생들은 ‘이게 대체 뭔 소리야’ 투덜대면서도 시험을 위해 자습서를 외우고….”

“다른 사람들이 널 이해하지 못할까봐 두려운 거야?”

“내 진심이 왜곡될까봐 두렵죠. 그리고 나와 같은 것을 느끼고 이해해줄 사람이 없다면 글로 써봤자 뭐해요. 그건 너무 외롭잖아요.”

그가 고개를 끄덕인다.

“글을 쓰는 것도, 음악을 만드는 것도, 춤을 추는 것도 다 외로운 일이지. 하지만 외롭더라도, 외로운 사람들을 위한 글을 쓰다보면 덜 외롭지 않을까?”

외로운 사람들을 위한 글? 그런 글은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어디서 읽은 글인데 말이야, 하며 그가 이야기를 들려준다.


<가장 크고 빛나는 별이, 양치기 소년의 주검을 향해 말했죠. “너는 곧 교훈이 될 거야. 거짓말에 재미를 붙이면, 기어코 혹독한 대가를 치르게 된다는 교훈. 그건 그렇고, 궁금한 게 하나 있어. 어째서 그런 짓을 한 거지?” “그냥, 심심해서. 너라면 안 그랬겠어? 허구한 날 보이는 거라곤 푸른 하늘과 역시 푸른 땅, 그리고 하얗거나 검은 구름과, 언제나 하얗게만 징징대는 양들뿐이었어. 외로워서. 아무도 날 찾아와주지 않아서. 근데 내 죽음의 교훈이 기껏, 거짓말을 일삼지 말라는 거라고? 수정해봄이 어떨까? 거짓말쟁이가 될 정도로 누군가를 고독하게 만들면, 이런 불행한 일이 생긴다는 걸로.” >


“문학이란 이러저러해야 한다는 당위성 따위는 세상에 없어. 하지만 양치기 소년처럼 외로운 사람을 위한 문학은 꼭 필요하지 않을까?”

나 외로운 것만 알고 나 아픈 것만 아는 내가, 다른 사람의 마음을 위로해 주는 멋진 글을 쓸 수 있을까요. 내가 소설가가 되고 내가 쓴 책이 베스트셀러가 될 수 있을까요. 그럴 자신은 없어요. 하지만 어떤 직업을 가지고 살게 되든 간에 항상 글을 쓸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양치기 소년을 위하여, 그와 내가 가진 외로움을 달래기 위하여.


11_도마뱀


“요즘 사랑에 빠지더니 더 예뻐지네?”

같은 반 친구 예은이가 농담을 던진다. 내가 K선생님을 좋아한다는 것을 놀리기 위해서 한 말이겠지만, 나는 순간 머릿속으로 류지완, 그 사람을 떠올린다. 그 누구에게도 이야기하지 않은, 나 혼자 알고 있는 특별한 사람. 하지만 사랑이라는 단어 앞에서 나는 고개를 세차게 흔든다. 그저 일주일에 한 번 만나 대화를 나누는 사람일뿐이야, 사랑은 무슨.


야간 자율학습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신문을 넘기고 있는데 핸드폰이 울린다. 늦은 시간에 누구지? 게다가 내 핸드폰에 저장되어 있지 않은, 그런데 어디서 많이 본 듯한 번호다. 갑자기 기분이 나빠진다. 혹시….

“여보세요?”

“저… 현희니?”

한때 굉장히 익숙했던, 지금 다시 생각난 목소리. 내 기분 나쁜 예감은 적중했다.

“아닌데요.”

“…죄송합니다.”

힘 빠진 손으로 재빨리 전화를 끊는다. P였다. 좋은 친구라고 생각했건만 ‘사귀자’는 말을 꺼내 나를 실망시킨 아이였다.

“그냥 친구로 지내면 되잖아. 왜 사귀자고 해?”

“좀더 특별한 사이가 되고 싶으니까.”

“솔직히 우리 나이에 사랑한다, 사귀자 이런 말 진짜 안 어울린다고 생각해.”

“왜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해? 내가 사귀자고 했지, 결혼하자고 했어?”

그런 식의 대화가 몇 번 오간 후 P는 나와의 연락을 끊었다. 나는 미안해서, 친구관계를 이어가고 싶어서 P에게 연락을 했지만 철저하게 무시당했다. P는 그런 식으로 ‘현희야, 내가 정말 잘 해줄게’ 라던 말이 무색할 만큼 내게 상처를 줬다. 글쎄, P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내가 상처를 준 것이겠지만. 그렇게 쉽게 달라지는 아이에게 더 이상 애걸복걸하고 싶지 않아 나도 연락을 끊었다. 벌써 3년 전 이야기인가?

이제 와서 다시 연락하는 이유는 뭐니. 게다가 이 늦은 밤에 전화하는 심리는 뭐니. P를 생각하다 보니 한 명이 더 떠오른다. 작년에 알게 된 L 역시 좋은 친구였다, 처음에는 그랬다. 하지만 ‘사귀자’는 말을 정말 싫어하게 된 내게 그 말을 던진 L은 P와 다를 것이 없었다. 나는 P에게 했던 말을 그대로 반복해야 했다. 그러자 L은 P와 똑같은 말을 했다. “뭐가 그렇게 심각해? 일단 사귀어보자.”


그들이 보기에 나는 아마 ‘내외가 심한 조선시대의 처녀’가 아닐까. 아니면 ‘뼛속까지 범생’, 아니면 ‘남자기피증 환자’ 쯤 되겠지. 하지만 나는 그들이 꺼내는 ‘사귀자’는 말의 가벼움이 너무 싫다. 그들은 그런 말을 했다. “쉽게 하는 말 아니야, 한참을 고민했어, 난 진지해.” 라고. 정말 진지하게 날 좋아했다면, 친구로 지내자는 내 부탁 아닌 부탁을 어떻게 그렇게 쉽게 무시할 수 있니. 하루아침에 갑자기 연락을 끊고 모르는 사람인 척 할 수 있니. 친구들에게 나에 대한 이야기를 거짓되게 퍼뜨릴 수 있니.

기억하고 싶지 않은 일들인데 기억해버려서 마음이 답답하다. 난 왜 사람 다루는 법을 알지 못했을까. 왜 그들에게 상처를 주고, 난 더 큰 상처를 받아야 했을까.


또 다른 생각이 꼬리를 문다. 철없던 초등학교 시절, 나는 소위 리더행세를 했고 친구가 참 많았다. 우리는 우정을 기념한답시고 ‘우정반지’를 나누어가졌다. 교환일기를 쓴 적도 있다. 우리 그룹 아이들의 마음에 안 드는 행동을 하는 아이가 있으면 그 우정은 깨어지고 그 아이는 내쳐졌다. 하지만 며칠 후 그 아이가 우리에게 사과를 하면 받아주고 다시 우정을 시작했다. 내가 그런 나쁜 아이였다는 사실은 엄마, 아빠조차 모르시겠지. 아무리 어렸다지만 어떻게 그런 식으로 친구를 사귀었을까. 지나치게 얕고 가벼운 인간관계. 나 자신의 행동을 경멸하게 된 것은 열네 살 때, 누군가를 좋아하게 된 후였다. 사랑을 받는 것에만 익숙했지, 주는 법을 몰랐던 나는 ‘아픈 만큼 성숙한다’는 말대로 많이 자랐다.


하지만 그 부작용일까, 누군가와 ‘특별한 사이’가 되는 것을 나도 모르게 거부하는 것은. 참 특별하다고 느꼈던 우정반지가 지금 생각하면 정말 부끄러운 것으로 기억되는 것처럼, 특별하게 맺은 인간관계가 시간이 흐르면 후회로 남지는 않을까, 걱정하는 것은. 누군가가 ‘우정’이나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위장한 채 나를 구속하려고 할 때, 꼬리를 붙잡히면 제 꼬리를 자르고 도망치는 도마뱀처럼, 나는 내 마음을 자르고 도망쳐버린다. 의심 많은 도마뱀아, 언제쯤 돼야 다른 사람을 믿고, 도망치지 않을 수 있는 거야? 평생 아무도 사랑하지 않고 혼자 도망만 다닐 거야?

           

12_선인장도 물이 필요하다


벤치 옆에 서서 사진을 찍던 그가 날 보고 손을 흔든다. 벤치에 앉자 그가 내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본다.

“왜요…?”

“왜 이렇게 시들었어?”

어제 잠을 잘 못 잤더니 피곤하기는 한데, 티가 많이 나나? 그의 걱정스러운 표정에도 불구하고 나는 피식 웃는다.

“왜 웃어?”

“시들었다는 말이 마음에 들어서요.”

당신이 맞아요. 난 참 많이 시들어있어요. 하지만 당신을 만나기 전에는 지금보다 훨씬 더 건조했던 걸요. 내 선인장처럼 말라가고 있었던 걸요.

“선인장 길러본 적 있어요?”

“그럼. 근데 물을 자주 줘서 그런지 매번 죽어버리더라. 많이 준 것 같지도 않은데….”

“내가 1년 전부터 기르던 선인장도 얼마 전에 죽었어요.”

“물 많이 줬구나?”

고개를 젓는다.

“물을 너무 안 줘서, 말라 죽었어요.”

“….”

“선인장이 말라 죽을 수도 있다는 거 처음 알았어요. 내가 그토록 메말라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구요.”

건조한 사막에서 온 선인장을 말려 죽일 만큼 건조해진 내가 무서워요, 불쌍해요.

“난 하루 열다섯 시간 동안은 갇혀 있고 여섯 시간 동안은 의식을 잃고 누워있어요. 내게 남는 건 고작 세 시간뿐인데, 그 시간 동안 선인장이 아니더라도 돌봐야 할 것들이 너무 많아요. 그래서 선인장은 강하니까 내버려두어도 괜찮을 줄 알았어요.”

내가 내버려둔, 그래서 말라 죽은 선인장이 얼마나 많은지 헤아려본다. 정말 소중했던, 작년부터 연락이 끊어진 옛친구. 중학교 때 참 좋아했던, 고등학교에 와서는 한 번도 읽지 않은 책. 아직 CDP가 등장하지 않은 시절에 매일같이 듣던, 지금은 어디에 있는지조차 모르는 카세트테이프. 매일 작은 글씨로 빽빽하게 메웠던, 언제부턴가 텅 빈 백지 상태가 되어버린 일기장.

매일 얼굴을 대하는 사람들, 지금 당장 필요한 물건들, 그런 것들에게만 신경을 쓰며 살기에도 바빠. 나는 바빠. 그런 핑계로 선인장을, ‘선인장들’을 말려 죽이고 나 자신마저 시들어가고 있을 무렵, 당신을 알게 된 것이다. 당신은 시들어가는 내게 물을 주고 있다. 하지만 내게 물을 주는 당신 역시 선인장을 죽게 한 사람이었다. 선인장에게 너무 많은 물을 준 사람. 어쩌면 당신은 내게도 너무 많은 물을 줄지 모른다.

 

“중학교 때 삼투압과 역삼투압에 대해서 배운 적이 있어요. 조숙했던 건지, 삼투압 작용에 관한 실험을 하다 말고, 사랑은 역삼투압이구나, 그런 생각을 했어요.”

“역삼투압이라… 그럼 농도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사랑이 간다는 건가?”

“맞아요. 상대방을 더 많이 사랑하는 사람은 언제나 흘러넘치잖아요. 항상 상대방을 생각하고, 항상 뭔가 해주고 싶어하고. 상대방을 덜 사랑하는 쪽에서는 그걸 견디지 못하고 부담을 느끼는 거겠죠.”

“사랑에 있어서 두 사람의 사랑의 길이가 같을 수는 없는 거라더라. 언제나 한 사람의 사랑의 길이가 상대방보다 더 길다고.”

“그러면 사랑함에 있어서 건조한 사람은 늘 승자인 거네요.”

“그런 건조함은 이기적인 거야.”

“이기적인 사람이 되어도, 나쁜 사람이 되어도, 건조하게 사랑하는 편이 더 낫겠어요. 사랑이 끝나도 아프지 않도록.”

그의 얼굴에 언제나 맴돌던 옅은 미소가 사라진다. 그의 표정이 건조해진다.

“상처받는 걸 좋아하는 사람은 없어. 하지만 상처받는 것이 두렵다고 해서 언제나 건조하게 사랑해서는 안 되는 거야. 선인장에게 물을 주지 않았다고 했지? 이제부터 기억해 둬. 선인장도 물이 필요하다고. 그리고 너도, 건조한 너도 사랑이 필요하다고.”


두 사람 모두 아주 오랫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앞만 보며 앉아 있다. 그가 먼저 입을 연다.

“미안해. 어쩌다 보니 좀 격해진 것 같아.”

내가 더 미안해요. 하지만 소리 내어 말하지는 않는다.

“아, 그러고 보니… 우리 서로 연락처도 모르고 있네.”

이 사람과는 핸드폰으로 문자를 보내고 전화를 하는 사이가 되고 싶지 않았는데. 토요일, 공원에서- 하는, 시간도 정하지 않은 이 막연한 약속이 더 좋았는데. 핸드폰으로 연락을 주고받다보면 구속을 느끼게 될 것 같고, 그러면 또다시 도망치게 될 것 같고….

“핸드폰은 3학년 되면 없앨지도 모르는데, 집 주소 가르쳐드릴까요?”

불쑥 말해놓고 나서 생각해보니 굉장히 당황스럽다. 핸드폰을 없앨지도 모른다는 거짓말도 바보 같고, 집 주소를 알려주겠다는 말도 바보 같다. 나는 거짓말을 하면 얼굴에 다 드러나는데,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걸 알아차렸겠지? 그는 다행히 웃어준다.

“그럼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편지를 써서 보내는 수밖에 없겠네. 한 이틀 정도 걸리려나?”

그의 수첩에 집 주소를 적어준다. 미안해요, 거짓말해서. 하지만 난 구속이 너무 무서우니까, 당신에게서는 달아나고 싶지 않으니까….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선인장도 물이 필요하다는 그의 목소리가 귀에 선하다. 내가 건조한 사람이라는 거, 자랑스럽지는 않아요. 마음을 다 열지 못한 나 때문에 상처받은 사람들도 많고, 구속당하기 싫어 도망친 나 때문에 상처받은 사람들도 많아요. 나도 이제는 다른 사람에게 내 마음을 바닥까지 다 보여주고 싶고, 꼬리를 잡혀도 도망치고 싶지 않아요. 선인장도 물이 필요하다는 것을 아니까, 사랑이 필요하다는 것을 아니까. 하지만 당신은, 어떤 사람과 사랑하든지간에 항상 길이가 긴 사랑을 했을 당신은, 건조한 사랑을 해 본 적이 한 번도 없었을 당신은 잊고 있는 것이 하나 있어요. 선인장에게는 아주 적은 물이 필요해요. 많은 물은, 많은 사랑은 선인장을 죽게 해요.   

 

13_스무 살


나는 내 이야기를 이해해주는 그를 좋아한다. 내 마음을 알아주는 그를 좋아한다. 일주일에 한 번, 그를 만날 수 있다는 것이 기쁘다. 하지만 지금 이 상태가 계속될 수는 없을까. 한 발자국도 더 물러서지 않고, 더 다가서지 않고 이대로만, 지금의 이 거리를 유지한 채 있어주면 안 될까. ‘남자와 여자’가 아닌 ‘사람과 사람’의 관계로 만날 수는 없을까. 그가 나를 사랑하게 되거나 내가 그를 사랑하게 되면 난 늘 그랬던 것처럼 도망칠지도 모른다.


나는 왜 하필 스무 살의 그 사람에게 나 혼자 앓고 있던 이야기들을 풀어내기 시작했을까. 그 누구에게도 이야기하지 않은, 항상 내 이야기를 들어줄 준비가 되어있는 부모님께도 하지 못한 이야기들을. 두려움 때문이다. 부모님이 나를 이해해주지 않을 것 같아 두렵고, 쓸데없는 걱정들이라며 가볍게 넘겨버리실 것 같아 두렵다. 부모님은 너무 많은 걱정을 하지 마, 시간이 지나면 다 괜찮아질 거야, 하며 부드럽게 나를 잠재우신다. 나도 부모님이 옳다는 것을 안다. 상처는 건드릴수록 더 덧날 뿐, 얌전히 내버려 두는 것이 더 나을 때가 있다. 하지만 열여덟의 나는 칼을 대어서라도, 피를 내면서라도 상처를 제거하고 싶은 것이다. 나보다 불과 두 살이 많은 그는 물론 세상을 많이 겪어보지 못한 사람이다. 방황하는 내게 특별한 해결책을 제시해주지는 못한다. 그러나 그는 극과 극으로 치닫는 열여덟의 내 마음을 이해한다. 내게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나를 이해해주는 것. 또, 비록 스무 살이지만 그가 마냥 어린 것만도 아니다. 엄연한 ‘성년자’로 대접받는 그는 내가 거쳐야 할 길을 이미 거친 사람이다. 나보다 더 많은 것을 알고 더 깊이 생각할 줄 안다. 그를 알게 된 후, 나이를 먹는 것이 그리 나쁘지만은 않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권터 그라스의 소설 <양철북>의 주인공 오스카처럼 성장을 멈추어버리고 싶었던 내게 용기를 준 사람, 독감예방주사를 맞기라도 한 것처럼 무기력해지는 날에도 한 번쯤 밝게 웃어볼 수 있게 해 주는 사람, 그는 스무 살이다.


14_사랑한다는 말


외할아버지의 증세는 몇 주 째 나아지지 않고 있다. 평소에 엄마가 말을 걸면 귀찮아하던 내가 오랜만에 먼저 이야기를 꺼낸다.

“엄마, 간절한 기도는 이루어지는 거 맞지? 그런데 왜 할아버지 빨리 낫게 해 달라는 기도는 안 이루어질까?”

엄마는 잠시 말이 없다가 대답하신다.

“슬프지만 할아버지가 회복될 가능성은 거의 없어. 매일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기보다는 차라리 품위 있는 죽음을 맞게 해달라는 것이 할아버지를 위한 기도일 거야. 이제 할아버지의 영혼을 거두어서 영원한 안식을 주시도록 하나님께 기도하는 건 어떻겠니.”

어쩌면 엄마의 말씀이 맞는지도 모른다. 항상 ‘외할아버지 낫게 해 주세요’ 하고 기도하던 내가 그날 저녁 처음으로 다른 기도를 한다. ‘우리 외할아버지 이제 편히 쉴 수 있게 해 주세요’ 라고. 기도를 마치고 자리에 누워 몇 번 뒤척이다가 의식을 놓는다. 알람이 울릴 때까지 지속될 수면모드.

    

6시 25분, 핸드폰 알람이 요란하게 울린다. 하지만 눈을 감은 상태로 재빨리 알람을 끄고 다시 잠이 드는 경지에 다다른 지도 오래 됐다. 다시 잠에 빠져드는 순간, 집에 전화가 온다. 엄마의 목소리가 희미해져가던 나의 의식을 붙든다.

“여보세요? 뭐? … 언제 돌아가셨니….”

할아버지……


한참을 울다가 부은 얼굴로 학교에 간다. 생일을 맞아 기뻐하는 짝 혜정이에게는 차마 말할 수 없어 아무렇지 않은 듯 수업을 듣는다. 글쎄, 아무렇지도 않아 보이지는 않았나보다. 많이 아파 보인다는 소리를 들은 것을 보면. 40분이 이렇게 길게 느껴진 것은 처음이다. 드디어 수업이 끝나고 나는 담임선생님께 간다.

“선생님, 저희 할아버지가 새벽에 돌아가셔서요….”

내 머릿속에서 만들어진 문장인데도, 내 입에서 나오는 소리인데도 믿어지지 않는다. 그런데 눈물은 왜 고이는 걸까. 택시를 탄다. 핸드폰으로 통화를 하느라 내 말을 건성으로 듣던 기사 아저씨는 “병원 입구로 가면 되요?” 라고 되묻더니 “장례식장이요” 라는 내 말에 표정이 변하며 뒤를 돌아본다. 장례식장으로 가 주세요, 외할아버지가 새벽에 돌아가셨대요, 아저씨는 그 말을 믿을 수 있어요? 난, 못 믿겠어요.

 

“벌써 왔니, 아직 준비되려면 멀었는데. 수업 더 듣다가 오지 그랬어.”

훨씬 더 작아지신 듯한 외할머니가 힘없이 나를 맞으신다. 아직 국화도 마련되지 않은 빈소의 중앙에 놓인 영정 사진이 너무 슬퍼서, 소리 내어 운다. 먼저 와 있던 언니가 휴지를 건네며 같이 운다.

“언니, 할아버지는 지금 어디 계셔?”

내가 한 질문이 너무 슬퍼서, 한참을 더 운다. 시간이 지나자 쓸쓸하던 빈소는 사람들로, 화환들로 가득 찬다. 향냄새와 국화향이 어지럽다. 조문객을 맞느라 정신없는 어른들에게 외할아버지를 맡기고 언니와 함께 외할머니 댁으로 간다.

“언니, 저렇게 찾아오는 사람들 중에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신 것을 진심으로 슬퍼하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얼마 없을 걸. 그 사람들 중에는 외할아버지를 아는 사람도 별로 없는데 뭐.”

“내가 죽어도 그렇겠지? 내 죽음을 정말 슬퍼하고 안타까워하는 사람보다는, 형식적으로 찾아오는 사람들이 더 많겠지?”

“모르겠어. 어쨌든, 찾아오는 사람이 적은 것보다는 많은 게 낫지.”

 

외할머니 댁 안방은 예전 그대로이다. 매트리스 위에 이불이 깔려 있고, 베개가 놓여 있다. 다만 딱 하나가 달라져있다. 외할아버지가 안 계시다. 아무 것도 모르는 어린 민기는 생글거리고, 소리를 지르며 뛰어다닌다. 그 아이를 보며 언니와 나는 허탈하게, 씁쓸하게 웃는다.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는 너는 얼마나 많은 시간이 지나야 죽음에 대해 알게 될까? 안방 앞 거실에서 민기와 놀아주다가, 여느 때처럼 안방 쪽을 쳐다본다. 외할아버지는 가족들이 거실에서 민기와 놀고 있으면 가만히 앉아서 쳐다보곤 하셨는데, 오늘은 왜 안 계시지? …그러다가, 천천히 깨닫는다. 이제 안방은 비어있을 거야. 외할아버지가 거실에서 놀고 있는 민기를 물끄러미 바라보시는 일은 이제 없을 거야. 내 어깨를 토닥여주시는 일도 더는 없을 거야. …없을 거래, 나는 잘 모르겠지만, 하나도 실감나지 않지만.


이튿날, 입관 시간에 맞춰 병원에 간다. 참관실에 들어가려는 나를 본 아빠가 “괜찮겠니?” 하고 걱정스럽게 물으신다. 괜찮을지 안 괜찮을지 모르겠지만, 외할아버지를 그냥 보낼 수는 없으니까, 고개를 끄덕이고 들어간다. 사람들이 하얀 시트로 덮인 할아버지의 시신을 침대에 옮긴다. 가족들이 몸을 볼 수 없도록 커다란 천을 펼쳐 둔 채, 그 뒤에서 열심히 염을 한다. 뭔가 문질러 닦는 것 같긴 한데, 우리 할아버지의 몸을 닦는 거라구? 어떻게 알아, 못 믿겠어. 그러다가 얼핏, 손이 보인다. 인형 피부 색깔 같은, 하얀 손. 늘 나를 토닥여주던 그 손이라구? 아니잖아. 한참동안 누런 수의가 입혀진다. 언니는 참을 수 없었는지 나가 버린다. 나는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는다. 믿을 수가 없으니까. 이 모든 것이 엉성하게 꾸며진 연극 같으니까. 마지막으로, 얼굴을 덮고 있던 천이 들린다. …할아버지. 분명히 우리 할아버지였다. 창백하긴 하지만, 주무실 때의 얼굴이다. 갑자기 눈물이 쏟아진다. 언제나, 눈에 보이는 것이 가장 확실하고 가장 잔인하고 가장 슬프다. 정신없이 우는 동안 할아버지는 관 속에 눕혀진다. 도중에 외할아버지의 다리가 관 모서리에 부딪힌다. ‘조심해요, 아프시겠어요!’ 소리를 지를 뻔 한다. 그러다가 더 운다. 외할아버지는 이제 더 이상 아프지도 않으실 텐데. 눈물을 애써 참으며 관에 가까이 다가간다. 20년 동안, 굽힌 채로 마비되었던 외할아버지의 오른쪽 팔은 아주 곧게 펼쳐져 있다. 다행이야, 이젠 팔을 펴실 수 있으니. 관 뚜껑이 닫힌다.


셋째 날, 난생 처음으로 겨우 두 시간을 자고 새벽 세 시에 일어난다. 하늘에는 그믐달이 혼자 떠 있다. 삼촌의 차를 따라 운구차가, 그리고 아빠 차가 달린다. 언니와 나는 어쩌다보니 가족들과 떨어져 운구차를 타게 되었다. 차가 덜컹댈 때마다 너무 걱정스럽다. 관 속의 외할아버지는 괜찮으시려나. 잠도 오지 않는다. 슬픔인지 그리움인지 모를 감정에 갇혀 말없이 창 밖만 내다본다. 삼촌의 검은 차가 검은 띠를 두르고 검은 밤을 검게 달린다. 그 뒤를 잇는 장례행렬.

“우리들은 평소에는 죽음을 나와는 아주 먼 일로 여깁니다. 그러다가 지인이 돌아가시면 그때서야 비로소 죽음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조용한 성당, 신부님이 말씀하신다. 아멘, 저는 죽음에 대해 알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솔직히 아직도 잘 모르겠습니다. 외할아버지는 정말 편안한 안식을 얻으셨을까. 내 눈으로 한 번이라도 확인해볼 수는 없을까. 열여덟 살이 되도록 외할아버지의 편안한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나는 불안해진다. 불안감을 떨치기 위해 눈을 감고 기도를 한다. 하지만 기독교인 나는 천주교의 미사가 낯설기만 하다. 외할아버지의 세례명이 요셉이라는 것도 어제 처음 알았다. 세상의 종교는 왜 이렇게 다양한 것일까. 결국은 다 같은 것을 간구하는데도 ‘의식’은 왜 저마다 다른 것일까. 이 복잡한 의식들만이 죽은 자를 안식으로 인도할 수 있을까. 어쨌든 하나님은 내 기도를 들어주셨고 나는 감사 기도를 해야 한다. 외할아버지의 장례식에서 눈물을 흘리며 감사 기도를 해야 하는 이 역설.

 

몇 년 전 외할머니께서는 실향민들을 위한 공원묘지에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 당신을 위한 땅을 사두셨다. 이제 그 곳에 외할아버지를 묻는다. 관이 내려가고, 아저씨들이 흙을 던져 넣고, 발로 밟아 흙을 다지고, 가족들에게 삽을 돌린다. 삽으로 흙을 뜨는 순간 갑자기 생각난다. 나는 살면서 누군가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직접 해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외할아버지께는 그 말을 꼭 했어야 했는데. 흙을 세 번 뿌린다. 한 번, 할아버지, 전 아직도 잘 못 믿겠어요. 두 번, 이제는 안 편찮으신 거죠? 편안하신 거죠? 세 번, 할아버지… 사랑해요. 깊던 무덤에 점점 흙이 찬다. 그 높이가 평지에 가까워지는 것을 보니 마음이 아리다. 이 곳에 아무런 표시를 해 놓지 않는다면 그 누가 알까. 여기 깊은 곳에, 나를 세상에서 가장 사랑해주시던 분이 누워 계시다는 사실을.


그날 오후에는 학교에 갔다가 야간 자율학습을 하지 않고 집으로 돌아와 쓰러져 잠이 든다. 다음 날, 사흘 내내 눈물을 꾹 참고 있던 구름이 마침내 울기 시작한다. 우산을 썼는데도 흠뻑 젖은 듯한 느낌이 든다.


15_빈자리

 

“여태까지 내 곁을 떠난 사람은 많지 않아요. 아, 몇 달 전에 학교를 그만 둔 친구가 있어요. 고등학교에 입학하자마자 친해지기 시작해서 항상 같이 다녔던 친구인데 갑자기 떠나버렸어요. 그때 처음으로 어렴풋이 깨달았어요. 떠난 사람보다 남은 사람이 더 힘들 수도 있다고. 남은 사람은 떠난 사람의 빈자리를 계속 봐야 하잖아요.”

내 머리에 달린 하얀 리본을 안쓰럽게 바라보던 그의 표정이 한층 더 우울해진다.

“그리고 우리 외할아버지… 아직도 못 믿겠어요. 이 모든 게 전부 꿈속에서 일어난 일 같기만 해요. 앞으로 외할머니 댁에 갈 때마다 할아버지의 빈자리를 눈으로 확인하면서, 절실하게 깨달으면서 천천히 아파하게 되겠죠.”

“다른 사람이 널 떠나면 그 빈자리가 널 참 많이 아프게 하는구나….”

“내게 빈자리를 보인 사람이 적으니까, 곁에 항상 있던 사람을 잃는 것에 익숙하지 않아서 그래요.”

애써 웃어 보이려고 하지만 잘 안 된다. 게다가 날 볼 때마다 항상 웃어주던 그마저 어두운 얼굴을 하고 있다.

“누군가 널 떠나더라도, 덜 아플 수는 없을까?”

“글쎄요. 덜 사랑하면 덜 아프겠죠. 하지만 ‘상처받는 것이 두렵다고 해서 언제나 건조하게 사랑해서는 안 되는 거야.’ 라고 했잖아요. 그 말이 맞는 것 같아요. 이제는 곁에 있는 소중한 사람들을 아낌없이 사랑할거에요. 나중에 그 사람이 떠났을 때 후회하지 않도록…. 그리고 이별 후의 빈자리가 단지 아픔만 주는 것 같지는 않아요. 아픈 만큼 성숙한다는 말, 거짓말이 아니었어요.”

“아프더라도 성숙할 수 있다면 다행인거지…?”

그의 목소리에 자신이 없다.

“하지만 당분간은 그만 성숙해졌으면 좋겠어요. 친구가 떠났고,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셨으니 그것만으로도 충분해요. 다른 사람의 빈자리를 더 이상 보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는 조용히 한숨을 내쉰다. 뭔가 숨기는 것 같기도 하고 망설이는 것 같기도 하다.

“무슨 일 있어요?”

그는 고개를 저으며 그제야 웃어준다, 그러나 힘없이.


16_고도를 기다리다가


수업이 끝나고 농구 연습을 조금 한 뒤 독립문 공원으로 향한다. 웬일인지 벤치가 비어있다. 언제나 이 벤치에서 날 기다리고 있었는데, 어디 간 거지? 사진 찍느라 좀 멀리 간 건가? 벤치에 앉아 기다리는데 왠지 불안하다. 조금 있으면 올 텐데 뭐, 애써 마음을 다독인다. 다행히도 가방 속에는 읽을 책이 들어 있다. 몇 년 전에 읽었던, 다시 읽으려고 가져온 영한 대역 <고도를 기다리며>. 몇 장 읽다 보면 언제 온 거냐고, 오래 기다렸냐고 미안해하며 나타나겠지.


-에스트라곤: 가세.

-블라디미르: 갈 수 없네.

-에스트라곤: 왜 갈 수 없나?

-블라디미르: 우리는 고도를 기다리고 있네.

-에스트라곤: 아!


-에스트라곤: 오늘밤이 확실한가?

-블라디미르: 무엇 말인가?

-에스트라곤: 우리가 기다려야 하는 것.

-블라디미르: 그는 토요일이라고 했네.


읽는 것을 잠시 멈추고 핸드폰을 꺼내 시간을 확인한다. 도착한지 10분 째. 기다리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나는 많이 초조해진다. 그냥 빨리 올 걸, 괜히 남아서 농구 연습을 했나? 하지만 잠시 기다리다가 그냥 가 버릴 사람은 아닌데. 다시 책을 펼친다. 좀더 천천히 읽기 시작한다.


-포조: (거만하게)고도가 누구야?

-에스트라곤: 고도요?

-포조: 자네가 나를 고도로 착각했지. 그가 누군가?

-블라디미르: 아, 그는 말이죠- 좀 아는 사람입니다.

-에스트라곤: 아는 정도도 못 됩니다. 우리는 그를 잘 알지 못합니다.

  

어느새 한 시간이 지나있다. 어디 아픈 건가? 걱정이 되지만 전화조차 할 수 없다. 나는 그를 잘 알지 못 한다, 그의 연락처조차 알지 못한다.


-블라디미르: 고도 선생으로부터 소식이 있구나.

-소년: 예.  

-블라디미르: 그 분이 오늘밤에 오지 않는다던?

-소년: 예.

-블라디미르: 그러나 내일은 오시겠구나.

-소년: 예.

-블라디미르: 틀림없이.

-소년: 예.


-블라디미르: 우리 내일 목매세. (잠시 뒤에) 고도가 오지 않는다면.

-에스트라곤: 그가 온다면?

-블라디미르: 구원받겠지.


-블라디미르: 우리 갈까?

-에스트라곤: 그래, 가세.

(그들은 움직이지 않는다.)


막이 내린다. 고도는 끝내 오지 않았다. 그 역시 오지 않는다. 조금 더 기다리면 오지 않을까, 번역 부분만 읽었던 그 책을 다시 펴 들고 이번에는 영어로 된 부분을 읽기 시작한다. 한참 뒤, 많이 춥다고 느끼며 벤치에서 일어난다.


다시 토요일. 지난주에 왜 안 왔어요? 어디 아팠어요? 무슨 일이 생긴 건가 걱정했어요. 어떤 말부터 해야 하나 머리를 굴리며 공원에 들어선다. 벤치는 비어있다. 분명히 이 벤치가 맞는데…. 몇 분을 기다리다가 일어난다. 장난치려고 어딘가에 숨어있는 것이 아닐까. 공원을 한참 헤집고 다닌 결과, 피곤하고 우울하다. 두 시간 동안 멍하니 앉아 있다가 집으로 돌아온다. 설마, 당신은 이대로 내 삶에서 사라져버리는 것이 아닐까. 안 돼. 당신이 없다면 난 그 누구에게 내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이제는 토요일이 가까워질수록 불안하다 못해 무서워진다. 그의 빈자리를 다시 확인하게 될 것 같아 무섭다.

“이번 정류소는 독립문 공원입니다.”

내리지 말고 그냥 집으로 가 버릴까. 나는 이미 그의 빈자리를 예상하고 있는데도 습관처럼 그 벤치로 향한다. 차가운 벤치를 데우며 한참을 앉아 있다가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탄다. 이제는 좀더 확실해진다. 그는 내게서 도망친 것이다. 내가 먼저 도망쳤어야 했는데. 꼬리를 잡혔다고 느낀 순간에 꼬리를 자르고 도망쳤어야 했는데. ‘타인’에게 마음을 열지 말았어야 했는데. 나의 열여덟을 쓸쓸하게 혼자 앓았어야 했는데.

 

블라디미르는 아직도 고도를 기다리고 있을까, 아니면 목을 맸을까. 블라디미르, 내가 당신이라면 난 목을 매겠어요. 고도는 오지 않아요, 이제 다시는….


17_나의 열여덟은 아름답다


깜빡. 오늘도 여전히 건조한 내 눈. 눈도 마음도 참 많이 건조하다. 마음의 벽은 날이 갈수록 두꺼워져 교복 재킷 위에 걸친 코트만큼이나 버겁다. 사람이, 세상이 보다 두렵다. 건조한 얼굴에 물을 끼얹고 거울을 향해 힘없이 말한다. 왜 이렇게 시들었어.


한때 내게 아주 특별했던 토요일도, 독립문 공원도 이제는 아주 평범한 요일로, 장소로 바뀌었다. 아니, 바뀐 것이 아니다. 그것들이 아주 평범한 존재였던 예전으로 돌아간 것뿐이다. 사실 계속 그랬어야 했다. 토요일은 일주일마다 돌아오는 평범한 요일로 남았어야 했고, 독립문 공원은 집 가까이에 있는 평범한 공원으로 남았어야 했다.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 내 마음을 여는 일 따위는 하지 말았어야 했다.    

“이번 정류소는 독립문 공원입니다.”

이제 다시는 평범한 토요일, 평범한 공원에서 내리지 않을 것이다. 이제 다시는 다른 사람에게 솔직해지지 않을 것이다.

“다녀왔습니다.”

“오늘은 일찍 왔네? 아, 현희야. 너한테 소포가 왔더라.”

책상 위의 커다란 상자. 보내는 사람의 주소는 없고 이름만 적혀 있다. 류지완. 도대체…. 다시는 가지 않겠다고 다짐한 그 곳으로 간다. 여전히 비어있는 벤치에 앉아, 사랑하는 사람의 유서를 받은 듯한 심정으로 천천히 소포를 뜯는다. 제일 위에 놓여있는 편지봉투를 집어 든다.


<토요일마다 날 찾아와 마음을 열고 이야기하는 너에게 보다 현실적인 대답을 해 주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해 미안할 때가 참 많았어. 하지만 어설픈 훈계는 하고 싶지 않았어.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네 이야기를 가만히 들어주는 것밖에는 없었지.    


넌 나이를 먹는 것이 두렵고 세상으로 나가야 하는 것이 두려운데 그 이유를 잘 모르겠다고 했지. 마찬가지로 난 매주 토요일마다 사진을 찍으면서도 그 이유를 알지 못했어. 그런데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더라. 내가 사진을 찍은 건, 세상을 두려워하는 열여덟의 누군가에게 이 세상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보여 주기 위해서였다고. 정말이야, 이 세상은 아름다운 곳이야. 열여덟의 너만큼이나 아름다워.


너는 네가 굉장히 건조하고 마음을 쉽게 열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만 내가 본 너는 그렇지 않았어. 잘 웃고 작은 일에도 감사하고 다른 사람을 걱정할 줄 알고 정이 많고…. 다른 사람들이 눈으로 눈물을 흘릴 때 너는 마음으로 눈물을 흘리는 건 아닐까. 넌 잘 모르겠지만, 열여덟의 너는 참 많이 아름다워. 처음 만났을 때 무작정 네 사진을 찍었던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었어. 열여덟은 살아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다운 나이인걸.

네가 하는 고민들이 쓸데없는 것들이라고 느끼겠지만 난 그것들이 너의 열여덟을, 그리고 남은 일생을 더 아름답게 만들 거라고 생각해. 그러니 고민에 대한 해답이 당장 주어지지 않는다고 해서 조급해 하진 마. 어쩌면 영영 해결되지 않을지도 모르는 그 고민들을 통해 넌 더 깊고 치열한 삶을 살 수 있을 테니까.  


미리 이야기하지 못 하고 떠나서 미안하다. 다른 사람의 빈자리를 더 이상 보고 싶지 않다는 너에게 떠난다는 말을 할 수가 없었어. 네가 이 편지를 읽을 때면 난 한국에 없겠지. 일 년간 한국을 떠나 더 많은 것을 보고 배우려고 해. 사실 나도 조금은 두렵다. 열여덟만이 세상을 두려워하는 것은 아니야. 스무 살이 되어도, 마흔 살이 되어도 세상이 두려울 때가 분명 있어. 하지만 난 세상이 아름다운 곳이라는 것을 믿으니까, 세상을 두려워하기보다는 사랑하려고 해.


열아홉은 나 없이도 잘 보낼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그리고 다시 만날 때에는 세상을 사랑하는 용감한 현희가 되어있을 거라고도 믿는다.>


상자 안에는 사진이 가득하다. 2005.03.05 라는 날짜가 찍혀 있는 사진부터 시작해서 우리가 마지막으로 만난 2005.11.05 가 찍혀 있는 사진까지, 그가 매주 토요일마다 독립문 공원에 나와 찍은 사진들이 전부 들어있다. 잠자리를 잡아 조심스레 손가락 사이에 끼우는 아이, 빵 부스러기를 나누어 먹는 비둘기들, 넘어져 우는 아이를 일으켜주는 할아버지, 날아가는 풍선, 수줍은 듯 손을 잡는 연인, 낯선 사람에게 담뱃불을 빌려주는 인상 좋은 아저씨, 비를 피하기 위해 나뭇잎 밑으로 모여드는 개미떼, 하나의 우산을 다정하게 쓰고 걸어가는 노부부, 깊이 있는 색깔을 가진 단풍 든 나무….


그 아름다운 사진들을 보며 행복해 하던 나는 문득 그 수많은 사진 중에 내 사진이 빠져있음을 깨닫는다. 그가 내게 보내지 않은 내 사진을 한 장이라도 보고 싶다. 그의 카메라에 담긴 열여덟의 나는 정말 아름다웠을까. 그리고 이 세상은 정말 아름다운 곳일까. 거울을 꺼내본다. 눈물은 고여 있지 않다. 다행히도 나는 살짝 웃고 있다. 찰칵! 어디선가 소리가 나는 것만 같다. 잘못 들은 거겠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그를 찾아 헤매는 어리석은 일은 하지 않기로 한다. 대신 가볍게 일어나며, 그의 말을 믿기로 한다. 나의 열여덟은 아름답다고. 이 세상은 아름답다고.    

    

18_눈물나는 것쯤은 두렵지 않다

 

나는 이제야 내 나이를 온전하게 사랑할 수 있다. 아직도 가끔은 부모님께 반항하기도 하고, 어린 시절로 도망치고 싶기도 하고, 삶이 지루하기도 하고, 외할아버지를 생각하면 눈물이 나기도 하고, 사랑이 두렵기도 하고, 덜 자란 사랑니가 아프기도 하다. 하지만 열여덟은 물 속에 사는 인어가 물 밖으로 나갈 수 있을 만큼 용감한 나이이다.


나는 희망이 절망보다 더 무섭다는 것을 안다. 절망은 사람을 제자리에 주저앉아 쉬게 만들지만 희망은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게 만든다. 하지만 열여덟의 나는 그 무서운 희망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다.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다가 넘어지고 다치더라도, 눈물나는 것쯤은 두렵지 않다. 내 눈은 아직 충분히 건조하다. 깜빡.

능휘
능휘

추천 콘텐츠

댓글 남기기

로그인후 댓글을 남기실 수있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을 남겨 주세요!

댓글남기기 작성 가이드

  • 타인에게 불쾌감을 주는 욕설, 비방 등은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 주제와 관련 없거나 부적절한 홍보 내용은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 기타 운영 정책에 어긋나는 내용이 포함될 경우, 사전 고지 없이 노출 제한될 수 있습니다.
0 /1500
  • 익명

    이화외고 영원한 해울 ~ ㅋㅋ 멋있는 현희 언니^0^ 혜인이 언니도 스카이 다이빙으로 장원하시고! 정말 4,5기 대단해요 ㅋㅋㅋ 6기인 저두 열심히 하구 싶어용 ㅋㅋ

    • 2007-01-15 20:24:51
    익명
    0 /1500
    • 0 /1500
  • 익명

    연장원 마크 너무 멋있다··········.ㅜ.ㅜ

    • 2006-01-26 16:22:40
    익명
    0 /1500
    • 0 /1500
  • 익명

    능휘형의 다음 작품, '나의 열아홉은 아름답다', 기다리겠습니다. 그동안 저는 '뻐스 로망스' 완성시키고 있겠습니다.

    • 2006-01-17 15:41:57
    익명
    0 /1500
    • 0 /1500
  • 익명

    정말로 세상은 몇 살이 되던지 두려운 게 아닐까요.. 우리 몸에 비해 너무 크고, 또 계속 커지고 있으니까요. 이제 열아홉이죠? 열아홉에는 조금 더 세상을 좋아하길 바라봅니다.

    • 2006-01-16 15:17:05
    익명
    0 /1500
    • 0 /1500
  • 익명

    형 ㅋㅋㅋ // 이거 대박인데-

    • 2006-01-15 19:07:03
    익명
    0 /1500
    • 0 /1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