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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비

  • 작성자 변혜지
  • 작성일 2007-09-23
  • 조회수 7,876

 

변비

1

잠자리에 누워서도 배는 여전히 묵직했다. B양은 결국 잠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변비는 불면증의 원인이 된다던가. 누군가에게 그런 말을 들은 것도 같다. B양은 배를 붙잡고 어기적거리며 화장실로 들어갔다. 인상을 찌푸리며 힘을 주는 B양의 얼굴에 잠시 환희의 표정이 어렸다. 뿌우웅. 변이 아님을 깨달은 B양은 휴지를 쥐어뜯어 말아 들고 다시 힘을 주기 시작했다. 누가 화장실을 해우소라고 했던가. B양의 이마에 땀이 맺히기 시작했다. 일주일 전에 먹은 감자탕이 아직도 배에 자리 잡고 있다. B양은 눈을 감았다. 더 힘을 주기 위해 엉덩이를 뒤로 빼고 몸을 수그렸다. B양의 항문에서 미세한 반응이 일었다. B양은 그 기세를 밀어붙여 항문에 힘을 주기 시작했다. 휴지를 말아 쥔 손에 땀이 배어나왔다. 퐁. 짧은 순간 기쁨에 가득 찼던 B양의 얼굴이 묘하게 굳었다. 짧은 반응, 여전히 찝찝한 아랫배. 엉덩이를 치켜든 자세로 자리에서 일어난 B양은 변기통을 보고 이를 갈았다. 엄지 손톱만한 변 덩어리가 B양을 약 올리듯 물속을 떠다니고 있었다.

너 뭐 하는거니?

반쯤 열린 문 사이로 B양을 쳐다보며 B양의 어머니는 경악했다. 엉덩이를 깐 채로 치켜 올린, 엉거주춤한 자세로 선 B양의 모습은 가히 엽기적이었다. B양은 급히 문을 닫았다.

아무것도 아니야.

B양은 휴지도 사용하지 않은 채 그대로 바지를 올리고 화장실을 빠져나왔다. B양의 등 뒤로는 여전히 변 덩어리가 떠다니고 있었다.

물 좀 내려! 아휴 지겨워.

B양의 엄마가 격앙된 목소리로 소리를 질렀지만 B양은 아무소리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B양은 무언가에 홀린 듯 계속 무언가를 중얼거리고 있었다.

똥 싸고 싶어…….

2

B양은 지난 밤 꾼 꿈 때문에 기분이 영 좋지 않았다. 꿈에서 B양은 똥 무리를 보았다. 각각의 똥에는 이름표가 하나씩 붙어있었다. 그런데 아무리 눈을 부릅뜨고 찾아봐도 자신의 이름표 같은 건 없었다. 아이들은 누렇게 뜬 얼굴로 학교에 온 B양을 슬슬 피했다.

너 얼굴이 왜 그래?

평소엔 말 한마디 걸지 않던 D가 얼굴에 비웃음을 띄며 말을 건넸다. B양은 멍하게 D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대장에서 더 밑으로 빠져나오지 못하면…다시 소장으로 역류하고 천천히 위까지 올라올거야. 그리고….

D는 미친 여자를 보는 듯 한 표정으로 B양을 흘낏 보더니 자기의 무리로 돌아가 B양을 가리키며 쑥덕거렸다. 한참을 킬킬대던 무리는 B양을 빙 둘러싼 채 킬킬 거렸다.

야 너 변비냐?

한 아이의 말이 떨어지자 다른 아이들의 웃음이 터져 나왔다. B양은 그들을 무시하려 애썼다. 고개를 숙인 채 아랫배에 대해서만 생각하려던 B양은 머리에서 느껴지는 불쾌한 느낌에 고개를 들었다. D의 검지손가락이 B양의 눈 앞 에서 흔들리고 있었다. 와하하. 다시 아이들의 웃음이 터졌다. B양은 주먹을 쥐었다.

어쭈, 니가 주먹 쥐면 어쩔 건데?

당연히,

어쩔 도리 같은 건 없었다. B양은 고개를 숙였다. 이곳에서 B양의 편은 아무도 없었다. 뭐가 그렇게 좋은지 한참을 웃어대던 무리는 종이 울리자 B양의 머리를 다시 한 번 밀고는 자리로 돌아갔다. B양은 책상위에 엎드렸다. 누군가 아랫배를 꼬챙이로 쿡쿡 쑤셔대는 것 같았다. 교실에 들어와 인사를 하던 선생은 엎드려 있는 B양을 보고는 표정이 굳었다.

거기 너, 1교시부터 엎드려 자고 있어? 뒤로 나가.

B양은 말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배를 손으로 감싸고 엉거주춤 걷자 여기저기서 킥킥거리는 소리가 새어나왔다. B양은 입술을 깨물었다.

빨리 안 나가?

묵묵히 뒤를 향해 걷던 B양은 선생의 말에 걸음을 멈추었다.

머리에 똥만 차가지고…….

B양의 눈이 순간 번뜩였다. 그렇다 이놈의 변은 벌써 척추를 타고 머리로 진입한 것이다. 그러지 않고서야 자신이 이렇게 정신이 멍할 수 있겠는가. 골똘히 생각에 잠긴 B양을 뒤로하고 수업은 시작되었다.

자, 오늘 수업할 내용은 소화다. 음식물은 입을 지나 위로 내려가서……소장에서 영양분을 흡수하고 대장에서 수분을 한 뒤 마지막으로 찌꺼기를 배출한다. 질문?

오랜만에 수업에 빠져들어 정말 열심히 듣던 B양은 질문이라는 말에 손을 번쩍 들었다. 반짝거리는 B양의 눈을 본 선생은 조금 누그러져 B양을 다시 바라보았다.

그래 해봐.

그 배출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다시 역류하기도 하나요?

뭐?

똥 못 싸면 어떻게 되냐구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교실을 가득 메웠다. 반면 선생의 표정은 싸늘하게 굳어 있었다. 분위기를 파악한 몇몇 아이들이 재빨리 입을 다물었다. 순식간에 교실이 죽은 듯이 조용해졌다.

너 지금 나랑 장난하자는 거냐?

B양을 노려보던 선생은 종이 치자 성큼성큼 걸어 나가 버렸다. 분명히 선생의 오버였지만 아이들의 원망은 B양에게로 쏟아졌다.

야 너 때문에 우리도 같이 찍히면 어쩔거야, 어?

재수 없다, 재수 없다 하니까 아주 잘한다, 응?

D의 무리가 다시 B양의 책상을 감쌌다. D는 아까와는 달리 노골적으로 B양의 몸을 툭툭 치며 웃었다.

배는 괜찮아?

D가 노골적인 비웃음을 띄며 배를 쿡 찌르자 B양의 몸이 움찔했다. B양은 배에서 전율이 이는 것만 같았다. 그대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 B양은 화장실로 달려갔다.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을 본 아이들이 책망의 눈길을 보내자 D의 무리들은 B양의 자리를 떠났다. 변기에 앉은 B양은 미칠 것 같았다. 8일 째 쌓인 변은 B양의 아랫배를 사정없이 짓눌렀다. 눈물이 고일 정도로 아랫배에 힘을 주어봤지만 항문에선 묵직한 기운만 맴돌 뿐 변이 나오지 않았다. 쉬는 시간을 끝내는 종이 울렸다.

3

B양은 점심시간이 되어서야 교실로 돌아왔다. 몇 시간 째 변기에 앉아있던 B양은 의자에 앉기가 무서웠다. B양이 주춤거리자 아이들의 눈길이 D에게 쏠렸다. D는 자신의 무리에서 웃고 떠들며 B양의 쪽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야 B, 너 담임이 오래.

반장이 다가와 B양에게 말했지만 B양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말을 할 때도 배에 힘이 약간 들어가는 걸 알게 된 후로 B양은 최대한 말을 아꼈다. 걸을 때 마다 느껴지는 고통은 상상을 초월했다. 누가 8일 치의 변을 몸 안에 담고 다니겠는가.(물론 있긴 있을 것이다) 반장은 자신의 말이 그대로 무시당하자 B양을 노려보며 자리로 돌아갔다. 어떻게 되든 가긴 가야했다. B양은 엉거주춤한 자세로 교실을 나섰다. 끙끙대며 올라간 교무실에 선생은 없었다. B양은 절망스러웠다. 이마에서는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선생은 10분이 지나서야 자리로 돌아와 B양을 추궁했다.

여태 어디에 있었어?

화장실에…….

세 시간 동안 화장실에 있었다고?

그게, 설사가 멈추지를 앉아서요.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B양을 노려보던 선생은 B양의 이마에서 흐르는 식은땀을 보고는 고개를 돌렸다.

질병결과 처리할 테니까 다음부턴 말하고 다녀.

네, 감사합니다.

대답이 끝나고도 B양이 자리를 뜨지 않자 선생은 고개를 휘휘 저으며 B양에게 어서 가라는 눈치를 주었다. B양은 정말 죽고만 싶었다. 이런 고통은 17년 인생 어디를 찾아봐도 없었다. 엉거주춤한 자태로 걷는 B양에게 교무실의 모든 눈길이 쏠렸다.

교무실을 빠져나온 B양은 벽에 기대어 섰다. 병원엔 갈 수 없다. 그런 짓은 절대 할 수 없었다. 나의 변비가 만천하에 까발려지다니! 약국에 가 변비약을 달라고 할 수도 없었다. B양에겐 그럴 용기가 없었다. 무언가를 마구 먹을 용량도 남아있지 않았다. 점심시간이 끝나는 종이 울렸다.

하아.

B양의 한숨소리가 복도에 유난히 크게 울렸다. B양의 발길이 교실로 향했다.

주춤, 주춤주춤.

4

D는 더 이상 B양을 건드리지 않았다. 이따금 안 좋은 눈길이 느껴지긴 했으나 그 정도는 참을 만 했다. 드디어 마지막 시간이었다. 이번 시간만 끝나면 B양은 학교에서 해방되어 집에 갈 수 있었다. 마음 놓고 변기에 앉아 힘을 줄 수도 잇을 것이었다. 나올지, 안 나올지는 B양의 마음이 아니었지만. 앞에서 열심히 떠들어대던 선생이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자, 지금까지 배운 걸 지금 쪽지시험을 보겠다.

아이들에 야유에도 선생은 아랑곳 하지 않았다. 되려 틀린 개수 대로 엉덩이를 때리겠다는, B양에게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말까지 던졌다. B양은 머릿 속이 하얘지는 것 같았다. 지금까지 배운 걸 B양이 알 리가 없었다. 시험은 정말 쉬웠다. 수업을 귓등으로라도 들은 아이들은 누구라도 풀 수 있었고, 그것도 안 되는 아이들은 고개를 돌리면 정답이 있었다. 필사적으로 자기 답안을 가리는 B양의 짝을 제외한다면. 시험지를 걷어 훑어보던 선생이 입을 열었다.

B가 누구야, 앞으로 나와.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던 B양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앞으로 나갔다. 한 문제도 맞지 못한 주제에 당당하기까지 한 B양을 본 선생은 표정이 굳었다.

자식이, 머리에 똥만 차가지고.

원인은 역시 변이었다. B양은 머릿속을 가득 메운 변이 자신의 두뇌회전을 방해하고 있는 거라고 굳게 믿었다. 오늘 반드시 몸을 장악하고 있는 변을 모두 몰아내고 말 것이다. B양은 이를 꽉 깨물고 힘을 주었다. 뿌우웅. 힘이 너무 들어갔나. 생각할 겨를도 없이 선생이 몽둥이를 놓고 코를 틀어막았다. 폭소하던 아이들도 잇따라 코를 막기 시작했다. 8일 묵은 변의 향은 살인적이었다.

빨리 자리로 들어가, 어서!

B양이 걷는 자리마다 냄새가 퍼져나갔다. B양의 주위가 모세의 기적처럼 갈라지기 시작했다. 끽, 끼이익. 아이들은 저마다 B양의 몸이 닿지 않게 책상을 당기느라 정신이 없었다. 선생은 종이 치기 무섭게 교실을 탈출했다. B양의 얼굴이 달아올랐다. 아이들 몇몇은 재빨리 창문을 열었고 몇몇은 교실 밖으로 뛰쳐나갔다. 헌데 유독 D만은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은 채 묘하게 웃는 얼굴로 B양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교실에 들어온 담임은 얼굴을 찌푸린 채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이게 무슨 냄새냐?

B가 방귀 뀌었대요. 아깐 냄새 더 심했어요.

B양은 정말 죽고 싶어졌다. 담임은 재빨리 종례를 마치고 나갔고 아이들은 B양을 바라보며 낄낄댔다. D가 B양의 곁을 스쳐 지나가며 입을 열었다.

변기 위에 쪼그려 앉아서 일보면 똥 잘나온 다던데.

B양의 고개가 D를 향했다. D는 자신의 친구들과 교실을 빠져나가 B양을 바라보고 있었다.

야, 무슨 말 했냐?

아이들의 목소리가 복도를 가득 메웠다. B양은 가방끈을 힘껏 쥐었다.

5

변기 위에 다시 앉은 B양은 고민에 빠졌다. D의 말은 명백히 놀리는 것이었으나 지금 자신은 정말 절박한 상태였다. 30분 째 변기에서 힘을 쏟고 있었지만 꿈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B양은 속는 셈 치고 D의 말을 실행해 보기로 했다. 실패했다고 손해 볼 건 없었다. 조심스럽게 변기의 양쪽 커버 위에 두발을 올려놓고 엉덩이의 조준점을 맞추었다. 확실히 힘을 주는 것이 더 편하긴 했으나 변은 나오지 않았다.

후우.

한숨을 내쉬는 순간 B양의 발이 미끄러졌다. 푸우우우우우우우웅더어어어어어어엉. B양에겐 모든 일이 슬로우 모션으로 느껴졌다. 하지만 자세를 틀 방법을 찾지 못했다. 변기통 안은 찌든 때 때문에 미끌미끌했다. B양은 한 쪽 발을 변기통 안에 담그고 몸이 반쯤 꺾인 채 움직이지 않았다. 자신의 모습이 너무 비참해 보였다.

이렇게 사느니 차라리 죽는게 나아.

B양은 푸념처럼 내 뱉은 자신의 말에 깜짝 놀랐다. 죽음, 죽음이라니. 나쁘지 않은 생각이었다. 오히려 매력적이기 까지 했다. 죽는 다면 똥을 싸지 못해 아픈 배를 붙잡고 잠들 필요도, 학교에 갈 필요도 없었다. 선생님한테 매일 혼나지 않아도 되고 아이들의 놀림을 받지 않아도 된다. 결정적으로, 죽은 몸은 더 이상 똥을 싸지 않아도 된다! 왜 이런 생각을 진작에 못한 건지 B양은 새삼 자신의 머리를 한탄했다. 어차피 이대로 가다간 온몸에 똥독이 올라 죽을지도 몰랐다. 그렇게 비참하게 죽느니 우아하게 삶을 끝내는게 더 나을지도 몰랐다. B양은 단숨에 결심했다.

한강으로 가자.

B양은 급하게 가방을 챙기기 시작했다. 티슈, 비상금, 전화카드, 모자 등을 챙기던 B양의 손이 순간 멈칫했다. 어차피 죽으러 가는 길에 이런 것이 왜 필요할까. B양은 챙기던 모든 것들을 책상위에 쏟아 붓고는 간단하게 엄마에게 쪽지를 남겼다. 이제 모든 준비는 끝났다. B양은 얼마간의 돈을 챙겨들고는 집을 나왔다. 죽는다는 결심을 하고 나니까 왠지 배가 아프지 않았다. 배를 감싸느라 몸을 굽히지 않고도 걸을 수 있었다. 한강으로 가는 지하철을 타고 B양은 결심을 굳혔다. 한강에 가면 얼마간의 회계시간을 가진 후, 단숨에 한강에 뛰어드는 것이다. 망설임 따위는 있어서는 안 된다. B양은 주먹을 꾹 쥐고 지하철에서 내렸다.

6

날씨는 다른 날에 비해 유난히 맑았다. B양은 살짝 열이 받기 시작했다. 하필 자신이 죽으려는 날 날씨는 왜 이렇게 맑은 것이며 사람들은 왜 이렇게 즐거워 보이는건지. 마치 자신의 죽음을 기뻐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어차피 죽을 건데 이런 생각은 무의미하다, 로 마음을 추스린 B양은 한강을 보며 회개의 시간을 가지기로 했다.

하나님, 예수님, 부처님, 천지신명님, 알라님, 여태 까지 제가 당신들 욕 했던거 다 잊어주시길 바랍니다. 솔직히 저 같이 살아보세요. 욕이 안 나오게 생겼습니까. 학교에선 애들한테 까이지 선생님한테 까이지, 집에선 어머님한테 성적으로 된통 혼나는데다가, 이것보세요. 똥은 또 왜 이렇게 안 나옵니까? 이러니 제가 자살 안 하게 생겼어요? 아무튼 제가 죽는거 다 당신들 탓이니까 책임지고 천국에 자리나 하나 마련해 놓으세요.

라고 생각만 하고 B양은 소리 내어 하나님, 예수님 , 부처님, 천지신명님, 알라님에게 빌기 시작했다. 끝은 역시나 천국가게 해달라는 내용이었다.

그나저나 날씨 더럽게 맑네.

똥물이라고 불러도 손색 없는 한강의 물이 오늘따라 왜 이렇게 맑아만 보이는지, B양은 잠시 감상에 빠졌다. 안녕 학교여, 안녕 빌어먹을 D, 안녕 선생님들, 안녕 엄마. 안녕, 안녕 변비! 죽는 다는 생각을 하니까 모든 것이 편해지기 시작했다. 어떤 것도 B양을 괴롭힐 것은 이제 없었다. 생각을 마친 B양이 그대로 한강을 향해 달려가는데.

갑자기 똥이 마렵기 시작했다. B양은 무시한 채 그대로 한강을 향해 내달리려 했지만 항문을 비집고 조금 나온 변을 도저히 무시할 수 없었다. B양은 그대로 엉덩이를 붙잡고 한강 외곽을 향해 뛰기 시작했다. 쪽팔림 같은건 아무래도 좋았다. 이 곳 에서 이대로 똥을 쌀 수는 없었다. 아무리 달려도 화장실은 나오지 않았다. B양은 급한 대로 사람이 없는 벽의 뒤편에서 바지를 내리고 급히 주저앉았다. 푸직, 푸지직. 8일 째 나오지 못한 변은 설사가 되어 끊임없이 쏟아져 나왔다. 덕분에 설사가 신발에 묻을까 우려되어 B양은 일정량을 싸고는 조금씩 자리를 옮겨야 했다. 한강 뒤편에 온통 B양의 변 냄새가 퍼져 나갔다. 다행히도 가까이 있는 사람은 없었다.

하필 죽기로 결심하고, 실행에 옮기려고 한 이때 변이 마려운 것이 불행일지 행복일지 B양은 구분이 잘 가지 않았다. 어쨌든 변을 싸게 됨으로써 B양이 자살하려 했던 결정적인 이유는 사라지는 셈이었다.

하아아.

똥을 다 싼 B양의 뇌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생각이 있었다. 휴지가 없다. B양에게는 변을 싼 엉덩이를 닦을 만한 휴지가 없었다. 아까 책상위에 엎어 버린 휴지가 생각이 났다.

가져올걸, 가방.

아무리 주위를 두리번거려 봐도 휴지를 대신해서 닦을 만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았다. 하다못해 낙엽 조차도. B양은 다시 주위를 두리번 거리다가 한숨을 내쉬며 그대로 바지를 올렸다. 워낙 시원하게 변을 눈 뒤라 닦을 필요가 없을 것 같기도 했다. 조금 찝찝하긴 했지만.

이젠 어떻게 하지.

시원하게 변을 눈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B양의 표정은 심난하기만 했다.

7

다시 본 하늘은 그렇게 맑지 않았다. 사람들도 그렇게 즐거워 보이지 않았다. 아깐 잘못 봤나, 라고 중얼거리던 B양은 한강을 바라보았다. 역시, 똥물이라고 해도 손색 없을 정도의 그 더러운 물이 맞았다. B양은 기분이 가라앉았다.

내일도 학교에 가야한다, 내일도 엄마에게 혼날지도 모르고, 오늘 저지른 만행으로 아이들은 날 더 싫어할 텐데. 시험을 볼 지도 모르고 성적표가 나오면 엄마는 또 빗자루를 들거나 그릇을 던질 지도 몰라.

한참동안 멍하니 한강에 앉아 있던 B양은 자리를 털고 일어나 지하철로 향했다. 지하철에 앉아서 B양은 말이 없었다. 그저 조용히 눈을 감았다, 떴다,를 반복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집에 도착해 B양은 잠시 망설였다. 엄마가 책상위에 올려놓은 메모를 봤다면 집 안은 난리가 나 있을 것이다. 어쩌면 경찰에 신고 해 놓았을 지도 몰랐다. 온 집안이 발칵 뒤집어져 나를 찾고 있을 것이었다. B양은 서둘러 집안으로 달려 들어갔다. 빨리 그 만행을 말려야 했다.

엄마, 엄마!

집안은 생각보다 고요했으며 평소와 달라진 것이 아무도 없었다. B양의 엄마는 TV를 보며 과일을 먹고 있었다. B양은 문득 허탈한 기분이 들었다.

왜 이렇게 호들갑이야?

아무것도 아니야.

터덜터덜 제방으로 들어가는 B양을 B양의 엄마가 불러 세웠다.

너 살빠졌니?

아아, 아니요.

똥이 빠졌어요, 머리부터 발끝까지. B양은 뒷말을 삼키고 방안으로 들어섰다. 아까와 같았다. 엎어진 가방과 정갈하게 놓여있는 메모. 어질러진 휴지와 비상금, 모자.

수행평가……. 해야지.

내일부터 다시-

 

 

 

 

 

 

 

 

 

 

 

 

 

 

변혜지
변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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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변혜지
  • 2007-12-02
문자

#1 엄마에게는 애인이 있다. 나는 아주 오래 전부터 이 사실을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사실을 바로 두,세달 전까지만 해도 기억 저 편으로 꾸욱꾸욱 눌러 숨기려고 했었다. 분명 엄마를 뺏기는 아이의 마음은 아니다. 엄마에겐 정말 미안하지만 나는 그렇게까지 엄마를 사랑한다고 생각지는 않는다. 엄마를 책망할 마음도 없다. 10년이 넘는 시간동안 혼자 오빠와 날 키우느라 고생했을 엄마에게도 의지할 사람 하나쯤 있는 것도 나쁘지 않다. 아저씰 딱히 싫어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고 엄마의 짝으로써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렇게 생각을 해봐도 가슴속에서부터 올라오는 묘한 배신감을 지울 수 없다.  “됐어요.”“너 엄마한테 대들지 말라고 몇 번을 말하냐.”“나 좀 가만 내버려 두라고!.‘혼자……”  숨을 몰아 쉬며 걷고 있는데 골목 옆으로 학교 아이들이 보인다. 담배를 물고 있고 명찰을 보니 나와 같은 1학년이다. 아무렇지도 않은 척 옆을 지나 걸으려고 했지만 들리는 목소리에 내 발자국은 거짓말같이 멈춰버렸다. “가던 길 가라?…”  내 옆으로 침을 뱉고 지나가는 아이들을 난 그저 뒤에서 잔뜩 노려볼 뿐이다. 날 비웃는 소리가 계속 귀에 들려온다.  “정아야 나와서 과일 좀 먹어.”   “과일 그만 먹니.?”   내가 자신의 말에 충격 받은 거라고는 엄마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다. ‘자기‘앞에서 이미 말하였거나 나온 바 있는 사람을 도로 가리키는 삼인칭 대명사’  “앞에서 이미 말하였거나 나온 바 있는 사람을 도로 가리키는 삼인칭 대.명.사. 대명사…” #4   잠들었다가 어렴풋이 깨어 침대에 가만히 누워 있었다. 거실에서 오빠와 엄마가 하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항상 속을 썩이는 오빠인데도 엄마는 오빠와 대화 할 때는 밝은 표정이다. 항상 내 앞에서 들리던 한숨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순간 무언가 울컥 치밀어 올랐지만 가만히 이야기를 계속 듣고 있었다. 아저씨 이야기가 나오자 나는 몸이 바짝 긴장해 숨도 제대로 쉬지 않고 굳어버렸다. 재혼이라는 말이 들려왔다. 심장이 덜컥 떨어지며 빠르게 뛰었다.   나도 모르게 문을 열고 나가 엄마와 오빠를 빤히 바라보았다. 슬쩍 당황한 듯한 엄마와 오빠의 표정이 눈에 들어왔다. 할 말이 생각나지 않아 멍청하게 서있는 날 엄마와 오빤 여전히 바라보고 있다. “정아야.?” 엄마의 목소리를 뒤로하며 나는 방문을 타고 그대로 미끄러져 주저앉았다. 나는, 엄마의 짝을 반대하진 않지만 이대로 새 아빠가 생기는 건 바라지 않는다. 십 오년간 그렇게 살아왔던 인생에 다른 누군가가 가족,이란 이름으로 끼어 드는 건 용납할 수 없다.  “학교… 아저씨의 마음마저도 있는 힘을 다해 쥐어 짤텐데. 그대로 캔을 내던져 버리고 집을 나왔다. 학교로 가는 길은 이상하게 싸늘했다. 참 많

  • 변혜지
  • 2007-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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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말재밌게읽었어요~~

    • 2007-12-14 14: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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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무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술술 읽히네요

    • 2007-11-04 12:2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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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양, 잘 읽었습니다. 정말 더러운 것을 아주 유쾌하게 쓰셨군요. 변비가 있어서 괴로울 때면 한 번 읽어보고는 마음을 편안히 할 수 있을 만한 소설이라 봅니다. 개인적으론 끝으로 갈 수록 아쉽습니다. (요건 길어질 수 있으므로 생략)

    • 2007-09-26 16:46:44
    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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