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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이 빛나는 이유

  • 작성자
  • 작성일 2013-07-18
  • 조회수 2,632

"아악!"

조용한 교실 한가운데서 비명이 울려 물결이 퍼지듯 사방으로 퍼졌다.

"왜 저런대?"

"하나 틀렸대. 진짜 재수없어. "

그 누구도 나를 불쌍한 시선으로 보지 않는다. 다들 경멸과 질투에 찬 눈빛이다. 비가 가득한 그들의 시험지에 비하면 내 시험지는 쨍쨍하지만, 이 정도로는 내 마음이 편하지 않다.

"많이 틀렸어?"

"아.. 하나 틀렸어..  맞을 수 있는 문제였는데..."

평소 나에게 유일하게 상냥하고 착하게 대하던 반장도  표정을 숨기지 못한다.  항상 가식적으로만 보였던 반장이 차라리 인간다워 보인다.

100점 짜리 성적표가 아니면 엄마는 나를 멍청이라며 타박했다. 너는 아무나 가질 수 없는 좋은 환경을 가지고 태어났는데 어째서 그렇지 않은 애들에게 지는 거냐고. 그 순간 나는 세상 그 누구보다도 큰 죄를 지은 사람이었다. 아빠는 아무 말 없이 매를 가져왔다. 평균이 4점 떨어 졌으니 40대다. 한 대, 두 대, 세 대, 네 대,....... 눈앞이 흐려졌다.  눈물이  안경을 따라 흘러내렸다. 다섯 대, 여섯 대,...... 울음에 막혀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일곱 대, 나는 결국 쓰러졌다. 엄마도 아빠도 나를 일으켜주지 않았다. 이빠는 화에 찬 목소리로 아줌마, 연고 발라줘요, 라고 말할 뿐이었다. 엄마는 울음을 삼키고 욕실로 가 버렸다.

더 이상 어디에도 내 편이 없었다.

4일 간의 시험으로 지칠 대로 지치고, 쓰러질 정도로 맞았지만 집을 나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지 않으면 살 수 없을 것 같았다. 정말 그 방법 뿐이었다.  한 걸음 한 걸음 떼기조차  너무 고통스러웠다. 하지만 무언가에 홀린 듯 난 그대로 현관문을 열고 나가버렸다.

놀이터엔 아이들 대신 담배꽁초만 가득했다. 밤의 놀이터는 가로등이 켜져 있었지만 꽤나 으스스했다. 어둠에 소름끼치려는 찰나, 갑자기 연노란 빛이 놀이터를 환히 비추었다. 하늘에는 그 어느 때보다 화려하고 아름다운 빛을 비추는 달이 걸려 있었다. 며칠 전부터 뉴스에서 떠들어 대던 슈퍼 문이었다. 그렇게 가까이서 달을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알 수 없는 감정에 내 마음이 휩싸였다. 화려한 빛 뒤에 슬픔이 느껴졌다. 마치 나 같았다. 남들 앞에선 예쁘고 잘났지만, 사실은 슬프고 우울했다.

한참을 달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어떤 밝은 그림자가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노오란 원피스를 입은 여섯 살 쯤 되어 보이는 여자아이였다. 신발은 신고 있지 않았다. 무섭기도 했지만 딱히 피할 이유도, 힘도 없어서 시선을 발 아래로 떨궜다.

“언니, 달 좀 봐봐. 진짜 예쁘다.”

몇 분이 흐른 뒤 에야 입을 뗀 그 아이의 첫 마디였다. 너무 어이가 없었지만 사람인지 귀신인지도 모르는 그 아이와 말을 섞고 싶지 않아서 황홀한 달을 다시 바라보았다.

이게 지금 무슨 짓이란 말인가. 내 처지가 너무 서러워서 눈물이 났다.  무서운 마음이 자꾸 날 잡아먹고 있었다.

“뭐가 그렇게 힘들어?”

“내 편이 아무도 없어. 난 혼자야, 다 날 싫어한다구!”

무슨 용기가 솟았는지, 빽 소리를 질러버렸다. 아이의 표정은 보지 못했지만 꽤나 겁먹은 것 같았다. 공기가 점점 차가워졌기 때문이다.

“언니, 달이 어떻게 빛나는 지 알아?”

고등학생인 나에게는 너무나도 쉬운 질문이었다. 어이가 없었다. 대답하기 싫을 정도로 짜증이 났다. 뭐라 대꾸하려다 그만두자 아이는 기다렸다는 듯 말했다.

“태양빛이 반사돼서 저렇게 이쁜 빛을 낸대.”

무척 기뻐하는 표정이었다. 여섯 살에게는 꽤 어려운 상식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다시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나에게 물었다.

“언니, 언니의 태양은 누구야?”

뜻 모를 아이의 말에 응? 하고 되물었더니 아이는 다시 물었다.

“언니도 빛나고 있잖아. 언니를 빛나게 해주는 태양은 누구야?”

잠시 멍해졌다. 내가 빛나고 있다고?

고개를 숙여 팔을 보니 그 아이의 원피스 색처럼 노오랗게 빛나고 있었다. 아마 달빛에 반사된 것이리라 생각하고 대답을 하려는데 머릿속이 울리는 느낌이 들었다. 아이가 말한 건 내 피부가 아니라 마음이었다.

나의 태양, 비록 나와 같은 곳에 떠있는 것은 아니지만 실은 날 응원하고 있을 사람들.

나는 비로소 미소 지을 수 있었다. 아이도 방긋 웃었다. 아닌 척 했지만 울고 있었던 엄마,  아빠, 그리고 친절한 반장, 나의 태양들에게 돌아가기 위해 난 벤치에서 일어나 달빛이 감싼 거리를 가볍게 걸었다.

얼마 전 백일장에서 썼던 소재로 재구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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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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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구나 사랑과 지지 속에서 빛나고 있다는 착상이 맘에 듭니다. 백일장에서 쓰신 글이니 시간 제약이 상당했겠지요. 지금으로선 제목과 이어지는 착상 그 자체밖에는 보이지 않네요. 그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더 많은 보여주기가 필요해보입니다. 좀더 자연스럽게 메시지가 전달될 수 있도록 주인공이 겪는 내적 갈등을 여유있게 풀어나간다면 좋을 것 같습니다.

    • 2013-07-21 23:3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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