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신
- 작성자 작은토마토
- 작성일 2024-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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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아침 박희준은 불길한 꿈에서 깨어난 뒤 침대 속에서 자신이 한 마리의 거대한 갑충으로 변해 있는 것을 발견했다.
각질로 된 갑옷처럼 딱딱한 등을 밑으로 하고 위를 쳐다보며 누워 있던 그가 머리를 약간 쳐들자, 볼록하게 부풀어 오른 자신의 갈색 배가 보였다. 그 배는 약간의 돔형이었고, 딱딱한 마디들로 이어진 아치형구조를 이루고 있었다. 괴상했다. 고시원의 싸구려 담요로는 그 흉측한 배를 모두 덮을 수 없다는 것이 분명했다. 하도 낡아서 보풀이 잔뜩 일어난 담요가 어느 순간 그의 배 위에서 스르륵 미끄러져 내렸기 때문이다. 마치 처음부터 미끄러져 내릴 준비를 한 것처럼. 벗겨져 내린 담요 아래서 흐느적거리는 그의 수많은 발들이라니! 징그럽게 통통한 발들은 그 수가 너무 많았다. 그의 몸뚱이에 똑 맞는 굵기의 발들은 어떻게 보면 멀쩡한 인간의 손발처럼도 보였다. 그가 그 발을 보려고 할 때마다 발들은 오갈 때 없는 것처럼 요동치고 있었다.
“씨발.”
그는 생각했다.
희준은 그가 아직도 꿈을 꾸는 중이라고 믿었다. 그것도 아주 끔찍한 악몽을.
그러나 그것은 꿈이 아니었다. 그는 자신의 고시원 방에 누워있었다. 그 방이 아무리 작을지라도 그것은 분명히 인간의 방이었다. 희준과 비슷한 처지의 고시생이나 취준생들이라면 으레 쓸 법한 비좁고 눅눅한, 영락없는 그의 방이었다. 그는 서글프게 친숙한 네 방향의 벽들 사이에서 조용히 다시 누웠다. 어젯밤 쓰다 만 자소서 조각들이 책상 위에 어지러이 널려있었다.
희준은 평범한 취준생이었다. 지방의 4년제 대학을 간신히 졸업하고 나이 서른이 되도록 취업을 준비한다는 이유로 낡아빠진 고시원에 몸을 의탁하고 있었다. 취업 준비라는 명목 하에 하루하루를 살아가면서도 정작 1차 합격이라도 해본 것이 언제인지 까마득했다.
그는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흐릿한 날씨였다. 빗방울들이 떨어져 더러운 창유리에 부딪친 것 같은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가 그를 우울하게 만들었다.
“어제 술을 너무 많이 마셨던 게 틀림없어.”
바닥 구석에 널브러진 산뜻한 초록색 소주병을 내려다보며 그는 생각했다.
"아무래도 조금 더 자야겠어. 곧 있으면 알람이 울릴 테고 그때 일어나면 돼."
숙취 때문인지 기이한 사건 때문에 과부하에 걸린 건지 지끈거리는 머리를 움켜잡고 희준은 잠을 청했다.
하지만 잔인하게도 바로 그 순간 알람이 울렸다. 방음 하나 안 되는 좁은 방 안에 경쾌한 노랫소리가 울려 퍼졌다. 희준은 울고만 싶었다. 아니나 다를까, 옆방에서 육두문자를 내뱉는 소리가 생생하게 들려왔다. 대충 꼭두새벽에 알람을 큰 소리로 맞춰 둔 놈의 부모님의 안부를 묻는 내용이었다. 희준은 자신이 지금 어떤 모습인지도 잊어버리고 허겁지겁 몸을 돌려 급히 핸드폰을 찾았다. 따각, 굵은 털이 숭숭 난 절지동물의 다리가 액정에 닿자 며칠 깎지 않은 듯한 손톱이 부딪히는 듯한 소리가 났다. 미끄러운 핸드폰의 표면을 헛돌기만 할 듯 구릿빛 광택을 내며 반들거리는 그의 다리는 그도 모르는 사이에 능숙하게, 습관적으로 알람을 껐다. 그 부드러운 터치에 희준 자신도 놀라워하며 몸을 움찔했다. 방 안이 갑자기 조용해졌다.
그는 천천히 조심스럽게 몸을 일으켰다. 굵게 돋은 다리들이 묵직한 몸뚱이를 단단하게 받쳐 줬다. 촘촘한 연결마디가 다글다글하게 달린 배를 내려다보며 그는 걸음을 뗐다. 걷는 데에도 어려움이 없었다. 조용히 한번 콩콩 뛰어 보고, 핸드폰을 무음모드로 바꾸고, 어제 먹다 남은 생수를 들이켜는 것 역시 별다른 어려움 없이 해냈다. 희준은 잠시 동안 자신이 평범한 인간이라고 생각했다.
'아무렴, 그럴 리가 없지. 벌레라니 참, 고약한 꿈도 다 있지 뭐야. 재수가 없으려니까.'
때마침 비쳐 온 햇살에 생겨난 형체-늘어난 매리야스에 사각 팬티 하나를 덜렁 걸치고 이족보행을 하고 있는 거대한 벌레의 그림자-를 마주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한동안 정체를 알 수 없는 공포와 무력감에 몸을 떨며 흐느끼던 희준은 자신의 입에서 흘러나온 신음소리가 사람의 그것의 형태를 띄고 있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그가 훌쩍이며 낸 소리는 다른 평범한 사람에게도 하느님께 착하게 살겠다고 애원하는 것으로 들리는 모양이었다. 옆방에서 어서 빨리 하느님을 만나러 천국에 가라고 재촉하는 걸 보니. 희준은 웅얼거리며 죄송합니다를 연발했다. 옆방에서 한번만 더 시끄럽게 굴면 다리몽둥이를 뿐질러 버리겠다는 외침과 함께 둘 다 제발 좀 닥치라는 앞방의 수험생 목소리까지 함께 들려왔으므로 그가 인간의 언어를 말할 수 있다는 사실이 분명해졌다. 잠시 희준은 옆방 아저씨가 언행일치를 실천한답시고 이 단단하고 빈틈없는 자신의 수많은 다리들을 일일히 부러트리려면 꽤나 힘들겠다는 생각을 했다. 누군들 안그랬겠냐만은 사실 아직도 희준은 지금 자신의 상태에 대해 영 현실감이 없었다. 이웃들이 비난할까 두려워, 나직이 욕을 하며 중얼거리는 것 외엔 아무 것도 할 생각이 들질 않았다.
"씨발! 내일 면접인데... 어떻게 잡은 기횐데, 이 꼴로 어떻게 나가......"
멀쩡하던 사람이 하루아침에 벌레가 됐다. 일상이 망가지고 인생이 흔들리며 목표가 무너진다. 어쩌면 목숨까지도. 당장이라도 머리카락 -어쩌면 더듬이가 더 맞는 표현일지도 모르겠다- 을 움켜쥐고 내 몸 돌려내라고 절규하고 발광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둑한 상황에서 그가 정신줄을 잡고 있을 수 있는 이유는 어쩌면 평소 그의 일상이 늘 그래서였는지도 모른다.
끊이지 않는 준비. 약속되지 않은 미래.
그가 매일같이 질리도록 매달리는 취업이라는 것은 탄탈로스의 사과와도 같았다. 지옥의 황무지에 탐스러운 사과가 열렸고 죄수는 굶주렸다. 달콤한 과육을 기대하며 간절하게 손을 뻗지만, 과일을 따겠다고 어떤 노력도 불사하지만, 과일이 손에 닿을락 말락 하는 순간에 가지가 다시 잡을 수 없는 곳으로 올라가고야 마는 영원한 형벌. 속된 말로 희망고문이라고도 부르는 그 형체 없는 올가미가 하루하루 그를 갉아댔다. 이때만을 기다리며 평생을 달려왔다. 남들보다 똑똑하질 않아 노력으로 채워가면서. 하지만 정작 지금 자신은 취업의 문턱에 가로막혀 곰팡내 나는 고시방에 묵혀 있었다. 엄밀히 말하면 그의 지금 삶과 벌레의 삶은 딱히 별다른 차이가 없었다. 햇빛 한 점 안 드는 방에서 버둥대며 살아가는 꼴은.
그래서 정말로 벌레가 되어 버렸을 때, 희준은 오히려 허탈했다.
정말, 역시, 결국. 그래 이렇게 돼버렸구나.
겁이 나지 않았다면 거짓이었겠지만 두려움보단 궁금함이 앞섰고, 막막하지 않은 것도 아니었지만 인간으로서의 인생도 막막하긴 마찬가지다. 솔직히 말해 그렇게 달라진 것도 없지 않은가.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희준은 문득 떠나고 싶어졌다. 그는 너무 오랫동안 쳇바퀴 속에 들어있었다. 어릴 때부터, 대학만 가면 다 된다는 말을 듣고 자랐다. 그 목표만을 보고 달렸다. 그런데 결국, 간신히 들어간 대학도 결승점이 아니었다. 대학만 졸업하면 괜찮아지겠지. 믿어야만 했다. 하지만 정작 그는 대해을 졸업함과 동시에 끝없는 쳇바퀴 속에 던져졌다. 그가 평생을 지향하고 달려왔던 목표는 거대한 쳇바퀴였다. 생계의 위협이 넘실거리는, 미래를 향한 구직의 쳇바퀴. 멈추지 않고 돌아가 미치기 일보직전인. 쉬지 않고 달려야 그나마 제자리를 지킬 수 있는 무한한 여정에서 그를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은 바로 다른 사람이었다. 나보다 대충 살아도 부모님 덕을 잘 봐 벌써부터 떵떵거리고 사는 옛 친구들. 아니면 그저 운이 좋아 희준이 평생을 노력한 것이 하루아침에 이뤄낸 행운아들. 이런 이들과 희준을 비교하고 동정해대는 주변 사람들과 이들의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다시 남들과 자신을 비교하며 무력함에 빠지는 자기 자신의 모습이 안 그래도 숨가쁜 그의 인생을 더욱 고통스럽게 만들었다.
차라리 떠난다면 어떨까. 지긋지긋한 관심과 조롱과 멸시 속에서 벗어난다면 어떨까. 아무도 자신과 타인을 비교하지 못할 것이고 그 역시 그 자신과 타인을 비교하며 소주를 까지 않아도 될 것이다. 늦은 아침 숙취로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고 일어나 허둥대지 않아도 될 것이다. 아무리 술을 마시고 배를 부풀려도 좀처럼 벗어날 수 없는 허전함에 굶주리지 않아도 될 것이다.
어쩌면, 이대로 떠나버린다면.
그런 의미에서 이 변신은 그에게 기회일지도 몰랐다. 새로운 삶, 연고도 없는 곳에서 새로이 시작하는 인생의 체험판.
생각이 담배 연기처럼 뭉실뭉실 피어올랐다.
비가 그쳤다. 불투명한 창문을 요란하게 두드리던 빗소리가 문득 잠잠해졌다. 희준은 무심결에 창문을 열었다. 그의 각질 다리가 힘차게 잠금장치를 풀자 비에 젖은 거미줄을 열심히 기어다니던 거미 한 마리가 소스라치게 놀라 자취를 감췄다. 그는 뭔가에 홀린 듯이 창문을 열어젖혔다. 아스팔트에 스며든 눅눅한 습기와 꼬릿한 흙냄새가 밀어닥쳤다. 축축한 공기가 방 안을 채우자 희준의 꽤나 강력해 보이는 턱이 딱딱 맞부딫히며 즐거운 소리를 냈다. 그는 잠시 동안 창밖을 바라보며 복잡해진 머리를 식혔다. 담배 한 개비를 꼬나물고 연기를 묵직한 공기 속으로 뻑뻑 날려보내면서 그는 생각에 잠겼다. 매캐한 연기는 벌레의 기도를 통해서도 잘만 마셔졌다. 담배 끄트머리로 담뱃재가 포슬포슬 흩날렸다.
빗물이 흥건한 거리를 내려다보며 자신에게 일어난 이상한 일에 대해 고민하던 희준은 문득 이상한 시선을 느꼈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고시원 2층에서 창문을 열고 벌레의 상체를 한껏 앞으로 내민 자신을 올려다보고 있는 한 중년 여성을 보았다. 그는 담배를 움켜쥔 희준의 삐죽삐죽한 다리를 노려보고 있었다. 희준의 숨이 떨렸다. 어떡하지, 큰일 났다. 저 사람이 날 신고하면, 이제 어떻게 되는 거지. 짧은 시간 동안 오만 가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그가 만일 사람이었다면 아마 그의 눈동자는 갈피를 잡지 못하고 이리저리 애처롭게 흔들렸을 것이다. 현실에서는 징그러운 겹눈이 무표정하게 행인을 멀뚱하니 응시하고 있긴 하지만 말이다. 하지만 누군가는 언짢았고 누군가는 겁에 질렸던 잠깐의 대치 후에 그녀의 입에서 나온 말은 다행스럽게도 뜻밖이었다.
“정말 담배 좀 적당히 피세요. 요 근처 사람들 다 고시원 때문에 난리야. 허구한 날 허우대 멀쩡한 총각들이 담배나 피워 대고 말이야. 냄새랑 꽁초 때문에 민원 넣은 게 한 두 번이 아니거든? 주의를 줬으면 조심하는 시늉이라도 하셔야지. ”
여자가 눈살을 찌푸리며 담배를 째려봤다. 희준은 안도하며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주의하겠습니다. 위기를 벗어났다는 안도감과 왜 아무 일도 생기지 않았는가에 대한 의문에 정신이 팔린 희준의 사과는 여자에게 진심으로 와닿지 않은 모양이었다. 툴툴거리며 멀어져 가는 여자의 뒷모습을 멀거니 쳐다보며 희준은 방금 전의 놀라운 일에 대해 고민했다.
벌레로 변한 후 다시 사람 모습이 되기 전까지는 절대 밖에 나가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었다. 흉측한 모습을 한 자신을 본 사람들의 반응은 불 보듯 뻔했으니까. 거리를 걸어 다니는 그의 모습은 '혐짤' 표시를 붙인 채 인터넷을 한동안 뜨겁게 달굴 것이었다. 다시 사람이 될 때까지 –애초에 다시 사람이 되기는 할지조차도 미지수지만- 이 고시방에서 얼마나 오래 버틸 수 있을까 막막하던 차에 이 여자의 꾸지람은 한 줄기 희망과도 같았다.
왜 그 여자는 이런 모습을 한 그를 보고도 아무런 반응이 없었을까? 자신이 벌레로 변했다는 사실이 전부 몽상이었을까? 그건 아니었다. 거울에 비춰 보고 셀카를 찍어 봐도 그는 틀림없는 벌레였다. 해가 비치는 곳마다 나타나 그를 집요하게 괴롭히는 그림자와 그의 겹눈이 명확하게 바라보는 껍질에 둘러싸인 그의 피부가 그러하듯이. 어쩌면 사람들은 진작부터 그를 별로 신경쓰지 않는 걸지도 몰랐다. 제 앞가림하기에도 바쁜 잘난 사람들에게, 담배나 피워 대는 후줄근한 취준생이 벌레인지 사람인지는 딱히 중요한 이슈가 아닐 터다. 아니 애초에 그들에게 희준과 벌레 사이에 그렇게 큰 차이점이 있어 보일지 역시 모르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가 용기 내서 몇 명의 행인들과 더 마주해보겠다는 결심을 세우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다행스럽게도, 결과는 명백했다.
떨리며 건넨 그의 ‘안녕하세요’는 출근에 바쁜 사람들 앞에서 성공적으로 무시당했다. 희준의 아침 인사를 받은 일곱 명 중에서 한번 힐끗 쳐다보고 만 사람이 넷, 무시하고 걸음을 재촉한 사람이 둘, “뭐야, 이 병신은.” 하고 찰진 욕설로 대답해준 사람이 하나였다. 정말이지 사람들은 그를 정말 하나도 신경쓰지 않는 모양이었다. 아니면 바쁜 출근길에 괜히 엉겨붙어 귀찮게 하는 빈대 한 마리 정도로 생각하거나. 이쯤 되자 희준은 자신이 헛것을 보는 게 아닌가 싶기도 했다. 어쨌든 사람들의 비명이나 119 혹은 112의 출동 없이 일상생활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자 그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문득, 아까 잠시 했던 미친 생각을 떠올렸다.
어쩌면, 이대로 떠나버린다면.
어차피 이 상태로 내일 면접에는 못 나간다. 이 답답한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다. 이 변신이 그에게 주어진 새로운 기회일지도 몰랐다.
자신이 왜 벌레가 되었는지 알아낼,
어떻게 사람으로 돌아갈지 찾아낼,
사람이 되고 나서 더 나은 삶을 살 방법을 얻어낼,
짜증 나는 쳇바퀴에서 내려와 잠시 쉴,
피폐해진 영혼이 휴식을 취할,
힘들기만 했던 인생의 의미를 만들어낼,
또 어쩌면 행복해질.
역전을 준비할 여행의 기회였다.
"떠나버리자."
희준의 수많은 다리들이 반기듯 꿈틀거렸다.
벌레가 되었다고 여행이라니. 다소 억지스러운 감이 없지 않아 있었지만 안 그래도 약해질 대로 약해진 멘탈인데 아무것도 하지 않고 다시 모습이 바뀔 때까지 방 안에서 가만히 공부나 하라고 한다면 희준은 미쳐버릴지도 몰랐다. 삶의 무료함과 고통이 절정으로 치닫는 때 창문 밖 비에 젖은 신선한 세상은 그를 충동질했다.
그렇다고 뭐 돈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쥐꼬리만한 알바비는 아깝지만 돌아올 날을 위해 고시방을 자신의 것으로 남겨두는 데 거의 다 써야 했다. 책상 위에 쓸쓸하게 먼지 쌓여 있던 돼지저금통을 털어도 며칠치 컵라면 정도밖에 보장되지 않았으니, 호텔은 고사하고 모텔이나 게스트하우스조차 들어가지 못할 터였다. 하지만 때마침 희준에게는 언젠가 꼭 한번 해보고 싶었던 거리에서 살아보기, 라고 그럴듯하게 이름 붙인 노숙이라는 궁상맞은 소망이 있었고 이는 이번 여행의 취지와도 퍽 잘 들어맞는 듯했다. 벌레가 길에서 잠 좀 잔다고 어찌되지는 않을 것 같기도 했고. 희준은 어디서 난 건지 기억도 나지 않는 꼬질꼬질한 등산가방에 닥치는 대로 물건들을 쓸어넣었다. 갑자기 일어난 변신만큼이나 갑작스런 결정이었다.
매끈한 등 위에서 대롱거리는 등산 가방 한번 점검하고, 머리꼭대기에서 휘적거리는 더듬이를 한번 더 까딱해준 후에 꽤 오랫동안 살아 온 고시방에 작별인사를 건넸다. 어차피 머지않아 다시 돌아올 테지만.
곰팡이 핀 회색 벽지, 안녕.
밟으면 지븐거리는 낡은 바닥, 잘 있어라.
책장 위 먼지낀 거미줄아, 집 잘 보고 있어.
툭하면 소리 지르는 옆방 아저씨, 한동안은 조용하겠네요.
쉬지 않고 잡아 죽여도 끝없이 나타나는 바퀴벌레들아, 잠깐이라도 행복해라.
안녕, 나는 간다.
코팅이 벗겨져 군데군데 녹슨 문이 철커덩, 묵직하게 잠겼다.
거리의 햇살은 눈부셨다.
아침에 내렸던 비의 흔적이 정오가 다 되어 강렬히 타오르는 태양빛을 받아 한 조각 반짝임으로 녹아내렸다. 바닥 깊은 곳까지 촘촘히 스며든 비 냄새는 신선했고, 물기 머금은 풀잎들은 낭창하게 흔들렸다. 지금껏 실내에 틀어박혀 살아 온 세월이 전부 무의미하게 느껴질 정도로 오랜만의 외출은 황홀했으며 간만에 마주한 세상은 야속하리만치 예뻤다. 이토록 아름다운 세상에서 흉측한 벌레의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이 죄스러울 정도였다.
처음에는, 그랬다. 무작정 뛰쳐나와 갑작스레 맞닥뜨린 바깥은 얼핏 보기엔 티끌 하나 없이 눈부셨지만 몇 분쯤 걷기 시작하자 금세 더럽게 눌어붙은 얼룩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습기에 반색하며 기어나왔을 지렁이 한 마리가 아스팔트에 찐득하니 눌어붙어 있었다. 아직 숨이 끊어지지 않은 듯 메마른 가죽을 움직거리는 그것 위에는 죽음의 냄새를 맡고 모여든 일개미들이 다글다글하게 모여 있었다. 지렁이의 죽음은 그들에게 생명이었다. 그러니 고통스레 죽어가는 그것을 새까맣게 뒤덮고 살점을 뜯어다가 바삐 옮기고 있겠지. 인간이나 개미나 이렇게 보면 다 똑같다고, 희준은 생각했다. 남의 살점을 뜯어야지 제가 사는 세상이 아닌가. 남의 불행을 자신의 기회처럼 기쁘게 여기는 세태가 아닌가. 어차피 인간도 본질적으로는 자신들이 그렇게 혐오하는 개미떼들이나 별다를 것이 없다.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목적을 성취하는 데 개미들보다 더 잔인하고 영악해줄 수 있다는 게 차이점이라면 차이점이랄까. 두꺼운 껍질에 감싸인 희준의 발이 무심히 짓밟고 지나갔다. 질척, 개미들이 짓뭉개지고 지렁이가 으스러졌다.
잠시 서성거리던 희준은 늘 고시원 창밖으로 바라만 보던 공원에 갔다. 커플들이 그렇게도 앉아 있던 벤치에 가 앉아 봤다. 어린애들이 자전거를 타던 빈터에도 가 봤다. 녹 슨 벤치에서 두 연인이 말다툼을 하고 있었다. 얼굴이 붉게 달아오르고 두 눈이 험상궃게 충혈된 채 서로를 향한 비난을 맹렬히 쏟아붓고 있었다. 끝내 누군가 눈물을 흘리며 일어서 분에 찬 걸음으로 떠나 버리고 남은 사람이 욕설을 내뱉으며 고성을 지르는 것까지, 희준은 멀찍이 떨어져 지켜봤다. 남자가 지른 목 쉰 비명이 귀에 정정 울렸다. 귓가, 라고 불러야 적합할 것 같은 기관을 문지르며 고개를 돌린 희준의 뒤에선 한 부모가 아이를 야단치고 있었다. 어린아이는 울 지쳐 꺽꺽거리고 이내 바닥에 드러누워 발작하듯 버둥거리기 시작했다. 희준은 공원을 떠났다. 차라리 오지 말 걸 그랬나, 후회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었을 것이다. 기대했던 낭만도 상상했던 달콤함도 없었다. 가슴은 오히려 더 빈 듯 했다. 그렇게 여기저기 헤매다가 저녁이 되었다.
희준은 배가 고팠다. 아침부터 이상한 일을 겪은 데다 갑자기 일상에서 벗어나 처음으로 여행 비슷한 것을 떠났다. 막상 떠났다고 해 봤자 하루 종일 동네를 어슬렁거린 것 뿐이었지만 이는 생각보다 에너지가 많이 드는 일이었다. 희준은 제대로 된 음식이 먹고 싶었다. 매일 먹어 질리지만 이것조차 없어 아껴 먹는 컵라면이나 레토르트 식품 말고, 갓 만들어 따끈한 음식이 먹고 싶었다. 이를 위해서라면 그는 지금 돈을 얼마든지 지불할 의향이 있었다.
희준은 한 포차에 들어갔다. 서늘한 저녁 포차의 비닐 문 안에서는 안줏감에서 나온 김이 푹푹 찌며 안경에 이슬을 맺었다. 테이블 사이를 바삐 오가는 직원들과 이들을 부르는 고함 가운데 거나하게 취한 무리들이 얼굴이 벌게진 채 소리 높여 이야기하고 있었다. 식탁 위며 바닥까지 무질서하게 널브러진 술병들 사이사이로 묵지근한 발들이 오고 갔다. 희준은 구석 자리를 골라 앉아 메뉴판을 봤다. 좁은 고시원에서 산 세월이 길어 그런지 외따로 떨어진 조그만 테이블에 마음이 갔다. 사람들도 그런 그를 별로 신경쓰지 않고 왁자지껄 떠들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얼룩으로 꿉꿉하게 젖은 메뉴판에는 갖은 안주들이 휘갈겨 쓰여 있었다.
당장 어제까지만 해도 유튜브에서 '엔수생 고시생 취준생 다 드루와~ 라면 한 봉지로 하루 세끼 때우는 법' 이나 보고 있던 자신이 이런 메뉴를 보고 있다는 사실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조금이라도 식비를 아낀다고 봤던 그 동영상에서 알려줬던 해법은 라면 한 봉지에 추가로 사리면과 햇반이 필요한 것이었다. 아침에 라면을 끓여 면만 건져먹고, 점심에 라면국물에 사리면을 넣어먹으며 저녁때 햇반으로 라면죽을 끓이라 했던가. 사리면도 사고 햇반도 사라니 순 사기잖아, 분개하면서도 고시원에서 주는 공짜 밥을 이용해 나름 알뜰히 실천했던 방법이었다. 확실히 이 방법을 사용한 후부터 전보다는 배가 덜 고팠지만 그의 위장은 드동안 많이 헛헛했던 모양이었다. 메뉴판에 적힌 음식 이름들만 봐도 혓바닥 언저리가 찌르르하며 군침이 고였다. 포차 안 가득 고인 구수한 냄새에 어젯밤부터 죽 굶은 빈 속이 쓰라리게 요동쳤다. 고민 끝에 희준은 조개탕과 소주 한 병을 주문했다. 음식은 금세 나왔다.
가스버너 위에서 조개들이 바글바글 끓었다. 희준은 이상하게도 이미 한참 전에 죽어 냉동된 조개들의 바르작거림이 살고자 발악하는 몸부림처럼 느껴졌다. 그것이 그가 고시원에서 바퀴벌레에 에프킬라를 뿌렸을 때의 움직임과 닮아서였을까. 다 같은 고시방에서 똑같이 비참하고 구질구질하게 살고 있으면서도 기어이 바퀴벌레에게 에프킬라를 뿌리고야 마는 그 자신에 대한 혐오감이 결국 벌레가 되고 난 다음에야 떠오르는 걸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래도, 조개탕은 맛있었다.
조개, 그 조그만 것의 속살은 물론이고 껍질까지 알뜰하게 빨아냈다. 진흙 펄 가장 깊은 곳까지 긁어내 국물을 우렸다. 한 끼 행복한 음주를 위해. 고작 음주를 위해, 무려 음주를 위해. 인간은 이기적인 동물이다. 제 이득을 취하기 위해서라면 어떳 짓이라도 서슴지 않는 파렴치한 동물이다. 그런 인간에게 시시때때로 짓눌려 터지는 동물의 외형을 하고서 희준은 눈물겹게 맛있는 조개탕을 행복하게 들이켰다.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소주는 나오질 않았다. 바쁜 포차 직원들이 그가 소주를 시켰다는 사실을 잊어버린 듯했다. 어저면 존재감이 거의 없다시피한 그를 아예 잊어버린 걸지도 몰랐다. 기다리고 기다렸지만 조개탕을 반쯤 먹도록 소주를 꺼내서 가져다주기만 하는 간단한 작업은 영 이루어지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일어나 직접 받아오려는데, 아무 생각 없이 걸어가던 희준은 그만 앞서 오던 다른 사람과 정면으로 부딪히고 말았다.
“억! 씨발, 뭐야...”
양아치. 그와 부딫히고 욕설부터 내뱉는 저 남자를 보자마자 드는 생각이었다. 갖가지 색으로 화려하게 물들여 삐죽하니 세운 머리카락, 반팔티 덕분에 환하게 드러난 팔뚝에 빼곡한 용 문신, 부를 과시하듯 온몽에 치렁치렁 걸친 알이 굵은 장신구들까지 왕년에 학교 운동장에서 라이터 좀 꺼내봤을 외모였다. 저런 사람과는 엮여서 곤란하다, 삼십 줄이 되도록 살아오면서 파악한 바에 따르면 그는 얼른 사과하고 빠져나가야 했다. 하지만 늘 그렇듯, 세상 일이 다 그의 뜻대로 되는 것은 아니었다.
“아, 죄송합니다...”
“하, 진짜 짜증 나게 무슨...... 어?! 박희준......?”
조용하고 소심한 그와는 연고도 없을 것 같은 양아치가 희준을 알아봤다.
“어, 씨발, 너 박희준 맞지? 야, 맞네! 얘들아, 이 새끼 누군지 봐봐. 박희준이라니까. 생각나냐? 우리 고등학교때 동창 있잖아. 바퀴준! 바퀴벌레마냥 음침하게 생겨가지곤 우리 그때 중고차 턴 거 담임한테 꼰지를 줄 알았는데 안 했던 애. 걔한테 들켰을 때 존나 망한 줄 알았는데, 얘가 입 다물어서 살았던 거, 생각 안나? 그 후로 계속 우리 담배도 사다주고.”
희준도 생각이 났다. 고등학교 시절 귀찮았던 일진 떼들이. 중고차 털어서 운전해본다고 난리 치던 녀석들을 야자 끝나고 집에 가던 길에 우연히 만났을 뿐이었다. 아무 생각 없이 지나가는데 지레 겁에 질린 놈들이 한마디라도 떠벌렸다간 죽여버리겠다고 을러 댔고, 굳이 귀찮을 상황을 만들 필요도 없다는 생각에 별 말 안 했던 것이 이상하게 변질되었던 모양이었다.
며칠 뒤 저 문신 녀석을 필두로 그 학교 내로라하는 일진 놈들이 다 아는 척을 했다. 그를 입 무겁고 적당히 만만한 먹잇감으로 여긴 모양이었다. 괴롭힘은 없었고 희준은 그들에게 고등학교 내내 담배를 사다 줬다. 셔틀도 아니었고 협박도 아니었지만, 암묵적으로 맺어진 약속. 괴롭히지 않을 테니 공물을 바치는 상당히 일방적이고 꽤나 강제적인 동맹 관계. 힘들진 않았지만 그래도 좀 귀찮았던 기억이 났다. 졸업하고 떨쳐 버려 후련했던 인연이었는데 안타깝게도 이름조차 기억나지 않는 문신 녀석은 희준이 꽤나 반가운 모양이었다. 이렇게 바로 합석을 제안하는 걸 보니.
용 문신과 그의 질떨어지는 친구들을 고등학교 때 이야기보따리를 한참 풀어놓았다. 다 그들이 학창 시절 저질렀던 자잘한 비행들 이야기였다. 희준은 따분했고 불편했으며 어서 빨리 이 자리를 벗어나고 싶었다. 이 사람들은 자신이 고등학교때 얼마나 멋졌는지와 지금 자신이 얼마나 잘 살고 있는지 말하는 데에 열을 올렸다.
“야, 우리 고1 때 화장실에서 담배피다 걸렸던 거 생각나냐?”
“그걸 어떻게 잊냐? 담임 존나 빡쳐서 선도연다고 지랄했잖음.”
“응 근데 못열쥬? 지가 뭔데 선생주제에 까불어 까불길. 우리 아빠 학교오니까 쫄아서 입 닥치는거 개웃겼는데. ”
“에휴, 돈 그거 벌겠다고 그 나이 처먹고 선생질이나 하고 있는 것도 불쌍하다. 그래 놓고 이제 뒤에서 누군 부모 잘 만나서 고생 안한다고 존나 깔 텐데. 꼬우면 금수저로 태어나던가, 아니면 거지같은 부모를 욕하든가. 진짜 벌레만도 못한 새끼라는 말은 이런 데 쓰는 건가 봐. ”
한심했다. 거저 얻은 것들을 제 능력인 줄 알고 우물 안에서 자랑하고 뽐내는 꼴이 마땅찮았다. 이제야 짐작이 좀 갔다. 그들이 왜 일종의 꼬붕에 불과했던 희준을 그렇게도 반가워하며 합석까지 제안했는지. 자기들이 얼마나 잘났는지 보여주고 싶었던 거였다. 학창 시절에, 되도 않는 팔자 좀 펴 보겠다고 죽도록 공부한 희준과, 할 수 있는 비행이란 비행은 몽땅 즐기며 헤프게 논 그들의 차이를 까발리고 싶었던 거였다. 노력 하나 안 하고도 삐까뻔쩍 멋들어진 삶을 사는 자신을 자랑하고 싶었던 거였다. 과시하고 뽐내면서, 초라하게 내동댕이쳐진 불공평한 영혼을 즐겁게 즈려밟으면서, 증명하고 싶었단 거였다.
예나 지금이나, 우린, 네 위에서 군림하고 있다고. 마치 아무리 애를 써도 바꿀 수 없는, 불공평하고 잔인한 야생의 먹이사슬처럼.
희준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억지로 몇 잔 받은 소주가 조개탕과 뒤섞여 위장에서 찰랑였다. 한심한 놈들, 침이라도 퉤 뱉어 주고 싶은 충동을 가까스로 눌러 참고 말했다.
“나는 가 볼게.”
대답은 없었다. 곁눈질로 보는 사람도 없었다. 그들에게 희준은 그럴 만한 가치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에게 희준은 그저 자신들이 얼마나 대단한지 자랑 좀 하고 넘쳐나는 돈으로 술 몇 잔 사주면서 우월감이나 얻어 가면 그만인 찌질한 고등학교 동창에 불과했다.
“아 씨발! 파리! 파리 나왔잖아! 벌레새끼 주제에 사람 밥 먹는데 주둥이를 들이밀어, 더럽게시리. 가만 있어 봐. 죽일려니까. ”
뒤돌아 나오는 희준 뒤에서 용 문신이 파리가 나타났다고 짜증을 부리며 소주병을 휘두르는 소리가 어렴풋이 들렸다. 희준은 저나 파리나 딱히 다를 바가 없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희준은 결제를 했다. 용 문신 녀석은 이 술은 자기가 사는 것이라며 뻐겼지만, 희준은 그가 산 술을 먹고 싶지 않았다. 자신이 지금껏 해 온 모든 노력을 부정하는 꼴이 되는 것만 같았다. 낡은 저금통을 털어 모은 끄깃한 종이돈을 모조리 지불하고 쓸쓸하게 포차를 나왔다.
초겨울의 밤 바람은 찼다. 쌀쌀한 바람이 살을 에는 듯하고 침울하게 가라앉은 보도블럭에서는 낙옆이 굴러다녔다. 군데군데 짓밟히고 뭉그러진 낙엽 더미가 보였다. 고개 숙인 채 걸어가는 사람들의 발에 채인 잎사귀가 맥없이 바닥을 굴렀다. 서리를 맞아 얼어붙고 녹아내리길 거듭한
나뭇잎에선 들큰한 구린내가 났다. 아스팔트에 눌어붙은 낙엽을 보며 사람들은 눈살을 찌푸렸다. 제 발이 밟아 으깬 생명인 줄 모르고 비난을 논했다. 일그러진 잎맥에 달이 시렸다.
밤이 깊었다. 갈 곳은 없었지만 고시원에 돌아가기는 싫었다. 돌아가봤자 벌레의 몸으로 무얼 하겠는가. 어떻게든 며칠은 밖에서 보내고 싶었다.
무작정 걷던 그의 눈에 노숙자 쉼터가 띄었다. 그 자신이 노숙자라고 인정하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당장 등산가방 앞주머니의 지갑은 텅 비어 있었고, 오늘 밤을 보낼 마땅한 곳은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궁금했다. 여기 있을 노숙자들은 어쩌다 이곳까지 왔을까. 어떤 삶을 살다가 이 지경이 되었을까. 그는 어쩌면 이들의 사연을 보고 마음의 위로를 얻고 싶었던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나만 이런 것이 아니다. 나만 초라하고 나만 불행한 것이 아니다. 여기 나와 같은 입장의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다, 혹은 내가 그나마 낫다. 나보다 더 초라하고 불행한 사람이 훨씬 많다. 여기 있는 이 사람들만 해도 그렇지 않나- 라는 결론을 얻길 바라며. 다른 사람의 인생을 재단해 제 마음 가다듬는 데 쓰는 것은 둘 중 무엇이든 똑같이 찌질하고 잔인하지만.
쉼터에 들어가자마자 피곤에 찌든 듯 보이는 사회복지사가 그를 맞이했다. 힘드셨죠, 버텨 줘서 고마워요. 틀에 박힌 말을 영혼 없는 목소리로 쏟아냈다. 서류 몇 장을 주고는 작성하라고 했는데 인적사항 란에 희준은 그냥 거짓을 적었다. 하루 머물고 떠날 건데 굳이 귀찮을 일을 만들어서 좋을 것은 없으리란 생각에서였다.
“저희 센터에서는요, 노숙인 분들께서 스스로 자립능력을 키워갈 수 있도록 도움을 드리고 있고요......”
피곤에 찌든 눈빛에 무기력한 목소리로 안내 매뉴얼을 읊는 사회복지사의 얼굴에서 희준은 한심함을 읽었다.
‘사지 멀쩡하고 젊은 사람이 벌써 이러고 산다고. 한심하다 한심해. 세상 힘든 건 아무것도 모르면서 조금만 잘 안 돼도 죽는다고 징징거리겠지.
쉼터에 들어가자마자 희준은 쓰러지듯 누워 잠이 들었다. 쉼터의 침실은 비좁았고 끼걱거리는 매트리스에선 곰팡내가 났다. 고시방에서 지겹도록 나던 익숙한 냄새였다. 이상하게도 쿰쿰한 습내와 곰팡내를 맡으니 집에 온 것 같은 편안함이 들었다. 희준은 그와 곰팡이는 떼레야 뗄 수 없는 인연 같은 관계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희준이 어둡고 습한 곳에서 피어나는 곰팡이의 포자를 맡을 때 편안하듯이, 존재조차 없는 그의 집에라도 도착한 양 익숙하듯이, 다리 많은 곤충들이 제 몸에서 균사를 키우며 어둔 곳을 활개치듯이. 배 위에서 자꾸만 미끄러지는 담요를 애써 붙잡으며, 내일 아침에 눈을 떴을 때에도 이 볼록한 배의 껍질을 보게 될지 궁금해하며 그는 눈을 감았다. 지금 그가 느끼는 감정은 걱정도 아니었고, 기대나 불안 또한 아니었다. 반질 광이 나는 껍질 아래 주인을 알 수 없는 뇌에는 소름끼치도록 평범한 무감함만이 남았다.
다음날 아침에도 이변은 없었다. 희준의 다리는 여전히 평균보다 많았고, 머리 위에서는 더듬이가 대롱거렸으며, 넓쭉한 턱은 양옆으로 벌어졌다. 딱히 별다른 감흥은 없었지만.
쉼터는 살만했다. 희준은 딱 하루만 더 이곳에서 머물기로 했다. 자신은 노숙자가 아니었고, 쉼터에서 기술을 배울 필요도 없었고 아직 여행을 더 해보고 싶었으므로. 다사다난했던 전발과는 다르게 쉼터에서 빈둥거리자 하루가 금방 저물었다. 쉼터 바로 앞 작은 공원을 거니는데 누군가 그를 불러세웠다.
“어이, 거기 청년! 어젯밤 입소헌 신입이제?”
쉼터에서 나눠주는 옷가지를 대충 걸친 몸에 꼬질한 행색, 소주 몇 병 꺼내놓고 벤치에 기대 있는 모습을 보아하니 쉼터에 머무는 노숙자 같았다. 걸걸한 목소리로 옆자리에 앉으라 하며 술을 권하는데 희준은 사양않고 자리에 앉았다. 술이 땡겨서라기보다는 쉼터까지 와서는 소주를 병째 들이킬 양으로 가득 쌓아놓고 앉아있는 이 사람의 인생이 궁금해서였다. 물론, 처음 쉼터에 들어왔을 때 했던 생각처럼 그의 불행을 자신의 것과 비교하여 상대적인 안도감을 얻으려는 속셈도 깔려 있었다.
“김씨 자네, 오늘도 또 술인가? 적당히 마시게 적당히.”
지나가던 다른 노숙자가 한마디 보태고 갔다.
희준은 노숙자 김씨와 술을 마셨다. 작은 종이컵에 몇 잔 받으니 금세 알딸딸해졌다. 김씨도 몇 잔을 거푸 비우더니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자네는 뭐 하다 여기 왔는감, 어르신께서는 어쩌다가 여기 오셨습니까. 몇 가지 질문을 주거니 받거니 하고, 얼버무리며 대답하기도, 열을 띄고 역설하기도 하고,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해가 졌다. 공원에 어둠이 드리우고 그림자만이 살아 숨쉬는 시간, 거나하게 취한 김씨와 희준은 반쯤 흥분한 채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김씨는 중얼거리며 계속 술을 마셨다.
“염병...... 저 위 사람들한테 우린 아무것도 아녀. 그래, 맑은 하늘을 보고 햇살이나 따뜻한 줄 아는 저 놈들한테 시궁창 속 우린 아무것도 아니라고. 우린 버러지여, 버러지. 귀찮고 더럽고 짜증나고 혐오스러운, 그래 버러지만도 못한 존재... 멀끔허게 차려입은 젊은 것들은 우리 앞을 지나가면서 경멸하는 눈빛을 던지지. 버러지 주제에 인간처럼 생겨삤다는 디서 오는 혐오감인 겨. 지랄 염벼엉... ”
김씨는 종이컵에 소주를 한잔 더 부었다. 말간한 소주 표면에 그의 늙수그레한 얼굴이 비쳤다. 액체가 흔들림에 따라 그 위에 올라앉은 김씨의 모습이 이지러지고 다시 뭉개지기를 반복했다. 수십의 물비늘 위로 쪼개져 산산히 일그러진 김씨의 상에선 놀랍게도 아무런 위화감이 들지 않았다. 원래부터 비틀린 모습이 본모습이라는 듯 삼차원에서 고스란한 그의 실물을 보니 오히려 왠지 모를 불쾌감이 느껴질 지경이었다. 혼란의 당사자는 넘치도록 찰랑한 잔을 한 입에 홀딱 털어넣고는 말을 이었다.
“그래 우리 같은 버러진 그냥 술을 동무 삼어 하루하루를 버텨내는 겨. 생존허는 거지. 그런데 말이여, 사실 술은 절대 동무가 될 수 없다네. 아는감? 저승길 길동무라면 또 모를까. 에헤, 목 탄다.”
김씨는 종이컵에 다시 소주를 따랐다. 작은 컵 위로 술이 팽팽하게 차올랐다.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은 상태에서 표면장력이 깨지자 소주가 컵 가장자리로 주르륵 흘렀다. 김씨는 얼른 컵을 핥고는 남은 술마저 한꺼번에 마셔 버렸다. 그리곤 이내 못마땅한 듯이 소주를 병째 들어 입에 들이부었다. 허옇게 설태가 끼어 술병을 날름거리는 혓바닥이 게걸스러웠다.
김씨는 죽고 싶다고 했다. 죽으러 가기 위해 하루하루 벼르는 중이라고 했다. 마음 닿는 날 새벽에 한강으로 갈 것이라며. 죽기 전 마지막으로 보는 것이 떠오르는 태양이라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 겉다고, 탄식하듯 뱉었다.
“일출이라, 멋지지 않언가? 평생을 가라앉는 것만 보고 살어 왔는디, 일출 딱 보믄서 죽으믄 더할 나위 없겠구먼. 그렇게 강 밑으로 떨어져서는 괴기 밥이 되는 거제. 나름 의미 있지 않남? 오십 줄이 다 되도록 남의 것 빼앗기만 혔는데 죽고 나서는 괴기들헌테 내 몸 내주어 먹여 살리는 거제. 더러운 세상... 죽어야지, 죽여야지......”
김씨는 말을 마치고 자려는 듯이 몸을 비스듬히 기울였다. 그리고 어쩌면 분위기에 취해 충동적으로, 어쩌면 기나긴 고심 끝에 희준은 질문을 던졌다. 여행을 떠나게 된 날 아침부터 줄곧 희준을 괴롭혀왔던 질문이었다.
“어르신, 어르신께선 제가 어떻게 보이십니까.”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어이없는 질문. 저걸 왜 물어보지, 별 생각 없이 되묻거나 피식 웃으며 지나칠 질문. 하지만 희준에게는 너무나도 중요했다. ‘어떻게 보이냐’, 그 두 단어 안에는 미처 꺼내지 못한 수십 개의 질문들이 들어 있었으므로.
저는 정말 벌레인가요. 저는 엄청 큰 벌레인데도 신경쓰지 않고 그냥 지나쳐갈 정도로 하찮은 인간인가요. 제가 이 세상에 그렇게나 의미없는 존재인가요. 아니면 모든 게 다 제 환상인가요. 저는 사지 멀쩡한 인간인데 인생에 지쳐서 헛것을 보는 건가요. 환각을 보고 혼자서 착각하다가 서서히 미쳐 갈 운명인가요.
김씨는 클클 웃기부터 했다.
“그래 아직도 인간이고 싶은가? 여기 이렇게 밑바닥까지 떨어져서도 사람 취급 받길 원했어? 어떻게 보이냐 묻는다면 버러지 한 마리가 보인다 말허겠네. 그래 싸구려 추리닝 입고 씨꺼먼 가방 메고 내 앞에 잘도 서 있구만. ”
김씨는 독하게도 내뱉었다. 하지만 희준만 버러지인 것은 아니라고. 희준도 버러지이고, 김씨 자신도 버러지이며 아무 데나 널브러져 잠든 다른 노숙자 박씨나 이씨, 혹은 저들 사이에서 우두머리 노릇을 하는 일명 거지 왕초 장 영감조차도 예외는 아니라고 말했다. 장 영감이야말로 버러지 중의 버러지라 역설하는 김씨의 팔뚝에 힘줄이 돋았다.
“장 영감, 고것이야말로 진정 나쁜 놈이여. 저도 버러지면서 약허고 힘없는 놈들만 골라 빨어 먹는 버러지제. 허어, 저 잘난 맛에 사는 거지 왕초도 버러지라고. 다 버러지라고. 저 지나가는 사람들도 버러지여. 깨끗헌 척 멀쩡헌 척 허지만은 다 똑같이 더럽고 추악한 버러지란 말이제. 결국 우린 다 버리지여, 버러지... 이 버러지 세상...... 차라리 진짜 버러지가 우리보담 낫겄네.”
말을 마친 김씨는 쓰러지듯 잠들었다. 멀리 하늘이 어슴푸레하게 빛났다. 먹물처럼 뒤덮은 어둠이 서서히 가시고 파르스름한 남색이 서서히 맑아져 갔다. 먼동이 트고 있었다.
희뿌연 구름 아래 새 해가 떠오르고, 여명의 몽환 속에서 모든 것들이 신비롭게 반짝였다. 심지어는 희준의 등을 덮은 흉측한 등껍질마저도 타오르는 햇빛에 윤이 나는 것이 귀한 금속 장식처럼도 보였다. 허나, 그러면 무얼 하는가. 새로운 햇살이 날을 비추고 또 다른 하루가 막을 열어도 그 자신의 현실에선 변한 것이 없는데. 비단 벌레뿐이 아니다. 늘 그랬다. 학창 시절에도, 고시원에서도. 답답하고 막막한데 끝없이 계속되는 어둠에 날이 밝기를, 새 아침과 함께 모든 것이 나아지기를 애타게 기도했지만 변화 없는 시작은 또 다른 고문이었다. 차라리 그때보다는 지금이 나았다. 좁은 방에 욱여넣어진 채 똑같은 천장과 마주하는 것보단, 매일 아침 새로운 곳에서 타는 해와 인사할 수 있었으므로.
희준은 쉼터 구석으로 갔다. 자기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김씨가 어디 누워 있는지도 모른 채. 이대로 헤어지고 무소식으로 지내는 것이 둘 모두에게 아름다운 인연이 되리라 생각하면서, 몸을 말고 웅크려 잠이 들었다. 꿈도 없는 잠을 잤다. 아침에 완전히 날이 밝았을 때 가보니 누워 있던 김씨는 어디론가 홀연히 사라지고 없었다. 간밤 자그만 만남의 흔적은 평상 가장자리에 소보록 쌓인 초록색 술병으로 남았다. 그의 분신이나 다름없는 술병조차 남기고 유일한 보금자리인 쉼터에도 보이지 않는 그는 어쩌면 정말 소원대로 한강에 갔는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희준 역시 고요할 때 조용히 쉼터를 빠져나왔다.
아침 공기는 상쾌했다. 오늘은 서울 곳곳을 돌아다녀 보기로 했다. 취업 준비를 하기 시작했을 때부터 줄곧 살아왔지만 이렇게 여기저기 왔다갔다 해보는 건 처음이었다. 늘 고시원에만 들어앉아 있어서 잘 몰랐지만 서울이란 생각보다 큰 도시인 것이었다.
서울역에는 노숙자들이 많았다. 쉼터에서 봤던 사람들보다 더 꼬질꼬질한 모습으로 신문지쪼가리나 덮은 채 누워있었다. 지하철 타고 어디라도 가 볼까, 손 안에서 동전을 굴리는데 노숙자 중 하나가 다가와 여기는 자신들의 구역이라며 이 근처에서 얼씬도 하지 말라고 으르대었다. 훔치든 구걸하든, 이곳 사람들은 우리 몫이니 썩 꺼지라고 하는 걸 보니 같은 처지의 사람들끼리 알아보는 모양이었다. 희준이 재빨리 알겠다고 꼬리를 내리며 물러나자 그는 재미를 보고 싶다면 가보라고, 한 뒷골목을 추천해줬다.
어둠이 내린 지 오래건만 이 수상한 골목길은 낮처럼 요란스레 밝았다. 각종 음담패설이 곳곳에서 들려오고 이 이야기들에 버금가는 음탕한 일들이 실제로도 수없이 많이 일어나는 뒷골목 유흥가였다. LED등이 간판에서 잔망스레 진동하고 가게 문턱마다 네온사인이 비현실적인 형광빛을 뽐내고 있었다. 주위를 살피면 눈에 띄는 가게들이라고는 전부가 클럽, 노래방, 각종 술집에 감성포차였으니 어떤 용도로 사용되는 거리인지는 알 만 했다.
젊은 사람들이 옷을 걸친 둥 마는 둥 하고서 여기저기 활보하고 돌아다녔다. 팔짱을 낀 채 바짝 붙어 있는 커플의 쌍들도 심심찮게 있었다. 대충 보아하니 거의 대부분이 오늘 처음 만난 상태인 것 같았다. 희준은 쓴웃음을 지었다. 아마 저들 중 태반이 오늘 밤 분위기에 취해 모텔 방에 들어갔다가 다음 날 아침 매실 주스나 마시면서 말다툼을 할 것이다.
마땅한 짝을 찾지 못했는지 혼자인 여자들은 지나가면서 희준을 흘끔 살폈는데 그의 남루한 행색과 저도 모르던 새에 풍기던 악취 때문에 이내 시선을 거두었다. 희준은 그 눈빛이 어딘지 모르게 먹잇감을 탐색하는 야수의 그것처럼 느껴졌다. 빨아먹기 좋은 사냥감을 노리는, 야만적이고 원초적인 짐승의 탐욕.
희준은 한 여자를 떠올렸다. 어쩌다 우연히 만나 인연을 맺었던, 하얗고 가지런한 이가 예뻤던 오래전의 애인이었다. 그녀는 벌레를 무서워했다. 작은 날파리 하나에도 흠칫흠칫 놀라 희준 뒤로 숨으며 에프킬라, 에프킬라를 외치곤 했었다.
“오빠, 난 저 입이 너무 싫어. 벌레 입. 으으, 너무 징그럽고 끔찍해. 뭐든지 다 씹어버릴 것 같잖아. 물리면 얼마나 아플까.”
희준은 여자의 고운 입을 생각했다. 그리고 곤충의 흉한 입을 생각했다. 붉게 반짝이는 아름다운 입술로 핏물 흐르는 고기를 씹으며 엄치를 추켜올리던 그녀의 모습을 생각했다. 세상 무엇이든 다 찢을 수 있을 듯한 턱으로 음식물 쓰레기통에서 삭은 국물을 빨아마시던 그것의 모습을 생각했다. 벌집을 녹여 만들어진 립밤을 바르던 오동통한 입술과, 진흙을 으깨어 애벌레의 요람을 만들던 강한 턱을 생각했다. 웃을 때 살포시 드러나던 여린 이빨 끝에서 무엇이 산산조각날 수 있는지를 생각하고 뾰족한 가시가 빽빽하게 돋친 날카로운 턱 끝에서 무엇이 생겨날 수 있는지를 생각했다.
한날 밤 그에게 다가오던 입술을 생각했다. 그 안에서 부드럽게 미끄러지던 혓바닥을 생각했다. 입술 끝에 묻었을 핏방울을 생각했다. 매끄런 혀 위에서 능욕하듯 둥글려졌을 죽음의 붉은빛을 그는 생각했다. 인간으로서 존재하기 위해 필연적으로 짓씹어 삼켰을 다른 수많은 이들의 핏방울을.
성능 좋은 희준의 겹눈은 고개를 돌리지 않고도 그의 억센 턱을 자세히 내려다볼 수 있었다. 두 갈래로 갈라진 집게 모양의 턱에서, 순간 희준은 걸쭉한 피가 흘러 떨어지는 것을 본 듯도 했다.
피곤한 희준은 보이는 아무 벤치에나 몸을 누였다. 며칠 밖에서 지내다 보니 딱딱한 바닥에 등이 배겨도 불편하지 않았다. 그저 누울 수 있다는 사실에 안도하며 무의식 속으로 빠져들었다.
꿈을 꾸었다. 캄캄한 꿈이었다. 어둠 속에 홀로 서 있는 그 주변으로 몇몇 사람들이 스쳐 지나갔다. 부모님, 친구들, 연인. 희준이 소리쳐 그들을 불렀지만 그들은 듣지 못한 것처럼 그냥 걸어갔다. 모든 사람들이 느릿느릿 떠나 버리고 결국엔 암흑 속에 그 혼자 남았다. 떠나간 사람들의 잔상이 시야에 어른거렸다. 그가 없는 그의 가족은 편안하고 완벽해 보였다. 옛 친구들은 저마다 이룬 업적들을 주섬주섬 들고선 빠른 속도로 달려나갔다. 한때 그의 곁에 있던 여자는 다른 남자의 품에서 행복하게 웃고 있었다. 눅눅한 그림자만을 드리우고 덩그러니 남겨진 그에게 이곳, 끝없는 어둠이야말로 가장 어울리는 장소처럼 느껴졌다.
낙오,
침잠.
모든 것을 멈추고 살기를 그만두고
끝없는 어둠 속에 계속해서 가라앉고만 싶었다.
내일 아침에 눈이 떠지지 않기를 바랐다.
늘 그랬듯이, 하늘은 그의 바람 따위 들어줄 생각은 추호도 없었지만.
저주처럼 기상한 다음날도 그랬다. 희준은 무력하게 일어나 어두운 골목을 돌아다녔다. 사람 몇 명이 죽어나가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으슥한 조폭의 근거지 비슷한 곳도 밟아 봤다. 지나가다 보이길래 곤충 박물관에도 들리려 했지만 돈이 없어 입구에서 가로막혔고 홍대 앞에도 가 파룻파릇한 대학생들을 봤다. 아무 근심 없고 맑게 반짝이는 그들의 얼굴을 오래오래 쳐다봤다. 그의 얼굴에서는 오래전에 사라져 버린 표정이었다. 턱을 일그려 웃음을 지으려 했으나 굳어버린 안면 근육은 도무지 움직이질 않았다. 곤충으로 변해 버린 얼굴 탓이 아님을 알았다.
따뜻하고 먹을 것이 있는 낮은 금방 지나갔다. 춥고 외로운 밤은 어김없이 찾아왔다. 이날 희준은 한강 근처 공원을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벤치에 앉아 담배를 피웠다. 고시원을 떠날 때 가지고 온 등산가방에 담뱃갑을 넣어뒀었다. 큰 맘 먹고 샀던 캡슐담배였다. 담배를 물자 캡슐이 깨지는 소리가 났다. 그 소리와 함께 그의 가슴 속 어딘가에서도 무언가가 터져 버린 것 같았다. 커다랗고 큼직한 것이 펑 하고 폭발해 버렸지만 후련함도 개운함도 없었다. 담배를 피우고 또 피워도 마음이 답답하기만 했다. 희준은 담배를 땅바닥에 던지고 발로 밟아 버렸다. 담배가 으깨지고 검은 찌꺼기가 흘러나왔다. 바닥에 늘어붙은 그 검은 것이 꼭 희준 자신의 신세 같아서 그는 헛웃음을 지었다.
피곤하고 힘들어서 그만 좀 자고 싶었지만 벤치에는 팔걸이가 있었다. 가까스로 비집고 눕기에도 좁은 벤치에 쇠로 된 팔걸이를 달아 공간을 나누어 놓았다. 노숙 방지용이었다. 이기적인 사람들. 그들은 갈 곳 없는 다른 사람들이 벤치에 몸을 누이는 것조차 싫어하며 기어이 막아 버렸다.희준은 그냥 공원 구석에 눕기로 했다. 누군가 주우려다 흘린 듯한 종이 상자들이 납작하게 눌려진 채 버려져 있었다. 짜부라지고 너덜너덜해진 채 밟힌 자국이 가득한 상자 위에 고된 몸을 누였다.
피를 한 방울이라도 더 빨겠다고 모기들이 앵앵거렸다. 희준은 손을 휘둘러 쫒는 것조차 관두었다. 살기 위해 남의 피를 빠는 것은 모기나 인간이나 꼭 같았다. 빨지 않으면 빨리는 세상, 희준은 살기 위해 버둥이는 것조차 포기했다.
그는 벌레와 인간을 구분짓는 것이 의미가 있을까 궁금했다. 그가 진짜로 벌레인지는 이제 더이상 궁금하지 않았다. 어차피 이곳은 벌레들이 가득한 구렁텅이. 갖가지 벌레들이 넘쳐나는데 그 하나 인간인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미친 사람들이 수두룩한 세상에 그 하나 더 미쳐서 환각을 본다 한들 뭐 특별할 게 있을까.
그냥 이대로 잠들어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희준은 무기력하게 생각했다.
눈을 감자 눈앞이 까맸다.
그의 미래도 이렇게 까맣겠지.
어쩌면 진실로 까만 것은 그를 둘러싼 세상일지도 모르겠다.
해가 막 떠오르려 하는 새벽, 누군가가 희준을 깨웠다. 순찰에 나선 경찰인 듯 했다. 귀찮기도 하고 난감하기도 한 표정으로,
“여기서 주무시면 안 됩니다.”
차갑게 내뱉을 뿐이었다.
희준은 어영부영 일어났다. 발길 가는 대로 그저 계속 걸었다. 걷고 또 걷다 보니 한강이었다. 멀리 보이는 산에서 해가 고개를 빼끔 내밀었다. 이른바 죽기 딱 좋은 시간이었다. 시꺼멓게 넘실거리는 강물이 보였다. 어쩌면 저 끝을 알 수 없는 물 밑에서 노숙자 김씨가 바라던 대로 물고기에게 뜯어먹히고 있을지도 몰랐다. 김씨, 노숙자들, 밤거리, 홍대 옛 친구들, 고시원. 모든 것이 꿈결처럼만 느껴졌다. 하찮은 몸뚱아리에 깃든 기구한 팔자를 어떻게든 펴 보겠다고, 고시원에 스스로를 가두고 발악하듯 공부하던 시절이 까마득한 옛일처럼만 생각되었다. 자신에게 그런 일이 있었다는 사실이 실감나지 않았다.
금방이라도 올라갈 수 있을 것 같은 난간을 한참 바라보다가 다시 터덜터덜 다리를 내려왔다.
그는 고시원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그가 세상에 존재했다는 흔적을 찾고 싶어서.
며칠 만에 돌아온 고시원은 떠나기 전과 똑같았다. 거미줄이 군데군데 늘어져 있고 먼지가 한 꺼풀 더 쌓인 것만 빼면 모든 것이 같았다. 그는 그 며칠 사이 모든 것이 변하는 경험을 했는데 세상은 아무 것도 바뀌지 않았다. 심지어는 그가 몇 년을 함께해온 삶의 터까지도.
옆방 아저씨는 또다시 소리를 질렀다. 위층 청년을 향한 고함이었다. 발 끌고 다니지 마라, 남의 걸음걸이에 참견하지 마세요. 한 두 번 오간 대화가 아닌 듯싶었다. 희준은 그가 떠난 동안 옆방 아저씨는 새로운 화풀이 상대를 찾은 모양이었다. 주고받는 욕설이며 저주가 익숙한 흐름이었다. 얼마 안 가 앞방 수험생이 발을 굴렀다. 그만들 좀 해요! 희준이 있었을 때와 다를 것이 없었다. 몇 년을 얄팍한 벽 하나 사이에 두고 동거동락하던 희준의 부재는 그들의 추한 일상에 일말의 변화도 일으키지 못한 듯했다.
희준은 침대에 쓰러지듯 누웠다. 매트리스가 풀썩 먼지를 일으키자 찬장 구석 어딘가에서 바퀴벌레 몇 마리가 도도도 도망가는 소리가 났다. 평소였으면 에프킬라를 꺼내고 뿌린다고 난리를 쳤겠지만, 희준은 아무 짓도 하지 않았다. 아무 생각이 없었다. 모든 것이 귀찮고 짜증났다.
눈을 감았다.
불을 끄는 것마저도 하기 싫어 뒹굴, 몸이나 한 바퀴 뒤집었다.
천장의 형광등이 몇 차례 지지직거리고 깜빡이다 이내 꺼져 버렸다. 몆 주 전부터 불안하게 흔들리더니 기어이 불이 나간 모양이었다. 하기사 별 상관도 없었다. 이제 와서 조명의 고장 정도는 말도 안 되게 하찮고 우스운 문제처럼 느껴졌다.
불이 꺼진 고시원은 시커맸다. 방 안에선 찝찌름한 곰팡내가 났다. 오래되어 빛 바래고 헤어진 벽지에는 곰팡이가 꽃처럼 피었고, 복도 끝 공용화장실에서 새어나온 지린내가 공기에 배어 있었다. 눈살을 찌푸릴 처지는 아니었다. 그의 몸에서는 방에서 나는 것보다 훨씬 더 지독하고 고약한 냄새가 났으므로. 며칠을 씻지 않고 밖을 쏘다닌 까닭이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어두운 가운데 사르륵거리는 벌레들의 소리가 들렸다. 온 세상 곳곳에 벌레들이 드글거라고 있다. 찬장 속에서 바퀴벌레가 날개를 치고, 마루 밑에서 돈벌레가 몸을 뒤틀고, 매트리스 사이에서 집진드기가 톡탁거린다. 저들끼리 다투고, 언쟁하고, 으르대고, 치고 받고 싸우고, 죽일 듯 덤벼들고, 비명을 지르고, 서로의 살점을 물어뜯는다. 패배한 놈은 너덜해진 다리를 한껏 오그리곤 죽어 나자빠지고, 승리한 놈 역시 득의에 차 뻐기다가 곧 죽어 버린다. 곁에서 지켜보던 다른 놈들은 이때다 하고 달려들어 쓰러진 두 놈을 신나게 먹어치운다. 얇싹한 껍질은 부스러기 하나 남기지 않고 사라져 버린다. 굶주린 놈들은 멈출 줄을 모른다. 놈들끼리 싸움을 벌인다. 한 무리의 곤충 떼가 뒤엉킨다. 승자도 없고 패자도 없는 싸움을 한다. 아무도 살아남지 못한다. 결국 모두가 죽어 버린다. 덩그러니 남겨진 사체들의 산 위로 또 다른 한 무리가 달려든다. 먹는다. 먹는다. 먹을 것이 동이 나면 옆에 있던 동료의 머리를 물어뜯는다. 먹는다. 마치 아무런 생각조차 할 수 없는 무지성의 괴물처럼, 보이는 모든 것을 위장에 채우려 발악을 한다.
벌레들이 희준의 몸을 타고 올라온다. 귀가 먹먹하도록 요란한 소리로 쏙싹거린다. 다리를 비벼 위협적인 쇳소리를 낸다. 희준은 귀를 막지 않는다. 벌레들이 희준의 살에 이빨을 꽃는다. 며칠 새 순식간에 늙어 버린 흉측한 피부다. 살갗을 물어뜯고 씹어 삼킨다. 희준의 몸은 구멍을 통해 통곡하듯 피를 흘린다. 희준은 피하지 않는다. 온 몸에서 구정물이 땀처럼 흐른다. 닦아내지 않는다. 옷에 축축하게 배어 나온 액체에선 피비린내가 난다. 옆방 아저씨는 코를 골며 자고 있다.
어디선가 펑 하는 소리가 난다. 이어서 계속된다. 펑. 펑. 펑. 벌레들이 터지고 있다. 너무 많은 것을 작은 위에 욱여넣은 탓인지, 벌레들의 배가 터지고 있다. 풍선처럼 빵빵해진 위장에 버르적대던 벌레들은 곧 사방으로 터져 나간다. 펑하고 솟구친 몸뚱아리는 한 조각 먼지가 된다. 우습다. 어차피 결국엔 모든 것이 다 먼지나 다름없는데. 어리석다. 감당도 못 할 욕심으로 배를 불리다 죽어 버리고. 같잖다. 제 팔이 떨어져 나가는 줄도 모르고 남의 팔을 물어뜯는 꼴이라니. 하찮다. 한심하다. 더럽다. 추하다.
벌레들이 터져 먼지로 와해되는 동시에 눅눅한 벽지에서는 곰팡이가 피어나고 있다. 한 마리가 폭발할 때마다 한 송이가 피어난다. 얼룩진 벽지 위로 개화하는 포자의 꽃. 곰팡이가 벽 위에서 꿈틀거린다. 시커먼 색의 균사는 팔을 뻗는다. 얽히고 뭉쳐서 모양을 만든다. 벽 속에서 피어난 한 생물이 희준을 마주본다. 벌레의 머리를 달고 있는 사람이다. 희준 자신이다. 곰팡이와 쓰레기로 빚어진 또 하나의 자신이 그를 향해 팔을 뻗어온다. 곤충의 입을 벌려 말한다. 너무나도 익숙한 말이다. 지겹도록 들어 온. 지겸도록 지껄여 온. 안녕하세요, 면접번호 24601 박,희,준 입니다. 저는 엄격하신 아버지와 인자하신 어머니 밑에서 자라… 당찬 포부와… 이 회사가 저를 더 상장시킬 수 있는… 인재와…. 기회가 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고……
희준은 구역질을 한다. 끈적하게 으깨진 토사물이 식도를 벗어나 매트리스에 걸쭉하게 고인다. 또 다른 희준도 토악질을 한다. 벌린 입에서 악취와 함께 종잇조각이 폴폴 날린다. 군데 군데 써금써금한 작은 종잇조각들은 희준의 자소서다. 허공에서 종잇조각이 움찔거린다. 파닥거리면서 창문에 몸을 부닥친다. 녹 슨 창틀에서 끼익끼익 소리가 난다. 종잇조각은 나비처럼 파닥파닥 난다. 아니 어쩌면 저 몸짓은 나방에 더 가깝다. 죽음으로 향하는 줄도 모르고 무지몽매하게 불 속으로 날아드는 불나방. 생각을 하는 순간 나방의 몸에서 불길이 인다. 모든 것을 다 태우려는 양 화마가 넘실거린다. 불꽃 사이사이로 벌레들이 튀어오른다.
벌레들이 말한다. 타오르면서 익어가면서 재가 되면서 속살거린다. 안녕하세요, 면접번호 24601 박,희,준 입니다. 저는 엄격하신 아버지와 인자하신 어머니 밑에서 자라… 당찬 포부와… 이 회사가 저를 더 상장시킬 수 있는… 인재와…. 기회가 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고…… 지랄, 지랄 염병. 지랄 염벼엉… 우린 버러지여. 모조리 다 버러지여. 버러지 세상. 차라리 진짜 버러지가 우리보담 낫겄네. 버러지, 버러지, 버러지. 이 버러지야. 벌레만도 못 한 새끼야.
허공에서 불꽃이 뭉친다. 동그랗게 굴려진 불덩어리는 무언가의 형상을 갖춘다. 붉은 표면이 반질거리는 탐스러운 과일이다. 사과다. 희준은 까닭을 알 수 없는 공포에 휩싸인다. 비단 사과뿐이 아니다. 세상에 대한 공포다. 사과에서부터 유발된 두려움이, 그가 살아가는 이 세계에 대한 끔찍함을 깨닫게 한다.
부유와 풍요를 상징한다 일컬어지던 그 사과조차도 샐 수 없이 많은 이들의 고통을 초래했는데. 사과. 먼 옛날 신화 속 죄수가 목을 축이려 애타게 갈망했던. 전해오는 이야기에서 두 명의 순수한 인간을 타락으로 밀어넣고 만. 가장 아름다운 여인의 상징이라며 수많은 사람을 죽인 전쟁의 시초가 된. 질투에 눈이 먼 어미가 독을 묻혀 타락시킨. 그보단 조금 더 가까운 옛날 누군가의 등껍질에 혐오스럽게 던져졌던. 사과의 형태를 한 알불이 이글거리며 타오른다. 멍하니 바라보던 희준의 갑피에 불꽃이 내리꽂힌다. 타오른다.
벽에서 곰팡이가 녹아내린다. 마치 시커먼 용암처럼 온 방 안에서 부글거리며 출렁인다. 불타는 불나방들이 실끈에 뒤덮여 춤을 춘다. 희준도 비척거리며 일어난다. 춤을 추듯 방안을 걷는다. 수험생의 앞방에서 알람이 울린다. 누군가 발을 구르며 뭐라뭐라 비난을 한다. 희준은 춤을 춘다. 가느다란 다리를 한껏 벌리고 비좁은 방 안을 훌쩍훌쩍 뛰어다닌다. 불꽃의 열기에 껍질이 바삭바삭 갈라진다. 벌레의 갑피가 녹고 누린내가 진동한다.
희준은 홀린 듯 활보한다. 어느 순간 그의 손엔 칼이 들려 있다. 녹 슨 커터칼이다. 언제 마지막으로 이걸 썼더라, 희준은 기억나지 않는다. 자소서에 붙여넣을 사진을 자르던 생각이 난다, 칼끝에 침을 발라 가며 조심조심 잘라냈었지. 회사가 내놓은 규격 안에 맞춰넣으려고 기를 썼었지. 하긴 그기 다 무슨 소용이겠는가.
드르르르륵.
칼날을 꺼낸다. 녹 슬고 때가 묻어 더러워진 날엔 아무것도 비치지 않는다. 칼을 훠이훠이 휘두른다. 칼춤인가. 번쩍이는 칼날이 황홀해 보인다. 모든 것을 끊을 수 있을 듯한 매서운 금속 앞에서 희준은 온 세상이 장난처럼 느껴진다. 허구한 낮잠 속 꿈결처럼 여겨진다. 희준의 온 몸이 그것을 원하고 있다. 어쩌면 부탁하고 있다. 애원하고 있다.
칼날이 손목을 파고든다. 주변이 조용해진다. 불길이 사그라든다. 나방이 얌전해지고 종잇조각이 날개를 접는다. 벌레들의 속삭임이 사그라든다. 흘러넘치던 곰팡이가 되돌아온다. 벽을 꿈틀거리던 포자들이 잠잠해진다. 곰팡이로 맺어진 희준이 와해되듯 소멸한다. 고함과 폭발음은 중얼거림이 되어 마침내 침묵이 빈방을 채운다.
진득한 액체가 하염없이 흘러내린다. 손목이 시리다. 희준은 후련함을 넘어 뿌듯함마저 느낀다. 혈관으로부터 솟구친 체액이 팔뚝을 타고 흘러 천천히 고인다. 기꺼이 흐려지는 시야의 끝에서 희준은 의문을 가져 천천히 눈을 깜박인다. 희준은 알 수가 없다. 나는 무어냐.
그가 낡은 칼로 그은 것이 비쩍 마른 인간의 손목인지, 딱딱한 벌레의 다리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아무도 알지 못할 것이다. 그날 칼에 베인 상처에서 끊임없이 흘러내리던 액체가 인간의 붉은 피였는지, 벌레의 누런 진액이었는지는 아무도 모를 것이다. 그 다음 날, 어쩌면 또 다음 날, 참을 수 없는 악취에 못 이긴 사람들이 희준의 방이었던 곳에 들어왔을 때 발견하게 될 것이 잔뜩 쭈그러진 초라한 인간의 거죽일지 바삭바삭한 껍질만 남은 한낱 벌레의 사체일지는 아무도 모를 것이다.
아니,
사실 애초에
그런 것은 별로 중요하지도 않았다.
중요하지 않다는 사실이 중요했다.
김씨의 말처럼,
인간들은 전부 다, 한 마리 벌레에 불과했으니까.
*이 글은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1915)를 모티브로 하여 쓰여졌으며 이 글의 일부 문장들은 같은 책에서 발췌, 변형한 것임을 밝힙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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