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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구미를 좋아하는 사람

  • 작성자 데카당
  • 작성일 2024-04-21
  • 조회수 147

몸에서 떨어져 나간 거뭇한 부스러기들이 덮인 하얀 잎을 수놓은 초록 매트 위에 앉아서 자판을 두드리고 있는 사람을 봐 주시겠습니까, 고고한 분들. 여기서 고고라 함은 오래된 창고올시다. 오래된 창고에 바구미가 쏠아낸 숭숭 뚫린 현미처럼 틀어박혀 있는 분들, 여기 누워있는 사람은ㅡ사람? 뭐, 사람인가 봅니다ㅡ지금 여기 누워서ㅡ아무래도 사람으로 보이지는 않는데ㅡ손에ㅡ발에?ㅡ바구미를ㅡ그 바구미를 참으로 좋아합디다ㅡ올려뒀다는 상상을 하고 있습니다. 어떤 인연ㅡ인? 여기서는 뭐라고 해야 맞는 거랍니까? 국어선생님!ㅡ이 이 것이ㅡ매트 위에서 자판을 두드리고 있는 것ㅡ바구미를 좋아하도록 만들었는지 아십니까? 저는 잘 알지 못합니다마는, 이 것에게ㅡ가능하다면,ㅡ직접 물었을 때ㅡ그만, 물지 마! 아프잖아!ㅡ답이 나올런지도 모릅니다. 어이! 거기! 그ㅡ대본을 봐야겠군요,ㅡ거적대기ㅡ이건 참으로 적절한 비유라고 생각되는데ㅡ같은 매트 위에 누워서 자판을 두들기는 것! 이리ㅡ사실 같은 곳에 있지만ㅡ와봐! 말을ㅡ말로 했을까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데?ㅡ못 알아듣나? 당연히 그러시겠지, 생각은 인간만이 할 수 있다고 고명하신ㅡ쓴 생명을 뜻한다고 하네요ㅡ 당스 선생님ㅡ국어 선생님이시다!ㅡ이 그러셨으니까. 야! 오라고! 이제야 반응을 보이는 군요. 뭐라고 중얼거리는데 뭐 생각을 하지도 못하는 주제에 말이나 할 줄 알다니, 그런데 말을 할 줄 알면 뭐 한답니까? 제가 보기에는 저 것이 생각을 할 줄 알아도ㅡ만약에!ㅡ입ㅡ당스 선생님이 이르시길, 말을 만들어내는 기관이다ㅡ에서는 하등 쓸모도 없는ㅡ그렇다면 고등 쓸모는 있나? 하등이 없으니 고등도 없나?ㅡ부산물ㅡ이봐, 부산에 있는 물은 소금물이라 꼭 필요한 것이라고ㅡ을 배설하기만 할 텐데. 손이라고 불러도 될 것에 올린 바구미가 떨어지도록 당겨봤지만 미동조차 없네요. 오늘 극은 여기서 끝입니다ㅡ이 매트를 얼마나 힘들게 만들었던지!ㅡ. 암전.

:헛소리 그만하고 거울이랑 개새끼 치워!

거울? 개? 무슨 말을 하는건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헛소리ㅡ이게 어떤 소리인지도 모르겠거니와ㅡ? 제발 말ㅡ알아들을 수 있는!ㅡ로 해주시면 그 고고함이 보일 것도 같습니다. 스탭! 암전이라고! 스탭도 말을 못 하는 걸까요? 말을 못한다고 해도 알아들을 순 있어야 하지 않습니까? 뭐, 제가 정리를 해야겠군요. 당스 선생님께서 이르길ㅡ사실 제대로 기억나진 않습니다만ㅡ, 회자정리라고 하더군요. 회자가 정리를 해야한다, 그런데 회자가 무엇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거기 고고한 분들, 회자가 무엇이랍니까? 또 못 알아듣네. 아까 제가 한 말들도 못 알아들었습니까? 이거 원, 고고하다고 생각했더니 그것도 아니군요. 이제는ㅡ이제야 라고 해야 더 맞을까요?ㅡ뭐라고 불러야 하련지. 음, 사실 관중들ㅡ관람객이 맞습니까? 이런 자리가 처음인지라 잘 모릅니다ㅡ이 잘 보이지도 않습니다. 모두 앉아있는 것에서, 아니, 하나 둘 일어나기 시작하는 군요. 뭡니까? 내가 말을 하고 있지 않습니까? 기본적인 예의조차 모르는 분들에게 고고씩이나ㅡ사실 고고 또한 무슨 뜻인지 모릅니다마는 아무튼지간에요ㅡ붙였다니! 이해할 수 없고 이해하고 싶지 않고 이해했다면 좌절했을 만한 분들 같으니라고. 아, 제가 고고 대신 붙일 말을 생각해 내는데 너무나 많은 시간ㅡ15분을 쓴 것으로 추산, 추산은 뭡니까?ㅡ을 썼기에 싫증이 난 겁니까? 예, 제가 예의가 없었군요. 고고ㅡ쓰게 부른다는 뜻이랍니다ㅡ한 분들, 발의ㅡ저건 발이 확실합니다ㅡ방향을 돌려서 돌아와 앉아ㅡ서도 될까요? 아마 예의에 어긋날지도 모릅니다ㅡ주십시오. 제가 뭘 잘못ㅡ머리가 잘려나간 못입니다ㅡ했습니다. 제 실수입니다. 그런데 허수가 없으니 어찌된 일이랍니까? 실수를 만회ㅡ아까 전의 회자와 비슷한 뜻이라고 들었습니다ㅡ할 기회를 주십시오. 어떻게 안 되겠습니까? 가설무대ㅡ가짜 눈이 뿌려진 무대입니다ㅡ라도 무대ㅡ무 줄기를 말합니다ㅡ에 오른 것은 처음입니다. 처음 올라온 사람의 말을 전혀 들어먹지도 않고 자리를 뜨는 것은 어디서 나온ㅡ예의가 어디서 나와야 할까요?ㅡ 예의랍니까? 예, 내려가겠습니다ㅡ이 무대, 땅에 바로 있는거 아니었나요?ㅡ. 거울은 모르겠지만 바구미는 손에 들고 매트는, 머리에 이고 나갑니다. 차가운ㅡ제 체온보다 낮아 보이는 관중들입니다ㅡ관중들, 앞으로도 그러지는 마시길! 한 번의 실수가 두번째의 의도ㅡ뜻을 가진 복숭아가 무슨 뜻입니까?ㅡ가 되지 않길!

암전.

가설무대에 뿌린 눈이 치워지고, 주연을 비추던 거울이 치워지며, 누군가 데려온 개는 뒤주에서 발견된다. 아무렇게나 늘어진 의자 위에 앉은 개들이 사방으로 다리를 뻗어 기지개를 펴고, 개 주인들이 돌아온다. 나는 무대 구석 매트 위에 앉아서 대본을 들여다보며, 주연의 대사를 읽는다. 아, 내 역은 뒤주였다. 주연의 대사를 왜 읽느냐 하면, 이 극의 초점이 뒤주에 있기 때문이라고나 할까. 그나저나 바구미가 가만히 서서 날 보던데, 개 하나가 올라와서 긁기도 하고. 개가 긁은 상처는 어린 날의 기억을 떠올리게도 하지만 좋은 기억도 아닌데. 집에 가면 붕대질 먼저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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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어들어간 곳이 고작 뇌 속인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독일 사는 누구 말마따나 보이지도 않는 곳에 숨어버린 것 보다는야 좋지만, 이건 뭐 차라리 동자 하나를 만드는게 나을 판인듯도 하고. 지나갔나 슬쩍 보니 가만히 앉아 기다리고 있는데, 저건 왜 저리도 끈질긴지 모르겠다. 유명한 책을 빌려 말해보자면, 나는, 저기 뭐냐-그, 아니지, 나를-굳이 혼자 아무도 없는 방 안에서 불러보고 싶다면-잠수부라 부르라. 그래, 방의 심층을 지나면 나오는 곳에서 유영하지. 가라앉아 사정없이 물어뜯긴 거적대기를 보기도-내가 곧 그 꼴이 나겠지만-좋고 파묻혀서 등각류 꼴을 해도 좋겠다. 어떻게 방에서 더 들어갈 수 있었는가 하면, 조그만 뗏목을 타고서 왔다고 써놓겠다. 뗏목에 들어가서, 열심히 구르며 흐름을 만든다. 도착하면 보이는 것은 등각류 몇마리와 거적대기의 영혼없는 환영 뿐이지만 괜찮다. 자를 대고 그은 듯한 격자 눈들이 반짝거리고 물결치듯 흐르는 명령어를 순서대로 산출하는 기관들, 접어 다닐 수 있는 몸체까지. 아름다운 등각류를 보는 것만 해도 충분조건으로 기능한다. 거적대기? 흐음, 각설. 우선 밖에 있는 치들이 지나가길 기다리는게 먼저다. 자신 있는 일이다만 왜 가만히 있는건데? 여긴 내 안식처다, 그것도 정당히 양도된-무에 의해서. 잠수부까지 그물로 쓸어가는게 네들의 방식이라면 이제는 나가줬으면 좋겠는데. 아, 나를 찾았나보다. 이런 가능세계는 원하지 않았는데 누가 함수를 만지작 거렸겠지. 밖에 있는 표상을 흔들어대니 이젠 나갈 때가 오고 있다. 터무니없이 억압적인 현실에 분개하며, 내일 다시 오리라. 다시 찾아온 곳에 확성기가 걸려있다. 거적대기 대충 뭉쳐 만든게 뭘 하겠나 싶다가 뜯긴 등각류에서 거적대기를 보고 어찔해하는 동안 쨍한 소리가 왕왕댄다. -아아::에, 거기 있는 거적대기 모두 치우고 새거 들여놔라.- 비현실적으로 생생한 감각에 놀라기도 잠시, 저건 대체 누구고 왜 저러는가. 아, 그치들이구나. 기어이 방을 넘어 들어와서 이곳저곳 들쑤시고 갔군. 내 말을 들을지는 모르겠다만 위에 대고 요즘 거적은 품질이 너무 떨어진다고 해놨다. 왜 그 있잖나, 벌레가 들끓는데도 몇번은 돌려쓴 거적들. 그에 비하면 내 거적이야말로 새것이 아니면 무엇이리오? 기대도 안 했다만 정말 아무 반응이 없다. 일단은 무시하고 볼까. 내가 잘못 생각했다. 아까부터 확성기의 쨍한 소리가 쉴틈없이 울려대고 있는데 어떤 방식인지 저장 반복 기능이 있나보다. 등각류도 만드는데 저정도야 뭐. 이 소음은 언제까지고 나올 것 같은데, 아! 거적대기를 귀에 쑤셔넣으니 효과가 있다. 이참에 더 쑤셔서 고막을 찢어둬야지. 감각은 이런 점이 편하다. 고요한 곳에서 빙글빙글 돌아다닌다. 확성기가 웅웅대는 느낌은 남았다만 저것도 이모저모 갉아졌으니 곧 고장날 것이다. 그러니 거적대기를 모아서, 등각류 말고 다른 것을 만들겠다. 이번에는, 어디보자, 돌출된 수만개의 렌즈, 빽빽한 털, 시커먼, 그러나 어딘가는 샛노란, 수납 가능한 빨대형 입,

  • 데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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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데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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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격과 후일담-출생을 당해 모든 나날이 흘러가고 자신은 아시아 대륙 대한민국 가까운 과수원 근처에서 근 3년 동안 홀로 살다가 결국엔 허무하리만치 죽어버린 철로변 출신 땅강아지를 데카당이 그려낸 그려낸 기이하고도 놀라운 생의 이야기

먼지 쌓인 아스팔트가 전한다. 여기, 이 길에, 여섯개의 다리를 가지고 조각난 세상을 우러르며 살았던 이가 있었음을, 이에 그 이야기를 전하지 않을 수 없음에, 그리고 그럴 수 있음에 감사를 표한다. 이이는 2022년 5월의 날씨 좋은, 화창하면서도 습기를 가득 머금은 날에 여러 보호물에 둘러쌓인 채 세상을 보았다. 아니, 아직은 보지 못했다. 가만히, 가만히 앉아서 세상을 느끼던 이이는 마침내 그 습기가 절정에 달한 5월 20일, 세상과 접할 수 있었다. 부화하면서는 논밭변 작은 길의 티끌에 놓였으나 자라기는 철로변 과수원길에서 자랐다. 그는 하늘 아래를 기며, 지표를 파고들었으나, 그 심정마저 기어다니지는 아니하였으메, 오히려 그 심지의 곧음에 보는 이들로 하여금 경탄을 자아내게끔 하였더라. 심성대로라면 그 흩어져 있는 눈에 부조리가 찰나의 순간이라도 상으로 맺히면 그 즉시 득달같이 달려들어 끝장을 볼법도 하였으나, 아, 참으로 범상치 않은 심정을 가진 이여, 모든 부조리를 자신에게로 향하고 목석같이 부동의 자세로 일관하였으니, 이를 후세는 융통성이 없다 하리라. 이이는 약충의 티를 막 벗었을 무렵인 2022년 5월 자신이 자란 철로변의 그 독기가 가득한 사이의 무인지대, 황량한 아스팔트 위에서, 세상의 일부만이라도 감히 파내고야 말겠다는 오만으로 점철된 인간, 참으로 그 종의 표준이라고 할 법한 이의 눈에 띄었다. 그는 이이에게 현상보존의 폭력, 즉 그 상태 그대로 상을 맺어 고정시키고는 그 잠재력이 모두 발현되지 못했음을 두고두고 즐기려 하리라는 야욕을 드러냈으나, 아아, 이이는 그 폭압적인 현실을 결코 순응하지 않았으며, 특유의 부동의 자세로, 평화적인 방법의 꽃이요, 극단이라 할 수 있는 무대응으로 일관하기에 오만방자한 그는 물론 그 폭력을 거두지는 아니하였으나 그럼에도 외경이 그 대뇌겉질에 불어닥쳐서, 황급히 자리를 피하지 않고는 베기지 못할 것 같았다더라. 이이는 그가 떠나감을 보고는 태연히 제갈길, 다시 말하자면 과수원에서 밭을 지향하는 삭막하기 그지없는 무인지대, 포장도로를 6개의 느슨하게 통합된 기관의 협력으로 유유히 나아갔더라. 외경을 낳은 그 연의 끈은 쉽게 끊기는 것이 아니라서, 그와 별 다를게 없는 이들이 이기적인 탐욕으로 똘똘뭉친 마음을 드러내놓은 채 자신들의 근본을 향해 배타적인 폭력을 행사해 갈취한 토양을 입맛대로 부린 곳, 즉 과수원의 지표에서 그 뿌리를 갉으며 그 역한 냄새를 풍기는 치세에 저항하려 했으나 그 과업의 일부를 마치고는 포근한, 너무나 포근한, 개선식을 열 장소, 말인즉 그의 거처로 돌아가려 했으나 이기적인, 너무나 이기적인 오만 그 자체와 다시 마주하였는데, 이번에는 외경을 안은 채로임에, 그 외경만으로도 벅찼던 오만은 자신의 국익을 저해하는 현상을 드러냈음에도 행위로 연결하지는 못한 채 또다시 현상유지의 폭력만을 남긴 채 그 자신의 마음을 닮은 황야를 만들어내고 떠나갔다더라. 이이는 죽어가는 순간마저도 그 심지가 풍화됐을 지언정 꺾이지는 아니하였는데, 2023년 6월 삶의 그 마지막 고

  • 데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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