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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집 국회의원 (수정)

  • 작성자 Or네모네
  • 작성일 2005-09-25
  • 조회수 582

중간중간 맞춤법이랑 끝부분 약간 수정했습니다.

- - - -

 

 

 

 내가 사는 골목은 크고 작은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우리 집은 우리 골목에서도 손꼽
힐 만큼 작은 집이고, 우리 옆집은 손꼽힐 만큼 큰집이다. 우리 집의 낡은 담과 갈라진 벽과
지붕, 관상용으로 심었지만 이미 오래 전에 죽어 어떻게 하지도 못하는 썩어 가는 나무 한
그루. 이런 것들이 고루 갖추어져서 장단을 맞추니 작은 집이 을씨년스러워 보이기까지 했
다.
 반대로 우리 옆집은 깨끗하고 산뜻한 담에 잘 가꾸어진 잔디와 정원, 크지는 않지만 풀장
에 모양이 갖추어진 나무들이 일자로 줄지어 서있는 모습. 그 정원에 아름답게 놓인 길을
따라 올라가면 나오는 2층집만 해도 우리 집의 2배는 되어 보였다. 그런 큰집과 작은집이
붙어있는 모습은 상당히 대조적 이였다.
 원래 이 커다란 집에는 인심 좋은 대학교수 부부가 살았다. 우리 가족과도 꾀 친하게 지냈
는데 그들은 어느 날 갑자기 이민을 가버렸다. 한마디로 그 집은 비워져 있었다.
 그 집에 새로운 입주자가 나타난 것은 중학교 2학년이 되는 날 이였다.
 "학교 다녀오겠습니다."
 "그래, 차 조심하고, 다른 데로 세지 말고 일찌감치 들어 와."
 어머니께서는 나를 내보내시며 꼭 초등학교 1학년생을 처음으로 등교시키듯이 말씀하신다.
 "응."
 뭐라고 하고 싶었지만 귀찮아서 그냥 간단하게 대답하고 말았다.
 문을 열고 나오자 아직은 쌀쌀한 3월의 공기가 나에게 속삭인다. 동복차림 이지만 아직 춥
다. 최종적으로 대문을 열고 나오자 옆집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린다. 처음에는 바람소리인줄 알았는데 보니까 여러 사람들이 짐을 나르고 있었다. 골목을 꽉 채운 두 대의 큰 트럭
짐칸에 가득 찬 짐과 꾀 많은 인부들. 그 인부들 사이로 이리저리 걸어다니며 감독하는 뚱
뚱한 체구의 한 남자. 반대로 지나치게 빼빼 마르고 목이 긴 여자. 그들의 아들로 보이는 헐
크와 돼지를 반반 섞어놓은 듯한 한 아이. 나보다 키는 작은데 옆으로는 몇 배라서 나보다
훨씬 커 보일 것이다.
 아무튼 지금은 옆집에 이사오는 사람들 볼 틈이 없어서 곧장 학교로 향했다.

 

 "모두 반갑다. 나는 오늘부터 여러분의 담임을 맡게된 김조무 라고 한다."
 새 담임선생님께서 군인처럼 딱딱 끊어지는 말투로 말씀하신다. 이 선생님은 아주 잘 알고
있다. 사소한 걸로 학생을 많이 때리고 무섭게 해서 학생들 사이에서는 속칭 '미친개'로 통
하는 선생님이다. 대부분의 학생이 이 선생님을 싫어한다. 거기에다가 듣기로는 차별까지 심하다고 한다.
 "오늘은 오전 수업만 하고 끝날 예정이다. 그래서 오전수업은 자기를 소개하는 시간을 가
지겠다."
 그런데 오늘 이 선생님에 대해 한가지 더 알게된 것이 있다. 이 선생님은 수업진행 또한
아주 지루하게 한다는 것이다. 어떻게 이런 선생이 예술인 미술 선생이 되었는지...

 

 익숙하지 않은 환경에서 지루한 오전이 지나가고 새로 사귄 친구 하나 없이 홀로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였다. 옆집을 바라보니 이미 트럭은 빠져나가고 없고 새로운 명패가 붙어있었
다.
 '金財豊 김재풍'
 어디서들은 듯한 이름. 스치듯이 명패를 본 뒤 지나쳐서 우리 집 대문으로 다가와서 열쇠
를 꺼낸다. 그때
 "야."
 뒤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린다.
 "야. 말 씹냐?"
 나는 고개를 돌린다. 거기에는 아까 아침에 본 옆집에 이사 온 듯한 그 뚱뚱한 아이가 서
있었다. 그 아이는 눈을 이리저리 굴려 내 교복을 살펴본 뒤 말한다.
 "그거 혹시 세천중학교 교복이냐?"
 "어, 왜?"
 나는 상냥하게 대답해준다.
 "그 학교 시설을 좋냐?"
 "뭐... 그런 데로."
 요점을 알 수 없는 질문 이였지만 다시 대답해준다.
 "그래? 그런데 거기 교복은 왜 그렇게 후져 보이냐?"
 다짜고짜 반말 할 때부터 기분은 썩 좋지 않았는데 계속 들으니 완전 싸가지 없는 말투였
다. 그래서 나는
 "그래? 하긴 넓은 집에서 사니 이런 옷은 후져 보이겠지? 그럼 다음부터 학교 갈 때는 갑
옷을 입고 가지 그러냐?"
 라고 말하고 상대가 뭐라고 받아치기 전에 대문을 열고 들어갔다. 하지만 집으로 들어가지
는 않고 상대의 반응을 살폈다.
 "그러면 너는 그런 코딱지 만한 집에서 살면 내일부터는 빨가벗고 학교가야겠다?"
 그 말을 듣자마자 반사적으로 대문을 박차고 밖으로 나왔다. 그러나 이미 옆집 대문이 닫
힌 뒤였다.

 

 "이사 온 옆집이 국회의원이라면 서요?"
 "대한민국당 김재풍 국회의원."
 "국회의원이면 돈 잘 벌겠네요?"
 "그렇지 뒷구멍으로 들어오는 돈만 해도 엄청 날거야."
 "그러니까 저런 집으로 이사갔죠."
 "돈이 많다고 행복 한 것도 아냐."
 "퍽 그렇겠네요? 저는 불행해도 돈이 많았으면-"
 "쓸 대 없는 소리. 이렇게 생산직 맞벌이로 살아간다고 해도 일의 보람만 느끼면 행복한
거야."
 아... 옆집이 국회의원집 이구나?
 ...
 그래도 국회의원 아들이면 싸가지 없어도 되?

 

 "새 학년 둘째 날부터 우리 반에 전학생이 있다."
 아침시간동안 짝꿍과 왠지 마음이 맞는 것 같아서 대화를 하고 있는데 다짜고짜 선생님이
앞문을 열고 들어오며 말했다.
 "들어와."
 그 전학생이란 녀석을 본 순간 놀랐다. 나보다 작아 보이지만 헐크와 돼지를 섞어 놓은 듯
한 몸짓에 나와 나란히 서면 나보다 커 보일 것 같은 놈. 그 옆집 놈 이였다.
 "자기 소개해보도록."
 그러자 그 녀석은 목을 가다듬더니
 "음... 나는 김재회 라고 한다. 그냥 뭐... 음... 웬만하면 잘 지내보자."
 '웬만하면'이라는 부분이 강조되었지만 대부분 모르는 것 같았다. 무난히 인사를 하고 선생
님이 지목한 자리에 가서 앉는다. 다행이 나와는 멀리 떨어져 있는 자리인 것 같다. 녀석은
아직 나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한 것 같다.
 "그래. 모두 서로 친하게 지내도록."
 이윽고 선생님이 나가시고 나를 비롯한 아이들은 아는 사람끼리 떠들거나 장난을 치는 듯
했지만 힐끔힐끔 전학생을 쳐다보았다. 하지만 그 녀석은 알면서 모르는 척 하는 건지 진짜
모르는지 묵묵히 자기 책가방을 뒤지고 있었다. 그러더니
 "야, 다 이리 와바."
 순간 모든 아이들의 이목이 녀석에게 집중했다.
 "내가 전학 온 기념으로 샤프 돌릴 테니까 다 와보라고."
 그제야 애들은 재빨리 그녀석 주위로 몰렸다.
 전학 온 기념으로 샤프를 돌린다니? 뭐 저런 놈이 있어? 하지만 나도 호기심에 의해 느릿
느릿 걸어서 녀석에게 다가갔다.
 녀석이 돌리고 있는 것은 비싸 보이는 샤프볼펜세트였다. 거기에다가 곽에 붙어있는 상표
로 보아서 하나만 해도 꾀 값이나가 보이는 것 이였다.
 "다 줄 테니까 기다리라고."
 애들은 하나씩 받아서 좋아라하며 제 자리로 돌아갔다. 그리고 나만 남았다. 녀석은 가방에
서 그것을 꺼내다가 내 얼굴을 보더니 흠칫 놀라며
 "어?"
 내 얼굴을 들여다보다가 꺼내던 샤프를 다시 집어넣더니
 "어쩌나? 샤프가 떨어져 버렸네?"
 그 터질 듯한 입에 억지로 주름을 주어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나는 더 볼 것도 없다는
듯이 휙 돌아섰다.
 "아, 미안해서 그러는데 이거라도 가지려면 가져라."
 다시 힐끔 뒤를 쳐다보니 그 녀석은 무엇인가를 내 발 밑으로 굴렸다. 내 발에 맞고 멈춰
선 그것. 그것을 집어들었는데 하얀 볼펜에 'monami'라는 금색 글자가 선명했다.
 "푸하하하핫!"
 "크크크크큭!"
 "끌끌끌끌끌!"
 각자 다른 웃음소리로 나를 보며 웃었다. 실컷 웃으라지? 나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내 자
리로 돌아가서 앉았다. 

 

 나는 집으로 가면서 평소 때처럼 학교 구석에 있는 개구멍을 이용했다. 정문이나 후문보다
집에 훨씬 가깝기 때문이다. 이 근처는 도랑이 지나서 냄새가 심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잘
찾지 않는다.
 허리를 숙이고 개구멍을 통과하려는데-
 "선생님 그럼 저희 재회를 잘 부탁합니다."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네, 당연하지요."
 상체를 뒤로 빼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곳은 주로 불량학생들이 담배를 피우는 도랑 근처
에서 들리는 소리였다. 나무에 몸을 숨기고 그곳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전에 본 옆집에 이
사온 마르고 목이 긴 아줌마와 담임선생님이 계셨다.
 "그리고 이거-"
 "아니 뭘 이런걸 다. 괜찮습니다."
 "그냥 받아두세요."
 "괜찮은데... 허허, 성의를 봐서 받겠습니다. 그리고 재회 학생 학교생활은 제가 책임지겠습
니다."
 나는 재빨리 핸드폰을 꺼내서 그 장면을 촬영했다. 왠지 필요 할 것 같다는 예감에. 그리고
즉시 그 자리를 떴다.

 

 그 일이 있은 후 며칠이 지났다. 그저 체육을 조금 잘하는 평범한 학생인 나는 오늘도 평
범한 생활을 마치고 집에 가고 있었다.
 "끼이이이익-"
 집 앞까지 와서 문을 따고 집에 들어가려는데 한번도 본적 없는 새까만 외제차가 옆집에
와서 섰다. 호기심에 바라보는데 그 차에서는 아무도 내리지 않고 그저 서 있었다. 뭘까? 생
각을 하면서도 나와는 상관이 없으므로 그냥 마당에 들어가는데-
 "탁!"
 크지는 않지만 분명히 자동차 문여는 소리가 들렸다. 그 차에 타고 있던 사람은 나를 의식
한 모양이다. 그러다가 내가 들어가니까 그제 서야 나온 듯 싶다. 나는 문 옆에서 항상 자리
를 지키고 있는 항아리를 밟고 올라섰다.
 그 검은 차에서 내린 듯 한 사람은 검은 정장 차림 이였다. 그는 검은 서류가방을 들고 옆
집에서 서성이다가 초인종을 눌렀다.
 "김재풍 국회의원님 계십니까?"
 그는 나지막이 말했지만 나에게는 들렸다. 바로 옆집이니까.
 "예? 아, 다름이 아니라 뭐 드릴게 있어서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순간 몸이 기우뚱하더니 옆으로 넘어졌다.
 "쨍그랑!"
 옆으로 넘어지면서 장독이 깨진 것 같았다. 다행이 동복차림 이라서 다친 곳은 없는 것 같
지만 수선하기 힘든 교복이 찢어지고 간장에 의해 검게 물들어 있었다.
 몸을 일으켜 옆집을 바라보았을 때 이미 차는 출발하고 있었다.
 아무튼 저 가방 안에는 왠지 파란 돈 뭉치가 들어 있을 거라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TV에서나 볼만한 상황이 내 눈앞에 펼쳐지고 있는 것 같았다.

 

 "야, 라현욱. 이리와봐."
 김재회가 나를 부르며 손가락을 까닥한다.
 "왜?"
 "와보라고. 빨리."
 나는 녀석에게 다가갔다. 녀석은 나를 위 아래로 훑어보더니-
 "오늘 왜 교복 안 입고 왔냐?"
 "니가 알아서 뭐해?"
 "뭐, 좋아. 그런데 그 옷 어디서 사 온 거냐?"
 녀석은 어제 엄마가 새로 사온 비싼 메이커 점퍼를 보면서 말했다.  
 "어제 엄마가 사 온 거다."
 나는 일부로 자랑하듯이 말했다.
 "그래? 얘들아 다 모여봐."
 이미 김재회가 국회의원의 아들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애들은 거의 그 녀석의 말에 순종했
다.
 "오늘 현원이가 교복을 안 입고 왔네. 대신 꾀 비싸 보이는 점퍼를 입고 왔어!"
 애들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눈을 깜박거렸다.
 "나도 며칠 전에만 해도 저 옷이 있었는데 소매부분에 김치 국물이 튀어서 그냥 버렸어."
 나는 무의식적으로 양쪽 소매를 보았다. 그런데 김치 국물은커녕 깨끗하기만 했다.
 "오른손 소매 끝을 자세히 봐바."
 나는 그녀석이 말한 대로 자세히 들여 보았다.
 "어때? 있지?"
 이미 다른 애들도 내 주위에 몰려서 소매를 바라보고 있었다.
 있다.
 개미보다 작은 크기의 주황색 자국이 보인다.
 "야, 그럼 이거 주워 입은 거야?"
 "니가 거지냐?"
 애들이나를 보며 웃으며 말한다.
 "이렇게 작은 자국이야 생길 수도 있지. 그리고 똑같 은게 얼마나 많은데-"
 "그럼 이건 어떨까? 니 점퍼 안쪽 주머니를 뒤져봐."
 나는 녀석이 말하는 데로 점퍼 안쪽 주머니 속에 손을 넣었다. 무엇인가가 잡힌다. 조마조
마한 심정으로 그것을 꺼냈다.
 "뭐라고 써있어?"
 그 종이 쪼가리에는 '재회야. 오늘 부모님 외출 해야하니까 가정부 아줌마한테 먹고 싶은
거 시켜달라고 그래라.' 라고 써있었다.

 

 "엄마 뭐냐고!"    
 "아니, 얘는 왜 엄마가 힘들게 일하고 오자 마자 소리를 지르니?"
 "엄마 저 점퍼 어디서 났어?"
 나는 거실 바닥에 아무렇게나 늘어져 있는 점퍼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거? 저거야... 엄마가 새로 샀지. 말 안 했나?"
 "거짓말! 옆집에서 주워 온 거잖아!"
 "... 그래, 맞아. 새 것 같은 옷이 버려져 있어서 아까워서 주워 온 거야."
 "그것 때문에 내가 얼마나 망신을 당한 줄 알어?"
 "망신... 이라니?"
 "몰라! 다 필요 없어!"
 나는 이렇게 소리친 뒤 문을 쾅 닫고 방으로 들어갔다.

 

 그 일이 일어난 후 학교에 가기가 싫어졌다. 애들은 툭하면 나를 놀려댔고 점점 기가 죽어
갔다. 그 좋아하던 체육시간에 뛰는 것조차 싫어졌다.
 김재회... 그 놈의 뒷모습만 봐도 진짜 죽여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라현욱! 뭐하나?"
 "네?"
 "넋 빼놓고 뭐하냐고! 뒤로 가서 서서 수업해!"
 나는 조용히 일어나서 교과서를 들고 뒤로 걸어갔다. 몇몇 애들이 큭큭대고 웃었다. 그런데 갑자기
 "푸하하하하핫."
 김재회 그놈이 크게 웃었다. 그러니까 다른 애들도 크게 웃는다. 심지어 앞에 있는 담임 선
생님도 희미한 미소를 짓고 있는 듯 했다.
 그래, 실컷 웃으라지. 실컷 비웃으라고!
 
 그렇게 기분이 더러운 날 오후 집으로 향하는 길이였다. 그때 본 검은 차가 또다시 큰길로
지나가는 것을 보았다.
 "어?"
 나도 모르게 왠지 기뻤다. 그 검은 차가 지나간다는 것이. 나는 검은 차가 큰길로 간 사이
에 더 빠른 지름길로 먼저 골목에 들어섰다. 그리고 숨은 뒤 핸드폰을 꺼냈다. 내가 숨자 마
자 그 집 가정부가 배부른 종량제 봉투를 들고 골목 저쪽으로 사라지고 얼마 후 그 자동차
가 나타났다.
 또 그때와 같은 사람이 검은 정장 차림으로 가방을 들고 내린다.
 "삐리리리~ 삐리리리~"
 초인종이 울린다. 하지만 아무도 나오지 않는다.
 "삐리리리~ 삐리리리~"
 그 사람은 아무도 나오지 않자 초조한 듯이 좌우를 두리번거리다가 차안 트렁크를 열더니
사과상자를 꺼낸다. 그리고 사방을 다시 살피더니 가방을 연다.
 그는 그 가방 내용물을 사과상자에 쏟아 붓는다. 물론 그 장면을 놓칠 세랴 재빨리 사진을
찍었다.
 이윽고 그는 사과상자를 문 밑으로 밀어 넣은 뒤 차를 타고 사라진다.
 "뭐지?"
 가정부 아줌마가 오면서 혼잣말을 한다. 그러더니 대문을 열고 들어간다.
 "허억!"
 그 아줌마의 놀라는 목소리가 들린다. 
 
 "어이, 거지!"
 나를 부른다는 것을 알았지만 나는 애써 무시했다. 이제 김재회 녀석은 아주 노골적으로
나를 대했다.
 "야, 내 숙제좀 해라."
 "싫어."
 "어쭈?"
 녀석은 내 뒤통수를 때린다.
 "얼마나 맞아야 할까?"
 "안해. 니꺼."
 "이런 거지새끼가 말을 안 들어먹어요."
 이러더니 이번에는 뚱뚱한 무릎이 내 옆구리를 가격한다. 애들이 몰려든다. 하지만 구경 할
뿐이다.
 "할래, 안 할래?"
 "안해."
 "이런 거지새끼가 진짜 뒤지고 싶냐? 응?"
 "안해!"
 "하. 이 새끼 애미, 애비가 가난하니까 돌았나 보구나?"
 순간 주먹을 녀석의 안면에 날렸다.
 "우악!"
 놈의 돼지 같은 살이 떨린다.

 "이 새끼가 해보자는 거야?"

 나의 볼에도 통증이 온다. 우리는 교실을 뒹군다.

 

 "라현욱! 너 깡패냐? 어떻게 그렇게 애를 무지막지하게 패냐?"
 교실 뒤에서 주먹을 쥐고 엎드려 뻗친 상태로 버틴다. 이미 여러 대나 맞은 엉덩이가 얼얼
하다. 아니 감각이 없는 수준이다.
 놈은 저쪽에서 나를 웃으며 바라본다. 놈은 별로 다친 것도 없다. 그냥 오른쪽 눈이 파랗게
되었을 뿐. 그렇게 있다가도 선생님이 자신을 바라보려고만 하면 아픈 척 얼굴을 찡그렸다. 오히려 나의 얼굴 여기 저기에 멍이 들어 있었다. 
 "저놈이 먼저 시비 걸었습니다."
 "아니 이 자식이 그래도?"
 다시 고통이 엉덩이를 파고든다. 
 "안되겠어. 너 내일 부모님 모셔와."

 

 더 이상 아무 것도 없다. 사부와 친구의 부모님을 팔아먹는다는 죄책감도 이미 사라지고
없다. 그들은 더 이상 사부나 친구 따위가 아니다. 아니 처음부터 아니었다.
 그래서 내 몸은 홀로 경찰서로 들어가고 있었다.

 

 며칠 째 경찰차를 여기저기서 보게 된다. 우리 옆집에도 경찰자가 자주 들락날락 했고 학교에도 경찰차가 들어 왔다. 담임 선생은 며칠 째 학교에 나오지 못했고 그건 그 김재회 놈도 마찬가지였다.

 집에서 어머니께서 질문하신다.

 "너희 학교 담임 선생님이 그 선생님이니?"

 "그런것 같아요." 

 "어쩜, 요즘 주변에서 이런 일이 많을까? 그 옆집 국회의원도 지금 뇌물수수 혐의로 서를 들락날락 한다지?"

 "그런가 보네요."

 나는 모르는 듯이 말하고 방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TV를 켠다.
 "뇌물 수수혐의로 기소된 김재풍의원이 오늘 구속… 김재풍 의원에게 돈을 받고 그의 아들
을 편애한 S중학교 교사 김모씨가 오늘 불구속 입건… 교사자격 박탈… "
 나는 희미한 미소를 짓는다. 그때 밖에서 전화벨 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잠시후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린다.

 "라현욱! 이번에 선생님이랑 국회의원 고발한 사람이 너라는게 진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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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Or네모네
  • 2005-10-04
마루타(まるた) <중간중간 (203

추운 겨울이다. 차가운 아스팔트 길을 지나가던 버스가 갑자기 서더니 두명의 사람만 뱉어버리고 다시 출발한다. 내리고 쌓여도 끝이 없는 눈보라를 헤치고 두명의 사람들이 걸어간다. 그들이 걷는 길은 인적이 드믄 시골길로 양 옆으로 얼어붙은 논이나 밭, 그리고 드문드문 집들도 보인다."오늘 날씨가 생각보다 춥네요.""눈보라가 불어서 그래요.""원래 한국이 이렇게 추운 나라인가요?""그건 아니에요. 특별히 오늘만 추운 거지요.""이럴줄 알았으면 자동차라도 끌고 오시지 그랬어요?""저는 자가용이 없어요."눈보라를 헤치고 걸어가는 두 남자. 한명은 흰 피부에 파란 눈을 가진 남자고 다른 남자는 갈색 눈에 황색 피부를 가진 가장 이상적인 동양인의 얼굴이다. "생각보다 한국어를 잘하시네요?""특별히 배운 겁니다. 자주 오거든요. 요즘들어 한국은 여러가지로 세계적인 특종감을 많이 제공해 주는걸요. 특종이야 말로 저희 기자들에게는 생명이지요.""이해 합니다."그들이 도착한 곳은 시골의 평범한 단독주택이였다. 그렇게 부유해 보이지도 그렇다고 가난해 보이지도 않는 평범한 집이다."딩동. 딩동.""네?"여자의 목소리가 들린다."여기가 윤동석씨 댁입니까?""맞는데요?""저희는 기자입니다. 윤동석씨와 인터뷰를 부탁드리고 싶어서 왔는데요.""인터뷰요?""아, 그러니까 2차세계대전 당시 하얼빈 731부대의 생체실험만행에 대해-""잠시만요!"그리고 한참을 뜸 들인뒤 문이 열린다. 앞치마를 두룬 평범한 주부처럼 보이는 여자가 현관문 앞에서 서있다."추운데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점퍼는 저에게 주세요."두 남자는 두꺼운 점퍼를 벗어 여인에게 맡긴다. 한 남자의 눈부신 자연 금발이 드러난다. 여자는 그 금발을 보고 흠짓 놀라는 듯 한 눈을 했으나 내색하지는 않는다."예고도 없이 갑자기 와서 죄송합니다.""아니에요. 저희 아버님을 만나로 오신거죠? 이쪽으로 오세요."두 남자는 여자를 따라서 한 방안으로 들어간다. 방 안에는 정돈된 이부자리 옆에서 한 노인이 휠체어에 앉아 있었다."어서들 오시오. 이 늙은이에게서 무슨 이야기를 듣고 싶어서 이렇게 추운날 오셨는지?""아, 실례가 되었다면 죄송합니다. 다만 저희들은 현재 제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의 만행과 그것을 묵인한 미국에 대해 기사를 쓰고자 하는 기자입니다.""흠... 그렇다면 그때 당시의 일에대해 생각나는데로 이야기 해달라는 거겠구려?""네.""벌써 까마득히 옛날 일인데... 그러니까 말이오..."   "누나, 우리는 어디 가는거야?""..."나이가 많아봤자 8살 정도 밖에 안되보이는 아이가 옆에있는 소녀에게 질문을 던진다. 소녀도 많아봤자 10대 초반 정도로 밖에 안보인다."누나? 응?""..."소녀는 여전히 말이 없다. 그녀의 눈시울이 붉어진다."지금 가면 아빠를 볼 수 있는거야?"소녀의 눈에서 투명한 눈물이 한방울 떨어진다. "누나 울어?""흑... 흑... 동석아... 괜찮을 거야... 흑...""누나 왜 울어?"아무것도 모르는 아이의 눈에도 눈물 방울이 맺힌다."누나가 울면 나까지

  • Or네모네
  • 2005-09-29
골동품상점

한가롭게 길을 걷고 있다. 수험생이 공부는 안한다는 어머니의 꾸짖음에 도서관에나 공부하러 나간다고 말하고 가방 하나 메고 나와서 한가롭게 길을 걷고있다. 노란 잎이 떨어지는 공원. 하지만 이 공원은 도서관과는 반대 방향이다.꾀나 쌀쌀해진 날씨때문에 입은 두꺼운 점퍼 소매를 걷고 시간을 확인한다. 4시. 어머니는 내가 8시 이전에 돌아오면 만족하지 못할 것이다. 그냥 도서관으로 공부 하러 갈까하고 잠시 생각도 했지만 그만두고 그냥 벤츠위에 쌓인 낙옆을 치우고 벤츠위에 앉는다. 그리고 생각에 잠긴다.모처럼의 개교기념일. 작년이였다면 친구들과 어울려서 여기저기 놀러다녔테지. 하지만 이미 한달 앞으로 다가온 수능. 현실을 직감하자 한숨이 나온다. 나는 왜 열심히 공부하지 안했을까... 그러나 다시 한숨이 나온다. 공부하지 못할것을 후회하면서 계속 이러고 시간을 보내고 있을까. 부모님께서는 내가 의과대학교를 최고점수로 졸업한 형만큼이라도 하시기를 바라실 것이다. 형을 내가 명문대에 입학할 가짜 복선 정도로 여기는 것일까? 사실 나도 성적이 그리 나쁜편은 아니고 형이 나온 똑같은 명문 고등학교를 다니고 있다. 하지만 최근 들어 뚝 떨어진 성적에 내 자신에게 화가 날 뿐이다. 아니 나 보다는 성적표를 바라보는 어머니의 눈이 더 화를 낸다. ... 다시 한숨이 나온다..." 학생. "어디선가 목소리가 들린다. 그 목소리는 숨소리가 색색 세어 나오는 늙은 목소리였다. " 학생. "누구를 부르는 거지? 나는 뒤를 돌아봤다. 뒤에 서 계시는 한 할머니. 여기저기 주름살만 봐도 쭈글쭈글한 얼굴이 흉해 보이는데 흉터에 코끝 살은 뭉텅 떨어져 나간 모습이 훨씬 흉했다.아무튼 그 할머니의 시선을 보아 그 목적지는 바로 나 인듯 싶었다." 네? "" 학생, 부탁 좀 해도 될까? "여전히 색색거리는 소리를 내며 나에게 말한다." 어떤... 부탁이요? "" 이 짐 좀 들어다줘도 될까? "나는 할머니 뒤에 있는 짐을 바라보았다. 보자기로 싼 짐은 그리 무거워 보이지는 않았지만 커봤자 키 150정도의 노인에게는 벅찰 듯 싶었다." 네. 어디까지 가면 되요? "" 고마우이. 학생. 나만 따라오면 되. "그렇게 말하더니 지팡이를 집고 힘든 걸음을 걷기 시작한다. 그 짐은 예상외로 꾀나 무거웠다. 그렇게 몇분 정도 걸었을까...? 할머니께서는 큰길을 벗어나서 작은 골목길로 들어갔다. 큰 길은 자주 다녀서 알지만 이쪽 골목길로 들어 온 것은 처음이다. 그 골목길은 상당히 어두침침했다. 골목길에 들어서서 약간을 더 걷자 낡은 건물 하나가 나왔다.'옛골동품'이렇게 써있는 낡은 간판. " 학생 여기야. 정말 고마워. "" 괜찮아요. "나는 짐 보따리를 가게 앞바닥에 내려놓았다." 할머니, 그럼 전 가볼게요. "" 무슨 소리야. 고마운데 뭐라도 해줘야지. "그러더니 할머니는 짐 보따리를 뒤졌다. 그 짐 보따리에는 여러가지 골동품들이 들어 있는듯 했다. 그 중에 할머니는 색이 바랜 은반지를 나에게 건내 셨다." 이게 뭐 에요? "" 학생, 요즘에 공부 때문에 힘들지? 이거를 손가락에 끼고

  • Or네모네
  • 2005-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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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익명

    아앗, 이런 죄송;; 맞춤법좀 꼬집어 주세요.. 맞춤법이 많이 햇갈려서 일부로 한글 97로 맞춤법까지 맞췄는데 틀린게 있나보네요;; 꼬집어 주시면 감사요;

    • 2005-09-26 18:29:03
    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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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초록불

    잘 보았습니다. 맞춤법은 아직 잘못된 부분이 많이 보입니다만...^^;;

    • 2005-09-25 23:01:00
    초록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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