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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

  • 작성자 리페
  • 작성일 2006-09-11
  • 조회수 117

 종이 쳤다. 6교시가 끝났으니 이제 종례만 끝나면 집으로 가게 될 것이다. 엎드린 자세에서 허리를 펴니, 너무 오랫만에 펴는 거라서 그런지 '아구구구' 라는 소리가 튀어나올 정도로 허리가 아팠다. 종례가 끝나자 언제나처럼 제일 먼저 교실에서 나왔다. 5반까지 아이들을 가로질러 걸어간다음, 50개가 넘는 계단을 빠르게 밟아 내려가는 데는 5분도 걸리지 않는다.

 교문을 나서니 마음이 훨씬 맑아진다. 뒤도 돌아보기 싫은 게 학교다. 그리고 제일 들어가기 싫은 곳도 이 교문이다. 버스 정류장으로 달려가다시피 해서 걸어갔다. 얼마 있지 않아 버스가 도착한다. 그리고 앞에서 두번째 자리에 습관처럼 앉는다.

 

 학교. 어쩌면 전학 올 때부터 틀렸던 것일지도 모른다. 중학교 1학년 때 9월, 나는 사복을 착용하던 지난 학교를 떠나 교복이란 걸 입게 되는 지금 이 학교로 전학 왔다. 교복을 처음 입어봤을 때, 칙칙한 남색이던 옷만큼이나 얼굴이 찌푸려졌다. 교복이 내 학교 생활을 예언해주는 건 아니었을까. 학교보다 먼저 본 게 교복이었다. 교복부터가 싫은 학교. 난 그렇게 이 학교로 전학을 왔다.

 처음 인상은 눈치가 빠른 편이 아니라서 평온해보였다. 여느 중학교의 교실의 하나처럼 보였다. 아니, 그랬기를 바랬다. 1교시가 끝났을 때 과학 선생님이 나가시자마자 뒷문이 요란하게 열렸다.

 "누구 전학왔다고? 누군데?"

 딱 봐도 '평범한' 학생이라고 여기기는 힘든 아이, 정윤한. 그 이름을 이 학교에서 제일 먼저 외웠다.

 "쟤"

 몇몇 애들이 나를 가리켰다. 슬리퍼 끄는 소리가 나더니 내 앞으로 그 아이가 다가왔다.

 "뭐야. 놀긴 힘들게 생겼네."

 "에이. 가자!"

 정윤한이라는 아이는 대여섯명의 다른 반 아이들을 끌고 들어왔다가 다시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그 '놀긴 힘들게 생겼네.' 라는 말이 좋지 않은 말이라는 걸 안 건, 그 날 점심시간이었다. 내 뒤에 앉아있던 아이가 점심시간에 새로 온 기념이라며 같이 밥을 먹었다.

 "너 정윤한한테서 놀기 힘들단 소리 들으면 별로 좋은 소리는 아닌데."

 "무슨 소리야?"

 "보통 애들은 그냥 지나쳐서 간다고. 너 눈에 안 들게 조심해야 될 거야."

 전학 처음 오는 학교라서 얌전하게 있었다. 눈에 안 들게 조심하라는 소리 뭔 말인지는 몰라도, 안 들게 정말 조심했는 데. 지금도 아무리 생각해봐도 눈에 들 짓은 안 했다. 피해 준 일도 없었고 말 건 일도 없었는 데...

 어느 날부터 정윤한 무리가 나보고 뭐라고 시비를 걸어댔다. 하지만 나는 대꾸하지도 않았고 반응하지도 않았다. 그게 문제였던 걸까? 하루가 다르게 생활이 바닥으로 치닫았다. 정윤한은 나보면 욕을 해대는 것은 물론이고, 가끔은 뭔가를 던지기도 했다. 한 번도 맞은 적은 없지만.

 어른들의 손을 빌리는 것이 더 악화 시킬 것이라는 것은 뻔한 일이었다. 옛날 학교에서 어떤 아이가 학교 생활이 심각해서 엄마를 통해 선생님이 뭐라고 했다가 그 아이는 거의 학교에서 살기가 힘들어졌다. 하지만, 침묵은 약이 아니었다. 더 심각하게 만들었을 뿐이다.

 

 전학을 오면서 학원도 바뀌었다. 학원도 새로 다녔다. 영어학원과 수학학원. 어쩌면 이 학원들 때문에 내가 2년을 버텼을 지도 모른다. 너무 학교생활이 심각한 데 비해서 학원 생활은 완전 반대일 정도로 좋았다. 엄마는 학교에는 손을 안 댔고 학원은 계속 다니게 해주었다. 내가 기억해봐도 학교 얘기는 거의 한 기억이 없다. 매일 학원 얘기만 했을 뿐이다.

 영어 학원. 한 반에는 갖가지 학년들이 모여 살았지만 점점 시간이 지나면서 같은 학년들만 모이게 되었다. 그렇게 모인 6명이 2년을 같이 갔다. 학원 가면 미친 듯이 얘기했다. 학교에서 쌓인 스트레스를 학원에서 푸는 식이었다. 영어 학원 친구들은 같은 여자 아이들이었다. 영어 학원과 학교가 바뀌기를, 불가능한 일인 줄 알면서도 수없이 기도했다.

 그런가 하면 수학 학원은 남자아이들이 있었다. 영어 학원에서는 한 반에 남자애들이 한 명 있을까 말까 수준이었지만 학원에는 한 반에 남자애들이 4명이나 있었다. 학교에서는 남자애들이 정윤한을 시작으로 줄줄이 다 나를 싫어했지만 학원에서는 그렇지가 않았다.

 김새연이라는 친구와 친해졌고 새연이와 친하던 남자애와도 친해졌다. 다른 남자애들과는 친해지지 못했지만 적어도 나를 피하지도 않았고 욕하지도 않았다. 갈수록 학원에 목 멘 것이 학교와는 점점 벌어지는 생활차를 극복하기 위한 것이었다.

 수학 학원에서도 영어 학원처럼 난 밝은 모습이었다. 남자애들과는 친해질 기회가 없었고 새연이와 친했던 남자애를 재외하면 친한 애도 없었지만. 지금 생각해도 잘 웃어댔고 말도 많이 했다. 대화 하지는 않았어도 같은 교실을 썼으니 다른 애들도 다 나를 기억할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내가 그렇게 잘 웃은 것 만큼 눈물도 흘렸다는 건 모를 것이다.

 가장 기억 남는 일 중 하나는, 같은 반이었던 남자아이가 엘레베이터를 기다리면서 나와 근거리에 섰다는 것이다. 같은 반이었던, 여중이라서 약간 극성이던 여자아이가 너무 가까이 서 있어서 떼 놓으려고 했던 건지 자꾸 사이를 띄어두려고 했다. 그 아이와 내 사이를 벌리려고 중간에 끼려고도 했지만 실패했다. 그만큼 가까이 있었다. 학원에선 이만큼 잘 지내는 데 학교에선 왜 그 모양인지 서운하기도 했고, 그 아이에 대해서 좋은 감정도 생겼다.

 

 3학년 초반에서 정윤한의 흔적은 뚜렷하게 남겨져 있었다. 2학년 때 겨우 사귄 친구 말고는 4월이 다 가도록 친구 하나 없었다. 

 "너, 상담 좀 받아봐라."

 "상담?"

 "나도 상담 받았었는 데, 좋더라구"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상담 선생님을 찾았다.

 "안녕하세요."

 "그래. 너구나. 주희가 말한 아이가."

 선생님한테 정윤한과 관련된 모든 이야기를 말했다. 말하면서 계속 울었다. 선생님도 눈물을 보이셨다.

 "윤한이가, 그런데 참 힘들게 사는 아이야."

 선생님은 놀라운 이야기를 하셨다. 정윤한의 생활은 비참했다. 아버지가 매일 술을 마신다고 했다. 1주일에 서너번은 기본으로 때린다고 했다. 집에 있는 단소들은 이미 부러진지 오래고 낡은 골프채도 금이 갔다고 했다. 그리고 정윤한은 그런 생활을 잊기 위해서 각종 담배와 약을 먹고, 병원에 다닌다고 했다.

 "이해해주렴. 선생님이 윤한이 이해 시킬게. 다시는 그런 짓 못 하게 만들 테니까. 걱정 마. 이제 그만 울어라."

  선생님과 헤어져서 집에 오는 길이 길었다. 힘겹게 집에 도착해서 방에서 오래도록 울었다. 눈물이 책상 유리로 떨어지는 소리가 수 번 들렸다. 얼굴이 눈물로 가득히 젖었다.

  거짓말처럼 정윤한이 부리던 횡포가 사라졌다. 나를 보는 것도 이젠 모른 채하고 그냥 지나간다. 진작에 상담을 받았을 걸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학원 생활이 바뀌었다. 영어 학원은 아이들이 다 고등학교 대비를 위해서 학원을 바꾸었고, 수학 학원도 반 편성을 다시 하면서 흩어졌다. 방학 뒤로는 종합으로 빠진 듯하다.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아직 학교 생활이 좋아진 건 아닌데. 감정이란 건 정말 소중했던 건데 이젠 그런 감정도 자동적으로 소멸되는 것 같다. 아직도 가까이 섰던 남자애가 좋은 데, 그런 작은 소소한 일들 조차 좋은 데 말이다.

리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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