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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두꺼운 옷은 뒤집으면 반드시 벗어지게 되어 있는 것이여. 요리의 생명은 색깔인디 호박의 연두색이 월매나 이뻐. 그 이쁜 색을 살리지는 못허고 뭔 생각으로 허연 밀가루를 잔뜩 뒤집어씌워. 씌우길. 눈 뒀다 어디다 써. 꽃기생 속적삼이 두껍던가, 얇던가? 입이 있으면 말혀 봐.”(15쪽)
―제사에 참례한 기생들을 볼작시면, 딴에는 의리를 지킨다고 나오긴 나왔으되 그 행색이 실로 가관이었다. 저고리 고름이 풀린 년, 저녁 참에 덧바른 립스틱이 입술 위로 번진 년, 대취하여 눈이 게슴츠레하게 풀린 년, 치마 말기에 돌돌 말린 만원짜리 지폐를 꽂은 채로 뛰어와 저고리 앞도련이 불쑥 솟아오른 년, 울긋불긋한 물색 한복이 민망했던지 겉옷을 벗어던지고 속치마 속저고리 바람으로 등장한 년, 절하다가 엎어져 코 골며 자는 년, 타박네 말마따나 별의별 년이 다 있었다.(53쪽)
―손을 공중에서 무상하게 떨구어 가을 낙엽 지듯 꺾는 춤사위를 ‘낙엽사위’라고 한다. 낙엽사위는 가슴속의 시름을 쓰다듬어 울게 하는 손짓이어야 한다. 무겁고, 애통하게, 독하게 맺힌 기운을 풀어주는 춤. 사랑이 그리워 쫓아가 잡고, 잡을 듯 말 듯 잡지 못하고 아프게 돌아설 때 춤에 무게가 실린다.(103쪽)
―일 센티미터 간격으로 누빈 타래버선의 볼에 장미가 세 송이 정교하게 수놓아져 있다. 노란 수실로 촘촘하게 뜬 장미의 속꽃잎 또한 선연하다. 둥근 매듭으로 이루어진 꽃술에 손을 갖다 대면 금세 이슬이 묻어날 듯하다. 날렵하게 마무리한 버선코에는 붉은 고깔이 달려 있다. 타래버선을 신은 기생이 치마 끝을 차며 방으로 들어설 때 먼저 보이는 건 얼굴도 손도 아닌 고깔이다.(169쪽)
―기방에서는 기생들의 수태를 엄격히 막고 있었다. 임신으로 인한 몸의 변화도 기생이 활동하는 데 걸림돌이 되지만, 모성성을 획득하는 순간 많은 여자들이 자신의 여성성을 헌신짝처럼 팽개치기 때문에 기생에게 수태는 죽음과 다름없었다. (22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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