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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증날 정도로 깊은 유희

  • 작성자 마법의 펜
  • 작성일 2007-03-21
  • 조회수 458

 

온통 회색의 일색으로 가꿔진 거리.

신의 자비로운 손길 조차도 허용되지 않은 것 같은 지저분한 골목 길을

그 풍경에 너무나도 걸맞는 비린내가 구석구석 헤집고 있었다.

 

그런 것이다.

인간이라는 존재가 아무리 발버둥을 치며 살아보았자, 세상이란 그런 것이다.

자기 자신을 꼭 닮은 회색 담벼락에 몸을 기대며 유현은 담배향기를

시궁창 보다도 더 구질구질 해 보이는 하늘에게 건넨다.

 

"이봐. 당신 말대로라면, 이제 행복해져야 하는거 아냐? "

 

기분나쁜 비소가, 그의 붉은 입술위를 뒤틀듯이 휘감으며 지나갔다.

자조 섞인 웃음소리가 그렇게 구질구질한 골목을 헤집는다.

알싸한 니코틴의 독이 유현의 폐 구석구석에 스며드는 것처럼.

 

"주지않을 거라면, 이제 죽여줘도되잖아. 너무 오래지났어..."

 

 

한숨.

그리고 여느때와 같은 발걸음 소리.

'공간'을 메우는 것은 절대로 '존재'가 아니다.

그 어느 곳이든 공간을 메울 수 있는 것은 영원 뿐이었다.

어리석었던 시절, 유현이 그렇게나 갈구했던 영원은 신에게만 허락 된 유희였던 것이다.

[불로불사의 비약] 그렇게 지칭되는 자신의 심장을 꺼내 보며 그는

한번 더 알싸하게 미소짓는다. 그렇게나 원했던 것은 죽음이었다.

20년전... 미친듯이 발버둥치며, 벗어나려고 했던 광기의 죽음 말이다.

 

 

 

 

 

 

"안녕하십니까?"

 

사내는 자신을 '신' 이라고 소개했었다.

하늘이 울고있던 날, 유현의 손에 묻은 피를 보며 사내는 웃어주었다.

 

"당신의 소중한분을 되살리고 싶습니까?"

 

수술은 성공적이었다. 한치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는 신의 손을 가진 남자.

그것이 장유현 이라는 인간이었다. 하지만 그날의 실패는 치명적인 독이되어

그의 모든것을 앗아가 버렸다.

 

"그게.. 무슨소용이지?"

 

소중한 것을 살리고 싶다는 마음은 살아있다면 누구나 가지는 것이다.

하지만, 심장마저 차가워져 버린 유리조각 속에는 더 이상 온기가 없다.

 

"저런! 그렇다면 다른소원을..? "

 

소원이라.

유현의 머릿속에 잔상이 스치고 지나갔다.

완벽한 수재로 살아 온 그에게 소원은 비는 것이 아니라 성취하는 것이었다.

그랬건만, 단 하나조차 구걸하지 못할 것이 인간이라면 완벽함 조차 의미를

잃어버린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약간의 광기를 곁들인 재미있겠다는 생각도

유현의 입술을 움직이게 만든 하나의 원동력이었다.

 

"당신이 신이라면, 내 젊음을 영원히 유지시켜 봐."

 

사내의 코안경이 흰 가운자락 위로 떨어져 내렸다.

소리없이 안경의 유리알들이 깨어져 나간다.

[사랑해.. 사랑해..] 귀를 틀어막아도 온몸을 헤집는 함성소리를 그저 멍하니

바라만 보았고, 마법에라도 걸린 둣이 그때부터 자신은 시간을 거꾸로 살기 시작했다.

 

"당신에게 영원한 젊음을 선물하겠습니다. 과거로부터의.."

 

자칭 '신'이라고 소개한 사내는 유현을 놀리듯이 시야에서 옅어져 갔다.

이름을 묻거나 흰 가운 자락을 붙잡아 보기도 전에, 그는 사라진다.

자신이 내 뱉는 희뿌연 담배연기 속으로...

 

 

 

 

 

 

 

 

그리고 정확히 20년이 지났다.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집착은 강해져만 간다.

손에 잡았다고 생각하고 눈을 돌리면, 그것은 내일의 일이 되어버렸다.

 

"아저씨! 이런데서뭐해? "

 

노란 풍선을 양손에 꼭 쥔 소녀가 유현을 올려다 보며 물었다.

동그랗게 뜬 검은 눈동자 중앙의 홍채가 아름답게 흔들린다.

'젠장, 아직도 그놈의 의사 근성인가.' 혼자 입속말을 중얼거리며 유현은

무릎을 굽혀 소녀와 키를 맞춰 주었다.

 

"또왔네."

 

"......?"

 

고개를 갸웃 거리는 소녀를 바라보며 실언을 해 버렸다는 것을 깨닫고

한번 더 고개를 저었다.

 

"아, 아니야."

 

자신이 만난 것은 어제까지의 소녀.

오늘은 없다.

달력의 날짜는 거꾸로 흘러갔고, 벌써 오랜 시간을 거꾸로 걸어왔다.

거울 속의 소년으로 부터.

 

 

"저기, 아저씨! 내 친구가 아저씨랑 얘기하고 싶다는데, 데려올래."

 

물음이나 동의를 구하는 표현이 아닌, 자기자신의 결론.

어린아이들의 순수함이라 표현하기에는 지나치게 차갑다.

그 소녀가 아니라, 소녀를 바라보는 유현의 눈동자가.

 

 

"잠깐만, 현주야!"

 

처음 보는 사람이 자신의 이름을 불렀는데도 아이는 아랑곳 하지 않고 달려갔다.

노랑색 풍선이 파란 하늘에게 경적을 울리며 펑! 하고 터져버렸다.

그래도 소녀는 아랑곳없이 달려간다.

신호등이 파란빛에서 붉은빛으로 역할전환을 시도한다.

 

지나치게 시끄러운 소음소리.

그리고, 전신을 퉁기는 음이 고막을 찢어버릴듯 연주되어 흘러나온다.

악기는 유현의 몸.

 

맑던 하늘에 갑자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시릴정도로 푸르던 하늘이 온통 붉은 색채를 띄었다.

 

자신도 모르게 지어지는 익숙한 비소와

낯익은 목소리.

 

"어떠셨나요? 제가 드린 젊음의 유희는."

 

거울 앞에서 7살은 되었을까 말까한 소년이 미소짓고 있었다.

한쪽 입꼬리를 비틀어 올린 채로.

간간히 들리는 물소리와 깨어진 유리조각의 파편이 거울에 맞춰져 갔다.

 

 

 

그리고,

아이의 입이 해맑은 웃음 소리를 자아낸다.

빛으로도 변하지 못한 채 하늘의 꿈을 꾸다 공중으로 사라져 버릴 유희를.

 

 

"짜증나. 짜증날 정도로 길었어.

 역시 인간은 뫼비우스의고리에 걸맞지 않아."

 

 

유현의 눈이 하늘을 바라보려다 말고 갑자기 시선의 전환을 시도한다.

디디고 있던 대지로.

 

"그런 건가..."

 

 

 

거울 앞.

7살 먹은 아이가 해밝게 웃고있었다.

 

"유현아! 유현이는 크면 뭐가 될래?"

 

손을 씻다말고 엄마를 향해 고개를 돌린 아이는 큰 소리로 외친다.

 

"사람들을 살리는 사람이 될꺼야!"

 

"왜?"

 

부드럽게 미소짓는 여인이 아이의 볼을 감싸 안는다.

손가락 사이를 스쳐가는 바람이 시원하게.

 

"음... 왜냐하면, 오래오래 살면 좋은거잖아!"

 

 

 

 

 

거울 앞.

27살 먹은 청년이 일그러진 웃음을 짓는다.

 

"장유현군. 도대체 하고싶은 일이 뭔가? "

 

교수의 날카로운 물음이 실습생인 그의 심장을 쿡쿡 찌른다.

차가운 안경알 너머로 이해할 수 없는 지식이 번득인다.

 

"잠시 즐겼던 놀이를 마치고 돌아가고 싶습니다."

 

"무슨말이지?"

 

겨울임에도 차가운 캔커피를 마시던 유현의 입술이 열렸다.

더 이상 붉은 빛이 아니지만, 그것은 나름대로 아름다웠다.

 

 

 

"이제, 땅으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연기조차 받아주지 않는 하늘은 싫습니다."

 

 

높은곳을 향하던 알싸한 유희가 추락한다.

날개는 꺾인것이 아니라 사라져버렸다.

하지만 전혀 가슴아프지는 않도록...

 

 

"즐거운 꿈 꾸시기를. 장유현 군."

 

 

'신'이라 스스로를 자칭한 남자의 흰 가운 자락이 펄럭였다.

그것 역시 잠시 공중으로 날아가더니 대지위에 추락해 버렸다.

짙은갈색의 흙투성이 바닥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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