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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터리가 없습니다

  • 작성자 소악마
  • 작성일 2007-09-07
  • 조회수 466

 

배터리가 없습니다



  새벽 세시 반, 장승 하나가 혼자 편의점 카운터를 지키고 있었다. 아니, 장승이 아니라 중년의 남자다. 남자의 얼굴은 주름살이 부각되어 마치 하회탈 내지는 돌하르방의 얼굴처럼 보였다. 고생을 많이 한 얼굴이다. 주름살 때문에 그는 얼굴만 놓고 보면 한 마흔쯤 되어 보인다. 사실 마흔까지는 아니어도 그의 나이는 서른이 훌쩍 넘는다. 이상하지 않은가? 서른이 넘은 남자가 고작 편의점의 아르바이트 따위를 하고 있다니. 남자는 바깥 동정을 살피더니, 손님이 더 올 기미가 보이지 않자 곁에 있는 가방을 열어 무언가를 꺼낸다.


  그것은 일본 회사명이 적혀있는, 낡디 낡은 CD 플레이어(이제부터는 간단히 CDP라 부르도록 하자)였다. CDP 여기저기에는 그 자신만큼이나 낡은 상처들이 그득했다. 남자는 어떤 아련한 추억을 되새기듯 늙은 기계를 천천히 쓰다듬었다. 이윽고 그는 이어폰을 그의 귀에 꽂고 조용히 주름진 눈을 감는다. 남자의 거친 두 손은 어떤 일정한 형상을 그리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형상은 차차 알 수 있는 무언가로 변했다. 그것은 어떤 악기를 연주하는 움직임이었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것은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손놀림이었다. 그의 손은 날아갈 듯 가벼웠다. 이윽고 두 손의 날렵한 움직임 아래 그의 과거가 연주되기 시작했다.



  그의 아버지는 클래식 음악 애호가였다. 아버지는 그가 여섯 살이었을 때부터 개인선생을 구해 바이올린을 배우게 할 정도로 음악에 열성이었다. 어린 그에게 바이올린은 사실 낯설었다. 처음 바이올린을 봤을 때, 여섯 살의 그는 이상한 벌레를 바라보듯 바이올린을 바라보았던 것 같다. 바이올린은 그의 팔뚝만 했다. 어린 그에게는 바이올린을 제대로 잡는 것조차 힘들었다. 하지만 그는 곧 그 낯선 악기에 매료되었다. 바이올린은 그에게 가을 풀밭의 곤충들만큼이나 아름다운 소리를 들려주었다. 바이올린 선생은 그가 가장 좋아하는 사람이 되었다. 선생은 그의 작고 보드라운 손에 활을 쥐어주며 이렇게 말했다.


  “바이올린은 활을 정확히 잡는 것부터 시작하는 거란다.”

  “바이올린을 악기라고 생각하지 말고 너의 친구라고 생각해 보거라. 녀석이 얼마나 노래하고 싶어 하는지 느껴지지 않니?”


  바이올린 활도 역시 그에게는 바이올린만큼이나 거대했다. 어린 그가 활을 제대로 잡게 되는 데는 꼬박 삼일이 걸렸다. 하지만 그 때부터 그 활은 그에게 평생의 친구가 되었다. 그가 가는 곳에는 어디에나 활이 그의 뒤를 따랐다. 그는 그렇게 커다란 바이올린과 친구가 되어갔다.


  그에게는 확실히 남다른 재능이 있었다. 다른 사람들이 일 년에 한 권씩 뗀다는 스즈키 바이올린 교본을 그는 그 두 배 속도로 떼기 시작해 여덟 살, 국민 학교에 입학할 때 즈음엔 이미 3권을 떼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열 살 때 이미 스즈키 교본을 7권까지 뗀 후 베토벤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는 당시 티브이에 유행하던 <보통 사람들>이나 <한 지붕 세 가족>과 같은 티브이 드라마보다도 베토벤을 더 좋아했다. 그의 집에서는 맑은 바이올린소리가 끊일 날이 없었다. 그는 바이올린이 세상에서 제일 좋았다. 하지만 그가 스즈키 교본 7권을 모두 떼고 자랑스러운 얼굴로 달려갔을 때, 그의 아버지는 이렇게 말했다.


  "공부도 해가면서 쉬엄쉬엄 해라. 너무 딴따라에만 빠지면 못써."


  아버지는 아들의 성적표와 바이올린의 무게를 냉정하게 재는 사람이었다. 음악 애호가였음에도 불구하고 아들의 성적표를 위해서라면 클래식을 거침없이 딴따라라고 부를 수 있는, 아버지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날 밤, 그는 일기장에 무언가를 꾹꾹 눌러 썼다. 자신의 감정을 꾹꾹 눌러 담듯이.


  <아버지는 더 이상 음악 애호가가 아니다.>


  그때부터였을까, 그와 아버지는 바이올린을 가운데 두고 빈번히 대립하기 시작했다. 그 논쟁은 “그만 하고 공부 좀 해라.” 라는 말로 시작해서 “조금만 더 할게요.” “너 공부는 언제하고?” 하다가 “원 저 녀석, 고집은 누굴 닮았을꼬. 쯧쯧,” 이라는 말로 끝나는, 주로 그런 종류의 논쟁이었다. 아버지는 밤마다 그에게 법관이 되라는 말과 법관이 되면 좋은 점에 대한 설교를 한참동안 늘어놓곤 했다. 그는 그런 아버지가 싫었고, 사춘기에 들어서는 점점 대들기도 하며 아버지와 거리를 두려 했다. 그 거리는 점점 늘어나 둘은 한 집에 살면서도 거의 삼일에 한번 꼴로 얼굴을 보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둘 사이에는 마치 보이지 않는 철조망이 쳐져있는 듯했다.


  그가 열다섯 살이 되던 해ㅡ그러니까 그 때가 1989년 이었다ㅡ그의 생일, 아버지는 그를 자신의 방으로 불렀다. 그와 아버지의 갈등은 점점 심해져 거의 부자지간을 갈라놓는 수준을 달리고 있던 때였다. 그는 굳은 인상을 억지로 펴고 아버지의 서재로 들어섰다. 서재는 그에게 있어 언제나 차가운 공간이었다. 그 공간 너머 아버지가 앉아 있었다. 아버지는 그에게 말했다.


  “생일 축하한다.”


  아버지는 그에게 무언가를 내밀었다. 이를테면 화해의 선물이었다. 그것은 86년에 일본 소니사에서 출시한, 그 당시 국내에서는 보기 힘들었던 D-100이라는 기종의 휴대용 CDP였다. 그걸 받아들은 그는 아버지에게 꾸벅 절을 올렸다. 몇 번 지나가듯 말하긴 했지만, 설마 정말 그걸 구해줄 거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던 까닭이다.

 

  “이제 그만 싸우고, 좀 잘 지내보기로 하자. 우리는 부자지간이 아니더냐?”


  아버지는 그에게 손을 내밀었고, 그는 그 손을 꽉 움켜쥐었다. 그렇게 둘은 단숨에 철조망을 철거하고 화해의 순간에 이르는 듯 보였다.


  “감사합니더.”

  “허허, 그게 그렇게 좋으냐?”

  “좋고 말고예.”

  “녀석, 그래, 그걸 가지고 뭐를 들을 생각이냐?”

  그 때 그의 아버지는 아마 유행가라는 대답을 떠올리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의 대답은 기어이 아버지를 실망시켰다.

  “바이올린 연주 좀 많이 들을라고요. 이거만 있으면 선생님이 씨이디는 많이 빌려준다고 하셨어라. 많이 듣고 많이 연습해야 실력도 빨리 늘지예.”


  그 때, 그는 아버지의 얼굴이 마을 어귀에 선 장승마냥 딱딱하게 굳어지는 것을 보았다. 그제야 그는 자신의 실수를 깨달았다.


  “감사합니더.”


  그는 그저 그렇게 한 번 더 인사를 하고 얼른 자리를 빠져나왔다.

  그 후로 그와 아버지의 사이는 급속히 나빠지기 시작했다. 아버지의 선물은 원래의 의도와는 달리 오히려 둘 사이의 냉전 상황을 더욱 심화시켰을 뿐이었다. 그때부터 그에게는 가내(家內) 바이올린 연습 금지령이 떨어졌다. 그는 이불을 몇 개씩이나 뒤집어쓰고 아버지 몰래 연습을 하려 했으나, 날카로운 바이올린 소리를 막을 수는 없었다. 당시 구하기 힘들었던 약음기(바이올린의 소리를 약하게 하는 도구)까지 구해서 끼워보아도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결국 그는 일주일에 한 번씩 레슨을 받는 선생의 집에서 맹연습을 하고 나머지 시간에는 끊임없이 CD를 들을 수밖에 없었다. 그 때부터 그는 CDP와 급속도로 친해졌던 것이다.


  선생이 빌려주었던 여러 CD 중에서도 그는 자크 티보의 음반을 유별나게 좋아했다. 그는 티보의 연주가 학의 날갯짓을 닮았다고 생각했다. 티보의 연주는 다른 사람들에 비해 빠르지도, 화려하지도 않았지만 섬세하고 우아했다. 펄럭 펄럭, 그는 언제나 티보의 음악을 들으며 머릿속에 날갯짓하는 커다란 학을 그려보곤 했다. 선생에게는 다행히 일본의 EMI나 HMV에서 출시된 티보의 음반이 많았다. 그는 티보의 연주를 듣고 또 들었다.


  그 이듬해가 시작되던 날, 아버지는 저녁식탁에서 아들의 고등학교 입시를 위해 바이올린 레슨마저 끊겠다는 발표를 했다. 아버지의 표정은 엄숙했고 아들의 표정은 침통했다.


  “아부지…….”

  “안 돼.”

  “좀 봐주셔요.”

  “글쎄, 안 된다니까.”


  아버지는 그의 애원을 딱 잘라 거절했고, 그는 어깨를 움츠리며 고개를 떨어뜨렸다. 그날 아버지의 서재를 나오면서 그는 마음속으로 무언가를 단단히 결심했다.


  그날 밤, 그는 보따리 하나만을 들고 몰래 집을 나왔다. 그가 가지고 나선 것은 구형 CDP와 바이올린, 학교에서 저축하라고 해서 틈틈이 내놓은 것을 찾은 십이만 원, 그리고 자크 티보가 축음기로 녹음한 것을 EMI에서 CD로 재녹음해서 내놓은 10장 CD 세트가 전부였다. 그는 나중에 바이올린으로 성공해서 꼭 다시 돌아오겠다고 다짐했다. 그는 그 때부터 이곳저곳에 머물며 막노동이든 무엇이든 닥치는 대로 일을 해서 생계를 꾸렸고, 밤마다 CD를 들으며 바이올린을 연습해왔던 것이다. 그가 열심히 번 돈은 거의 전부가 바이올린 줄 값이나 활 값으로 나갔다. 또한 그의 몸이 자라면서 바이올린의 사이즈도 점점 커질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그는 새 바이올린 값도 틈틈이 마련해야 했다. 변변한 직장조차 없어 항상 돈이 부족했던 언제나 그는 최악의 악기를 쓸 수밖에 없었다.


  “이봐, 어서 일어나게나. 아직 근무 시간이야!”

  그는 언제나 자주 졸았다. 밤늦게까지 일하고 연습하느라 잠을 거의 못 잔 탓이었다. 졸 때마다 그는 자신이 음악으로 성공하는 꿈을 꿨다. 언제나 자신은 무대에서 완벽한 음악을 연주하고, 관객들은 열렬한 갈채를 보내고, 그의 뒤로 커다란 학이 날갯짓하며 창공을 향해 날아가는 것이었다. 같은 꿈을 수십 번쯤 꿨을까? 하지만 현실에서 그런 꿈같은 데뷔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는 어느덧 헛된 기대만을 안겨주는 꿈을 증오하기 시작했다.


  그가 처음으로 데뷔하기를 원했던 것은 스무 살이 되었을 무렵이었다. 어느 정도 티보의 음악을 이해하고 완벽히 재현해낼 수 있다고 자부했던 것이다. 그러나 현실을 냉혹했다. 그의 음악은 너무 고전적 해석에 얽매이고 있으며 기교가 부족하다는 평을 받았을 뿐, 음대조차 나오지 않은 그를 받아줄 후원자는 그 어디에도 없는 듯싶었다. 거기다가 그의 질 나쁜 싸구려 바이올린은 그의 연주를 더욱 초라하게 만들었다. 그는 여러 기획사와 프로덕션에 찾아가 보았으나 먼저 그의 학력을 확인한 관계자들은 언제나 연주를 건성건성 귓전으로 듣고는 이내 고개를 가로젓는 것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는 점점 나이를 먹게 되었고, 그에 따라 관계자들의 태도도 싸늘해져갔다.


  “안 돼. 자네는 일단 좋은 선생을 찾아서 좀 더 연습하고 다시 도전해 보는 게 좋을 것 같군. 아니면 바이올린에서 이만 손을 떼던지. 나이도 꽤 된 것 같은데 말이야. 솔직히, 데뷔하기엔 너무 늦은 나이 아닌가?”


  만약 그가 가진 CD가 자크 티보가 아니라 기돈 크레머나 하이페츠의 음반이었다면 상황은 좀 더 나아졌을 런지도 모른다. 그들의 연주는 현대 음악계에서 중시하는 복잡한 기교도 갖추고 있었으며 속도를 중시했기 때문에 무심한 관계자의 귀도 잡아끌 수 있었을 테니까. 느릿느릿한 동물들 보다는 재빠른 삵이 눈에 잘 띄는 법이다. 자크 티보는 한 마리 학과 같이 느리고 섬세하면서도 고풍스러운 연주를 추구했던 음악가였다.


  하지만 그에게 있어 티보는 음악세계의 전부였다. 그는 CD를 통해 티보를 접하고 바이올린에 티보를 담아내었다. 그의 CDP는 그가 아는 한 그보다 더 완벽하게 자크 티보를 연주할 수 있는 유일한 음악가였다. CDP는 그를 가르치는 유일한 스승이었다. 그는 CD의 음악을 듣고 또 들었다. 그의 연주는 자크 티보만을 지향점으로 삼아 나아가고 있었다.


  그는 요즘 신인들이 하는 연주란 어떻게든 원래의 곡을 비틀어 어떻게든 자신은 남들과는 다르다는 걸 내보이는 얕은 수작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언제나 무언가 새로운 것, 남들이 해보지 않은 것만을 찾았다. 아마 요즘 세상은 그래야 인기를 끌 수 있는 모양이지, 그는 인터뷰에서 떨어질 때마다 그렇게 생각하곤 했다. 하지만 그는 어딘가에는 자신을 알아줄 프로듀서가 있다고 믿었고, 끝내 희망을 버리지 않고 다른 프로덕션을 찾아가 보곤 하는 것이었다.


  ‘어째서 음악을 그렇게 망치는 것일까?’


  그는 젊은 연주자들을 영원히 이해할 수 없을 것만 같았다. 또한 그들의 연주를 듣고 열광하는 관객들도 이해할 수 없었다.


  “결국 네 신세도 나와 다를 바 없구나.”


  가끔 그는 CDP를 바라보며 중얼거리곤 했다. 그럴 때면 CDP는 그에게 있어 자신과 같이 “느릿느릿한 자크 티보식 음악밖에 연주하지 못하는 존재”가 되었다. 그는 서글플 때면 CDP를 바라보며 위안삼기도 했다. 그렇게 그는 서른까지 늙었다. 그는 무려 십 년의 시간을 구형 CDP와 싸구려 바이올린을 만지작거리며 흘려보낸 것이다.



  이야기의 본궤도로 다시 돌아가 보도록 하자. 그가 눈을 감고 시작한 ‘보이지 않는 바이올린’의 연주가 막 끝나갈 무렵 편의점에 한 단발머리 소녀가 들어왔다. 그는 새벽 4시 반부터 아침까지의 일을 담당하고 있는 아르바이트생이었다.

  “아저씨, 이제 제가 맡을게요. 들어가 보세요.”

  눈을 감고 연주에 집중하고 있던 그에게 아르바이트생이 말했다.

  “허허,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되었나?”

  그는 멋쩍은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거렸다. 연주에 몰두하는 모습을 본의 아니게 보인 탓이다.

  “그럼, 이만 가볼 테니, 열심히 하거라.”

  그는 편의점 직원용 사무실에 들어가더니 바이올린 케이스를 들고 편의점을 나섰다.


  아르바이트가 끝나는 이른 새벽이면 그는 주변 공원에 가서 바이올린을 연습한다. 싸구려 바이올린에 변변치는 않지만 그런 대로 약음기까지 달아놓은 덕에 그의 연주소리는 인근 주민들의 잠을 방해할 정도로 크지는 않았다. 아주 가끔씩 새벽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귀를 기울이기는 했으나, 그것도 잠깐이었다. 사람들은 언제나 빠르게 몰려들었다가 빠르게 사라졌다. 그래서 그는 항상 혼자 남아 연주했다. 그의 느릿느릿한 자크 티보식 연주는 이 시대의 그 누구에게도 감흥을 줄 수 없는 것 같았다. 그는 최대한 상관하지 않고 연주하려 했으나, 약간이라도 신경이 쓰이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공원 구석에 자리를 잡은 그는 바이올린을 들어 올려 곧 연주를 시작했다. 첫 곡은 흔히 ‘크로이처(Kreuzer)’로 알려져 있는 베토벤의 바이올린 소나타 9번이다. 이 곡은 섬세하고 우아한 느낌의 곡이라 티보의 기법이 잘 어울리는 몇 안 되는 곡들 중 하나다. 그는 CDP 속에만 존재하는 피아노 반주를 머릿속으로 상상하며 그에 맞춰 바이올린을 켜기 시작했다. 바이올린 활이 무겁게 움직이기 시작한다.


  1악장 아다지오(느리게)의 끝자락, 피아노와 바이올린은 화려한 연주를 차례로 주고받기 시작한다. 그의 바이올린 활은 점점 폭발적으로 움직여나가다가 2악장의 변주를 만나자 마치 물속을 노니는 한 마리 송사리마냥 사뿐사뿐한 움직임을 보인다. 티보 특유의 섬세한 테크닉이 여지없이 발휘되는 부분이다. 그는 곧 가벼운 활놀림으로 ‘피날레’라고 불리는 3악장에 들어선다. 3악장은 화려한 선율의 카덴차(Cadenza-악보를 보되 빠르기나 강세는 연주자의 해석대로 자유롭게 연주하는 부분)가 돋보이는 악장이다. 그의 활은 주제 하나하나를 잡아내고 카덴차를 연주한다. 절정, 그의 활은 부르르 떨어대었다. 그는 무거운 떨림으로 연주를 마무리 지었다. 막 연주를 마치고 그가 다음 곡을 생각하고 있을 때였다.


  짝짝짝


  박수 소리였다. 곁에서 조용히 듣고 있던 한 남자가 그의 음악에 갈채를 보낸 것이었다. 날렵하게 생긴 남자였다. 남자는 잘 빠진 정장을 차려입고 있었다. 가늘게 쭉 찢어진 남자의 눈빛은 약삭빠른 장사꾼의 그것을 생각나게 했다. 남자는 그에게 말을 걸어왔다.


  “이봐요.”

  “……?”

  “이 바이올린으로 한번 다시 연주해보시지 않겠소?”


  뜻밖에도 남자가 내민 것은 바이올린이었다. 그는 무심코 남자가 내미는 바이올린을 잡았다. 그리고 생각했다.


  ‘내 것보다 월등히 가볍다.’


  그는 활을 대충 그어본다. 끼잉ㅡ 대충 그었는데도 불구하고 잡음이 거의 섞이지 않은 소리다. 그는 확신했다.


  ‘좋은 바이올린이다.’


  그는 이 바이올린이 적어도 백만 원은 할 것이라 생각했다. 사실 백만 원이 바이올린 가격으로 결코 비싼 것은 아니었으나, 그가 쓰는 저가의 중국산 바이올린보다는 월등히 나은 소리를 내주었던 것이다. 그는 남자의 주문대로 ‘크로이처’를 다시 연주하기 시작했다. 활의 움직임이 훨씬 가벼워졌다. 그의 연주에서 티보의 베토벤이 재현되고 있었다.



  단칸 자취방으로 돌아온 그는 눈에 띄게 흥분해 있었다. 그의 가슴은 두근거렸고, 얼굴은 열이 난 것처럼 빨갰다. 평소 감정표현이 드문 그답지 않은 행동이었다. 그는 애써 가슴을 진정시키며 공원에서 있었던 일을 회상했다.


  그는 ‘크로이처’를 가히 완벽하게 연주하고 있었다. 카덴차를 끝내는 순간, 그는 자신의 연주가 CD에 담긴 티보의 연주를 완전히 흡수했다고 느꼈다. 연주를 끝낸 그의 눈에는 한 마리 학이 날아가는 환영이 보이는 듯했다(그는 훗날 이 연주를 생애 가장 순수하고 완벽했던 연주라고 회상했다). 그러나 그게 다가 아니었다. 그게 있었던 일의 전부였다면 그는 이토록 기뻐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정작 중요한 일은 그 후에 일어났다.

  그의 연주가 끝나자 남자가 그에게 명함을 내밀었던 것이다. 그 명함에는 이렇게 적혀있었다.


[JD프로덕션, 실장 김 재형]


  “저 이런 사람입니다. 혹시 저희 프로덕션에서 일해보실 의향 있으십니까? 저희는 선생을 클래식계의 스타로 만들어드릴 수 있습니다. 물론, 좀 다듬어야 하겠지만.”


  그는 그저 멍하니 서 있었다. 모든 것이 꿈만 같았다. JD프로덕션이라면 여러 뮤직 프로덕션 중에서도 꽤나 알아준다는 곳이었다. 이런 곳에서 나 같은 사람을? 몸이 붕 뜨는 것만 같았다. 남자는 이윽고 그에게 이것저것을 물어보기 시작했다.


  그는 남자의 물음에 어떻게 대답했고 또 남자를 어떻게 보냈는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이 방에 돌아오기까지의 일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자취방에 다 도착해서야 자신이 아직도 남자가 준 바이올린을 꼬옥 쥐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일기장을 꺼냈다. 그가 한 문장씩이나마 꼬박꼬박 일기를 쓰는 것은 그의 아버지가 물려준 버릇이었다. 그는 한자 한자를 꾹꾹 눌러 적었다. 그렇게 눌러쓰지 않으면 글자들이 금방이라도 날아가 버릴 것만 같았다. 그리고 자신은 편의점 카운터에서 졸다가 깨어나 지금까지의 일이 자신이 꿨던 수십 번의 꿈 중의 하나였다는 비참한 사실을 깨달아버릴 것만 같았다.


  <나는 이제야 음악가가 되려나보다.>


  그 다음날부터 그는 전보다 훨씬 바빠졌다. 그가 가장 먼저 한 일은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그만 두고 남는 시간을 모두 연습시간으로 돌린 일이었다. 김 실장은 그에게 넓은 연습실 하나를 통째로 내주었다. 그곳에서 그는 하루 종일 바이올린을 연습할 수 있었다. 김 실장은 그에게 말했다.


  “저희도 선생을 그대로 전면에 내세우고 싶긴 하지만, 이 바닥 생리가 워낙 경력이 없으면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서요. 일단 선생을 리사이틀로 데뷔시킬 겁니다. 세 달 후에 이 곡들로 리사이틀을 열 테니 그 때까지 연습해주세요.”


  김 실장은 그에게 종이쪽지 한 장을 내밀었다. 그 쪽지에는 바이올린 곡이 열일곱 곡이나 적혀 있었다. 그 중 여섯 곡은 그가 잘 모르는 요즘의 곡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에 두 곡이 따로 떼어 적혀 있었다. 그는 그 두 곡을 가리키며 물었다.


  “이건 뭐죠?”

  “일명 앵콜곡이라는 거죠.”

  “하하, 제가 앵콜 요청을 받을 정도로 잘 연주하진 못할 텐데요. 게다가 이 곡들은 클래식이 아니라 대중가요잖아요?”

  “아이고, 선생이 이 바닥을 아직 잘 모르셔서 그럽니다. 청중들은 연주가 좋았든 나빴든 언제나 앵콜을 원하지요. 그건 연주자의 음악을 사랑해서가 아니라 단지 이왕 같은 돈 내고 들어온 거 조금이라도 더 듣자는 거 에요. 왜 있잖아요, 그 남대문가서 ‘조금만 더 깎아주세요’하는 거랑 같은 거죠. 어쨌든 이 직종도 서비스업이니까요. 그리고 대중가요는 하나의 관례 같은 거죠. 외국의 유명 아티스트들도 우리나라에 와서는 꼭 <아리랑>이나 <도라지 타령>같은걸 연주하고 가곤 하는데, 그거랑 같은 맥락이에요.”


  실장은 그에게 말할 때마다 이 바닥이라는 말을 썼다. 그는 그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음악을 장사하는 수준까지 내려깎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음악을 겨우 남대문 시장에 비교하다니. 음악이란 그에게 있어서 평생 동안 바라보고 올라가도 절대로 닿을 수 없는 성역(聖域)과 같은 것이었다. 세상에, 남대문 시장이라니. 자크 티보가 무덤에서 일어나 통곡하겠군, 그는 생각했다.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그 뿐이 아니었다. 그가 바이올린을 켜고 있을 때도 실장은 자주 들어와 그의 음악을 보며 이것저것을 지적하곤 하였다.


  “아니, 그 부분은 좀 더 빠르게 나가세요.”

  “쯧쯧, 거기서 테크닉을 보여줘야지, 그렇게 거북이처럼 지나가면 어떡합니까?”

  “거긴 그냥 확 슬러(slur)로 내려 그으세요. 각활로 그걸 언제 다 연주하려 그러세요?”

  “선생의 연주는 너무 솔직해요. 그럼 재미가 없잖아요. 여기서는 떨어주고, 그래요, 거기서는 좀 더 끌어주는 겁니다.”


  실장은 거친 원석을 세공하듯 그의 음악 여기저기를 깎고 다듬었다. 그는 그게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실장은 그의 학을 거북이 취급했다. 하루는 도무지 견딜 수 없는 모멸감에 참지 못해 실장에게 따진 적도 있었다.


  “아니, 이게 제 음악인데 어떡하라는 겁니까? 리사이틀은 제 음악을 보여주기 위해 나가는 게 아니던가요? 음악은 연주자의 해석에 따라 얼마든지 다를 수도 있는 게 아닌가요? 저는 그냥 제 해석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따지고 드는 그에게 실장은 이렇게 말했었다.


  “선생, 바이올린계에서 자주 언급되는 격언 열 개가 있습니다. 일명 ‘바이올린 십계명’이라 불리는 거지요. 나탈리아나 윤소영 등을 길러낸 유명한 교수님이 한 말씀입니다. 그중에 하나가 뭔지 아십니까? 바로 ‘활은 짧다, 그러나 프레이징은 길다’는 문구입니다. 청자는 활을 어떻게 쓰든 상관하지 않으니, 단지 그들이 듣기 좋도록 들려주면 된다는 거지요. 다시 말해, 음악은 연주자가 아니라 청자를 위한 거다 이겁니다. 선생도 선생 자신의 고집보다는 듣는 사람들을 먼저 생각하셔야죠.”


  그는 교수라는 사람이 그 격언을 남긴 의도는 그게 아니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여기서 더 따지고 드는 것은 위험해 보였다. 실장은 말을 바꿀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고, 또 그에게 약간은 화가 난 듯했다. 그는 잘못하면 애써 얻은 자리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쩔 수 없이 그는 실장이 원하는 기교들을 연습했다. 그의 음악은 불안할 정도로 빨라지기 시작했다.


  “거기는 좀 더 빠르게 하셔야죠.”


  실장의 입에서 나온 단어들은 언제나 그를 채찍질했다. 그는 그럴 때마다 실장의 음악을 그대로 받아 재생하는 하나의 CDP가 되었다. 실장은 혀를 움직여 그의 귀에 붙은 <녹음>버튼과 <재생>버튼을 쉴 새 없이 눌러대었다. 그럴 때면 그는 실장의 음악을 그대로 녹음했다가 재생해보이곤 했다. 실장은 또 언제인가 그에게 활을 하나 선물하였다.


  “앞으로 이걸 쓰도록 하세요.”

  “……?”


  활이라니. 의아한 듯 실장을 바라보는 그에게 실장은 말했다.


  “그게 바로 사토리활(Sartory bow)이라는 겁니다. 파가니니(빠르고 정밀한 기교로 유명한 바이올리니스트)가 쓰던게 바로 그겁니다. 속주를 하는 덴 아주 그만이지요. 처음에는 좀 힘들지 몰라도 익숙해지면 테크닉이 훨씬 수월할 겁니다.”


  그는 그날부터 사토리활을 들고 연습하게 되었다. 활이 바뀌자 활을 잡는 법도 변해갔다. 예전 그의 개인선생이 가르쳐준 방법은 분명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괘념치 않았다. 실장의 테크닉, 테크닉, 하는 끊임없는 채찍질이 너무나 혹독했던 나머지 그에겐 활에 신경 쓸 시간이 없었던 것이다. 실장은 말했다.


  “요즘 관객들은 빠르고 강렬한 것만을 찾아요. 에이, 그 속도 가지고는 안 돼.”


  문구점에 놓인 복사기처럼 그는 날마다 실장의 음악을 복사해갔다. 그는 자신의 음악이 망가지는 걸 느꼈다. 숨이 막혀왔다. 한동안 꾸지 않던 꿈도 다시 꾸기 시작했다. 꿈속에선 언제나 실장이 자신의 입에 악보를 쑤셔 넣곤 했다다. 그는 캑캑거리며 저항한다. 저항할수록, 실장은 더욱 강하게 쑤셔 넣으며 소리치는 것이었다.


  “좀 더 빨리! 좀 더 빨리!


  그쯤 되면 그는 숨이 막히는 걸 느끼고 잠에서 깨어난다. 그는 이런 꿈을 한 달 동안 무려 스무 번이나 꾸었다. 어느 날 밤, 그는 일기장에 무언가를 끼적거렸다.


  <학은 추락했다. 나는 더 이상 음악가가 아니다.>


  그렇게 세 달은 금방 지나갔다. 그는 리사이틀 무대에 서게 되었다. 콘서트홀은 거대했다. 그리고 에어컨 때문인지 냉장고 안에 들어온 것처럼 추웠다. 그 차가운 느낌에 그는 옛날 아버지의 서재를 떠올렸다. 아버지 대신 방청객을 꽉꽉 메운 청중들이 저 너머에서 그를 날카로운 눈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머리 위에 매달린 플레카드를 올려다 본 그는 크게 당황했다. 플레카드에는 “비엔나 음대를 졸업하고 귀국한 신인 바이올리니스트 ○○○, 그 대망의 첫 리사이틀!”이라고 쓰여 있었다.


  그는 사실 비엔나가 어느 나라에 있는 도시인지도 알지 못했다. 그가 비엔나에 관해 아는 거라곤 그가 근무했던 편의점에서 “비엔나소시지”라는 조그마한 소시지를 팔고 있다는 것뿐이었다. 잠시 당황해 있던 그는 이내 깨달았다. 플레카드는 그를 감싸는 포장지요, 그에게 붙은 가격표라는 것을. 대부분의 청중들은 그가 평생 입어보지도 못한 고급 양복을 입고 있었다. 청중들은 상품 품평회를 하듯 그를 수상쩍다는 눈길로 쳐다보며 자기네들끼리 무언가를 속닥대고 있었다. 그는 냉장고 안에 놓인 잘 다져진 비엔나소시지가 된 기분이었다.


  그의 가슴은 신기하게도 전혀 떨리지 않았다. 프로덕션의 인터뷰를 볼 때마다 그는 긴장감에 몸을 떨어대곤 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그는 자신이 마치 인간이 아닌, 사이보그처럼 느껴졌다. 그는 천천히 연주를 시작했다. 바이올린이 끼잉ㅡ 소리를 내며 기계적으로 음성을 내기 시작했다.

  저 멀리 김 실장이 팔을 크게 휘젓는 것이 보였다. 그는 생각했다.


  ‘아, 이게 아니지. 좀 더 빨리 해야 하나보군.’


  김 실장의 손짓은 사이보그를 조종하는 리모컨이었나 보다. 누군가 ‘빨리 감기’버튼을 누른 듯 그의 활의 움직임이 날쌔게 변했다. 김 실장은 그제야 팔을 내리고 만족스런 미소를 보냈다. 그의 연주는 매우 빨랐다. 그 속도에 관객들의 얼굴에는 경탄의 빛이 어리기 시작했다.


  “어쩌면 저렇게 빠르게 연주할까?”


  하고, 한 귀부인이 옆에 앉은 남자에게 묻고 있었다. 귀부인은 영화를 볼 때처럼 팝콘을 집어먹고 있었다. 팝콘이 바각, 바각, 씹히는 소리가 바이올린 소리에 곁들여져 박자를 맞추었다. 어느새 그의 음악에 자크 티보는 보이지 않았다. 그의 연주는 마치 컨베이어벨트로 못을 조립하는 공정과 같이 한 곡 한 곡을 기계적인 움직임으로 섭렵해나갔다. 열일곱 곡을 모두 마치고도 시간은 오히려 남게 되었다. 관객석 뒤에서 김 실장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는 게 보였다. 그는 관객들의 박수를 받으며 무대 뒤로 사라졌다.

  관객들은 박수를 크게, 그리고 오래 쳤다. 박수소리는 오래도록 끊이지 않았다. 관객들은 앵콜을 요구하는 것이다. 그는 다시 무대 중앙으로 걸어가 바이올린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대중가요를 켜기 시작했다.


  마치 누군가가 그의 바이올린에 ‘대중가요’ CD를 집어넣고 ‘재생’버튼을 누른 것 같았다. 빠르고 천박한(적어도 그는 그렇게 느꼈다) 대중가요의 가락이 그의 바이올린에서 유유히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관객들은 가락에 따라 제각기 노래를 불러댔다. 노랫소리에 묻혀 그의 바이올린 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을 텐데도 그는 곡을 한 번도 틀리지 않고 끝까지 연주했다. 그러나 관객들은 그의 바이올린 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 그가 들어가고, 관객들은 다시 박수를 쳐댔다. 그는 재빨리 걸어 나가 나머지 한 곡을 켜고 들어갔다. 역시 바이올린 소리를 거의 듣지 못하고서도 관객들은 뭐가 좋다고 그리 박수를 쳐대는지. 그는 그런 관객들이 신기할 따름이었다.


  연주가 끝나자마자 그는 대기실로 들어가 CDP를 켰다. 얼른 이어폰을 귀에 꽂고 티보를 듣기 시작했다. 자신의 바이올린 소리보다 여유로운, 그리고 좀 더 음악다운 음악을 듣고 싶었던 것이다. 티보는 그의 영혼의 충전제였다. 어서 학을 보고, 학의 날갯짓을 느끼고 싶었다. 그는 티보를 듣기 시작했다.


  그러나 CDP의 음악은 예전과는 다르게 들려왔다. 그 작은 기계는 마치 자신과 리사이틀 홀에서의 자신과 같이 티보를 연주했다. 공장에서 컨베이어벨트에 물건을 돌리는 것처럼 철컥, 철컥, 소리를 내며 티보의 곡을 하나하나 넘기고 있었다. 그는 당황하기 시작했다. 뭔가 잘못된 걸 거야, 그는 음악을 처음부터 듣기 위해 되감기 버튼을 눌렀다. 음악이 다시 재생되기 시작했다. 한 이십초 쯤 지났을까? 갑자기 티보의 음악이 뚝, 하고 끊겼다. 그는 황급히 CDP를 바라봤다. CDP는 그에게 말하고 있었다.


  [No Battery(배터리가 없습니다)]


  그는 갑자기 분노가 치미는 것을 느꼈다. 제어할 수도 없을 정도의 어마어마한 분노에 사로잡혀, 그는 CDP를 대기실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CDP는 몇 조각으로 쪼개져 흩어졌다. 깨끗했던 원목바닥에는 흠집이 났다.


  “밥이 없으면 음악을 못해! 너 따위가 날, 날 조롱하는 거얏!”


  CDP가 그를 향해 비웃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는 부서진 CDP조각을 번쩍거리는 구둣발로 몇 번 씩이나 짓밟았다. 아직도 CD의 본체는 끼기긱, 끼기긱, 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가 한참동안 짓밟은 후에야 그 소리는 멈췄다.

  그는 CDP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어쩐지 힘이 빠져, 그대로 의자에 쓰러졌다. 그의 방에 기자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기자들은 그를 찰칵 찰칵 찍어대고, 그에게 마이크를 대며 이것저것 물어댔다. 그는 무언가 대답을 했지만,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들은 하나같이 자신의 말 같이 들리지 않았다.


  “비엔나 음대에서의 생활은 어땠습니까?”

  “비엔나라, 아름다운 곳이죠. 작은 소시지가 참 맛있는 곳이에요. 사실 전 주변 구경을 별로 못했는데, 항상 연습실에 틀어박혀 있었기 때문입니다.”


  기자들이 모두 웃음을 터뜨렸다.


  “어떤 분께 사사하셨나요?”

  “유명한 분이죠. 그분이 ‘활은 짧다, 그러나 프레이징은 길다’는 말씀을 하신 분이라면 알아들으시겠지요?”


  기자들이 모두 감탄한다. 한 기자가 박살난 CDP에 관해서 묻는다.


  “저건 왜 저렇게 만드신 거죠?”

  “CD의 음악을 다시 듣다보니 제가 이번에 실수를 너무 많이 한 것 같아서요. 화가 나서 그만…….”

  “하하, 자신에게 너무 엄하신 걸요? 밖에서는 다들 감탄하고 있어요. 그런데 CDP가 요즘 것 같지 않게 참 구형이군요? 무슨 사연이라도 있는 건가요?”

  “어렸을 때 아버지께서 사주신 겁니다. 좋은 아버지셨죠. 지금까지 여러 대가들의 음악을 저 녀석 덕분에 답습할 수 있었죠.”

  “하하, 그러고 보니 선생님의 연주는 정말 CDP에서 흘러나오는 것처럼 완벽하더군요. 기사 제목으로는 이게 어떨까요? [비엔나에서 날아온 바이올리니스트, CDP를 닮으려 한 그의 첫 리사이틀]”

  CDP를 닮은 바이올리니스트. CDP 바이올리니스트. 그는 되뇌었다. 그는 그 별명이 자신에게 아주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내 음악을 내 맘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CDP 바이올리니스트. 그는 자신이 추락하고 있다고 느꼈다. 그의 눈은 바닥에 놓인 CDP의 잔해에서 상처 입은 한 마리 학의 환영을 보고 있었다. 학의 붉은 피가 고급 원목 바닥을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그는 누군가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었다.


  [No Battery(배터리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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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바이올린 못해요-_- 만져보지도 못했어요(....)

겨우겨우 정보수집해서 이정도 쓰긴 했는데ㅜ 바이올린 관련 내용태클 환영합니다!

소악마
소악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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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까, 말까, 그것이 문제이다.

  ‘도심의 번화가는 밤이 깊어올수록 점점 그 가슴 깊이 감추고 있던 쓸쓸함만을 내보인다.’  문득 문장 한 구절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이 구절을 어느 서양 작가의 책에서 읽었던가. 잘 생각나지 않았다. 단지 인터넷에서 20%를 할인받아 샀다는 기억만 어렴풋이 떠올랐다. 나는 편의점에서 사온 커피를 홀짝거렸다. 커피에 든 카페인보다는 오히려 그 짙은 향이 나를 깨워주었다. 벌써 새벽 2시가 넘었다. 거리에 인적이 뜸해지고 있었다. 도시는 서서히 잠들기 시작했고 취객들이 거리를 메우기 시작했다. 내가 기다리던 그들은 아직 나타나지 않고 있었다. 시간이 이렇게 늦었는데도.   나는 기자다. ××일보의 사회부에서 근무하고 있다. 오늘은 “뿌리는 기업들, 치우는 인부들, 그 한밤중의 소리 없는 전쟁”이라는 제목의 르포를 쓰려고 취재를 감행했다. 이곳이 바로 그 취재장소이다. 나는 시동이 꺼진 엘란트라의 뒷좌석에 앉아있다. 담배를 한 개비 꺼내 입에 물려다 순간 멈칫한다. 담뱃불이 차창 밖에서도 보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나는 허전한 입에 담배 대신 껌을 하나, 둘, 세 개를 한꺼번에 집어넣으며 거리를 바라보았다.   “거참, 올 거면 빨리 좀 올 것이지. 왜 이리들 늦어.”   나는 껌을 질겅질겅 씹으며 혼자서 불평하듯 내뱉었지만, 사실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토요일 밤이라 그런지 아직까지도 취객이 많았다. 마지막 취객들을 놓치지 않으려는 총알택시들도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내가 취재하려는 건 불법행위니까, 아마 “그들”은 취객도 없는 깊은 밤에야 등장하겠지. 이윽고 취객을 노리던 총알택시마저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다.   그들은 편의점과 가로등의 새하얀 불빛만이 거리를 지킬 때쯤에야 하나둘 나타나기 시작했다. 다들 옷을 껴입고 모자를 쓰고 색안경에 마스크까지 끼고 있었다. 언뜻 시계를 보니 새벽 세시 반이다. 그들은 주변을 둘러보고 아무도 없다는 사실을 확인한 뒤 손에 들고 온 커다란 뭉치를 풀어 바닥에 흩뿌리기 시작했다. 추운 밤이라 옷을 껴입어서 그런지 그들의 몸이 상당히 비대해 보였다. 나름대로 골고루 뿌리느라 그 커다란 몸을 숙이고 있는 모습이 우스꽝스러웠다. 나는 차창 너머에서 그런 그들에게 카메라를 들이댔다. 찰칵, 찰칵, 찰칵, 플래시를 터뜨릴 수 없다는 게 안타까웠다. 그러나 어쩔 수 없었다. 편의점에서 흘러나오는 희미한 실내등 불빛으로 그런대로 만족하며, 나는 지면에 실릴 그들의 사진을 찍었다.  이윽고 그들은 일을 마쳤는지 어딘가로 사라졌다. 나는 다가가 그들이 뿌린 것을 살펴보았다. 전단지들이었다. 대부분은 나이트클럽, 룸살롱, 안마소 등의 유흥업소들이었고 그 가운데 언뜻언뜻 대형 쇼핑몰의 광고, 혹은 “의류창고 개방!” 과 같은 전단이 보였다. 아무래도 유흥업소들의 적나라한 전단을 신문에 올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나는 쇼핑몰의 광고지를 집어 들었다.   [이래도 정녕 사지 않겠는가!

  • 소악마
  • 2007-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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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르샤마지끄

    아뇨 소악마님 소설도 재밌어요~ 그럼 그것도 읽어 볼게요 히히^^

    • 2007-09-13 23:31:10
    르샤마지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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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익명

    에이 르샤님 '-' 제글같은거 읽으시면 눈버려요 (....) 차라리 윗글 "어느 노인의 이야기"를 읽으셔요. 와아 그분 대단하시던데..

    • 2007-09-13 11:19:41
    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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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르샤마지끄

    이 부분 좋았어요~^^ 그리고 제가 이야기글을 주로 쓰는 사람은 아니지만; 말씀드리고 싶은 건, 사건 전개 말인데요. 관련성? 은 있는 것 같은데, 왜 그렇게 이야기가 관련되는 건지, 그러니깐 이유를 잘 모르겠어요. 인물들이 왜 그렇게 느끼고, 왜 그러한 사건들이 터지고. 인물 심리 묘사가 좀 더 치열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 건필하세요!

    • 2007-09-12 00:00:49
    르샤마지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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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르샤마지끄

    그는 사실 비엔나가 어느 나라에 있는 도시인지도 알지 못했다. 그가 비엔나에 관해 아는 거라곤 그가 근무했던 편의점에서 “비엔나소시지”라는 조그마한 소시지를 팔고 있다는 것뿐이었다. 잠시 당황해 있던 그는 이내 깨달았다. 플레카드는 그를 감싸는 포장지요, 그에게 붙은 가격표라는 것을. 대부분의 청중들은 그가 평생 입어보지도 못한 고급 양복을 입고 있었다. 청중들은 상품 품평회를 하듯 그를 수상쩍다는 눈길로 쳐다보며 자기네들끼리 무언가를 속닥대고 있었다. 그는 냉장고 안에 놓인 잘 다져진 비엔나소시지가 된 기분이었다.

    • 2007-09-12 00:00:34
    르샤마지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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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르샤마지끄

    이야기가 억수로 빠르네요; 마지막 각주 읽기 전까지 바이올린 정말 좋아하는 분이신 줄 알았어요. ^^ 현대는 빠른 음악만을 추구한다… 주제도 뚜렷하고…… 저도 피아노를 취미로 하는데요 음악을 하다보면, 정말 속주라는 것이 보잘 것 없다고 느껴지리만큼, 아름답고 단순한 느림의 미학들을 느낄 수 있어요.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걸 알지 못하니까, 그게 안타깝게 느껴지는 거죠.

    • 2007-09-12 00:00:30
    르샤마지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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