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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량특집

  • 작성자 이바
  • 작성일 2007-10-03
  • 조회수 1,051

 

납량특집






  이 집에는 네 명의 사람이 살고 있다. 그러나 네 명의 사람 ‘만’이 살고 있다는 것은 아니다. 뭔 소리냐고? 비

  밀.



  부父

 

  “꺄울!”


  이것은 이 집의 가장 김철수씨가 방금 전 변기통에 앉으려다가 내지른 비명소리다. 이 소란에, 김씨의 아내 이숙자씨와 두 자녀 이상군, 이지양이 화장실 앞으로 달려왔다. 여보, 무슨 일이에요? 무슨 문제라도 생겼나요? 아버지, 혹 어디 편찮으신 데라도 있으신지요? 소자 심히 염려되옵니다. 라기보다는, 그들은 왜 또 난린데? 라는 표정으로 김씨를 보고 서있었다. 김씨는 뒤를 돌아 변기통 안을 들여다보았다. 아무것도 없이 깨끗했다. 김씨는 다시 몸을 돌려 자신의, 여우같은 마누라와 토끼같은 새끼는 아니지만, 가족들을 보았다. 그들은 여전히 짜증 섞인 무표정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니까, 대체 무슨 일인데? 라는 듯이. 김씨는 “에…” 하고 입을 떼었다가 다시 다물었다. 생각해보니 아무래도 말하지 않는 것이 나을 듯싶었고, 설령 말을 한다 해도 누가 믿어줄 것 같지 않았다. “아, 아무것도 아니야. 가서 일들 봐.” 가족들은 다시 각각 제자리로 돌아갔다. 김씨는 이번에는 좀 더 몸을 깊숙이 숙여 변기통 안을 들여다보았다.

  방금 전 김씨에게 똥침을 놓았던 그 무언가가 숨어 있을.

  그러나 여전히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몸을 일으켜 화장실 밖으로 나가려던 김씨는 화들짝 놀랐다. 딸 이지양이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화장실 문 앞에 서있었던 것이다. 그제야 김씨는 자신이 아직까지 아랫도리를 내리고 있었다는 것을 알아챘다. 김씨는 황급히 트렁크팬티를 치켜 올렸다. “아빠, 빨리 하고 나와. 나 학교 가야 돼.” “으, 응. 그, 근데…… 너 혹시 똥 쌀 거냐?” “아니. 왜?” “아, 아니야……. 그래, 너 들어와서 씻어.”


  출근을 하는 내내 김씨는 영 찜찜하다는 느낌을 떨쳐낼 수 없었다. 그것이 아침에 쾌변을 하지 못한 탓인지, 혹은 자신의 집 변기통에 정체 모를(게다가 손버릇까지 나쁜) 무언가가 숨어 있다는 사실 때문인지는 그 자신도 잘 몰랐다.


  숨 가쁜 점심 식사를 마치고 복도 자판기에서 홀로 커피를 뽑아 마시던 김씨는 아랫배가 슬슬 아파오는 것을 느꼈다. 김씨는 반쯤 남은 커피를 벌컥벌컥 들이켜고 종이컵을 쓰레기통에 던져 넣은 뒤, 재빨리 화장실로 향했다. 칸에 들어와 문을 잠그고 앉은 김씨는, 자신이 어떻게 배설에 대한 욕구를 반나절 동안이나 잊고 있을 수 있었는지 의아해했다. 아랫배가 가벼워지자 머리 또한 맑아졌다. 근무 내내 굳어있던 김씨의 머리가 빠르게 돌기 시작했고, 자신이 없는 동안 줄곧 집에 있었을, 그 변기통을 사용했을지 모를 자신의 아내에 대한 걱정이 생겨났다. 김씨는 핸드폰을 열어 숫자 ‘1’을 꾹 눌렀다. 화면이 전환되며 ‘우리집’ 이라는 글자가 떴다. 곧 숙자씨가 전화를 받았다. 김씨는 다짜고짜 물었다.

  “똥 쌌어?”

  “갑자기 뭔 소리야?”

  “대답해봐. 똥 쌌어?”

  “아니, 안 쌌어. 나 변비 걸린 거 뻔히 알면서 하는 소리야?”

  “아, 알았어. 끊어.”

  뚜, 뚜, 뚜, 뚜, 김씨는 툭, 하고 핸드폰 폴더를 닫았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휴, 다행이군. 그리고 깨달았다.

  우리 마누라가 변비였었군!


  회사에서 일은 안 하고 똥침만 맞고 온 사람 마냥 기운이 빠진 채로 퇴근한 김씨는 안방으로 들어가, 속옷 차림으로 다시 나왔다. 샤워를 하러 화장실에 들어가려는데 안에 누가 있었다. 아프리카 기아 마냥 아랫배를 툭 내밀고 서서 김씨는 안의 사람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몇 분 쯤 지나자 아들 이상군이 나왔다. 그제야 들어간 화장실 안에는 구린내가 가득했다. 김씨는, 에이그 머니나, 화장실에서 나와 거실에서 컴퓨터를 하고 있는 이상군에게로 갔다. 자신의 아버지가 왔음에도 이상군은 컴퓨터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 아니 못했다.

  “이상아, 똥 쌌냐?”

  “어? 아, 아, 어, 응.”

  “아무 일도 없던?”

  이상군은 대답 대신 얼굴에 물음표를 그렸다.

  “이상아, 똥 쌀 때 아무 일도 없었냐니까?”

  “똥 싸면 그냥 싸는 거지 무슨 일이 있어?”

  “왜 임마, 가령 누군가가……” 까지 말했다가 김씨는 다시 입을 다물었다. 내가 말을 말지, 라고 생각하며 다시 화장실로 갔다. 똥침 맞은 사람 마냥 찌푸리고 있던 이상군의 표정은 쾌변을 한 사람 마냥 밝아졌다.

  샤워를 하다 말고 김씨는 변기통 앞에 쭈그려 앉아 그 안을 들여다봤지만, 역시나. 그 안에는 그의 아들이 남기고 간 구린내만이 있을 뿐이었다. 김씨는, 이제 괜찮아졌나보군. 아침에는 내가 뭔가 착각을 했나봐. 라고 생각한 뒤 다시 몸에 물을 끼얹었다.


  다음날 아침, 김씨는 여느 때처럼 현관문을 빼꼼히 열고 신문지를 집어 들었다. 전단지들을 소파에 내려놓고는 화장실로 향했다. 부엌에서는 보글보글 국이 끓는 소리가 들려왔고, 작은방에서는 숙자씨가 이상군을 깨우며 닦달하는 소리가 들렸다. 또 다른 작은방에서는 이지양이 숙자씨에게, 엄마 내 스타킹 어디에 뒀어? 라며 짜증을 부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 모든 소리에 김씨는 별 관심을 두지 않았다. 워낙 일상적인 일이기도 했거니와, 어제 아침에 있었던 일이 떠올라 그를 불안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김씨는 화장실 문을 열었다. 신문지를 옆구리에 끼고, 트렁크팬티를 천천히 내렸다. 그리고는 변기통에 조심스럽게 앉았다.

 

  “꺄울!”


  김씨는 얼얼해진 엉덩이를 어루만지며 거실로 가서 컴퓨터 책상에 있는 A4용지를 한 장 꺼내들었다. 왼손으로는 여전히 엉덩이를 부여잡고 오른손으로는 A4용지에 무언가를 적어 넣었다. 김씨는 이상군의 방에서(이상군은 침대에서 뒤척이고 있었다) 스카치테이프를 들고 나왔다. 그러고는 그 A4용지를 화장실 문 앞에 붙였다.


  ‘똥침 주의’



  자子


  우당탕탕! 소리가 이상군을 깨웠다. 방 창문이 열려 있었고 그 사이로 거센 바람이 들이닥쳤다. 책상 위에 있던 자잘한 물건들이 바닥으로 쏟아지고, 흩날렸다. 펄럭이는 저 커튼은 처녀귀신 치맛자락인가. 라고 이상군은 누운 채로 생각했다. 집 안으로 이토록 바람이 세차게 불어오는 게 가능한 일인가, 따위의 논리적인 질문은 너무 졸렸기에 떠올리지 못했다. 이상군은 창문을 닫으려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데,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신체 여기저기에 힘을 줘가며, 낑낑대며 몸을 일으켜 세우려 했지만 헛수고였다. 이게 말로만 듣던 가위라는 건가. 이상군은 눈알을 굴려 방을 둘러보았다. 가위에 눌리면 나타난다는 귀신을 보고 싶다는 호기심 때문이었다. 과연, 귀신이 있었다. 그 귀신은 침대 반대쪽 벽에 있는 옷걸이에 걸려 있었다. 목 아랫부분이 없고 단지 얼굴만 있는 귀신. 옷걸이 밑에는 잘린 목에서 흘러나온 피가 고여 있었다. 소름이 끼친다. 등골이 오싹하다. 따위의 말을 떠올릴 새도 없이 이상군은 그것들을 몸으로 느꼈다. 이상군은 눈을 질끈 감고 잠을 청하려 했다. 만, 잠이 올 리가 있나. 쌔애앵, 바람소리. 우당탕탕, 사물들이 떨어지는 소리. 펄럭 펄럭, 커튼 소리. 느껴지는 귀신의 시선. 게다가 아까 전부터 누군가(귀신이겠지, 아마)가 자장가를 부르고 있었다. 잠이 들지 못하게 하는 자장가라니. 이건 자장가도 아니고 뭣도 아니여.

  아까 전의 호기심은 이제 공포심으로 뒤바뀐 상태였다. 이상군은 시간을 확인하고 싶었지만 그 귀신의 모습을 다시 본다는 것이 두려워 눈을 뜰 수가 없었다. 그저 눈을 질끈, 이불을 바싹, 하고 이 상황이 어떻게든 전환되길 기다릴 뿐이었다.

 

  다행히도 시간(이상군에게는 몇 억 년처럼 느껴졌지만)이 흘러갈수록 바람 소리는 잦아들었고, 책상에서 무언가가 떨어지는 수도 줄었다. 방 안이 차츰 밝아졌다. 아침이 된 것이다. 바람 소리는 이제 완전히 멎어 있었다. 이상군은 눈을 떴다. 창문은 닫혀 있었고 책상 위도 평소와 다를 것이 없었다. 옷걸이에는 자신의 교복과 가방들만이 있었고 바닥은 깨끗했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말이다. 이상군은 시계를 보았다. 5시 30분이었다. 길어봐야 앞으로 1시간 정도 밖에는 잘 수 없을 터였다. 그것을 알면서도, 이상군은 어쩔 수 없이 잠이 들고 말았다. 드르렁,


  쿨. 이상군이 느끼기에는 눈 깜박할 새가 지났을 뿐이었지만, 어쨌든 엄마 숙자씨가 이상군을 깨웠다. “빨리 일어나! 학교 가야지, 학교!” 이상군은 “우음……” 하고 뒤척이며 눈을 떴다. 어떻게든 더 자고 싶었지만 결국 침대와 이별할 수밖에 없었다.

  몸을 일으켜 앉아 안경을 쓰던 이상군은 방 밖에서 난 갑작스런 소리에 놀라 졸음도 잊고 달려 나가보았다. 아빠 김씨가 변기통 앞에 놀란 표정을 짓고 서있었다. 딱 봐도 아무 일도 없는 것 같은데, 대체 왜 소란을 피웠는지 모를 일이었다. 나처럼 귀신이라도 봤으면 몰라. 라고 생각한 뒤 이상군은 다시 제 방으로 들어갔다. 학교에 가야 한다는 것도 잊은 채로 다시 잠에 빠져들었다.


  이상군은 여느 때와 다를 것 없는 하굣길을 여느 때와 다를 것 없이, 혼자서 터벅 터벅 걸었다. 버스에서 꾸벅 꾸벅 졸며 이상군은 다짐했다. 집에 가자마자 누워서 자겠다고. 오늘은 반드시 깊이 잠들어서 가위 따윈 눌리지 않겠다고.

  하지만 집에 도착한 이상군은 가방을 내팽개치자마자 컴퓨터 전원 버튼을 눌렀다.

  

  난 지금 어디에 있는 거지? 


  침대 위에 누워 있었다. 내가 언제 침대에 누웠었지? 라고 생각하기가 무섭게, 창문이 드르륵 열리더니 세찬 바람이 들이닥쳤다. 어젯밤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어젯밤과 마찬가지로, 이상군은 눈을 질끈 감고 어서 이 상황이 전환되기를 기다렸다. 현재가 몇 시인지도 모른 채로, 말이다. 1초 1초가 이상군에게는 1억 년과 같았다. 어쨌거나 시간은 흘렀고, 마침내 또다시 아침이 찾아왔다.

  이제 끝인가, 싶어 이상군은 눈을 떴다. 번뜩. 저번 밤 옷걸이에 걸려 있던 귀신이 이상군 바로 앞에 다가와 있었다. 경극 배우만큼이나 짙은 화장을 한 듯 피부가 새하얀 귀신은 두 눈에서 피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에이그 머니나. 이상군은 까무룩, 하고 의식을 잃었다.


  또다시 시간이 지나 숙자씨가 이상군을 깨웠다. 이상군은 온 몸이 땀으로 젖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이상군은 갈아입을 속옷을 챙겨들고 화장실로 갔다. 지난 밤 코앞에서 보았던, 귀신의 눈빛과 그가 뚝뚝 흘리던 피가 아직도 생생해 자꾸만 다리가 휘청거렸다. 화장실에도 귀신이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공포마저 느꼈다. 이상군은 화장실 문 앞에서, 지난 밤 자신이 보았던 귀신만큼이나 괴이한 네 글자를 보고는, 잠이 확 달아나는 것을 느꼈다.


  ‘똥침 주의’



  여女


  이지양은 정류장에 서서 시계를 보았다. 이지양이 버스를 타고 학교까지 가는데 걸리는 시간은 20분, 현재 시각은 7시 45분이었다. 등교 시간은 8시. 버스 기사가 광속이라도 내지 않는 이상은 지각을 면하기 어려울 듯싶었다. 이게 다 엄마 때문이야, 라고 이지양은 속으로 투덜댔다. 학교에 가서 벌을 받을 것을 생각하니 짜증이 났다. 이지양은 에이 씨, 를 중얼거리며 무의식중에 눈을 감았다

  떴다.

  어라?


  이지양은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무도 없었다. 방금 전까지 자신의 왼편에서 핸드폰을 만지작대던 회사원도, 그 뒤에서 멍하니 서있던 같은 학교 남학생도. 재수생으로 보이는 듯한, 사복을 입고 영단어를 외우던 사람과 누군가와 통화를 하며 주위를 시끄럽게 만들던 중년의 남성까지도 모두 보이지 않았다. 사라져버린 것은 사람뿐이 아니었다.

  그곳이 버스 정류장임을 알려주는 표지판과 금속성의 벤치, 길을 따라 일렬로 서있던 가로수도 보이지 않았다. 가로수만큼이나 일렬로 서서 멈춰 있던 자동차들도 자취를 감췄고 고개를 들어보면 빽빽이 솟은 아파트 건물들이 사라진 것을 알 수 있었다. 시선을 아래로 한 이지양은 자신이 밟고 있는 곳이 좀 전의 벽돌길이 아니라 누런 빛 흙바닥이라는 것을 보았다. 바람은 흙먼지를 날리며 시야를 흐릿하게 했고 그것을 들이마신 이지양은 연신 콜록 콜록, 기침을 해댔다. 그야말로,

  황량했다.


  콩, 콩, 콩, 콩.


  휘이익, 하는 바람 소리를 뚫고 콩,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지양은 콩,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정상적으로라면 이지양이 탔을 버스가 오는 방향이었다. 이지양은 천천히 다가오는 흐릿하고 검은 물체를 보았다. 콩, 콩, 콩. 멈췄다가, 뛰었다가. 멈췄다가, 뛰었다가. 마침내 이지양은 그것이 무엇인지 알아볼 수 있었다.

  온통 검은 색인 중국 전통 의상, 앞으로 쭉 뻗은 두 팔, 이마에 붙어 얼굴을 가린 부적. 그것은 강시였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강시들이었다.

  한두 명(? 마리? 놈?)이 아니었다는 말이다. 그것들은 출근길의 자동차들 마냥 길을 가득 메우고 일렬로 늘어선 채로 콩 소리를 내가며 천천히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마침내 그것들이 이지양이 서 있는 버스 정류장(이었던 곳)에까지 왔다. 주변의 모든 것이 사라진 것만 해도 놀라 자빠질 지경인데, 강시라니. 놀라 자빠질 생각도 못할 만큼 놀라 자빠진 이지양은, 그대로 붙박인 채 서서 자신의 앞을 지나가는 강시들의 행렬을 지켜보았다. 콩, 콩, 콩, 콩.


  여느 때와 다를 것 없던 등굣길, 주변의 사물 ․ 사람들은 모두 사라지고, 강시까지 나타난  마당에 평범한 여고생 이지양이 무엇을 할 수 있었겠는가. 그녀는 그저 멀거니 서 있었을 뿐이다. 그녀의 앞으로 강시가 7마리 쯤 지나갔을 때에야 이지양은 이 사태를 어떻게 해결할지를 궁리하기 시작했다. 만, 이지양이 생각하는 건 생각하는 게 생각하는 게 아니었고, 실은 아무 생각도 하지 못했다. 그때 이지양의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한 장면이 있었다. 이지양은 어린 시절 공포 영화에서, 강시의 이마에 붙은 부적을 떼자 강시가 다시 사람으로 돌아오는 것을 본 적이 있었다. 이지양은 조심스레 강시 행렬 쪽으로 다가갔다. 그리고는 콩, 콩, 중 쉼표 쯤 되는 때에 바로 앞에 있던 강시의 부적을 촥, 하고 낚아챘다.


  촥,


  소리가 나며 부적이 떼어졌다면 좋았을 테지만, 그렇지 않았다. 돼지 본드를 썼나? 라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로 부적은 단단히 부착되어 있었다. 이지양은 그러나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부적을 계속 붙들고 있었으며, 다시 콩 하고 뛰어오른 강시에게 그대로 끌려 올라가 균형을 잃고 넘어졌다. 쉼표, 콩. 발밑에 누가 있거나 말거나 그대로 전진하려는 강시 행렬을 이지양은 가까스로 몸을 굴려 피할 수 있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도 안도하지 못하는 이지양은, 그러거나 말거나 콩, 하는 강시 행렬을 올려다 볼 뿐이었다.


  이지양은 강시 행렬과 반대 방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그곳으로 가다가 왼쪽으로 접어들면 이지양이 살고 있는 아파트 단지의 입구가 나왔다. 강시들은 오직 제 갈 길만을 갈 뿐 이지양에게 해를 가하진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지양은 막연한 공포를 느끼며 더욱 걸음을 재촉했다. 이 공포에서 자신을 보호해줄 곳은 집뿐이라고 생각했고, 모든 것이 사라진 지금에도 자신의 집만은 여전히 건재할 것 같았다. 헥, 헥, 숨이 차서 벌린 입 안을 흙먼지가 파고들어 목구멍을 텁텁하게 했다. 이지양은 달리는 와중에도 종종 멈춰서 기침을 쏟아냈다. 눈이 맵고 다리는 후들거렸다. 그러나 이지양은 계속 달렸다. 집은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멀고, 멀었다. 혹시 우리 집도 사라진 건가? 라는 의문이 생겨났지만 이지양은 멈추지 않았다. 사실, 달리는 것 말고는 별 방법이 없긴 했다.

  마침내 뿌연 먼지의 층 저 너머로 거대한 물체가 서있는 것이 보였다. 비록 구체적인 모습은 보이지 않았지만 이지양은 그것이 자신의 집임을 직감했다. 이지양은 우뚝, 섰다. 그 건물을 보았다. 역시 나의 집은 건재해. 이지양은 저도 모르게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군데군데 녹이 슬고 깨진 곳이 있을 뿐 엘리베이터 역시 건재했다. 이제 살았다, 싶어 벽에 기대 주저앉은 이지양을 천장 귀퉁이에 매달린 거미가 놀라게 했다. 어쨌거나, 띵동. 이지양은 엘리베이터에서 뛰쳐나왔다. 현관문은 열려 있었다. 이지양은 집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가, 실내의 무거운 공기에 눌려 신발장에서 멈칫, 했다.

  집 안은 적막했다. 이지양은 타인의 집에 온 냥 조심스레 발걸음을 내딛었다. 세찬 바람이 창문을 뒤흔드는 소리에 이지양은 움츠러들었다. 거실은 평소와 다를 것이 없었지만 평소와는 다른 기운을 뿜어내고 있었다. 단지 이지양의 기분 탓인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거실에는 아무도 없었다. 이지양은 거실을 거쳐 안방 쪽으로 걸어갔다. 살금, 살금. 이지양은 안방 문을 향해 몸을 홱, 하고 틀었다. 얼굴에 피범벅을 한 누군가가 바로 앞에 있었다. 꺄악! 소리를 지를 틈도 없이 이지양은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모母


  숙자씨는 이상군의 방으로 들어갔다. 이상군은 침대에서 이불과 뒤척이며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숙자씨는 이상군에게 다가가는 것이 두려웠다. 언제부턴가 자신보다 머리가 하나 더 커지고, 목소리가 굵어지고 남편에 필적하는 근력을 갖추게 된 이상군의 심기를 거스르며 그를 깨우는 것이 숙자씨는 내키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이 자신의 임무이고 또 일과라는 것을 잘 아는 숙자씨이기에 그녀는 어김없이 이상군을 흔들어 깨웠다. “씨발… 잠 좀 자게 내버려 둬…….” 라며 잠꼬대를 하는 이상군을 숙자씨는 한강에서 괴물을 만난 사람 마냥 보았다. 그리고는 다시 그의 몸을 흔들어대기 시작했다.

  자기의 스타킹을 찾는 딸 이지양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스타킹이 없어진 것이 오직 숙자씨의 탓이라는 듯 짜증과 불만이 잔뜩 섞인 목소리였다. 숙자씨는 잠시 생각하고는 “잘 찾아봐!” 라고 대답했다. “에이 씨, 엄만 또 맨날…….” 이지양이 투덜거리며 부러 쿵쿵 걷는 소리가 들렸다. 우당탕탕, 까지는 아니었지만 이지양이 옷장을 뒤지며 나는 신경질적인 소리가 숙자씨에게는 그렇게 들렸다. “알았어… 일어나면 되잖아…….” 이상군이 드디어 일어날 기미가 보였다. 숙자씨는 황급히 부엌으로 달려가 가스레인지의 불을 껐다. 국은 이미 끓어 넘친 상태였다. “엄만 맨날 내 스타킹 구별도 못하고……. 짜증나.” 이지양이 들으라는 듯 중얼거리며 안방에서 나왔다. 숙자씨는 수치심에 잠시 눈을 질끈 감았다.

  숙자씨가 그려왔던 모녀 관계는 이런 것이 아니었다. 아침마다 집안일을 함께 하고, 주말마다 팔짱 끼고 쇼핑을 하러 다니며, 때로는 남자 얘기로 밤을 새기도 하는……. “밥 안 줘?” 남편 김씨의 목소리가 들리자 숙자씨는 그제서야 현실을 인식했다.

  숙자씨가 몸을 돌리자 김씨가 서있었다. 반쯤 벗겨진 머리와 툭 튀어나온 똥배, 아내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아무런 관심도 없어 보이는 무덤덤한 표정. 이제는 자신을 누르고 올라선 자식들 틈바구니에서 숙자씨가 유일하게 편히 대할 수 있는 상대는 김씨 뿐이었다. 그건 김씨도 마찬가지였고, 부부는 서로에게 만만한 존재였다. 이 역시 숙자씨가 꿈꿨던 중년 부부의 모습은 아니었다. 숙자씨는 대답했다. “응, 어어……. 다 됐어. 앉아.”


  마지막으로 이상군을 내보내고 나서야 숙자씨는 한숨 돌릴 수 있었다. 한 차례의 폭풍이 지나간 집안은 고요했다. 간간이 창 밖에서 경적 소리가 들려올 뿐이었다. 궁상맞은 여유, 숙자씨는 주전자에 물을 올려놓고 거실에 왔다. 한 바퀴를 돌며 집 안을 둘러보았다. 청소 등 자질구레한 일을 하느라 자신의 손길이 안 닿은 곳이 없을 이 집이, 숙자씨에게는 어쩐지 광활하게 느껴졌다. 앞으로 아무리 고된 일을 많이 한다 해도 이 집을 자신이 온전히 가질 수 없을 거라는 게 소름이 끼쳤다. 물이 끓는 소리가 났다.


  이 중에서 내가 사용한 건 밥그릇 하나와 커피잔 뿐이야. 쌓인 설거지거리들을 처리하며 숙자씨는 생각했다. 그러다가 갑작스런 요의를 느꼈다. 가능한 한 하던 일은 그 자리에서 다 마치고 싶었지만, 요의는 난데없는 만큼이나 강렬했다. 숙자씨는 화장실로 갔다. 가, 문 앞에 붙어 있는 종이를 보았다. 그 종이에는 네 글자만이 적혀 있을 뿐이었고, 그래서 종이는 숙자씨 혼자 남은 이 집만큼이나 황량해 보였다. 숙자씨는 그 글자를 소리 내어(혼잣말을 하는 것은 이즈음 숙자씨의 버릇이었다) 읽어보았다. 똥. 침. 주. 의.

  그 글씨를 읽은 숙자씨는 처음에 그것이 남편의 글씨체라고 생각했다. 20년 가까이 한 이불을 덮고 잔 사람인데 글씨체 하나 못 알아볼 리 없었다. 그러나 마음이 곧 바뀌었다. 그것은 아들의 글씨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해보니 숙자씨는 아들의 글씨체가 어떤지 몰랐다. 마지막으로 이상군의 글씨를 읽은 것은 오래 전 그가 엄마에게 주었던 어버이날 카드에서였던 것 같았다. 그마저도 정확한 것은 아니고 가물했다. 자신의 집 화장실 문 앞에 붙어 있는 이 종이가 누구의 짓인지 숙자씨는 알 수 없었다. 그것을 궁리해보던 숙자씨에게 또다시 요의가 밀려왔다. 숙자씨는 그것을 떼어 화장실로 들어가 쓰레기통에 버린 뒤 자신은 변기통에 들어앉았다. 숙자씨는 자신이 이 집에 와서 그동안 몇 번이나 오줌을 쌌었는지 자문해보았지만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위이이잉. 숙자씨는 진공청소기를 켰다. 그것은 먼지 뿐 아니라 숙자씨의 의식 또한 빨아들이는 것 같았다. 과연 숙자씨는 멍한 눈으로 그저 청소기를 구석구석 밀 뿐이었다. 23세기쯤에 청소 로봇이 나온다면 바로 이런 모습일 것 같았다. 얼굴은 좀 더 예뻤을 테지만, 어쨌든. 숙자씨는 거실과 안방 청소를 마치고 작은 방으로 향했다. 그곳은 이상군의 방이었다. 위잉. 숙자씨는 문턱에 서서 방 안을 한번 둘러보았다. 이틀에 한 번씩 청소를 할 때와 아침마다 이상군을 깨울 때 외엔 들어올 수 없는 곳이었다. 물론 집이 텅 비었을 때에야 마음만 먹으면 들어올 수 있을 테지만, 숙자씨는 그러지 못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누군가가 자신을 감시하고 있는 기분이 들었고, 집으로 돌아온 이상군은 왜 자신의 방에 들어왔냐며 따지고 들 것 같았다.

  이부자리가 정리되지 않은 채로인 침대와 잔뜩 어질러진 책상이 눈에 들어왔다. 책상 위에 있는 물건들은 분명 대부분 숙자씨가 결제해 구입한 물건들이었지만, 그것들이 어떤 일을 겪었으며 어느 때에 쓰였으며 누구에게 빌려진 적이 있는지 하는 것들은 모를 일이었다. 숙자씨는 이상군의 책상이 낯설었다.

  고개를 돌리자 옷걸이가 보였다. 여벌로 있는 교복 와이셔츠와 가방 등 이것저것이 걸려 있었다. 그것들 역시 숙자씨에게는 낯설 뿐이었다. 숙자씨는 그 아래로 시선을 내렸다. 검붉은 액체가 고여 있었다. 피.

  피?

  숙자씨는 윙, 하며 돌아가는 청소기를 내버려둔 채 옷걸이 쪽으로 갔다. 쭈그려 앉아 좀더 가까이서 피 웅덩이를 보기 위해서였다. 피, 의심의 여지없는 피였다. 숙자씨는 그것을 찍어보려 집게손가락을 뻗었다. 뻗는데, 머리 위에서 갑작스런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들어보니 웬 못 보던 머리통 하나가 옷걸이 위에 걸려 있었다. 그 머리통의 잘린 목에서 떨어진 피가 숙자씨의 얼굴로 떨어졌다. 툭. 놀라 자빠진 숙자씨는 여전히 돌아가는 청소기를 뛰어 넘어 안방으로 들어갔다.

  숙자씨는 침대 안으로 숨어들어갔다. 이불을 끌어안고 덜덜, 떨 떨었다. 따닥, 따닥, 이가 서로 부딪히는 소리가 안방에 가득했다. 벌벌, 벌 떨리는 손을 뻗어 숙자씨는 침대 옆 바닥에 있는 핸드폰을 주워들었다. 벌벌, 하는 탓에 핸드폰 폴더를 여는 데에 몇 번이나 실패했다. 숙자씨는 울었다. 울면서 ‘119’를 눌렀다. 가, 지웠다. ‘112’를 눌렀다. 가, 또다시 지웠다. 어느 곳에 신고해도 귀신을 잡아줄 것 같지는 않았다. 대체 우리 집에 왜 저런 게 들어와 있는 거지? 라고 숙자씨는 중얼거렸다. 들어줄 사람도 없었지만, 그랬다. 숙자씨는 무엇보다도 자신을 위로해주고 보듬어줄 사람이 필요했다. 숙자씨는 단축번호 1번을 누르고 핸드폰을 귀에 갖다 댔다. 거실에서 따르릉 소리가 울렸다. 숙자씨는 핸드폰을 귀에서 떼어 화면을 보았다. ‘우리집’. 숙자씨는 종료 버튼을 누른 뒤 이번에는 단축번호 2번을 눌렀다. ‘남편’ 이라는 글자가 뜨고 나서야 숙자씨는 핸드폰을 귀에 갖다 댔다. 한참이나 연결음이 울린 뒤 김씨가 전화를 받아 속삭였다.

  “나 지금 회의 중이거든? 나중에 전화해.” 툭. 숙자씨는 핸드폰을 귀에 갖다 댄 채로 한동안 멀거니 있었다. 뚜, 뚜. 눈물방울은, 뚝.


  현관문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또 문단속을 깜빡했나봐. 라고 숙자씨는 생각했다. 이 시간에 집에 찾아올 사람은 없었다. 남편은 확실히 회사에 있었고 두 자녀도 모두 학교에 가있을 시간이었다. 만약 손님이라면 초인종을 먼저 눌렀을 것이다. 이 불청객의 정체를 숙자씨는 도무지 알 수 없었다. 그렇다고 나가보기도 싫었다. 아까 전 이상군의 방에서 본 귀신의 잔상이 아직 또렷이 남아 있었다. 다리도 후들거렸다. 숙자씨는 대신 불청객이 내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발자국 소리로 미루어 보아 불청객은 한 사람인 듯 했다. 이 불청객은 집이 낯선 듯 조심스레 움직였다. 숙자씨는 조금씩 갑갑해지기 시작했다. 그냥 빨리 모습을 보이지, 뭔 놈의 조심성이 저래 먹었대? 숙자씨는 결국 침대에서 일어났다.

  그러나 정작 조심스럽기는 숙자씨도 마찬가지였다. 숙자씨도 살금 살금, 불청객도 살금 살금. 숙자씨는 조금씩 문을 향해 걸어갔다. 손만 뻗으면 닿을 거리였지만 서두르지 않았다. 조심, 조심. 열린 문의 사각형이 화면이라고 치고, 화면 안으로 불청객의 한쪽 발이 들어왔다. 핑크빛 캐릭터가 그려진 양말을 신고 있었다. 딸 이지양의 양말이 틀림없었다. 이 시간에 왜 다시 집으로 왔는가, 하는 생각도 없이 숙자씨는 그저 가족이 왔다는 게 반가웠다. 긴장감이 풀린 숙자씨는 문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바로 그때 이지양도 안방 문을 향해 몸을 홱, 하고 틀었다. 힉. 숙자씨를 본 이지양은 숨통 끊어지는 소리를 내뱉고는 기절해 바닥으로 쓰러졌다. 당황한 숙자씨는 잠시 안절부절 못하더니 방으로 다시 들어가 핸드폰을 들고 나왔다. 이지양 곁에 주저앉아, 한손으로는 딸의 얼굴을 찰싹 때리고 한손으로는 핸드폰의 ‘1’을 꾹 눌렀다.

 

  따르릉, 따르릉.



  귀가鬼家


  치이익, 계란말이가 프라이팬 위에서 몸을 뒹구는 소리가 집 안 가득 퍼졌다. 숙자씨는 프라이팬의 불을 줄이고 국을 데우기 시작했다. 숙자씨가 국자로 국물을 떠서 맛보려던 찰나에 초인종이 울렸다. 숙자씨는 국자를 냄비에 놓고는 현관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문이 열리고 김씨가 들어왔다. 김씨의 등에는 무언가가 매달려 있었다. 사람 여자의 형체를 한 그 무언가. 는 온 몸에 오물을 뒤집어써서 오물과 긴 머리칼이 분간이 되지 않을 정도였다. 듬성듬성 흉하게 빠진 이를 드러내며 장난스럽게 웃어댔고, 양 손은 모아 전형적인 ‘똥침’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숙자씨는 그것을 보지 못했는지, 못한 척 하는 건지, 어쨌든. 김씨를 힐끔 보고는 단 두 마디만을 했다.

  “왜 이렇게 몸에서 냄새가 나? 빨리 씻고 밥 먹으러 와.”

  김씨는 등 뒤에 매달린 것의 무게가 버거운 지 터벅 터벅 걸으며 화장실로 갔다.

  가 몇 분 뒤 속옷 차림으로 나왔다. 식탁에 두 명 분의 수저를 차려놓는 숙자씨에게 김씨는 말을 건넸다. “이지, 어떻게 된 거야? 뭐 큰 문제라도 있는 거래?” “그게, 아무래도 꾀병이었나 봐. 내가 얼마나 놀랐었는데. 침대에 눕혀놨다가 좀 지나서 일어나길래 다시 학교 보냈어.” “……잘했어.”

  그러곤 침묵 속에서 식사가 진행되는데 또다시 초인종이 울렸다. 숙자씨는 김씨에게 당신이 나가봐, 했다. 김씨는 젓가락으로 김치를 집었다가 움찔, 하고는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하며 현관으로 나갔다. 문을 열어보니 이상군이었다. 이상군의 얼굴에는 검은 악의 기운이 서려 있었다, 고 해도 좋을 만큼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이상군은 김씨를 지나쳐 제 방으로, 부전자전, 터벅터벅 걸어갔다. 이상군의 등에 가방이 있을 자리에는 웬 머리통이 매달려 있었고, 가방끈이 있어야 할 어깨에는 그 머리통의 머리칼이 메여있었다. 이상군은 그 머리통을 침대에 휙, 내팽개치고는 화장실로 갔다. 식탁을 지나치는 이상군에게 숙자씨가 물었다. “오늘 왜 이렇게 일찍 왔니?” “그냥.” 철커덕.

  그렇게 화장실 문은 닫혔고 다시 침묵 속에서 식사가 진행되었다. 그리고 또, 띵동 띵동.

  김씨는 굼뜨게 일어나 현관문으로 갔다. 그 사이에 화장실에서 나온 이상군은 김씨가 앉았던 자리에 들어앉았다. 김씨가 쓰던 숟가락으로 김씨가 먹다 만 밥을 퍼먹기 시작했다. 어쨌든, 김씨는 현관문을 열었다. 이지양이었다. 교복은 어디로 갔는지, 이지양은 온통 검은색인 중국 전통 의상을 입고 있었으며 이마에는 누런 부적이 붙어 있었다. 쭉 뻗은 양팔 끝의 손톱이 날카로워 김씨는 이크, 하고 피해야 했다. 콩, 콩, 콩. 이지양은 아무 말도 않고 식탁으로 이동했다. 콩, 사이를 뚫고 식탁에 온 김씨는 제 자리에 들어앉은 이상군을 보고는 멈칫, 했다. “에……” 하며 입을 떼다가 결국엔 내가 말을 말지, 하는 심정으로 빈  자리에 앉았다. 우두둑, 소리를 내며 이지양도 식탁에 앉았다. 숙자씨는 자리에서 일어나 두 명 분의 밥그릇과 수저를 가져왔다. 비로소 온가족이 모인 화목한 저녁식사가 시작되었다.

  김씨의 등에 매달린 그것은 계속해서 악취를 풍겨댔다. 뭐가 그리 우스운지 처음에는 히히, 하다가 나중에는 헤헤, 하고 기분 나쁘게 웃더니 만은 결국에는 하하, 에 까지 이르렀다. 딸까닥, 딸까닥. 수저 부딪치는 소리.

  이상군은 뭐가 그리 피곤한지 밥을 먹으면서도 꾸벅 꾸벅 졸곤 했다. 식탁을 집중적으로 비추는 조명 탓에 이상군의 다크써클은 더욱 짙어 보였다. 꾸벅, 딸까닥. 꾸벅, 딸까닥.

  강시가 된 이지양은 쭉 편 팔 때문인지 젓가락질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자꾸만 음식물을 흘렸다. 이지양의 자리와 허벅지에는 금세 음식 부스러기들이 자리 잡았다. 보다 못한 숙자씨가 이지양에게 밥을 먹여주려 하자, 이지양은 날카로운 송곳니를 드러내 보이며 강하게 거부했다. 딸까닥, 캬오. 딸까닥, 딸카닥.

  숙자씨는 이 평화로운 분위기에도 편히 식사를 못하며 자꾸 식구들의 눈치만 보았다. 김씨 뒤의 귀신과 눈을 마주치기도 했으며, 이지양 이마에 붙은, 끄트머리에 밥풀이 묻은 부적을 불안하게 지켜보기도 했다. 어느 샌가 이상군의 의자 밑으로 굴러 들어온 잘린 머리통을 힐끔힐끔 보기도 했다. 밥을 먹다 말고 숙자씨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이렇게 중얼거렸다.

대체 왜 우리 집에 저런 게 들어와 있는 거지?

  좁아터진 식탁이었음에도 가족들은 보고, 듣지 못한 듯 여전히 식사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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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글 게시판에 휘몰아친 스와힐리어 열풍!

 

 


이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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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는 큐피드다. 사랑의 신(神).   내가 서울에 처음 나타났을 때를 기억한다. 그 직전의 기억이라고는 전혀 없고, 나는 지하철 안이었다. 정말이지 뜬금없이 나는 지하철 칸 한가운데에 서있었다. 내가 왜 이런 곳에 있는 거지? 싶어 주위를 둘러보니 사람들의 시선은 모두 다 나를 향해 있었다. 그 시선은, 신과 같이 자신들보다 높은 존재를 우러러보는 것이라기보다는, 제우스가 또 다시 바람을 피워 애를 달고 들어왔을 때 헤라가 그를 보는 것과 같은, 한심하고 열등한 존재를 바라보는 듯한 종류의 것이었다. 내가 그 시선들의 이유를 알 수 없어 그저 주변만 둘러보고 서있는데, 갑자기 한 여자가 비명 소리를 질렀다.   경찰관은 다시 한 번 이름을 물었다.   큐…… 피드.   내가 도착한 곳은 강남역 근처의 한 오피스텔이었다. 기록대로라면 내가 사는 곳은 이 오피스텔의 404호였다. 나는 자연스럽게 경비실 앞을 지나 자연스럽게 엘리베이터에 올라타 4층으로 갔다. 404호 앞에 서서 자물쇠를 내려다봤다. 비밀번호를 입력해 여는 문이었는데,  난 역시 자연스럽게 네 자리의 숫자를 입력했다. 이 모든 행동들이 새로운 경험이라기보다는, 늘 겪던 일상이어서 더 이상 경험으로 다가오지 않는 일처럼 여겨졌다. 난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2. 이동은 대중교통을 통해 한다.   집 안을 다 둘러 본 나는 냉장고에서 물병을 꺼내 목을 축이고 침대로 가서 드러누웠다. 양복이 깔려 구겨졌지만 개의치 않았다. 천장을 올려다보며 생각에 잠겼다. 형광등 불빛이 눈부셨고, 나는 내가 왜 이곳에 오게 되었는지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내가 서울에 오기 전의 기억들을 떠올렸다. 하지만 여러 신들, 여러 인간들과 겪었던 굵직한 사건들만이 떠오를 뿐 내가 이곳에 오게 된 일과 직접적으로 연관되는 사건은 전혀 기억나지 않았다. 한참을 침대에 누워 몸을 뒤척였지만 머리만 지끈지끈 아프고 별 수확은 없었다. 문득 피곤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불을 끄고, 그 문제를 내일 생각해보기로 했다. 신으로 태어나 살아오면서, 또 수많은 사랑들을 보아오면서 한 가지 깨달은 게 있다면, 조급해진다고 해서 좋을 것은 하나 없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목록에 적힌 대상들이 사랑을 품게 만들다 한 가지 발견한 것은, 서울에서는 사람 아닌 것이 사랑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는 것이었다. 작업 대상 목록에 사물의 이름이 적혀져 있어 당황했던 적도 있고, 이국적인(물론 한국의 기준에서) 이름이 적혀 있어 찾아가 보면 동물이나 게임 캐릭터가 그 대상이어서 잠시 할 말을 잃었던 적도 있다.   방 안에는, 아무튼 그 대상의 이름과는 어울리지 않는 외모의 사내가 있었다. 그는 색이 누렇게 변한 런닝셔츠를 입고, 끝이 쭈글쭈글해진 반바지를 입고, 허리를 잔뜩 굽힌 채 컴퓨터 앞에 앉아 있었다. 나를 돌아다보는 그의 눈동자는

  • 이바
  • 2008-11-28
악취

   화장실 안에도 악취가 가득한 건 마찬가지였다. 똥을 누면서도 나는 내 똥냄새보다 그 악취를 더 강하게 느꼈다. 이곳을 가득 메운 악취에 비하면 내가 눈 똥의 냄새는 별 것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샤워를 할 때도 그 악취는 가시지 않았다. 샤워기를 통해 쏟아져 내려오는 물줄기에서도, 샴푸와 바디클렌저에서도 악취가 났다. 이곳을 가득 메운 악취를 생각하면, 몸을 씻는다는 건 무의미한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샤워를 마치고 몸을 닦는데 수건에도 악취가 가득 배어 있었다. 나는 몸을 다 닦고 화장실 문을 열었다. 문 안이나 문 밖이나 악취가 가득한 건 마찬가지였다.   악취가 아파트 건물만의 문제일 거라는 내 예상은 빗나간 것이었다. 아파트 건물을 나서자마자 나를 반긴 것은 역시 악취였다. 사방 곳곳에 그 악취가 가득 차 있었다. 어차피 모든 곳이 악취로 가득했으므로 나는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여전히 남아있던 잠기운들은 걷기 시작하자 서서히 가셨다. 나는 그제야 그 악취의 정체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사람의 감각 중에 후각세포가 적응을 가장 빨리 한다는데, 그래서 시간이 좀만 지나도 느끼던 냄새를 못 느낀다는데, 여전히 내 콧구멍 안으로 들어와 내 속을 역겹게 하고 있는 악취에 대해.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악취를 전혀 맡고 있지 못한 듯했다. 이 악취를 나만 느낄 수 있는 것인지, 아니면 다른 사람들도 악취를 맡고 있는데 그저 모르는 척 하는 것인지 궁금했다. 내 콧구멍으로 들어오는 악취가 너무 또렷하고 지독하게 느껴지는 것이어서 나는 다른 사람들이 맡으면서도 모르는 척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엄마의 경우를 생각하면 정말 다른 사람들은 맡지 못하고 있는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다른 사람들은 평소와 다름없는, 세상을 가득 채운 악취 따위는 맡고 있지 못한 듯한 평범한 표정으로 평범한 걸음걸이로 일상을 시작하고 있었다. 낙엽을 쓸고 있던 경비원이 그랬고, 양복을 입고 출근하던 중년의 남자가 그랬고, 책을 바리바리 싸들고 걸어가던 재수생이 그랬고, 다른 학교 것이긴 하지만 나처럼 교복을 입고 있던 학생이 그랬다.  나는 아무 것도 느끼지 못하고 있는 듯한 그 사람들을 보며 고개를 갸우뚱하고는 버스 정류장으로 계속 걸어갔다.   나는 버스에 올라탔다. 나 역시 버스 안에 실린 사람 중 하나가 되었다. 사람으로 가득 찬 이 공간 안에서는 그 어느 곳에서보다 심한, 지독한 악취가 났다.   

  • 이바
  • 2008-08-31
어제처럼 오늘도

   버스를 탄다. 교통카드를 갖다 대자 기계는 “학생입니다” 비명을 지른다. 나보다 먼저 탄 사람들로 가득 들어차 있는 버스 안을 보니 비명을 지르고 싶어진다. 비명을 지를 새도 없이, 내 뒤로 버스를 탄 사람들에게 밀려 더 안으로 꾸역꾸역 들어간다. 버스가 출발하기 직전에 용케도 손잡이를 잡는다. 잠시 휘청댄다.   하지만 내가 버스에서 내려서 가게 되는 곳은 학교이다. 이 버스보다 몇 배는 더 큰 건물 안에, 이 버스가 태우고 있는 사람들보다 몇 배는 더 많은 수의 사람들로 북적대는 공간 말이다. 나는 이 버스 안의 숨막힘과 무관심과 북적댐이 싫어 빨리 이곳을 빠져나가기만을 바라지만, 결국 내가 향하게 되는 곳에서는 더 큰 규모의 숨막힘과 무관심과 북적댐이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엄마, 신문 어디 있어?”   “왜?”   환기가 제대로 안 돼 냄새가 고약한 안방 화장실로 가 양치질과 세수를 했다. 냄새 때문에 어서 씻고 나가고 싶다는 생각밖엔 들지 않았다. 다 씻고 나와서 보니 시간이 촉박했다. 형은 화장실에서 나와 밥을 먹고 있었다. 형이 있는 것을 보자 또 몸이 움츠러들었다. 나는 부랴부랴 교복으로 갈아입고 가방을 메고 집을 나섰다. 버스 정류장으로 급히 걸어갔다. 버스를 타고, 밀려들어가고, 손잡이를 잡자 머릿속에 두 글자가 떠올랐다.   그건 바로 지하철역 앞에 비치되어 있는 무료신문들이었다. 옳거니! 나는 앞뒤 가릴 것 없이 무료신문을 한 부 집어 들었다.   “무료신문?”   종이 울렸다. 나는 신문을 접어서 가방에 집어놓으려 했다. 그런데 종이 치자마자 자리에서 일어나 어딘가로 빠르게 가던 한 애가 내 손의 무료신문을 보더니, 정확하게는 무료신문 1면의 영화 광고를 보더니 내게 말을 걸었다.   학기 첫날부터 모르는 애와 말을 한 최초의 일이었다.   무료신문을 가져간 그 애는 제자리로 가서 신문을 보기 시작했다(나는 책상에 엎드려 자는 척을 하면서 내 신경을 전부 그쪽으로 곤두세우고 있었다). 그 애는 친구가 많은 모양이었다. 영화 광고를 보며 다른 애들과 영화 얘기를 했고, 만화를 보면서 다른 애들과 함께 웃었고, 여자 연예인 인터뷰를 보며 다른 애들에게 농담을 했다. 무언가를 보고서는 아무 말도 없이 크게 웃기만 했다(아마 ‘성토크’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 애 주위에 있던 몇몇 다른 애들은 서로 먼저 무료신문을 보겠다고 했고, 그러다가는 내 얘기가 나왔다(이 시점에서 나는 귀를 더 쫑긋 세웠다).   “야, 내가 먼저 볼 거야.”   무료신문을 돌려주면서 그 애는 ‘고맙다’고 말했고, 나는 ‘응? 아, 응…….’ 이라고 대답했다. 그 날 나는 누군가와 말을 텄다는 사실이 기뻐 쉬는 시간마다 책상에 엎드린 채 그 기억을 계속 곱씹었다. 집에 갈 때는 콧노래까지 흥얼거렸다. 물론

  • 이바
  • 2008-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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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익명

    솔직히 말하자면 뭔 열풍이고 뭐고... (전에 평한 바 있어서 생략)

    • 2007-10-10 00:00:15
    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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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익명

    와아, 멋지다! 정말 재미있어요!

    • 2007-10-09 12:38:51
    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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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익명

    추계 떨어졌다고 거침업ㅂ이 올리는군효

    • 2007-10-09 00:04:08
    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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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익명

    문체가 너무 재밌어요 ㅠㅠ 잘 읽었습니다!

    • 2007-10-08 23:21:33
    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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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익명

    잘 읽었습니다~

    • 2007-10-05 03:39:31
    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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