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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은, 그러나 꿈결처럼

  • 작성자 토드
  • 작성일 2007-10-09
  • 조회수 463

형식은 없는… 거죠?

미래의 한 단면을 이야기로 구성해 보았습니다. 주인공인 최승호는 '캡슐' 속에서 게임을 하다 강제종료가 되어 매우 성이 났지만, 꾹 참아야 하는 상황. 앞에 어머니가 있습니다.

 

 

 

 


 뭐예요?!
 최승호는 와락 성을 낼 수 없었다. 집안에서는 언제나 예의와 도덕에 꽉 막힌 사람으로 보여야 했다. 처녀처럼 곱고 다소곳 하게, 매캐한 회색이 지배하는 꽉 막힌 셀러리맨처럼 예의바른 겉모습으로, 그리고 또는, 무색의 담담한 인형처럼.


 

 

 "…제 정신이니?"

 

 

 최승호와는 다르게 성이 날대로 난 김유미씨는 높고 날카로운 목소리로 따지듯 물었다. 잠깐… 망막에 흐릿한 독기가 맺혔다 사라졌다. 성난 목소리에 질책어린 감정과 걱정이 담기지만 않았더라면. 글쎄, 지금의 최승호는 자신을 믿지 못했다. 어쩌면 벼락같이 어머니를 밀치고 밖으로 뛰쳐 나가버렸을지도 모를 일이다.

 게임, 게임, 게임!

 공부만 요하는 집안을 피해 몰래 즐겨왔던 게임을 올해 2월이 되어서야 겨우 허락을 받았다. 5위 안에서 맴돌기만 하던 성적이 1위로 오른 덕이다. 흥, 그렇지 않았다면 돈이 넘쳐나더라도 이런 캡슐 같은 건 절대로 사주지 않았을 걸? 행여나 이것 때문에 자살을 시도할 생각 같은 건 애초에도 없고, 앞으로도 없을 테지만.
 최승호는 푹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매번 그렇지만, 깊이 숙이고 반성을 하고나면 재차 질책어린 목소리가 따랐다. 여기서부터는 그냥 답답함에 호소하는 화풀이일지도 모른다. 그냥 너무 화가나서, 주체할 수 없어서 내는 목소리. 커다란 목소리.

 미련한 짓이지.

 최승호로서는 평생을 더 살더라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화낼 시간이 있으면 조금이라도 아껴 제 할 일을 찾는 것이 나은 일이지 않나? 시간, 다른 것은 몰라도 감정을 낭비하는 데에서 허비하는 시간이 있다는 사실은 경멸에 가까운 일이다. 그에게는 병적으로 싫어하고 멀리해야만 하는 일. 그래서 어머니도 그리 좋게 보지는 않았다. 어머니는 다만 어머니다. 어머니로서의 존재가 아니라면 거들 떠 보지도 않았을 사람. 곁에 있어도 늘 외면하고 모른척 해버렸을 존재가 바로 김유미씨라는 사람이다. 망할 놈의 화풀이!

 따지고 보면 매번 어딘가에서 스트레스를 받고 집에 오는 지도 모른다. 그러니 시험기간이라는 핑계로 나를 캡슐 속에서 끄집어 낸 것이겠지.

 흰 자위 위로 옅은 분홍빛이 비우쳤다. 최승호는 고개 숙인 남자다.

 김씨는 그 이후로 수 분 간이나 더 화를 내다가 부엌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때를 기점으로 냉큼 고개를 쳐든 최승호는 무감정한 눈빛으로, 그러나 힘 풀린 다리를 이용해 터벅터벅 제 방으로 가야만 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얼른 눈에 띈 게 하나 있다. 하지만 그냥 돌아섰다. 또 할 수는 없었다. 이번에는 수 분이 아니라 수십 분은 그 오갈 데 없는 잔소리를 들어야 하겠지. 그렇게 낭비할 시간은 없었다. 이미… 다 해 둔 것들이지만, 그래도 복습을 하는 수 밖에.

 책상 위에 걸려 있는 홀로그램 하나가 8 : 49를 나타내고 사라지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최승호는 책을 꺼내려다 멈칫, 손을 굳혔다. 시험은 모래다, 더 공부할 것은 없지만 아직 남은 일과는 있었다. 잠깐 고민하는 사이에 지나가 버린 1분을 탓하며 그는 구식 자물쇠로 잠긴 서랍을 열고 일기장을 꺼내들었다.

 오늘은 일기만 쓰고 그만 잘 생각이었다.
 내일은 학교에 가야지.

 

 

 7월……

 오늘은 운이 없는 날이다. 아니─늘 그렇지. 나는 운이 없다. 무슨 일을 하든 운이 따르지만, 묘하게도 가족과 함께 있으면 나는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남자가 된다.
 열어둔 창문 틈새로 겨울이 스며들기를 바래도 언제나 지루하고 멀어지는 봄 뿐. 나를 반기는 매서운 폭풍은 보이지 않는다. 여름도, 꿈도 멀다. 냉혹한 현실과, 차가운 바람. 그리고 다리를 지나쳐 발가락마저 가릴 긴 코트가 필요한 내게 집안에서의 꽉 막힌 생활은 그야말로 감옥이다.
 싫다. 떠나고 싶다. 그러나 그러기 위해 필요한 객지살이의 용기와 부평초와 같은 적응력이 내게는 없다. 그래서 떠나지 못한다. 멍청한 바짓고랑이, 서글프게도 냄새나는 비단과 또는 축축한 옷걸이에나 어울리라지. 나는 노란색의 광태나는 우산을 쓰고 눈도 비도 미치지 않는 먼 곳으로 걸어갈 테야, 저 먼 곳으로───.

 

 

 밤은, 그러나 꿈결처럼.
 조금 더 먼 곳에서 소복이 쌓이는 눈이 되어 내 어두운 망막을 가득 채워준다.

토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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