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17 seventeen

  • 작성자 초록구두
  • 작성일 2008-01-31
  • 조회수 385

 

 

 

17 seventeen


머리말

 

 먹을 것 없는 냉장고와 아무도 없는 큰 집, 도벽, 하얀 개, 사과.

 나는 16살 후반에 접하고 있는, 방금 한 소녀의 이야기로 미숙한 첫 소설을 마친 글쓴이다. 곧 몇 달 뒤 내가 경험하게 될 17살을, 나완 다른 세상으로, 내가 경험 해보지 못할 모습으로 그려 넣었다. 그러므로 이 작품은 갓난아기에 묻어 있는 생 피 같이 비린 갓 낳은 소설이다. 이 소설은 내가 17살 이 된 후에 다시 보게 될 것이며, 멋진 대작을 위한 습작이 되어 줄 것 이다.

 누군가 내 소설을 읽을 때면 부끄러운 실 웃음만 나온다. 쓸 때는 자신 있게 마구 써 내려갔던 소설이 다시 내 눈에 들어 올 때면 어찌나 맹랑하게 나갔는지 머릿속으로 상상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소설은 일생 내가 가장 아끼는 소설이 될 것 같다. 혹여나 커서 더 좋은 작품을 내 놓더라도, 이 작품을 나는 내 마음 속에 16살의 대표작으로 남아 고이고이 새겨 질것이다. 내 자신이 쓰고자 한 바를 조금 미숙하게 썼긴 하지만, 부끄럽다고 해도 솔직히 후회는 없다.

 정말 애매하게도 이 소설은 판타지도 아니고, 추리도 아니며, 수필도 아니고 그렇다고 자서전도 아니다. 안타깝게 로맨스라고 말 할 수도 없다. 그런 이성적인 사랑은 소녀, 아저씨  사이엔 전혀 없으니깐. 공허함은 지니고 다 자라버린 한 이십대 청년과, 공허함을 어쩔 줄 몰라 하는 십대의 대화는 당신에게 감동 보단 당신이 겪어 보지 못한, 또는 경험 해본 신선함을 주기 바란다.

 ‘윤시현’의 어둠이지만 이 특이한 어둠을 가지고도 싶었고, 맛보고 싶었기에, 그 ‘아저씨’같은 사람을 만나 나의 공허함을 달래고 싶었기에 모자란 이야기를 독자에게 살짝 내비친다.

 17, 나의 열일곱 살을 위하여, 아니 당신들의 열일곱을 위하여.




작가소개


 그녀는,

갓 나와 따끈한 느낌을 가진 신소설 작가. 공부가 시급한 때 에도 전혀 웃음을 잃을 여유가 없는, 이팔청춘 겨우 열여섯 먹은, 거의 열일곱이 되가는 여자 아이다. 뭐든 막나가서 탈 이나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틈틈이 구멍이 보이는 소설이지만  닳고 닳은 노력 끝에 다산재단의 지원을 받아 첫 소설 「17 seventeen」을 여러분들에게 내 놓았다.


 

 

 

 

1 ˚                                                                                 


웩- 퉤퉤.

 빨간 사과를 한입 베어 물고 바로 뱉어 버렸다. 도저히 그 사과는 너무 시어서 씹기조차 힘들었다. 무슨 사과가 이래, 하면서 다시 그 사과를 보니 그지없이 빨갛고 그 위에 톡톡 올라온 반점 몇 개가 날 좀 드셔보소 하고 눈을 꼬드기는 것 같았다. 이제는 사과에게까지 속고 있다니 기분이 썩 좋지 않다. 사과는 즉시 음식물 쓰레기 통으로 던져 날려버렸다.

 다시 냉장고를 열었다. 눈에 보이는 건 생수 한통, 날달걀 한판, 신 김치와 밑 반찬, 오렌지 두 개, 김빠진 콜라, 지저분한 케첩, 3조각 남은 식빵 봉지 그리고 버터랑 딸기 쨈, 마지막으로 보인 건 공포의 빨간 사과 5개... 70%세일하는 매장에서 부랴부랴 하나라도 더 보려는 아줌마의 눈처럼 부릅뜨고 두리번거려 보았으나, 별로 효과는 없었다. 다시 사과를 먹자니 입에서 신 침이 나왔다. 얼른 오렌지를 집었다. 휴- 집에 먹을 것이 너무 없다는 생각을 하고 옷을 대충 챙겨 입었다. 오렌지를 까먹으면서 집에서 나왔다. 날씨가 춥다.


이거, 저거. 아 오징어도 먹고 싶다. -퍽

「안녕. 도둑」

「아, 씨, 모야」

이거 뭘로 때린 거야, 눈을 한 번에 찌푸리면서 혀까지 깨물어 버렸다. 젠장

「야, 야, 괜찮아?」

「아, 뭐예요. 아저씨. 존나 아프네.」

그 아저씨는 내가 여태껏 봐온 가게 주인 중에 가장 멍청했다. 근데 오늘은 운이 지지리도 나쁘게 걸리고 말았다. 하여튼 나는 최대한 아픈 척을 해가면서 머리를 손으로 붙잡고 한 쪽 눈을 찌푸리며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혀에서 자꾸 피 맛이 나는 것 같았다. 나는 계속 침을 삼켰다. 슬슬 고개를 올리면서 아저씨의 눈치를 살폈다. 근데 말이다, 아저씨 신발이 이렇게 깨끗한 것은 처음 보았다. 어라? 바지는 꾸질 꾸질한 면바지가 아닌 청바지를 입었네? 이 아저씨가 미쳤나? 웬일이래, 하면서 티셔츠를 보았더니 자동차 그려진 옅은 핑크 빛 티셔츠를 멀끔하게 입고 있었다. 어, 똥배가 나와 있어야 하는데 어딜 봐도 똥배는 보이지 않았고 손에 잡힌 단단하게 돌돌 말은 신문지 뭉치와 팔 근육이 보였다. 원래 이 아저씨는 나 때릴 때 냄비 뚜껑으로 때리는데 의외였다.

「저기, 괜찮냐고, 」

손을 치우고 아저씨를 보았다. 그 똥배 나오고 키 작은 멍청한 우리 가게 주인아저씨가 아니었다. 멀끔하게 생겼고 수염이 나 있었다. 와, 꽤 이렇게 잘생긴 인간이 수염 하나로 깡패 같은 수가 있다니.

「아니, 그게, 저기, 당신 누구야?」

「누구긴요, 빨간 사과도 많은데 왜 하필 푸르딩딩한 사과만 잔뜩 쥐고, 멀쩡한 얼굴 해가지고 어린 애도 아니고 초콜렛이랑 껌이랑, 이건 모야 말린 오징어? 소매안이 넓기도 하지, 몸 뒤져 보면 맛있는 거 더 많이 나올 것 같은데..」

「...」그 인간의 키가 컸다. 눈을 위로 치켜뜨고 볼 수 밖에 없었다.

「자세히 보니깐 학생 같네. 몇살이야?....야, 야! 너 일로 안와? 에이씨 저게!」

 



 우르르르- 난 내 품안에 있던 사과 두개만 들고 그 가게에서 냅따 뛰었다. 아이씨, 뚱보 아저씨였으면 그냥 쉬어 빠진 잔소리 조금 듣고 가게에서 같이 훔치려던 라면이나 끓여 먹었을 텐데, 왠 이상한 인간이 거기 있냐는 말이다. 정말 운이 안 좋았다. 그 인간 따돌리느냐고 30분을 뛴 것 같다. 갈증이 났다. 눈이 손을 보았다. 뛰는 동안 손에 너무 힘을 주어서 사과가 약간 물컥해져 있었다. 아까 먹은 사과와는 달리 일부러 집은 볼품없는 사과였다. 사과에게 속지 않기 위해서. 사과를 콱 베어 물었다. 웩, 퉤퉤- 짱이다. 이번의 사과는 그야말로 신맛의 결정체 그 자체였다. 차라리 이젠 레몬을 주어도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꼬리꼬리한 가게 사과가 다 그렇지 뭐, 한입 베어 문, 선명하게 네 개의 이빨 자국 난 사과를 골목길 계단으로 던져 버렸다.

 집에 갈려면 어떻게 가야 하나. 그때 서야 내가 당장 있는 주변을 살펴봤다. 미군기지가 있는 사거리까지 내려온 것 같았다. 아, 엄청 많이도 왔네. 너무 추워서 버스나 택시라도 탈 까해서 잠바 주머니부터 바지 주머니, 속옷 까지 뒤져 보았으나 지폐는 커녕 동정도 딱 400원 이었다. 단돈 200원만 더 있어도 버스는 탈텐데. 걷기 시작했다. 거리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잠바를 걷고 시계를 보니 벌써 11시다. 드라마 다 끝났겠다, 그 거지 같아 보이는 인간 때문에 이게 뭐람. 터벅터벅 버스로 5정거장 반이 넘는 길을 헤진 운동화 끈을 틈틈이 매 가면서 걸었다.

 걸음은 너무나 지루했다. 소매를 뒤져 혹시 떨어 지지 않고 버틴 초코렛 하나라도 건질까 팔을 털어보았다. 껌 한통이 다였다. 가게에서 한 5개 넘게 소매 안으로 쑤셔 넣은 것 같은데. 그것도 제일 맛없는 스파민트 껌이었다. 이름 좀 보고 쑤셔 넣을껄. 껌을 싸고 있던 종이를 아무렇게나 거리에 흘리고 입에 넣었다. 아, 이 반갑지 못한 치약 맛.

 

 하도 많이 씹은 껌의 단물이 빠지고도 빠져서 딱딱해져 갈 때 즈음 집에 도착했다. 12시가 넘어있었지만 우리 집엔 아직 아무도 오지 않을 시각이었다. 일단 들어가서 얼은 몸을 녹이고 이층으로 올라가 티비를 보기 시작해 5분 여만에 그냥 바로 쇼파에서 잠이 들어버렸다.

 

 

1 ˇ                                                                                    

 

 


 드디어 그 뚱보 아저씨가 오후에 나갔다. 형에게 적자가 적나라하게 드러났기 때문이다. 나는 형의 부탁을 받고 오후부터 이 가게를 보았다. 형의 이 가게는 곧 편의점으로 바뀔 것이어서 당분간 내가 알바해주기로 했다.

 이 가게가 있는 동네는 참 희한한 동네이다. 소문에 의하면 초 갑부들만 사는 동네라고 한다. 하지만 그 만큼 숨겨진 비밀도 많고 더 음지가 많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오늘 이 가게를 내가 보았다. 손님은 그냥 적당 했다. 하지만 뚱뚱보 아저씨를 찾는 인간은 왜 이리도 많은지, 주로 학생들이었다.  참 한심한 아저씨 같으니라구. 학교는 며칠 빠질 생각이었다. 지루한 참에 좋고 돈도 생기고 잘 되었지 뭐.

 저녁 먹을 때 즘에 형에게 전화가 왔다. 아빠가 보자는 내용이었다. 싫었다. 아빠가 여태 까지 23년 살면서 내게 해준 일이 무엇이란 말인가. 중,고등 학교 때 공부를 잘 시켜 주었던가, 첼로를 제대로 할 수 있게 해주었던가, 돈 타령에 과외하나 안 시켜주고 자신만의 여행과 여자에만 미쳐 살던 아빠다. 그 아빠를 안보고 산지 3년이 되었다. 새삼스럽게 만나자니, 어이가 없다.

  담배를 끄냈다. 불을 붙였다. 한 손님이 들어 왔다.

「어서 오십쇼.」

 모자를 풀 눌러 쓰고 있었고, 머리가 길었다. 나이가 있어 보였다. 그 여자는 사과 바구니 앞에 앉더니 파란 사과만 5개를 집었다. 그리고는 과자 몇 개를 집었고 초코렛도 몇 개 집었다. 주머니에서 나온 그 여자의 손은 매우 희고 약해 보였다. 하지만 손을 열심히 보던 순간 소매에서 삐져나온 초코렛 모서리를 보았다. 피고 있던 담배를 휙 던지고, 이 건방진 여자의 뒷통수를 갈겼다.

 

 여자가 휙 고개를 돌려 나를 보았다. 자세히 보니 어른은 커녕 꼬마애 같았다. 피부가 정말 하얗다. 그 꼬마가 슬슬 고개를 들더니 내가 누구냐고 한다. 당신은 누군데 물으려고 하다가, 그 애 손목의 초코렛이 눈에 걸려 말을 했다. 그 애가 내 수염을 보는 것이 따갑게 느껴졌다. 아, 그래 맞다 면도. 그런 그 애에게서 눈을 붙이고 있다가 냅다 그 애가 튀었다. 동네가 시끄럽게 뛰어서 쫓아갔다. 30분 동안 잡기를 하다가 멈추었다. 나를 따돌렸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꼬마의 행동을 계속 지켜보았다. 손에 쥐고 있던 사과를 물더니 뱉어 버린다. 그리고 그 나머지 사과를 괴팍하게  져 버린다. 보통 여자 애가 아닌 것 같았다. 당연히 시어서 못 먹겠지. 그렇게 파란 사과만 가져갔으니 말이다. 그 얘는 갑자기 온몸을 다 뒤지더니 그냥 터벅터벅 길을 걸었다. 나도 따라 갔다. 미군기지가 있는 것 같았다. 이렇게 조용한 동네가 다 있나 하면서 걷고 걸었다.

 가게 문도 안 닫고 간지라 그제서야 걱정이 되어 막 뛰어 되돌아갔으나 아무렇지도 않았다. 천만 다행이지. 짐을 챙기고 가게 문을 닫았다. 12시가 넘어 갔다.

 겨우 막차 버스를 겨우 타서 포근한 자리에 앉았다. 아빠와의 문제를 한참 머릿속으로 생각하다가, 그 여자 애 생각이 났다. 비밀이 많을 것 같았다. 아까 꽤 큰 집으로 들어가던데. 왜 그 이상한 사과만 잔뜩 가져갔을뿐.

 

 

2 ˚                                                                                                                              


「야, 일어나.」

「어, 오빠가 내방에 웬일이야.. 」

「그러게. 근데 여긴 니 방이 아니라 쇼파잖아, 이 게으름뱅이야, 나 학교 간다.」

「그래, 잘 갔다 와~아침은 뭐했어?」

「먹었어. 니껀 안 남겼으니깐 니가 알아서 차려 먹어. 」

「참내 어, 근데 내가 어제 자전거에 빵구 냈어. 미안」

「아씨, 그걸 이제 알려주면 어떻게 해! 아씨 늦었다」

어떻게 맨날 지네끼리 아침을 먹고 가냐는 말이다. 치사한 멍청이들. 쌤통이지, 뭐. 부스스한 머리로 냉장고 문을 열었다.

 생수 한통, 날달걀 한판, 신 김치와 잔 반찬, 오렌지 두 개 아니 어제 하나 먹었으니 한 개랑, 김빠진 콜라, 지저분한 케첩, 3조각 남은 식빵 봉지 그리고 버터랑 딸기 쨈, 마지막으로 보인 건 공포의 빨간 사과 5개. 똑같네. 사과를 보니 입에서 신 침이 고였다. 역겹다. 생수만 끄내고 닫아 버렸다. 물을 한잔 마시고 시계를 보았다. 8시다. 물론 아침.


 일층 안방에 내려가 보았다. 혹시나 엄마나 아빠가 있을 까 해서 였다. 한 번에 둘 다는 아니더라도, 그냥 하나라도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생각해서 슬며시 문을 열은 수고와는 달리 아무도 없었다. 단지 깨끗하게 정리된 침대가 끝이었다. 한두 번 돌아오지 않는 그 실망감. 일층은 고요 했다. 햇살만 창으로 들어오고 마치 새 집 같았다. 너무 깨끗해서 내 집이랑 동 떨어져 있는 것 같다.

 이층에 올라 왔다. 두 번 째 방, 오랜만에 오빠 방문을 사알짝 열었다. 오빠가 방에 없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괜히 습관이 그랬다. 오빠는 굉장히 정확하고 분명한 사람이다. 역시 딱딱 나열된 책장과 정리된 침대. 벽이 붙어 있는 외국 가수 포스터 조차 깨끗하게, 자못 멋지게 붙어 있다. 문을 닫으려는 데 오빠얼굴이 생각난다.

 내 구역으로 간다. 첫 번째 방. 방문도 잘 안 열릴 만큼 옷과 책과 잡것들이 방안에 엉키어 있다. 쾅 도로 닫아 버린다.


 밖에 키키와 나왔다. 키키는 우리 집 개다. 밥은 3그릇을 초과하는데 살이 디룩디룩 찌는 것도 아니고 일찍 죽은 것도 아니다. 키키는 모두가 없는 시간에 내 유일한 친구다. 내 친구들 조차 오빠 같이 학교를 나가니깐. 이런 나른한 오전 시간에는 키키랑 놀 수  밖에 없다. 키키는 오랜만의 산책이 좋은 가보다. 이름만 방정스런 키키이지 참 얌전한 개다. 밥을 주어도 양반인양 천천히 걸어오는가 하면, 신문을 가져 와서 칭찬을 해주면 덩실 거리지도 않고 칭찬을 받기만 한다. 키키가 나무 기둥을 다니며 냄새를 고루고루 맡는다. 이 자식 그냥 숫총각으로 죽는 건 아닌가 걱정이 되어 아빠께 암컷 개를 쪼르고 있는 중이다. 키키와 함께한지 3년 반이 훌쩍 넘어간다.

 어제 사과를 들고 뛰쳐나갔던 그 가게가 보인다. 혹시 뚱뚱보 주인이 있는지 흘끔 보았다. 젠장 그 멀끔한 아저씨가 또 있다. 뚱뚱보가 아픈가, 하며 그 가게를 연신 피해 갈려고 키키의 발걸음을 옮겨 보지만 이놈의 덩치가 큰지라 자꾸 질질 끌려가게만 되었다.




「야, 이 멍청한 도둑아.」 아저씨가 내 머리통을 쿡 찔렀다.

「아야! 왜 때리고 그래요」

「참나, 야, 근데 너는 학교 안가냐?」

「아, 나 어른이예요! 무슨 학교야, 학교는.」/「어른이면 신고를 해야지, 도둑 잡았다고. 」

「그러던가요. 근데 왜 때리고 그래. 」

 아저씨 얼굴을 다시 힐끔 힐끔 보았다. 정말 얼굴이 꽤 잘생겼는데, 말에서 마치 더러운 가래침이 나오는 것 같았다. 키키가 아저씨의 발 냄새를 맡았다.

「와, 귀엽다. 니 개냐? 」

「네.」 아저씨가 쪼그려서 키키를 쓰다듬었다. 그런데 내가 쓰다듬어 줄때는 반응 없던 녀석이 건친 손으로 쓰다듬는 아저씨에게 막 꼬리를 흔들고 난리를 친다. 아저씨가 담배를 꺼내어 문다.

「얘, 내가 좋은 가보다. 가게에 두고 가라.」

「아, 싫어요. 근데 아저씨 진짜 누구예요? 뚱뚱보 주인아저씨는 요? 아파요?」

「원래 진짜 주인은 나야. 그 뚱뚱보 하도 남한테 공짜로 줘서 짤랐어.」

 아저씨의 외모를 다시 보았다. 한 25살 좀 덜 먹었을까? 근데 니가 사장이라고?

「아저씨 돈 많아요?」

 하얀 담배 연기를 내 뿜었다. 키키는 킁킁 대었다.

「글쎄,^^ 」

 쪼그린 아저씨 뒷 배경의 일부인 가게를 쭈욱 훍어 보았다. 꾸리꾸리 해서 이 아저씨가 아니라 뚱뚱보 아저씨가 있어야 할 가게 같았다. 편의점이라면 모를까.

「이 가게 편의점으로 공사할라고. 이 동네에 안 맞게 너무 꾸리잖아.」

아저씨가 담배를 시멘트 바닥에 비볐다. 그리고 밟고 일어났다.

「야, 너는 이 동네 사냐? 이동네 사람들 다 부잣집 밖에 없던데.」 

「저기, 갈색 집.」

「초 갑부네, 초 갑부. 근데 돈도 많을 텐데 왜 훔치고 다녀? 집에서 먹을꺼 안주니?」

「네.」바로 대답했다. 진짜이기도 하지만 혹시 아저씨가 무언가를 줄 꺼 같아서 였다.

「학교는 왜 안가냐니까?」

「검정고시」

「너 같은 집에서 왜? 학교에 적응 못하니? 나이가 많아? 아님, 유학이라도 갔다 왔어?」

「그럴 사정이 있었어요. 왜 자꾸 캐물어요!」

「몇 살인데?」/「열 일곱」


 난 일어났다. 키키는 계속 가게도 두리번, 나무도 두리번, 홀로 산책을 만끽 하고 있었다. 나는 이렇게 불쾌한데.

 그 자리에서 바로 아저씨를 외면하고 계속 걸었다. 키키가 오려고 하지 않고 아저씨에게  인사를 했다. 그냥 목줄을 질질 끌고 집에 와버렸다.

「나중에 심심하면 놀러와! 맛있는 거 줄게~」

 뒤를 향해 퍼큐를 날리고 싶었지만 참았다. 집에 들어와서는 그날 이래로 공포의 신 사과 5개를 몽땅 먹어버렸다



                                                                                                                             
                 

 

 아침이 밝았다. 오랜만에 옷에 신경을 한 쓸 수 있었다. 대충 그 가게에 어울리는 츄리닝을 차려 입고 파카 하나를 입고, 주머니에 비스켓 한 각을 찔러 넣고, 버스 정류장을 향했다. 버스 가는 동안 내내 못 잔 잠을 머리를 창문에 박아 가며 다 채웠다. 하지만 한정거장을 더 가는 바람에 걸어서 돌아가야 했다.

 걸어가는 길은 꽤나 추웠다. 손을 호호 불어가며 계속 비벼댔다. 아, 상쾌했다. 이 동네의 냄새. 비린내는 아닌 새 페인트 냄새라고 할까.

 걸어가다가 익숙한 가게가 있는 골목을 들어설 때 즈음 눈에 낯익은 집이 보였다. 아, 어제의 갈색 집이었다. 그 때 어제 그 여자 애가 생각났다. 소매를 걷어 올리고 시계를 보았다. 8시 좀 넘었네. 갑자기 집에서 교복을 입은 남자아이가 헐레벌떡 뛰쳐나왔다. 그 뒤로 한 여자아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참내 어, 근데 내가 어제 자전거에 빵구 냈어. 미안~」

「아씨, 그걸 이제 알려주면 어떻게 해! 아씨 늦었다」

 그 남자아이는 아주 빠르게 내 앞을 지나 뛰어 갔다. 나는 그 틈에 열린 집안 정원 문 사이로 얼른 들여다보았다. 집안 문은 닫혀 있었고 정원에 반갑지 않은 하얀 개가 한 마리 있었다. 나를 향해 짖어대었다. 컹컹. 나, 가라고? 개는 너무 시끄럽게 짖었다. 얼른 주머니에 넣었던 비스킷을 떠올렸다. 이거, 내 아침인데. 두 조각을 던졌다. 덥석 받아 물더니 이제야 조용하다.

 나는 그 열린 틈을 열심히 보았다. 얼마 되지도 않아 다 먹었는지 개가 다시 나를 쳐다  본다. 혀를 쑥 내밀고 꼬리를 연신 흔든다. 비스킷을 3개 더 던져 주고는 가게로 향했다. 그 소녀를 오늘도 볼 수 있을까.


 찍- 하품을 했다. 꾸벅 꾸벅 졸고 있었다. 어제 너무 밤에 뛰고 집에 늦게 들어간 탓이다. 손님이 들어오더니 사과를 달라고 했다. 나는 화들짝 잠을 깨고 밖으로 나가서 잘 익은 사과 5개를 손님에게 골라 주었다. 6천원만 받고 주머니에 푹 쑤셔 넣었다. 막 돌아서려고 할 때, 하얀 개와 그 개에게 끌려오는 그 소녀를 보았다. 파란 잠바를 입고 있는 소녀.

 

 

 

                                                                                                      


 그 후 그 가게는 몇 일 동안 피해 다녔다. 자꾸 내가 모르는 누군가가 나를 알려고 하고, 눈길 주는 것이 싫었기 때문이었다. 며칠이 뭉텅이로 그냥 지나갔다.

 어젠 쇼핑을 갔다 왔다. 집안에서 꼼지락 거리기만 하던 스트레스가 확 풀리는 것 같았다. 물론 돈은 별로 들지 않았다. 습관처럼 배어버린 도벽은 이제 내 욕심을 따라가기 만 했다. 아니, 욕심을 더 붇돋어 주었고 허무함, 그리고 공허함을 더 남게 했다.. 양심도 닳고 닳아 찔리지도 않는다. 하지만 아무도 내게 하지 말라고 한 적도 없고, 혼낸 사람도 없었다. 그  짤린 뚱보 아저씨의 잔소리가 17년 도벽에 대한 꾸지람의 다였다.

 오빠와 나의 통장에는 각각 꽤나 많은 돈들이 있다. 물론 우리가 만든 돈도 아니고, 그렇다고 쓰기도 묘했다. 오빠는 용돈 대신 그 통장에 있는 돈을 쓰지만, 난 그 돈을 쓰는 게 굉장히 꺼림찍 했다. 핑계는 안 되겠지만 내 수중 안에 당장 돈이 없었기 때문에 도벽이 생긴 거라고도 할 수는 있을 것이다.


 오늘은 오빠가 준 돈으로 키키를 동물 병원에 데려가서 진단을 받고 샤워를 시키고, 발톱까지 예쁘게 깍았다. 누리끼리 했던 털은 하얘졌고 개 냄새도 조금 덜 나는 것 같았다. 키키와 동네 산책을 오랜만에 했다. 오랜만에 키키가 방방 뜨는 것 본다. 나도 기분이 좋다.

 놀이터를 지났다. 내리막길이 나로는 골목이다. 키키가 어딘가로 마구 달려가기 시작했다. 앞을 보았다. 그 가게였다. 저 가게, 편의점으로 바꾼다고 하지 않았나? 가기 싫었다.

 키키의 목줄을 그냥 놓아 버렸다. 키키는 뭐가 그리도 좋은지 가게 앞의 사과더미를 다 무너뜨리고, 가게 앞에서 쪼그려 담배를 피며 신문을 읽고 있던 아저씨에게 달겨들었다.

「아씨. 개털 먹었어. 웬 개인가 했더니, 너구나! 」

 아저씨는 키키를 안았다. 나는 저 쪽 멀리서 개똥 처음 보는 아이처럼 멀리 떨어져 있었다. 개털을 먹다니, 역시 아저씨는 멍청했고, 미웠다. 아는 척 해주기 싫어서 그냥 지나치려고 했는데, 아, 짜증나.

「야, 나 안보고 싶었냐?」

  무슨 개 헛소리, 욕을 하려고 하다가 키키가 엎질러 놓은 사과더미를 보고 욕을 위장까지 꾸욱 눌렀다.

「아니요. 혹시 아저씨 변태세요?」/「뭐,어? 어, 아니, 나 그런 사람 아니야! ..」

  조용한 정적이 흘렀다. 아저씨는 갑자기 땅에 떨어진 사과를 집더니 말했다.

「우리 사과 먹을래? 웃음이 나왔다. 수염 난 아저씨가 빙그레 사과를 들고 말하는 게 꼭 유아 맘마 선전 같았다.

「왜 웃어! 그 푸르딩딩한 신 사과도 몸에 좋지만 이 사과는 더 좋아, 특별히 개털이 있는 사과니깐. 돈 안줘도 돼, 공짜야, 그러니깐 먹어.」

 아저씨가 떨어진 빨간 반점 톡톡 사과를 자기 바지에 막 문지르더니 내 손에 쥐어 주었다. 입에서 역겨운 신 침이 나왔다. 공포의 사과 5개를 먹은 이 후 사과는 입에 하나도 대지 않았었다.

 사각- 옆에서 아저씨가 사과를 베어 물었다. 오소리가 사과 먹는 것 같았다.

 사각- 나도 물었다. 달다. 입안에 고여 있던 신 침은 사과의 단물에 섞여 목구멍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3˚                                                                                                                   


 뿌연 연기- 목구멍을 태우는 냄새.

 이 가게를 원래 이틀 전에 편의점 공사를 들어갔어야 했는데 미루어 졌다. 짜증이 났다. 계약에 아주 작은, 티도 안 나는 오류가 하나 있었을 뿐인데, 그 오류는 아주 쉽게 2주를 미뤄

버렸다. 이제 며칠만 참으면 된다! 어제 아버지와 얘기한 일이  생각난다. 이런 저런 생각이 겹쳐지면서 머리가 또 어지러웠다.

 담배 하나를 물고 신문을 폈다. 오래 전부터 복잡한 생각을 회피하는 버릇이었다. 신문, 그리고 담배.

  밖에 나가서 신문을 하나 집어 쪼그려 앉아 담배를 폈다. 신문 기사에 막 빠져 심취해 있을 때, 확 깨고 말았다. 갑자기 밖에 사과를 쌓아 두었던 사과 더미가 데구르르르 쓰러졌고 웬 하얀 것이 와서 내 얼굴을 비볐기 때문이다. 하얀 개가 사과 냄새를 하나하나 킁킁 맞고 있었다.  그리고 그 목줄을 세게 당기고 있는 사람, 그 도둑 이었다.

 면도. 갑자기 면도를 못한 것이 떠올랐다. 왜 이아를 보면 얼굴이 따가워 지는 것일까. 내가 보기 싫다는 듯, 쭈뼛쭈뼛 그 아인 멀리서 가까이 오지 않았다.

「야, 너 나 안보고 싶었냐?」

 그냥 인사말로 던진 말이었다. 사실 내가 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 하얗고 뽀얀 얼굴에 좀 안 어울리는 까만 눈썹이 주름을 잡는다. 애 표정이 썩었다.

「아니요, 혹시 아저씨 변태에요?」

 어? 나? 변태? 굉장히 어이없고 웃긴 질문이었다. 당황했다.

「뭐,어? 나 그런 사람 아니야. 그냥. 그래 그냥 물어본건데.」

나는 버릇처럼 시선을 고정시키지 못하고 이리저리 눈알을 굴리다가 반갑게 키키를 보았다. 키키가 사과를 핥는다. 먹고 싶은가보다. 아직도 치우지 않은 사과가 길에 너부러져 있었다.

키키가 어색한 우리 대화에 할 말을 제공해 주는 것 같았다. 키키가 사과를 깨물었다. 그리고 내게 짖었다.

「.. 우리 사과 먹을래?」바닥에서 제일 빨간 사과를 주워 바지에 쓱쓱 문지르고는 내밀었다. 그 아이가 웃었다. 민망했지만 난 그 웃음이 싫지 않았다. 아이가 사과를 받더니 고루고루 사과를 쳐다본다. 맛있게만 생겼는데, 원래 파란 사과만 좋아 하나? 그 애가 나를 힐끗 쳐다본다. 나는 그 빨간 사과에 있던 시선을 얼른 내 손으로 돌렸다. 그리고는 그냥 앞에 있던 사과를 재빠르게 하나 집었다.

사각- 

 내입에 들어가고 있는 사과가 이빨과 물려 시선만 시끄러운 우리 사이의 정적을 깬다. 그

아이가 멀끔 멀끔 자기 사과를 쳐다보고 있다가 사과를 먹는 나를 빤히 쳐다본다. 또 웃는다. 입을 크게 멀리고 먹는 내 모습을 생각하자니  다람쥐가 도토리 먹는 생각을 했다. 

사각- 

 소녀도 사과를 먹기 시작한다. 하얀 얼굴이 자기만한 새 빨간 사과를 먹기 시작한다. 내입에 사과가 들어가는 지 마는지도 모른 채 나는 그 작은 꼬마가 열심히 사과 먹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아, 사람이 사과 먹는 거 보는 거 꽤 재미있구나. 하얀 얼굴과 빨간 사과가 내 뇌 중앙에 팟, 들어왔다.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사과가 향기롭게 느껴졌다. 그리고 유난히 맛있었다. 그리고,  사각-

 

 

4 ˚                                                                                                                             



 오빠도 아니고, 아빠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친구도 아니었다. 그 아저씨는 신기했다. 특히 오소리처럼 사과를 야금야금 먹는 모습. 우리 오빠는 꼭 깍아서, 조금 재수 없게 포크로 찍어서 먹는데. 아저씨가 집에 갈려고 하는 내손에 사과를 4개나 쥐어 주었다. 내 처지가 불쌍하긴 커녕 기분만 좋았다. 그런데 참 특이하게 빨간 사과2개랑 파란 사과2개를 주었다. 그것도 일부러 2개씩 섞어서 말이다.


 덜커덕- 누가 집에 들어 왔다. 나는 쇼파에서 책을 보고 있다가 고개를 휙 돌렸다.

「어! 오빠 일찍 왔네?」

 원래 학교에서 5시에 잠깐 왔다가 학원을 가던 오빠인데, 지금은 4시가 조금 넘어 있었다. 오빠답지 않게 오빠는 들어오자마자 가방을 거칠게 내려놓고 냉장고 문을 열고 물을 꺼내 컵에 따르지도 않고 벌컥벌컥 마셨다. 내가 저렇게 먹을 땐 막 더럽다고 구박했으면서 웬일인지. 이상해보였다.

「근데, 왜 일찍 왔어? 어디 아파 조퇴했어?」

 오빠는 대답은 하지 않고 물통을 냉장고에 다시 넣더니 냉장고 안을 빤히 쳐다보았다. 뭔가가 있을 리가 없지. 항상 다른 것은 많아도 먹을 것은 전혀 없는 우리 집이니깐.

「뭐 먹을 꺼 찾아?」   /   「응.」

 식탁위에 아저씨가 내게 준 사과가 4개 있었다. 오빠 키보다 크고 몸집은 3개 만한 냉장고 안에 먹을 것이라곤 맛없는 오이와 잔 반찬, 그리고 파인애플 캔, 날계란, 오렌지 환타 음료수 반 정도 남은 패트 병 하나, 쭈글쭈글해진 귤 2개가 다였다. 오빠는 가끔 아침 빼고, 밥을 항상 밖에서 먹었으니 냉장고가 어떤지 오랜만에 보았을 것이다.

「너는 뭐 먹고 사냐?」 역시 너무 오빠다운 질문.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뭘 먹고 살긴. 잘 먹고 잘 자라고 있지. 안 그래?

 책에 온 집중을 쏟았다. 아무것도 들리지 않아.

「너 오늘 내가 준 돈으로 키키 목욕 시켰어?」

「….」 오빠는 내 대답을 기다리다가 낮잠을 자는 키키의 등을 쓰다듬었다. 당연히 보들보들하고 약간의 담배 냄새와 사과향이 섞인 향기가 나겠지.

「…아빠가 온데.」/「뭐라고? 아빠?」

책에 쏠렸던 탄탄한 집중의 벽이 그 아빠라는 단어 하나로 콱 뽀개졌다. 아빠가 온다고?

「오늘 저녁에, 8시에 비행기 도착한데.」

오빠는 담담하게 말하면서 교복을 벗고 평상복으로 갈아입었다. 오빠 키가 더 커보였다.

「나 좀 있다 공항 갈껀 데 너도 갈래?」

 나는 뒤통수를 방망이로 뻥 맞은 애처럼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미국에 두고 왔다는 가족 찾으러, 우리를 긴 시간 버리고 간 아빠가 온데. 마음속으로, 아니 머릿속으로 되뇌었다. 내게 이렇게 큰, 빈 공허감을 만들어준 그 인간이 온데.

「야! 정신 차려. 갈꺼냐고.」오빠가 내 옆 쇼파에 앉으면서 내 머리를 콩 찌어 박았다.

「…내가 어떻게 가!」

 오빠한테 한 대 더 맞고 오빠가 입으라는 스커트와 코트를 입었다.

 

 

 


4 ˇ                                                                                                                                


 그녀가 집으로 가려고 할 때 나는 사과를 4개 쥐어 주었다. 파란 거 두 개, 빨간 거 두 개. 도저히 어떤 색 사과를 좋아하는지 판정 지을 수 없었지 때문이다. 혹시 모른 특이한 취향을 위해 신 사과를 두 개 준 것이다. 하얀 손으로 커다란 사과를 꽉 움켜 지고 가는 그녀 뒤에 졸졸 따라가던 키키는 갑자기 내게 달겨들었다. 나는 그 애 몰래 저번 아침에 주었던 비스켓을 주었다. 얘는 나보다 비스켓이 좋은 거다.

 그 아이가 가는 뒷모습을 보았다. 그 아이의 걸음 습관. 터벅터벅. 무언가 힘없고 연약한 모습, 하지만 누군가가 그녀를 건드리면 꿈틀 움직일 것 같지도 않은 거대한 벽에 둘러싸여 다니고 있었다. 갑자기 목에 가래가 끓어올랐다. 퉤- 뱉어진 누런 침이 바닥에 찍- 퍼졌다.

 이 마을도 며칠만 있으면 오기 힘들 텐데 그 아일 가기 전에 한 번 더 볼 수 있을까?

맞다, 그 아이 이름이 뭔지도 모른다. 할 말 찾을 때 그거나 물어볼껄. 그 개, 키키 이름만.

  

 그 애가 가고, 해가 어느덧 지고, 가게에는 과일을 사가는 사람, 과자를 사가는 사람, 로션 사가는 사람, 밀가루 사가는 사람, 쌀 1kg 사가는 사람 등이 다녀갔다. 하루 종일 책을 보았다. 오늘 신문은 신물이 나게 보았기 때문에.

띠리리링-

 무슨 집전화도 아니고 띠리리링이 무언가. 벨소리를 얼른 받던지 해야지.

「여보세요」

「어, 치건 오빠 나 아진인데, 오빠 지금 어디야? 그 가게야? 」

 아, 아진이. 나는 그 애 생각에 어린아이 같았던 오늘 하루의 리듬을 탁, 깨고는 어른스러운 모습이 나타났다. 나를 23살 남자로 만들어 주는 여자. 시계를 보았다. 9시.

「응, 나 보고 싶구나? 」 습관 같은 인사.

「내가 그리로 갈까?」  /  「 니가 웬일로 먼저 날 찾아 주고, 오기 까지 하겠다고?」

「…. 이번 주에 오빠가 나 한 번도 안 찾았잖아.」 아 맞다, 전화한다는 게 그만.

「아, 미….」

「오빠가 요새 바쁜 건 알아. 혹시나 머리 나쁜 당신이 나 까먹을 까봐 얼굴 뇌에 한번 박아주러 그런 거니깐 착각 하지말고.. 저번에 그 뚱보 아저씨 있던 가게 맞지? 나 지금 학교에서 680변 타고 간다!」

 일주일 내내 그 꼬마만 기다리고, 아진이를 까먹고 있었다니. 전화를 끊고 아진이가 온다는 기분 좋은 느낌과 동시에 그 꼬마생각이 뇌를 아진이의 생각을 비집고 자꾸 모난 모서리를 갖다 대었다. 담배를 물었다. 그냥 걔는 어린 동생 같은. 보호해 주고 싶은, 파란 사과만 먹는, 그 뿐일 아이야. 그 아이 얼굴이 눈앞에 나타났다. 후욱-  얼른 뿌연 담배 연기로 지워버렸다.

 덜컹,

「어서 오세요.」 나는 책에서 눈을 떼지 않고 있었다. 또각 구두 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담배를 두 개피 피고 책을 한 권 딱 다 읽고 나자, 화려한 외모에, 긴 생머리가 잘 어울리는 큰 키에 까만 스커트를 입은, 구리 빛 피부를 가진 여자가 사과 박스 옆, 가게 문턱에 서 있었다.

 

 

5 ˚                                                                        


 뿌옇게 습기 때문에 서리가 낀 택시 창문에 검지로 그림을 그렸다. 사과 4개랑 수염 난 아저씨. 그리고 키키. 무슨 초등학교 1학년이 그림일기 쓸 때 그리는 그림 같았다.

 「2만 천원입니다.」 오빠가 택시비를 내었다. 도대체 아빠를 보면 뭐라고 할 것인가. 엄마가 아닌, 엄마와 비슷한 여자 또한 있을 것이고 더 큰 오빠도 있다고 들었다.

 공항에 들어갔다. 핸드폰을 보니 7시가 조금 넘었다.

「너 배 안고파?」  /   「고파.」

오빠와 도넛 가게에서 코코아와 도넛츠를 3개나 먹었다. 오빠는 혼자 무슨 생각을 하는지 도넛츠도 먹다 말았다. 내가 마구 도넛츠를 입에 쑤셔 넣는 것을 신기하다는 듯이 쳐다보았다. 보기 힘든 오빠의 웃음이 오빠의 얼굴에 머물렀다. 아빠가 와서 좋은가?

「오빠는 아빠가 와서 좋아? 아니, 좋을 꺼 같애?」

「글쎄, 전혀 좋진 않겠지. 갑자기 형이 생기고 새엄마도 올테니깐.」

「그 사람들 말고, 아빠. 그 아빠 말이야. 안 미워?」

「난 곧 대학가면 이 더러운 집이랑 인연 끊을 꺼야. 물론 너는 아닐지 모르겠지만.」

나는 입에 가득 허연 도넛 가루를 묻히고 오빠를 치켜보았다.

「입 좀 닦아.」 오빠가 내 얼굴에 휴지를 던졌다. 또 짜증부리고 있어.

 

 8시다. 오빠는 출구에 서 있었다. 나는 저 멀리 의자에 앉아 손톱 끝에 온 신경을 집중 하고 있었다. 아니, 집중하고 싶었다. 시간이 멈춰서라도, 보기 싫었기 때문이었다.

「아빠!」  드디어 오빠 목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살짝 돌렸다.

「우와, 내 아들! 석현아! 」

아빠는 오빠를 안을려고 했다. 오빠는 그런 아빠에게서 한 발짝 물러 났다. 오빠가 참 잘했다고 생각했다. 아빠는 머쓱한 웃음과 함께 뒷머리를 긁었다. 옆에 미소를 짓고 있는 아줌마와, 오빠만큼 키가 큰 무표정의 남자가 있었다. 그 아저씨 정도 나이가 들어 보였다.

「 아, 저기.. 시현이는? 안 왔어?」

 아빠는 두리번 두리번, 나를 찾았다. 오래되기도 했으니 가까이 있어도 못 알아보겠지. 바로 조금 뒤 의자에 앉아 있는데. 나는 얼른 고개를 숙였다.

「야, 시현아. 뭐해, 빨리 와.」

 아빠를 보았다. 아빠가 미안한 듯 나를 보고 웃었다. ‘저리가’라고 말하고 싶었다. 아빠는 내 어깨를 툭툭 토닥였다. 아빠가 그 여자와, 남자를 소개 했다. 미국에 서 생긴 아내, 그 아내의 아들.

 ‘그냥 미국에서 차린 살림으로 살지, 왜 한국에 와서 또 살림을 차리고 우리를 낳았어. 어짜피 엄마가 없어진 후 우릴 이렇게 버리고 갈 꺼 였다면, 나중에 다시 미국 가서 저 아줌마랑 살지, 그럼 우리 엄마는 아빠랑 결혼 도 안했을 꺼고 죽지도 않았잖아, 왜 한국 와서 살림을 차렸냐고.... ’

 마음이 심하게 고동쳤다. 얼굴은 가만히 있는데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소리 지르고 싶었다. 내 멋대로, 지금까지 살아온 그대로 악을 쓰고 싶었다.


  그렇게 집에 왔다. 물론 집은 엉망이었다. 1층에 빈방을 그 키 큰 남자가 쓸 것이고, 안방은 아줌마와 아빠가 있게 될 것이다. 나는 다신 1층 쇼파에 올 수 없을 것이고, 이층에 처박혀 있어야 할 것이다. 방을 치워야지 내가 그들 앞에서 숨을 공간이 생길 것이고, 냉장고는 좀 채워지겠지. 물론 이제 더 이상 실수로 산 파란 신 사과는 없을 것이다. 나는 마음대로 tv보기도 꺼려 질 것이고, 눈치를 받으며 살겠지. 그 것도 평생 아빠와 아줌마가 사라질 때 까지.

 일층에 내려갔다. 그 아줌마와 남자는 짐을 풀고 있었다. 아줌마는 우리 엄마와 전혀 닮지 않았다. 그 아줌마가 나에게 말을 걸려고 하는 것 같았지만 싫었다. 쇼파 위의 내 책과 사과를 가지고 막 올라가려던 참이었다. 아빠가 내 팔을 잡았다.

「시현아, 저기..」

「… 저기, .. 말시키지 마요. 나 아줌마가 누군지 알고, 저 남자도 누군지 알고, 당신도 누군지 알아요. 이제부터 밥은 2층에서 먹을께요. 방해 안 되도록 거의 내려오는 일은 없을 꺼예요. 아, 그리고 돌아와서 참 반갑네요. 안녕히 주무세요.」

아빠가 뒤에서 뭐라고 했지만, 듣기 싫었다. 얼굴에 있는 피가 싹 내려가는 느낌이었다.

  

「괜찮아.」

 울음이 마구 나왔다. 분통이 터졌다. 마음속의 그 특유의 공허함은 절대 사라지지 않았다. 오빠가 안아 주었다. 오빠 품에서 울음을 참을수록, 마음속의 빈 상자가 더 커졌다.

 조용히 방에 와서 책상위에 사과를 가지런히 놓았다. 그제서야 얼굴이 두 배가 되도록 울었다. 펑펑. 눈이 발개지고 목은 쉬어 갔다. 한동안 안 흘렸던 눈물이라 더 농도가 진하고 따가웠다.

 다 울어서 기진맥진 했을 때 책상위의 사과가 보였다. 신호등이 같이 유치하게 파랗고 빨간 사과. 담배, 그리고 그 아저씨가 생각났다. 가게에 가 볼까, 그 아저씬 내 맘을 이해할까. 생각해 보았지만, 관두었다. 아무도 만나기 싫었다.



  5 ˇ                



 물론 어제는 가게 문을 일찍 닫았다. 머리가 깨질 거 같다. 너무 많이 마시고 무리했다. 오늘은 가게에 나가기 싫었다. 어제 춤추던 아진이의 얼굴이 생각났다. 진짜 예뻤다.

 나는 그 찌든 술 자국을 없애기 위해 늦고도 늦은 아침 세수를 했다. 거울을 보았다. 까칠까칠한 수염이 눈에 들어 왔다. 젠장, 어제 밤만큼은 잊었던 모난 모서리가 내 마음을 콕 집고 들어 왔다. 그 아이 얼굴이 생각났다.  면도기를 들었다. 깨끗하게 수염을 깍았다.

 생각은 귀찮은데 몸은 스스로 아침을 챙기고 옷을 입고 680번을 타고, 그 가게로 향하고 있었다. 뭐, 이제 딱 이틀 남았는걸. 오늘 따라 아침이 깨끗하지 않았고 왠지 모를 서늘한 바람들만 난무했다. 수염을 깍으니 맨 얼굴에 그 서늘한 바람이 느껴졌다.

 막 이제 가게가 있는 골목길을 올라가고 있었다. 교복을 입은 남자아이가 자전거를 타고 내 앞을 지나갔다. 저번에 본 그 아이 오빠다. 오늘은 느낌이 좋다. 꼭 그 아이를 만날 것 같다.

 

 


6 ˚                                                                                                                            



 오늘 아침은 상쾌하지 못했다. 아침에 오빠가 학교가면서 깨우고 간 후 침대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았다. 나는 마치, 문이 열려있지만 나가지 못하는, 두려움에 떠는 새장에 갇힌 새 같았다. 그 새는 노래를 부르기도 힘들었고 끙끙 앓기만 했다. 자는 동안 내내 엄마 꿈을 꾸었다. 엄마를 본 것은 절대 악몽이 아니었으나, 꿈에서 깨어 난 후로 머리와 가슴이 뽀개질 것 같이 아팠다. 따뜻한 방이었고, 감기바이러스도 없었으며, 단지 스트레스의 결정체 덩어리를 삼킨 것과 같았다.

 시계를 보았다. 오전 11시다. 누군가가 내 방문을 두드렸다. “시현아” 아빠 목소리였다. 이불 속에 얼굴을 파묻었다. 듣기 싫어. 내 거부감을 무시하고 두 명의 인간이 내방에 들어 왔다. 그 두 인간들의 표면에는 자상하다 못해 느끼해서 토할 것 같은 미소가 니글니글하게 매달려있었다.

「나하고 엄마는 오늘 친할아버지께 인사를 드리러 가야해. 집에 혼자 있기 싫으면 같이 갈래?」

 먹은 것이 없는 빈속이 더 메스꺼웠다, 내 빈 공간, 공허함을 이들이 건드렸다. 그 옆에 아줌마는 내 침대에 앉아서 더 토할 것 같은 역겨운 미소를 보냈다.

「… 다 나가! 나가라고-! 」 나는 침대 위에 있던 책을 던졌다. 나 원래 이렇게 비뚤어진 이상한 애 아닌데, 왜 자꾸 날 이상하게 만들어, 가까이 오지 말란 말이야!

 아줌마는 내가 던진 책을 고스란히 내 침대 위에 다시 올려놓더니 내 손을 잡으려고 했다.

「 얼굴이 참 하얗다. 손가락은 왜 이렇게 가늘어. 미안하다, 아줌마가 와서. 미안해.」

「됐어, 가자.」 아빠가 말했다, 아줌마에게. 조금 화가 난 것 같았다. 지금 당신이 내게 화낼 처지나 돼? 그래, 빨리 꺼져 버려. 그들이 나간 뒤에 방문에 알람시계를 던졌다. 쾅-


 옷을 챙겨 입었다. 책상 위에 있는 미적지근해진 4개의 사과 중 파란 사과를 집었다. 사과를 대강 한입 물었다. 시었다. 잠바를 걸치고 1층으로 내려갔다. 물을 마시기 위해서였다. 낯선 남자. 새엄마의 아들이 쇼파에 앉아서 탁자에 노트북을 펼치고, 헤드폰은 낀 채로, 무슨 서류를 작성하고 있었다. 나는 냉장고를 열었다. 그 남자는 나를 쳐다보지 않았다. 나는 물을 컵에 따르지 않고 물통 째로 벌컥벌컥 마셨다. 그 남자가 나를 그제서야 힐끔 쳐다보더니 피식 웃었다. 아, 재수 없어. 물통을 그 면상에 던지고 싶었다. 하지만 물통까지 던져버리면 정신병자로 보일 것 같았다. 낑낑대며 내 뒤를 쫓아오려는 키키의 머리를 한번 쓱 쓰다듬어 주고는 서둘러서 집을 나왔다.

 예전처럼 밖에 나왔을 때의 그 상큼한 기분조차도 나의 토할 것 같았던 공허함을 채워주지 못했다. 어지러웠다. 시선을 무언가에 고정시킬 수 없었다. 길 건너 반대 골목으로 막 뛰어 갔다. 편의점이 보였다. 무작정 들어갔다.

 딸랑대는 문에 달린 종소리-  그리고,

「어서오세요.」

 주인은 신문을 크게 펼치고 나를 보지도 않고 형식적인 인사를 했다. 뛰어서 더 어지럽고 토할 것만 같았다. 무언가를 채워야 해, 진짜 속이 아픈 건지 내장이 꼬인 건지 알 수 없었다. 공허함이 내 속을 차고 찬 납덩어리로 만들고 있었다.


 

 나는 편의점의 모든 것을 내 품에 넣게 시작했다. 과자, 초코렛, 로션, 사무용품, 비스켓,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닥치는 대로 소매 안에, 잠바 안에 쑤셔 넣었다. 그래도 그 허전함과 공허함은 채워지지 않았다. 또 넣고 또 넣고…. 그리는 뚱뚱한 잠바가 된 채로 편의점을 뛰쳐나와 고개를 숙이고 바닥을 보며 숨을 쉬었다. 빈 가슴을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을 거 같았다. 그 납덩어리 상자를,

 

 

6 ˇ                                                                                                     


 아침을 가게에 있는 핫바로 때우고, 손님들을 맞았다. 담배가 3개피 없어지고 책이 반 권정도 읽혀졌을 때, 나는 답답한 가게에서 기지개를 피며 나왔다. 스트레칭을 했다. 오전과 점심시간 사이, 손님이 가장 없었다. 나는 오늘 아침에 버스 정류장에서 공짜로 받은 신문을 폈다.

 어디선가 저 멀리부터 빠르게 달려오는 듯한, 터덕터덕 발소리가 났다. 조용했던 길을 가르는 소리였다. 나는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고개를 슬쩍 들었다. 파란 잠바의 작은 아이가 내리막길을 마구 뛰어 내려가고 있었다. 고개를 다시 내리고 신문에 시선을 두었다. 파란 잠바! 그 아이다. 나는 급히 다시 고개를 들었다. 그 아이는 내리막길을 넘어질 듯이 뛰어서 내려가고 있었다. 나는 신문을 접고, 가게 문을 살짝 닫아 두고 그 애 뒤를 따라갔다. 어딜 가나 보고 싶었다. 그 아이는 위험한 내리막길을 마구 뛰어 내려가더니 혼자 큰 차도를 건너 저 반대편 편의점으로 들어갔다. 나는 횡단보도 신호를 기다려서 겨우 그 아이가 들어간 편의점 앞에 도착했다. 유리 문안으로 그 아이가 보였다. 익숙한 모습. 그 아이의 파란 작은 잠바에 막 물건들을 쑤셔 놓고 있었다. 주인은 좀 둔한 것 같았다. 나는 그 자리에서 멍하니 그 아이를 보았다. 물론 그 아이는 계산을 하지 않고 나왔다. 숨이 가빠보였다. 그 아이는 바닥을 쳐다보고 있었다.

「야, 이 도둑아.」

 나는 담배 하나를 꺼내어 불을 붙였다. 타는 공기가 폐 속을 휘감고 다시 목구멍으로 나왔다. 아이를 쳐다보았다. 갑자기 아이가 픽 주저앉았다.

「야, 야 왜 그래? 괜찮아?」

 나는 앉아서 그 애의 눈을 마주치려고 했다. 갑자기 아이가 소리 내어 울기 시작했다. 나는 담배를 입에 물고 그 아이의 빵빵한 잠바 자크를 열었다.

 와르르르-

 작은 품안에서 많은 물건들이 쏟아져 나왔다. 사연이 있겠지, 마음속으로 중얼거리면서 나는 그것들을 주섬주섬 주워가지고는 다시 편의점에 갖다 주었다. 어리둥절 하는 주인에게 죄송하다는 인사를 하고 길바닥에 주저 앉아 남들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울고만 있는 그 아이에게 갔다. 그 아이가 다 울 때까지 기다려 주었다. 몇 분이 지나자 그 애의 울음소리가 잦아든다. 나는 그 아이를 부축해 일으켜 세웠다.

 「도둑- 이 멍청한 도둑. 그거 다 니가 먹을라고 훔쳤어? 고거 참, 얄밉고 못된 버릇이다? 먹고 싶은 거 있음 우리 가게 오지 왜 저 편의점 까지 갔어…. 아저씬 너 오면 먹을 꺼 줄라고 기다리는데! 자, 가자. 칠칠맞지 못하게 왜 울어. 자, 가자.

 

7 ˚                                                             


 누군가가 나를 보아줘서, 내게 말을 해 줘서 다행이었다. 본능적으로 ‘엄마, 엄마.’하면서 울었다. ‘엄마..’

 아저씨는 울고 있는 나를 처음부터 달래지 않고 내 품안에 있던 물건들을 다시 편의점 아저씨에게 돌려주었다. 내 납 상자를 채워주지 못한 쓸모없는 쓰레기에 불과한 것들이었다. 어린 애 처럼 악을 쓰고 울지도 않았고, 소심하게 울지도 않았다. 그냥 속 시원하게 울 수 있었다. 아저씨라도 나를 봐주어서. 훔쳐서 채우고, 채우려 했던 공허함이 문이 열리며 따스한 바람을 조금 들여보내 주었다.

 아저씨가 나보고 도둑이라고 했다. 그래, 난 도둑이야. 아저씨가 울다 지친 나를 일으켜 세웠다. 아저씨는 고맙게도 이유를 묻지 않았다. 아님, 내 마음을 다 읽었는지도 모르겠다고 나는 생각했다.


 「 뭐 좀 먹을래? 마실 거라도 줄까?」

 아저씨는 가게 의자에 나를 앉혀 놓고 말했다. 나는 멍하니 밖을 보았다. 밖의 날씨는 꾸리꾸리해서 비가 올 것 같았다. 이 추운 겨울에 무슨 비야, 차라리 눈이 왔음 좋겠다. 하지만 이 하늘 빛에 눈은 어울리지 않았다. 아저씨가 내게 따뜻한 음료수를 내밀었다. 병에 들은 유자차였다.

「고마워, 아저씨.」

 아저씨가 내 머리를 콩 박았다.

「어따 반말이야! ‘고마워요, 아저씨.’라고 해야지. 이제 다 울었냐? 」

아저씨는 홀짝 자신의 손에 있던 유자차를 마셨다. 나도 유자차를 마셨다. 몸이 좀 따뜻해 지는 것 같았다. 오랜만에 느끼는 인간의 따뜻함.

 「 훔치고 잘못한건 넌데, 왜 그렇게 서럽게 울었어?」

 「그냥…. 가슴이 비었는데 아무도 채워주지 않더라고. 매일 들어버린 습관처럼 훔쳐서라도 채우려고 했지. 이제 그것도 소용 없나봐. 차라리 답답하기라도 하면 모를까, 이 공허함은 끈질기게 없어지질 않아. 」

 나는 남은 유자차를 마저 마셨다. 아저씨가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보았다. 내 눈을 쳐다보았다. 나는 유자차를 삼키다 말고 아저씨를 보았다.

 풉- 사래가 들렸다. 아저씨의 표정이 웃겼다. 아저씨도 내가 웃긴지 웃었다.


「그럴 땐 니가 좋아하는 사람을 찾거나 소리를 지르는 거야. 아님 욕을 지껄여 버려. 난 막 슬플 때 욕이 나오더라. 엄마가 죽었을 땐, 정말 울지도 않고 욕만 했어. 뭐 좋은 습관은 아니지만.」 아저씨는 뒷머리를 긁적였다. 아저씨도 엄마가 없구나.

「그럼 아저씨 찾아오면 아저씨 맨날 나 받아줄 수 있어?」

「하하, 니가 날 찾을 날이 오늘 말고 또 있을까? 도둑질 하고 질질 짜면서 오면 가게 문 닫아 버릴 꺼야. 아무리 허전하고 채울 수 없어도 도벽은 안 좋아. 」

 

 

8 ; last                                                                                                                       

 

 

 곧 저녁이 되었다. 차가운 겨울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고, 나는 오늘 하루를 아저씨의 가게에서 보냈다. 정말 내가 가게에 있는 동안 내내 비가 왔다. 아저씨와 나는 마루에 나왔다. 나는 손바닥을 피고 빗물을 맞았다. ‘아, 차가워.’

 

「아저씨, 담배 왜 펴요?」

 나는 예전부터 그게 궁금했다. 아저씨는 나를 만날 때에 꼭 담배를 물고 있었고, 툭하면 담배를 물었다. 아저씨가 담배 연기를 하얗게 뿜는 순간, 내 얼굴도 하얗게 가려졌다.

「... 너같이 순수한 영혼을 내 눈 앞에서 가릴 수 있으니깐.”」

「 내가 보기 싫어요?」

「 단지 난 너보다 늙은 인간이라 그래.」

 후욱- 그리고 시커먼 담배냄새. 공기 중으로 하얀 연기가 서슬서슬 사라진다. 나는 그것을 한참이나 쳐다보았다.

「난 아저씨가 뭐래도 그 하얀 연기가 좋아요.」

  후욱- 내 입김으로 담배 연기를 멀리 보내버린다.


「나 갈래요.」

「 너는 최소한 인간이 되지 마. 그거 무지 피곤해.」

 아저씨가 필터만 남은 담배를 땅에 떨어뜨리고 발로 밟았다

인간이 되지 말라고? 그럼 당신은 대체 뭐야, 나는 총총 걸음으로 비를 맞으며 걷기 시작했다. 차가웠지만 비의 느낌이 좋았다. 내 몸에서 김이 올라왔다.

「야! 어디가!」

 난 또 아저씨의 말을 무시하고 천천히 길을 걸었다. 왠지 아저씨가 날 다신 안 볼 것이란 생각, 아니 볼 수 없을 것이란 생각이 문득 들었다. 편의점으로 바뀌면..

 볼 수 없을지도 몰라. 볼 수 있을까? 다시 뒤돌아볼까.

아저씨는 삐딱하게 서서 벌써 다음 담배를 물고, 웃고 있었다. 나도 웃었다.


「야! 근데 너 이름이 뭐냐?」

아저씨가 가게 마루에서 소리쳤다.

「윤․시․현 이요! 」

나도 가게를 향해 소리쳤다.


  나는 추운 줄도 모르고 비를 맞고 있었고, 아저씨는 가게 앞에서 웃어 주었다.

「 나는 더 이상 이 동네에 오지 않아. 잘 가. 잘 지내. 」


‘공허감’, 나의 납 상자가 빨간 사과와 파란 사과가 뒤섞여 예쁘게 채워지고 있었다.



 


차는 이미 차가워졌고,

난 침대에서 일어나 창가에서,

왜 이렇게 날씨가 흐려서,

아무것도 볼 수 없는지 생각해.

 더 날씨가 나빠지더라도,

벽에 걸려있는 당신의 사진을 보며,

 그날이 그렇게 지나가는 게

그렇게 나쁘진 않을꺼라 생각해.

 

 

 

 

 

 

 

 








 

초록구두
초록구두

추천 콘텐츠

댓글 남기기

로그인후 댓글을 남기실 수있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을 남겨 주세요!

댓글남기기 작성 가이드

  • 타인에게 불쾌감을 주는 욕설, 비방 등은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 주제와 관련 없거나 부적절한 홍보 내용은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 기타 운영 정책에 어긋나는 내용이 포함될 경우, 사전 고지 없이 노출 제한될 수 있습니다.
0 /1500
  • 익명

    고마워요^^ 처음 써본 소설인데 끝까지 읽어주셔서 // 에미넴 stan 노래가사가 마지막에 잘 어울릴꺼 같았어요

    • 2008-02-03 23:41:56
    익명
    0 /1500
    • 0 /1500
  • 익명

    마지막, 에미넴stan 이네요. 잘 읽었습니다.

    • 2008-02-03 00:07:06
    익명
    0 /1500
    • 0 /1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