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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구두

  • 작성자 j.s
  • 작성일 2008-11-03
  • 조회수 303

 

 

 

 

우리 엄마는 유별났다. 유별나다는 표현이 맞는 건지는 확신이 안 서지만 아무튼 그런 식으로 말해 둘 수 있을 게다. 엄마는 다른 고만 고만한 계집애들을 딸로 둔 여자들과는 조금 특별한 말을 하고 생각을 했는데 나로선 참 엄마가 발랄하게 보였다. 세상에 발랄한 아줌마가 어디 우리 엄마 뿐이겠느냐만은. 나는 얼굴 생김새나 몸집을 아빠를 닮아서 외형으로는 엄마의 흔적을 아주 찾아 볼 수가 없는데 속 모양새 만은 어느 정도 엄마를 닮은 듯 하다. 그 중 하나로 들 수 있는 것이 나쁘게 말하자면 잡념이 많은 것이고 좋게 말하면 상상력이 풍부한 것이다. 나는 할 일이 없으면 집에서든 밖에서든 혼자서 시간 죽이기를 쉽게 해냈다. 집에서 조그만 창으로 빠끔히 보이는 사람들의 발과 그 발소리를 듣다보면 나는 전혀 모를 사람들의 인생을 화려하게 그려보았고 밤에 잠자리에 누웠을 때 가느다란 도둑 고양이 울음이 들리면 어느새 하얗고 빨갛고 하는 귀여운 고양이들이 내 방 천장 위에서 사뿐히 날아다니곤 했다. 많은 사람들이 길을 걸으며 이어폰을 귀에 꼽고 다니지만, 나는 따로 MP3를 필요하다고 생각해본적이 없었다.

옆자리에 앉은 여성의 이어폰에서 새어나오는 노래 기계음을 한쪽 귀로 고이 받아내다, 내릴 곳에 다다르자 미련없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버스가 한번 덜컹거리자 몸이 물 흐르듯 쉽게 출렁거렸다. 늦은 밤 아르바이트가 끝나고 피곤에 찌든 몸은 여름날 개의 혀마냥 추욱 늘어났다. 몇달 동안 파삭 늙어버린 겐지 버스 안을 가득 매운 여고생들처럼 요란스레 떠들고 놀 기력이 남아있지 않았다. 아마 이런 내 모습을 본다면 엄마는 가볍게 내 등짝을 파삭 내리치며 '나보다 심장도 더 빨딱 거리는게 어디서 허파에 바람빠지는 소리야?' 라고 소리 칠 것이 뻔하다. 종종 엄마에게 그런 소리를 듣게 되면 나는 그저 웃고 어깨를 쳐들었지만 오늘 만큼은 기운 없이 늘어진 어깨를 일으킬 여력이 없었다. 버스에서 내려서, 미련없이 등을 내보이고 떠나가는 버스를 보며 이제 걸어 올라갈 골목길 생각에 한숨을 폭폭 내 쉬었다. 크고 작은 주택들이 다다닥 붙어 있는 주택가 중에서도 우리 집은 제일 깊숙한 안쪽 꼭대기에 위치했다. 그 꼭대기로 가려면 경사진 골목길을 열내서 걸어간 뒤에도 긴 계단을 한참 올라야 하는데 그럴 땐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고 멍하니 걸어올라 가는 편이 차라리 나았다. 얼마 전까지는 오르고 또 오르는 이 계단이 몇갠지 무척이나 궁금해 오를 때마다 세어보곤 했는데 퍽하면 틀리기 일쑤여서 그냥 포기했다. 꼭 계단을 셀 때 마다 하나 둘 하며 세는게 문제였다. 그렇게 세다보면 좀 갯수가 많아 졌을 때 번번히 헷갈려서 잘못 세고 마는 것이다. 그럴 때 마다 꼭 다음 번엔 일 이 삼 사... 하고 세야겠다 마음먹었으나 다음 날에는 순전히 그걸 까먹고 수 세는걸 틀려 먹길 반복했다.

"피곤해... "

매번 세지 못하는 계단과의 싸움에 지친 나는 집에 오자마자 내 방 침대에 쓰러졌다. 씻고 자라는 엄마의 외침이 휘적 휘적 돌아다니다 공기 중에 사라져 버린다. 시장이 반찬이란 말처럼 피곤이 수면제다.

 

 

 

 

수면제의 약발은 아주 효과만점이었다. 엄마가 동생시켜 날 깨우기 전까지 나는 단 한번의 뒤척임도 없이 아주 시체마냥 죽은 듯이 잤다. 아침까지 굶어 가며 자고 일어나니 정오를 훨씬 넘긴 점심 때 였다. 일어나라고 흔들어 깨우는 동생에 벌떡 일어난 나는 아르바이트 생각에 머리 털이 쭈뼛 서는 듯 하다 주말임을 떠올리고 폭포처럼 쏟아지는 안도감에 다시 누워 버렸다.

"엄마가 밥 먹으래." 

동생은 아침 잠이 많다. 그래서 항상 내가 깨우곤 했는데, 동생이 날 먼저 깨운 모습이 영 생소했다.

"어휴, 저 잠퉁이."

머리를 긁적이며 식탁 앞에 앉은 나에게 엄마가 시덥잖은 장난을 걸었다.

"그럼 어떡해 피곤해 죽겠는데."

내 앞에 동생이 마주 앉고 동생 옆에 엄마가 나란히 자리를 잡아 열심히 수저를 놀렸다. 생각해보니 식구 셋이서 다 같이 식사를 하는게 참 오랜만인듯했다. 동생이 깨어있는 걸 보는 것도 그랬다. 고등학생인 동생이나 아르바이트에 파묻혀 이리 저리 뛰다니는 나나 얼굴 마주하기가 그렇게 힘들더라.

"야, 너 살 좀 찐 것 같다?"

그래서 그런가? 여고생인데 한참 살이니, 외모니 민감할 때라서 그런지 동생을 쓱쓱 훑어본 내가 한 마디 하자 은수는 움찔 놀라는 상이다. 배도 나온 것 같기도 하고.. 하는 내 말에 은수는 한숨을 쉬며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이 가시내가. 말라 비틀어졌던 얘가 살 쪄서 보기 얼마나 좋은데 그거 가지고 타박이니? 은수야, 너 어서 먹던거 먹어라. 자, 숟가락 들고."

"엄마."

"응."

"나 임신했어."

툭. 은수에게 숟가락을 쥐어주던 엄마의 손에서 숟가락이 쑥 빠져나가고 엄마의 입이 쩍 벌어졌다. 엄마 뿐만이 아니라 내 입도 하마 못지 않게 쩍 벌어져서 닫힐 줄을 몰랐다.

"학교는 자퇴할거야."

 

은수가, 내 하나뿐인 여동생 은수가 미친게 틀림없다.

 

 

*

 

 

 

"미쳤구나, 미쳤어, 너 정말 미친거지!"

 

겨울 바람이 무척 매서웠다. 밤이라 기온은 더욱 더 뚝 뚝 떨어지고 바람에 은수의 머리카락이 하늘거리며 흩날렸다. 은수는 하염없이 밤하늘만 뚫어져라 쳐다볼 뿐 아무런 말도 없었다. 내가 옥상에 따라 올라왔을 때도, 무턱대고 미친거냐고 소리질렀을 때도 은수는 그저 밤하늘만 올려다볼뿐이었다. 이내 은수는 역시 말 한마디 내게 남기지 않고 옥상에서 내려가버렸다. 혼자 쓸쓸이 남겨진 나는 멍하니 서있다가 아까 은수가 그랬던 것 처럼 난간에 기대어 밤하늘을 올려다봤다. 은수에게 버럭 소리지르기 전에 먼저 은수를 이해해 주고 다정히 말을 걸었어야 했던 걸까. 나는 언제 이렇게 은수와 사이가 멀어진걸까? 도대체 언제부터지? 내가 돈 버는데 급급해 늦게 들어오던 때부터? 아니면 은수가 고등학생이 됬던 때부터? 내 옷자락을 잡고 귀찮게 졸졸 따라 다니던 어린 은수가 눈깜짝할 사이에 사라져버렸다. 대신 옆에 남아있는건 말이 줄어들어 한없이 무뚝뚝해져버린  몸집 큰 은수다.

 

반짝 반짝 작은 별

 

어느새 내 입에서 흔한 동요가 흘러나왔다. 오랜만에 밤 하늘이 깨끗하고 맑았다. 반짝 거리는 밤하늘이 머리 바로 위에 있는 듯 가깝게 닿을락 말락 넘실거렸다. 문득 이사오기 전에 살던 집이 떠올랐다. 우리 집, 우리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우리의 집이 생기기 전 우리 가족은 반지하에서 살다가 옥탑방으로 옮겨 살았다. 옥탑방에서 살자고 말하는 엄마는 빙글 빙글 웃고 있었다.

'옥탑방?'
'응. 옥탑방. 거기는 하늘도 가깝고 햇빛도 마음대로 쬘 수 있으니까 지금 사는 데보다 훨씬 좋지. 안그래?'

'아. 그러겠다. 아! 우리 그럼 이제 물에 안 빠져 죽어도 돼.'

'물에 빠져 죽는다니?'

'비 많이 오면 반지하는 물 들어오잖아.'

 

반지하에 살던 당시에 나는 한참  TV에서 해주던 안전프로그램에서 홍수가 나 물이 차 오르고 반지하에서 빠져 나가지 못하던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꽤나 심각하게 공포에 떨고 있었다. 어릴 때 나는 단순히 이제 죽지 않는다 하며 손뼉을 짝짝 치고 좋아했던 것이다. 엄마는 하늘에 더 가까워 져서 좋다고, 별님이랑 더 친해질수 있어서 좋다고 소녀처럼 웃었다. 그 때 엄마는 나보다 더 어린아이 다웠던 것 같다. 엄마가 열심히 돈을 모으고 그 돈으로 우리 집을 가지게 되었을 때, 나는  집 옥상에 올라오고 한동안 전에 살던 옥탑방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우리 집 옥상에서는 옥탑방에 살던 그 때처럼 동네 모습이 한눈에 다 들어왔다.

 

 

*

 

 

"나 오늘 알바 안나가."

"왜?"

"사장님이 개인 사정으로 가게 하루 쉰데."

엄마 뒤를 쫄래 쫄래 따라나선 나는 엄마 가게 문을 직접 열고 들어갔다. 오늘 하루 도와줄게. 하고 팔을 걷어붙이니 엄마는 아무말 없이 구석에 있는 분홍 앞치마를 휙 던져 내게 건낸다. 엄마는 꽤 오래 전부터 김밥을 말아서 팔아왔다. 작은 가게 안에서 엄마는 하루에도 수백번씩 김밥에 참기름을 발랐다. 옆에서 물끄러미 엄마가 김밥을 싸는 모습을 보고있자면 나는 도마위에 올려진 몇개의 김밥들이 나와 은수의 모습으로 겹쳐보였다. 엄마는 매일 매일 그렇게 몇년동안 나와 은수에게 참기름을 바르고 바르고 또 발라왔다. 덕분에 나는 이렇게 사람냄새 폴폴 풍기며 살고 있는 것일 테다. 이상하게도 나와 은수의 몸에 참기름이 발라지면 발라질수록 우리 자매 몸에는 사람냄새가 풍겨지는 반면 엄마 몸에는 끈적지게 참기름 냄새가 달라붙어 떨어질 새가 없었다.

대학로 끄트머리에 위치한 가게에는 주로 대학생들이 허기진 배를 채우려 찾아왔다. 얌전히 김밥을 써는 내게 가게 문 너머의 대학생들은 마치 다른 나라 사람들 처럼 그 모양으로 거리를 누비며 다니고 있었다.

"부럽니?"

옆에서 조용히 엄마가 물었다. 부럽니? 그 말은 엄마만이 아니라 나 자신도 내게 수 없이 물어온 말이었다. 아르바이트를 하던 카페에서도 생기넘치는 대학생들은 많았고 그만큼 내가 물어보는 질문도 많아졌다. 부럽니? 부러워? 글쎄.. 그런거 같기도 하고. .. 아닌거 같기도 하고..

내가 고등학생이던 시절. 그 때 내 성적은 잘하지도 못하지도 않는 꼭 중간이었다. 유달리 튈것도 없는 성적이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자면 난 고등학교에 들어가서 얼마되지 않아 공부하는걸 포기하다 싶이했다. 의욕넘쳐서 한 공부도, 아예 손을 놔버린 공부도 아니었다. 억울하게도 우리반 1등은 고액의 과외를 받는다 하는 소문을 끊임 없이 달고 다녔다. 돈 많고 공부 잘 하는 친구를 보며 나는 알수 없는 패배감과 무기력함을 느꼈다. 난 해도 안될거야 하는.. 개나 소나 대학간다는 지금 나는 대학에 못 들어갈 것도 없었지만 비싼 등록금에 자연히 한발짝 물러섰다.

'학자금 대출 이라도 받을까?'

엄마가 내게 먼저 입을 뗐을 때 나는 대출이라는 말에 치를 떨었다. 그 단어에 혐오감을 느낄 것은 나보다 엄마가 몇배고 더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말을 입 밖에 낸건 엄마 스스로의 방지책이었다. 잔인하게도 엄마는 내가 대학을 꿈도 꾸지 못하게 먼저 자신에게 상처내며 대출이라는 말까지 끄집어냈던 셈이다. 그 때 나는 누구보다 열심히 공부 하지 않았던 것에 고교시절 한번도 갖지 않았던 후회라는 것을 처음으로 가져봤다. 내가 만약 특출나게 공부를 잘했다면 엄마는 내가 대학가는 것을 반대 하지 않았으리라 하면서. 정말 고등학생 때는 꼭 공부가 아니더라도 세상 살아가는데 별 지장이 없을 줄 알았다.

"미안하다, 진수야."

엄마의 목소리가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왁자지껄한 가게 안에서 또렷히 들려오는 엄마의 목소리에 나는 불현듯 칼질을 멈추고 엄마를 향해 고개를 들어 올렸다. 내 옆에서 묵묵히 밥을 퍼 담는 엄마의 옆모습은 오늘따라 유난히 쓸쓸해 보였다. 평소에 어린애 마냥 방긋 방긋 웃고다니며 우스운 말을 하던 엄마는 순식간에 사라지고 어머니라 불러져야 할 것 같은 여자가 내 바로 옆에 서 있었다.

"어제, 은수 데리고 병원갔었다."

"...."

"내가 은수 보고 애를 지우라고 했어."

"...."

"은수는.. 은수는 끝까지 싫다고 하더라."

 

그렇구나. 은수는 기어코 애를 낳으려고 하는 구나. 기지배가, 지가 뭘 안다고 애를 키우겠데. 겁대가리 하나 없는 년. 그나저나 우리 집에 식구가 하나 늘어나겠네. 입이 하나 더 늘어나면, 그렇게 되면 우리 집은 어떻게 변하게 될까. 더 밝아질까? 아니면 어두워질까?

"엄마, 나 아르바이트 그만 둘까봐."

"갑자기 왜?"

"엄마 가게에 확 눌러 살아버리게. 그렇지 않아도 여기 일손 부족하다며."

그말에 엄마가 얼씨구 하며 피식 웃었던것 같기도 하다. 그 다음은 밀려들어오는 손님에 정신 없어서 어떻게 하루를 보냈는지도 가물가물거린다.

 

 

 

 

"너 공부해."

집에 돌아와서 뒹굴 뒹굴거리며 tv보고 있는 은수에게 다짜고짜 말했다.

"학교를 때려치든 말든 검정고시를 보든 어쩌든 하여간 공부하라고."

뭔소리래. 은수 표정이 딱 그랬다. 

"너도 내 꼴 나고 싶냐. 요즘 중졸 여자를 어떤 남자가 데리고 사냐? 게다가 애까지 딸리면. 에휴 진짜 너 시집은 가겠니? 아니 그 전에 돈은 어떻게 벌어먹고 살건데? 직장은 어떻게 잡고?"

"그러는 언니는."

"난 엄마 가게에 빌붙어 먹고 살다가 처녀귀신으로 평생 썩어날거야."

내 말에 은수가 크흐흐 하며 웃었다. 나는 나름 심각한데 은수는 영 아니였다. 그래도 오랜만에 보는 은수의 웃는 얼굴에 기분이 조금 좋아져 한결 풀어진 마음으로 말을 이었다.

"나도 88만원 세대고, 너도 88만원 세대 잖아. 한번 학창 시절 실패하고 느껴보는 건데, 이민가서 살지 않는 이상 이 나라에서 제일 안전하고 편한 길이 공부밖에 더 없더라."

나는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살짝 진지해진 내 표정에 은수도 가만히 내말을 듣고만 있었다.

"그러니까 공부까지 포기하진마."

 

 

 

 

*

 

 

아 세상이 빙글 빙글 돈다 돌아.  술에 적잖이 취했더니 입가에 배실 배실 웃음이 난무한다. 오늘, 아르바이트를 그만 두었다. 평소 친하게 지낸 같이 알바하던 아는 동생이 술을 사겠다며 나서서 좋다구나 하며 따라갔었다. 술 기운 탓인지 이상하게 발걸음이 가벼웠다. 평소 힘들어서 끙끙 대던 경사길도 날아가듯이 걸어 올라가고 눈앞에 펼쳐진 계단길이 멋드러진 배우들 걸어다니는 레드카펫 마냥 화사해보였다. 평소에 나는 세어보길 포기했던 이 계단길을 돈많고 잘생긴 왕자 만난 신데렐라가 무도회장을 빠져나가며 걸어내려가던 그 왕궁계단이라고 바꾸어 상상하곤했었다. 실없는 공상속에서 계단 한 구석에서는 주인 잃은 유리 구두가 반짝거리고 나는 그 구두를 집어들어 신어보는 신데렐라가 되곤 했었다. 그 망상이 몇번이고 깨어졌었는지 모른다. 집에 돌아오면 바보같은 생각이라고 얼굴이 붉어지곤 했는데 지금 또다시 내 눈앞에 거대한 궁궐의 계단이 펼쳐진다. 나는 말끔한 유리구두를 신고는 나풀 나풀 집으로 걸어 올라갔다. 이상하게도 오늘은 집에 돌아왔는데도 부끄러운 마음이 들지 않았다. 나는 여전히 기분이 좋았고 발을 감싸며 빛나는 유리구두는 한없이 반짝거렸다. 거실에서는 동생이 평소처럼 tv앞에 자리 잡고 있고 엄마는 하늘 거리는 천들을 이리 저리 들었다 놨다하며 춤을 추고 있다.

"엄마! 언니 술 퍼마셨데요!"

동생이 꽥 지르는 소리가 tv 속 개그맨들의 요란한 웃음소리에 쉽게 파묻혀버렸다. 웬 거냐는 내 질문에 엄마는 발랄하게 답했다.

"아랫 집 경환이 엄마랑 같이 동사무소에서 벨리댄스 배우기로 했다."

세상에, 엄마가 신데렐라 딸 따라서 춤바람이 났구나. 엄마는 기분좋게 노래를 흥얼거리고 요란한 tv 소리와 함께 동생의 웃음소리가 따라 섞여 온 집안을 들썩거리게했다. 아, 기분 좋다. 이름 모를 요상한 노래 소리에 내 입꼬리가 올라간다. 내일 정신이 들면 내가 신고 있는 유리구두를 엄마에게 신겨드려야지.

 

 

 

 

 

 

j.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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