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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아- 변하지 않는 진실

  • 작성자 Ariel
  • 작성일 2009-07-07
  • 조회수 422

 

이데아

-변할 수 없는 진실-


11월 초. 가을이 지나고 서서히 겨울이 오는 계절이었다. 지는 낙엽만큼이나 알 수 없었던....... 그 아이의 소식을 접했어도, 난 결코 흔들리는 기색 하나 없었다. 그칠 줄 모르고 울려대는 핸드폰 벨소리, 수화기 너머로 떨려오는 목소리들. 절대로 난 무너지거나 가슴 아파 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웃음이 나왔다.

 아침부터 까만 잿빛 구름이 몰려오더니 어느 샌가 빗방울 하나하나가 세차게 내린다. 마치 눈물하나 흘리지 않았던 그녀가 우는 것처럼. 그 동안 쌓아두었던 응어리를, 상처를 모두 풀어놓은 듯 한없이 비가 내린다.

"안녕"

학교에 도착한 직후. 여느 때와 다름없이 힘없는 나의 인사는 소란스런 소음 소리에 먹혀버렸다. 아무런 침울함도 애도의 분위기도 바란 건 아니지만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그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마냥 웃고 떠들며 좋다는 반 애들의 소리에 화가 끓어 온다. 그러고도 너희들이 친구들이라고 할 수 있니?

그렇다. 창문유리에 무겁게 묻어나는 빗방울이 알려주는 것처럼. 그리고 지금 이제 서야 소리 없이 흐르는 내 눈물이 말해주려는 것처럼 너무나도 가슴 아픈 일을 내가 알고 있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친구이자 같은 반 동급생. 그런 나의 친구가 어젯밤 내 곁을 떠났다고 한다. 그것도 스스로. 낙천적이고 넉살 좋은 그 애가 자살했다는 자체가 모순이지만 더더욱 어이가 없는 것은 그녀가 남긴 짤막한 유서였다.


'In the end, I want to be happy'


행복해지고 싶었다고? 그래, 떠나버린 지금. 충분히 행복하니? 과연 그럴까? 내게는 단 한마디도 남기지 않은 채 갑자기 이 세상을 떠나버린 너는! 치밀어오는 배신감에 한번 터졌던 눈물은 그칠 줄 몰랐다.

"쟤 왜 우냐?" 누군지 모르겠지만 아마 나를 보고 말하는 듯 했다.

"바보, 너 몰랐냐? 윤한나. 걔 어제 자살했다잖아." 한참의 침묵이 흐르더니 곧 대화가 이어졌다.

"아~ 그 일 때문에 우는 거야? 그러고 보니 은정인 한나랑 많이 친했지."

"무슨 자살이 유행도 아니고. 어쨌거나 나랑 친한 애도 아니었는데. 뭐."

"그건, 그렇다. 솔직히. 나랑 그렇게 친했던 애도 아니었는데 별로 상관은 없지만 불쌍하긴 해."

난 내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잔인하게 내 가슴을 휘어파는 이기적인 그들의 발언. 자신과 상관없어 괜찮다는 무심한 그 한마디에 순간 현기증으로 어지러웠다.


 문득 고개를 들어보니 벌써 나는 내 방에 쳐 박혀 있었다. 시간이 어떻게 흐르는   지 모르겠다. 조심스레 기억을 떠올려 보니 학교 수업시간에는 그저 멍한 얼굴로. 창문이나 쳐다보며 초점을 흐린채 멍하니 앉아 있던 것으로로 기억한다. 그러다 어쩌다가 정신을 차렸을 때는 억지로 눈물을 참으시는 담임선생님 얼굴뿐. 도저히 감이 잡히지 않는다. 사람들은 '성적'으로 인한 스트레스라고들 하지만 내가 아는 한나는 적어도 그까지 성적 때문에 손목을 긋는 애는 아니기 때문이다.

윤한나. 나랑 같은 16살 중학교 3학년 같은 반 친구. 중학교 때 처음 만나 지금까지 아니 어제까지만 해도 세상에 둘도 없는 친구였다. 보통 애들같이 나랑 레슬링(?) 하는 것을 가장 좋아하고 항상 귀찮고 배고프고 졸려워 하며, 내 연애 상담 같은 비밀 정도는 충분히 공유해 줄 수 있는 사랑스러운 친구였다. 그런데 그런 그녀가 자살을 하다니! 필시 다른 사연이 있었을 것이다. 그 고통스러운 사연이 그녀를 벼랑 끝으로 내몰았을 것이게 이런 결과가 있었다고 굳게 믿는다.


 현재 새벽 2시. 부모님 모두가 주무신 가운데 깜깜한 내 방 책상에 앉아있다. 이 상황에서 어떻게 내가 곤히 잠을 잘 수 있을까? 어둠이 무겁게 짓누르고 그나마 켜두었던 스탠드 불빛을 잠시 뒤로 한 채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활짝 열린 창문으로 향하여 기대었다.

오전에 비가 많이 내렸던 탓인지 별 없는 밤하늘은 무척이나 맑았다. 그리고 시원하게 내 얼굴을 감싸는 겨울바람과 달. 내 머리 위에 별 하나 없이 홀로 떠 있는 둥근 보름달은 세상을 집어삼킬 듯이 빛났지만 차마 내 방까지는 그 달빛이 머무르지 못했다.

'똑 똑 똑'

어머니께서 아직 안 주무셨나. 누군가 굳게 닫혀있던 내 방문을 두드렸다.

"문 열어 강은정. 나야."

"아 네. 네"

역시 나는 나답게 아무 생각 없이 방문을 열었다. 그러나 거기에 서 있는 사람은 결코 어머니나 아버지가 아니었다. 드르렁 코골이 소리를 뒤로 한 채 내 눈에 보이는 것은, 아무리 눈을 비벼 봐도 내 앞에 서 있는 사람은 한나였다.

"나 처음 봐? 뭘 그렇게 멍청하게 서있어?"

"너....... 너! 윤한나."

 지금 내 방에 이 시각에, 어떻게, 왜 들어 왔나가 문제가 아니다. 한나가. 한나가 내 방에 있다니. 난 사정 없이 내 두눈을 비벼 보았지만 결코 환각은 아니었다. 그럼 그렇지. 역시 그 소문은 거짓말이었나 보다. 그녀는 평소에 내 방에 와서 했던 것처럼 전혀 아무런 거리낌 없이 침대에 누워 뒹굴었다. 그것도 내가 생일 날 사주었던 하얀색 스마일 티셔츠를 입은 채.

"한나야! 지금 이 시간에 웬 일이야? 그리고, 너 학교는 왜 무단결석이고! 아니 글쎄 어떤 자식이 네가....... 어쨌거나 요즘 내신 깎기면 얼마나 안 좋은 줄 네가 가장 잘 알잖아?"

한나는 한참 내 눈을 쳐다본 채 아무런 말이 없었었다. 끝내 피식하고 웃음을 뱉어놓고 말했다.

"이제는 상관없겠지. 죽었으니까."

 그 순간 딱딱한 무엇으로 뒤통수를 새게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눈이 휘둥그레 해진 나는 조심스럽게 침대 위에 앉아있는 그녀 옆에 앉았다. 그리고 찬찬히 그녀의 얼굴을 훑어보았다. 창백해 보이는 얼굴. 그리고 어디인가 슬퍼 보이는 듯 위태로운 얼굴. 난 그저 스탠드 불빛 때문이라고 믿고 싶었다.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그럼 내 눈앞의 네가 귀신이라도 된다는 줄 아는 거야? 우리는 죽어도 같이 죽어야 되. 이런 설정? 아무리 그렇지. 너보다 힘든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죽었다는 소리를 입에 담아? 나도 지금 죽고 싶어도 못 죽는 거야!" 난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그녀를 향해 소리쳤다.

"그래. 맞아. 나보다 더 힘들고 더 지친 사람들은 많겠지." 그녀의 뜻밖의 대답에 나는 말문이 턱 막혔다. 그리곤 한나는 마주 편에 걸려있는 조그마한 졸업사진을 바라보며 내게 물었다.

"저 사진에 있는 사람들은 정말 행복한 걸까?"

"그게 무슨 말이야?"

"죽지 못해서 살아간다라....... 그거야 말로 살아있는 자들의 뻔한 거짓말. 못하는 것이 아니라 안하는 거겠지. 한번쯤 생각해 보았니?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들의 애통한 심정을. 난 결코 혼자 일 때는 감정을 숨기지 않아. 하지만 누군가 내 곁에 있을 때는 예의상 미소는 지어주지. 그래서 언제부터일까? 정말 기뻐하려도 진심으로 웃으려 노력해 보아도 가식적인 미소가 진짜 웃음이 되어버렸다. 나의 입꼬리는 웃고 있을 지 몰라도 내 눈은 차갑게 굳어 버렸는걸. 가식으로 살아가고 가식으로 느끼고. 이미 갇혀버린 공허함의 어둠이 날 지금의 날 만들었다."

그녀의 말처럼 한나는 내게 곧잘 미소를 지어주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아주 싸늘한, 원래 그대로의 모습을 내게 보여주는 듯했다. 그렇지만 현재의 나는 결코. 절대로 이해 할 수 없다.

"도대체 그 무엇이 널 이렇게 만들었지?"

난 한나의 기에 눌리지 않으려고 당당하게 물어보았다. 그녀가 귀신이든 죽은 사람이든 결코 신경 쓰지 않는다. 다만 먼저 간 친구의 심정을 캐내려고 싶을 뿐. 지금 얼마나 땅을 치고 후회할 짓을 저질렀는지 깨닫게 해 주고 싶었을 뿐이었다.

"너를. 너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오늘 아침 학교에서도 내 안의 무엇인가가 무너져 내리는 그 처절한 심정을 네가 알기나하고 그런 소리를 지껄이냐고! 나뿐만이 아니야. 담임선생님도 얼마나 슬퍼하셨는데. 네가 그 장면을 봤어야 했어. 그리고 너희 부모님과 동생은? 언니 잃은 슬픔과 자식 잃은 부모님 심정이 얼마나 천 갈래 만 갈래 찢어지는 줄 네가 상상할 수 있을까? 그래. 지금 와서 내게 와서 하는 말이 고작 이거라니. 너에게 정말로 실망이다. 윤한나!"

한나는 한참을 내 열변에 귀를 귀울이는가 싶더니 빙그레 웃으면서 대답했다.

"결국은, 너는 가장 친구이긴 했지만 결코 나를 이해하지는 못하구나. 네 말은 이미 충분히 알고 있어. 그 흔하디 흔한 말은 살아생전에도 충분히 들었고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하다는 것도 우리 은정이가 아주 잘 알고 있을 텐데?"

"그럼 도대체. 숨겨둔 너의 모든 것을 내려 놓아. 그리고 나를 설득해봐. 납득이 가지 않을 경우엔 난 평생 널 저주하겠지."

한나가 크게 한숨을 쉬었다. 부릅뜨고 쳐다보는 내 눈을 피하며 먼 산을 쳐다보았다. 흥분을 가라앉히고 보니 까맣고 긴 생머리에 울 것 같지만 말라있는 갈색 눈동자가 제법 어울렸다. 평소에도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었던 그녀에게 밤하늘의 달처럼 어울려 보이기도 외로워 보이기도 했지만 말이다.

"내가 온 이유도 그거야. 은정아."

그녀는 조금 머뭇거리는 듯싶더니 여전히 내 눈을 피하고 말을 계속 이어나갔다.

"그저 벅차오르는 슬픔을 못 이겼을 뿐이야. 살다가, 살아가다가 아무도 없는 그런 어둠 속에 빠져 헤어 나오질 못 할 때가 분명 한번쯤은 있을 거야. 알 수 없는 무기력함과 공허함. 삶의 의욕이 사라져 '과연 내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 걸까?' 혹은 '내가 바라는 이상적인 세상은 어디에도 없는 거야. 내가 죽는 다고해서 누구 하나 날 이해해 줄까?' 라는 깜깜하고 앞이 보이지 않는 이 밤을 누구나 다 겪어보았을 거라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밤을 두렵고 외로워하겠지. 하지만 그것은 언제까지나 빛 속에 살고 있는 자들의 착각일 뿐. 진실은 하나 인거야. 내 두 눈을 모두 가려버린 검은색 몽환은 내게 안식을 가져다주었어. 머리도, 내 마음도 까맣게 지워져 가는! 알면 안 되는 공허함의 매력을 깨달아 버렸어. 언젠가 시험기간에 가 본 독서실 방은 마침 운이 좋게도 아무도 없어서 조용했지. 아무도 없고 불빛 하나 들어오지는 묘한 기분. 어떻게 설명할 수 없는 편안함과 안락. 이대로 끝나버렸으면 좋을 것 같은 나약함이 내 안에서 요동치고 있는데. 그 누군가 곁에 있는 것이 무어 그리 중요할까? 혼자라서 외로운 것이 아니야. 혼자라서 자유로울 수 있는 거지."

몰랐다. 나와 같은 것을 보고 같은 것을 행하는 그녀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아. 그리고 방금 전에 네가 이런 이야기를 했었지. 너 뿐만이 아니라 세상 그 많은 사람들이 죽지 못해서 살아간다고. 그거야 말로 살아있는 자들의 추악한 변명이고 살아가려고 발버둥치는 이들의 자기 합리화로 만들었진 것. 그들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안하는 거야. 삶의 대한 미련이라는 것 때문에. 너에게 상처가 되지 않았으면 하는데 내가 따뜻한 물을 욕조에 붓는 그 시간 동안. 차갑고 날카로운 회색 금속으로 천천히 손목 깊숙이 들어 아려오는 동안 눈앞에 아른 거리는 죽음에서 날 구해줄 그 무엇 하나 없었어. 그래. 난 누군가 이 심정을 알아주길 바랬어. 이렇게 아픈데. 내가 이렇게 아픈데. 살이 갈라져 그 사이로 붉은 피가 쏟아져 나오기 전에 단 한명만이라도 주체 할 수 없는 이 기분을 이해해주었으면 했는데. 죽어가는 동안 살 수 있었던 기회가 많았지. 하지만 무서워서. 또다시 뜨는 내일의 태양이 두려워서. 밝은 빛 속의 대부분 사람들은 잠들기 전 새로운 희망이나 기대에 가슴 부풀며 잠을 청하지만 애석하게도 나는 매우 달랐지. 이대로 잠들어 영원히 깨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매일 밤 간절하게 소망하는데. 매번 일어날 때 마다 느끼는 절망을 얼마나 두려웠길래 죽는 그 고통까지 감수하였을까?"

"하지만 넌 네 스스로 너를 숨겨버렸......"

난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왜냐하면 나는 위선자이기를 자초했기 때문이다. 왜 진작 알지 못하였을까? 아니 왜 조금만 더 빨리 깨닫지 못했었을까? 내 눈에는 보였다. 때때로 조금만 재밌는 이야기에도 웃어대던 한나의 얼굴에 묻어나는 그림자를. 푸른 들의 야생화 같고, 언제나 기죽지 않고 당당해 보이는 모든 것이 단지 그렇게 보일 뿐 전부가 아니었다는 걸. 그녀의 필사적이고도 완벽한 허상을 나는 알고 있었다. 그러나 난 의식하지 않았다. 결국은 나는 가장 친한 친구라고 자부하면서도 그녀가 던지는 구조신호에 응하지 않았던 것이었다.

"잡초 같은 인생의 끝은 결국 험난한 야생 길 뿐이었어." 그녀가 조용조용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어쨌거나. 너의 판단은 틀렸어! 옳지 않은 너무나도 극단적인 선택이었고. 지금 너를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은 생각하지도 않는 이기주의자야! 넌 네 스스로의 싸움에서 패배했어." 한나는 언제 집었는지  베개를 꼭 안고 있었다. 나는 화가 나 울분을 참지 못하고 그녀가 안고 있던 베개를 빼앗으며 소리쳤다. 그러다 눈물로 촉촉하게 젖어 있던 것을 애써 무시해버렸다.

“나도 항상 강한 건 아닌데 말이야.”

“뭐라고?”

"너의 말에 대한 대답에 앞서 한 가지 묻고 싶은 게 있다. 정말 많은 사람들이 나를 위해 울었을 것 같니?" 그녀가 희미한 미소를 보이며 물었다.

"그야 당연하지! 오늘 아침에 내가 얼마나 가슴 아팠는지 알기나하고 말하는 건지." 파래져가는 그녀의 얼굴을 볼 때마다 눈물이 치밀어 오르려한다. 내가 얼마나 너를 알지 못했길래. 결국은 나 때문에 이렇게 된 거니?

"내가 희미한 웃음과 함께 커터 칼을 들게 도와준 결정적 생각은 바로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는 거야. 내가 죽었다. 슬프겠지. 하지만 곧 잊혀 질 것을 내가 알고 있어. 너도 그렇겠지. 인간이니까. 그리고 무엇보다도 가슴 아팠던 건....... 너를 제외한 다른 이들의 마음 없는 동정 그리고 안에서는 무슨 상관이 있냐 나랑은 관련 없다는 투로 냉정하게 돌아선 외면이 진절머리가 나! 비오는 날, 창문 밖에서 매우 즐거워하는 우리 반을 지켜보며 아직도 내가 이기적이다고 비난받아야할 여지가 있을까? 더 이상 마지막까지 살고 싶다 라는 미련이 사라졌더라."

그때였다. 어디선가 휴대폰 벨소리가 울려왔다. 아차. 아침 모닝콜소리로 라캄펠넬라를 맞추워 놓았지. 묘하게 흘러내리는 음율은 충분히 짙은 어둠을 훼방 놓았다. 하지만 시끄럽게 울려대는 터라 어디다 던져놓았는지 모를 휴대폰을 방방곳곳 찾느라 분주해졌다. 이윽고 거기에 왜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책장 뒷구석에서 울리고 있는 휴대폰을 발견하였다.

"미안해. 모닝콜을 6시에 맞춰놓았던 것을 깜빡했네."

고개를 돌려 그녀가 앉아있는 침대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거기엔 아무것도 없었다. 내가 바라보고 있었던 것은 그저 맨 허공이었다. 아니 얘가 그세 어디로 갔지? 휴대폰을 두 손에 꼭 쥐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티끌하나 모이는 것이 없었다. 그저 보이는 건 지금 창문너머로 서서히 태양이 떠오르고 있는 풍경 뿐. 지금 그 태양의 빛이 세상 모든 것을 덮으며 또 다른 아침을 고하고 있는 순간에 지금이 꿈이 아님을 자각했다.

“아침. 또 다른 내일. 그러나 그 누군가에게는 주어지지 않는 것.”

 어쩌면 그녀가 지금 이 땅위를 밟고 있지 않은 것은 그녀만의 문제는 아니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나 마지막 그 한마디. 더 이상 타인의 대한 생각이나 깊은 배려가 사라진 현재. 자신의 이익 유무에 철저히 외면당하는 이 사회에서 그 누군가의 이해가 절실히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매우 힘들어 하는 건 당연한 일일 지도 모른다. 모두들 자살을 한다면 후회할 거라지만 혹시 자기 세뇌를 위해 우리를 그렇게 가르치는 건 아니었을까? 분명 조금이라도 연관이 있던 사람이었음에도 오히려 태평하게 농담이나 주 받는 그들을 보며 한나는 그녀의 선택에 대해 아마 후회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게도 네가 두려워하던 태양이 떠오르고 있네. 빛이 무서워 그림자 뒤로 숨은 고양이이야. 그래서 넌, 지금 여기를 떠나 행복하니?”

시계를 의식하며 곧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치 인형처럼 새롭게 맞이하는 하루에 치일 각오를 하면서 씁쓸한 미소와 일어났다. 그때 침대에서 함께 떨어진 무언가가 눈에 띄었다. 검은색 메모 쪽지 위 하얀색 글자.


'E V E N T U A L L Y,  I  A M  H A P P Y.'

 

나의 소설을 소개합니다♥

 

① 전체적인 이야기 내용은 어떠한가요?

A: 줄거리를 간단히 요약하자면 이렇습니다. 서술자 강은정에게는 둘도 없는 친구 윤한나가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은정은 아주 뜻밖의 소식을 전해 듣습니다. 바로 한나가 스스로 죽음을 선택했다는 이야기지요. 매 순간 낙천적이고 전혀 아쉬울 것 하나 없는 한나의 자살소문에 은정은 혼란에 빠집니다.

그리고 그 날 저녁, 그 누구 하나 깨어있지 않는 새벽에, 죽었던 한나가 은정이의 방에 찾아옵니다. 그리곤 아주 슬픈 눈으로 혼자 수도 없이 아파했던 기억들을 떠올려 가슴 속 품었던 응어리를 풀어내는 이야기입니다.


② 소설을 통해 이야기 하고자 했던 것은 무엇인가요?

A: 최근 주위에서 심심치 않게 들었던 주제죠. 바로 「자살」입니다. 윤한나 라는 캐릭터를 앞세워 우리가 이해하지 못했던 슬픈 사람들의 심리를 최대한 잘 표현해 내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했던 바는 누군가의 따스한 위로와 관심이 정적으로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이 세상은, 이미 메말라 버리고 희망이 보이지 않았던 것이 아닐까요? 마지막 한나가 은정이에게 남겨둔 메시지 「Eventually, I am happy」의 진정한 의미는 나를 이해하지 못하고 외면하는 세상을 떠나 비로소 나는 행복해졌다 라는 것을 담고 있습니다.


③ 구체적인 배경과 주인공들은 어떻게 만들어진 것이죠?

A: 대부분의 소설의 배경과 상황, 주인공 등을 제 주위에서 겪고 생각해보고 내용에 대입해 본거예요.

먼저, 암울하고, 이야기의 전반적 분위기를 무겁게 짓누르는 배경. 바로 제 방을 토대로 묘사했습니다. 모두들 자고 나 홀로 책상 앞에 스텐드 불만을 키고 있노라면 나 마저 까맣게 물들어 가는 우울한 느낌이 소설에 제법 어울릴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다음은, 주인공 설정에 대해 말씀 드려볼까 합니다. 주인공 윤한나, 서술자 강은정이 그려나가는 소설의 대부분은 이름만큼이나 저와 흡사하죠. 경험만큼 묘사하기 좋은 것이 없더라고요. 언젠가(소설 쓸 당시) 제게 슬럼프가 찾아왔었는데, 아마 약간의 초기 우울증 증세도 같이 온 것 같았어요(아, 물론 지금은 펄펄하죠!) 그 때의 느꼈던 이유 모를 불안감, 나태,삶의 의욕을 잃어 힘들어 하는 그 순간 순간에 기분을 조금씩 메모해 두었죠. 그 메모들을 바탕으로 주인공들과 이 소설이 탄생하게 된 것입니다.!

 

아마 아는 사람은 알 거예요. 그 슬픔이 얼마나 중독성있고 위험한지.

Ariel
Ari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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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me After time

Time After Time        그것은 끝없이 이어지는, 까마득히 아련한 한(恨). 언제부터인가 눈을 떠 본 그곳은 짙푸른 어둠만이 자리 잡아, 그 어떤 빛깔도 움직임도 없는 고요한 혼돈이었다. 지금 내가 여기서 보고 있는 것들이 과연 진실로 보여 지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단순히 잊고 지냈던 것들에 대한 환상인지, 그 조차 나를 혼란스럽게 한다. 바람도, 그렇다고 어느 이의 부드러운 손길도 아닌 것이 쉬지 않고 나를 스쳐 지나간다.  아, 아. 나는 이것을 시간이라 부르겠다.  비록, 본디 시간이라는 것은 이렇게 드러낸 살결에선 느껴지지 않다 하더니만 지금 이것이 어떤 상황인지 또 내가 어디에 있는지 알 길이 없어 잠시 그의 이름을 빌려 온 것이다. 현재로서 내겐 ‘안다는 것’의 혜택을 부여 받을 수 없기 때문이기에. 그와 함께 흩날리는 까만 머리카락처럼, 다만 나의 얕은 앎으로 확신할 수 있는 것은- 만약 내가 아직까지도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이라면 -시간만은 반드시 흐르고 있다는 것이었다. 손끝에서부터 퍼지는 그 흐름의 감촉이 어느 덧 익숙해졌다. 그저 하릴 없이, 보이지도 않는 아득한 수평선만을 바라보며.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조금씩 뱉어내는 짧은 호흡을 느끼며, 나 자신이 살아 있다는 것을 자각하게 되었고 짙은 어둠 속에서도 시야가 적응이 되었는지 점점 무언가가 뚜렷하게 구분되기 시작하였다. 쪽빛에서 코발트블루, 그리고 하늘색이 되더니만 투명한 초록이 되어, 아!  나는 새로운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내가 전에 시간이라고 부르던, 그 아름다웠던 흐름은 그저 바닷물에 지나지 않았다. 더욱이 나 자신이 ‘사람’이라고 믿는 시점에서 물속의 고통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던 것에 대해서도 그다지 놀라워하지 않았다. 지금에 있어서 내게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어떤 형태이던, 여기엔 나 혼자라는 것이다.   끝없이 이어지는, 까마득히 아련한 한(恨).   나는 인어(人魚)였던 것이었다.   ***    한(恨)이라기보다는 억원(抑冤)에 가까웠다.  그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온전히 정신을 차린 후. 어둠 속에서 해매지 않게 되었지만 그래도 나는 괴로워해야만 했다. 차라리 색감을 구분 할 수 없던 좀 전의 삶이 그리웠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아무것도 느낄 수 없었던 그런 무지의 평온함을 간절히 바라고 바라며. 어느 순간 들이닥친 묘연한 감정이 뒤섞기며 나는 억울함에 목이 메어 감히 우는 소리 조차 낼 수 없었다.  무엇이 잘 못 된 것일까, 무엇이 잘 못 된 것일까. 내가 왜 이러는 걸까.  수 없이 같은 질문만을 되풀이 해 보아도 나는 결코 그 해답에 도달 할 수 없었다. 오로지 내가 기억하는 건, 한 때 내가 사람이었다는 것과 그리고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이 기분. 단지 그것 뿐.  감히, 한 때 사람이었던 하찮은

  • Ariel
  • 2011-05-14
성화(腥火)

성화(腥火)          그 때에 우리는 뒤를 돌아보지 말았어야 했다. 아니면 내가 그 길을 지나가지 말았어야 했거나, 혹은 그가 그 자리에 없어야 했던 것이 옳았다. 로마가 사랑하는 불의 여신, 베스타를 추앙하기 위한 축제가 한참이었던 어느 꿈과도 같은 날 밤에, 수많은 인파 속에서 왜 하필 우리는 서로와 마주쳤어야만 했었는가? 가느다랗게 떨리는 두 손에서 그의 맥박 소리가 고동친다. 대리석 조각을 깎아내린 듯이 하얗고 그리고 단단했다.   ****    나는 행복해 하곤 했다. 나를 감시하던 이들 위로 까만 장막이 드리워질 때마다, 그의 쇄골에 얼굴을 묻고는 언제나 나만의 것이었던 그의 온기를 느낀다. 규칙적으로 뛰는 그 사람의 심장 소리. 따뜻한 살결에서 익숙한 향이 물씬 풍겨졌고 영원할 것만 같은 시간이 흘러갔다.  그가 곁에 있어.  나와 함께 하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그의 존재만으로도 내겐 위로가 되는 걸.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그리고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이기적일 나의 사랑.  아련히 비치지는 햇살과 종달새의 울음소리로 우리들의 새벽은 시작되었다. 이른 시각, 잠에서 깨어날 때 마다 나는 불안감에 떨어야만 했기에. 허락되지 않은 선을 넘었다는 것에 대해, 이제는 더러워져 용서 받을 수 없을 거라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감정이 북받쳐 올랐다. “용서받지 못할 거야.” 내가 울먹이며 말했다. “내게는 보여. 우리 사랑의 결말이.” 사실 알고 있었어. 조그맣게 흐느끼는 내게 괜찮다고 속삭여 주던 당신도. 당신도 사실은 울고 있었다는 걸.   ****    그 따뜻한 목에서 고동소리가 느껴진다. 아무런 힘이 들어가지 않는 손아귀. 거기에 조금이라도 힘을 줬다간 그가 아니라 내가 베어질 것만 같았다. 이젠, 돌아갈 수 없어. 그렇게 난, 반듯하게 누워있는 그의 위에서 울 것 같은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는 아무런 저항도, 움직임도, 말도 없었다. 그저 나를 바라볼 뿐이었다. 언젠가 이런 날이 찾아올 것이라는 걸 예상했었다는 듯이. 한결같은 그의 눈에서는 어떠한 원망도, 체념도 전해지지가 않았다. 사랑해  입을 열어 소리를 뱉어낸 것은 아니었지만 나는 들을 수 있었다. 당신을 사랑하고 있어.  그가 손을 뻗어 나의 뺨을 어른다. 이마에서부터 코끝, 입술까지 내려와 다시 한 번 얼굴을 감싸 안아주었다. 들리지도 않는 그의 목소리를 들으며 시간이, 눈물이 흘러간다. 조금씩, 아주 조금씩 그를 조여 가며. 달콤하면서도 끝내 뿌리칠 수 없는 죄악의 희열을. 저린 마음 한 구석에 집착하며. 내게 사랑한다고 말해줘.  내가 지금 보다 더 어렸다면 우리가 마지막으로 도달할 종착점은 과연 어떠하였을까? 아무것도 몰라 천진난만하게 거리를 뛰놀며, 모든 사람들이 내게 던지는 찬사와 축복 속에서 그저 마냥 즐거웠더라면. 만약 내가 지금 보

  • Ariel
  • 2011-0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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