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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나무를 찾습니다

  • 작성자 강아지발바닥냄새
  • 작성일 2009-07-19
  • 조회수 304

 사람들은 오늘 같은 날을 여우가 시집을 간다고 해요. 어떤 사람들은 호랑이가 장가가는 날이라고도 하고요. 제가 고개를 살짝 올려다본 하늘은 구름도 작고 푸르른 것이 참 예쁘네요. 저의 머리칼을 촉촉이 젖어들게 하는 옅은 비는 맑은 하늘과 겹칩니다. 그리고는 제가 서 있는 이곳을 더 생동적이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비가 그치고 나면 내일부터는 조금 쌀쌀해지겠습니다. 머리로 햇빛을 가득 쏟아주던 햇님도 그 기세를 누그러뜨리겠지요. 저의 친구들은 이제 가을이라고 한껏 멋을 부리겠습니다. 멋을 부려봤자 머리칼을 울긋불긋 염색시키는 것이 다겠지만요. 가을이 돌아왔다는 것을 알린다며 잠시 들렸던 여우비는 뭣이 그리 바쁜지, 자취를 남기다 말고는 어느새 사라졌습니다. 저는 종소리를 자장가 삼아 눈꺼풀을 앙 닫아버렸습니다.

 

멀리서 사람의 기척이 들려왔습니다. 저는 항상 사람의 기척이 들리면 짜증이 났습니다. 사람들은 낮 시간 즈음 곤히 자고 있는 저에게 종종 시비를 걸곤 했거든요. 시비를 거는 방법도 다양하지요. 운동을 한답시고 저를 주먹으로 치거나 등을 치는 방법, 제가 큰 길목의 중간에 서 있다는 것이 맘에 안 든다며 발로 차는 방법, 애꿎은 저의 머리카락을 뽑는 방법 등.

사람의 기척을 들으니 사람이 저에게 다가오는 것 같았습니다. ‘잠은 다 잤구나.’ 생각하며 짜증스럽게 눈을 떴습니다. 제게 다가오던 사람은 제 키의 절반이나 될까 싶은 조그만 키의 소녀였습니다. 입고 있는 청록색의 교복 치마며 세일러복 형식의 교복 상의를 보니 요 밑에 있는 ○○여자중학교학생인 듯했습니다. 아까 내렸던 여우비 탓에 촉촉이 젖은 땅 위가 아무렇지 않은 듯 소녀는 털썩 앉았습니다. 그리고는 제게 기대어 한숨을 푸욱 내쉬었습니다. 그 모습이 귀엽게 보여 팔 하나를 조심스레 움직여 작은 바람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소녀는 “아, 시원하다.”라는 탄성을 뱉으며 하늘을 올려다보았습니다. 소녀의 얼굴 위로 작은 땀방울 한두 개가 발그스름한 볼 위로 미끄러졌습니다. 목 위를 간신히 덮는 짧은 단발머리가 앳된 소녀의 얼굴을 더 앳되게 하였습니다.

소녀는 주위를 자세히 살펴보았습니다. 그리고는 인상을 잔뜩 썼습니다. 소녀는 무엇인가 찾는 듯했습니다. 소녀가 찾는 것이 등산객들이 자주 놓고 가는 시계라든가 손수건 같은 자잘한 것을 찾는 것으로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소녀는 나무 하나,하나를 훑어보았습니다. 그에 나무들은 움찔 움찔거렸습니다. 소녀가 찾는 것은 나무와 관련된 것이겠지요. 문득 소녀가 몹시 궁금해졌습니다.

소녀의 얼굴은 뺨 전체가 발갛게 물들여져 있었고 앞머리는 땀에 젖어 갈라져 있었습니다. 크고 동그란 눈과 오똑하게 솟은 작은 코는 소녀의 인상을 한껏 귀엽게 해주었습니다. 여우비 탓인지 하얀 교복블라우스와 치마에 튀어오른 흙과 물기에 교복은 몹시 지저분해졌습니다. 하지만, 소녀는 개의치 않아 하는 것 같았습니다.

“…없나? 있을 텐데….”

불안한 목소리로 말하는 소녀의 모습에 괜스레 측은해졌습니다. 무엇이 없다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입니다.

“어딨지?”

소녀의 말에 고개가 갸우뚱거렸습니다. 소녀는 대체 무엇을 찾는 것일까요? 나는 호기심에 다른 나무들에게 질타 받을 행동을 하고 말았습니다.

“무엇을 찾는 거야?”

소녀에게 말을 걸고 만 것이지요. 괜히 초조해진 마음에 침을 꼴깍 삼키고 소녀의 대답을 기다렸습니다. 다른 나무들의 질타 따윈 무섭지 않았습니다.

“‘엄마나무’요. 엄마나무가 엄마를 웃게 할지도 몰라요.”

소녀의 엄마는 잘 웃지 않는 사람인가 봅니다. 그런데 ‘엄마나무’는 어떤 나무일까요? 생전 처음 들어본 나무의 이름에 머릿속이 하얗게 물들어갔습니다. 다른 나무들도 다 모르는 눈치였습니다. 소녀는 자신에게 말을 거는 목소리가 어디서 나오는 지도 모르는지 그저 불안한 목소리로 질문에 답했습니다. 소녀는 한참을 생각하더니 말을 이었습니다.

“음…. 이름은 하늘이에요. 하늘에 닿을 듯 높고 튼튼하게 자라라고 지어준 이름이래요.”

“나무에게?”

“엄마나무에게요!”

순간, 하늘이란 이름을 가진 엄마나무가 몹시 부러워졌습니다. 아마 다른 나무들도 마찬가지겠지요. 우리에겐 이름이 없습니까요. 굳이 따지자면 우리에게도 이름은 있지요. 소나무, 은행나무, 단풍나무…. 하지만 그것은 ‘나만의 이름’이 아닙니다. 지어주는 사람도 없었고 우리도 이름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았었거든요.

한 번 더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소녀는 조만간 다시 와야겠다며 산을 내려갔습니다.

 

“하늘이?”

소녀가 내려가자 주위에 있는 남부들이 웅성 되었습니다.

“그게 누군데 그래?”

“아, 왜 25년 전인가? 하여튼 근처 여중애가 심어놓은 나무잖아.”

“아아, 그 놈?”

“그래. 여중애가 매일 ‘하늘아’라고 불었지, 아마?

“여중애가 시내에 있는 여고로 올라가고 그 이후로 한 번도 안 왔잖아.”

“20년 전에 죽은 애?”

“아니, 죽어? 왜?”

“꼬마애 하나가 하늘이한테 걸려 넘어졌잖아.”

“그게 왜?”

“아이고, 이 사람 좀 보게나.”

“우리가 언제는 사람이었는가?”

한 나무의 말에 나무들이 와하하 하하 웃었습니다. 하늘이에 대해 말하던 나무는 몸을 부르르 떨었습니다. 그리고는 헛기침을 하고 말을 이었습니다.

“크흠…. 하늘이가 꼬마에 때문에 부러졌다는 게 아닌가.”

“에에? 그럼 죽었단 말야? 꼬마애가 걸려 넘어졌다고?”

그 말을 끝으로 나무들 사이에는 정적이 돌았습니다.

“자네도 대단해. 어떻게 20년 전 걸 기억해?

“하늘이가 보통 맹랑했어야 말이지. 가지도 곧고 튼실한 게 잘생긴 놈이었는데…. 쯧쯧.”

하늘이에 대해 줄줄 말하던 나무가 나에게 시선을 돌렸습니다.

“넌 기억 못해?”

“무슨 소리야?”

나무는 저를 한심하다는 눈길로 쳐다보았습니다. 그 눈길에 생각이 날 듯 말 듯 해졌습니다.

“하늘이가 자꾸 말 걸어서 네가 막 화냈잖아. 시끄럽게 쫑알대지 말라고.”

그제야 제 기억 속 잊혀진, 먼지가 뽀얗게 앉은 사진첩 하나가 펼쳐졌습니다.

 

“저는 하늘이에요. 아저씨는 이름이 뭐에요?”, “아저씨는 몇 살이에요?” 같은 자질구레한 질문을 많이 했던 하늘이입니다. 하늘이는 제 옆에 있던 나무입니다. 거리만큼은 서로에게 가장 가까운 사이였음에도 마음은 가장 먼 사이였지요. 그건 아마도 저 때문이겠지요. 하늘이가 호기심 어린 목소리로 물어봐도 저는 항상 묵묵부답으로 일관했습니다. 그렇지만 그것을 개의치 않고 조잘조잘되는 하늘이가 우스워 코웃음을 쳤었습니다. 조그마한 여자애에게 엄마라고 하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고 말이 많은 것도 싫었습니다. 한 번은 하늘이가 저에게 묻더군요.

“아저씨는 제가 왜 싫어요?”

저는 당연한 걸 왜 묻냐는 말투로 말을 했습니다.

“넌 사람에게 엄마라고 하잖아. 사람은 나무를 낳을 수 없어!”

“하지만 우리 엄마인걸요. 나를 낳아주진 않았어도 우리 엄마인걸요!”

저는 코웃음을 쳤습니다.

“어째서 너의 엄마야?”

그 때 하늘이는 배시시 웃었습니다. 저는 한 번도 짓지 못했던 행복한 미소를 가득 머금으며 말입니다.

“나를 예뻐해 주잖아요. 사랑을 주니까요.”

하늘이의 얼굴이 정말 얄밉도록 행복해보였습니다. 그래서 하늘이에게 상처를 주고 말았습니다.

“네가 엄마, 엄마 거리며 따르는 그 여자아이에게 머지않아 너는 잊혀질 거야. 너는 나무니까 항상 그 자리에 뿌리박고 살아가는 나무니까. 네가 아무리 사람에게 엄마라고 부르며 따라봤자 네가 사람이 되진 않아.”

“제가 사람이 되길 바라는 것이 아니에요.”

하늘이는 조용히 속삭이듯 말을 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하늘이에게 잔인하게 내뱉었던 그 말은 몇 년 후 사실로 드러났습니다. 하늘이는 자신에게 사랑을 주던 사람에게 잊혀진 것이지요. 사랑에게 잊혀진 하늘이는 하루가 다르게 말수가 줄고 말라갔습니다. 다른 나무들이 “너희 엄마 언제 오냐?” 하며 킬킬대며 놀리듯 말할 때도 “우리 엄마 곧 올거에요!” 라고 말하던 목소리의 크기도 줄어들어갔습니다. 그러다 나중에 다른 나무들이 놀릴 때에는 자기 혼자 훌쩍이며 울었습니다. 그런 하늘이를 볼 때마다 저는 하늘이가 바보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며칠 후, 하늘이는 자신에게 걸려 넘어진 아이와 함께 넘어졌습니다. 그리고는 나의 양분이 되어 내 몸 어딘가에 남아있을 겁니다.

 

“이젠 기억이 나나 봐?”

혀를 차던 나무가 싱긋 웃어 보입니다. 저는 긍정의 뜻으로 팔을 하나 위아래로 움직여 보였습니다.

“오늘 너 평소랑 다른 것 같았어.”

“뭐가?”

“너 원래 너랑 무관한 일이면 신경 안 쓰잖아. 낮에는 눈도 꼭 감고 있고….”

그렇습니다. 저는 누가 저에게 말을 걸거나 건들이더라도 인상만 구길 뿐입니다. 누군가에게 무엇을 물어보지도 묻는 말에는 무시를 하거나 단답형으로 대답합니다. 그런 제가 작은 여자아이에게 말을 걸다니요. 다른 나무들은 책임을 물을 생각조차 못하고 당황했던 것 같습니다. 저조차도 혼란스럽습니다.

“그 여자애 하늘이 찾으러 또 올 텐데….”

“어떤 나무가 하늘인지 자기가 무슨 수로 알겠어?”

“하늘이가 엄마라고 부르던 애가 푯말 세워 줬잖아. ‘이 나무는 하늘입니다.’인가? 자기 학교랑 이름도 쓰고.”

 

밤이 되었습니다. 문득 후회가 되었습니다. 하늘이가 그 선한 눈에 호기심으로 채우며 끊임없이 묻는 질문에 단 한 번이라도 다정스럽게 대답해 주지 않은 것을요. 나무들끼리 아무리 떠들어 봐야 순수한 사람들에게만 조그맣게 들릴 뿐인데 말이죠. 오늘 하루는 유독 긴 듯합니다.

 

“에이씨.”

한 달 전부터 일주일에 두 번씩은 꼬박꼬박 산에 오르는 소녀입니다. 산에 올라 소녀가 하는 일은 단 한 가지입니다. 하늘이의 흔적을 찾는 것. 교복 여기저기에 흙먼지가 묻고 온 몸이 땀으로 젖는 것을 전혀 상관하지 않습니다. 소녀는 하늘이 ‘엄마’의 딸 같습니다.

소녀를 볼 적마다 제가 하늘이에게 했던 말이 틀린 것 같아 죄책감이 듭니다. 하늘이를 죽게 만든 것이 나 인 것 같습니다.

‘하늘이는 없어! 20년 전에 벌써 죽었다구. 이젠 이 산에 오지 마!’

라고 말하고 싶은 것을 꾹 참았습니다.

“정말 못 찾겠다….”

소녀는 이 말을 끝으로 산을 내려갔습니다.

 

 

나는 터덜터덜 산을 내려왔습니다. 땀에 절고 여기저기 흙먼지가 묻은 저에게 지나가는 사람들의 시선이 향합니다. 그럴 만도 하지요. 흙먼지 묻은 교복차림으로 며칠 씩 땅거미가 질 무렵까지 쏘다니니까요. 그렇다고 화장기 없는 맨얼굴에 짧은 단발, 헐렁한 교복차림의 제가 소위 ‘좀 논다’라는 아이로 보이지 않을 테니까요. 게다가 이렇게 땀에 절어 흙먼지 묻은 교복차림의 제가 며칠씩 쏘다니는 것을 본 사람들은 절대 학원에나 다니는 아이로 보지도 않을 테지요. 사람들의 호기심 어린 눈길을 며칠씩 받는 것도 벌써 한 달 쨉니다.

 

엄마는 유난히 그림을 좋아합니다. 그림을 좋아하는 엄마 덕에 집에는 그림이 이곳저곳에 많이 있습니다.

지금 보험설계사로 일하고 있는 엄마의 꿈은 화가였다고 합니다. 미대에 진학하고 유럽으로 유학을 가서 꼭 화가가 되겠다, 그리 다짐했다고 합니다. 그런 엄마가 화가가 되겠다는 꿈을 포기한 이유는 가난한 집안형편 탓이었습니다. 가난한 농사꾼의 딸이던 엄마는 화가가 될 수 없었다고 합니다, 자질구레한 화구들을 사기조차 버거워하시던 부모님에게 더 이상의 짐을 안겨드리기 힘들었기 때문이지요. 그림 그릴 때가 가장 행복했다던 엄마는 제가 장래희망을 말할 때마다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말했습니다.

“그래. 우리 희우는 하고 싶은 것 해.”

그 때마다 엄마의 눈에는 물이 고였습니다.

 

초등학교 5학년 즈음, 엄마와 함께 미술관에 갔었습니다. 저는 무척 지루했었지요. 엄마에게 빨리 나가고 싶다고 재촉하려는 순간, 저는 보았습니다. 입술을 꾹 다물고 그림 하나하나를 머릿속 깊이 각인시키려는 듯 한 엄마의 모습. 그 때 저는 엄마의 눈이 빛나는 것 같았습니다. 오랜 시간이 흐르고 엄마는 저를 바라보며 자세를 낮추고 말을 했습니다.

“희우야.”

“응.”

“희우는 하고 싶은 것 해. 돈 같은 거에 구애받지 말고 알겠지?”

엄마의 눈에는 한가득 눈물이 고여 있었습니다. 그 눈을 바라보며 나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엄마가 일어서고 다음 그림으로 다가갈 때 엄마가 유난히 살펴보던 그림들을 보았습니다. 하나같이 풍경화였습니다. 바닷가도 있었고 거리도 있었고 산도 있었습니다.

그림들을 다 구경하고 미술관을 나오며 나는 엄마에게 물었습니다.

“엄마, 풍경화 좋아해?”

“응.”

“왜?”

“길가다가 경치가 좋으면 그걸 담고 싶잖아. 그 좋은 경치를 내 손으로 종이에 옮기는 게 얼마나 좋다고. 그러면 그 경치 하나하나가 다 내 세상인 것 같아.”

엄마는 살풋 웃어보였습니다.

“희우가 좀 더 크면 엄마랑 가림 그리러 가자.”

“우와, 정말? 어디로?”

“남산으로. 거기에 엄마가 중학생 때 심어놓은 나무가 있어.”

“나무?”

“응. 엄마나무.”

방글방글 웃어 뵈는 엄마의 모습은 예뻤습니다. 제가 커가면서 엄마가 웃는 모습보다는 미간을 좁힌 채 한숨을 쉬는 모습이 늘었으니까요. 제게 좀만 더 크면 같이 그림을 그리자는 엄마에게 그러자며 나도 방긋 웃어보였습니다.

“변두리, 남산 있는 게에 엄마가 ○○여자중학교를 나왔거든?”

“응.”

“중학교 다닐 때 종종 그림이 너무 그리고 싶던 때가 있었어. 근데 화구가 없어서 못 그렸지. 그 때는 내가 화가가 될 수 있겠나 싶더라고. 하루는 시장에 갔는데 소나무 묘목 하나가 무척 예쁘더라고. 근데 2년 된 것이라 엄청 작았거든. 근데 유독 하나가 무척이나 예쁘게 보였어. 그래서 묘목을 샀어. 너희 외할머니한테 졸라서. 엄청 졸랐지, 뭐. 그래서 소나무를 남산에 있는 팔각정 근처에 심어주고 매일 갔어. 엄청 작던 묘목이 산에 있던 나무들처럼 큰다면 나도 화가가 될 수 있을 것 같았거든. 하늘에 닿을 듯 높고 튼튼하게 자라라고 하늘이라고 이름도 지어줬어. 하늘이한테 가슴 속 깊이 묻어두었던 이야기도 했어. 그리고 하늘이한테 약속했어.”

“뭐라고?”

“꼭 멋진 화가가 돼서 하늘이를 그려주겠다고. 하늘이가 담긴 풍경화를 그려주겠다고.”

엄마는 웃었습니다. 아니, 울었습니다. 울면서 웃었습니다. 눈에 눈물이 떨어지는데 입만은 웃었습니다. 어린 내 앞에서 눈물을 쏟았습니다. 그 때 다짐했습니다. 엄마를 화가로 만들어주겠다고. 하늘이라는 나무를 찾아서 엄마와 함께 그려주겠다고.

제 키가 커갈 때마다 엄마는 점점 웃지 않았습니다. 눈가의 잔주름은 더 깊어졌습니다. 그러다 제가 "○○여중에 입학을 했습니다. 집과 거리가 멀어 통학하기가 힘들었지만 남산에 쉽게 갈 수 있겠다는 생각에, 엄마를 웃게 만들 수 있다는 생각에 저는 행복했습니다.

그런데 한 달 째 찾아보아도 없습니다. 하늘이가 없습니다. 올 해 엄마의 생일선물로 엄마를 화가로 만들어 주겠다는 저의 다짐은 무너지려 하고 있었습니다. 가장 중요한 하늘이가 보이지 않으니까요. 엄마가 예전에 알려줬었던, 하늘이를 심었던 팔각정 주위를 한 달 동안 갔지만요.

저의 걱정 속에서도 엄마의 생일은 다가오고 있었고 하늘이는 보이지 않습니다. 결국 하늘이가 없는 상태로 저의 다짐은 진행되었습니다. 결국 하늘이가 없는 상태로 저의 다짐은 진행되었습니다. 엄마가 화가가 되기 위해 필요한 화구 중 이젤은 외갓집에 있습니다. 붓이나 물감같이 자질구레한 화구들은 저도 있지만 종이를 올려놓고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이젤은 없거든요. 그때 외갓집에서 이젤을 보았던 것이 생각났습니다. 이젤을 빌리기 위해 외갓집에 전화를 걸었습니다.

“여보세요.”

“할머니?”

전화를 받은 사람은 외할머니셨습니다.

“희우냐?”

“네!”

“어이구, 무슨 일 있어?”

오랜만에 듣는 할머니의 목소리에는 반가움이 가득 묻어났습니다.

“이젤 좀 빌려갈게요.”

“이젤?”

“그…그림 그릴 때 세워놓고 그리는 거….”

“이젤이야, 느이 엄마가 너만할 때 하도 노래 불러서 잘 안다. 다짜고짜 이젤이 뭔 필요 있냐? 너도 그림쟁이하게?”

“아니이.”

“그림쟁이 하려는 생각 말어. 느이 엄마, 아빠 등골 휜다. 허기사, 네가 느이 엄마 그림솜씨 닮았으면 그림 하나 끝내주게 잘 그리것다.”

“엄마가 그림을 그렇게 잘 그렸어요?”

“아이고, 말두 말어. 만날 금상, 최우수상. 느이 엄마가 그림으로 받은 상 합치면 집채만 할 겨. 특히나 풍경화는 정말 끝내준다니까? 느이 엄마 가난한 부모 만나서 그 모양이지. 에고, 느이 엄마도 어릴 적부터 고생 많이 한 사람인 거 알지?”

“네.”

“느이 엄마한테 잘혀.”

“네.”

“이젤은 언제 가져갈겨?”

“내일모레….”

“그려. 알겄어.”

“아, 할머니! 엄마한텐 암말도 하지 마. 할머니랑 희우랑 비밀이야!”

행여 할머니께서 엄마에게 말해 그 동안 공들였던 것이 선보이지도 못하고 물거품이 될까봐 다급히 말했습니다.

“하이고, 녀석도. 비밀두 많다. 핵교공부 열심히 하구!”

“네.”

할머니는 허허 허하며 호탕하게 웃으셨고 나 또한 미소 지을 수 있었습니다.

 

일주일 동안 산에 가지 않고 선물 준비를 했습니다. 그리고 오늘이 엄마의 생일입니다. 하늘이가 없어서 그리 만족스럽지는 못하지만 엄마가 제 마음은 알아주었으면 좋겠습니다. 3일을 졸라 같이 산을 오르기로 약속은 받아냈지만 걱정입니다. 엄마가 화를 낼까봐요. 쓸데없는 짓 했다며 혼날까봐 걱정입니다. 또 괜히 엄마의 상처를 건들이게 되는 것은 아닌가 싶습니다. 궁리 끝에 아빠를 물귀신 작전으로 끌어들이게 됐습니다. 아빠에게 자초지종을 털어놓자 아빠는 씨익 웃으시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습니다. “우리 희우, 대견하구나.”하시면서요.

 

아빠는 화구와 이젤을 가지고 산에 올라 팔각정에 가 있기로 했습니다. 나름 깜짝 파티랄까요?

엄마는 한숨을 푸욱 내쉬면서 나와 함께 산에 올랐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 밖에 없는 주말을 딸내미의 조름에 산을 오르는 데에 쓰게 된 것이 후회되는 모양이었습니다. 팔각정이 보이기 시작할 무렵, 엄마가 우뚝 서며 혼잣말을 했습니다.

“대체 왜 산엘 가자는 거야.”

“에이, 모녀지간에 맑은 공기 마시면서 운동하자는 데 싫어?”

“어휴. 내가 네 속을 어떻게 알겠니.”

저 멀리 팔각정 앞에서 아빠가 양팔을 크게 벌려 손을 흔들고 있었습니다. 엄마는 그런 아빠를 못 본 듯합니다. 나는 싱긋 웃어 보이며 아빠처럼 손을 흔들었습니다. 엄마는 그런 나를 보더니 나의 시선을 좇았습니다. 시선을 좇다 아빠와 눈이 마주친 엄마는 무척 놀란 듯싶었습니다.

“다…당신…! 강희우 너어…!”

“헤에….”

나는 엄마에게 멋쩍게 웃어보였습니다. 엄마는 그런 나를 보며 피식 웃었습니다. 그러다가 엄마는 아빠와 나를 보며 “정말 내가 못 살아.”라며 아빠에게 갔습니다. 저는 그런 엄마를 웃으며 뒤쫓았지요.

 

“이게 다 뭐야?”

엄마와 함께 아빠를 따라 올라간 팔각정에는 외갓집에서 가져온 낡은 이젤, 내가 쓰던 스케치북과 붓, 물감이 아빠의 간이의자에 함께 세팅되어 있었습니다.

“희우가 오늘만큼은 당신 화가 만들어 주겠다고 이렇게 한거야. 여기 앉아서 당신이 그렇게 좋아하는 풍경화 좀 그려줘.”

아빠는 엄마의 어깨에 팔을 두르고 웃으며 말했습니다.”

“그럼, 오랜만에 실력발휘 좀 해봐? 아, 하늘이!”

엄마는 갑자기 눈을 동그랗게 떴습니다. 그리고는 하늘이의 이름을 부르며 팔각정 아래로 다다다다 내려가더니 주위를 두리번거렸습니다. 그러다가 한 나무의 앞에 쭈그려 앉았습니다.

“엄마, 그 나무가 하늘이야?”

그 나무가 하늘인가 하여 엄마에게 물어봤습니다. 그에 제가 허무해 졌지요. 이렇게 금세 눈에 띄는 나무가 하늘이였다는 것을 몰랐으니까요. 그런데 좀 이상했습니다. 30년 남짓 흐른 시간에 나무가 엄청나게 커졌다는 게요. 엄마는 대답대신 그 나무의 옆을 조금씩 팠습니다. 나는 엄마에게 다가갔습니다.

“…하늘이 죽었나 보네. 미안해, 하늘아. 엄마가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해.”

혼잣말로 중얼거리던 엄마의 손에는 [○○여중 조선희] 라고 엄마가 다녔고 지금은 제가 다니는 학교의 이름과 엄마의 이름이 희미하게나 남아있는 얇은 플라스틱푯말이 들려있었습니다.

제가 한 달 동안 산에 올랐음에도 하늘이를 찾지 못한 것은 당연했습니다.

 

엄마가 산에서 그린 그림에는 하늘이가 있었습니다. 교복차림의 어린 엄마도 있었습니다. 교복차림의 어린 엄마는 작은 연습장을 들고 그림을 그리고 있었습니다. 하늘이를 그리는 어린 엄마는 눈이 빛나고 있었습니다. 종이에 그려진 눈이지만 나는 알 수 있었습니다. 엄마의 눈은 그림을 볼 때와 그릴 때 가장 빛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죠.

산에서 내려와 우리가족이 향한 곳은 꽃집이었습니다. ‘내 나무’를 구하기 위해서이지요. 꽃집에서 가장 잘 생긴 것 같은 소나무묘목을 골랐습니다. 제가 산 소나무묘목은 하늘이가 있던 자리에 살게 할 것입니다. 엄마가 하늘이에게 그랬듯 나 또한 이름을 지어 줄 것입니다. “목우(木雨)”라고요. 목우는 저의 동생으로 삼을 것입니다. 그리고 하늘이와 가장 가까운 곳에 있던 나무에게 부탁할 것입니다. 목우가 외롭지 않게, 다치지도 않게 도와달라고 말입니다.

 

 

소녀가 왔었습니다. 소녀의 엄마이면서 하늘이의 엄마였던 여자아이는 어느 새 아줌마가 돼있더군요. 소녀의 엄마와 소녀는 아주 어린 소나무 묘목을 가지고 왔습니다. 그리고는 하늘이가 있던 그 자리에 자리잡아주었습니다. 그리고는 저에게 말하더군요. “나무야, 우리 목우 잘 부탁해.” 저는 그 말을 듣고 저절로 웃음이 나왔습니다. 하늘이가 지었던 그 웃음, 제가 무척이나 부러워하였던 웃음이었습니다. 그리고 들었습니다. 소녀와 소녀의 엄마가 산에서 내려가면서 했던 말을 말이죠.

“엄마, 목우 옆에 있는 나무 웃는 것 같지 않았어?”

 

강아지발바닥냄새
강아지발바닥냄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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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 너에게 월하노인을 아느냐고 묻고 싶었다. 그는 부부의 연을 맺어주는 중매인이었다. 서로 인연이 될 두 사람의 새끼손가락에 붉은 실로 연결해주는 역할을 한다고 했다. 내가 처음 월하노인을 알게 된 계기는 언젠가 본 만화책이었다. 오래전 읽었던 터라 자세한 내용은 기억이 나질 않는다. 다만 만화책에서 누군가 그러기를, 월하노인이 여자주인공과 남자주인공의 인연을 맞닿게 해서 둘은 엮여질 수밖에 없는 운명이라고 했다. 너는 느끼지 못했겠지만 나는 분명히 실의 이끌림을 느꼈다. 언젠가 너를 본 순간 새끼손가락의 끝이 저릿했다. 나의 손가락에 묶인 실이 상대방을 알아보고 나에게 신호를 보내는 것임이 분명했다. 그 순간 나는 너의 새끼손가락을 내 손가락과 맞대고 싶었다. 그리고 입을 벌리려고 했다. 월하노인을 아니? 그가 엮어준 실의 이끌림이 느껴지지 않니? 하지만 너는 실의 이끌림은커녕 내 존재도 모르는 눈치였다. 너는 그 여자를 닮았다. 처음 너를 보았을 때 나는 네가 그 여자인 줄 알았다. 나와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세포 하나하나마저 다를 여자였다. 누가 봐도 여자가 나를 낳아줬다고 믿을 수 없을 만큼 나는 여자를 닮은 구석이 없었다. 여자는 너처럼, 허리까지 내려오는 결 좋은 머리카락과 다른 사람들의 틈에 있어도 하얀 피부, 작고 마른 체구와 사근사근한 말씨와 항상 웃는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 모두 내가 가지지 못한 것들이었다. 나는 악성곱슬이라 풀고 다니면 굉장히 보기 싫은 머리가 되었다. 앞머리를 내리면 곱슬거리면서 위로 떠버리기 때문에 내리나마나였다. 매직 파마를 해도 금세 풀려버리기 일쑤였다. 언제나 또래보다 큰 키에 골격이 지나치게 커서 살집이 더 있어보였다. 까무잡잡한 피부에 구석구석 자리 잡은 여드름 흉터는 나의 콤플렉스였다. 인상도 제법 날카롭고 음침하기까지 했다. 낯도 많이 가리고 말투도 무뚝뚝해서 간혹 다가오는 사람조차 다시 뒷걸음질 치게 하는 재주가 있었다. 사람들은 그런 여자와 나를 보면 가끔 나를 안쓰러운 눈길로 바라보곤 했다. 어찌, 애가 아빠만 쏙 빼닮고 엄마는 하나도 안 닮았네. 엄마를 조금이라도 닮았다면 정말 예뻤을 텐데. 다들 앵무새처럼 같은 말들만 했다. 나중에는 그런 이야기가 진절머리 나서 여자와 같이 다니는 걸 죽도록 싫어했다. 여자는 내가 자신을 피한다는 걸 알고 굉장히 서운해 했다. 그 무렵, 여자의 낌새가 이상해졌다. 생전 바르지도 않던 화장품을 얼굴에 찍어 바르기 시작했고 미용실에 가서 머리카락이 구불구불해지는 파마도 했다. 여자의 얼굴은 더 빛이 나기 시작했지만 아빠는 전혀 모르고 있었다. 여자의 머리카락이 구불거렸는지 어쨌는지, 짧았는지 길었는지도 모르는 것 같았다. 다만, 밥상에 올라온 고등어가 덜 익은 것 같다던가 오늘따라 밥이 좀 질다는 것만 알았다. 하루 종일 집에서 집안일만 하던 여자는 점점 밖에 나가는 일이 많아졌다. 그럴 때마다 여자는 점점 더 어려지는 듯 했다. 내가 여자를 멀리하면서 여자가 나에게 자주 걸던 말들도 점점 사라졌다. 다만 시종일관 웃는 낯으로 몸에 옷

  • 강아지발바닥냄새
  • 2012-12-28
알록달록

* 우리 집 개가 새끼를 낳았다. 학원에서 돌아오니 동생 녀석은 내가 신발을 벗기도 전에 솜뭉치-우리 집 개 이름-가 다섯 마리나 낳았다며 마치 자신이 새끼를 낳은 양, 자랑스럽게 말했다. “누나, 누나. 하얀 개 네 마리에 알록달록 한 마리야!” “알록달록 이라니?” 나는 동생이 무슨 헛소리를 지껄이나 했다. 솜뭉치도 말티즈 견이고 교배시킨 개도 말티즈 견이라 알고 있었는데, 그 둘 사이에 ‘알록달록’이 나올 리 없잖은가. 그 때, 안방에서 날카로운 소리가 들렸다. “순종이라면서요! 그런데 어떻게 점박이가 나올 수 있어요? …뭐라고요? 이것 보세요. 우리 집 개는 110만원이나 주고 산 순종이라고요!” 엄마의 목소리였다. 엄마의 목소리 톤이 저렇게 하이 톤이 되었는데도 상대방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걸 보면 통화중인 것 같았다. 아마, 교배시킨 개 주인이겠지. 엄마의 말을 들어보면 동생이 한 이야기도 마냥 헛소리는 아닌 것 같았다. 난 아직 눈도 못 떴을 새끼들을 보기 위해 조촐한 산실이 있을 서재로 갔다. 동생은 옆에서 조용히 하여야 한다며 검지를 지 입술 위에 올려놓고 내게 주의를 시켰다. 나는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이고 서재 문을 열었다. * 생전 처음으로 갓 태어난 생명들과 마주 앉았다. 눈도 못 뜨고, 털도 완전히 마르지 않고 핑크 빛 몸으로 꼬물거리는 생명들을 보자 가슴 한 구석이 간지러웠다. 만져보고 싶었지만 채 용기가 안 나 망설이고 있을 찰나, 동생이 속삭이며 한 녀석을 가리켰다. “누나, 쟤야. 알록달록.” 그 녀석은 제 엄마의 배 주변에서 꼬물거리는 제 형제들과 달리 머리맡에서 꼬물거렸다. 솜뭉치는 그 녀석을 끊임없이 핥아주었다. 녀석은 핑크빛 몸에 짙은 갈색의 반점이 있는 걸 제외하면 제 형제들과 다를 게 없어 보였다. 무늬는 동생의 말처럼 알록달록 하다기 보다는 얼룩덜룩했다. “엄마가 강아지들 주변에 가면 안 된대. 왜냐면 개들은 엄마가 되면 엄청 예민해져서 엄청 사납대.” 옆에서 동생이 끊임없이 작은 목소리로 떠들어댔지만 그런 게 제대로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하지만 갓 새끼를 낳은 개 주변에 가지 말아야 한다는 사실쯤은 알고 있었다. 나는 더 서재에 머무르는 것이 솜뭉치와 다섯 생명들에게 실례일 것 같아 동생을 일으켜 그 곳을 빠져나왔다. 안방에서 들려오던 엄마의 날카로운 목소리는 사라져 있었다. 대신 부엌에서 찬물을 연신 마시고 있는 엄마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왔니?” “응.” “개들 봤어?” “방금.” “그럼 그 점박이도 봤겠네.” “응.” “그것 땜에 교배시킨 개 주인이랑도 싸웠어.” “왜 그랬어. 개가 점박이든 아니든 어떻다고.” 나는 엄마가 이상하게 느껴졌다. 개가 새끼를 낳았는

  • 강아지발바닥냄새
  • 2011-03-13
내가 음악을 듣는 이유

  - 짝!   짝!   한 학교의 복도에 커다란 마찰음이 울려 퍼졌다. “대체 생각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   복도에는 머리가 반쯤 벗겨지고 마른 체구에, 한 SF영화에 나오는 외계인처럼 배가 볼록 튀어나온 남자 선생이 얼굴이 벌게진 채로 삿대질을 하며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선생의 앞에는 고개가 한 쪽으로 쏠린 한 남학생이 있었다. “너 고 3이야, 새끼야. 수업시간에 내가 노래 듣지 말라고 몇 번 경고했어? 근데 오늘은 헤드폰을 쓰고 노래를 들어? 지금 노래 듣지 말라고 했다고 반항하는 거야? 아님 네가 천재야? 엉? 모의고사 점수가 200점 간신히 넘으면서 그 성적에 노래가 들려?” 선생은 화를 내며 몇 번 더 학생의 머리를 손바닥으로 쳤다. “가수가 될 것도 아니면서 왜 노래를 듣는 건데? 그 노래가 수능에 나와? 면접에 나온데? 아님 노래를 들으면 밥이 나와, 돈이 나와. 김 승재, 넌 대체 뭔 생각으로 사는 건지 도저히 이해를 못하겠다.” 선생의 잔소리에도 승재는 아무 반응이 없었다. 승재는 다른 녀석들처럼 능청스럽게 징그러운 애교를 부리지도 않았다. 선생님이 때리면 맞고 잔소리하면 듣고, 서서 꿀 먹은 벙어리처럼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교사지도 불이행이란 죄목에 괘씸죄가 더해져 벌점 15점과 반성문 5장이란 벌을 받게 되었다.   - “미친 새끼. 왜 그러고 산대냐?”   한 편, 승재가 벌을 한창 수행하고 있을 때, 그와 같은 반 아이들은 삼삼오오 모여 그를 풍선껌처럼 씹고 있었다. 그 때 한 무리에서 어떤 여학생이 그 무리의 예쁘장한 여학생에게 장난스럽게 물었다. 예쁘장한 여학생의 교복에는 “민지희”, 어떤 여학생의 교복에는 “김지영”이라는 명찰이 붙어있었다.   “지희, 넌 아무렇지도 않아?” “뭐가?” “김 승재 말이야. 너 좋아하잖아.” 지희는 얼굴이 굳은 채로 금방 울상이 되어버렸다. “야, 김 지영! 민 지희 울잖아. 넌 무슨 말을 그렇게 하냐?” 다른 여학생이 지영을 비난하자 그녀는 당황하며 지희를 달랬다. “야, 야. 민 지희! 미안해~. 응? 마음 풀어. 뭐 그런 걸로 우냐?” “그래, 지희야. 그냥 장난친 거잖아.” 지영을 시작으로 그 무리의 여학생들이 지희를 달래주자 시끄럽던 교실에 갑자기 찬기가 돌았다. “민 지희, 왜 우냐.” 그 때 사납게 생긴 남학생이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찬 목소리로 말했다. “아니, 난… 그냥 장난친 건데 지희가 예민하게 받아들인 거야. 난 그냥 지희도 장난으로 받아들일 줄 알고…….” 지영은 얼굴이 창백해져서 횡설수설 변명을 늘어놓았다. 남학생은 무슨

  • 강아지발바닥냄새
  • 2010-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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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속박된 자유; 아.. 감사합니다 ㅠㅠ!!

    • 2009-07-28 12:5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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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화 같은 따뜻하고 훈훈한 느낌이 들어서 좋네요^^ 별 추천하구 가요^^

    • 2009-07-20 12:5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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