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星淚(성루)

  • 작성자 MIKA
  • 작성일 2009-09-01
  • 조회수 489

 

 

 햇살이 뜨거운 초여름, 온통 초록색으로 뒤덮여 한번 길을 잃으면 며칠을 헤매야 할 큰 숲도, 그 숲 바로 옆에 있는, 어쩐지 현실성 없어 보이는 집. 이라기엔 어딘가 모르게 생기 없어 보이는 집 모양의 본부로 삼 년 만에 돌아왔지만, 떠나기 전과 달라진 게 없다. 굳이 달라진 게 있다면, 안 그래도 큰 숲이 더 커진 것 같다는 거. 뭐 그 정도.


 머리 바로 위에서 내리쬐는 태양에 미간을 좁히며 내 키의 세배는 될 듯한 대문 앞에 섰다. 초인종 밑에 자리한 바코드 인식기에 손목을 갖다 대자, ‘코드넘버 031226. 확인됐습니다.’ 하고 딱딱한 여자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여자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열리기 시작한, 아침의 눈꺼풀보다 무거울 듯한 검정색 철 덩어리가 둘로 나뉘어졌다.


 열린 대문으로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풍경에 혀를 내둘렀다. 정원 한가운데에 커다란 분수가 생겼고, 대문부터 본부까지의 거리가 더 멀어졌다. 쯧. 200미터는 거뜬히 넘겠네. 가뜩이나 더워죽겠는데 걸어갈 생각을 하니 불쾌지수가 올라가는 것 같아 표정이 일그러졌다. 한숨을 내쉬며 왼발을 앞으로 내딛으려는 순간, 뒤에서 여자기계의 목소리가 들렸다.


 ‘코드넘버 081264. 확인됐습니다.’


 내가 뒤를 돌아보는 것 보다, 그 녀석이 내 어깨에 손을 얹는 게 더 빨랐다.


 “오랜만이네!”


 “어.”


 뒤를 돌아보려던 고개를 다시 앞으로 떨어뜨리며 한숨을 쉬었다.


 “덥지?”


 “그러게.”


 “내 체스 타고 갈래?”


 “그러다 걸리면 대머리한테 혼난다.”


 “괜찮아. 내 체스는 오라를 숨기는 능력이 좋으니까.”


 자신의 품속에 있던 체스를 꺼내는 모습을 무덤덤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언제부터 ‘이것’을 당연하게 여기게 되었을까. 그 이유를 생각해내기 위해선 7년 전의 기억을 꺼내야한다.


 

 

 

 


 그러니까 오년 전 나의 12번째 생일날이었다. 우리 가족은 오랜만에 한데 모여 저녁을 먹고 있었고, 그때 집에 불이 났다. 어디서부터 시작했고 어디에서 끝났는지도 모를 그 불은 나를 제외한 모든 가족들을 별로 만들어버렸다. 왜 나를 ‘제외’한 모두인가 하면, 그때 나의 ‘체스’가 나를 지켜줬기 때문이라고 조직의 사람들은 말한다. 그리고 나 역시 그렇게 생각한다.


 ‘체스’라는 건 특수한 힘을 가지고 있는 물질로, 자신에게 맞는 사람을 만나면 힘을 발휘하게 된다. 그 모양은 대체로 동물이나 사람모양이며 그것의 주인이 원할 때나 위험할 때에 변신하도록 되어있다.


 집에 불이 난 이후로의 기억은 없다. 그 다음 기억은, 내가 마당에서 하얗던 집이 불에 타 거멓게 변한 걸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고, 내 옆엔 지금의 조직 보스인 대머리가 있었다는 것.


 그 후로는 조직의 본부에서 생활했다. 보통의 또래들처럼 여러 가지를 배웠고, 또 그들과는 다르게 ‘체스와 함께 싸우는 법’을 배웠다. 하지만 한 달이 지나고 두 달이 지나도록 나의 입과 눈은 한 순간도 달라지지 않았고, 말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또 세 달이 흘러 7년 전 이맘때쯤, 조직은 어떠한 소식으로 조금 들떠있는 분위기였다. 내게 ‘평범한 것’을 가르치는 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특별한 것’을 가르치는 사람이 말했다. ‘누군가가 깨어났다-’고.


 그 다음날, 나를 데려온 대머리가 그 ‘누군가’와 만나게 해주겠다며 본부 옆의 숲으로 데려갔다. 그 숲은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이세상의 공간이 아닌 것 같았다. 열 걸음마다 계절이 바뀌었으니까. 분명히 들어올 땐 초여름의 온통 푸른 숲이었는데, 나는 어느새 매미가 우는 여름을 지나 단풍나무와 코스모스가 잔뜩 핀 가을을 지나고 있었다.


 가을을 지나 눈 쌓인 겨울이 보일 때 즈음, 대머리가 입을 열었다. ‘이 곳은 이 세상이 아니고, 다른 어느 곳에도 속하지 않은 공간이야. 굳이 말하자면 우주와 지구사이라고 할까?’


 신기하게도, 내가 이상하게 생각한 것은 몇 걸음마다 계절이 바뀌거나 그런 것이 아니었다. 눈 위를 걷고 있는데도 차갑기는커녕 포근하다는 게 더 신기했고, 또 이상했다. 그럼에도 눈이 녹지 않는다는 것에.


 다시 또 봄과 여름을 지나 단풍나무가 보이기 시작할 때, 입구부터 지금까지 걸어온 길과는 다르게 나무들이 길을 막고 있었다. 대머리와 나는 그 앞에 멈춰 섰고, 나무 위에 앉아있던 이질적인 느낌의 새가 대머리의 손에 내려앉았다.


 ‘전에 얘기했던 녀석을 데리고 왔어. 지금 들어가도 될까?’ 하는 말에 나무들이 구부러진 허리를 펴 우리가 지나갈 수 있게 해준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나무들이 내어 준 길을 좀 더 걸어가자, ‘가을 속 봄’이 존재했다. 커다란 원 모양의 봄과, 그 주변을 둘러싼 가을. 이었다. 봄의 중심에는 검은색 그랜드 피아노가 한대 놓여 있었고, 그 피아노에 앉아 아름다운 소릴 내는 네가. 있었다.

 



 그 뒤로 나는 ‘너의 공간’에서 살다시피 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나의 입과 눈모양은 다양해져갔고, 사람들이 내 목소리를 들을 수도 있게 됐다. 너는 그런 힘을 가지고 있었다. 다른 사람을 변하게 하는.


 딱히 하는 일 없이 그저 너의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너는 온 몸에 악보가 그러져있었는데, 낮엔 보이지 않지만 밤이 되어 달빛을 받으면 악보가 보인다. 그것은 ‘숲의 수호신’들에게 새겨지는 것으로, 일정하지 않은 속도로 음표가 하나하나 없어진다고 했다. 그리고 악보가 다 지워져버리면, 그 수호신이 사라지고 다른 수호신이 나타난다는 말도.


 그렇게 매일 낮에는 너의 얘기를 들었고, 밤에는 너의 소릴 들었다. 밤이 되면 숙여있던 나무들이 허리를 펴 너의 공간으로 달빛을 비춰주고, 그럴 때면 넌 언제나 피아노를 연주하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달빛 아래의 나를 멍하니 쳐다보던 네가 감정 없이 내뱉었던 말. ‘넌 월광을 닮았어.’ 그러고는 내게 들려주던 너의 그 소리는 너의 공간만큼이나,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지구와 우주를 포함한 모든 존재하는 세계에 ‘존재하는 것’이라고 믿기에는 너무도 아름다웠다.


 그렇게 이 년이 지나고, 너는 평범한 사람들처럼 잠이 들었지만, 그 시간은 결코 평범하지 않았다. 네가 꿈을 꾸는 동안, 나는 전 세계를 돌며 조직이 내게 내린 임무를 수행했고, 다시 삼년 후, 나는 다시 이곳에 서있다.



 

 


 “…아?”


 “………….”


 “괜찮아?”


 방금 전에 들은 것 같지만 먼 옛날에 들은 듯한 목소리가 들렸다. 아. 나 또 쓰러진 건가. 어렸을 때부터 햇빛에 약해 햇빛 아래 오래 서있거나 하면 현기증으로 곧잘 쓰러지곤 했었다. 그래도 한동안 그런 적은 없었는데, 그나마 ‘집’이라고 할 수 있는 곳에 돌아왔다고 긴장이 풀린 건가.


 “괜찮아.”


 몸을 일으켜 세우자 가벼운 어지러움이 머릿속을 헤집는다. 눈을 감고 귀를 막아 오직 심장이 뛰는 소리에 집중하자, 곧 어지러움이 사라진다. 다시 눈을 뜨고 눈에 비치는 모습을 보아하니 본부 안에 있는 치료실인 것 같다.


 “대머리가 너한테 할 얘기가 있다고 일어나면 바로 오랬어.”


 나는 머리를 쓸어 올린 후 자리에서 일어나 바닥에 놓여있던 검정색 워커를 신었다.


 “혼자서 괜찮겠어?”


 “그래.”


 하얀색 공간의 하얀색 출구를 열어 또 다른 하얀 공간으로 들어섰다. ‘화이트씨즈’ 무의식적으로 다섯 글자를 웅얼거렸다. 화이트씨즈. 그것이 우리 조직의 이름이었다. 조직이 하는 일은 이 세상이 아닌 다른 세계, 죽은 자들의 세상인 ‘에이스’에서 흘러들어온 ‘메이트’를 ‘정화’시키는 것. 그리고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세상인 ‘숲’을 지키는 것. ‘화이트씨즈’와 반대되는 조직은 ‘블랙씨즈’로, 메이트를 ‘정화’시키는 게 아니라, ‘소멸’시킨다. ‘정화’는 메이트가 원래 있어야할 곳으로 보내는 것이고, ‘소멸’은 말 그래도 아예 없애버리는 것이다. 그리고 블랙씨즈는 다른 세계로 이동할 수 있는 수단으로 ‘숲’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온통 하얗지만 곳곳에 어둠이 적절히 베여있는 공간들을 지나, 익숙한 문 앞에 서서 ‘똑똑’ 노크를 했다.


 “들어오너라.”


 중저음의 대답이 들리면, 문을 열어 그 목소리의 주인공과 얼굴을 마주한다.


 “오랜만이구나.”


 “네.”


 “쓰러졌었다면서. 여전히 햇빛에 약한가 보구나.”


 “네.”


 “숲에는 가봤니?”


 “아뇨. 인사 먼저 드리고 갈려고 했어요.”


 문 너머의 공간과는 달리 갈색과 베이지색이 섞인 공간속에 짙은 고동색의 소파에 마주 앉아 삼 년 만에 대화를 하고 있는데도 별 감흥이 없었다. 아마 일주일에 한 번씩 화상통화로 임무를 전하고 받아서 그런 것이리라.


 “…‘에이스’의 균형이 무너지기 시작했어.”


 “그래서 돌아오라고 한건가요?”


 “그래. 덕분에 이 세상과 에이스의 사이에 존재하는 ‘숲’도 무너지고 있어.”


 “…악보는….”


 “마침 며칠 전에 깨어났으니 네가 직접 가보는 게 좋을 것 같다. 조금씩 어두워지기 시작하니 네가 그 곳에 도착하면 피아노를 치고 있겠구나.”


 아아. 벌써 시간이 그렇게나 흘렀나-하는 생각도 잠시, 나는 내 앞에 앉아있던 삼 년 전보다 더 심해진 대머리에게 꾸벅 고개 숙여 인사를 한 뒤 본부에서 뛰쳐나와 숲으로 뛰었다.


 ‘숲’은 에이스와 현세 사이에 존재하는 세계로, 숲이 있기에 두 세계가 지금까지 존재할 수 있는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런데 지금 에이스의 균형이 무너지고 있고, 대머리가 악보얘기까지 꺼낸 걸 보면, 무슨 일이 생긴 게 틀림없다.


 숲에 들어서자마자 너무 맑아서 이상하기까지 했던 공기가 약간 탁해져있다. 에이스에서 빠져나오려는 메이트들을 네가 필사적으로 막고 있기 때문이리라.


 전보다 계절의 차이가 흐릿해진 길들을 지나 너의 공간에 가까워질수록 무겁고 탁한 공기가 나를 짓눌렀다. 너의 공간을 둘러싸고 있던 나무들은 썩어가고 있었고, 그 속에선 메이트 중에서도 상위에 속하는 메이트 다섯 마리를 상대로 혼자 고전하고 있는 네가 있었다. 평소 같으면 아무렇지도 않게 해치우던 너인데, 몸이 많이 약해졌는지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맺혔다.


 나는 품속에 있던 사람 모양의 체스를 꺼내어 나의 기(氣)를 불어넣었다. 그러고는 너에게로 다가가 비틀거리는 몸을 받치고, 체스에게 메이트를 해치울 것을 명령했다.


 메이트들에게서 떨어져 달빛 아래에 놓여진 너의 몸은 뼈가 다 보일 정도로 말라있었고, 무엇보다 온 몸에 가득하던 악보들이 한 마디 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오랜…만이네.”


 이렇게 환하게 웃으며 내게 오랜만이라 말하는 너에게, 나는 마주 웃어줄 수가 없었다. 그 미소가 너무도 젖어 있어서.

 

 “응…오랜 만이야.”


 목소리를 겨우겨우 끌어내 대답하자, 또 하나의 음표가 사라지고 있었다. 눈에 눈물이 맺히고, 너의 얼굴엔 미소가 사라졌다.


 “전에…별의 수만큼 소원이…이루어진다고 말…했었지? 그때, 네가 널 위한 별은 없…을 거라고 했었는…데.”


 “응응.”


 유난히 별이 많이 떴던 날 밤, 피아노 뚜껑을 닫고 그 위에 누워 별을 보며 네가 내게 해준 말이었다. ‘별의 수만큼 소원은 이루어진다.’고-


 “내…가 너의 별이 되 줄게….”


 “……….”


 “오직 너만을… 위한 별이 돼서, 네 소원…을 들어줄게….”


 그리 길지 않은 말을 하는 동안, 나의 체스는 메이트들을 다 해치웠고, 음표가 하나씩 줄어감에 따라 너도 점점 희미해져만 갔다. 나만의 별이 되어 나의 소원을 이루어주겠다는 너의 말에, 눈물이 흘렀다.


 “…그거 알아…? 네 눈물… 사 분의 사 박자야….”


 알아. 전에도 말해준 적이 있었잖아. 세상 모든 걸 음악과 관련지어 생각하는 너는, 이따금씩 나를 음악으로 말해주곤 했었다. 지금처럼.


 내게 느껴지던 무게가 점점 가벼워지고 마지막 남은 음표가 희미해져갈 때, 너는 그 마지막 음표보다 한 박자 느리게, 사라져갔다.


 멍하니 네가 떠난 자리를 바라보다, 부는 바람에 우수수 나뭇잎을 떨어뜨리며 흔들리는 그 나무들이 울고 있는 것 같다고 생각한 순간, 주체할 수 없이 눈물이 흘렀다.






 “내가 너에게 바라는 소원은…

 

 

 

MIK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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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IK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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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IKA
  • 2009-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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